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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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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2014년  5월

 훌륭한 믿음의 본 | 마리아

칼로 찌르는 듯한 슬픔을 견뎌 내다

칼로 찌르는 듯한 슬픔을 견뎌 내다

무릎을 꿇고 있는 마리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낍니다. 여러 시간 고초를 겪고 죽어 가던 아들이 남긴 마지막 외침이 아직도 귓전에 생생합니다. 이른 오후인데 벌써 하늘이 어두워졌습니다. 땅이 격렬하게 뒤흔들립니다. (마태복음 27:45, 51) 여호와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자신이 누구보다 큰 아픔을 느끼고 계심을 세상에 알리는 것 같아 보였습니다.

오후의 햇볕이 비치면서 골고타 즉 해골터를 덮고 있던 어둠이 걷히지만 마리아는 아들 때문에 계속 슬퍼합니다. (요한복음 19:17, 25) 수많은 기억이 뇌리를 스칩니다. 그중 하나는 33년 전에 있었던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요셉과 함께 소중한 아기를 데리고 막 예루살렘의 성전에 들어갔을 때, 시므온이라는 연로한 사람이 영감을 받아 예언을 했습니다. 그는 예수에 관한 중대한 일을 예언하면서 언젠가 마리아가 긴 칼이 자신을 꿰뚫는 듯한 슬픔을 느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누가복음 2:25-35) 이 비극적인 순간이 되어서야 마리아는 그 말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습니다.

마리아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자녀의 죽음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럽고 끔찍한 일로 여겨져 왔으며, 그로 인한 상실감은 엄청납니다. 죽음은 잔인한 적과 같아서 우리 모두에게 어떤 식으로든 상처를 줍니다. (로마서 5:12; 고린도 첫째 15:26) 그러한 아픔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예수가 봉사를 시작하신 때부터 사망하신 때까지 그리고 그 이후에 마리아가 어떻게 살아갔는지 살펴본다면, 칼로 찌르는 듯한 슬픔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 그의 믿음에 관해 많은 점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그가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

삼 년 반 전으로 되돌아가 봅시다. 마리아는 무엇인가 변화가 있음을 알아챕니다. 심지어 나사렛과 같이 작은 도시에서도 사람은 침례자 요한에 대해 그리고 그가 전한 마음을 움직이는 회개의 소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이 그러한 소식을 신호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수가 봉사의 직무를 시작할 때가 된 것입니다. (마태복음 3:1, 13) 예수가 집을 떠나면 마리아와 가족에게는 커다란 변화가 있을 것이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마리아의 남편인 요셉은 일찍이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마리아는 이미 상실의 아픔을 경험한 것입니다. * 이제 예수는 “목수의 아들”이라고만이 아니라 “목수”라고도 불리게 됩니다. 예수는 아버지의 일을 물려받았고, 그의 뒤에 태어난 동생들 적어도 여섯 명이 포함된 한 가족을 부양하는 역할을 맡게 된 것 같습니다. (마태복음 13:55, 56; 마가복음 6:3) 예수께서 바로 손아래 남동생이었을 야고보에게 기술 훈련을 시켰다 하더라도, 큰아들이 집을 떠난다는 것은 가족에게 있어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입니다. 이미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던 마리아는 그러한 변화를 두려워했습니까? 우리는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사렛의 예수가 사람이 오랫동안 기다려 온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가 되었을 때, 마리아는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이었습니까? 한 가지 성경 기록은 그 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합니다.—요한복음 2:1-12.

예수는 요한에게 가서 침례를 받았고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아가 되셨습니다. (누가복음 3:21, 22) 그런 다음 자신의 제자을 택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분 긴급하게 수행해야 할 임무가 있었지만, 가족이나 벗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셨습니다. 어머니와 제자과 육적인 형제과 함께 그분은 나사렛에서 13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언덕에 위치했을 가나에서 열린 결혼 잔치에 참석하셨습니다. 잔치 중에 마리아는 한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신랑 신부의 가족 중 일부가 크게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 속삭이는 것을 눈치챈 것 같습니다. 포도주가 동이 난 것입니다! 그 문화권에서는 관례적인 후대를 베푸는 일에서 그처럼 실수를 범하게 되면 가족에게 수치가 돌아가고 결혼 잔치를 망칠 수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그 가족에게 동정심을 느꼈고 예수에게 도움을 구했습니다.

