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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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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여호와의 증인 연감

 조지아 | 1924-1990

집회를 통해 모두가 믿음 안에서 자라 가다

집회를 통해 모두가 믿음 안에서 자라 가다

그리스도인 집회는 새로운 사람이 믿음 안에서 자라 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진리 안에 있었던 사람뿐만 아니라 새로 침례받은 그리스도인까지도 자신의 집을 집회 장소로 기꺼이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집회에 참석한 사람은 모두 따뜻한 환영을 받았는데, 이것 역시 서로에 대한 사랑을 크게 강화해 주었습니다.

연구생이 침례받을 자격을 갖추면 형제은 조심스럽게 특별 모임을 열 계획을 했습니다. 1973년 8에는 흑해 연안에 있는 소후미 외곽에서 그러한 모임이 열렸습니다. 하지만 침례 지원자 35은 이날 침례를 받지 못했습니다! 모임이 채 끝나기 전 경찰이 들이닥쳤고 블라디미르 글라듀크를 포함한 몇몇 형제 자매을 체포해 갔습니다.

블라디미르와 다른 형제은 풀려나자마자 모든 침례 지원자에게 다시 연락을 했습니다. 결국 특별 모임이 있은 지 이틀 후에 지원자은 침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블라디미르는 그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걸 느낄 수 있었죠. 침례 후에 우리는 다 함께 여호와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박해가 좋은 소식이 널리 전해지는 데 도움이 되다

침례가 있은 지 이틀 후에 블라디미르 글라듀크는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나중에 블라디미르와 이타 수다렌코와 나텔라 차르게이슈빌리는 수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습니다. 전도인은 슬퍼했지만 계속 전파하려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좀 더 신중을 기하기로 했습니다.

전도인은 당국의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자기가 사는 곳이 아닌 다른 도시와 마을로 가서 전파했습니다. 박해가 좋은 소식이 더 널리 전해지는 데 도움을 준 셈이 된 것입니다.

공산 치하에서, 큰 도시에 사는 전도인은 사람이 붐비지 않는 거리나 공원에서 증거했습니다. 그런 곳에서는 가족을 방문하거나 쇼핑을 하러 온 다른 지역 사람을 흔히 만날 수 있었습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주소를 물어보고 다시 만날 약속을 했습니다.

조지아 서부 곳곳을 여행하며 전파한 사람들 중에는 바차 제젤라바도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저기 친척이 많아서 자주 여행을 다녀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지요. 2 에는 주그디디에서 20이 넘는 사람과 성서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츠호로츠쿠에서는 5과 연구를 했습니다. 그들 모두 침례를 받았지요.”

조지아어 출판물이 절실히 필요해지다

얼마 안 있어 조지아어로 된 출판물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습니다. 전도인은 재방문을 하거나 성서 연구를 사회할 때 연구생이 가장 잘 이해하는 언어로 된 성경과 성경 출판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차는 조지아어 출판물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러시아어로 된 성경과 출판물밖에 없어서, 성서 연구생에게 연구 자료를 번역해 주어야 할 때가 많았죠.” 바차는 고작 사전 한 권을 가지고 잡지 기사을 조지아어로 번역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전체를 번역하기까지 했습니다!

용기 있는 증인이 소형 등사기를 사용해 집에서 출판물을 생산했습니다

관심자은 모국어로 번역된 기사을 정말 고맙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개인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출판물을 직접 베껴 쓰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조지아어 성경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심지어 일부 연구생은 현대의 성경 “필사자”가 되었습니다.

“하루 종일 베껴 썼어요”

형제과 관심자은 조지아어로 번역된 출판물을 모두가 읽을 수 있도록 서로 돌아가며 읽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출판물을 받으면 며칠에서 몇 주 이내에 읽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형제이 현대 조지아어로 번역된 그리스어 성경을 구하게 되었을 때, 한 가족은 자기 차례에 그 성경을 베껴 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 가족은 카르바 가족이었는데 아버지는 아들인 라울에게 그리스어 성경을 베껴 쓰게 했습니다. 그때 라울의 나이는 13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라울 카르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께서는 공책 한 상자를 사 오셨습니다. 또 제가 그 일에 흥미를 갖도록 다양한 종류의 연필과 볼펜을 사다 주셨죠. 엄두가 나진 않았지만 일단 해 보기로 했습니다. 잠깐씩 손을 풀 때만 빼고는 하루 종일 베껴 썼어요.”

