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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한국어

파수대 (연구용) 2015년  7월

기꺼이 자신을 바친 사람들—러시아 편

기꺼이 자신을 바친 사람들—러시아 편

1991에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금지령이 해제되고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이 공식 인가를 받게 되자 형제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당시에는 현재처럼 증인이 10나 증가하여 약 17만 명에 이를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열심 있는 이 왕국 전파자들 가운데는 러시아의 영적 수확 활동을 도우려고 외국에서 온 증인도 있습니다. (마태 9:37, 38) 이제 그러한 형제 자매들 몇 사람을 만나 보겠습니다.

기꺼이 자원한 형제이 회중을 강화하다

러시아에서 금지령이 해제될 당시, 영국에 살던 매슈는 28였습니다. 그해에 열린 지역 대회에서 한 연사는 동유럽 회중에 도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한 회중을 예로 들었습니다. 연사는 그곳에 장로는 없고 봉사의 종이 한 명뿐인데, 전도인이 수백 건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매슈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연설이 끝난 후, 러시아에 대한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 기도하면서 그곳으로 이주하고 싶다는 열망을 구체적으로 말씀드렸지요.” 매슈는 돈을 조금 저축한 다음, 가지고 있던 소유물을 대부분 팔고 나서 1992에 러시아로 이주했습니다.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매슈

매슈는 이렇게 말합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이 힘들었지요. 영적인 대화를 제대로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숙소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매슈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갑자기 통보를 받고 집을 옮겨야 했던 적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처음에 그러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매슈는 “러시아로 이주한 것은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곳에서 봉사하면서 여호와를 더욱더 의지하게 되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분의 인도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매슈는 나중에 장로와 특별 파이오니아로 임명되었으며 현재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인근에 있는 지부 사무실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히루일본에서 1999에 25의 나이로 봉사 훈련 학교를 졸업했으며, 한 강사로부터 외국 밭에서 봉사해 보라는 격려를 받았습니다. 히루는 러시아에 도움이 많이 필요하다는  을 듣고 러시아어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에 더해 실제로 러시아에 가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에 가서 6개월 동안 머물렀습니다. 러시아는 겨울이 매우 춥기 때문에 내가 추위를 견딜 수 있는지 알아보려고 그곳에 11에 갔지요.” 그는 그해 겨울을 그곳에서 지내고 일본으로 돌아온 후, 이번에는 러시아로 완전히 이주하기 위해 아주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돈을 모았습니다.

히루와 스베틀라나

히루는 러시아로 이주한 지 이제 12이 되었으며, 그동안 몇몇 회중에서 봉사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회중 전도인이 100이 넘는데 장로가 히루 혼자뿐인 때도 있었습니다. 한 회중에서는 매주 봉사회 프로의 대부분과 신권 전도 학교와 「파수대」 연구를 사회하고 그에 더해 회중 서적 연구를 다섯 번이나 사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양 치는 방문도 많이 했습니다. 그때를 돌아보며 히루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자매이 영적으로 강해지도록 도울 수 있어서 정말 기뻤습니다.” 히루는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면서 어떤 유익을 얻었습니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러시아에 오기 전에도 장로와 파이오니아로 봉사했지만 이곳에 오고 나서 여호와와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여호와를 더욱더 신뢰하는 법을 배웠지요.” 2005에 히루는 스베틀라나와 결혼했으며, 아내와 함께 계속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고 있습니다.

마이클과 올가 부부와 마리나와 매슈 부부

34매슈와 28의 남동생 마이클캐나다 출신입니다. 러시아를 방문한 두 사람은 집회에 참석하는 관심자는 많은데 집회를 사회할 형제은 거의 없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매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방문한 회중은 참석자가 200에 달했는데 연로한 장로 한 분과 젊은 봉사의 종 한 명이 모든 집회를 사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을 보니 러시아로 가서 형제을 돕고 싶어졌지요.” 매슈는 2002에 러시아로 이주했습니다.

4년 뒤에 마이클도 러시아로 이주했는데, 그곳에는 여전히 형제이 많이 필요했습니다. 그는 봉사의 종으로서 회계와 서적과 구역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보통은 회중 서기가 하는 일도 맡게 되었고, 공개 강연을 했으며, 대회를 조직하고 왕국회관을 건축하는 일도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지금도 여러 회중에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현재 장로로 섬기고 있는 마이클은 여러 가지 임명을 수행하느라 바쁘게 지냅니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을 돕는 일이 정말 만족스럽습니다.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생활은 없지요!”

러시아에서 봉사하면서 매슈마리나와, 마이클올가와 결혼했습니다. 기꺼이 자원하여 일하는 다른 많은 형제 자매과 함께 두 부부는 점점 커져 가는 회중을 계속 돕고 있습니다.

열심 있는 자매이 수확 활동을 돕다

타티야나

타티야나가 16이던 1994에, 체코 공화국과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에서 온 6의 특별 파이오니아가 타티야나가 속해 있던 우크라이나의 회중에서 봉사하기 시작했습니다. 타티야나는 그 파이오니아에 대해 흐뭇한 기억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열심 있는 그 파이오니아은 다가가기 쉽고 친절했어요. 또 성경도 잘 알았지요.” 그는 여호와께서 그의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축복하시는 것을 보고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 파이오니아의 본을 보고 격려를 받은 타티야나는 방학 기간에 다른 사람과 함께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로 가서 증인이 전파한 적이 없는 격지 구역에서 봉사하곤 했습니다. 그는 그런 전파 여행이 정말 즐거웠기 때문에, 러시아로 이주하여 봉사를 확장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먼저 러시아로 가서 잠시 머물면서 외국에서 그곳으로 이주한 한 자매를 만나 보았고, 그곳에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며 할 수 있는 일거리가 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결국 2000에는 러시아로 이주했습니다. 그렇게 하기가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타티야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혼자 살 아파트를 구할 형편이 안 돼서 남의 집에 셋방을 얻어야 했어요. 생활하기가 불편했지요.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요.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내가 이 봉사를 계속하는 것이 유익한 이유를 깨닫도록 늘 도와주셨습니다.” 현재 타티야나는 러시아에서 선교인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고국을 떠나 여러 해를 지내면서 정말 값진 경험을 했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지요. 무엇보다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마사코