마리아는 “그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아들이 어떻게 해 주기를 기대한 것입니까?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기 아들이 놀라운 일을 행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마리아는 바로 그 상황에서 아들이 놀라운 일을 행하기 시작하기를 바랐을지 모릅니다. 사실상 마리아는 예수에게 “아들아, 제발 어떻게 좀 해 보렴!” 하고 말한 셈입니다. 예수께서는 “여자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일부 사람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바와는 달리 그 말은 불경스러운 말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분명 부드럽게 시정해 주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는 방법에 대해 마리아가 이래라저래라 할 권한이 없음을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이신 여호와께서만 그렇게 하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분별력 있고 겸손한 여자였던 마리아는 아들의 시정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잔치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무엇이든 그가 말하는 대로 하십시오’라고만 간단히 말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이 더 이상 아들에게 지시할 입장에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과 다른 사람이 그의 지시를 받아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신랑 신부를 염려하는 어머니의 마음에 공감한다는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물을 질 좋은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제자이 그분에게 믿음을 두었”습니다. 마리아 역시 예수에게 믿음을 두었습니다. 예수를 단지 자신의 아들이 아니라 주이자 구원자로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의 부모은 마리아의 믿음으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물론 어떤 부모도 예수와 같은 자녀를 키워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자녀라도 누구나 성인이 되며 그러한 변화로 인해 어려운 문제이 생길 수 있습니다. 어떤 부모는 성인이 된 아들이나 딸을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대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성인 자녀를 대하는 적절한 방법이 아닐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3:11) 부모는 성장한 자녀에게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습니까? 한 가지 방법은 충실한 아들이나 딸이 성경의 원칙을 계속 잘 적용할 것이며 여호와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진심 어린 확신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겸손하게 믿음과 확신을 표현하는 것은 성인 자녀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다사다난했던 그 후 몇 년 동안 분명히 마리아의 지원을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그분의 형제은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내고 있지 않았다”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수행하신 삼 년 반 동안의 봉사 기간 중에 마리아가 어떻게 지냈는지에 대한 기록이 별로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할 점은 마리아가 아마 과부였을 것이며, 어쩌면 여전히 한에 사는 어린 자녀을 키우는 홀어머니였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예수가 자신의 민족이 사는 지역을 두루 다니며 전파 활동을 할 때 마리아가 따라가지 못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해할 만한 일입니다. (디모데 첫째 5:8) 그래도 마리아는 메시아에 관해 배운 영적인 점에 관해 계속 묵상했으며, 가족이 늘 해 오던 것처럼 그곳의 회당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습니다.—누가복음 2:19, 51; 4:16.

 그렇다면 예수께서 나사렛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아마 마리아도 청중 가운데 앉아 있지 않았겠습니까? 수백 년 전에 예언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이제 자신에게 성취되었다고 공언하는 아들의 말을 듣고 마리아는 얼마나 가슴이 설레었겠습니까! 하지만 동향인 나사렛 사람이 아들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보면서 틀림없이 매우 괴로웠을 것입니다. 심지어 그은 그분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누가복음 4:17-30.

또한 다른 아들이 예수에 대해 나타내는 반응도 마리아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요한복음 7:5을 보면 예수의 남동생 네 명이 어머니와 같은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록은 “그분의 형제은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내고 있지 않았다”고 알려 줍니다. 적어도 두 명 이상이었을 예수의 여동생에 관해서는 성경에서 알려 주는 바가 없습니다. * 어떤 경우이든, 마리아는 종교적으로 분열된 가정에서 사는 데 따르는 독특한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에 관한 진리에 충성스럽게 고착하는 동시에 지나치게 부담을 주거나 논쟁적이 되지 않으면서 가족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균형을 잘 잡아야 했습니다.

은 예수의 친족이 예수를 “잡으러” 나섰는데, 그 가운데는 분명 그의 남동생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은 “그가 정신이 나갔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3:21, 31) 물론 마리아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아들과 같이 갔습니다. 아마도 예수의 동생이 무언가를 배워서 믿음이 생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동생은 믿음이 생겼습니까? 예수께서 계속 경이로운 일을 행하고 놀라운 진리를 가르치셨지만 그은 여전히 그분을 믿지 않았습니다. 마리아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아들의 마음이 움직일 수 있단 말인가 하고 거의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습니까?

종교적으로 분열된 가정에 살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마리아의 믿음을 통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마리아는 믿지 않는 가족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믿음이 자신에게 기쁨과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준다는 점을 가족이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한편 변함없이 자신의 충실한 아들을 지원했습니다. 마리아는 아들을 그리워했습니까? 아들이 자신과 그리고 가족과 함께 집에 있었으면 하고 바랄 때도 있었습니까? 만약 그랬더라도 마리아는 그러한 감정을 잘 제어했습니다. 그는 예수를 지원하고 격려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겼습니다. 그처럼 당신도 자녀이 인생에서 하느님을 첫째 자리에 두도록 도울 수 있습니까?

