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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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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  2017년 제2호

 표제 기사 |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받아들일 것입니까?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왜 소중한가?

하느님의 가장 큰 선물—왜 소중한가?

매우 소중하게 여기는 선물이 있습니까? 그 선물이 그토록 소중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아마 다음 4가지 점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1) 누가 준 선물인가? (2) 그 선물을 준 이유가 무엇인가? (3) 그 선물을 주기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가? (4) 나에게 꼭 필요선물인가? 하느님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인 대속에 관해서도 이 4가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선물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더 커질 것입니다.

누가 준 선물인가?

어떤 사람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나 자신이 깊이 존경하는 사람에게서 받은 선물을 매우 소중히 여깁니다. 또한 값어치가 적은 것이라 하더라도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가 주었기 때문에 소중한 선물도 있습니다. 앞 기사에 나온 조던이 러셀에게서 받은 선물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그러면 대속이라는 선물은 어떠합니까?

첫째로, 성경은 “하느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가 그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해 주셨다”고 말합니다. (요한 1서 4:9) 이 성구는 대속이 왜 참으로 귀중한 선물인지 알려 줍니다. 하느님보다 더 지위가 높은 분은 없기 때문입니다. 한 히브리인 시편 필자는 하느님에 대해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당신, 당신만이 홀로 온 땅을 다스리는 가장 높으신 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83:18) 하느님보다 더 높은 분이 주는 선물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둘째로, 하느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이사야 63:16) 어떻게 그러합니까? 하느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또한 헌신적으로 자녀를 돌보는 아버지와 같이 우리를 사랑으로 돌보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고대 백성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에브라임은 내 귀중한 아들, 내 사랑하는 아이가 아니냐? ··· 에브라임 때문에 내가 안타까워 속이 끓는다.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겠다.” (예레미야 31:20) 오늘날에도 하느님은 자신의 백성에 대해 똑같이 느끼십니다. 그분은 전능한 창조주일 뿐 아니라 우리의 사랑 많은 아버지이자 친구이십니다. 이 점을 생각해 보면 하느님이 주시는 선물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선물을 준 이유가 무엇인가?

의무감에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준 선물은 특히 더 소중합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선물을 준 사람은 무언가 돌려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아들을 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사랑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났습니다. 곧 하느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를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 1서 4:9) 하느님이 그렇게 하실 의무가 있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불하신 대속물”은 하느님“과분한 친절”의 표현입니다.—로마서 3:24.

하느님이 주신 선물을 “과분한 친절”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그 일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추천하십니다.” (로마서 5:8) 비이기적인 사랑에서 우러나와 하느님은 나약하고 무기력하고 죄 많은 인간을 위해 행동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랑을 받을 자격도, 그분께 되갚아 드릴 능력도 없습니다. 하느님은 이 선물을 통해 가장 위대한 사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선물을 주기 위해 어떤 희생을 했는가?

선물을 준 사람이 큰 희생을 했기 때문에 소중한 선물도 있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매우 아끼는 것을 우리에게 기꺼이 준다면, 우리는 그가 한 희생 때문에 그 선물을 매우 소중히 여길 것입니다.

하느님은 “자신의 독생자주셨습니다.” (요한복음 3:16) 자신이 가장 아끼는 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우주를 창조하시던 헤아릴 수 없이 긴 시간 동안, 예수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면서 “그분이 각별히 좋아하시는 자”가 되었습니다. (잠언 8:30) 예수는 하느님의 “사랑하는 아들”이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형상”입니다. (골로새서 1:13-15) 하느님과 예수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친밀한 사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은 “자신의 아들까지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로마서 8:32) 여호와께서는 가장 소중한 것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어떤 희생도 그분이 치르신 희생에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에게 꼭 필요한 선물인가?

어떤 선물은 꼭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소중합니다. 긴급히 필요한 것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치료를 받을 돈이 없어서 생명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데 누가 그 비용을 대 준다면 정말 고마울 것입니다!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선물이 또 있겠습니까?

성경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5:22) 아담의 후손인 우리는 모두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질병과 죽음에서 벗어날 수도, 하느님과 평화로운 관계를 회복하여 죄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또한 미천한 인간인 우리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살릴 수 없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은 아무도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형제를 위해 하느님께 대속물을 드리지도 못하니 ··· 그이 결코 지불할 수 없다.” (시편 49:7, 8) 우리는 대속의 값을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 비참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꼭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값을 지불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예수를 통해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다시 말해 생명을 얻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대속으로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해졌습니까?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흘리신 피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죄를 용서받고 영원한 생명을 누릴 기회를 얻게 됩니다. (요한 1서 1:7; 5:13) 사망한 우리의 가족이나 친구도 대속의 혜택을 입을 수 있습니까?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해 왔으므로 죽은 사람의 부활도 한 사람[예수]을 통해 옵니다”라고 성경은 알려 줍니다.—고린도 전서 15:21. *

예수의 희생은 가장 높은 지위에 계신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며, 그분의 가장 위대한 사랑의 표현입니다. 여호와 하느님은 이 선물을 주기 위해 그 누구보다도 큰 희생을 하셨습니다. 또한 대속은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꼭 필요한 선물입니다. 대속을 통해 죄와 죽음에서 해방될 전망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대속은 헤아릴 수 없이 소중한 선물이며 그 어떤 선물도 대속에 비할 수 없습니다.

 

^ 19항 사망한 사람의 부활에 대한 하느님의 목적에 관해 더 알아보려면, 여호와의 증인이 발행「성서는 실제로 무엇을 가르치는가?」 책 제7을 참조할 수 있다. www.jw.org 웹사이트에서도 읽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