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30

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바울과 디모데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빌립보의+ 모든 거룩한 자들 그리고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에게+ 편지합니다.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나는 여러분 모두를 위해 간구할 때마다 여러분을 기억하며 항상 나의 하느님께 감사합니다.  나는 간구를 드릴 때마다 기쁨에 넘칩니다.+  여러분이 첫날부터 지금까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기여해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이 그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완성하시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여러분 모두에 대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내가 여러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내가 감옥에 갇혔을 때나+ 좋은 소식을 변호하고 법적으로 확립하는 일을 할 때나+ 나와 함께 과분한 친절에 참여한 사람들입니다.  내가 여러분 모두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나의 증인이십니다. 나는 여러분에 대해 그리스도 예수께서 가지신 것과 같은 부드러운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의 사랑이 정확한 지식과+ 온전한 분별력과+ 함께 더욱더 풍성하게 되고,+ 10  여러분이 더 중요한 것들을 확인하기를+ 계속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흠이 없고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11  그리고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로운 열매를 가득 맺어서+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이 돌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12  형제 여러분, 나에게 일어난 일이 오히려 좋은 소식을 널리 전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13  내가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힌 일이+ 모든 근위대와 다른 모든 사람들 가운데 널리 알려졌습니다.+ 14  주 안에 있는 대부분의 형제들은 내가 감옥에 갇힌 일로 인해 확신을 갖게 되었고, 더욱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전하고 있습니다.+ 15  사실, 어떤 사람들은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선의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16  선의로 전파하는 사람들은 사랑으로 그리스도를 널리 알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내가 좋은 소식을 변호하기 위해 임명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7  그러나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은 순수한 동기가 아니라 다투려는 마음으로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감옥에 갇혀 있는 나에게 괴로움을 주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8  그렇지만 결과는 어떠합니까? 가식으로든 진실로든 결국은 온갖 방법으로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 일로 기뻐합니다. 사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기뻐할 것입니다. 19  그것이 여러분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의 지원을 통해+ 나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희망은 내가 어떤 면에서도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언제나 그랬듯이 지금도 아주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드높이는 것입니다.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나의 몸으로 그리스도를 드높일 것입니다.+ 21  나에게는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도 이득입니다.+ 22  그러나 내가 육체로 살아야 한다면, 그것은 내 일의 열매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는 알려 주지 않겠습니다.* 23  나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내가 놓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그것이 훨씬 더 낫습니다.+ 24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육체로 남아 있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25  이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진보하고 믿음 안에서 기쁨을 누리도록 내가 남아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 머물 것임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26  그러면 내가 다시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될 때, 여러분은 나 때문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환희에 넘치게 될 것입니다. 27  다만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에 합당하게 행동하십시오.+ 그리하여 내가 가서 여러분을 만나게 되든 떨어져 있든, 여러분이 한 영으로 굳건히 서 있고 한 영혼으로+ 좋은 소식에 대한 믿음을 위해 나란히 힘써 싸우고 있으며 28  어떤 면에서도 반대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고 있다는 말을 내가 듣고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바로 그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이며,+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증거입니다.+ 이것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한 특권 곧 그분을 믿을 뿐 아니라 그분을 위해 고난도 당하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30  전에 나에게서 보았고 지금도 나에 대해 듣고 있는 것과 똑같은 싸움을+ 여러분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각주

달리 번역하면 “알지 못합니다.”

연구 노트

고린도 전서: 이 편지의 원문에는 이러한 제목이 없었던 것 같다. 고대 사본들을 보면 이러한 제목이 나중에 붙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편지들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 P46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책자본은 서기관들이 제목을 사용해 성경 책들을 구분했음을 보여 준다. P46은 바울의 편지들이 들어 있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책자본으로, 여러 학자들은 이 책자본이 기원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책자본에는 바울의 편지 중 아홉 통이 들어 있다. 그중 고린도 전서의 시작 부분에는 프로스 코린티우스 A(“고린도 사람들에게 1”)라는 제목이 들어 있다. (미디어 갤러리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첫째 편지” 참조) 기원 4세기에 만들어진 바티칸 책자본과 시나이 책자본 같은 초기 사본들에도 동일한 제목이 들어 있다. 이 사본들에는 고린도 전서의 시작 부분과 끝부분 모두에 제목이 나온다.

