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바로 가기

하위 메뉴 바로 가기

목차 바로 가기

여호와의 증인

한국어

파수대—연구용  |  2013년  3월

여호와의 크신 이름에 영예를 돌리십시오

여호와의 크신 이름에 영예를 돌리십시오

“내가 ··· 한정 없는 때까지 당신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겠습니다.”—시 86:12.

1, 2.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과는 달리 여호와의 증인은 하느님의 이름을 어떻게 여깁니까?

그리스도교국의 교회들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멀리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개역 표준역」(Revised Standard Version) 성서의 서문에는 이러한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유일하신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사용하는 일은 ··· 그리스도교 교회의 보편화된 믿음에 전적으로 부적절하다.”

2 반면에 여호와의 증인은 하느님의 이름을 지니고 그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시 86:12; 이사야 43:10 낭독) 또한 우리는 그 이름의 의미를 이해하고 그 이름이 거룩해지는 일이 관련된 우주적 쟁점을 이해하는 것을 특권으로 여깁니다. (마태 6:9) 하지만 그 특권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결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이제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질문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의 크신 이름에 합당하게 행동해 오셨으며 그리하여 그 이름에 영광을 더해 오셨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걸을 수 있습니까?

하느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하느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3 하느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에는 단지 “여호와”라는 단어를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이름을 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어떤 하느님이신지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거기에는 성서에서 밝혀 주는 그분의 특성들과 목적 그리고 활동들, 특히 그분이 자신의 종들을 어떻게 대해 오셨는지를 아는 것이 포함됩니다. 물론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어 가시면서 점진적으로 그러한 점들을 밝혀 주십니다. (잠언 4:18) 여호와께서는 첫 인간 부부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카인을 낳은 후 그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창세 4:1) 충실한 족장들인 노아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하느님의 이름을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고 돌보시고 그들에게 자신의 목적의 여러 부면을 알려 주심에 따라  그들은 그 이름에 대해 더 큰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 특별한 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이름의 의미를 알게 되자 믿음이 강화되었습니다

4. 모세는 왜 하느님께 그분의 이름에 대해 여쭈었으며, 모세가 그 점에 관심을 가질 만도 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4 탈출 3:10-15 낭독. 모세가 80세였을 때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이러한 막중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는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너라.” 그러자 모세는 존경심을 가지고 매우 의미 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모세는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오랫동안 알려져 있었는데, 모세가 그렇게 질문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분명 모세는 여호와께서 어떠한 하느님이신지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느님의 백성에게 그분이 그들을 정말로 구출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해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모세는 그 점에 관심을 가질 만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오랫동안 노예 생활을 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기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구출하실 있는지 궁금했을 것입니다. 사실 일부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습니다!—에스겔 20:7, 8.

5.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어떻게 자신의 이름의 의미를 한층 더 밝혀 주셨습니까?

5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될 것이다”라는 분이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 뒤이어 그분은 또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의 하느님 ··· 여호와께서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되실 것이며 자신의 약속을 언제나 지키실 것임을 밝히신 것입니다. 따라서 15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한정 없는 때까지 나의 이름이며, 또 이것은 대대로 나의 기념이다.” 이러한 말씀을 들은 모세는 경외심에 휩싸였을 것이며 믿음이 크게 강화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에 합당하게 행동하셨다

6, 7.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자신의 크신 이름에 온전히 합당하게 행동하셨습니까?

6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사명을 주신 후 얼마 안 있어 이스라엘의 구출자가 ‘되심’으로 자신의 이름에 온전히 합당하게 행동하셨습니다. 그분은 이집트에 파괴적인 열 가지 재앙을 내리셔서 파라오와 이집트의 신들이 무력하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주셨습니다. (탈출 12:12) 뒤이어 여호와께서는 홍해를 갈라서 이스라엘이 그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시고 파라오와 그의 군대를 수장시키셨습니다. (시 136:13-15) 또한 “크고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광야”에서 아마도 이삼백만 명 이상 되었을 자신의 백성에게 식품과 물을 공급하심으로 생명의 보존자가 되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옷과 샌들이 해어지지 않게 해 주셨습니다. (신명 1:19; 29:5) 그렇습니다. 그 어떤 것도 여호와께서 자신의 비길 데 없는 이름에 합당하게 행동하시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후에 그분은 이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나는 여호와이다. 나 외에 구원자가 없다.”—이사야 43:11.

7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도 여호와께서 이집트와 광야에서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일을 행하시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는 말년에 확신을 가지고 동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하느님 여호와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모든 선한 말씀 중에서 한 말씀도 어긋남이 없었다는 것을 여러분의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모두 여러분에게 이루어졌습니다. 그중에 한 말씀도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여호수아 23:14)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는 틀림없이 자신의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되셨’던 것입니다.

