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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여러분—자녀들이 장차 어떻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부모 여러분—자녀들이 장차 어떻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부모 여러분—자녀들이 장차 어떻게 살기를 바라십니까?

“청년들과 또한 처녀들아, ···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시 148:12, 13.

1. 부모들은 자녀에 대해 무엇을 염려합니까?

자녀의 미래에 대해 염려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부모는 갓난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아니 그전부터도, 아기의 복지에 대해 걱정하기 시작합니다. 아기는 건강할 것입니까? 정상적으로 발육할 것입니까? 자녀가 성장하면서 염려거리는 늘어납니다. 대개 부모는 자녀가 정말 잘되기만을 바랍니다.—사무엘 첫째 1:11, 27, 28; 시 127:3-5.

2. 오늘날 많은 부모들의 마음이 자녀들이 성장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게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세상에서 자녀가 정말 잘되도록 뒷바라지해 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많은 부모들은 전쟁, 정치 격변, 경제적 난관, 신체적 혹은 정신적 충격 등으로 가득 찼던 힘겨운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당연히 자녀만큼은 그와 같은 일들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부모의 심정입니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부모들은 친구나 친족의 자녀들이 전문 직업인이 되어 성공한 듯한 삶을 사는 것을 볼지 모릅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자기 자녀도 성장하면 적절한 정도로 편안하고 안정되게 살도록, 다시 말해 만족스러운 삶을 살도록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 주어야 한다고 느끼게 됩니다.—전도 3:13.

만족스러운 삶의 길

3.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길을 선택하였습니까?

3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인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 자신들의 인생을 바치는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러한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고통의 기둥을 메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 (누가 9:23; 14:27)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자기희생이 따릅니다. 하지만 그 삶은 궁핍하고 비참한 삶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삶은 주는 일을 하는 삶이며,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기 때문에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 성공적인 삶입니다.—사도 20:35.

4.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추구하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까?

4 예수 시대의 사람들은 매우 힘든 여건에서 생활하였습니다. 그들은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을 뿐만 아니라 로마 사람들의 가혹한 통치와, 형식에 치우친 당시 종교인들이 지운 과중한 부담을 견뎌야 했습니다. (마태 23:2-4) 하지만 예수에 대해 들은 많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것을—심지어 전문 직업까지도—기꺼이 버리고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마태 4:18-22; 9:9; 골로새 4:14) 그 제자들은 자신들의 장래를 위태롭게 하는 모험을 한 것입니까? 예수의 이러한 말씀에 유의하십시오. “누구든지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아버지나 어머니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여러 배를 더 받을 것이요, 또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을 것입니다.” (마태 19:29) 예수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들의 필요를 아신다고 보증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들에게 이처럼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왕국과 그분의 의를 계속 첫째로 구하십시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여러분에게 더하여질 것입니다.”—마태 6:31-33.

5. 일부 부모들은 하느님이 자신의 종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라는 예수의 보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5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며, 생활에서 왕국 권익을 첫째 자리에 두는 사람들, 특히 전 시간 봉사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그분이 자신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6, 16; 베드로 첫째 5:7) 하지만 이 부면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자녀들이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에서 발전하기를, 어쩌면 나중에 전 시간 봉사를 시작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오늘날 세상의 경제 상황이나 고용 상황을 고려할 때 자녀들이 먼저 좋은 교육을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야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구하는 데 필요한 자격을 갖추게 되거나, 적어도 어려울 때 의지할 만한 것이 있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부모들은 흔히 고등 교육을 받아야 좋은 교육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래를 위한 준비

6. 이 기사에서 “고등 교육”이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습니까?

6 교육 제도는 나라마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많은 나라에서는 공립학교에서 12년간 기본 교육을 받게 합니다. 그 후 학생은 대학에 진학하여 4년이나 그 이상을 공부해서 학사 학위를 받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고 의학, 법학, 공학 등의 분야에서 전문 직업인이 되기 위해 대학원 교육을 받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고등 교육”이라는 표현을 그러한 대학 교육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기술이나 서비스 분야에서 단기 교과 과정을 밟아서 자격증이나 수료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기술학교나 직업학교도 있습니다.

