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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한국어

파수대 (연구용) 2015년  12월

말이 지닌 힘을 유익하게 사용하십시오

말이 지닌 힘을 유익하게 사용하십시오

‘내 입의 말이 당신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 여호와여.’—시 19:14.

노래: 82, 77

1, 2. 이 지닌 힘을 불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1871년 10월 초에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산불이 발생해 위스콘신 주 북동부의 건조한 삼림 지대를 집어삼켰습니다.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번지면서 화염과 강한 열기로 12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고 약 20억 그루의 나무가 재로 변해 버렸습니다. 이 대화재는 기차이 지나갈 때 발생한 작은 불꽃 때문에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주 작은 불이 얼마나 큰 숲을 태워 버리는지 생각해 보십시오!”라는 야고보서 3:5의 말씀이 정말 참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성경 필자 야고보가 그런 말을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야고보는 그 비유의 요점6에서 “혀도 불과 같습니다”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이 성구에서 혀는 말하는 능력을 가리킵니다. 우리의 말은 불처럼 큰 해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는 심지어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있다”고 알려 줍니다. (잠언 18:21) 물론 화재가 날까 봐 두려워서 불을 사용하지 않고 지낼 수는 없듯이, 상처 주는 말을 할까 봐 걱정되어 아예 말을 하지 않고 지낼 수는 없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잘 제어하는 것입니다. 불을 잘 제어하여 안전하게 사용하면, 요리도 하고 몸을 따뜻하게 하고 밤에 불을 밝힐 수도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혀를 잘  이면, 혀의 권세 즉 말이 지닌 힘을 사용하여 하느님께 영예를 돌리고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줄 수 있습니다.—시 19:14.

3. 과 관련된 어떤 세 가지 부면을 살펴볼 것입니까?

3 으로 말하든 손으로 수화를 하든 우리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능력은 하느님께서 주신 놀라운 선물입니다. 어떻게 이 선물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깎아내리는 것이 아니라 격려할 수 있습니까? (야고보서 3:9, 10 낭독) 이제 말과 관련된 세 가지 중요한 부면 즉 언제 말할지, 무엇을 말할지, 어떻게 말할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언제 말할 것인가

4. 언제가 “잠잠할 때”인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4 일상생활을 하려면 말을 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성경에서는 “잠잠할 때”가 있다고 알려 줍니다. (전도 3:7)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잠잠히 있는 것은 존중심을 나타내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욥 6:24) 혀를 잘 제어하여 내밀을 말하지 않는 것은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잠언 20:19) 화가 났을 때는 말을 삼가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시 4:4.

5. 하느님께서 주신 언어의 선물에 대해 어떻게 감사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5 반면에, 성경은 “말할 때”가 있다고도 알려 줍니다. (전도 3:7) 친구에게서 근사한 선물을 받으면 한쪽 구석에 그냥 방치해 두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 선물을 잘 사용으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것입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주신 언어의 선물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그 선물에 대해 감사를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말로 감정을 표현하고, 자신의 필요를 알리고,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하느님을 찬양합니다. (시 51:15) 그러면 말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습니까?

6. 성경은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어떻게 표현합니까?

6 잠언 25:11은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적절한 때에 한 말은 은쟁반에 담긴 금사과 같다.” 금사과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은쟁반에 올려놓으면 더욱 아름답게 보일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신중히 선택한다면 우리의 말은 더 큰 호소력과 힘을 갖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7, 8. 일본의 형제은 부활에 관해 말할 적절한 때를 선택하는 면에서 어떻게 예수의 본을 따랐습니까?

7 우리가 할 말이 상대방에게 꼭 필요한 것일 수 있지만,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분별하지 않으면 그 말의 유익이 반감될 것입니다. (잠언 15:23 낭독) 를 들어, 2011년 3에 지진과 쓰나미가 일본 동부 지역을 강타하여 여러 도시가 쑥대밭이 되었으며 1만 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 지역의 여호와의 증인은 이웃 사람과 마찬가지로 큰 고통을 겪었지만 모든 기회에 성경을 사용하여 슬픔에 잠긴 사람을 위로했습니다. 하지만 그 지역의 많은 사람은 독실한 불교 신자이며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 거의 혹은 전혀 모릅니다. 우리 형제은 쓰나미가 지나간 직후에는 슬픔에 잠긴 사람에게 부활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점을 분별했습니다. 따라서 형제은 부활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언어의 선물을 사용해서 사람을 감정적으로 위로하고, 무고한 사람에게 그처럼 끔찍한 일이 닥치는 이유를 성경으로 설명해 주었습니다.

