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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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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수대 (연구용) 2016년  3월

에스겔은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을 상징하는 행동을 하라는 임무를 기꺼이 수행했습니다

예언자들의 태도를 본받으십시오

예언자들의 태도를 본받으십시오

우리는 과거의 예언자과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신세계역」 2013년 개정판 “성경 용어 설명”에서는 예언자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하느님의 목적을 알리는 통로가 되는 사람. 예언자는 하느님의 대변인으로 활동하며, 예언하는 일에 더해 여호와의 가르침과 명령과 판결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다.” 우리는 예언하는 일을 하지는 않지만 하느님을 대변하여 그분의 말씀에 들어 있는 소식을 선포하고 있습니다.—마태 24:14.

사람에게 우리 하느님 여호와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류에 대한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 주는 것은 정말 영예로운 일입니다! 우리는 ‘하늘 한가운데를 날고 있는 천사’와 이 일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계시록 14:6) 하지만 어려움을 겪다 보면 그것이 얼마나 영예로운 일인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너무 지치거나 실망하거나 자신이 무가치하다고 느낄지 모릅니다. 과거의 충실한 예언자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지만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이 임무를 완수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습니다. 몇 사람의 예를 살펴보면서 어떻게 그을 본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운을 다해 힘쓴 사람

하루하루 바쁘게 생활하다 보면 때로는 지쳐서 봉사하러 나갈 기운이 없다고 느껴질지 모릅니다. 물론 우리에게는 휴식이 필요합니다. 예수와 사도도 그러했습니다. (마가 6:31) 하지만 바빌론에 있던 에스겔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예루살렘으로부터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서 임무를 수행해야 했습니다. 한은 하느님께서 에스겔에게 벽돌 한 장을 가져다가 그 위에 예루살렘 도시를 새겨 넣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다음 에스겔은 그 모형 도시에 대한 포위 공격을 상징하는 행동으로, 왼쪽으로 390일 오른쪽으로 40을 누워 있어야 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아라! 내가 너를 밧줄로 묶어서, 네가 포위하는 날수를 다 채울 때까지 몸을 이쪽에서 저쪽으로 돌리지 못하게 하겠다.” (에스겔 4:1-8)  분명 그런 행동은 유배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사람의 주의를 끌었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신체적으로 몹시 힘들었을 그 일을 1년 이상 계속해야 했습니다. 예언자 에스겔은 자신의 임무를 어떻게 완수할 수 있었습니까?

에스겔은 하느님께서 자신을 예언자로 보내신 이유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에스겔을 보내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 그은 자기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었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에스겔 2:5) 에스겔은 자신이 받은 임무의 목적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대한 포위 공격을 상징하는 행동을 하라는 임무를 기꺼이 수행했습니다. 결국 에스겔이 참예언자라는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바빌론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에스겔과 그의 동족은 “그 도시가 함락되었습니다!”라는 보고를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자신들 가운데 예언자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에스겔 33:21, 33.

오늘날 우리는 사탄의 세상 제도 전체가 곧 멸망될 것이라는 경고의 소식을 사람에게 전합니다. 지치고 힘들 때도 있지만 우리는 활력을 다해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고 재방문을 하고 성서 연구를 사회합니다. 이 세상 제도의 종결에 관한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하느님의 목적을 알리는 통로가 되는 사람”으로 일하는 것에 대해 만족감을 느낍니다.

낙담을 이겨 낸 사람

우리가 여호와의 영의 도움을 받으면서 기운을 다해 힘쓰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소식에 대한 사람의 반응 때문에 때때로 낙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언자 예레미야의 본을 떠올리는 것이 좋습니다. 그는 하느님의 소식을 이스라엘 사람에게 선포하면서 조롱과 모욕과 비웃음을 당했습니다. 그로 인해 예레미야는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내가 그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더 이상 그분의 이름으로 말하지 않으리라.” 예레미야는 우리와 같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계속해서 하느님의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예언자는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 마음에서 그 말씀이 마치 뼛속에 갇혀 타오르는 불같이 되었습니다. 제가 그것을 억누르기에 지쳐서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예레미야 20:7-9.