7. 고등학생들은 학교에서 어떤 압력을 받고 있습니까?

7 오늘날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에서부터 고등 교육을 위해 학생들을 준비시키는 것이 추세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는 학생들의 취업에 도움이 되는 교과 과정보다는 대학 입시에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게 해 주는 학문적인 과목들에 역점을 둡니다. 오늘날 고등학생들은 일류 대학 진학을 목표로 삼도록 교사들과 상담가들과 동료 학생들로부터 엄청난 압력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러한 대학에서 학위를 받아 앞날이 보장되고 보수가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8.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어떤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까?

8 그러면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물론 그들은 자녀들이 학교에서 모범생이 되고 앞으로 자립하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배우기를 바랍니다. (잠언 22:29) 하지만 부모들은 자녀들이 물질적인 면으로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경쟁하는 분위기에 휩쓸리도록 내버려 두어야 합니까? 부모들은 말이나 모범을 통해 자녀들에게 어떤 목표를 갖게 하고 있습니까? 때가 되면 자녀들이 고등 교육 기관에 진학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으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또한 그렇게 하려고 빚을 지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로 결정할 때 치르는 대가는 돈으로만 계산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고등 교육을 추구할 때 치르게 되는 대가는 어떠한 것입니까?—누가 14:28-33.

고등 교육을 추구할 때 치르게 되는 대가

9. 오늘날 고등 교육에 드는 금전적인 비용은 어떠합니까?

9 대가라고 하면 대개 우리는 금전적인 비용을 생각합니다. 일부 나라에서는 정부의 지원으로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어서 자격을 갖춘 학생들은 수업료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에서 고등 교육은 비용이 많이 들며 갈수록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스」지의 한 특집 기사에서는 이렇게 논평하였습니다. “그동안 고등 교육은 기회로 인도하는 견인차로 여겨졌었다. 이제 고등 교육은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구분 짓는 확실한 표가 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질 높은 고등 교육은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전유물로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녀들도 그러한 교육을 통해 현 제도에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되는 확실한 길을 가게 하려고 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그러한 목표를 선택할 것입니까?—빌립보 3:7, 8; 야고보 4:4.

10. 고등 교육은 현 제도의 발전과 어떻게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까?

10 무상으로 고등 교육을 받는 경우에도 조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의하면, 동남아시아의 한 나라에서는 “제일 우수한 학생들을 드러내 놓고 최고 자리에 오르게 하는 피라미드형 학교 체계”를 정부에서 운영합니다. 이 “최고”가 되면 결국 영국의 옥스퍼드와 캠브리지, 미국의 아이비리그 대학교들과 같은 세계적인 명문 대학들로 진학하게 됩니다. 정부가 그처럼 장기적인 교육 계획을 운영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동 보도에 의하면, “국가 경제를 부흥”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교육은 거의 무상이겠지만 학생들은 현 제도의 발전을 위해 몸 바쳐야 하는 삶을 사는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인생을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세상에서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는 하지만,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이 그런 삶을 살기를 바랍니까?—요한 15:19; 요한 첫째 2:15-17.

11. 보도들에 의하면, 대학생들의 알코올 남용과 성적 부도덕은 어떠합니까?

11 또 다른 요인으로 환경이 있습니다. 대학 캠퍼스들은 좋지 않은 행실로 유명합니다. 마약 및 알코올 남용, 부도덕, 부정행위, 과도한 신입식 등 그러한 행실의 예는 많습니다. 알코올 남용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오로지 취하려는 목적으로 술을 마시는 폭음에 관해 보도하면서 「뉴 사이언티스트」지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미국 대학생 중] 약 44퍼센트는 대개 적어도 2주에 한 번은 폭음을 한다.” 러시아, 영국, 오스트레일리아 등 다른 지역에도 그러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성적 부도덕과 관련하여 오늘날 대학생들 사이에는 “후킹 업”(hooking up)이라는 것이 유행하는데, 「뉴스위크」지의 보도에 의하면, 이것은 “아는 사이이기는 하지만 나중에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없는 사람들끼리 즐기는—키스에서부터 성 관계에 이르는—일회성의 성적 접촉을 묘사”하는 말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60 내지 80퍼센트에 달하는 대학생들이 그런 행동에 빠진다고 합니다. 한 연구가는 “정상적인 대학생이라면 그것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고린도 첫째 5:11; 6:9, 10.

