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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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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연구용) 2017년  3월

합당한 대상에게 존중심을 보이십시오

합당한 대상에게 존중심을 보이십시오

“왕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에게 찬송과 영예와 영광과 위력이 영원무궁토록 있기를 바랍니다.”—계시록 5:13.

노래: 9, 108

1. 일부 사람이 존중받을 자격이 있는 이유는 무엇이며, 이제 무엇을 살펴볼 것입니까?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것은 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존경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관심과 존경을 나타내는 대상이라면 당연히 존중받기에 합당한 일을 했거나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따라서 이제 이러한 질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존중심을 보이고 영예를 돌려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합당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2, 3. (ㄱ) 특히 여호와께서 영예를 받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기사 제목 위에 있는 삽화 참조) (ㄴ) 요한 계시록 5:13에 나오는 ‘어린양’은 누구이며, 그분이 영예를 받기에 합당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요한 계시록 5:13에서 지적하듯이 “왕좌에 앉아 계신 분과 ‘어린양’”은 분명 영예를 받아 마땅하십니다. 요한 계시록 4에서는 우리가 여호와께 영예를 돌려야 하는 한 가지 이유를 알려 줍니다. 영적 피조물이 하늘 영역에서 “영원무궁토록 살아 계신 분”인 여호와께 큰 소리로 찬양을 드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주께서는 영광과 영예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것이 주의 뜻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계시록 4:9-11.

3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어린양’은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 즉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요한 1:29) 성경은 그분이 과거와 현재의 그 어떤 왕보다 훨씬 더 뛰어난 왕이라는 것을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분은 왕으로 통치하는 이의 왕이시며, 주로 통치하는 이의 주이시며, 홀로 불멸성을 가진 분이시며, 가까이 갈 수 없는 빛 속에 거하시고, 사람들 가운데 아무도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디모데 전서 6:14-16) 예수 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은 왕이 또 있습니까? 우리도 수많은 천사과 함께 이렇게 외치려는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영예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계시록 5:12.

4. 여호와와 그리스도께 영예를 돌리는 일이 선택의 문제가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4 여호와와 그리스도께 영예를 돌리는 일은 선택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데 우리의 영원한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요한복음 5:22, 23에 나오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은 그 사실을 분명히 밝혀 줍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심판하지 않으시고 심판하는 일을 모두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처럼 아들도 공경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사람은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않습니다.”—시편 2:11, 12 낭독.

5. 우리가 사람에게 존중심과 존경을 나타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사람은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창세 1:27)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하느님이 나타내시는 선한 특성을 나타냅니다. 사람은 서로에게 사랑과 친절과 동정심을 보일 역량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창조될 때 양심을 받았습니다. 양심이 부정확하거나 뒤틀린 경우도 있지만, 대개 양심은 옳은 것과 그른 것, 정직한 것과 부정직한 것, 합당한 것과 부당한 것을 알려 주는 내면의 소리를 발합니다. (로마 2:14, 15) 대부분의 사람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에 이끌리며, 타인과 평화롭게 지내고 싶어 합니다. 스스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사람은 여호와의 영광을 어느 정도 반영하며, 그러한 이유로 어느 정도 존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시 8:5.

사람에게 합당한 존중심을 보이십시오

6, 7. 사람에게 영예를 돌리는 면에서 여호와의 증인은 많은 사람과 어떻게 다릅니까?

6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어느 정도까지 존중심을 보여야 할지 판단할 때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대부분 사탄의 세상의 영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누군가에게 합당한 정도의 존중심이나 존경을 보이는 것을 넘어 그우상화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은 정치가나 운동선수나 연예인과 같은 유명인을 거의 신처럼 떠받듭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사람은 유명인을 모델로 삼아 그의 옷차림, 말투, 태도, 행실을 따라 하곤 합니다.

7 참그리스도인은 사람에게 영예를 돌리는 세상의 잘못된 견해를 멀리합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사람 가운데 우리가 완벽한 모델로 삼을 수 있는 분은 그리스도뿐입니다. (베드로 전서 2:21)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합당한 수준 이상으로 사람에게 영예를 돌리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진리를 기억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 지었으므로 하느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합니다.” (로마 3:23) 사실, 우상처럼 여겨져 지나친 영예를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8, 9. (ㄱ) 여호와의 증인은 공직자을 어떻게 여깁니까? (ㄴ) 공직자을 어느 정도까지 지원하는 것이 적절합니까?

