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1-21

3  끝으로 나의 형제 여러분, 주 안에서 계속 기뻐하십시오.+ 나는 여러분에게 같은 내용을 다시 쓰는 것이 귀찮지 않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안전을 위한 것입니다.  개들을 조심하십시오. 해를 입히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살을 잘라 내는 자들을 조심하십시오.+  우리는 참다운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영으로 신성한 봉사를 드리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랑하고 있고+ 육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사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이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더욱 그러합니다.  나는 8일째 되는 날 할례를 받았고,+ 이스라엘 민족으로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히브리인에게서 난 히브리인이며,+ 율법으로 말하자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열심으로 말하자면 회중을 박해했으며,+ 율법에 따른 의로 말하자면 나무랄 데 없음을 증명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처럼 나에게 이익이 되었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손실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의 탁월한 가치 때문에, 나는 참으로 모든 것을 손실로 여깁니다. 그분을 위해 나는 모든 손실을 감수했고, 그 모든 것을 많은 쓰레기로 여깁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그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나 자신이 율법을 지켜서 얻는 의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는 의+ 곧 믿음을 근거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10  내 목표는 그분과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고 그분의 고난에 참여하여+ 그분의 죽음과 같은 죽음을 겪는 것입니다.+ 11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 이른 부활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  내가 이미 그것을 받았거나 이미 완전하게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선택하여* 추구하게 하신 그것을 붙잡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13  형제 여러분, 나는 아직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곧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내뻗치면서,+ 14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위로 부르시는+ 상을 얻기 위해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 장성한 사람은+ 이러한 정신 태도를 가집시다. 여러분이 무엇인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위와 같은 태도를 알려 주실 것입니다. 16  그렇지만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진보했든지 이 동일한 행로로 계속 걸읍시다. 17  형제 여러분, 모두 함께 나를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위해 우리가 보인 모범과 일치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자주 말했고 지금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지만, 그리스도의 형주의 적으로 걷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19  그들의 끝은 멸망이고, 그들의 신은 자기들의 배이며,+ 그들의 영광은 사실상 수치입니다. 그들은 땅의 일만 생각합니다.+ 20  하지만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으며+ 우리는 그곳에서 오실 구원자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21  그분은 모든 것을 자신에게 복종시키실 수 있는+ 큰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각주

달리 번역하면 “기꺼이 버렸습니다.”
직역하면 “붙잡아”.

연구 노트

항상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또다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주 안에서 기뻐하십시오”라고 권고한다. (빌 3:1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주”라는 칭호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 구절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구절들에는 여호와 안에서 기뻐하라고 되어 있다.—시 32:11; 97:12.

주 안에서 계속 기뻐하십시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신이 기뻐하고 있다고 여러 번 말했으며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기뻐하라고 권했다. (빌 1:18; 2:17, 18, 28, 29; 4:1, 4, 10) 바울이 기쁨을 강조한 것은 유의할 만하다. 그가 이 편지를 쓸 당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 안에서”라는 표현은 “주와 관련해”, “주와 함께하여”, “주와 결합하여” 또는 “주로 인해”와 같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여기서 “주”라는 칭호는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킬 수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킬 수도 있다. 하지만 바울은 비슷한 내용이 나오는 히브리어 성경 구절들을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구절들에는 여호와 안에서 기뻐하라고 되어 있다.—시 32:11; 97:12. “빌립보서 소개” 및 빌 4:4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한 것을 개들에게 ··· 진주를 돼지들 앞에: 모세 율법에 따르면 돼지와 개는 부정한 동물이었다. (레 11:7, 27) 들짐승이 죽인 동물의 고기는 개에게 줄 수 있었다. (출 22:31) 하지만 유대인의 전통은 “거룩한 고기” 즉 희생 제물로 바친 동물의 고기를 개에게 주는 것을 금지했다. 마 7:6에서 “개”와 “돼지”라는 표현은 영적 보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진주의 가치를 모르는 돼지처럼, 영적 보물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은 그러한 보물을 전해 주는 사람에게 해를 가하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참다운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표현은 “우리는 할례입니다”로 직역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당시 하느님께서 요구하시고 승인하신 유일한 할례 즉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로 언급한다. (롬 2:2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앞 구절에서 한 말과 대비하는 효과를 주려고 이 말을 한 것 같다.—빌 3:2 연구 노트 참조.