빌립보서: 이 편지의 원문에는 이러한 제목이 없었던 것 같다. 고대 사본들을 보면 이러한 제목이 나중에 붙여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편지들을 쉽게 구분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것이다.—고린도 전서 책명 연구 노트 및 미디어 갤러리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참조.

그리스도 예수의 종: 일반적으로 “종”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둘로스는 남의 소유가 된 사람, 많은 경우 남에게 팔려 종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마 8:9; 10:24, 25; 13:27) 또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한 종을 가리키기도 한다. (행 2:18; 4:29; 갈 1:10; 계 19:10) 예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대속 희생으로 바치심으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생명을 사셨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더는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며 스스로를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긴다. (엡 6:6; 고전 6:19, 20; 7:23; 갈 3:13)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영감받은 편지의 필자들은 모두 회중들에게 교훈을 베풀 때 적어도 한 번 이상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임을 언급했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주이자 주인이신 그리스도께 복종한다는 것을 나타냈다.—롬 1:1; 갈 1:10; 약 1:1; 벧후 1:1; 유 1; 계 1:1.

빌립보: 이 도시는 원래 크레니데스라고 불렸다.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가 기원전 4세기 중엽 트라키아인들로부터 이 도시를 빼앗아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이 지역에는 금이 많이 나는 광산이 있었으며 이곳에서 필리포스의 이름이 새겨진 금화가 발행되었다. 기원전 168년경에 로마의 집정관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 파울루스가 마케도니아의 마지막 왕인 페르세우스를 무찌르고 빌립보와 그 주변 지역을 점령했다. 기원전 146년에는 마케도니아 전 지역이 로마의 한 속주를 이루게 되었다. 기원전 42년에 빌립보 평원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한 자들인 브루투스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군대를 무찔렀다. 그 후 옥타비아누스는 자신이 거둔 큰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빌립보를 로마의 식민지로 만들었다. 몇 해 후 로마 원로원이 옥타비아누스에게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부여하자, 그는 이 도시에 콜로니아 아우구스타 율리아 필리펜시스라는 이름을 붙였다.—부록 나13 참조.

거룩한 자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회중들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적 형제들을 가리킬 때 “거룩한 자(들)”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행 9:13; 26:10; 롬 12:13; 고후 1:1; 13:13) 이 표현은 “영원한 계약의 피” 즉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통해 새 계약을 맺음으로 하느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게 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히 10:29; 13:20) 따라서 그들은 성별되고 깨끗해졌으며 하느님에 의해 “거룩한 자들”이 되었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사망한 뒤부터가 아니라 지상에서 성별된 행로를 시작할 때부터 그들을 거룩하다고 여기신다. 따라서 어떤 개인이나 단체가 사람들을 “거룩한 자들”(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성도”)이라고 선언할 만한 성경적 근거는 없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거룩하시므로 그들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한다. (벧전 1:15, 16; 레 20:7, 26) “거룩한 자들”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와 결합하여 공동 상속자가 되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거룩한 자들”이라고 불리기 500여 년 전에, 하느님께서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왕으로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단 7:13, 14, 18, 27.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킨다. 고대 이스라엘 나라의 도시들에서 영적 연로자들 즉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들은 인도하고 지침을 베풀고 시행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들에서도 영적 연로자들 즉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들이 그러한 책임을 수행했다.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난 일에 관한 이 기록을 보면 당시 그 회중에 두 명 이상의 장로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각 회중에 있는 장로의 수는 영적으로 자격을 갖춘 장성한 남자들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랐다. (딤전 3:1-7; 딛 1:5-8) 바울은 아마도 에베소에 살고 있었을 디모데에게 첫 번째 편지를 쓸 때 “장로의 회”를 언급했다.—딤전 1:3; 4:14.