우리도 사람이 좋지 않은 반응을 보여서 낙담이 될 때 우리가 전하는 소식을 묵상해 본다면 그런 감정을 떨쳐 버릴 수 있습니다. 그 소식은 마치 ‘우리 뼛속에 갇혀 타오르는 불’같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매일 읽는 습관을 들인다면 그 불이 우리 안에서 계속 타오르게 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감정을 극복한 사람

일부 그리스도인은 어떤 임명을 받고 자신에게 왜 그런 임명이 주어졌는지 당혹스러워합니다. 예언자 호세아도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명령하셨습니다. “가서, 매춘 행위를 할 여자와 결혼하고 매춘의 자녀을 취하여라.” (호세아 1:2)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이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하느님께서 당신의 신부가 앞으로 매춘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호세아는 그 임무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고멜을 아내로 맞아들였고 고멜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나중에 고멜은 딸 하나와 아들 하나를 더 낳았습니다. 이 두 자녀는 고멜이 간음을 범해 낳은 것으로 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전에 호세아에게 그의 아내가 될 여자가 “정열적인 애인을 쫓아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유의할 만하게도 이 구절에는 “애인들”이라는 복수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그 후 그 여자는 호세아에게 돌아오려고 할 것이었습니다. 당신이 호세아였다면 아내를 다시 맞아들였겠습니까? 여호와께서는 예언자 호세아에게 바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큰 비용을 들여 그 여자를 다시 샀습니다.—호세아 2:7; 3:1-5.

호세아는 자신이 그 일을 해서 무슨 좋은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호세아는 그 상징적 드라마를 자신의 실제 삶에서 충실히 연출했으며, 그 덕분에 우리는 이스라엘이 전능한 하느님을 배신했을 때 그분이 느끼셨을 고통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음이 정직한 일부 이스라엘 사람이 실제로 하느님께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하느님께서는 그 누구에게도 “매춘 행위를 할 여자 결혼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호세아가 그런 임무를 기꺼이 수행한 일에서 우리는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한 가지는 ‘공개적으로 또 집집으로’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개인적으로 어렵다고 느껴져도 기꺼이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20:20) 왕국 전파 활동의 어떤 면은 자신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과 성경을 공부하는 사람 중에는 성경 공부는 좋지만 전파하러 집집을 다니는 일은 절대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들 중 다수는 자신이 결코 못할 것 같다고 한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하는 교훈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습니까?

호세아가 어려운 임무를 받아들인 일에서 또 다른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가 관련된 상징적 드라마를 연출하는 일을 못하겠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호세아가 그에 관해 기록하지 않았다면 그가 그 임무를 받은 사실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여호와에 관해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기회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은 그 일을 모를 수 있습니다. 미국에 사는 고등학생인 애나에게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애나의 교사는 학생에게 자신이 확신하고 있는 어떤 문제에 대해 글을 쓴 다음 반 친구을 설득해 보라고 했습니다. 애나는 증거할 수 있는 그 기회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애나는 그것이 하느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반 친구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상되었기 때문에 애나는 여호와께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아야겠다는 열망이 생겼습니다. 애나는 “진화: 증거를 검토해 보라”라는 제목의 글을 썼습니다.

청소년은 예언자의 태도를 본받아 우리의 창조주이신 여호와를 담대하게 변호합니다

애나가 자기가 쓴 글을 발표하자 진화론을 믿는 한 친구가 애나에게 질문을 퍼부었습니다. 애나는 그 친구가 제기한 반론에 조리 있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교사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가장 설득력 있는 글을 썼다고 애나에게 상을 주었습니다. 그 후로 애나는 이의를 제기했던 그 친구와 창조에 관해 이야기를 더 많이 나누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그 ‘임무’를 받아들였기 때문에 애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젠 겁내지 않고 자신 있게 좋은 소식을 전해요.”

엄밀히 말해 우리가 예언자는 아니지만, 에스겔과 예레미야와 호세아와 같은 예언자의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본받는다면 우리는 여호와의 뜻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가족 숭배나 개인 연구 중에 과거의 예언자에 관해 읽어 보고 어떻게 그을 본받을 수 있는지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어떻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