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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협력

생명을 위한 협력

부록 A

생명을 위한 협력

살아 있는 세포 내에서 단백질 분자와 핵산 분자(DNA나 RNA)가 서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지상에 생물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분자들 사이의 그러한 흥미로운 협력 관계의 몇 가지 세부점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러한 세부적인 협력 관계를 살펴보고, 살아 있는 세포가 우연히 생겨났다고 믿기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현미경으로나 보이는 우리 몸의 세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심지어 그 세포 속까지도 주로 단백질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이 단백질 분자들은 대부분 리본처럼 생긴 가늘고 긴 아미노산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아미노산이 구부러지고 꼬여서 여러 가지 모양을 이루고 있다. 공처럼 뭉쳐 있는 아미노산이 있는가 하면, 아코디언 주름처럼 생긴 아미노산도 있다.

어떤 단백질은 지방과 같은 분자와 협력하여 세포막을 형성한다. 그런가 하면 폐에서 인체의 다른 부분들로 산소를 운반하는 일을 돕는 단백질도 있다. 또한 효소(촉매)로 작용하여, 음식 내의 단백질을 아미노산으로 분해하여 음식물을 소화시키는 단백질도 있다. 이러한 역할은 단백질이 수행하는 수천 가지 임무 중 몇 가지에 불과하다. 단백질을 가리켜 생명의 능숙한 일꾼이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단백질이 없다면 생물은 존재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단백질 역시 DNA와 결합하지 못한다면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DNA란 무엇인가? DNA는 어떻게 생겼는가? DNA는 어떻게 단백질과 결합하는가? 뛰어난 과학자들이 그 답을 발견하여 노벨상을 탔다. 그러나 우리는 단백질에 대한 기본 사실들을 이해하기 위해 뛰어난 생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으뜸 가는 역할을 하는 분자

세포는 주로 단백질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세포를 유지하고, 새로운 세포를 만들고, 세포 내의 화학 반응을 촉진하기 위해 세포는 끊임없이 새로운 단백질을 필요로 한다. 이 단백질 생산에 필요한 지시 사항이 DNA(디옥시리보 핵산) 분자에 들어 있다. 단백질 생산 경위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DNA를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DNA 분자는 세포의 핵 속에 들어 있다. DNA는 단백질 생산에 필요한 지시 사항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세대의 세포에 들어 있는 유전 정보를 저장하고 있다가 다음 세대의 세포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DNA 분자는 새끼줄로 만든 사다리를 비틀어서 꼬아 놓은 것처럼 생겼다. (이것을 가리켜 “이중 나선 구조”라고 한다.) DNA 사다리를 이루고 있는 두 가닥의 줄은 각기 뉴클레오티드라고 하는 수많은 작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뉴클레오티드는 다음의 네 가지 형태 중 한 가지로, 즉 아데닌(A), 구아닌(G), 시토신(C), 티민(T)으로 존재한다. 이 DNA “알파벳”을 사용해서, 짝을 이룬 두 글자—A와 T 혹은 G와 C—가 이중 나선 구조로 되어 있는 사다리의 가로장을 형성한다. 이 사다리에는 유전의 기본 단위인 유전자가 수천 개 들어 있다.

유전자에는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정보가 들어 있다. 유전자의 글자 배열 순서에 따라 유전 암호, 즉 어떤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질 것인지를 알려 주는 청사진이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DNA는 DNA의 모든 하부 단위와 함께 생명을 유지하는 데 으뜸 가는 역할을 하는 분자이다. DNA에 암호로 된 지시 사항이 없다면 다양한 단백질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생물도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중개자