개들: 바울은 여기서 “개들”이라는 표현을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빌립보 사람들에게 거짓 선생들에 관해 경고하는데,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유대교 복귀주의자들이었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개는 부정한 동물이었으며, 성경에서는 개라는 단어를 종종 경멸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레 11:27. 마 7:6 연구 노트 참조) 개들은 도시를 돌아다니며 먹이를 찾다가 길가에 버려진 것을 먹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개들은 혐오스러운 것을 먹는 동물로 알려져 있었으며, 모세 율법의 규정들을 따르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그러했다. (출 22:31; 왕상 14:11; 21:19; 잠 26:11)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충실히 섬기는 사람들의 적들을 개에 비하기도 한다. (시 22:16; 59:5, 6) 바울이 거짓 선생들을 개들에 비한 것은 그들이 부정하고 그리스도교 가르침을 전달하기에 부적합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폭로하려는 것이었다.

조심하십시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조심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를 세 번 반복한다. 그리고 세 번 모두 그 동사 뒤에는 동일한 그리스어 자음으로 시작되는 단어들이 나온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참조) 이러한 표현 기법은 바울의 말에 힘을 더해 주며 그의 말을 신속히 따라야 한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이 구절에서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을 위험에 빠뜨리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세 가지 표현은 이어지는 구절에서 충실한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세 가지 표현과 대조를 이룬다.

살을 잘라 내는 자들: 할례를 지지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살을 잘라 내는 자들”(직역하면 “잘라 냄”)이라는 표현을 다음 구절에 나오는 “참다운 할례를 받은 사람들”(직역하면 “둘레를 자름”)이라는 표현과 대비하는 효과를 주려고 한 것 같다.—빌 3:3 연구 노트 참조.

마음의 할례: “할례”는 히브리어 성경과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모두에서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된다. (용어 설명 “할례” 참조) 하느님께서는 문자적인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사람들도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신 10:1630:6(각주 참조)에서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한 말을 직역하면 다음과 같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마음의 포피에 할례를 행하십시오.” “당신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당신의 마음과 당신의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실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당시의 고집 센 이스라엘 민족에게 그들이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 (렘 4:4) ‘마음의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마음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 여호와께서 불쾌하고 부정하게 보시고 마음을 둔감하게 만드는 것을 생각, 애정, 동기에서 모두 없애 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와 비슷하게, 성경은 여호와의 인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지 않거나 완고한 태도를 나타내는 것을 가리켜 귀에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묘사한다.—렘 6:10, 각주. 행 7:51 연구 노트 참조.

살을 잘라 내는 자들: 할례를 지지하는 자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살을 잘라 내는 자들”(직역하면 “잘라 냄”)이라는 표현을 다음 구절에 나오는 “참다운 할례를 받은 사람들”(직역하면 “둘레를 자름”)이라는 표현과 대비하는 효과를 주려고 한 것 같다.—빌 3:3 연구 노트 참조.

우리는 참다운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표현은 “우리는 할례입니다”로 직역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을 당시 하느님께서 요구하시고 승인하신 유일한 할례 즉 마음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로 언급한다. (롬 2:29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앞 구절에서 한 말과 대비하는 효과를 주려고 이 말을 한 것 같다.—빌 3:2 연구 노트 참조.

