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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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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연구용) 2013년  3월

당신은 여호와를 “아는 마음”이 있습니까?

당신은 여호와를 “아는 마음”이 있습니까?

“내가 그들에게 나를, 곧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아는 마음을 주겠다. 그래서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미야 24:7.

1, 2. 무화과에 관심을 갖게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무화과를 즐겨 먹습니까? 많은 사람이 무화과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러 지역에서 무화과나무를 재배합니다. 고대 유대인들은 이 나무의 열매를 가치 있게 여겼습니다. (나훔 3:12; 누가 13:6-9) 섬유질과 항산화 물질과 미네랄이 들어 있어서 무화과가 심장에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2 여호와께서는 무화과를 심장 즉 마음과 연관 지어 언급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무화과가 영양학적으로 어떤 유익이 있는지를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비유적인 의미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분이 예언자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이제 그분의 말씀을 살펴보면서 그 말씀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3. 예레미야 24장에 언급된 무화과들은 무엇을 상징했습니까?

3 먼저 예레미야 시대에 하느님께서 무화과에 대해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기원전 617년에 유다 나라는 영적인 상태가 나빴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두 가지 무화과, 다시 말해 “매우 좋”은 무화과와 “매우 나쁜” 무화과에 대한 환상을 통해 미래에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를 알려 주셨습니다. (예레미야 24:1-3 낭독) 나쁜 무화과는 느부갓네살 왕과 그의 군대에 의해 비참한 일을 당하게 될 시드기야 왕과 그 밖의 사람들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이미 바빌론에 있던 에스겔,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 그리고 그곳으로 곧 사로잡혀 갈 유대인들 중 일부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좋은 무화과와 같았습니다. 그들 중 남은 자들은 고국으로 돌아와 예루살렘과 그 성전을 재건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후에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예레미야 24:8-10; 25:11, 12; 29:10.

4. 좋은 무화과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떻게 격려가 됩니까?

4 여호와께서는 좋은 무화과로 상징된 사람들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그들에게 나를, 곧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아는 마음을 주겠다. 그래서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예레미야 24:7) 이 기사의 주제 성구인 이 말씀은 우리에게  참으로 격려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개개인에게 그분을 “아는 마음”을 기꺼이 주십니다. 이 경우에 “마음”은 사람의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분명 당신은 하느님을 “아는 마음”을 갖고 그분의 백성에 속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려면 그분의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일, 회개하고 돌이키는 일, 하느님께 헌신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받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마태 28:19, 20; 사도 3:19) 당신은 이러한 단계들을 이미 밟았거나, 여호와의 증인과 정기적으로 연합하면서 그 단계들을 밟아 가고 있을지 모릅니다.

5. 예레미야는 주로 누구의 마음에 대해 기록했습니까?

5 그 단계들을 밟아 가고 있든 이미 다 밟았든, 우리는 여전히 자신의 태도와 행동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마음에 관해 예레미야가 쓴 또 다른 내용을 보면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서는 일부 장들에서 주변 나라들에 관한 소식을 전하지만, 주로 다섯 왕의 통치 기간의 유다 나라에 초점을 맞춥니다. (예레미야 1:15, 16) 그렇습니다. 예레미야는 주로 여호와께 헌신한 백성에 속한 성인 남녀와 어린이에 대해 기록했습니다. 그들의 조상은 하느님과 그러한 관계를 맺는 나라가 되기를 자발적으로 선택했습니다. (탈출 19:3-8) 그리고 예레미야 시대에 그 백성은 자신들이 하느님께 헌신했음을 또다시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당신에게 왔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은 우리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22) 하지만 그들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비유적인 심장 수술을 받아야 했다

6. 우리가 마음에 관한 하느님의 말씀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오늘날 의사들은 첨단 장비를 사용하여 심장의 상태와 기능을 알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 시대에 그러하셨듯이 우리의 심장을 훨씬 더 잘 아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비길 데 없이 뛰어난 자격을 갖추신 분이라는 사실을 이러한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더 믿을 수 없고 무모하다. 누가 그것을 알 수 있겠는가?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고 ··· 각자에게 그 길에 따라, 그 행위의 열매에 따라 갚아 준다.” (예레미야 17:9, 10) 여기서 그분이 “심장을 살피”신다는 말씀은, 70년 내지 80년 동안 30억 번가량 뛰는 실제 심장을 의학적으로 검사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비유적인 심장인 마음에 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심장” 즉 마음은 사람의 욕망, 생각, 성향, 태도, 목표를 포함한 속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우리 각자에게는 바로 그러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음을 검사하실 수 있으며, 우리 각자도 자신의 마음을 어느 정도 검사할 수 있습니다.

