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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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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여호와의 증인 연감

 시에라리온과 기니

1945-1990년 “많은 사람을 의로 이끌다.”—다니엘 12:3. (4부)

1945-1990년 “많은 사람을 의로 이끌다.”—다니엘 12:3. (4부)

문맹 퇴치 활동

1963년 초에 시에라리온을 두 번로 방문한 밀턴 헨첼은 시에라리온 지부가 해결하려고 한동안 노력했던 문제를 언급했습니다. 문맹을 퇴치하기 위해 한층 더 노력을 기울일 것을 형제에게 촉구한 것입니다.

일부 회중에서는 영어로 문맹 퇴치반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헨첼 형제가 방문한 이후로는 학생이 모국어로 읽고 쓸 수 있도록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몇몇 회중은 두세 개의 언어로 학급을 열었습니다. 문맹 퇴치반은 이 나라 전도인 3의 1이 등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1966에 라이베리아의 형제은 그림이 실린 키시어 읽기 교재를 개발했습니다. 교재를 라이베리아 정부 관리에게 보여 주자, 깊은 인상을 받은 관리은 그 교재를 인쇄해서 무료로 배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교재는 기니와 라이베리아와 시에라리온에 배부되어 키시어를 말하는 많은 사람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후에 다른 언어로도 이러한 교재가 개발되거나 편집되어 더 많은 사람이 글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시아는 검정색 끈과 빨간색 끈을 이용해 봉사 기록을 했습니다

문맹 퇴치반은 사람이 읽고 쓰는 법을 배우는 것에 더해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50의 침례받지 않은 전도인이었던 시아 응갈라의 경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글을 몰랐던 그는 검정색 끈과 빨간색 끈을 이용해 봉사 기록을 했습니다. 봉사를 한 시간 하면 검정 끈에 매듭을 하나 만들고, 재방문을 한 건 하면 빨간 끈에 매듭을 만들었습니다. 시아는 문맹 퇴치반에 참석했고 더 나은 방법으로 봉사 기록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잘 발전하여 침례를 받았으며 더욱 효과적으로 전파하고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에라리온과 기니의 많은 회중에서는 요즘도 문맹 퇴치반이 열립니다. 시에라리온 정부의 한 고위 관리는 지부 사무실의 형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성서 교육 활동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서 문맹을 퇴치하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돌들”이 외치다

다양한 부족에서 더 많은 사람이 읽는 법을 배우면서 번역 작업의 필요성이 증가했습니다. 대부분의 부족 사람은 자신의 언어로 된 세속 출판물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교육을 받은 사람은 시에라리온의 경우는 영어로, 기니의 경우는 프랑스어로 글을 읽었습니다. 사람에게 모국어로 된 성서 출판물을 제공하기 위해 형제은 어떻게 했습니까?

1959에 두 명의 길르앗 졸업생이 전도지 하나와 소책자 한 부를 멘데어로 번역했지만 많이 배부하지는 못했습니다. 10년 후에는 「“이 천국의 기쁜 소식”」과 「의로운 새 질서의 소망 가운데서 생활함」 소책자가 키시어로 번역되었습니다. 3만 부가량 배부된 이 소책자은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1975에 지부 사무실은 「파수대」 연구용 기사를 키시어로 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키시족 전도인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한 형제는 이렇게 편지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위해 참으로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학교에 다닌 적이 없지요. 우리는 말할 줄 모르는 돌과도 같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키시어 「파수대」 덕분에 여호와의 위대한 일에 관해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가 19:40) 다른 여러 출판물도 키시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에라리온과 기니 사람은 대부분 영어와 프랑스어로 우리 출판물을 읽으며 회중 집회에서도 그 언어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현지 언어로 된 출판물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제 성서 출판물을 구에르제어, 키시어, 크리오어, 마닌카칸어, 멘데어, 풀라르어, 수수어로도 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영원한 생명을 위해」 팜플렛과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 보십시오」 팜플렛이 이 언어로 나와 있습니다. 사람을 가르치는 데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이 출판물은 글을 잘 읽지 못하는 많은 사람이 성서의 놀라운 소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지부 사무실을 건축하다

1960년대 초에 프리타운의 형제은 새로운 지부 사무실을 건축할 부지를 찾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1965에, 형제은 윌킨슨 가에 있는 부지를 구입했습니다. 그곳은 바다가 내려다보이며 프리타운에서 가장 좋은 거주지로 손꼽히는 곳이었습니다.