신성한 봉사를 드리며: 또는 “섬기며(숭배하며)”. 그리스어 동사 라트류오는 기본적으로 “섬기다” 또는 “봉사하다”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나 그분의 숭배와 관련이 있는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마 4:10; 눅 2:37; 행 7:7; 롬 1:9; 딤후 1:3; 히 9:14; 계 22:3.

나는 … 육체를 신뢰할 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울이 사용한 “육체”라는 표현은 인간적인 즉 육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를 유리한 입장에 있게 해 주는 것들, 그가 빌 3:5, 6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것들을 가리킨다.

히브리인 ··· 이스라엘 사람 ··· 아브라함의 자손: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배경을 설명하는 것은, 그를 비난한 고린도 사람들 중 일부가 자신들의 유대인 혈통과 신분에 대해 자랑했기 때문일 수 있다. 먼저 그는 자신을 히브리인으로 언급하는데, 그것은 아마도 아브라함과 모세와 같은 유대인 조상들의 혈통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창 14:13; 출 2:11; 빌 3:4, 5) 또한 그 표현에는 그가 히브리어를 할 수 있다는 의미도 들어 있을 수 있다. (행 21:40–22:2; 26:14, 15) 이어서 바울은 자신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언급하는데, 이 표현은 때때로 유대인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행 13:16; 롬 9:3, 4) 마지막으로 바울은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구체적으로 말한다. 자신이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상속받을 사람들 가운데 포함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창 22:17, 18) 하지만 바울은 외적인 요인들을 지나치게 강조하지는 않았다.—빌 3:7, 8.

이익이 … 손실로: 바울은 살면서 자신을 유리한 입장에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 것들을 언급하면서 “이익”과 “손실”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업 용어를 사용한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바리새파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빌 3:5, 6) 그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모든 혜택과 권리를 누렸다. (행 22:28) 그는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유대교 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행 21:37, 40; 22:3) 바울은 그처럼 유리한 배경을 갖고 있었고 출세할 전망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제자가 되기 위해 그러한 것들을 포기하고 손실로 여겼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교훈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주의 깊이 고려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6:26.

많은 쓰레기: “많은 쓰레기”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오물”로도 번역될 수 있고 심지어 “배설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었던 전망과 이룬 일들의 상대적 가치를 그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러한 것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긴다. (빌 3:5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자신이 포기한 것을 결코 후회하며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의 탁월한 가치”에 비할 때 오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나는 바리새인이며: 바울의 말을 듣는 사람들 중에는 바울을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행 22:5) 바울이 자신을 바리새인의 아들이라고 불렀을 때, 산헤드린에 있던 바리새인들은 그가 자신들과 공통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임을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은 바울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열심 있는 그리스도인이 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문맥에서 바울은 상대적인 의미로 자신이 바리새인이라고 말했을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이 바리새인들과 마찬가지로 부활을 믿기 때문에 사두개인보다는 바리새인에 가깝다고 밝힌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그 자리에 있던 바리새인들과 자신 사이의 공통점을 이끌어 냈다. 그는 논쟁이 될 만한 이 문제를 부각시킴으로 산헤드린의 일부 성원들이 자신의 주장에 동감하게 만들려고 했던 것 같으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행 23:7-9) 이 구절(행 23:6)에 나오는 바울의 말은 후에 그가 아그리파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면서 자신에 대해 한 말과도 일치한다. (행 26:5) 나중에 로마에서 빌립보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할 때도 그는 자신이 이전에 바리새인이었다고 언급했다. (빌 3:5) 유의해 볼 만한 점으로, 행 15:5에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일부 신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바리새파 배경을 여전히 함께 언급한다.—행 15:5 연구 노트 참조.

