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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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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 2013년  11월

 표제 기사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도덕관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 도덕관

크리스티나는 자기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방금 주운 검은 비닐봉지 안엄청액수의 돈이—자신의 20년 치 월급보다 많은 돈이—들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그 돈이 누구의 것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할 것입니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대답은 당신이 정직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직하게 살려고 얼마나 노력하는지에 따라 달라질 것입니다.

당신은 도덕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까? 도덕이란 사람이 옳고 중요하게 여기는 도덕적·윤리적 원칙을 가리킵니다. 도덕에는 용서, 정직성, 사랑, 생명 존중, 자제 등의 덕목이 포함됩니다. 따라서 도덕적 가치관은 자신의 행동과 우선순위와 인간관계에 영향을 주며, 자녀에게 어떤 도덕적 지도를 베풀 것인지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하지만 이처럼 도덕이 중요한데도, 오늘날 도덕은 점점 붕괴되고 있습니다.

도덕의 붕괴

2008에 미국의 연구가은 수백 명의 젊은 성인을 대상으로 도덕관에 대해 인터뷰를 했습니다. 데이비드 브룩스는 「뉴욕 타임스」지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은 그이 도덕 문제에 대해 거의 생각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대다수는 성폭행과 살인을 나쁜 일로 여겼지만, “그러한 중범죄를 제외하면, 음주 운전, 학교에서 하는 커닝, 바람을 피우는 일과 같은 문제에 있어서도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한 젊은이는 “저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인터뷰에 응한 많은 사람의 생각은 한마디로 이런 것이었습니다. ‘옳다고  느껴지면 그대로 하라. 마음이 가는 대로 행동하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과연 현명합니까?

인간의 마음은 많은 사랑과 동정심을 나타낼 역량이 있지만, “믿을 수 없고 무모”할 때도 있습니다. (예레미야 17:9) 이러한 서글픈 현실이 세상의 변해 가는 도덕적 풍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성경은 그러한 변화가 있을 것을 오래전에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마지막 때에 사람은 자신과 돈만 사랑하고 허풍을 떨고 오만하며 비정하고 난폭하고 선을 미워하고 하느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할 것입니다.’—디모데 둘째 3:1-5, 성경(가톨릭판).

현실이 이러하므로, 우리도 자신의 마음 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하며 자기 마음을 무턱대고 믿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솔직하게 이렇게 지적합니다. “자기 마음을 신뢰하는 자는 미련하다.” (잠언 28:26) 잘못된 나침반의 눈금을 바로잡듯이, 우리 마음도 제 역할을 하려면 올바른 도덕관에 맞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러한 도덕관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은 성경에 담긴 지혜와 솔직성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성경에서 지침을 구합니다.

성경의 도덕관은 신뢰할 수 있다!

성경의 도덕관을 살펴보면 그것이 인류에게 꼭 맞는 가치관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몇 가지 예로 사랑, 친절, 관대함, 정직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타인에 대한 사랑.

“당신이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면 분명 행복이 당신의 집을 찾아올 것이다”라고, 「행복 설계—즐거운 인생을 만들어 가는 새로운 방법」(Engineering Happiness—A New Approach for Building a Joyful Life)이라는 책은 알려 줍니다. 분명 사람에게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습니다.

성경의 말씀: “사랑을 입으십시오. 그것은 완전한 결합의 띠입니다.” (골로새서 3:14) 이 말을 쓴 성경 필자는 다음과 같은 말도 기록했습니다.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고린도 첫째 13:2.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성적인 사랑이나 감정에 치우친 사랑이 아니라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사랑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있다면 우리는 대가를 바라지 않고 어려움에 처한 낯선 사람을 도우려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고린도 첫째 13:4-7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질투하지 않고, 뽐내지 않고, 우쭐대지 않고, 무례하게 행동하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지 않고, 해를 입은 것을 유념해 두지 않습니다.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모든 것을 참고 ··· 모든 것을 인내합니다.”

집안에 이런 사랑이 없으면 가족 모두, 특히 자녀이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린 시절 신체적, 감정적, 성적 학대를 당한 모니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사랑을 받지 못했고 아무 희망도 없었어요.” 그러다가 열다섯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여호와의 증인인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게 되었습니다.

모니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지낸 2년 동안 할아버지 할머니는 사람과 어울리지 못하던 제가 외향적이 되고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주셨어요. 제가 한 여자로서 존중받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셨지요.” 현재 세 자녀 어머니인 모니카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족과 함께 성경의 격려적인 소식을 전하는 활동을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이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지만, 사랑을 나타내는 데 방해가 되는 장애물 중에는 물질주의가 있습니다. 물질주의란 물질적인 편의와 쾌락에 가장 큰 가치를 두는 경향을 가리킵니다. 하지만 많은 연구 결과는 아주 기본적인 필요만 충족되면 재산이 늘어난다고 해서 행복이 커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사실 물질주의적인 가치관을 갖는 사람은 불행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도 그러한 관점을 지지합니다. 전도서 5:10에는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은을 사랑하는 사람은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부를 사랑하는 사람은 수입으로 만족하지 못하리니, 이것도 헛되다.” 성경에는 이러한 말씀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생활 방식에서 돈을 사랑하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히브리서 13:5.

