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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예수께 용서를 배우다

예수께 용서를 배우다

1. 베드로의 생애에서 최악의 순간은 언제였을 것입니까?

베드로는 그분과 눈이 마주친 그 괴로운 순간을 두고두고 잊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의 눈빛에서 실망하거나 비난하는 기색을 보았습니까? 영감받은 기록은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고만 알려 주기 때문에 자세한 점을 알 수는 없습니다. (누가 22:61) 하지만 그처럼 잠깐 시선이 마주쳤을 때, 베드로는 자기가 얼마나 심각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를 느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예언하신 일, 자기가 결코 하지 않겠다고 장담한 바로 그 일을 방금 저질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주를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때는 베드로에게 몹시 괴로운 좌절의 순간, 어쩌면 생애 최악의 날 최악의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2. 베드로는 어떤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었으며, 그의 이야기를 통해 어떤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2 그렇다고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믿음이 강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실수를 딛고 일어나 예수의 위대한 교훈 한 가지를 배울 기회가 아직 있었습니다. 그것은 용서에 관한 교훈이었습니다. 우리 각자도 동일한 교훈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어떻게 뼈아픈 방법으로 이 교훈을 배우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많이 배워야 했던 사람

3, 4. (ㄱ) 베드로는 예수께 무슨 질문을 했으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당시 만연한 태도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어떻게 일깨워 주셨습니까?

3 약 6개월 전에, 베드로는 자신이 살았던 가버나움에 있을 때 예수께 다가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주여, 형제가 제게 죄를 지으면 그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입니까?” 아마 베드로는 자기가 너그러운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사실, 당시 종교 지도자은 단지 세 번만 용서하면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일곱 번까지가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 하십시오.”—마태 18:21, 22.

4 예수의 말씀은 사람이 저지르는 잘못을 베드로가 일일이 기록해 놓아야 한다는 뜻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분은 베드로가 말한 일곱 번을 일흔일곱 번으로 바꾸심으로, 사랑이 있는 사람은 몇 번까지 용서해야 하는지 한도를 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고린도 첫째 13:4, 5) 당시에는 장부를 펴 놓고 따지듯이 좀처럼 용서해 주지 않는 몰인정한 태도가 만연해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그런 태도에 영향을 받았음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기꺼이 너그럽게 용서해야 합니다.요한 첫째 1:7-9 낭독.

5. 흔히 용서에 관해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때는 언제입니까?

5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의 교훈이 정말 그의 마음에 와 닿았습니까? 흔히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용서가 절실하게 필요을 실감할 때 용서에 관해 가장 많이 배웁니다. 이제 예수께서 죽으시기 직전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힘들었던 이 시기에, 베드로는 주 예수께 용서받아야 할 잘못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용서받을 일이 더 많아지다

6. 예수께서 사도에게 겸손에 관해 가르쳐 주시려고 했을 때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를 어떻게 대하셨습니까?

6 이날 저녁은 아주 중요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직도 사도에게 가르쳐 주실 것이 많았으며, 그 가운데는 겸손에 관한 교훈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겸손하게 그의 발을 씻어 주심으로 본을 보이셨는데, 그 일은 보통 가장 낮은 종이 하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에 베드로는 예수의 행동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그분의 제의를 거절했습니다. 그러더니 그다음에는 예수께 자기 발뿐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달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참을성을 잃지 않으시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과 의미를 차분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요한 13:1-17.

7, 8. (ㄱ) 베드로는 또다시 예수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어떤 행동을 했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어떻게 친절하게 용서하는 태도를 계속 나타내셨습니까?

7 하지만 조금 후에 베드로는 또다시 예수의 참을성을 시험하는 행동을 했습니다. 사도은 자기들 중에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놓고 말다툼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의 교만을 드러내는 그 부끄러운 일에 분명 베드로도 한몫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친절하게 그을 시정해 주시고, 그이 잘한 일 즉 충실하게 주의 곁에 머무른 것에 대해 칭찬까지 해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께서는 그들 모두가 그분을 버릴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베드로는 죽는 한이 있어도 예수를 버리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날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베드로가 자기 주를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예수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자기가 나머지 모든 사도보다 더 충실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습니다!—마태 26:31-35; 마가 14:27-31; 누가 22:24-28; 요한 13:36-38.

8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계속 참을성을 보이셨습니까? 사실, 이 힘든 시간 내내 예수께서는 불완전한 사도에게서 좋은 점을 계속 찾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그분을 저버릴 것을 아셨지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당신 믿음이 없어지지 않도록 당신을 위하여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일단 돌아오거든, 당신의 형제을 강하게 하십시오.” (누가 22:32) 이와 같이,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영적으로 회복되어 다시 하느님을 충실하게 섬길 것이라는 확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참으로 친절하게 용서하는 태도가 아닙니까!