으로 베껴 쓴 조지아어 「파수대」와 「날마다 성경을 검토함」

형제은 모두가 그토록 읽고 싶어 하는 그 성경을 라울의 가족이 몇 주 더 가지고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라울의 가족 너무나 기뻤고 라울은 그 기간에 성경을 베껴 쓰는 엄청난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라울은 두 달 만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27을 모두 베껴 썼습니다!

이렇게 여러 사람이 출판물과 성경을 베껴 쓰는 수고를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늘어나는 성서 연구생의 영적 필요를 온전히 채울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긴급한 필요를 돌보기 위해, 용기 있는 형제 자매은 위험을 무릅쓰고 집에서 성경 출판물을 생산하고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조지아 서부에서의 전파 활동은 빠르게 진척되어 갔습니다. 하지만 동부의 상황은 어떠했습니까? 수도인 트빌리시에도, 앞서 나온 바소 크베니아슈빌리처럼 진지하게 진리를 찾는 사람을 도울 사람이 있었습니까?

 진리가 수도인 트빌리시에 전해지다

1970년대에 소련 당국은 증인의 의지를 꺾기 위해 여러 지역에서 증인을 추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올렉시 쿠르다스와 리디아 쿠르다스 부부도 그런 일을 겪었습니다. 그은 신앙 때문에 여러 해를 소련의 수용소에서 보낸 뒤에 추방되어 트빌리시로 이주해 살게 되었습니다.

라리사 케사예프(구다제), 1970년대의 모습

쿠르다스 부부는 자우르 케사예프와 에테리 케사예프 부부에게 진리를 전해 주었는데 그은 종교심이 매우 깊은 사람이었습니다. 케사예프 부부에게는 라리사라는 딸이 있었습니다. 당시 15였던 라리사는 쿠르다스 부부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정교회가 유일한 참종교라는 걸 증명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안 돼서 금세 할 말이 다 떨어지고 말았죠. 하지만 그 부부는 계속 성경을 근거로 논리적으로 설명했어요.”

라리사는 이렇게 덧붙입니다. “교회에 가면 벽에 있는 두 성화 사이에 적힌 십계명을 늘 읽곤 했지요. 그런데 그날 저녁 올렉시출애굽기 20:4, 5을 읽어 줬을 때 정말 충격을 받았어요. 그날 밤 잠을 이룰 수 없었죠. ‘성화를 숭배하는 게 정말 하느님의 계명을 어기는 걸까?’ 하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라리사는 답을 얻기 위해 다음 날 아침 일찍 교회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 ‘조각한 형상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 그것에게 몸을 굽혀서도 안 된다’라고 적힌 십계명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제서야 하느님이 주신 이 계명의 의미를 처음으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후에 라리사와 그의 부모는 침례를 받았고 트빌리시에서 활동한 최초의 증인들 가운데 포함되었습니다.

 간절히 찾아 헤매던 정의를 마침내 발견하다

바소 크베니아슈빌리는 처음 진리를 접한 지 거의 20이 지나서야 트빌리시에서 여호와의 증인 집회에 참석하는 사람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소는 정말 기뻤습니다. 그토록 간절히 기다려 온 증인과 드디어 재회한 것입니다.

바소 크베니아슈빌리는 처음 진리를 접하고 약 24이 지난 뒤에야 증인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바소가 범죄자로 악명이 높았기 때문에 처음에 그곳 증인은 그를 받아들이기를 꺼렸습니다. 심지어 소련 당국에서 증인을 감시하도록 보낸 스파이일지 모른다면서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소는 4년 동안 그리스도인 집회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바소의 동기가 순수하다는 것이 확실해지자 그는 회중과 연합하고 침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정의가 실현되기를 바란 바소는 마침내 “공의의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30:18) 그처럼 끈기 있는 태도를 보인 바소는 한결같이 여호와를 섬기다 2014에 사망했습니다.

1990년 무렵에는 조지아 서부와 동부 모두에서 전파 활동이 활발히 수행되고 있었으며, 약 900의 전도인이 942의 성서 연구를 사회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있을 놀라운 성장을 위한 기초가 놓인 것입니다.

^ 12항 일찍이 기원 5세기에 성경의 일부분이 조지아어로 번역되기는 했지만 공산 치하에서 성경을 구하기는 쉽지 않았다.—“조지아어 성경” 제하의 내용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