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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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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2014년  6월

죽은 조상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죽은 조상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몇 년 전에 한국의 일간지인 「조선일보」에 한 기사가 실렸습니다. “예수 몰랐던 ‘착한 심청이’는 지옥에 갔을까”라는 흥미로운 제목이었습니다.

그 질문은 적잖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국 민간 설화에 등장하는 심청은 눈먼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친 소녀로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랜 세월 그의 효심은 많은 칭송을 받아 왔습니다. 사실, 한국에서 심청이라는 이름은 효성이 지극한 딸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심청 같은 사람이 침례받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지옥불에서 벌을 받는다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기에 불공평하고 거북한 일입니다. 사실 심청의 이야기는 한국에 그리스도교가 전래되기 오래전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 신문 기사에는 한 교직자와의 인터뷰가 실렸습니다. 그는 예수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죽은 사람이 모두 지옥에 가냐는 질문을 받고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한 사람에 대해] 신이 섭리하는 방식이 있을 것이라 여길 뿐이다.”

구원을 위한 요구 조건

「신가톨릭 백과사전」(New Catholic Encyclope-dia)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술합니다. “세례는 구원을 위한 요구 조건이다.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셨듯이, 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한 3.5)” 이러한 설명에 영향을 받은 일부 사람은 침례받지 않고 죽은 사람이 사후에 지옥불에 떨어지거나 다른 형태로 고통을 겪는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이 성경에 대해 알지 못한 상태에서 죽었습니다. 그은 영원한 고초를 받아 마땅합니까?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견해는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약속한 희망

성경에서는 하느님이 자신의 요구 조건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죽은 사람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사도행전 17:30의 기록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무지의 시대를 눈감아” 주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는 하느님에 대해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하고 죽은 사람에게 어떤 희망을 제시합니까?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라는 예수의 약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곁에서 처형된 한 범죄자에게 하신 말씀에 그 대답이 나옵니다. 그 범죄자는 “당신의 왕국에 들어가실 때에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라고 예수께 요청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내가 오늘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입니다.”—누가복음 23:39-43.

예수께서는 그가 하늘에 갈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범죄자는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지” 않았으므로 하늘 왕국에 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에 달하지 못했습니다. (요한복음 3:3-6) 따라서 예수께서는 그 범죄자가 낙원에서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유대인이었던 그는 성경의 첫 번째 책에 묘사된 지상 낙원 즉 에덴동산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창세기 2:8) 예수께서는 이 약속을 통해, 이 땅이 다시 낙원으로 회복될 때 그부활될 것이라는 확실한 희망을 주셨습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의로운 사람과 불의한 사람의 부활”이 있을 것이라고 약속합니다. (사도행전 24:15) “불의한 사람들”은 하느님의 뜻을 몰랐기 때문에 그분의 의로운 표준에 달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과 이야기한 그 불의한 범죄자를 비롯해 하느님에 대해 모른 채 죽은 수억 명 어쩌면 수십억 명이 넘는 사람을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부활된 사람은 낙원이 된 땅에서 하느님의 요구 조건에 대해 배워 알게 될 것이며, 하느님의 계명에 순종으로 그분에 대한 사랑을 증명할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불의한 사람이 부활될 때

부활된 불의한 사람은 과거의 행위를 근거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서 6:7에서는 “죽은 사람은 자기의 죄에서 해방된다”고 알려 줍니다. 불의한 사람은 죽을 때 자신의 죗값을 치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은 죽기 전에 무지한 상태에서 한 일이 아니라, 부활된 후에 한 일에 따라 심판받게 됩니다. 그에게는 어떤 기회가 있을 것입니까?

부활된 이 불의한 사람은 상징적 두루마리이 펴져 하느님의 법이 밝혀질 때 그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을 것입니다. 그런 다음 “자기의 행위대로” 즉 하느님의 법에 순종하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받습니다. (계시록 20:12, 13) 불의한 사람들 중 다수에게는 이것이 두 번째 기회가 아니라, 땅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행할 최초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은 성경의 이러한 가르침을 배운 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되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숙 씨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 자랐고 가족 중에는 가톨릭 사제도 있었습니다. 영숙 씨도 수녀가 되고 싶어 수녀원에 들어갔지만,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크게 실망한 나머지 수녀원을 떠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지옥불 교리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불타는 지옥에서 사람에게 고초를 준다는 것이 불공정하고 무정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중, 어느 여호와의 증인이 영숙 씨에게 성경에서 이러한 말씀을 보여 주었습니다. “산 자은 자기이 죽을 것을 의식하지만, 죽은 자은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다시는 삯도 받지 못한다.” (전도서 9:5) 그 증인은 영숙 씨의 조상이 불타는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라 부활을 기다리면서 죽음의 잠을 자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다.

영숙 씨는 성경에서 알려 주는 진리를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고, 마태복음 24:14에 나오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이 왕국의 좋은 소식이 모든 나라 사람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끝이 올 것입니다.” 이제 영숙 씨는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전하면서 성경에 담긴 놀라운 희망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편파적이 아니시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느님은 편파적이 아니시고, 도리어 모든 나라에서 그분을 두려워하고 의를 행하는 사람은 받아 주십니다.” (사도행전 10:34, 35) 바로 이러한 완전한 공의야말로 “의와 공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에게서 우리 모두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시편 3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