8 세상에는 권위를 행사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공직자은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국민의 필요를 돌보는 일을 합니다. 그이 하는 일은 모두에게 유익이 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에게 정부 관리을 “위에 있는 권위”로 여기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그이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주십시오. 세금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내고, 존경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존경을 나타내십시오.’—로마 13:1, 7.

9 따라서 공직자을 존중하는 것이 의무나 관습으로 여겨지든 그렇지 않든, 여호와의 증인은 그에게 기꺼이 존중심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그이 공무를 수행할 때 협조합니다. 물론 우리는 성경에 근거한 합당한 한계 내에서 그을 존중하고 지원합니다. 하느님께 불순종하거나 그리스도인 중립을 어길 정도로 그을 지원하지는 않습니다.—베드로 전서 2:13-17 낭독.

10. 고대의 여호와의 종은 세상 정부와 공직자을 대하는 면에서 어떤 본을 남겼습니까?

10 고대의 여호와의 종은 정부와 공직자을 대하는 면에서 본을 남겼습니다. 로마 제국이 국민에게 인구 조사에 응할 것을 요구했을 때 요셉과 마리아는 그에 따랐습니다. 마리아가 첫아이를 출산할 때가 가까웠지만 그은 베들레헴까지 먼 길을 갔습니다. (누가 2:1-5) 또한 바울은 범죄 혐의로 고발당했을 때 헤롯 아그리파 왕과 로마의 유대 속주 총독 페스투스 앞에서 존중심 있게 자신을 변호하고 그에게 합당한 존경을 보였습니다.—사도 25:1-12; 26:1-3.

11, 12. (ㄱ) 우리는 왜 공직자과 종교 지도자을 다르게 대합니까? (ㄴ) 오스트리아의 증인이 한 정치인에게 존중심을 보였을 때 어떤 좋은 결과가 있었습니까?

11 하지만 여호와의 증인은 종교 지도자을 특별한 영예를 받을 만한 사람로 대하지 않습니다. 그이 그러한 영예를 기대할 때라도 그러합니다. 거짓 종교는 하느님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조장하고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종교 지도자을 대할 때, 보통 사람을 대하는 정도의 존중심을 나타내며 그에게 특별한 영예를 돌리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당시 종교 지도자을 위선자, 눈먼 인도자라고 비난하셨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마태 23:23, 24) 한편, 정부 관리에게 합당한 존경과 존중심을 보이면 때로는 예상치 못한 좋은 결과가 뒤따를 수 있습니다.

12 오스트리아의 열심 있는 증인인 레오폴트 엥글라이트너는 나치에 체포되어 기차를 타고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로 이송되고 있었습니다. 그 기차에는 하인리히 글라이스너 박사도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정치인이었지만 나치의 눈 밖에 나서 수감자 신세가 되었습니다. 수용소로 가는 길에 엥글라이트너 형제는 존중심 있게 자신의 믿음에 관해 말했고 글라이스너 박사는 그의 이야기를 주의 깊이 들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글라이스너 박사는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해 오스트리아의 여호와의 증인을 여러 차례 도와주었습니다. 아마 여러분도 증인이 성경의 권고에 따라 공직자에게 합당한 존중심과 존경을 보여서 좋은 결과가 있었던 사례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존중받기에 합당한 또 다른 사람

13. 어떤 사람이 특히 존경과 존중을 받기에 합당하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믿음으로 우리의 친족이 된 사람은 분명히 존중과 존경을 받기에 합당합니다. 인도하는 일을 하는 장로이 특히 그러합니다. (디모데 전서 5:17 낭독) 우리는 그런 형제의 국적이나 교육 수준이나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에 관계없이 그을 존중합니다. 성경은 그을 가리켜 “사람로 된 선물”이라고 부르며, 그 형제은 하느님의 백성의 필요를 돌보는 그분의 마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에베소 4:8) 회중 장로, 순회 감독자, 지부 위원, 중앙장로회 성원을 생각해 보십시오. 1세기 형제 자매은 그처럼 인도하는 일에 임명된 형제을 매우 존중심 있게 대했으며 우리도 그러한 형제을 존중합니다. 우리는 잘 알려진 그리스도인 회중의 대표자을 연예인처럼 떠받들거나 마치 천사가 나타나기라도 한 듯이 행동하지 않습니다. 물론 우리는 겸손하면서도 열심히 일하는 그 형제을 존경하고 존중합니다.—고린도 후서 1:24; 요한 계시록 19:10 낭독.

