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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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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연구용  |  2017년  3월

어려움이 닥쳐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어려움이 닥쳐도 진정한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잔니와 마우리치오는 약 50년 동안 친구로 지내 왔습니다. 하지만 그의 우정에 위기가 닥친 적이 있었습니다. 마우리치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힘든 시기에 내가 심각한 잘못을 저질러서 우리 사이가 멀어졌습니다.” 잔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우리치오는 내게 처음으로 성경을 가르쳐 준 연구 사회자였습니다. 내게 영적인 조언을 해 주는 본이 되는 친구였죠. 그러다 보니 마우리치오가 그런 일을 저질렀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습니다. 더는 친구로 지낼 수 없을 것만 같아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죠. 혼자 남겨진 것 같았습니다.”

좋은 친구는 소중하지만, 오래도록 지속되는 우정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친구 사이가 위태로워질 때 어떻게 우정을 지킬 수 있습니까? 성경에도 가까운 친구 사이였지만 나중에 우정에 금이 갈 뻔한 사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제 그에게서 어떤 교훈을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친구가 잘못을 저지를 때

영적 목자이자 왕이었던 다윗에게도 좋은 친구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친구라고 하면 요나단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사무엘상 18:1) 하지만 다윗에게는 다른 친구도 있었습니다. 예언자 나단도 다윗의 친구였습니다. 성경은 나단과 다윗이 언제 친구가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친한 친구이 흔히 하듯이 나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다윗은 나단에게 여호와를 위한 집을 짓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왕은 친구이자 여호와의 영이 충만한 사람인 나단의 의견을 중요하게 여겼을 것입니다.—사무엘하 7:2, 3.

하지만 다윗과 나단의 우정에 위기가 닥쳤습니다. 다윗 왕이 밧세바와 간음을 저지르고, 얼마 후에는 그의 남편 우리아를 죽게 만든 것입니다. (사무엘하  11:2-21) 다윗은 오랫동안 여호와께 충성을 유지했고 공의롭게 행동했습니다. 그런 그가 그처럼 끔찍한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선한 왕이었던 다윗이 대체 어떻게 된 것입니까? 자신의 행동이 심각한 잘못인 줄 몰랐단 말입니까? 하느님께 자신의 잘못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이제 나단은 어떻게 할 것입니까? 그 문제에 대해 다른 사람이 왕에게 말을 꺼내게 할 것입니까? 다른 사람도 다윗이 일을 꾸며 우리아를 죽게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나단이 직접 나서서 오랫동안 쌓아 온 우정을 위태롭게 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또한 나단이 그 문제를 거론한다면 자신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었습니다. 이미 다윗은 아무 죄가 없는 우리아를 죽였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나단은 하느님의 대변자였습니다. 그는 예언자인 자신이 침묵을 지킨다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될 것이며 다윗과도 예전 같은 우정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친구인 다윗이 여호와께서 승인하지 않으시는 길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입니다. 왕이 여호와의 길로 돌아오려면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에게는 진정한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나단은 바로 그런 친구였습니다. 나단은 그 문제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목동이었던 다윗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예를 들었습니다. 나단은 하느님의 소식을 전달하면서도, 다윗이 잘못의 심각성을 깨닫고 필요한 행동을 취하려는 마음을 갖도록 도왔습니다.—사무엘하 12:1-14.

당신의 친구가 큰 실수나 심각한 죄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친구의 잘못을 지적하면 우정에 금이 갈 것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혹은 영적 도움을 베풀 수 있는 장로에게 친구의 죄를 알리는 것은 친구를 배신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지 모릅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앞서 언급한 잔니는 과거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사이가 뭔가 달라진 걸 느꼈습니다. 마우리치오가 전과는 달리 속 얘기를 잘 하지 않는 것 같았지요. 그래서 같이 얘기를 해 봐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가 정말 쉽진 않았지요. 이런 걱정이 들었어요. ‘이미 알 만큼 아는 그 친구에게 내가 무슨 말을 하지? 화를 내면 어떻게 하지?’ 하지만 우리가 함께 성서 연구를 할 때 배운 교훈을 떠올리며 말을 꺼낼 용기를 얻었지요. 전에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마우리치오도 용기를 내서 내게 먼저 말을 꺼냈거든요. 우정이 깨질까 봐 걱정이 되긴 했지만 그래도 아끼는 그 친구를 돕고 싶었습니다.”

마우리치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잔니는 진심으로 나를 도우려고 했어요. 그가 옳았지요. 내 잘못으로 인한 결과는 잔니의 탓도 여호와의 탓도 아니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래서 징계를 받아들였고 시간이 흘러 영적으로 회복되었지요.”