감독자: 감독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에피스코포스이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 에피스코페오는 “주의하다”를 의미한다. (히 12:15) 또한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 에피스코페는 “검사”(눅 19:44; 벧전 2:12), “감독자”(딤전 3:1), “감독의 직책”(행 1:20)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독자는 회중 성원들을 찾아가서 검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그리스어에는 보호할 목적으로 감독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 회중의 감독자들은 동료 신자들의 영적 필요를 돌볼 책임이 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감독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행 20:17) 또한 디도서에서 그리스도인 회중 “장로들”의 자격 조건을 언급하면서 “감독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딛 1:5, 7) 따라서 감독자와 장로 모두 동일한 직책을 가리킨다. 프레스비테로스는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의 장성된 특성에 초점을 맞춘 말이며, 에피스코포스는 그 직책에 따르는 임무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난 일에 관한 이 기록을 보면 당시 그 회중에 여러 명의 감독자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한 회중에서 섬기는 감독자의 수는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회중 내에 “장로”의 자격을 갖춘 사람 즉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랐다.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곳의 “감독자들”을 언급했다. (빌 1:1) 이 점을 볼 때 그 회중의 일을 감독하는 장로의 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행 1:20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예수의 종: 롬 1:1 연구 노트 참조.

바울과 디모데가 … 편지합니다: 원문에는 “~가 … 편지합니다”에 해당하는 표현이 없다. 빌립보서의 필자는 바울이지만 그는 인사말 가운데 디모데도 함께 언급한다. 바울이 로마에서 첫 번째로 수감되어 있던 시기에 디모데도 바울과 함께 로마에 있었다. 바울이 그 시기에 로마에서 기록한 다른 두 편지인 골로새서와 빌레몬서에도 디모데가 언급된다. (골 1:1, 2; 몬 1) 빌립보서가 기록된 시점과 히브리서가 기록된 시점 사이의 어느 때엔가 디모데도 로마에서 투옥되었던 것 같다.—빌 2:19; 히 13:23.

빌립보: 행 16:12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한 자들: 롬 1:7 연구 노트 참조.

감독자들: 바울은 여기서 빌립보 회중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감독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피스코포스)의 복수형을 사용한다. (행 20:28 비교)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바울은 “장로의 회”가 특별한 일을 수행하도록 디모데를 임명했다고 말한다. (딤전 4:14) 바울이 그 회중들에서 어느 한 개인을 감독자로 지칭하지 않았으므로, 그 회중들에 2명 이상의 감독자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보면 1세기 회중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감독자”와 “장로”라는 표현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점을 볼 때 두 표현이 동일한 직책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 20:17, 28; 딛 1:5, 7. 벧전 5:1, 2 비교) 한 회중에서 섬기는 감독자의 수는 회중 내에 “장로”의 자격을 갖춘 사람 즉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랐다.—행 14:23. 행 20:17, 28 연구 노트 참조.

봉사의 종들: 또는 “보조자들”. 문자적으로 “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는 여기서 직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그리스도인 회중에 임명된 “봉사의 종”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딤전 3:8, 12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이 이 단어의 복수형을 사용한 것을 볼 때 그 회중에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여 감독자들을 보조하는 봉사의 종들이 여러 명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성경에서는 이 구절에서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이라는 표현 대신 “주교들과 집사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그리스도교국에서 사용하는 그러한 칭호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교직 계급이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원어의 의미를 정확히 옮긴 표현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봉사의 종”이라는 번역 표현은 이 직책을 맡은 남자들이 회중을 위해 열심히 봉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들 가운데 11통의 편지에서 이러한 인사말을 사용한다. (고전 1:3; 고후 1:2; 갈 1:3; 엡 1:2; 빌 1:2; 골 1:2; 살전 1:1; 살후 1:2; 딛 1:4; 몬 3) 그는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에서도 매우 비슷한 인사말을 사용했지만 그 인사말에는 “자비”라는 특성이 함께 언급되어 있다. (딤전 1:2; 딤후 1:2) 학자들은 바울이 일반적으로 인사말로 사용되는 단어(“안부를 전합니다!”, 카이레인)가 아니라 그와 발음이 비슷한 다른 그리스어 단어(카리스)를 자주 사용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그들은 바울이 그렇게 함으로 회중들이 “과분한 친절”을 온전히 누리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 15:23 연구 노트 참조) “평화”를 언급한 것은 유대인들이 인사할 때 일반적으로 히브리어 샬롬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막 5:34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과분한 친절과 평화”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대속을 통해 여호와 하느님과 누리게 된 관계를 강조한 것 같다. 바울은 관대한 친절과 평화의 근원으로 하느님 우리 아버지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분하여 언급한다.