14, 15. 진정한 그리스도인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를 설명해 보십시오.

14 우리는 그러한 장로이 겸손한 영적 목자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이 유명인과 같은 대접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이 겸손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면에서 그은 오늘날이나 1세기의 많은 종교 지도자과 다릅니다. 예수께서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은 만찬에서는 윗자리에, 회당에서는 앞자리에 앉기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장터에서 인사를 받는 것을 좋아합니다.’—마태 23:6, 7.

15 진정한 그리스도인 목자는 예수의 이러한 말씀에 겸손히 순종합니다. “여러분은 랍비라고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선생은 오직 하나이며 여러분은 모두 형제입니다. 또 땅에 있는 그 누구도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아버지는 오직 한 분, 하늘에 계신 분입니다. 또한 지도자라고 불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지도자는 오직 그리스도뿐입니다. 여러분 중에 가장 큰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추어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여질 것입니다.” (마태 23:8-12) 세계 전역에서 회중 장로은 이 말씀에 순종하기 때문에 동료 증인의 사랑과 존경과 존중을 받고 있습니다.

겸손히 섬기는 장로은 사랑과 존경과 존중을 받습니다 (13-15항 참조)

16. 존중심을 보이는 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적용하기 위해 왜 계속 노력해야 합니까?

16 물론, 누구에게 어떻게 존중심을 보일 것인지와  관련해서 균형을 잘 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10:22-26; 요한 3서 9, 10) 그러나 존중심을 보이는 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은 분명히 노력을 기울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균형을 잘 잡으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합당한 존중심을 보일 때 얻는 유익

17. 권위를 가진 사람을 존중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17 이 세상에서 권위를 가진 사람에게 존경과 존중심을 보이면 그은 방해받지 않고 전파할 우리의 권리를 더 보호해 주려고 할 것입니다. 많은 경우 그은 우리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몇 년 전, 독일의 파이오니아인 비르기트는 딸의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교사은 비르기트에게 여러 해 동안 증인 자녀을 가르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하면서 학교에 증인 아이이 없으면 아쉬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비르기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우리 종교는 아이에게 하느님의 지침에 따라 생활하라고 가르칩니다. 아이은 선생님을 존경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배우지요.”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학생이 다 증인 자녀들 같기만 하면 학교가 낙원 같을 거예요.” 몇 주 뒤에 교사 한 명은 라이프치히에서 열린 대회에 참석했습니다.

18, 19. 장로에게 존중심을 보일 때 무엇을 조심해야 합니까?

18 물론, 회중 장로에게 합당한 존중심을 보이려면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완벽하고 현명한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히브리서 13:7, 17 낭독) 우리는 그의 수고를 칭찬하고 그이 알려 주는 지침을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장로이 계속해서 맡은 일을 기쁜 마음으로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소위 ‘탁월한’ 장로의 옷차림이나 외모, 연설하는 방식, 심지어 말하는 습관을 그대로 모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사람을 따른다는 잘못된 인상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 역시 불완전한 사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따르고 본받아야 할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19 장로을 유명인처럼 대하는 일 없이 그에게 합당한 존중심과 존경을 보이면 그에게도 유익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것은 그이 교만이나 우월감이나 독선에 빠지지 않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20. 다른 사람에게 존중심을 보이는 것이 어떻게 우리에게 도움이 됩니까?

20 또한 합당한 사람에게 존중심을 보인다면 우리 각자가 자기 중심적이 되지 않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렇게 한다면 다른 사람에게서 영예를 받을 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조직과 보조를 맞추어 동료 신자든 아니든 사람에게 과도하거나 부당한 영예를 돌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에 더해, 우리가 존경하던 사람이 실망스러운 일을 저지를 때에도 걸려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21.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존중심을 보일 때 얻게 되는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21 가장 중요한 것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존중심을 보이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그처럼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행동으로 그분께 충절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조롱하려고 하는 모든 자에게 대답하시는 데 도움이 됩니다. (잠언 27:11) 이 세상의 많은 사람은 어떻게 존중심을 보여야 하는지에 대해 비뚤어진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의 방식에 따라 존중심을 보이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