친절과 관대함.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 소재한 공공복지 과학 센터(The Greater Good Science Center)가 발행한 기사에는 이런 글이 실렸습니다. “상점에 들어가서 평생 지속되는 행복을 살 수 있다면 정말 좋지 않겠는가? 이것은 생각만큼 비현실적인 발상이 아니다. 무엇을 사든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면 가능한 일이다.” 요점은 무엇입니까?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행전 20:35.

많은 경우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은 우리 자신 즉 우리의 시간과 활력이며, 그렇게 할 때 우리가 느끼는 보람도 가장 큽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캐런은 보닛이 열려 있는 차에 세 여자가—어머니와 두 딸이—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어머니와 딸 한 명은 비행기를 타러 공항에 가야 했지만,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기다리던 택시도 제시간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곳에서 공항까지는 45분 거리였지만 캐런은 공항에 데려다 주겠다고 제안했고, 두 사람은 캐런의 차에 올라탔습니다. 캐런이 공항에 갔다가 돌아와 보니, 뒤에 남은 딸은 그때까지도 주차장에 있는 차 안에서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는 “남편이 곧 올 거예요” 하고 말했습니다.

캐런이 대답했습니다. “큰 문제가 없어서 다행이에요. 그럼 저는 이만 왕국회관에, 아니 교회에 정원 손질을 하러 가 볼게요.”

“여호와의 증인이세요?” 하고 그가 물었습니다.

캐런이 그렇다고 대답했고 그러면서 잠깐 동안 대화가 계속되었습니다.

몇 주 후에 캐런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편지에는 이런 말이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지난번에 크게 신세 진 걸 잊을 수 없습니다. 덕분에 비행기를 놓치지 않았어요! 언니 말로는 여호와의 증인이시라고 하던데, 그 말을 들으니 모든 게 이해되더군요. 사실 어머니도 증인이세요. 저도 증인인데 지금은 활동하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다시 활동을 시작할 생각이에요!” 캐런은 동료 신자 두 사람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습니다.

저술가인 찰스 D. 워너는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삶이 주는 가장 아름다운 보상 한 가지는 남을 도우려고 진실하게 노력할 때 자기 자신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우리가 그처럼 행복해지는 이유는 하느님이 우리를 그렇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기적이 되기보다는 그분의 고귀한 특성을 본받도록 창조되었습니다.—창세기 1:27.

정직.

이 덕목은 문명화된 사회에 꼭 필요한 특성입니다. 부정직은 두려움과 불신을 조장하며 사회를 부패시킵니다.

성경의 말씀: 성경에서는 “누가 [하느님]의 천막에 손님이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한 다음, “흠 없이 걷고 ··· 그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합니다. (시편 15:1, 2) 그렇습니다. 앞서 살펴본 다른 특성과 마찬가지로 진정한 정직성은 우리의 성품의 일부가 되어야 합니다. 정직성은 상황이나 편의에 따라 좌우되지 않습니다.

이 든 비닐봉지를 주운 크리스티나를 기억하십니까? 그가 마음으로 원한 것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걱정에 휩싸인 주인이 돈을 찾으러 왔을 때, 크리스티나는 그 돈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는 크리스티나의 정직성에 감탄했습니다. 크리스티나의 고용주도 그 정직한 태도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후에 고용주는 크리스티나를 상당히 신임받는 직책인 매장 책임자로 승진시켰습니다. 베드로 첫째 3:10에 있는 이러한 말씀은 정말 참됩니다.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을 보려고 하는 사람은 ··· 입술을 제어하여 속이는 말을 하지 마십시오.”

‘선한 사람의 길을 걸으십시오’

성경에 담겨 있는 도덕관은 우리에 대한 창조주의 깊은 사랑을 반영합니다. 그 가치관은 우리가 “선한 사람의 길을 걷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잠언 2:20; 이사야 48:17, 18) 우리도 그러한 도덕관의 인도를 따름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 결과 많은 축복을 받게 됩니다. 사실 성경에는 이러한 약속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길을 지켜라. 그러면 그분이 너를 높여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악한 자이 끊어질 때에 네가 그것을 보리라.”—시편 37:34.

그렇습니다. 성경의 표준을 따르는 사람들 앞에는 놀라운 미래 곧 악이 사라진 평화로운 땅에서 삶을 누릴 전망이 놓여 있습니다! 성경에서 알려 주는 도덕관은 분명 검토해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