그러나 단백질을 만드는 데 필요한 청사진은 세포의 핵 속에 보관되어 있고 단백질 생산 현장은 핵 바깥에 있기 때문에, 암호로 된 청사진을 핵에서 “생산 현장”으로 옮겨 가는 데 도움이 필요하다. RNA(리보 핵산) 분자가 이러한 도움을 베푼다. RNA 분자는 DNA 분자와 화학적으로 구조가 비슷하며, 단백질을 만드는 데는 여러 종류의 RNA가 필요하다. RNA의 도움을 받아서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단백질을 만드는, 이 극히 복잡한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작업은 세포의 핵 속에서 시작되는데, 우선 DNA 사다리 구조의 일부분이 풀린다. 그렇게 되면 DNA를 구성하고 있던 두 줄 중 한쪽 줄에 있는 DNA 글자들이 노출되어 RNA 글자들과 결합할 수 있게 된다. 효소가 RNA 글자들을 따라다니며 RNA 글자들이 DNA 줄과 결합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DNA 글자들이 RNA 글자들로 전사(轉寫)되어, 소위 DNA 방언이라고 하는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하여 새로 만들어진 RNA 사슬이 DNA 줄에서 떨어져 나가면, DNA 사다리의 두 줄은 다시 맞물리게 된다.

암호를 전달하는 이 특별한 종류의 RNA는 몇 가지 조정을 더 한 다음 떠날 준비를 마치게 된다. 이 RNA가 핵에서 나와 단백질 생산 현장을 향해 가면, 그 곳에서는 RNA 글자들을 해독한다. RNA의 세 가지 글자들의 조합은 각기 한 “단어”를 형성하는데, 각 단어는 한 가지 특정한 아미노산을 필요로 한다. 또 다른 종류의 RNA가 그 아미노산을 찾은 다음, 효소의 도움을 받아 그 아미노산을 붙잡아서 “생산 현장”으로 끌고 온다. RNA가 이루고 있는 문장을 읽고 번역함에 따라, 점점 더 큰 아미노산 사슬이 만들어진다. 이 사슬이 꼬이고 접혀져 독특한 모양을 이루면서 한 종류의 단백질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단백질은 아마 5만 종이 넘을 것이다.

심지어 이처럼 단백질이 접혀지는 과정도 중요하다. 1996년에 전세계의 과학자들은 “가장 좋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갖추고 생물학의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를 풀려고 씨름하였다. 즉 긴 줄을 이룬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진 한 개의 단백질이 어떻게 스스로 접혀 복잡한 모양으로 변해 가면서, 생물 내에서 자신이 맡을 역할을 정해 가는가 하는 문제이다. ·⁠·⁠· 그 결과에 대해 간략하게 말하자면, 컴퓨터가 졌고 단백질이 이겼다. ·⁠·⁠· 과학자들이 추산한 바에 따르면,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만들어진 평균 크기의 단백질의 경우, 가능한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단백질이 어떻게 스스로 접혀져 가는가 하는 문제를 푸는 데 1027년(10억 × 10억 × 10억 년)이 걸릴 것이다.”—「뉴욕 타임스」.

단백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요약해 놓은 것만 고려해 보더라도, 그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과정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20개의 아미노산이 모여 한 개의 사슬을 이루는 데 얼마의 시간이 걸리는지 알고 있는가? 약 1초밖에 안 걸린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우리 몸의 세포 내에서 끊임없이 계속된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신체의 모든 부위에서 진행된다.

요점은 무엇인가? 일일이 언급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다른 요인들이 관련되어 있지만, 생명을 탄생시키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 협력 관계만 보아도 외경심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리고 “협력”이란 말만으로는, 단백질 분자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정밀한 상호 작용을 묘사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단백질은 DNA 분자들로부터 정보를 필요로 하고, DNA는 여러 종류의 특수 RNA 분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또한 여러 가지 효소들도 무시할 수가 없는데, 각기 독특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지도하지 않는데도 하루에도 수십억 차례 우리 몸이 새로운 세포들을 만들 때마다, 세 가지 요소—DNA와 RNA와 단백질—가 모두 필요하다. 「뉴 사이언티스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어느 한 가지라도 없어진다면, 생물은 점차 기능을 상실하여 죽게 될 것이다.” 아니,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한 팀을 이루어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생물은 생겨날 수도 없었을 것이다.

한 팀을 이루어 활동하는 그 세 분자 선수들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저절로 생겨나, 아주 정확하게 손발을 맞추어, 함께 힘을 합하여 경이로운 일을 해낼 수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이 과연 합리적인 생각이겠는가?

하지만 지상에 어떻게 생물이 존재하게 되었는지 설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다. 많은 사람들은 생물은 최고 수준의 지성을 가진 설계자가 주의 깊이 만든 작품이라고 믿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