바리새파 중에서 신자가 된 몇 사람: 이 구절에서는 이미 그리스도인이 된 일부 신자들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의 바리새파 배경을 여전히 함께 언급한다.—행 23:6 연구 노트 비교.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이 구절과 롬 11:1에서 바울은 자신이 베냐민 지파 출신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자신이 유대인 혈통으로서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는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말한 것이다. 베냐민 지파는 영예롭게 여겨진 지파였다. 족장 야곱은 임종할 때 베냐민의 후손에 대해 이렇게 예언했다. “베냐민은 이리처럼 계속 물어뜯을 것이다. 아침에는 잡은 먹이를 먹고 저녁에는 약탈한 것을 나눌 것이다.” (창 49:27) 실제로 베냐민 지파에서는 여호와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이리처럼 싸운 용맹하고 유능한 용사들이 많이 나왔다. 베냐민 지파에 속한 일부 사람들은 “아침” 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왕권을 세우신 초기에 그 예언을 성취시켰다. 그런가 하면 “저녁” 즉 그 왕권이 몰락한 후에 그 예언을 성취시킨 베냐민 지파 사람들도 있었다. (삼상 9:15-17; 대상 12:2; 더 2:5-7) 바울 역시 용맹한 전사와도 같았다. 그는 거짓 교리와 관습에 맞서 영적 싸움을 벌였다. 또한 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떻게 그러한 영적 싸움을 해야 하는지 가르치는 일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엡 6:11-17.

히브리인에게서 난 히브리인이며: 여기서 바울은 고후 11:22에서 한 말과 비슷하게 자신이 유대인 혈통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연구 노트 참조) 사실상 바울은 자신이 비유대인 혈통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히브리인이라고 말한 것이다. 바울이 이런 말을 한 것은, 거짓 선생들이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들의 유대인 혈통에 대해 자랑했기 때문일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자신이 그러한 육적인 요인들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다.—빌 3:7, 8 연구 노트 참조.

율법으로 말하자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 내에서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의 바리새파를 신봉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행 23:6 연구 노트 참조)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바울 외에도 이전에 바리새인이었던 사람들이 더 있었다. 행 15:5(연구 노트 참조)에서는 그들을 ‘바리새파 중에서 신자가 된 사람’으로 언급한다.

이익이 … 손실로: 바울은 살면서 자신을 유리한 입장에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 것들을 언급하면서 “이익”과 “손실”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업 용어를 사용한다. 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바리새파의 한 사람으로 성장했다. (빌 3:5, 6) 그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모든 혜택과 권리를 누렸다. (행 22:28) 그는 가말리엘의 제자로서 수준 높은 교육을 받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를 유창하게 구사했기 때문에 유대교 내에서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었다. (행 21:37, 40; 22:3) 바울은 그처럼 유리한 배경을 갖고 있었고 출세할 전망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헌신적인 제자가 되기 위해 그러한 것들을 포기하고 손실로 여겼다. 바울이 그렇게 한 것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교훈과도 일치하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우선순위를 주의 깊이 고려하여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을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16:26.

율법으로 말하자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 내에서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의 바리새파를 신봉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행 23:6 연구 노트 참조)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바울 외에도 이전에 바리새인이었던 사람들이 더 있었다. 행 15:5(연구 노트 참조)에서는 그들을 ‘바리새파 중에서 신자가 된 사람’으로 언급한다.

