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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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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라!  |  1993-06-01

생명—소중히 여겨야 할 선물

생명—소중히 여겨야 할 선물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 가족에게 자녀를 갖는 특권을 주셨을 때,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선물이었다! 부부가 결합하여 낳은 이 어여쁜 산물, 이 귀여운 아기는 그를 소중히 여기고 보살펴 주려고 기다린, 서로 사랑하는 행복한 부부의 팔에 안길 것이었다. 아기의 삶이 펼쳐질 때 이 가족에게는 기쁨이 충만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아담과 하와의 죄 때문에, 인류 가족 가운데 태어난 아기들에게는 비참한 결과가 따르게 되었다. 인류의 첫 어머니는 죄의 결과로 저주를 받아 자녀를 낳을 때 고난과 신체적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그리고 그 후손들은 죄많은 환경에서 살게 되었으므로, 자녀를 기르는 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도전이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의 복잡한 세상에서 자녀를 갖는 것이 흔히 기쁨과 거리가 먼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태아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는 어떠한가? 도덕 풍조가 변했으므로 창조주의 견해도 달라졌는가? 결코 달라지지 않았다. 전세계의 태아에 대한 창조주의 견해와 관심은 변함이 없다.

성경에서는 모태에서 자라는 아기가 별개의 독특한 인간임을 분명히 알려 준다. 생명은 수태시에 시작된다.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보아 오신 아기를 사람들이 보게 되는 것일 뿐이다. 에스겔은 “태를 연 모든 아기”에 대해 말한다. (에스겔 20:26, 「신세」) 욥은 “모태의 문”을 묘사하며 유산된 아기를 “빛을 보지못한 아이”라고 부른다.—욥 3:10, 16.

모태에서 자라는 가냘픈 생명체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부드러운 관심에 유의해야 한다. 그분은 예레미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느니라.]” (예레미야 1:5)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은밀한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나의 형체가 주의 앞에 숨기우지 못하였나이다 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나이다.]” (시 139:15, 16) 욥은 하나님을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자”라고 부른다.—욥 31:15.

그러면 아기를 원치 않는데도 임신하여 절망에 빠진 임신부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염려를 나타내시는가? 창조주께서는 어버이가 져야 할 막중한 책임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아신다. 임신부가 어려운 상황에 있으면서도 경건한 요구 조건을 존중하여 아기를 낳기로 할 경우, 창조주께서는 그런 결정을 축복하시지 않겠는가? 어버이는 아기를 행복하게 키우기 위해 창조주의 도움을 기도로 구할 수 있으며 또 마땅히 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말씀 가운데서 이미 자녀를 키우는 데 적용할 수 있는 최상의 조언을 하셨다. 성서 원칙을 가정 생활에 적용하면 축복된 결과를 얻게 된다. 자녀를 경건하게 키우는 데서 오는 기쁨과 보람은 자녀를 키우면서 치르는 어떤 희생보다 가치 있다. 자부심을 가진 어버이라면 누구나 이 사실을 증언할 수 있을 것이다.

성폭행이나 근친 상간으로 임신한 경우, 여호와께서는 문제를 다르게 보시는가? 임신부에게 한 행위는 범죄였지만, 아기를 탓할 수는 없다. 아기의 생명을 끊는 것은 또 하나의 폭력 행위로 대응하는 것일 뿐이다. 분명히 여호와께서는 그런 성폭행으로 임신한 피해자들이 경험하는 감정적 상처를 잘 아시며, 산모와 아기가 후유증을 균형 있게 극복하도록 도우실 수 있다.

태아를 만삭이 될 때까지 그냥 두면 임신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것이라고 의사가 말할 경우에는 어떠한가? 앨런 굿마처 박사는 이렇게 기술하였다. “오늘날 거의 어떤 임신부든 암이나 백혈병 같은 불치병에 걸려 있지 않는 한 무사히 분만할 수 있다. 그런 병이 있다 해도, 낙태로는 생명을 구하기는커녕 연장시킬 수도 없을 것이다.”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은 이렇게 말한다. “임신부들은 대개 의료상의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경우에도 무사히 분만할 수 있으므로, 임신부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낙태할 필요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낙태는 대개 아기를 갖지 않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낙태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상황은 매우 드물다. 하지만 분만할 때 그런 상황이 실제로 벌어지면 어버이는 산모의 생명과 아기의 생명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결정은 어버이에게 달려 있다.

생명의 창조주께서 출산 능력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분명한 지침을 마련하신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창조주께서 보시기에 키울 생각도 없이 생명을 심는 것은 죄다. 생명을 없애는 것이 죄인 것처럼.

낙태 문제를 놓고 벌이는 입씨름은 이 제도가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생명의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분의 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결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생명은 그 시작부터 보호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귀중한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