12. 대학생들은 어떤 압력에 노출되어 있습니까?

12 그처럼 환경이 좋지 않은데다, 학업과 시험의 압력도 있습니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공부하고 숙제를 해서 시험을 잘 치러야 합니다. 또한 학교에 다니면서 적어도 한 가지 시간제 일을 해야 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을 하려면 그들은 엄청난 시간과 힘을 바쳐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영적 활동을 위해 남는 것이 있을 것입니까? 압력이 커지면 무엇을 포기할 것입니까? 왕국 권익이 여전히 첫째 자리에 올 것입니까, 아니면 뒷전으로 밀려날 것입니까? (마태 6:33) 성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강력히 권합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걷는지 계속 엄밀히 살펴서 지혜롭지 못한 사람이 아니라 지혜로운 사람처럼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 적절한 시간을 사십시오. 시대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5:15, 16) 일부 학생들이 대학 생활이 요구하는 대로 시간과 힘을 바치다가 혹은 대학에서 비성경적인 행실에 빠져서 믿음에서 떨어져 나가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13.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어떤 질문들을 고려해 보아야 합니까?

13 물론 부도덕과 좋지 않은 행실과 압력이 결코 대학 캠퍼스에만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세상의 많은 젊은이들은 그 모든 것을 교육의 일부일 뿐이라고 여기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익히 알면서도 자녀들을 그러한 환경에 4년이나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을 노출시킬 것입니까? (잠언 22:3; 디모데 둘째 2:22) 자녀들이 얻게 될지 모르는 유익이 그러한 위험을 무릅쓸 만큼 가치 있는 것입니까?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으로, 자녀들은 생활에서 첫째 자리에 두어야 할 것들에 관해 무엇을 배우고 있습니까? * (빌립보 1:10; 데살로니가 첫째 5:21) 부모들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그리고 다른 도시나 다른 나라의 학교로 자녀를 보내는 일의 위험성에 대해 심각하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길이 있는가?

14, 15. (ㄱ) 널리 퍼져 있는 견해와는 달리, 성서의 어떤 교훈이 오늘날 적용됩니까? (ㄴ) 젊은이들은 어떻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까?

14 오늘날에는 젊은 사람들이 성공하려면 대학 교육을 받는 수밖에 없다는 견해가 널리 퍼져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널리 퍼져 있는 견해를 따르기보다는 다음과 같은 성서의 교훈을 청종합니다. “더는 이 사물의 제도를 따라 틀 잡히지 말고, 도리어 여러분의 정신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느님의 선하고 받아들이실 만하고 완전한 뜻이 무엇인지 확인하십시오.” (로마 12:2) 이 마지막 날의 끝 부분에, 노소를 막론하고 자신의 백성에 대한 하느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강력히 권하였습니다. “그대는 모든 일에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고, 복음 전파자의 일을 하고, 봉사의 직무를 완수하십시오.” 이 말씀은 분명히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적용됩니다.—디모데 둘째 4:5.

15 우리 모두는 세상의 물질주의적인 영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정신을 차리고” 있어야, 다시 말해 영적인 진로를 확실히 해 두어야 합니다. 젊은이라면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나는 “나의 봉사의 직무를 완수”하고 자격을 갖춘 하느님의 말씀의 봉사자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는가? 나의 봉사의 직무를 “온전히” 수행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하고 있는가? 전 시간 봉사를 천직으로 삼으려고 생각해 보았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이 아닙니다. 다른 젊은이들이 이기적인 관심사를 추구하는 데 열중하면서, 밝은 미래를 열어 줄 것 같아 보이는 “큰일을 추구”하는 것을 보면 더욱 그러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45:5)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을 위해 유아기부터 올바른 영적 환경과 훈련을 베풀어 주는 것이 현명합니다.—잠언 22:6; 전도 12:1; 디모데 둘째 3:14, 15.