7. 예레미야는 당시 대부분의 유대인들의 마음 상태를 어떻게 묘사했습니까?

7 우리는 그러한 검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시대에 대부분의 유대인의 마음 상태는 어떠했는가?’ 대답을 얻기 위해 “이스라엘 온 집이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예레미야의 독특한 표현을 생각해 보십시오.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예레미야는 유대인 남자들이 누구나 받아야 했던 할례에 관해 말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라! 날이 오고 있다.’ 여호와의 말씀이다. ‘할례를 받았으나 아직도 무할례 상태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에게 내가 책임을 묻겠[다.]’” (예레미야 9:25, 26) 이 말씀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8, 9.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마음에 대해 어떻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8 하느님께서 유대인들에게 하신 다음과 같은 권고를 보면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희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 너희 마음의 포피를 없애 버려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 행위의 악함 때문나의 격노가 [나갈 것이다.]” 그들의 악한 행위는 어디에서 나온 것입니까? 그들의 내면 즉 마음속에서 나온 것입니다. (마가 7:20-23 낭독)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유대인의 악한 행위가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하셨으며, 그 결과를 예레미야를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고집이 세고 반역적이었습니다. 그들의 동기와 생각은 그분을 불쾌하시게 했습니다. (예레미야 5:23, 24; 7:24-26 낭독)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 할례를 받아 여호와에게 속하고, 너희 마음의 포피를 없애 버려라.”—예레미야 4:4; 18:11, 12.

9 그러므로 예레미야 시대의 유대인들은 비유적인 심장 수술 즉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했습니다. 모세 시대의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과 같습니다. (신명 10:16; 30:6) “마음의 포피를 없애” 버린다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둔감하게 만드는 것, 다시 말해 하느님의 명령을 거스르게 만드는 그들 자신의 생각이나 애정 또는 동기를 제거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사도 7:51.

오늘날 그분을 “아는 마음”을 가지려면

10. 다윗을 본받아 우리도 어떻게 하기를 원해야 합니까?

10 하느님께서 우리가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은 정말 감사할 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늘날 여호와의 증인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회중에 있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과거의 많은 유대인처럼 악하게 행하는 “나쁜 무화과”가 아닙니다. 오늘날 하느님의 종들은 하느님을 충실하게 섬기는 깨끗한 백성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여호와께 이러한 간청을 했다는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오 하느님, 나를 살피시고 내 마음을 알아 주십시오. 나를 조사하셔서 내 불안한 생각을 알아 주시고, 내 속에 고통을 주는 길이 있는지 보[십시오.]”—시 17:3; 139:23, 24.

11, 12. (ㄱ) 우리 각자는 왜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까? (ㄴ)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하지 않으실 것입니까?

11 여호와께서는 우리 각자가 그분에게 받아들여질 만한 상태에 이르고 그러한 상태를 계속 유지하기를 원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의로운 사람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만군의 여호와여, 당신은 의로운 사람을 살피시며, 신장과 심장을 보십니다.” (예레미야 20:12) 전능자께서 의로운 사람의 마음도 살피신다면 우리 모두가 자신을 정직하게 검사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시 11:5 낭독)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그릇된 태도나 목표나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을 둔감하게 만드는 것 즉 비유적인 “마음의 포피”를 식별하게 되어, 그것을 없애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비유적인 심장 수술입니다. 당신이 자신의 마음을 살핀다면 어떤 문제를 보게 될 수 있습니까? 그리고 어떻게 필요한 조정을 할 수 있습니까?—예레미야 4:4.

12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강제로 변화시키지는 않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분은 “좋은 무화과”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분을 아는 마음을 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마음을 강제로 변화시키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하느님을 알고 싶어 하는 민감한 마음을 갖기 원해야 했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마음을 살펴 부당한 욕망을 바로잡으면 축복을 얻게 됩니다

13, 14. 마음속에 있는 것이 어떻게 그 사람에게 해를 줄 수 있습니까?

13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추리,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 증언, 모독입니다.” (마태 15:19) 만일 어떤 형제가 마음이 둔감하여 간음이나 음행을  범하고 나서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은혜를 영구적으로 잃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잘못을 범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속에 부당한 욕망이 자라게 내버려 두는 경우가 있을지 모릅니다. (마태 5:27, 28 낭독) 그러한 욕망이 마음속에 있는지 개인적으로 살펴본다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자세히 살펴볼 때 이성에 대한 부당한 감정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까? 하느님께서 승인하지 않으실 그런 은밀한 욕망은 없애 버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14 또는 어떤 형제가 실제로 “살인”을 범하지는 않아도 마음속에 동료 그리스도인에 대한 분개심을 키워 그를 미워할 정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레위 19:17) 마음을 둔감하게 만들 수 있는 그러한 감정이 있다면 없애 버리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겠습니까?—마태 5:21, 22.