많은 쓰레기: “많은 쓰레기”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오물”로도 번역될 수 있고 심지어 “배설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었던 전망과 이룬 일들의 상대적 가치를 그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러한 것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긴다. (빌 3:5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자신이 포기한 것을 결코 후회하며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의 탁월한 가치”에 비할 때 오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동사 디카이오오와 그와 어근이 같은 명사들인 디카이오마디카이오시스는 일반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하다”, “의로운 행위”로 번역된다. 이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혐의든 없애 주는 것, 무죄로 간주하는 것, 따라서 의롭다고 선언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롬 3:24 연구 노트 참조) 갈라디아 회중들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 율법을 따르는 행위를 통해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유대교 복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갈 5:4. 갈 1:6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근거를 마련하셨다.—롬 3:19-24; 10:3, 4; 갈 3:10-12, 24.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는 의: 갈 2:16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 또는 “그분의 죽음 안으로 잠겼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어 밥티조(담그다; 잠기게 하다)를 사용했다. 기원 29년에 예수께서 물침례를 받으셨을 때, 막 10:38에 언급된 또 다른 종류의 침례 즉 그분의 희생적인 행로가 시작되었다. (연구 노트 참조) 이 침례는 그분이 봉사를 하시는 기간 내내 계속되었다. 그리고 그분이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에 처형되시고 3일 뒤에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셨을 때 완료되었다. 예수께서는 이 침례를 언급하실 때, 그분의 제자들도 “[그분이] 받는 침례”를 받을 것이라는 점을 알려 주셨다. (막 10:39)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자들이 “[예수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와 마찬가지로 희생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이다. 그 희생적인 삶에는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포함된다. 이 침례는 그들이 시험을 받으면서도 충절을 지키는 인생행로 전체에 걸쳐 계속된다. 그리고 그들이 사망한 뒤 영적 피조물로 부활될 때 완료된다.—롬 6:4, 5.

그분의 죽음과 같은 죽음을 겪는 것입니다: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희생적인 삶을 산다는 의미에서 예수와 같은 죽음을 겪는다. 그러한 희생적인 삶에는 땅에서 영원히 살 희망을 완전히 포기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들은 평생에 걸쳐 시험을 받으면서도 충절을 지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며, 그들 중 일부는 매일 죽음에 직면하기도 한다. 그들은 그러한 삶을 살다가 결국 그리스도처럼 충절을 지키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 후 그들은 영적 피조물로 부활된다.—막 10:38, 39; 롬 6:4, 5. 롬 6:3 연구 노트 참조.

이른 부활: 많은 번역판에는 “부활”이라고만 되어 있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단어는 부활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그리스어 아나스타시스가 아니다. 그는 이 단어와 매우 비슷하지만 약간의 차이가 있는 엑사나스타시스(직역하면 “밖의 부활”,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를 사용하는데,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표현이 특별한 종류의 부활을 가리킨다고 설명한다. 이 단어는 고전 그리스어 문헌에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바울이 이 특별한 단어를 사용한 것을 볼 때, 그는 땅에서 있을 일반 부활이 아니라 (요 5:28, 29; 행 24:15) 시간 순서상 그보다 일찍 일어나는 부활을 염두에 둔 것 같다. (고전 15:23; 살전 4:16) 이 이른 부활은 “첫째 부활”이라고도 불리는데,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늘 생명으로 일으켜지는 것을 가리킨다.—계 20:4-6.

그리스도 예수께서: 일부 사본에는 “예수”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지만 현재의 본문 표현이 사본상으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율법으로 말하자면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 내에서 어떤 배경을 가지고 있었는지 이야기한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의 바리새파를 신봉한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행 23:6 연구 노트 참조) 당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바울 외에도 이전에 바리새인이었던 사람들이 더 있었다. 행 15:5(연구 노트 참조)에서는 그들을 ‘바리새파 중에서 신자가 된 사람’으로 언급한다.

많은 쓰레기: “많은 쓰레기”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는 “오물”로도 번역될 수 있고 심지어 “배설물”로 번역될 수도 있다.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갖고 있었던 전망과 이룬 일들의 상대적 가치를 그처럼 생생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그러한 것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지만 이제는 쓸모없는 것으로 여긴다. (빌 3:5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자신이 포기한 것을 결코 후회하며 뒤돌아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표현한다. 그는 한때 자신이 그토록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지식의 탁월한 가치”에 비할 때 오물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경주할 때 주자들이: 운동 경기는 그리스 문화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므로 바울은 그러한 경기들을 자주 비유로 사용했다. (고전 9:24-27; 빌 3:14; 딤후 2:5; 4:7, 8; 히 12:1, 2)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고린도 근처에서 열리던 이스트미아 경기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2년에 한 번씩 열렸다. 바울은 기원 51년에 이스트미아 경기가 열렸을 때 고린도에 있었을 것이다. 이스트미아 경기는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열리는 올림픽 경기 다음으로 중요한 경기였다. 그와 같은 그리스의 경기들에서는 다양한 길이의 달리기 경주가 열렸다. 바울은 달리기 선수와 권투 선수의 비유를 들어, 자제를 나타내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인내해야 할 필요성을 가르쳤다.—고전 9:26.