8 예수께서는 말하지 않아야 할 때와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아셨습니다. (요한 18:33-37; 19:8-11) 한은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할 것이 아직도 많지만  지금은 여러분이 그것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요한 16:12) 일본 동부 지역의 증인은 예수의 본을 따랐습니다. 쓰나미가 발생한 지 2년 반 뒤에 그은 “죽은 사람이 과연 다시 살 수 있을까요?”라는 제목의 「왕국 소식」 38를 전하는 세계적인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때는 더 많은 사람이 위로가 되는 부활에 관한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집주인이 그 전도지를 흔쾌히 받았습니다. 물론 지역마다 문화와 종교적 신념이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우리는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신중하게 선택해야 합니다.

9. 하기에 적절한 때를 선택하는 것이 우리의 말에 힘을 더해 주는 어떤 상황이 있습니까?

9 하기에 적절한 때를 특히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는 상황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좋은 의도로 말했는데도 그 말에 우리의 감정이 상할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그에게 뭔가 말하지 않고는 그냥 넘어갈 수 없을 만큼 그 문제가 심각한 것인지 시간을 내어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꼭 말해야 한다면, 화가 나서 다소 격하게 말할 가능성이 있을 때는 말을 꺼내지 않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잠언 15:28 낭독)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진리에 대해 말할 경우에도 적절한 때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이 여호와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라지만 참을성을 나타내고 상황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알맞은 때에 알맞은 말을 하면 마음의 문을 여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을 말할 것인가

10. (ㄱ) 적절한 말을 신중히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해를 입히는 말의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10 에는 힘이 있어서 남을 치유할 수도 있고 상처를 줄 수도 있습니다. (잠언 12:18 낭독) 사탄의 세상에서는 말로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일이 흔히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오락물의 영향을 받아 “혀를 칼같이 날카롭게 하고 잔인한 말을 화살같이 겨눕니다.” (시 64:3) 그리스도인은 그처럼 해를 입히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잔인한 말”의 한 가지 형태는 빈정대는 말 즉 남을 깎아내리거나 비난할 의도로 찌르듯이 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흔히 남을 웃기려고 빈정대는 말을 하지만, 그런 말은 쉽사리 무례하거나 창피를 주는 말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신랄하게 빈정대는 말은 그리스도인이 “없애 버려”야 할 모욕적인 말의 한 가지 형태입니다. 유머감은 우리의 말에 맛을 더해 줄 수 있지만, 단지 웃음을 유발하려는 의도로 빈정대면서 남에게 상처나 모욕을 주는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권고합니다. “썩은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오직 필요에 따라 세워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듣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도록 하십시오.”—에베소 4:29, 31.

11. 알맞은 말을 선택하는 데 어떻게 마음이 관련됩니까?

11 예수께서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 12:34) 따라서 적절한 말을 선택하는 것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흔히 우리의 말에는 자신이 다른 사람을 실제로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드러납니다. 우리의 마음에 사랑과 동정심이 가득하다면 긍정적이고 격려적인 말을 하게 될 것입니다.

12. 적절한 말을 선택하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 수 있습니까?

12 또한 적절한 말을 선택하려면 많이 생각하고 판단을 잘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왕 솔로몬도 “기쁨을 주는 말을 찾고 진리의 정확한 말씀을 기록”하기 위해 “깊이 생각하고 철저히 살폈습니다.” (전도 12:9, 10) “기쁨을 주는 말”을 생각해 내기가 종종 어렵다고 느껴집니까? 그렇다면  어휘를 더 늘려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는 한 가지 방법은 성경과 그리스도인 출판물에서 어떤 표현이 사용되는지 유의해서 보는 것입니다. 낯선 표현이 나오면 그 의미를 알아보십시오. 더 중요한 점으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말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여호와의 맏아들 예수가 아버지께 무엇을 배우셨는지 성경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 가르침받은 자의 혀를 나[예수]에게 주셔서 지친 사람에게 적절한 말로 대답할 줄 알게 해 주셨다.” (이사야 50:4) 시간을 내어 무슨 말을 할지 숙고해 본다면 적절한 말을 생각해 내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야고보 1:19)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될까? 상대방은 내가 선택한 표현을 듣고 어떤 영향을 받을까?’