과분한 친절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롬 1:7 연구 노트 참조.

간구를 마치자: 또는 “간절히 기도하자”. 그리스어 동사 데오마이는 열렬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가리킨다. 명사형인 데에시스는 “간구”로 번역되며 “겸손하고 간절한 간청”으로 정의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데에시스는 하느님께 간청하는 경우에만 사용된다. 예수께서도 “자신을 죽음에서 구하실 수 있는 분에게 강한 부르짖음과 눈물로 간구와 청원을 드리셨다.” (히 5:7) 히 5:7의 그리스어 원문에는 “간구”에 해당하는 단어가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예수께서 여러 차례 여호와께 간청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거듭거듭 간절히 기도하셨다.—마 26:36-44; 눅 22:32.

감사와 더불어 기도와 간구로: 여기서 바울이 말한 “기도”는 하느님께 드리는 숭배의 일부로서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다. “간구”는 더 구체적인 단어로, 간청하거나 탄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강한 표현이다. 그러한 간구는 강렬한 감정에서 우러나와 눈물을 흘리며 하는 경우가 많다. (히 5:7) 한 참고 문헌에서는 간구를 “개인적인 필요를 위해 부르짖는 것”으로 정의한다. 바울은 “감사와 더불어”라는 표현을 덧붙임으로, 하느님께 감사를 표현하는 것이 언제나 합당하다는 점을 밝힌다. 상황이 절박할 때에도 감사해야 할 이유들이 있다. 바울은 경험을 통해 그 점을 잘 알고 있었다. (행 16:22-25; 엡 5:19, 20) 또한 바울은 청원을 언급하는데, 이것은 “요청”을 의미하는 단어로 여기서는 기도로 요청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춘 표현으로 쓰였다. 바울이 이 구절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다양한 필요에 대해 청원할 수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모든 일에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기여해 왔기 때문입니다: 또는 “참여해 왔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특히 루디아와 그의 집안이 침례를 받고 루디아가 바울과 그의 일행에게 후대를 나타내어 자기 집에 머물게 한 일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말한 것 같다.—행 16:14, 15.

내가 감옥에 갇혔을: 바울은 아마도 다른 어떤 사도들보다도 더 많이 수감되었던 것 같다. (고후 11:23 비교) 바울은 약 10년 전에 빌립보에 있을 때 잠시 감옥에 갇힌 적이 있었다. (행 16:22-24) 그리고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를 쓰는 시점에 그는 로마에서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다. 그는 계속 군인의 감시를 받는 가운데 카이사르 앞에서 재판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 25:11, 12; 28:30, 31)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이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동안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에바브로디도를 통해 그에게 물질적인 선물을 보내 주었다. 에바브로디도는 바울과 함께 있는 동안 그에게 계속 도움을 베풀었으며 그렇게 하다가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하기까지 했다.—빌 2:25, 30; 4:18.

좋은 소식을 … 법적으로 확립하는: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표현에는 법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이 표현은 법적인 수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좋은 소식이 잘 전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은 약 10년 전에 빌립보에 있을 때 좋은 소식을 전파할 권리를 확립하기 위해 로마의 법 제도를 활용했다. (행 16:35-40) 그는 로마 제국 내에서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자유롭게 전파할 권리를 확립하기 위해 법적 투쟁을 벌였다.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바울은 지하 감옥에서만이 아니라 법정에서도 증인이었다.”