8. 여호와께서는 우리 시대에 어떻게 자신의 이름에 합당하게 행동하고 계십니까?

8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는 필요에 따라 무엇이든 ‘되고’ 계십니다. 그분은 왕국 소식이 마지막 날 기간에 “사람이 거주하는 온 땅에” 전파될 것이라고 아들을 통해 예언하셨습니다. (마태 24:14) 전능하신 하느님 외에 또 누가 그러한 일을 예언할 수 있겠으며, 그 일이 이루어지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분은 대개 “배우지 못한 보통 사람들”을 사용하여 그 일을 이루고 계십니다. (사도 4:13) 따라서 전파하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사실상 성서 예언의 성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께 영예를 돌리며, 우리가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릴 때 진심으로 기도하는 것임을 나타내게 됩니다. “당신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하십시오. 당신의 왕국이 오게 하십시오. 당신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마태 6:9, 10.

그분의 이름은 크시다

파라오는 여호와를 하느님으로 인정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9, 10.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대하시면서 어떻게 계속해서 자신의 이름에 의미를 더하셨으며, 어떤 결과가 있었습니까?

9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어 여호와께서는 자신에 대해 그들에게 새로운 점을 밝혀 주셨습니다. 그분은 율법 계약을 통해 그들의 “남편인 소유자”가 되셨고 그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기꺼이 떠맡으셨습니다. (예레미야 3:14)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비유적인 의미로 그분의 아내 즉 그분의 이름을 지닌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54:5, 6) 그들이 그분께 기꺼이 복종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한 그분은 완벽한 “남편”이 되실 것이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을 축복하고 지켜 주고 그들에게 평화를 주실 것이었습니다. (민수 6:22-27) 그렇게 되면 여호와의 크신 이름이 나라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었습니다.  (신명 4:5-8; 시 86:7-10 낭독) 실제로 이스라엘 역사 전체에 걸쳐 많은 외국인이 참숭배를 선택했습니다. 그들은 모압 여자 룻이 나오미에게 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셈입니다. “어머니의 백성이 저의 백성이 될 것이며, 어머니의 하느님이 저의 하느님이 되실 것입니다.”—룻 1:16.

10 약 1500년 동안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대하시면서 자신의 성품의 여러 부면을 새로 밝혀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거듭거듭 불순종했지만 여호와께서는 ‘자비롭고 분노하기를 더디 하는 하느님’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분은 매우 오래 참는 하느님이셨습니다. (탈출 34:5-7) 그렇지만 여호와께서 참으시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유대 민족이 그분의 아들을 배척하고 죽였을 때 그 참으심이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마태 23:37, 38) 육적 이스라엘 자손은 더는 하느님의 이름을 지닌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말라 버린 나무처럼 영적으로 죽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누가 23:31) 그로 인해 그들은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게 되었습니까?

11. 하느님의 이름은 어떻게 유대 민족으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습니까?

11 역사를 보면 시간이 흐르면서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 미신적인 태도를 갖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 이름을 발음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탈출 20:7) 하느님의 이름은 유대교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이 그렇게 불경스럽게 취급되는 것을 보시고 분명 마음이 아프셨을 것입니다. (시 78:40, 41) 하지만 “그 이름이 ‘질투’”인 하느님께서는 자신을 부인한 백성에게 자신의 이름을 영원히 두지는 않으셨습니다. 그분도 그들을 부인하셨던 것입니다. (탈출 34:14) 이 사실은 우리에게 창조주의 이름에 깊은 존경심을 나타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새로운 백성

12. 여호와께서는 예언대로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는 백성을 어떻게 산출하셨습니까?

12 예레미야를 통해, 여호와께서는 새로운 나라 즉 영적 이스라엘과 “새 계약”을 맺으려는 자신의 목적을 밝히셨습니다. 그 나라의 성원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 모두 [여호와]를 알 것”이라고 예레미야는 예언했습니다. (예레미야 31:31, 33, 34) 이 예언은 기원 33년 오순절에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는 새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유대인과 비유대인을 포함하는 새로운 나라 즉 “하느님의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이름을 위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내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갈라디아 6:16. 사도 15:14-17 낭독. 마태 21:43.

13. (ㄱ)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했습니까? 설명해 보십시오. (ㄴ) 당신은 봉사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을 어떻게 여깁니까?

