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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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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  |  2011년  7월

하느님은 인류의 고난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하느님은 인류의 고난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강력한 지진이 1755년 11월 1일 아침에 포르투갈의 리스본을 뒤흔들었습니다. 뒤이어 해일과 화재가 발생하여 도시 대부분이 파괴되었고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2010년에 아이티에서 지진이 있고 나서 얼마 후, 캐나다 「내셔널 포스트」지의 사설은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끔찍한 재난이 일어나면 더 고등한 존재에 대한 사람들의 믿음은 시험을 받게 된다. 특히 현대판 리스본 [참사]와 같은 몇몇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그 사설은 “아마도 신은 아이티를 버린 것 같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전능한 분”인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셨기 때문에 고난을 끝내실 수 있습니다. (시 91:1) 그뿐만 아니라 우리는 하느님께서 고난을 겪는 인류에게 관심이 있으시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느님은 어떠한 분인가?

하느님께서는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느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면서 학대당하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집트에 있는 내 백성의 괴로움을 똑똑히 보았고,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사람들로 말미암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었다. 나는 그들이 겪는 고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탈출 3:7) 이 기록은 하느님께서 인간이 겪는 고난에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 줍니다. 여러 세기 후에 예언자 이사야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는지 이렇게 썼습니다. “그들의 모든 고난 중에 그 고난이 그분을 괴롭게 하였다.”—이사야 63:9.

“그분의 모든 길은 공의”입니다. (신명 32:4)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을 편견 없이 공정하게 행하십니다. 그분은 “충성스러운 자들의 길을 지켜 주실” 것이지만, 의로운 사람들에게 “환난을 가져오는 사람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잠언 2:8; 데살로니가 둘째 1:6, 7) 성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신다는 점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그분은 통치자라고 편을 들어주지 않으시고 부자라고 해서 가난한 사람보다 더 생각해 주지 않으십니다. 그들 모두가 그분의 손으로 지으신 것들이니 말입니다.” (욥 34:19, 우리말성경) 하느님께서는 인류의 고난을 해결할 최상의 방법을 알고 계십니다. 반면에, 인간이 내놓는 해결책은 총상을 입은 환자에게 반창고를 붙이는 행위에 비할 수 있습니다. 반창고를 붙이면 상처를 가릴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상처를 근본적으로 치료하거나 고통을 사라지게 할 수는 없습니다.

총상을 입고 피를 흘리는 환자에게 반창고만 붙여 주는 의사가 있겠습니까?

하느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사랑의 친절이 풍부’하십니다. (탈출 34:6) 성서에서 “자비”라는 단어는 진심 어린 동정심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베푼다는 의미를 전달합니다. “은혜롭다”로 번역되는 히브리어의 어근은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와 도움을 베푸는 사람의 행동”으로  정의됩니다. 또한 「구약 신학 사전」(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Old Testament)에 따르면, “사랑의 친절”에 해당하는 단어는 “불행이나 고난을 겪는 사람을 위하여 개입”한다는 사상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고난을 겪을 때 마음 아파하실 뿐만 아니라 자비와 은혜로움과 사랑의 친절에서 우러나와 도움을 베푸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이 고난을 없애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앞 기사에서는 오늘날 인류에게 고난을 초래하는 세 가지 주된 요인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요인들에 대해 책임이 없으십니다. 이제, 그 요인들의 이면에 어떤 점이 관련되어 있는지 고려해 보겠습니다.

개인의 선택

아담은 원래 하느님의 통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선택의 기회가 주어지자 하느님의 통치를 배척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분에게서 독립할 때 결과가 어떠할 것인지 시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는 창세기 2:17에 기록된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여호와의 경고를 무시했습니다. 하느님의 완전한 통치에 복종하지 않은 결과, 죄와 불완전성이 초래되었습니다. 성서는 그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를 통하여 죽음이 들어왔으며, 이와 같이 모두가 죄를 지었으므로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습니다.” (로마 5:12)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죄의 영향을 완전히 제거하실 것입니다.

예기치 못한 일

하느님께서는 인류가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를 베푸셨습니다. 하느님의 인도를 따른다면 자연재해로부터도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첫 인간 아담은 그 인도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은 환자가 경험 많고 유능한 의사의 도움을 거부하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었습니다. 의사는 환자에게 어떤 위험이 있고 앞으로 어떤 복합적인 건강 문제들이 생길 수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알지 못하는 환자가 의사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면 그 대가를 치르게 될 수 있습니다. 그와 유사하게, 자연재해로 인한 피해가 더 심각해지는 이유는 사람들이 땅을 잘못 관리하거나 건물을 지을 때 안전을 고려하지 않거나 자연의 경고를 무시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러한 상태가 무한정 지속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통치자”

하느님께서 사탄이 반역한 후에 그가 세상을 통치하도록 허용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한 자료에 따르면, “새로운 정권이 출범할 경우 집권 초기에는 문제가 생기면 흔히 이전 정부에 잘못을 전가”합니다. 만약 여호와께서 충분한 시간을 주지 않은 채 “이 세상의 통치자”인 사탄을 몰아내셨다면 그는 자신의 잘못된 통치의 결과를 이전 통치자인 하느님의 책임으로 돌리려 했을 것입니다. (요한 12:31)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탄이 충분한 기간 동안 세상을 통치하도록 허용하심으로 그가 실패한 통치자라는 점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아직 대답되지 않은 질문이 남아 있습니다. 고난이 사라질 것이라는 점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