경주: “경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스타디온은 스타디움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달리기나 그 밖의 경기가 열리던 경기장을 가리킬 수도 있고 달리기 경주 자체를 가리킬 수도 있으며 특정한 길이를 가리킬 수도 있다. 바울은 여기서 달리기 경주를 가리켜 이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리스어 스타디온이 길이 단위로 사용될 경우, 1스타디온의 길이는 지역마다 달랐다. 고린도에서는 1스타디온이 약 165미터였다. 1로마스타디온은 약 185미터였다.—부록 나14 참조.

위로 부르시는 상: 바울은 다른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메시아 왕국의 일원으로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딤후 2:12; 계 20:6) “위로 부르시는” 것은 하늘 왕국의 일원이 되라는 초대인 셈이다. 하지만 “하늘의 부르심[또는 “초대”, 각주]에 참여하는 자들”은 (히 3:1, 2) 그 부르심에 “충실함”을 증명함으로 (계 17:14) “부르심과 선택을 확실히” 해야 한다. (벧후 1:10) 그렇게 해야만 그 초대에 따르는 “상”을 받을 수 있다.—빌 3:20 연구 노트 참조.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잊어버리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관심을 갖지 않다”를 의미할 수 있다. “뒤에 있는 것”이 바울의 기억 속에서 지워진 것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앞 구절들에서 그중 일부를 언급했기 때문이다. (빌 3:5 연구 노트 참조) 이 표현은 바울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로 앞에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마치 달리기 선수가 앞으로 남은 코스에 주의를 집중하는 것과 같았다. (이 구절에 나오는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내뻗치면서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앞에 있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뒤에 있는 것” 즉 한때 유대교의 열렬한 지지자로서 누렸던 이점과 출세할 전망을 잊어버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있었다. 그는 그러한 것들을 계속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그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빌 3:8 연구 노트 참조.

앞에 있는 것을 향해 몸을 내뻗치면서: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표현을 볼 때, 그는 자신을 달리기 선수에 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그는 그리스의 운동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를 간접적으로 언급한 것일 수 있다. (고전 9:24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 로마 세계에 살던 사람들은 그러한 표현을 통해 운동 경기 장면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시 조각상이나 꽃병에는 달리기 선수들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경주에 참가하는 선수는 뒤에 있는 것에 주의를 돌리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속도가 느려졌기 때문이다. 2세기 그리스 저술가 루키아누스도 달리기 선수를 예로 들어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출발 신호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훌륭한 주자는 오로지 전진만을 생각하며 정신은 결승점에 고정시키고 다리에 승리를 건다.” 달리기 선수는 자신의 목표인 결승선에 도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바울은 뒤에 남겨 둔 세상적인 목표가 아니라 앞에 있는 상에 계속 초점을 맞췄다.—빌 3:14 연구 노트 참조.

우리의 시민권: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였기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누렸다. (행 16:12, 21 연구 노트 참조) 빌립보 회중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일종의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을 수 있는데, 로마 시민권은 매우 가치 있게 여겨졌다. 당시에 시민인 사람과 시민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그보다 훨씬 더 우월한 하늘의 시민권을 언급한다. (엡 2:19) 그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땅의 일이 아니라 (빌 3:19) 하늘의 “시민”으로서 누릴 미래의 삶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한다.—빌 1:27 연구 노트 참조.