변호하고: “변호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아폴로기아)는 법정에서 하는 변론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행 22:1; 25:16)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이 “법정”에 넘겨지고 “[그분] 때문에 총독들과 왕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이방 사람들에게 증거할 기회”를 갖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마 10:17, 18)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의 반대로 인해 체포되어 카이사레아에 있는 로마 총독 앞으로 가게 되었다. (행 23:23-35) 그는 카이사레아에서 “카이사르에게 상소”했기 때문에 로마 제국의 최고 법정에서 자신의 믿음을 변호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행 25:11, 12) 그가 실제로 네로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는지 혹은 황제를 대리하는 다른 사람 앞에서 재판을 받았는지 성경에서는 알려 주지 않는다. 바울은 빌립보서를 쓸 당시 로마에서 자신이 이전에 한 상소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행 28:17-20.

정확한 지식: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지식”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그노시스에피그노시스이다. 두 단어 모두 “알다; 이해하다; 깨닫다”를 의미하는 동사 기노스코와 어근이 같다. 여기 사용된 에피그노시스그노시스의 강조형(에피는 문자적으로 “위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부가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에피그노시스는 문맥에 따라 흔히 “정확한, 참된, 온전한 지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여기서 바울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잘못된 방향으로 열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이 단어를 사용했다. 그들의 열심은 약속된 메시아인 예수를 통해 밝혀진 하느님의 뜻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정확한 지식: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지식”으로 번역되는 단어는 그노시스에피그노시스이다. 여기 사용된 에피그노시스그노시스의 강조형(에피는 문자적으로 “위에”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부가적인”이라는 의미)이다. 에피그노시스는 문맥에 따라 흔히 “정확한, 참된, 온전한 지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롬 10:2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여기서 이 단어를 사용함으로 장성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의 아들 즉 그리스도 예수에 관한 온전한 지식을 얻는 면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일치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점을 알려 준다.—고전 1:24, 30; 엡 3:18; 골 2:2, 3; 벧후 1:8; 2:20.

정확한 지식: 여기서 바울은 하느님과 동료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랑을, 하느님에 대해 정확한 지식을 갖는 것과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것과 연관 짓는다. 성경에서 “알다”와 “지식”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은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아는 것”이라는 의미로 자주 쓰인다.—여기서 “정확한 지식”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에 대해 알아보려면 롬 10:2; 엡 4:13 연구 노트 참조.

온전한 분별력: 여기서 “분별력”(직역하면 “감각적 지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가 히 5:14에서 “분별력[또는 “지각력”. 직역하면 “감각 기관”]을 사용하여 훈련함으로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이들”이라는 표현 가운데 사용되었다. 성경에서 이 단어들은 도덕적, 영적 문제들에 관한 분별력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바울은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이 그러한 분별력과 함께 풍성하게 되어 그들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더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했다. (빌 1:10) 그리스도인의 도덕 감각은 민감해서, 무엇이 옳은 일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상황에서뿐 아니라 그렇지 않은 복잡한 상황에서도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근위대: 바울은 로마에 첫 번째로 수감되어 있던 기간(기원 59-61년경)에 “자기를 지키는 군인 한 사람과 함께 따로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행 28:16) 가택 연금 상태에 있는 동안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를 위해 감옥에 갇힌 일이 모든 근위대 … 가운데 널리 알려졌다”고 썼다. 근위대는 로마 군인들로 구성된 엘리트 집단으로서 그 수가 수천 명에 달했다. 이 구절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라틴어 프라이토리움에서 유래한 것인데, 프라이토리움은 원래 로마 군대의 사령관이 머물던 장소(막사나 건물)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통치 때부터 근위대 소속 군인들은 로마 황제를 호위하는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일부 성경에서는 빌 1:13에 사용된 그리스어를 “친위대”나 “궁전 경비대”로 번역한다. 근위대는 임무의 특성상 황제와 황실 가까이에 있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시기심과 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있지만: 일부 사람들은 잘못된 동기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었다. 그중에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는 했지만 사도 바울이 전한 순수한 가르침에서 떨어져 나간 유대인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과 그들의 생각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었다. (갈 6:12, 13) 그들은 바울이 가진 명성과 권한과 영향력을 시기하게 되어 그를 깎아내리려고 했다. (빌 1:17) 하지만 바울은 그런 상황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았다. 그리스도가 널리 알려지고 있었기 때문이다.—빌 1:18.