9, 10. (ㄱ) 겟세마네 동산에서 베드로는 어떤 시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습니까? (ㄴ) 베드로의 경우는 우리에게 무슨 사실을 생각나게 해 줄 수 있습니까?

9 그 후 겟세마네 동산에서도, 베드로에게는 여러 차례 시정이 필요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자신이 기도하는 동안 깨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감정적 고통을 겪으셨고 지원이 필요했는데도, 베드로와 사도은 몇 번이나 잠들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을 이해하고 용서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영은 물론 간절하지만 육신이 약합니다.”—마가 14:32-41.

10 얼마 안 있어, 횃불을 들고 칼과 몽둥이로 무장한 무리가 나타났습니다. 이때는 조심성 있고 슬기롭게 행동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경솔하게도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머리에 칼을 휘둘러 그의 한쪽 귀를 잘라 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침착하게 베드로의 잘못을 바로잡으시고 말고를 치료해 주신 다음, 오늘날까지도 제자에게 지침이 되는 한 가지 원칙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폭력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마태 26:47-55; 누가 22:47-51; 요한 18:10, 11) 이미 베드로는 주께 용서받아야 할 잘못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의 경우를 보면, 우리 모두 거듭거듭 죄를 짓는다는 사실이 떠오를지 모릅니다. (야고보 3:2 낭독) 우리 가운데 하루라도 하느님의 용서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하지만 베드로에게 그날 밤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최악의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저지른 가장 큰 잘못

11, 12. (ㄱ) 예수가 체포되신 후 베드로는 어떻게 상당한 용기를 나타냈습니까? (ㄴ) 베드로의 행동은 그가 장담했던 것과는 어떻게 달랐습니까?

11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그이 찾고 있는 사람이 자신이라면 사도은 가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무리가 예수를 묶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사도과 함께 달아났습니다.

12 달아나던 베드로와 요한은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그곳은 예수께서 심문받기 위해 처음으로 끌려가신 곳 즉 이전에 대제사장이었던 안나스의 집 근처였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다른 곳으로 끌려가시자, 베드로와 요한은 “멀찍이 떨어져서” 예수를 따라갔습니다. (마태 26:58; 요한 18:12, 13) 베드로는 겁쟁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따라가는 데는 분명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 무리는 무장하고 있는 데다, 베드로는 이미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부상을 입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 베드로가 나타내겠다고 장담했던 충성스러운 사랑, 다시 말해 필요하다면 주 곁에서 죽겠다던 자진성은 그에게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마가 14:31.

13. 그리스도를 올바로 따르는 유일한 방법은 무엇입니까?

 13 베드로처럼 오늘날 많은 사람도 그리스도를 “멀찍이 떨어져서” 곧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는 방법으로 따르려고 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베드로 자신이 기록했듯이, 그리스도를 올바로 따르는 유일한 방법은 그분께 가능한 한 밀접히 고착하면서, 결과가 어떠하든 모든 일에서 그분을 본받는 것입니다.—베드로 첫째 2:21 낭독.

14. 베드로는 예수의 재판이 진행되던 날 밤을 어떻게 보냈습니까?

14 베드로는 조심스럽게 쫓아가다가, 마침내 예루살렘에서 손꼽히는 으리으리한 저택의 대문 앞까지 왔습니다. 바로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이었습니다. 그런 집은 대개 건물 한가운데에 뜰이 있고 정면에 대문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대문까지 갔지만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을 알고 있었던 요한은 이미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요한은 와서 문지기에게 말하여 베드로를 들여보내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요한을 바짝 따라가지도, 주의 곁에 있기 위해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하지도 않은 것 같습니다. 그는 뜰에 머물렀습니다. 뜰에서 얼마의 종과 하인은 예수에 대한 거짓 증인이 집 안에서 진행되고 있는 재판에 줄줄이 들어가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밝게 타는 불 앞에서 쌀쌀한 그 밤을 보내고 있었습니다.—마가 14:54-57; 요한 18:15, 16, 18.

15, 16.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이라고 하신 예수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설명해 보십시오.