위로 부르시는 상: 바울은 다른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에게도 메시아 왕국의 일원으로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희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딤후 2:12; 계 20:6) “위로 부르시는” 것은 하늘 왕국의 일원이 되라는 초대인 셈이다. 하지만 “하늘의 부르심[또는 “초대”, 각주]에 참여하는 자들”은 (히 3:1, 2) 그 부르심에 “충실함”을 증명함으로 (계 17:14) “부르심과 선택을 확실히” 해야 한다. (벧후 1:10) 그렇게 해야만 그 초대에 따르는 “상”을 받을 수 있다.—빌 3:20 연구 노트 참조.

이 동일한 행로로 계속 걸읍시다: 또는 “이 동일한 행로로 계속 질서 있게 걸읍시다”. 여기서 “동일한 행로로 걷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기본적으로 “줄을 맞춰 가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고대에 군대에서 맨 앞줄에 선 군인들이 서로 보조를 맞춰 질서 있게 행군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특정한 행로나 표준에 “따르다; 맞추다; 고착하다”라는 비유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바울은 정해진 행로에 따라 앞으로 전진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이 표현을 사용한 것 같다.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인 행로를 계속 따라야, 그들이 배운 진리와 행실에 관한 표준에 고착해야 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 이 그리스어 동사는 “바르게 살다”, “밀접히 따르다”, “걸어가다”, “살다”로 번역되기도 한다.—행 21:24; 롬 4:12; 갈 5:25; 각주; 6:16; 각주.

그리스도의 형주의 적: 이 표현은 한때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지만 후에 그리스도교를 버리고 이기적이고 죄 많은 생활 방식으로 돌아간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 결과 그들은 사실상 참숭배의 적이 되었다. (빌 3:19) 여기서 “형주”(그리스어 스타우로스)는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희생적으로 죽으신 것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용어 설명 “기둥(2)”; “형주” 참조) 예수께서 형주에 달려 죽으심으로 인류는 죄의 종 상태에서 풀려나 하느님과 화해하고 좋은 관계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형주의 적”들은 예수의 죽음이 가져오는 유익에 대한 인식이 없음을 행동으로 나타냈다.—히 10:29.

욕망: 또는 “배”. 그리스어 코일리아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복부 또는 복부에 있는 위나 다른 기관들을 가리킨다. 이 구절과 빌 3:19에서는 육적인 욕망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욕망”의 종이 되는 사람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빌 3:19에서는 “자기들의 배” 즉 육적인 욕망을 신으로 삼은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다.

끝: 또는 “최종적인 끝; 완전한 끝”. “그리스도의 형주의 적”들에게 닥치게 될 최종적인 결과가 “멸망”이라는 의미이다.—빌 3:18.

그들의 신은 자기들의 배이며: 여기서 “배”로 번역된 그리스어 코일리아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복부 또는 복부에 있는 위나 다른 기관들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육적인 욕망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롬 16:18 연구 노트 참조) 바울 시대에 그리스의 극장에서 상연되던 일부 연극에서는 “배의 신”을 언급했으며, 그러한 연극의 등장인물들은 자신들의 배가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말했다. 바울과 동시대 사람으로 라틴어로 많은 저술물을 남긴 철학자 세네카는 “배의 노예”가 된 사람을 비난했다. 바울이 빌 3:18에서 언급한 사람들은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자신의 육적인 욕망을 채우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 같다. 일부 사람들은 음식이나 술에 지나치게 탐닉하여 탐식이나 술 취함에 빠졌을지 모른다. (잠 23:20, 21. 신 21:18-21 비교)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1세기 당시 세상에서 제공하는 기회들을 추구하는 것을 여호와를 섬기는 것보다 앞자리에 두었을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여기서 바울이 음식에 관한 유대인의 규정들을 세심하게 따르는 사람들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그러한 규정들을 지키는 것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 나머지 그들이 먹는 것이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그들의 신이 되었다.