왕국회관과 선교인 집과 사무실을 하나의 아름다운 건물로 통합하는 최종 설계도가 완성되었습니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교통량이 많은 윌킨슨 가는 종종 차이 서 있다시피 할 정도로 막혔는데, 차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너도나도 공사 현장을 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1967년 8월 19에 봉헌되었습니다. 봉헌식에는 거의 300이 참석했는데, 그중에는 그 지역의 고위 인사과 1923에 “바이블” 브라운에게 침례받은 오래된 증인도 몇몇 있었습니다.

프리타운 지부 사무실과 선교인 집 (1965-1997년)

새로운 지부 건물은 많은 사람이 여호와의 증인의 활동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게 해 주었습니다. 또한 시에라리온에서 여호와의 증인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 비판적인 일부 종교인의 말이 틀렸음을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 새로운 건물은 여호와의 증인이 건재하다는 분명한 증거였습니다.

열정적인 선교인이 더 큰 성장에 기여하다

야외 봉사 집단이 질퍽한 논을 지나가는 모습

1970년대 중반 이후로 길르앗 훈련을 받은 선교인이 꾸준히 도착했고 시에라리온과 기니의 활동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일부  선교인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에서 봉사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현지 상황에 빨리 적응했습니다. 하지만 아프리카가 처음인 선교인도 있었습니다. “백인의 무덤”이라 불리는 이 지역에서 그은 어떻게 생활했습니까? 몇몇 선교인의 말을 들어 보십시오.

“이곳 사람은 겸손하고 영적으로 목말라 있었어요. 사람이 진리를 배우고 더 나은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큰 만족감을 느꼈지요.”—하넬로레 알트마이어.

“열대 기후와 질병 때문에 힘들었어요. 하지만 마음이 정직한 사람이 여호와를 섬기도록 돕는 기쁨은 그런 어려움을 상쇄하고도 남았지요.”—셰릴 퍼거슨.

“참을성을 기르는 법을 배웠어요. 한 자매에게 손님이 언제 오냐고 물어봤더니 이렇게 대답하더군요. ‘오늘 올 수도 있고 내일 올지도 모르죠. 그다음 날 올 수도 있고요.’ 그 말에 내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던 모양이에요. 그 자매가 ‘그래도 오긴 꼭 올 거예요!’라고 말했거든요.”—크리스틴 존스.

“민족도 문화도 다른 열네 명의 선교인이 프리타운에 있는 선교인 집에서 살았어요. 화장실 두 개, 샤워실 하나, 세탁기 하나, 부엌 하나를 함께 사용했습니다. 식재료는 부족했고 질도 안 좋았지요. 갑자기 전기가 나가곤 했는데 며칠 동안 정전이 되기도 했어요. 우리 중 대부분이 말라리아나 다른 열대 질병에 걸린 적이 있습니다. 최악의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는 함께 잘 지내고 서로를 용서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유머감을 나타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봉사하는 것이 정말 즐거웠고 우리 선교인은 서로 아주 따뜻한 관계를 맺게  되었지요.”—로버트 랜디스와 폴린 랜디스.

성서 연구를 사회하는 폴린 랜디스

“우리는 시에라리온에서 생애 최고의 나날을 보냈지요. 후회나 불만은 전혀 없습니다. 그때가 아주 그리울 뿐입니다.”—벤저민 마틴과 모니카 마틴.

“한은 관심자 집에서 묵은 적이 있는데 이상하게 생긴 요리를 주더군요. 그 여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독사 요리예요. 독니는 잘 뺐으니까 좀 드셔 보세요.’ 우리가 조심스럽게 거절했지만 계속 먹으라고 권하더군요. 그때처럼 난처한 적도 있었지만 우리는 집주인이 베푼 따뜻한 후대에 감사했고 그을 매우 사랑하게 되었습니다.”—프레더릭 모리시와 바버라 모리시.

“43년 동안 선교 봉사를 하면서 100이 넘는 선교인과 함께 생활했지요. 각자 성품은 달라도 같은 목표를 위해 함께 일하는 그 많은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참으로 큰 축복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섬기면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요!”—리넷 피터스.

“하느님의 동료 일꾼으로 섬기면서 사람이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보는 건 정말 기쁜 일이지요!”

1947년 이래로 시에라리온에서는 154명, 기니에서는 88의 선교인이 봉사했습니다. 다른 많은 증인도 전파 활동을 돕기 위해 이곳으로 왔습니다. 현재 시에라리온에는 44명, 기니에는 31의 선교인이 있습니다. 그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과 헌신적인 태도는 수많은 사람의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오랫동안 지부 위원으로 일한 알프레드 건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그에게 애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