현재 50대 초반일본 출신마사코는 선교인으로 봉사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지만 건강 문제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건강이 좀 좋아지자 러시아로 이주해서 그곳의 수확 활동을 돕기로 결정했습니다. 적당한 집과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지만, 마사코는 일본어를 가르치고 청소 일을 하면서 파이오니아 봉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가 봉사를 계속하는 데 무엇이 도움이 되었습니까?

마사코는 러시아에서 봉사한 지난 14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말합니다. “봉사하면서 어려움도 있지만 기쁨이 훨씬 더 크지요. 왕국 전도인이 많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면 활기차고 흥미진진한 삶을 살 수 있어요.” 마사코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그동안 여호와께서 저에게 옷과 음식과 지낼 곳을 마련해 주시는 걸 직접 체험할 수 있었던 건 정말 기적이었어요.” 마사코는 도움이 필요한 러시아의 일부 지역에서뿐 아니라 키르기스스탄에서도 수확 활동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영어, 중국어, 위구르어 집단을 돕기도 했습니다. 현재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봉사하며 축복을 받다

인가와 미하일

경제가 침체되면서 사람은 형편이 나아지기를 바라며 가족과 함께 다른 나라로 이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고대의 아브라함과 사라처럼, 영적인 목표를 추구하려고 외국으로 이주하는 가족도 있습니다. (창세 12:1-9) 미하일인가 부부는 2003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 이주했습니다. 그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성경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미하일은 이렇게 말합니다. “한은 증인이 전혀 전파한 적이 없는 곳에서 봉사했습니다. 한 연로한 남자 분이 문을 열더니 ‘전도하러 왔나요?’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그렇다고 하자 ‘언젠가 올 줄 알았어요. 예수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 리가 없죠’ 하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마태복음 24:14을 인용해서 말하더군요.” 미하일은 이렇게 덧붙입니다. “또 그 지역에서 10명 정도 되는 침례교인 여자을 만났는데, 다들 진리를 갈망하는 진실한 사람이었어요. 그은 「영원히 살 수 있다」 책을 갖고 있었고, 주말마다 함께 그 책으로 성경을 공부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여러 시간 동안 그의 질문에 대답해 주고 함께 왕국 노래를 부르고 저녁도 같이 먹었습니다. 그 일은 지금까지도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미하일과 인가는 왕국 전도인이 많이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면서 여호와와 더 가까워졌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졌으며,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그은 순회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옥사나, 알렉세이, 유리

현재 30대 중반유리옥사나 부부우크라이나에 살던 때인 2007에 아들 알렉세이(현재 13세)와 함께 러시아 지부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그은 임명되지 않은 구역이 매우 많은 러시아 전국 지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옥사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 지도를 보니 왕국 전파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어요. 그 일이 러시아로 이주하기로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었지요.” 그 밖에 도움이 된 것이 또 있습니까? 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외국 밭에서 봉사할 수 있는가?’와 같은 출판물의 기사이 도움이 되었습니다. * 우리는 지부에서 우리에게 이주하도록 제안해 준 지역을 방문해서 집과 일자리를 찾아 보았죠.” 그은 2008에 러시아로 이주했습니다.

처음에는 일자리를 찾기가 어려웠으며, 이 집 저 집으로 여러 차례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유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낙담하지 않게 도와 달라고 자주 기도드렸어요. 그리고 여호와께서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면서 계속 봉사했지요. 우리가 왕국 권익을 첫째로 둘 때 여호와께서 우리를 어떻게 돌보시는지 체험했습니다. 이 봉사 덕분에 우리 가족이 영적으로 더 강해지고 서로 더 가까워졌어요.” (마태 6:22, 33) 그러면 어린 알렉세이는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면서 어떤 영향을 받았습니까? 옥사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들은 아홉 살에 여호와께 헌신하고 침례를 받았어요. 그리고 왕국 전파자가 많이 필요하다는 걸 아니까 방학 때마다 보조 파이오니아 봉사를 하지요. 봉사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아들을 보면 마음이 정말 흐뭇합니다.” 현재 유리와 옥사나는 특별 파이오니아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후회”

수확 활동에 참여해 온 이 봉사자의 말을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듯이, 봉사를 확장하기 위해 다른 곳으로 이주하려면 여호와를 온전히 신뢰해야 합니다. 사실, 도움이 더 필요한 곳에서 봉사하는 사람은 새로운 구역에서 어려움도 겪지만, 왕국의 좋은 소식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며 큰 기쁨도 맛봅니다. 당신도 왕국 전도인이 여전히 많이 필요한 곳에서 수확 활동을 지원할 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기로 결정한다면 유리의 말에 공감하게 될 것입니다. 유리는 도움이 더 필요한 구역에서 봉사하기로 한 자신의 결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가지 후회가 있다면, 좀 더 일찍 시작하지 못했다는 것뿐이지요.”

^ 20항 「파수대」 1999년 10월 15일호 23-27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