16.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어떻게 올바른 영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현명합니까?

16 어머니가 오랫동안 전 시간 봉사를 하고 있는 한 가정의 세 아들 가운데 장남은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어머니는 우리의 교제를 아주 면밀히 살피셨습니다. 우리는 학교 급우들과는 어울리지 않고 회중 내에서 영적 습관이 좋은 아이들과만 어울렸습니다. 어머니는 또한 선교인이나 여행하는 감독자나 베델 봉사자나 파이오니아와 같은 전 시간 봉사자들을 정기적으로 집에 초대해서 교제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의 경험담을 듣고 그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서 전 시간 봉사를 하고 싶은 열망이 마음에 뿌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기쁘게도 지금 그 세 아들은 모두 전 시간 봉사를 하고 있는데, 한 아들은 베델에서 섬기고 있고 한 아들은 봉사 훈련 학교에서 훈련을 받았으며 한 아들은 파이오니아를 하고 있습니다!

17. 부모들은 자녀가 학과목이나 직업 목표를 선택할 때 어떻게 지도할 수 있습니까? (29면 네모 참조)

17 강력한 영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 더해, 부모들은 자녀가 학과목이나 직업 목표를 선택할 때 가능한 한 일찍부터 올바로 지도해야 합니다. 현재 베델 봉사를 하고 있는 또 다른 젊은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부모님은 결혼 전부터 계속 파이오니아를 하였으며, 파이오니아 영을 온 가족에게 심어 주려고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우리가 학교에서 과목을 선택하거나 미래에 영향을 미칠 결정을 할 때면 부모님은 언제나 우리가 시간제 직장을 구해서 파이오니아를 하는 데 가장 좋은 쪽을 선택하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부모와 자녀는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문적인 과목을 선택하기보다는 신권적인 천직을 추구하는 데 어떤 교과 과정이 도움이 되는지 숙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

18. 젊은이들은 어떤 직업을 갖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까?

18 연구에 의하면, 많은 나라에서 절실히 필요한 인력은 대학 졸업자들이 아니라 기술직과 서비스직에서 일할 사람들입니다. 「USA 투데이」지에서는, “앞으로 수십 년간 근로자들 중 70퍼센트는 4년제 대학 학위보다는 전문대학 학위나 어떤 기술 자격증이 더 필요할 것”이라고 보도합니다. 많은 전문대학에서는 사무 처리, 자동차 정비, 컴퓨터 수리, 배관, 미용과 같은 여러 기술을 단기 과정으로 가르칩니다. 그러한 직업들도 좋은 직업들입니까? 분명히 그러합니다! 그러한 직업은 아마 일부 사람들이 꿈꾸는 화려함은 없겠지만 여호와에 대한 봉사를 진정한 천직으로 삼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얻게 해 줍니다. 다시 말해 필요한 수입을 올리면서 근무 시간을 자유로이 조절할 수 있게 해 줍니다.—데살로니가 둘째 3:8.

19.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한 길은 무엇입니까?

19 성서는 이렇게 호소합니다. “청년들과 또한 처녀들아, ··· 그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분의 이름만 홀로 도달할 수 없게 높기 때문이다. 그분의 위엄은 땅과 하늘 위에 있[다].” (시 148:12, 13) 세상이 제시하는 지위와 보상에 비할 때, 여호와께 전 시간 봉사를 드리는 천직은 의문의 여지없이 기쁨과 만족으로 가득 찬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성서의 이러한 보증을 마음에 새기도록 하십시오. “여호와의 축복—그것은 부유하게 해 주고, 그분은 거기에 고통을 더하시지 않는다.”—잠언 10:22.