13. 이해하기 쉽게 말하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13 이스라엘에서는 백성을 모으거나 해산시킬 때 또는 군대에게 전쟁 신호를 보낼 때 나팔을 불었습니다. 적절하게도 성경에서는 나팔 소리를 비유로 들어 우리가 이해하기 쉽게 말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분명하지 않은 나팔 소리는 진군하는 군대에게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너무 모호하게 말하거나 돌려 말한다면 상대방이 혼란스러워하거나 오해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분명하게 말하려고 노력한다고 해서, 퉁명스럽거나 예의 없게 말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고린도 전서 14:8, 9 낭독.

14. 예수께서 이해하기 쉽게 말씀하신 어떤 예가 있습니까?

14 예수께서는 적절한 말을 선택하는 면에서 최상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마태복음 5에서 7에 기록된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그분의 연설을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미사여구나 모호한 표현을 사용하지도 않으셨고 거칠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분명하면서도 간결한 표현을 사용하여 청중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일용할 양식에 대한 사람의 염려를 덜어 주시려고 여호와께서 하늘의 새을 어떻게 먹이시는지 언급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청중과 새를 비교하여 이렇게 질문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새보다 더 소중하지 않습니까?” (마태 6:26) 애정이 담긴 이 말씀은 간단하면서도 이해하기 쉽고 마음에 감동을 주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의 말과 관련된 중요한 부면들 중 세 번를 살펴보겠습니다.

어떻게 말할 것인가

15. 은혜롭게 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무엇을 말하는가 못지않게 어떻게 말하는가도 중요합니다. 예수께서 고향인 나사렛의 회당에서 말씀하셨을 때 사람은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혜로운 말씀에 크게 놀[랐습니다.]” (누가 4:22) 은혜롭게 말하면 말의 힘이 약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사실, 은혜로운 말은 더 설득력이 있습니다. (잠언 25:15) 우리는 은혜롭게 말씀하신 예수를 본받아 다른 사람의 감정을 고려해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힘들여 찾아온 사람을 보시고 불쌍한 마음이 들어 “그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마가 6:34) 그분은 모욕을 당할 때에도 거친 말로 응수하지 않으셨습니다.—베드로 전서 2:23.

16, 17. (ㄱ) 가족이나 회중 내의 친한 친구과 이야기할 때 어떻게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까? (기사 제목 위에 있는 삽화 참조) (ㄴ) 은혜롭게 말하면 어떤 유익이 있는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16 우리와 가까운 사람에게는 부드럽고 사려 깊게 말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생각나는 대로 직선적으로 말해도 된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가족이나 회중 내의 친한 친구에게 그렇게  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과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에 그에게 불친절하게 말해도 된다고 생각하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의 가장 가까운 제자이 누가 더 큰지를 놓고 반복해서 논쟁을 벌였을 때 예수께서는 어린아이의 예를 들어 친절한 말로 그을 시정하셨습니다. (마가 9:33-37) 장로은 다른 사람에게 “온화한 영으로” 조언으로 예수를 본받을 수 있습니다.—갈라디아 6:1.

17 누군가가 기분 나쁜 말을 해도 은혜롭게 대답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있습니다. (잠언 15:1) 예를 들어,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한 십 대 아들은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자매가 그의 어머니에게 좋은 의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녀 교육에 실패하셔서 정말 안됐어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한 다음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 당장은 어려움이 있는 게 사실이지만 우리 애를 가르치는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확실한 결과는 아마겟돈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 봐야 알 수 있겠죠.” 이처럼 부드럽게 대답한 결과 두 자매는 계속 평화롭게 지낼 수 있었으며, 아들도 우연히 그 대화를 엿듣고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들은 마음이 움직여 나쁜 친구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는 침례를 받았고 나중에는 베델에서 봉사했습니다. 우리는 형제이든 가족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소금으로 맛을 내듯 언제나 은혜롭게” 말해야 합니다.—골로새 4:6.

18. 어떻게 예수를 본받아 말이 지닌 힘을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습니까?

18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능력은 참으로 놀라운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본받아 말하기에 적절한 때를 분별하고, 알맞은 말을 선택하고, 은혜롭게 말하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말이 지닌 힘을 사용하여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언어라는 소중한 선물을 주신 여호와께 기쁨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