어떤 사람들은 선의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선의로 즉 순수한 동기로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전파하고 있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을 포함한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에게 선의(또는 기쁨, 호의)를 나타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느님의 승인 즉 선의를 경험했다.—시 106:4; 각주; 잠 8:35.

예수의 영: 예수께서 “아버지에게서 받은” 성령 즉 활동력을 사용하셨다는 의미인 것 같다. (행 2:33) 그리스도인 회중의 머리이신 예수께서는 그 영을 사용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전파 활동을 인도하시면서, 어느 지역에서 중점적으로 전파 활동을 수행해야 하는지 알려 주셨다. 이 경우 예수께서는 “성령”을 사용해 바울과 그의 동료들이 아시아 속주와 비티니아 속주에서 전파하지 않도록 막으셨다. (행 16:6-10) 하지만 후에 그 지역들에도 좋은 소식이 전파되었다.—행 18:18-21; 벧전 1:1, 2.

예수 그리스도의 영: 예수께서 하느님의 성령 즉 활동력을 사용하시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행 2:33에서는 예수께서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셨다”고 알려 준다. 빌 1:11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의로운 열매를 가득 맺어서 하느님께 영광과 찬양이 돌아가게 되기를” 기도했다. 예수께서 부활되어 하늘로 올라가신 이후로 하느님께서는 지상의 그리스도인들의 필요를 돌보는 일에 예수를 사용해 오셨다. 요 14:26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성령을 보내실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으며, 요 15:26에서는 “내가 아버지로부터 여러분에게 보낼 돕는 자 곧 … 진리의 영이 오면, 그가 나에 대해 증언할 것입니다”라고 하셨다.—행 16:7 연구 노트 참조.

구원: 또는 “석방”. 바울은 로마에서 첫 번째로 수감되어 있던 기간(기원 59-61년경)에 빌립보서를 썼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표현에는 그가 빌립보 그리스도인들의 열렬한 기도 덕분에 석방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는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이해는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 바람을 표현한 것과도 조화를 이룬다. (빌 2:24) 그가 감옥에서 석방되면 그러한 방문이 가능해질 것이었다. (미디어 갤러리 “기원 61년경 이후에 바울이 한 여행” 참조)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소테리아, “구원”이라고 자주 번역됨)는 이 문맥에서 그의 영원한 구원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말의 큰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파레시아는 기본적으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숨김없이(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행 28:31 연구 노트 참조.

아주 담대하게: 또는 “말의 모든 자유를 가지고”.—고후 7:4 연구 노트 참조.

사는 것이 곧 그리스도이며 죽는 것도 이득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대조하고 있는 것 같다. 바울은 살아 있는 동안 하느님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섬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충실을 유지하는 가운데 죽으면 하늘에서 불멸의 생명을 얻게 될 것이었다.—딤후 4:6-8.

나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갈등하고 있습니다: 카이사르 앞에서 재판을 받기를 기다리면서 가택 연금되어 있는 동안, 바울은 두 가지 가능성 사이에서 갈등을 느꼈다. 한 가지는 살아남아 형제들을 계속 섬기는 것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딤후 4:7, 8) 바울은 자신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말하지 않았다. (빌 1:22) 하지만 “놓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는 것이 더 낫다고 말했다. 그는 죽기까지 충실을 유지하는 것만이 그리스도의 임재 중에 하늘의 상을 받는 확실한 방법임을 알고 있었다.—계 2:10.

놓여서: 바울은 자신이 죽는 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그는 기원 65년경에 기록된 디모데 후서에서 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를 사용했는데, 자신의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놓일 때가 임박했다”고 말했다. (딤후 4:6) 바울이 이 구절에서 사용한 “놓여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게 되다”라는 표현은 그가 고후 5:8에서 사용한 “이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다”라는 표현과 같은 의미인 것 같다. 그는 하느님의 충실한 기름부음받은 종으로 죽는 것을 “놓이는” 것, 나중에 부활되어 그리스도의 “하늘 왕국”에서 살게 될 길을 열어 주는 것으로 여겼다. (딤후 4:18) 바울이 고전 15:23에서 설명한 것처럼,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그분의 “임재 중에” 하늘 생명으로 부활될 것이었다. 따라서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지상 행로를 충실히 끝내고 나중에 하늘 생명으로 부활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놓이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를 이런 식으로 사용한 것은 바울만이 아니다. 다른 그리스어 저술가들도 이 단어를 죽음을 의미하는 완곡한 표현으로 사용했다.