친구가 어려움을 겪을 때

다윗에게는 힘든 시기에 충실하게 곁에 머물러 준 다른 벗도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성경에서 “다윗의 친구”라고 말한 후새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16:16; 역대기상 27:33) 후새는 왕의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서 왕의 내밀한 명령을 수행하기도 하는 궁정 관리였을 것입니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이 왕위를 빼앗았을 때,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압살롬 편에 섰지만 후새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후새는 도피하고 있던 다윗 왕에게 갔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신뢰하던 사람과 아들에게 배신을 당해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후새는 다윗에게 계속 충성을 지켰으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압살롬의 음모를 좌절시키기 위한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후새는 단지 궁정 관리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충성스러운 친구였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사무엘하 15:13-17, 32-37; 16:15–17:16.

오늘날 회중에서도 각자가 맡은 역할이나 임명에 관계 없이 형제 자매이 하나로 연합된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감동적입니다. 그은 행동을 통해  사실상 서로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당신을 친구로 여기는 것은 단지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당신이 내게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페데리코 형제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친한 친구인 안토니오의 도움 덕분에 어려운 시기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었습니다. 페데리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토니오가 우리 회중에 이사 오자마자 우리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둘 다 봉사의 종이었고 함께 즐겁게 일했지요. 얼마 안 되어 안토니오는 장로로 임명되었습니다. 안토니오는 친구일 뿐 아니라 영적으로 배울 게 많은 사람이었죠.” 그런데 페데리코는 나중에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는 즉시 영적인 도움을 구했지만 파이오니아와 봉사의 종으로 일할 자격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안토니오는 어떻게 했습니까?

페데리코가 어려움을 겪을 때 친구인 안토니오는 그의 말을 잘 들어 주고 격려해 주었습니다

페데리코는 이렇게 말합니다. “안토니오도 나 못지 않게 힘들어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그는 나를 감정적으로 도와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가 영적으로 회복되기를 진심으로 바랐고 나를 절대 포기하지 않았죠. 내가 영적인 힘을 되찾고 주저앉지 않도록 힘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페데리코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가 원한다면 무엇이든, 심지어 자신이 겪는 마음의 고통에 대해서도 내게 다 터놓고 이야기해 주기를 바랐어요.” 다행히도 페데리코는 시간이 흘러 영적 균형을 되찾았고 나중에 다시 파이오니아와 봉사의 종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은 각자 다른 회중에 있지만 우리 사이는 이전 어느 때보다 가깝습니다.”

배신당했다고 느낄 것인가?

친구가 꼭 필요할 때 친한 친구가 당신을 외면한다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상처가 아주 클 것입니다. 그를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예전만큼 가깝게 지낼 수 있을 것입니까?

예수의 지상 생애가 끝나갈 무렵에 있었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분은 충실한 사도과 많은 시간을 보내셨고 그과 각별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을 친구라고 부르셨습니다. (요한 15:15) 하지만 예수께서  체포되시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사도은 도망쳤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주인을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사람들 앞에서 장담했지만, 바로 그날 밤에 예수를 모른다고 강하게 부인했습니다!—마태 26:31-33, 56, 69-75.

예수께서는 자신이 마지막 시련을 혼자서 맞게 될 것을 이미 알고 계셨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제자에게 버림을 받았을 때는 실망하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부활되고 며칠 후에 제자과 나누신 대화를 보면 실망감, 분노, 서운과 같은 감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체포되시던 날 밤에 제자이 저지른 잘못과 그 밖의 단점을 들추어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그 밖의 사도을 안심시켜 주셨습니다. 그분은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교육 활동에 관한 지침을 제자에게 알려 주심으로 자신이 그을 신뢰한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도을 여전히 친구로 여기셨습니다. 그분이 보이신 사랑에 제자은 잊지 못할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은 다시는 자신의 주인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결국 그은 예수께서 맡기신 일을 완수했습니다.—사도 1:8; 골로새 1:23.

엘비라 자매는 친한 친구인 줄리아나와 문제가 있었던 때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줄리아나가 내 행동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을 땐 정말 마음이 괴로웠죠. 줄리아나가 충분히 화를 낼 만한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줄리아나는 내 걱정부터 먼저 하면서 내가 내 행동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까 봐 염려하더라고요. 자신이 받은 상처를 생각하기보다 내가 해를 입고 있다는 점을 걱정해 준 줄리아나의 행동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기보다 내가 잘 되기를 바라는 친구가 있어서 여호와께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따라서 진정한 친구라면 우정에 위기가 닥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필요하다면 친절하면서도 솔직하게 할 말을 해 줄 것입니다. 좋은 친구는 나단과 후새처럼 힘든 시기에도 충성을 보이고 예수처럼 기꺼이 용서할 것입니다. 당신도 그러한 친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