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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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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  2017년 제2호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 무역은 번성하는 사업이었습니다

노예살이—그 오랜 비극의 끝은 올 것인가?

노예살이—그 오랜 비극의 끝은 올 것인가?

블레싱 *은 미용사로 일하게 해 주겠다는 약속을 믿고 유럽에 도착했습니다. 하지만 열흘 동안 끊임없이 구타당한 뒤에 고향에 있는 가족을 해치겠다는 협박을 받게 되자 어쩔 수 없이 매춘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이 잡혀 끌려가는 모습

블레싱은 여주인이 정해 놓은 4만 유로가 넘는 빚을 갚기 위해 매일 밤 200에서 300유로를 벌어야 했습니다. * 블레싱은 이렇게 말합니다. “도망칠까 하는 생각도 자주 했지만, 가족한테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났어요. 꼼짝없이 갇힌 신세였죠.” 블레싱처럼 섹스 산업에서 성 노예로 일하는 사람의 수는 전 세계적으로 약 400만 명이나 됩니다.

거의 4000년 전에 10대 청소년이었던 요셉은 형에 의해 노예로 팔렸습니다. 요셉은 이집트 고위 관리의 집에서 노예로 지내게 되었는데, 블레싱과는 달리 처음부터 주인의 학대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아내가 요셉을 성적으로 유혹하려 했을 때 그 유혹을 거절하자 오히려 그 여자를 강간하려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썼습니다. 결국 요셉은 쇠사슬에 묶여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창세기 39:1-20; 시편 105:17, 18.

요셉은 고대의 노예였고 블레싱은 21세기의 노예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지만, 두 사람은 모두 오랜 세월 지속되어 온 문제인 인신매매의 피해자였습니다. 인신매매란 경제적 이익만을 위해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파는 행위입니다.

전쟁이 만든 대규모 사업

나라이 노예를 구하는 가장 손쉬운 수단은 바로 전쟁이었습니다. 이집트 왕 투트모세 3는 가나안에서 한 차례 전쟁을 치른 뒤에 포로 9만 명을 끌고 왔다고 합니다. 이집트인은 그을 노예로 삼아 광산에서 일하고 신전을 짓고 운하를 건설하게 했습니다.

 로마 제국도 전쟁을 통해 노예를 많이 끌어모았으며, 때로는 노예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한 추산에 따르면 1세기 로마 시 인구의 거의 절반이 노예였다고 합니다. 많은 이집트인 노예과 로마인 노예이 심한 착취를 당했습니다. 예를 들어 로마의 광산에서 일하는 노예의 평균 수명은 겨우 30였습니다.

세월이 흘러도 노예의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16세기부터 19세기까지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대륙의 노예 무역은 세계에서 가장 번성하는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유네스코 보고서에서는 그 기간에 ‘2500만 명 내지 3000만 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이가 납치되어 매매된 것으로 추산된다’고 알려 줍니다. 대서양을 건너는 도중에 수많은 노예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한 환경에서 살아남은 노예였던 올라우다 에퀴아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자의 비명 소리와 죽어 가는 사람의 신음 소리로 그곳은 상상하기 힘든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안타깝게도 노예 제도는 단지 역사 속의 비극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국제 노동 기구에 의하면, 지금도 약 2100만 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이가 임금을 거의 또는 전혀 받지 못하고 자유를 빼앗긴 채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광산, 방직 공장, 벽돌 공장, 사창가, 개인 집 등에서 노예로 일합니다. 엄연히 불법인데도 이러한 착취 행위는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자유를 빼앗긴 채 노예처럼 일합니다

자유를 얻기 위한 노력

잔인한 대우를 견디지 못한 많은 노예이 자유를 위해 싸웠습니다. 기원전 1세기에 검투사 스파르타쿠스는 약 10만 명의 노예과 함께 로마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켰지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18세기에는 카리브 해의 히스파니올라 섬에서 노예이 반기를 들었습니다.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이 주인에게 당한 학대가 도화선이 되어 13년 간의 내전이 벌어졌고, 그 결과 1804에 아이티라는 독립 국가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가장 성공적인 노예 해방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해 나온 것이었습니다. 약 300만 명 정도였을 한 민족 전체가 이집트의 노예살이에서 해방된 것입니다. 그이 자유를 갈구한 것도 당연했습니다. 성경은 그이 이집트에 살면서 ‘온갖 노역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했다’고 알려 줍니다. (출애굽기 1:11-14) 한 파라오는 이스라엘 민족의 수가 늘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수많은 유아를 학살하기까지 했습니다.—출애굽기 1:8-22.

이스라엘 사람이 이집트의 가혹한 노예살이에서 벗어난  은 매우 특별한 사건이었는데, 하느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그을 해방시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이 겪는 고통을 내가 잘 알고 있다. 내가 내려가서 ··· 그을 구출하겠다.” (출애굽기 3:7, 8) 오늘날까지도 세계 전역에 있는 유대인은 그 일을 기념하는 행사인 유월절을 매년 지킵니다.—출애굽기 12:14.

곧 없어질 노예 제도

성경은 “우리 하느님 여호와께는 불공정이 ··· 없습니다”라고 알려 줍니다. 또한 그분이 변하지 않으셨다고 보증합니다. (역대기하 19:7; 말라기 3:6) 하느님께서 예수를 이 땅에 보내신 것도 “포로에게 해방을 ··· 공포하고, 억눌린 사람을 풀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가복음 4:18) 이 말은 그분이 실제 노예살이를 하고 있는 사람을 전부 해방시켜 주실 것이라는 뜻이었습니까?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오신 것은 죄와 죽음의 속박에서 사람을 해방시켜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진리가 여러분을 자유롭게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8:32)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는 오늘날에도 사람을 다양한 종류의 속박에서 자유롭게 해 줍니다.—“ 또 다른 종류의 노예살이에서 자유롭게 되다” 제하의 내용 참조.

요셉과 블레싱은 하느님의 도움으로 노예살이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성경 창세기 39-41에서 요셉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읽어 볼 수 있습니다. 블레싱 역시 그에 못지않게 놀라운 방법으로 자유를 얻었습니다.

블레싱은 유럽의 한 나라에서 추방된 뒤에 스페인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여호와의 증인을 만나 성경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삶을 바로잡으려고 결심한 그는 평범한 직장을 구했고, 이전에 자신의 주인이었던 여자에게 부탁하여 매달 갚아야 하는 돈의 액수를 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자가 블레싱에게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그는 블레싱에게 이제 돈을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하면서 자신을 용서해 달라고 했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입니까? 그 여자도 여호와의 증인과 성경 공부를 시작한 것입니다! 블레싱은 이렇게 말합니다. “진리는 정말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해 주죠.”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이집트에서 이스라엘 사람이 노예로 잔인한 취급을 당하는 것을 보고 가슴 아파하셨습니다. 틀림없이 그분은 오늘날 벌어지는 불공정한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느끼실 것입니다. 물론 모든 형태의 노예 제도가 없어지려면 인간 사회가 크게 바뀌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변화를 가져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의 약속에 따라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거기에는 의가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베드로 후서 3:13

^ 2항 가명임.

^ 3항 당시 화폐 가치로 블레싱이 갚아야 할 빚의 총액은 한화로 약 5000만 원이었으며, 매일 밤 23만 원에서 35만 원 정도를 벌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