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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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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연구용) 2013년  3월

여호와—우리의 안식처

여호와—우리의 안식처

“오 여호와여, 당신은 대대에 걸쳐서 우리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습니다.”—시 90:1.

1, 2. 하느님의 종들은 이 세상 제도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지며, 그들에게는 어떠한 안식처가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편안한 안식처와 같다고 느껴집니까? 그렇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당신 혼자만의 느낌이 아닙니다! 예로부터, 여호와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들이 이 세상 제도에서 나그네나 외국인과 같다고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가나안 땅에서 이리저리 옮겨 다녀야 했던 하느님의 충실한 숭배자들은 “자기들이 ··· 나그네와 임시 거주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히브리 11:13.

2 그와 마찬가지로, ‘하늘에 시민권이 있는’ 그리스도의 기름부음받은 제자들은 현 세상 제도에서 자신들을 “외국인과 임시 거주자”로 여깁니다. (빌립보 3:20; 베드로 첫째 2:11) 그리스도의 “다른 양들”도 “세상의 일부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세상의 일부가 아닌 것처럼” 말입니다. (요한 10:16; 17:16) 그렇지만 하느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처”가 있습니다. 우리가 보호를 받는 그 안식처는 믿음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것으로서, 가장 안전하고 사랑이 넘치는 안식처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썼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대대에 걸쳐서 우리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습니다.” * (시 90:1) 여호와께서는 고대에 어떻게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습니까? 그분은 오늘날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지닌 백성에게 “참된 처소”가 되십니까? 그리고 미래에는 어떻게 하나밖에 없는 안전한 처소가 되실 것입니까?

여호와께서는 고대 종들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다

3. 시편 90:1에는 어떤 원관념과 보조 관념과 유사점이 나옵니까?

3 성서에 나오는 많은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시편 90:1에도 원관념과 보조 관념과 유사점이 있습니다. 원관념은 여호와입니다. 보조 관념은 처소 즉 안식처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여러 면으로 안식처와 유사하십니다. 일례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보호를 베푸십니다. 그분은 사랑의 구현체이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첫째 4:8) 그분은 또한 평화의 하느님이시며,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이 “안전하게 살게” 하시는 분입니다. (시 4:8) 예를 들어 그분이 아브라함을 비롯한 충실한 족장들을 어떻게 대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4, 5.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아브라함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습니까?

4 여호와께서 당시에 아브람이라고 불린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와 네 친족[을] ···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느낌이 어떠했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조금이라도 염려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여호와께서 이어서 하신 이러한 말씀을 듣고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내가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고 너를 축복하여, 너의 이름을 크게 하겠다. ··· 나는 너를 축복하는 자들을 축복하고, 너에게 악담하는 자를 저주할 것이다.”—창세 12:1-3.

5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말씀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안전한 처소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창세 26:1-6) 그분은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이집트의 파라오와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범하고 아브라함을 죽이지 못하게 막으셨습니다. 그분은 이삭과 리브가도 그와 비슷한 방법으로 보호하셨습니다. (창세 12:14-20; 20:1-14; 26:6-11) 성서 기록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떤 사람도 그들에게서 속여 빼앗지 못하게 하시고, 도리어 그들 때문에 왕들을 책망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의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건드리지 말며, 나의 예언자들에게 아무런 악도 행하지 마라’ 하셨다.”—시 105:14, 15.

‘내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6. 이삭은 야곱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했으며, 야곱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모릅니까?

6 그 예언자들 가운데에는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도 있었습니다. 야곱이 아내를 얻을 때가 되자, 그의 아버지 이삭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가나안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얻어서는 안 된다. 일어나서 밧단-아람으로, 네 어머니의 아버지 브두엘의 집으로 가서, 거기서 ··· 라반의 딸들 중에서 네 아내를 얻어라.” (창세 28:1, 2) 야곱은 즉시 이삭의 말을 따랐습니다. 그는 가나안에 사는 가족의 품을 떠나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하란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아마도 혼자서 길을 떠났을 것입니다. (창세 28:10) 그는 이런 생각이 들었을지 모릅니다. ‘얼마나 먼 길을 가야 할까? 외삼촌이 나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실까? 나에게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아내를 주실까?’ 야곱이 그러한 점을 염려했다면, 브엘-세바에서 약 100킬로미터 떨어진 루스에 이르렀을 때 그러한 염려가 사라졌을 것입니다. 루스에서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7. 하느님께서는 꿈을 통해 어떻게 야곱을 안심시켜 주셨습니까?