빌립보: 이 도시는 원래 크레니데스라고 불렸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가 기원전 4세기 중엽 트라키아인들로부터 이 도시를 빼앗아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이 지역에는 금이 많이 나는 광산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필리포스의 이름이 새겨진 금화가 발행되었다. 기원전 168년경에 로마의 집정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인 페르세우스를 무찌르고 빌립보와 그 주변 지역을 점령했다. 기원전 146년에는 마케도니아 전 지역이 로마의 한 속주를 이루게 되었다. 기원전 42년에 빌립보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자들인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군대를 무찔렀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거둔 큰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빌립보를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몇 해 후 로마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하자, 그는 이 도시에 콜로니아 아우구스타 율리아 필리펜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부록 나13 참조.

우리 로마인으로서는: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였기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누렸다. 그러한 혜택 가운데는 준(準) 로마 시민권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곳의 시민들이 로마에 대해 강한 애착을 느꼈던 것은 그러한 혜택 때문이었던 것 같다.—행 16:12 연구 노트 참조.

행동하십시오: 또는 “시민으로서 행동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시민권”(빌 3:20)과 “시민”(행 21:39)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과 어근이 같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라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로마 시민권이 매우 가치 있게 여겨졌으며 그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특권과 함께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행 22:25-30) 따라서 바울이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에 합당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면서 이 동사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 활동, 특히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라는 의미였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일종의 시민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시민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을 것이다.—행 23:1; 빌 3:20 연구 노트 참조.

우리의 시민권: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였기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누렸다. (행 16:12, 21 연구 노트 참조) 빌립보 회중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일종의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을 수 있는데, 로마 시민권은 매우 가치 있게 여겨졌다. 당시에 시민인 사람과 시민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그보다 훨씬 더 우월한 하늘의 시민권을 언급한다. (엡 2:19) 그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땅의 일이 아니라 (빌 3:19) 하늘의 “시민”으로서 누릴 미래의 삶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한다.—빌 1:27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께서는 ··· 몸을 주시는데: 여기서 바울은 계속해서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이 부활되는 것을 씨에서 싹이 트는 것에 비한다. (고전 15:36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조그마한 밀의 씨와 그 씨에서 자라는 식물의 모습이 전혀 다르다고 말한다. 그 씨는 ‘죽어서’ 하나의 새로운 식물이 된다. (고전 15:36, 37) 그와 비슷하게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도 먼저 인간으로서 죽는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때에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리신다. (고후 5:1, 2; 빌 3:20, 21) 그들은 영적인 몸으로 부활되어 영계에서 살게 된다.—고전 15:44; 요1 3:2.

우리의 비천한 몸을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처럼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영계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로 살기 위해 겪어야 하는 변화를 언급한 것이다. 그들은 먼저 인간으로서 죽어야 한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자신이 정하신 때에 그들을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살리신다. (고후 5:1, 2) 그들은 썩지 않는 영의 몸을 받아 불멸성을 갖게 된다. (고전 15:42-44, 53. 고전 15:38 연구 노트 참조) 그렇게 해서 그들의 비천하고 불완전한 인간 몸은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영의 “몸처럼”(직역하면 “몸과 같은 모양으로”) 변화된다.—롬 8:14-18; 요1 3:2.

미디어

로마 시민권
로마 시민권

여기 보이는 것은 기원 79년에 발급된 청동으로 된 문서로, 두 개의 판 중 하나이다. 이 문서에는 곧 은퇴하는 선원과 그의 아내와 아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부여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 문서는 두 개의 판이 묶여서 인장으로 봉인된 형태로 되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인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시민권을 획득하는 사람도 있었다. (행 22:28 연구 노트 참조) 어떤 경우이든 시민권 증서는 매우 중요하게 여겨졌다. 로마 시민에게 주어지는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이 로마 시민임을 증명해야 하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울은 훨씬 더 중요한 시민권, “하늘에 있는” 시민권을 언급했다.—빌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