15, 16. (ㄱ)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마음에 할례받지 않”은 상태가 될 수 있는지 예를 들어 보십시오. (ㄴ) ‘할례받지 않은 마음’이 왜 여호와를 불쾌하시게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15 다행스럽게도 대부분의 그리스도인은 그러한 ‘심장병’이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악한 추리”도 언급하셨습니다. 그에 해당하는 잘못된 견해나 태도는 생활의 여러 부면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친족에 대한 왜곡된 충성심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이 “마지막 날”에 “본연의 애정”이 없는 많은 사람과는 달리 친족에 대한 애정을 갖기를 원합니다. (디모데 둘째 3:1, 3) 하지만 그러한 애정을 나타내는 면에서 극단으로 흐르게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느낍니다. 따라서 친족이 다른 사람 때문에 화가 나 있으면 자신도 속상해서 어떻게든 친족을 감싸거나 편들지 모릅니다. 디나의 오라비들이 그러한 강한 감정 때문에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창세 34:13, 25-30) 그리고 압살롬이 마음속에 어떤 감정을 품어 이복형인 암논을 살해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무엘 둘째 13:1-30) 그러한 사건 배후에는 “악한 추리”가 있지 않았습니까?

16 물론 참그리스도인들은 살인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친족이 어떤 형제나 자매에게 실제로 부당한 취급을 받았거나 그러한 취급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경우에 그 형제나 자매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강하게 품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친족을 부당하게 취급했다고 생각되는 그 동료 신자가 후대를 베풀려고 할 때 거절할지 모르며, 그 사람에게는 결코 후대를 베풀려고 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히브리 13:1, 2) 그처럼 나쁜 감정을 강하게 품고 후대를 나누지 않으려는 태도는 사랑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이며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마음을 ‘할례받지 않은  마음’으로 진단하실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9:25, 26) 여호와께서는 그러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게 “너희 마음의 포피를 없애 버려라” 하고 권고하셨습니다.—예레미야 4:4.

하느님을 “아는 마음”을 얻고 유지하십시오

17.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것이 우리가 더 민감한 마음을 갖는 데 어떻게 도움이 됩니까?

17 자신의 마음을 살펴본 결과 그 마음이 여호와의 조언에 대해 필요한 만큼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며 어느 정도는 “할례받지 않”은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아마 사람에 대한 두려움, 명성을 얻거나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고 싶은 욕망, 심지어 고집 세거나 독립적인 성향이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게 되었을지 모릅니다. 사실 누구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7:24; 11:8) 예레미야는 당시 불충실한 유대인들이 “고집이 세고 반역적인 마음”을 가졌다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 하느님 여호와를, 곧 큰비와 가을비와 봄비를 ··· 내려 주시는 분[을] ··· 두려워하자.’” (예레미야 5:23, 24) 여호와를 두려워하고 그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 “마음의 포피”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 말씀에서 알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한 건전한 두려움은 우리 각자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것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마음을 갖는 데 도움이 됩니다.

18. 여호와께서는 새 계약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약속하셨습니까?

18 우리가 계속 그러한 노력을 기울일 때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그분을 “아는 마음”을 주십니다. 사실 그분은 새 계약 안에 있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내 법을 그들의 속에 넣고,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할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그분은 자신을 참으로 아는 것에 대해 이렇게 계속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각각 자기 동무와 형제를 가르쳐 ‘너희는 여호와를 알아라!’ 하고 말하는 일이 다시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 모두 나를 알 것이기 때문이다. ··· 내가 그들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들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예레미야 31:31-34. *

19. 참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떤 놀라운 전망이 있습니까?

19 그 새 계약의 영원한 유익을 하늘에서 누리기를 고대하든 땅에서 누리기를 고대하든, 우리는 여호와를 알고 그분의 백성에 속해 있기를 원해야 합니다. 그러한 유익을 얻으려면 그리스도의 대속을 근거로 자신의 죄를 용서받아야만 합니다. 자신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 심지어 심한 반감이 느껴지는 사람까지도 용서하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자신이 품고 있는 어떤 반감도 기꺼이 없애 버리는 것이 우리 마음에 이로울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자신이 여호와를 섬기고 싶어 할 뿐만 아니라 그분을 더 잘 알아 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사람들처럼 될 것입니다. “너희는 실제로 나를 찾아 발견할 것이다. 너희가 마음을 다하여 나를 찾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너희가 나를 발견하게 해 주겠다.”—예레미야 29:13, 14.

^ 18항 새 계약에 대해서는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 책 제14장에서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