7 루스에서 여호와께서는 꿈에 야곱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가는 모든 길에서 너를 지켜 주고 너를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하겠다. 내가 너에게 말한 것을 실제로 행할 때까지 가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 28:15) 야곱은 이 친절한 말씀을 듣고 정말 안심이 되고 큰 위로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 후 그는 하느님의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기대하면서 힘차게 발걸음을 옮겼을 것입니다. 외국에서 봉사하려고 집을 떠나 본 사람이라면 야곱이 느꼈을 복잡한 감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 여러 면으로 여호와의 돌보심을 경험해 왔을 것입니다.

8, 9.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야곱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으며, 우리는 이 사실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8 야곱이 하란에 이르렀을 때, 외삼촌 라반은 그를 따뜻하게 맞이했으며 나중에 그에게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후 라반은 야곱의 삯을 열 번이나 바꾸면서 그를 착취하려고 했습니다! (창세 31:41, 42) 그런데도 야곱은 여호와께서 자신을 계속 돌봐 주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그러한 부당한 대우를 견뎌 냈으며, 여호와께서는 실제로 그를 돌봐 주셨습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족장 야곱에게 가나안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실 무렵 그는 “큰 가축 떼와 하녀들과 하인들과 낙타들과 나귀들”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창세 30:43) 야곱은 깊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당신의 종에게 나타내신 모든 사랑의 친절과 모든 충실함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저는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르단을 건넜는데, 이제는 두 진영이 되었습니다.”—창세 32:10.

9 이러한 예들을 보면 다음과 같은 모세의 기도가 정말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은 대대에 걸쳐서 우리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셨습니다.” (시 90:1) 이 말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림자의 회전으로 말미암은 변화도 없”으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종들에게 계속 따뜻하고 안전한 처소가 되어 주십니다. (야고보 1:17) 어떻게 그러한지 살펴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오늘날 우리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신다

10. 여호와께서 계속 자신의 종들에게 안전한 처소가 되어 주신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법정에서 당신이 어느 국제적인 범죄 조직에 대해 불리한 증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조직의 우두머리는 지능이 뛰어나고 세력이 막강하며 거짓말과 살인을 일삼는 무자비한 사람입니다. 재판이 끝나 법정을 떠날 때 당신은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안전하다고 느끼겠습니까?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보호를 요청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위해 담대하게 증언하고 그분의 악한 대적 사탄의 정체를 두려움 없이 폭로하는 여호와의 종들이 바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계시 12:17 낭독) 사탄은 하느님의 백성을 잠잠하게 할 수 있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영적으로 계속 번영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한 현상은 이렇게 설명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전히 우리의 도피처가 되시며, 특히 이 마지막 날에 우리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4:14, 17 낭독) 하지만 우리가 사탄에게 속아 넘어가 우리의 처소를 떠난다면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안전한 처소가 되실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천사들이 그분의 종들을 지원하고 보호합니다

11. 족장들에게서 어떠한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까?

11 이제 족장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또 한 가지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족장들은 가나안 땅에서 살았지만, 그 땅의 사람들과 분리된 상태를 유지했으며 그들의 악하고 부도덕한 행로를 미워했습니다. (창세 27:46) 원칙에 따라 살았던 족장들에게는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일일이 열거한 긴 목록이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와 그분의 성품에 대해 아는 것으로 충분했습니다. 그분이 그들의 처소였기 때문에, 그들은  세상과 어떻게든 가까워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가능한 한 세상과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우리에게 참으로 훌륭한 본이 되지 않습니까! 당신은 친구나 오락을 선택하는 면에서 충실한 족장들을 본받으려고 힘쓰고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그리스도인 회중 내의 일부 사람들은 적어도 어느 정도는 사탄의 세상을 편안한 안식처와 같다고 느낍니다. 조금이라도 그러한 느낌이 든다면 그 문제에 대해 기도하십시오. 이 세상은 사탄의 세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이 세상은 냉혹하고 이기적인 사탄의 영을 나타냅니다.—고린도 둘째 4:4; 에베소 2:1, 2.

12. (ㄱ)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영적 식구들에게 어떤 마련을 해 주십니까? (ㄴ) 이러한 마련들에 대해 어떻게 느낍니까?

12 사탄의 간계를 물리치려면, 여호와를 자신의 처소로 삼는 믿음의 식구를 위해 그분이 베푸시는 영적 마련들을 온전히 활용해야 합니다. 그러한 마련들 중에는 그리스도인 집회와 가족 숭배가 있으며, 우리가 생활상의 어려움과 싸울 때 우리를 위로하고 지원하도록 하느님께 임명받은 목자들인 “사람들로 된 선물”도 있습니다. (에베소 4:8-12) 오랫동안 통치체 성원으로 일한 조지 갱거스 형제는 이렇게 썼습니다.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 있을 때면 영적 낙원에서 나의 가족과 함께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낍니다.” 당신도 그렇게 느낍니까?