함께 있을 때 … 떨어져 있을 때: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는 기간을 가리켜 그리스어 파루시아를 사용한다. 바울이 이 그리스어를 아푸시아 즉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을 보면 이 단어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이 단어는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예수의 임재는 현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이 시작될 때 그분이 하늘에서 메시아 왕으로 즉위하시면서 시작되었다.—마 24:3; 고전 15:23; 빌 1:26 연구 노트 참조.

임재: 그리스어 파루시아(많은 번역판에서는 “오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이 단어를 번역한다)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단지 오거나 도착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동안 머물러 있는 것을 가리킨다. 마 24:37-39에서 “노아의 날 ··· 홍수 이전 시대”를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비한 것을 보면 파루시아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2:12에서 “함께 있을 때”로 번역된 표현에도 동일한 그리스어가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단어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와 주어서: 또는 “함께 있어서”. 여기서 바울은 자신과 함께 있던 동료 일꾼 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그리스어 파루시아를 사용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다른 구절들에서도 비슷한 의미(“함께 있다”)로 다섯 번 사용된다. (고후 7:6, 7; 10:10; 빌 1:26; 2:12) 이 단어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마 24:3; 고전 15:23) “임재”에 해당하는 단어 파루시아가 보이지 않는 임재를 가리킬 수 있다는 점은,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그리스어로 된 자신의 저술물에서 시나이산에서 있었던 하느님의 임재를 가리켜 파루시아를 사용한 것을 볼 때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시다는 사실이 천둥과 번개를 통해 분명히 나타났다.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III, 80 [v, 2]) 바울은 자신이 “몸으로는 떠나 있지만 영으로는 함께 있다”고 말하면서 파루시아와 어근이 같은 동사인 파레이미(“함께 있다”)를 사용했다. (고전 5:3) 바울은 빌 2:12에서 파루시아(“함께 있을 때”)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이 점을 볼 때 이 단어를 많은 번역판에서와 같이 단순히 오는 동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임재” 또는 “함께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전 15:23 연구 노트 참조.

내가 다시 여러분과 함께 있게 될 때: 여기서 바울은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명사 파루시아를 사용했다. 이 단어는 “임재”로 자주 번역되는데,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임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마 24:37; 고전 15:23) 여기서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을 다시 방문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한다. 빌 2:12(연구 노트 참조)에서 바울이 파루시아(“함께 있을 때”)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한 것을 볼 때, 이 단어를 “함께 있는” 것 또는 “임재”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 24:3; 고전 16:17 연구 노트 참조.

살아왔습니다: 또는 “행동해 왔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그리스어 폴리튜오마이의 한 형태로서, “시민으로서 행동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바울의 말은 자신이 나라의 법을 준수하는 훌륭한 시민으로서 합당하게 행동해 왔음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라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로마 시민권이 매우 가치 있게 여겨졌으며 그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특권과 함께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행 22:25-30)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말하면서 하느님 앞에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의 말에는 자신이 로마 제국의 시민이기에 앞서 하느님의 왕국의 시민이라는 점이 내포되어 있었을 수 있다.—빌 3:20. 동일한 동사가 사용된 빌 1:27; 각주와 비교.