15 그런데 대문에서 베드로를 들여보낸 하녀가 불빛 덕분에 그를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녀는 베드로를 알아보고는 “당신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지요!”라고 따졌습니다. 당황한 베드로는 예수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했습니다. 심지어 하녀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람의 눈을 피해 대문 가까운 쪽으로 가서 있었는데, 또 다른 여자가 그를 알아보고는 “이 사람은 나사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라고 같은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맹세를 하며 “나는 그 사람을 모르오!”라고 말했습니다. (마태 26:69-72; 마가 14:66-68) 아마 베드로는 두 번로 예수를 부인한 후에 닭이 우는 소리를 들었겠지만, 너무 정신이 없어서 바로 몇 시간 전에 예수께서 하신 예언이 생각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16 그 후에도 베드로는 계속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그런데 뜰에 모여 서 있던 한 무리의 사람이 다가왔습니다. 그들 중 한 사람은 베드로가 부상을 입힌 말고라는 종의 친척이었는데, 그가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와 함께 동산에 있는 것을 내가 보지 않았소?” 베드로는 어떻게든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납득시켜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필시 베드로는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베드로는 예수를 세 번 부인했습니다. 그의 입에서 말이 나오기 무섭게 닭이 울었습니다. 그날 밤 베드로가 두 번로 들은 닭 울음소리였습니다.—요한 18:26, 27; 마가 14:71, 72.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셨다”

17, 18. (ㄱ) 베드로는 자기가 주를 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어떻게 행동했습니까? (ㄴ) 베드로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릅니까?

 17 예수께서는 방금 전에 뜰이 내려다보이는 난간으로 나와 계셨습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대로, 그때 그분과 베드로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 순간 베드로는 자기가 배은망덕하게도 주를 저버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베드로는 죄책감에 짓눌린 채 뜰에서 나왔습니다. 도시의 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는데, 넘어가는 보름달이 길 앞을 비추었습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눈의 광경이 어른어른 흔들렸습니다. 그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몹시 울었습니다.—마가 14:72; 누가 22:61, 62.

18 이와 같이 심각한 잘못을 깨닫게 되는 사람은 자신의 죄가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가 매우 쉽습니다. 베드로도 자신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과연 그 생각이 맞았습니까?

베드로는 용서받을 수 없었는가?

19.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 것이며, 하지만 그가 절망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19 다음 날 동이 트고 예수께서 겪으시는 일을 보면서 베드로는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마음이 괴로웠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여러 시간 고통을 당하시고 그날 오후에 죽으셨을 때 틀림없이 베드로는 스스로를 몹시 자책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주 예수의 인간 생애 마지막 날이 된 그날 자기가 주의 고통을 가중시킨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을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가슴에 사무치도록 슬퍼한 것은 사실이지만 절망에 빠지지는 않았습니다. 얼마 후 그가 영적 형제과 함께 있었다는 기록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24:33) 의문의 여지없이 사도은 모두 자기이 그 암울했던 밤에 한 행동을 후회하고 서로에게서 어느 정도 위로를 얻었을 것입니다.

20. 베드로의 훌륭한 행동을 통해 어떤 점을 배울 수 있습니까?

20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훌륭한 일면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잘못이 얼마나 심각한가가 아니라, 다시 일어나서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그의 결심이 얼마나 강한가 하는 것입니다. (잠언 24:16 낭독) 베드로는 기분이 몹시 우울했음에도 형제과 함께 모임으로 진정한 믿음을 나타냈습니다. 슬픔과 후회의 감정에 짓눌리게 되면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입니다. (잠언 18:1) 동료 신자과 가까이 지내면서 영적인 힘을 다시 찾는 것이 지혜로운 행동입니다.—히브리 10:24, 25.

21. 베드로는 영적 형제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어떤 소식을 들었습니까?

 21 베드로는 영적 형제과 함께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시신이 무덤에서 사라졌다는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가 매장되고 그 입구가 봉인되어 있던 무덤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마 더 젊었을 요한이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는 무덤의 입구가 열려 있는 것을 보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숨이 가빴는데도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무덤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요한 20:3-9.

22. 어떤 일로 인해 베드로의 마음에서 슬픔과 의심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까?

22 베드로는 예수께서 부활되셨다는 사실을 믿었습니까? 처음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천사이 나타나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셨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고 충실한 여자이 이야기했는데도 말입니다. (누가 23:55–24:11) 그렇지만 그날이 끝날 무렵, 베드로의 마음에서 슬픔과 의심이 씻은 듯이 사라졌습니다. 예수께서 살아 계시고, 이제 위력 있는 영이 되신 것입니다! 그분은 모든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그에 앞서 한 사람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날 사도은 “주께서 실제로 일으킴을 받으셨으며 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24:34) 이와 비슷하게, 나중에 사도 바울도 그 놀라운 날에 관해 기록하면서 예수께서 “게바에게,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첫째 15:5) 게바와 시몬은 베드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날 베드로에게, 아마도 그가 혼자 있을 때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께 용서받아야 할 잘못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루라도 용서받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누구이겠습니까?

23. 오늘날 죄에 빠지게 된 그리스도인은 왜 베드로의 경우를 기억해야 합니까?