13 그 영적 나라의 성원들은 “[하느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들”로서 그분의 이름을 사용했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을 인용할 때 틀림없이 그렇게 했습니다. *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기원 33년 오순절에 여러 나라에서 온 유대인과 개종자들에게 연설할 때 하느님의 이름을 여러 번 사용했습니다. (사도 2:14, 20, 21, 25, 34)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 영예를 돌렸으며, 그분은 그들이 전파 활동에서 기울이는 노력을 축복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선포하고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가능하면 그들의 성서로 그 이름을 보여 줄 때 우리의 봉사를 축복하십니다. 그런 방법으로 우리는 그들에게 참하느님을 소개합니다. 그 일은 우리에게 큰 특권이며 그들에게도 큰 유익을 가져다줍니다! 그 일을 통해 여호와를 알게 된 일부 사람들이 그분과 훌륭한 관계를 맺게 되며 그 관계는 점점 더 강해지고 영원히 지속될 수 있습니다.

14, 15. 배교가 널리 퍼졌는데도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기념 이름에 대해 어떻게 해 오셨습니까?

14 후에, 특히 사도들이 죽고 나서 배교가 일어나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을 부패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데살로니가 둘째 2:3-7) 거짓 선생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지 않는 유대교 전통을 받아들이기까지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기념 이름이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셨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현재 그 이름의 정확한 발음은 알 수 없지만, 그 이름은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에 걸쳐 그 이름은 여러 성서 번역판과 성서 학자들의 저술물에 사용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1757년에 찰스 피터스는 하느님을 가리키는 여러 칭호와는 달리 “여호와”가 “그분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 같다”라고 썼습니다. 1797년에 발행된 하느님에 대한 숭배를 다루는 책 제7장 서두에서 홉턴 하이너스는 “유대인들 가운데서 사용된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 여호와, 유대인들이 숭배한 유일한 분,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도 숭배한 분”이라고 썼습니다. 헨리 그루(1781-1862년)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이 모독을 당해 왔고 거룩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찰스 T. 러셀의 가까운 동료였던 조지 스토스(1796-1879년)도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했고, 러셀도 그러했습니다.

15 1931년은 특히 주목할 만한 해였습니다. 당시 만국 성경 연구생이라고 불린 하느님의 백성은 바로 그해에 성경에 근거한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명칭을 채택했습니다. (이사야 43:10-12) 그렇게 하여 그들은 자신들이 유일하신 참하느님의 종들이며 그분의 이름을 찬양하는 그 “이름을 위한 백성”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사실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사도 15:14) 그러한 일은 말라기 1:11에 나오는 여호와의 이러한 말씀을 생각나게 합니다.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크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걸으십시오

16. 우리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걷는 것을 어떻게 여겨야 합니까?

16 예언자 미가는 이렇게 썼습니다. “모든 민족은 저마다 자기 신의 이름으로 걸을 것이나, 우리는 한정 없는 때까지, 아니, 영원히 우리 하느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걸을 것이다.” (미가 4:5) 여호와께서 성경 연구생들이 그분의 이름을 지니게 하신 것은 그들에게 단지 영예롭기만 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일을 통해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하느님의 승인을 받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말라기 3:16-18 낭독) 당신도 개인적으로 그렇게 느낍니까? 당신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걷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까? 그 이름으로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습니까?

17. 하느님의 이름으로 걸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7 하느님의 이름으로 걸으려면 적어도 세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첫째로, 사람들에게 그 이름을 선포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로마 10:13) 둘째로, 여호와의 특성들 특히 그분의 사랑을 본받아야 합니다. (요한 첫째 4:8) 셋째로, 그분의 의로운 표준을 기꺼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 아버지의 거룩한 이름에 모독을 돌리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요한 첫째 5:3) 당신은 “영원히 우리 하느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걷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까?

18. 여호와의 크신 이름에 영예를 돌리는 사람들 모두가 확신을 가지고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여호와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사람들은 모두 조만간 그분이 누구인지를 어쩔 수 없이 알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 38:23) 그들은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내가 그의 목소리에 순종해야 하느냐?’ 하고 말한 파라오처럼 될 것입니다. 파라오는 얼마 안 있어 여호와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탈출 5:1, 2; 9:16; 12:29) 하지만 우리는 여호와를 자발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지니고 그분께 순종하는 백성이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편 9:10에 기록된 이러한 약속을 확신하면서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 당신을 신뢰하리니, 오 여호와여, 당신은 당신을 찾는 이들을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 5항 하느님의 이름은 “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의 한 형태이다. 그러므로 “여호와”란 “그분은 되게 하신다”를 의미한다.—「신세계역 성경」 부록 1, 첫 번째 항 참조.

^ 13항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사용한 히브리어 본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된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 있었다. 증거를 살펴보면 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한 「칠십인역」의 초기 사본들에도 그 이름이 들어 있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