우리의 시민권: 빌립보는 로마 식민지였기 때문에 빌립보 시민들은 많은 혜택을 누렸다. (행 16:12, 21 연구 노트 참조) 빌립보 회중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일종의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었을 수 있는데, 로마 시민권은 매우 가치 있게 여겨졌다. 당시에 시민인 사람과 시민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바울은 여기서 그보다 훨씬 더 우월한 하늘의 시민권을 언급한다. (엡 2:19) 그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땅의 일이 아니라 (빌 3:19) 하늘의 “시민”으로서 누릴 미래의 삶에 초점을 맞추라고 권고한다.—빌 1:27 연구 노트 참조.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 이것은 당시 많은 신자들이 얼마나 잘 연합되고 조화를 이루었는지 보여 주는 표현이다. 빌 1:27에도 “한 영혼으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한 목적으로” 또는 “한 사람 같이”로 번역할 수도 있다. 히브리어 성경 대상 12:38(각주)과 대하 30:12(각주)에는 “한마음”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뜻과 행동이 일치 연합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히브리어 성경에서 “마음”과 “영혼”은 종종 함께 언급되어 속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신 4:29; 6:5; 10:12; 11:13; 26:16; 30:2, 6, 10) 이 구절에서 “마음과 영혼이 하나가 되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 표현은 “생각과 목적에 있어서 온전히 연합되어”로 번역할 수 있다. 예수께서 제자들이 다양한 배경에도 불구하고 연합을 이루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과 일치하게 제자들은 연합을 누렸던 것이다.—요 17:21.

행동하십시오: 또는 “시민으로서 행동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는 “시민권”(빌 3:20)과 “시민”(행 21:39)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과 어근이 같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나라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로마 시민권이 매우 가치 있게 여겨졌으며 그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특권과 함께 책임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행 22:25-30) 따라서 바울이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에 합당하게 행동하라고 말하면서 이 동사를 사용한 것은 그리스도인 활동, 특히 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에 참여하라는 의미였다. 빌립보 사람들은 로마로부터 일종의 시민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시민으로서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았을 것이다.—행 23:1; 빌 3:20 연구 노트 참조.

한 영혼으로: 또는 “한마음으로; 한 사람 같이”.—행 4:32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빌립보서 소개 동영상
빌립보서 소개 동영상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바울이 빌립보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여기 보이는 것은 P46으로 알려진 파피루스 책자본의 한 페이지이다. 이 책자본은 기원 200년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책자본에는 바울이 기록한 편지 9통이 들어 있는데, 오늘날의 성경과는 다른 순서로 나온다. (미디어 갤러리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첫째 편지” 및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낸 바울의 둘째 편지.”) 이 페이지에는 바울이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의 끝부분과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의 첫 부분이 나온다. 이것은 아일랜드 더블린의 체스터 비티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체스터 비티 파피루스 2호의 일부이다. 붉은 선으로 표시된 부분은 “빌립보 사람들에게”라고 되어 있는 제목이다. 이 책자본은 초기부터 서기관들이 제목을 사용해 성경 책들을 구분했음을 보여 주는 증거이다.

데살로니가 전서 소개 동영상
데살로니가 전서 소개 동영상
데살로니가 후서 소개 동영상
데살로니가 후서 소개 동영상
근위대의 복장
근위대의 복장

근위병들은 일반적으로 튜닉(1)을 입었으며 그 위에 외투(2)를 걸치기도 했다. 그러한 복장을 했기 때문에 몸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로마인이나 로마인이 아닌 사람들이나 노예들도 흔히 튜닉을 입기는 했지만, 근위병들은 무기와 허리띠와 샌들을 착용했기 때문에 쉽게 구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위병들은 로마의 도시 경계 내에 있거나 황제를 호위할 때는 항상 토가(3)라고 하는 다른 옷을 입었다. 토가는 로마 시민권을 가진 남자들의 정식 복장이었다.

바울이 가택 연금 상태에서 쇠사슬에 매이다
바울이 가택 연금 상태에서 쇠사슬에 매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에서 첫 번째로 수감되었을 때 셋집에서 감시를 받으며 지내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행 28:16, 30) 로마 군인들은 일반적으로 죄수들에게 쇠사슬을 채웠다. 대개 쇠사슬의 한쪽 끝은 죄수의 오른쪽 손목에, 다른 쪽 끝은 감시하는 군인의 왼쪽 손목에 채웠다. 따라서 군인은 오른손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서 가택 연금되어 있는 동안 기록한 대부분의 영감받은 편지에서 자신이 쇠사슬에 매여 있으며 갇혀 있다는 점을 언급했다.—엡 3:1; 4:1; 6:20; 빌 1:7, 13, 14, 17; 골 4:3, 18; 몬 1, 9,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