‘긴 칼이 당신을 꿰뚫을 것입니다’

예수에 대한 마리아의 믿음은 상을 받았습니까? 여호와께서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반드시 상을 주시며 마리아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히브리서 11:6) 아들의 가르침을 직접 듣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 들었을 때 마리아가 어떻게 느꼈을지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 사용하신 많은 예에는 요셉과 마리아가 베푼 훈련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아들이 사용한 예나 비유를 들으며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자라던 예수의 어린 시절이 기억났을 것입니까? 잃어버린 주화를 찾기 위해 집 안을 쓸거나, 빵을 만들 밀을 갈거나, 등불을 켜서 등잔대 위에 놓는 여자에 관해 예수께서 말씀하셨을 때, 마리아는 그러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는 자신 옆에 꼭 붙어 있던 어린 예수의 모습을 생각했을 것입니까? (누가복음 11:33; 15:8, 9; 17:35) 예수께서 나의 멍에는 친절하고 나의 짐은 가볍다고 말씀하셨을 때, 마리아는 오래전 어느 날 오후에 요셉이 어린 예수에게 어떻게 짐승이 편안히 멜 수 있는 모양으로 멍에를 만들 수 있는지 가르치던 장면을 흐뭇한 마음으로 떠올렸을 것입니까? (마태복음 11:30) 분명 마리아는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주신 특권 즉 장차 메시아가 될 아들을 키우고 훈련시키는 일에 참여하는 특권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 선생님이셨던 예수께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나 일상적인 장면에서 매우 깊이 있는 교훈을 이끌어 내실 때, 마리아는 그러한 가르침을 들으며 분명 큰 기쁨을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겸손을 유지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지나친 찬사나 숭배에 가까운 정성이 돌아가게 한 적이 결코 없었습니다. 그분이 봉사를 수행하던 중에 무리 가운데 있던 한 여자는 예수를 낳은 어머니가 참으로 행복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 “아닙니다. 도리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사람이 행복합니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27, 28) 무리 가운데 일부 사람이 예수에게 어머니와 형제이 와 있다고 알려 주었을 때도 그분은 자신을 믿는 사람이야말로 실제로 자신의 어머니요 형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리아는 기분이 상하기는커녕, 그 말씀의 요지 즉 영적인 관계가 육적인 관계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분명 이해했을 것입니다.—마가복음 3:32-35.

하지만 형주에서 아들이 끔찍한 죽임을 당하는 것을 바라보며 마리아가 느꼈을 고통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사형 집행을 직접 목격한 사도 요한이 후에 기록한 세부점 가운데는 그 시련의 때에 마리아가 “예수의 고통의 기둥 곁에” 서 있었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충성스럽고 사랑 많은 이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 곁을 지킨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보시고는, 매번 숨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워 말을 하기가 몹시 힘든 상황에서도 말을 꺼내십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도인 요한이 어머니를 돌보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육적인 형제이 여전히 그분을 믿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은 마리아를 형제이 아니라 자신의 진실한 제자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께서는 믿음을 가진 남자가 자신에게 속한 사람을 돌보는 일, 특히 그의 영적인 필요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요한복음 19:25-27.

마침내 예수께서 사망하셨을 때 마리아는 오래전에 예언된 것처럼 긴 칼이 자신을 꿰뚫는 듯한 슬픔을 느꼈습니다. 우리가 그 고통의 깊이를 가늠하기 어렵다면 사흘 후에 마리아가 느꼈을 기쁨의 정도를 가늠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것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이 일어났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부활되신 것입니다! 그리고 후에 예수께서는 이부동생인 야고보에게 아마 개인적으로 나타나신 것 같은데 그로 인해 마리아의 기쁨은 더 커졌습니다. (고린도 첫째 15:7) 그 일로 야고보뿐 아니라 다른 이부동생도 큰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마 안 있어 그이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꾸준히 기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14) 이부동생들 중 두 명인 야고보와 유다는 후성서의 책을 쓰기까지 했습니다.

마리아는 다른 아들이 충성스러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렸습니다

아들과 함께 그리스도인 모임에서 기도하고 있는 것을 마지막으로 마리아에 대한 언급은 끝이 납니다. 참으로 그에게 어울리는 결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리아는 매우 훌륭한 본을 남겼습니다! 그는 칼로 찌르는 듯한 큰 슬픔을 믿음으로 견뎌 냈으며 결국 영광스러운 상을 받았습니다. 마리아의 믿음을 본받는다면 우리 역시 이 냉혹한 세상에서 어떤 아픔을 겪더라도 극복해 낼 것이며,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 8항 요셉은 예수가 열두 살 때 있었던 사건에 등장한 이후로 복음서 기록에 언급되지 않는다. 그 후로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은 기록에 나오지만 요셉은 나오지 않는다. 예수는 요셉에 대한 언급 없이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불린 적이 있다.—마가복음 6:3.

^ 16항 요셉은 예수의 친아버지가 아니었다. 따라서 예수의 동생은 엄밀히 말해서 이부동생이었다.—마태복음 1: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