[각주]

^ 13항 대학 교육보다 신권 교육을 더 가치 있게 여긴 사람들의 체험담을 보려면, 「파수대」 1982년 8월 15일호 18-21면; 1979년 9월호 21-6면; 「깨어라!」 1979년 1월호 40면; 1974년 11월 22일호 3-6면 참조.

^ 17항 「깨어라!」 1998년 10월 8일호 “안전한 생활을 찾아서” 4-6면1989년 5월 15일호 “나는 무슨 직업을 천직으로 택할 것인가?” 12-14면 참조.

설명할 있습니까?

● 그리스도인들은 안전한 미래를 위해 무엇을 신뢰합니까?

●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자녀의 미래와 관련하여 어떤 도전적인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 고등 교육을 추구하기 위해 치르는 대가를 생각할 때 무엇을 고려해야 합니까?

● 부모들은 자녀가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를 천직으로 추구하도록 어떻게 도울 수 있습니까?

[연구 질문]

[29면 네모]

고등 교육의 가치는?

대학에 진학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학위를 받아서 보수가 좋고 안정된 직장을 구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보고서들에 의하면, 대학 진학자들 중에서 6년 내에 학위를 받는 사람은 불과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성공률이 매우 낮은 것이다. 설령 학위를 받는다 하더라도 훌륭한 직장이 보장되는가? 최근의 연구 조사 결과가 알려 주는 바에 유의하기 바란다.

“하버드대나 듀크대 같은 명문을 다닌다고 자동적으로 더 나은 직업과 더 높은 급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 회사는 신입 사원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기 때문에 아이비리그의 ‘빛나는 졸업장’은 상당한 이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진정한 능력이 더 중요하다.”—「뉴스위크」(한국어판), 1999년 11월 10일호.

“오늘날 대부분의 직업이 과거보다 높은 수준의 실력을 요하지만 ···, 그러한 직업에 요구되는 실력은 높은 수준의 중등학교 실력—중3 수준의 수학, 읽기, 쓰기—이지 ···, 대학 수준의 실력이 아니다. 학생들이 좋은 직업을 구하기 위해 대학에 진학할 필요는 없으며, 그보다는 중등학교 수준의 실력을 제대로 연마하는 것이 필요하다.”—「미국 교육자」(American Educator), 2004년 춘계 호.

“대부분의 대학은 학생들을 졸업 후 직업 세계에서 역군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면에서 현실 세계와는 크게 동떨어져 있다. 직업학교들이 ··· 갑자기 인기를 얻고 있다. 그러한 학교들의 입학률이 1996년부터 2000년 사이에 48퍼센트나 증가했다. ··· 반면에 비용이 많이 들고 오랜 시간을 바쳐야 하는 대학 졸업장은 전에 없이 가치가 떨어졌다.”—「타임」, 2005년 1월 24일호.

“2005년 전반에 관한 미국 노동부의 예측에 의하면, 전체 4년제 대학 졸업자 중 적어도 3분의 1이 자기가 받은 학위에 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암울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미래주의자」(The Futurist), 2000년 7/8월호.

이 모든 점들 때문에 오늘날 고등 교육의 가치를 심각하게 의문시하는 교육자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우리는 잘못된 미래를 위해 사람들을 교육하고 있다”라고, 「미래주의자」지의 보도에서는 개탄한다. 반면에 우리는 하느님에 관한 성서의 이러한 말씀에 유의해야 한다. “나 여호와는 너의 하느님, 너에게 유익하도록 너를 가르치고, 너를 걸어가야 할 길로 걷게 하는 이이다. 오, 네가 나의 명령에 실제로 주의를 기울이기만 한다면! 그러면 네 평화가 강처럼 되고, 네 의가 바다 물결처럼 될 것이다.”—이사야 48:17, 18.

[26면 삽화]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던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31면 삽화]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유아기부터 자녀들에게 강력한 영적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