23 성서는 예수와 베드로가 재회한 그 감동적인 순간에 대해 세부점을 알려 주지 않습니다. 예수와 베드로 외에는 그때 있었던 자세한 일을 알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사랑하는 주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보고 또 자신의 슬픔과 회개를 표현할 기회를 갖게 되어 얼마나 감개무량했을지 우리는 상상만 할 수 있을 따름입니다. 그 무엇보다도 베드로는 용서받기를 원했습니다. 예수께서 그를 용서하셨다는 데는, 그것도 너그럽게 용서를 베푸셨다는 데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늘날 죄에 빠지게 된 그리스도인도 베드로의 경우를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용서를 받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결코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를 완벽하게 반영하십니다. 따라서 그분의 아버지도 “너그러이 용서하실” 것입니다.—이사야 55:7.

가 용서받았다는 또 다른 증거

24, 25. (ㄱ)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았던 밤을 묘사해 보십시오. (ㄴ) 다음 날 아침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자 베드로는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4 예수께서는 사도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은 그곳에서 예수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그은 그곳에 도착했고, 베드로는 갈릴리 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기로 했습니다. 몇몇 사람이 그와 함께 나갔습니다. 다시 한 번, 베드로는 이전에 많은 시간을 보냈던 호수 위에 있게 되었습니다. 배의 삐걱거리는 소리, 철썩거리는 파도, 손에 닿는 꺼칠꺼칠한 그물의 감촉, 분명 그는 이 모든  이 정겹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은 그날 밤에 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했습니다.—마태 26:32; 요한 21:1-3.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려 물가까지 헤엄쳐 갔습니다

25 그런데 새벽에 누군가가 물가에서 그을 부르면서 그물을 배 반대편에 던져 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대로 했더니 153마리나 되는 엄청난 양의 물고기가 잡혔습니다! 베드로는 그분이 누군지 알아챘습니다. 베드로는 배에서 뛰어내려 물가까지 헤엄쳐 갔습니다. 해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충실한 벗에게 숯불에 구운 물고기로 식사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베드로에게 주의를 기울이셨습니다.—요한 21:4-14.

26, 27. (ㄱ)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 무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온전히 용서하셨다는 어떤 증거를 주셨습니까?

 26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것보다” 자신의 주를 더 사랑하느냐고 물으셨는데, “이것들”은 아마 방금 잡은 많은 물고기를 가리켰을 것입니다. 베드로의 마음에서 고기잡이 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예수에 대한 사랑이 밀려날 것입니까? 이제 예수께서는 주를 세 번 부인했던 베드로에게 동료들 앞에서 그의 사랑을 세 번 확언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확언하자, 예수께서는 그 사랑을 어떻게 보일 수 있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다른 모든 것보다 신성한 봉사를 앞자리에 두고, 그리스도의 양 떼 즉 그분의 충실한 제자을 먹이고 강화시키고 돌봄으로써 그 사랑을 보일 수 있었습니다.—누가 22:32; 요한 21:15-17.

27 그렇게 하여,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여전히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에게 유용한 사람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는 회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온전히 용서하셨다는 참으로 확실한 증거가 아닙니까! 분명 베드로는 그분의 자비에 감동을 받았으며, 이 경험을 통해 배운 교훈을 마음에 새겼을 것입니다.

28. 베드로는 어떻게 자신의 이름에 걸맞는 삶을 살았습니까?

28 베드로는 여러 해 동안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습니다.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 밤에 지시하신 대로 그는 형제을 강하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친절하고 참을성 있게 그리스도의 제자을 돌보고 먹이는 일을 했습니다. 시몬이라 불리는 그는 변함없이 든든하고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되어 회중에 좋은 영향을 미침으로, 예수께서 바위라는 뜻으로 지어 주신 베드로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았습니다. 그 점을 지지하는 많은 증거가 베드로가 형제에 대한 개인적 관심에서 우러나와 쓴 애정 넘치는 두 통의 편지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 편지은 성서의 귀중한 책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편지은 베드로가 용서에 관해 예수께 배운 교훈을 결코 잊지 않았음을 보여 줍니다.—베드로 첫째 3:8, 9; 4:8 낭독.

29. 베드로의 믿음과 그의 주이신 예수의 자비를 어떻게 본받을 수 있습니까?

29 우리도 그 교훈을 배워야겠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느님께 우리의 많은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청합니까? 그런 다음에는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용서를 통해 우리가 깨끗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습니까? 그에 더해 우리도 주위에 있는 사람을 용서합니까? 그렇게 한다면, 베드로의 믿음을 본받고 그의 주이신 예수의 자비도 본받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