13. 히브리서 11:13에서 어떤 중요한 점을 배울 수 있습니까?

13 족장들에게서 본받을 만한 또 한 가지 특성은 주변 사람들과 다르게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1항에서 읽었듯이 족장들은 “자기들이 그 땅에서 나그네와 임시 거주자임을 공개적으로 선언하였습니다.” (히브리 11:13) 당신도 세상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기꺼이 나타내려고 합니까? 물론 그렇게 하기가 쉽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도움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지원을 받아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여호와를 섬기기 원하는 사람들 모두싸움을 벌이고 있습니다! (에베소 6:12) 하지만 여호와를 신뢰하고 그분을 안전한 처소로 삼는다면 그 싸움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14. 여호와의 종들이 기다린 “도시”는 무엇입니까?

14 중요한 점이 또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본받아 계속 상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4:18)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에 관해 이렇게 썼습니다. “그는 참된 기초가 있는 도시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도시를 건축하고 만드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히브리 11:10) 그 “도시”는 메시아 왕국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그 “도시”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기다릴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왕국은 지금 하늘에서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왕국이 조만간 땅을 온전히 지배하게 될 것임을 알려 주는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왕국은 당신에게 실재적입니까? 그러하다는 것을 생활 방식을 통해 나타냅니까? 자신의 생활에서 왕국을 첫째로 구하며, 이 세상에서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까?—베드로 둘째 3:11, 12 낭독.

여호와께서는 계속 우리의 “참된 처소”가 되실 것이다

15. 이 세상을 신뢰하는 사람들의 미래는 어떠할 것입니까?

15 사탄의 세상이 끝나 감에 따라 세상이 겪는 “진통”은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마태 24:7, 8) 그리고 큰 환난이 시작되면 틀림없이 삶이 더욱 힘들어질 것입니다. 사회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들이 붕괴되고,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두려워할 것입니다. (하박국 3:16, 17) 절망적인 상황에서 사람들은 비유적으로 말해 “동굴 속과 산의 바위 속에” 몸을 숨기려고 할 것입니다. (계시 6:15-17) 하지만 실제 동굴에 숨든 산 같은 정치 조직과 상업 조직에 숨든, 그들은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할 것입니다.

16. 우리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하지만 여호와의 백성은 계속해서 자신들의 “참된 처소”인 여호와 하느님 안에서 안전을 누릴 것입니다. 예언자 하박국처럼 그들도 “여호와 안에서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구원의 하느님 안에서 기뻐”할 것입니다. (하박국 3:18) 여호와께서는 그 격동의 시기에 어떻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실 것입니까? 우리는 두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러했듯이, “큰 무리”도 하느님의 지시에 유의하면서 조직된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계시 7:9. 탈출 13:18 낭독) 하느님께서 주시는 그러한 지시는 필시 회중 마련을 통해 베풀어질 것입니다. 사실 세계 전역에 있는 수많은 회중은 이사야 26:20에 예언된 보호의 “밀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낭독) 당신은 회중 집회를 소중히 여깁니까? 여호와께서 회중 마련을 통해 베푸시는 지시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입니까?—히브리 13:17.

17. 여호와께서는 사망한 충성스러운 종들에게도 어떻게 “참된 처소”가 되십니까?

17 여호와께서는 큰 환난이 시작되기 전에 죽는 충실한 사람들에게도 “참된 처소”가 되어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충실한 족장들이 죽고 나서 오랜 후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탈출 3:6) 예수께서는 그 말씀을 인용하신 다음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에게는 그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 (누가 20:38)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 보시기에는 그분에게 충실을 지키고 죽은 충성스러운 사람들이 살아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의 부활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전도 7:1.

18. 신세계에서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특별한 방법으로 자신의 백성에게 “참된 처소”가 되어 주실 것입니까?

18 이제 곧 있을 신세계에서 여호와께서는 또 다른 의미로 자신의 백성에게 “참된 처소”가 되실 것입니다. 계시록 21:3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보아라! 하느님의 천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다. 그분이 그들과 함께 거하실 것이다.” 먼저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 예수가 자신을 대표하여 통치하게 하심으로써 땅에 사는 백성들과 함께 거하실 것입니다. 천 년 끝에 가서 땅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을 다 이루신 예수께서는 왕국을 아버지께 넘겨 드릴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5:28) 그 후, 완전해진 인류에게는 예수의 중재하는 역할이 더는 필요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전망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그때까지 고대의 충실한 사람들을 본받아 여호와를 우리의 “참된 처소”로 삼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 2항 「성경」(가톨릭판)에는 시편 90:1이 이렇게 번역되어 있다. “주님, 당신께서는 대대로 저희에게 안식처가 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