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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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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길, 진리,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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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과 죄에 대해 교훈하시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과 죄에 대해 교훈하시다

마태복음 18:6-20 마가복음 9:38-50 누가복음 9:49, 50

  •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에 관한 교훈

  • 형제가 죄를 지을 경우

방금 예수께서는 제자이 가져야 할 태도가 무엇인지 실례로 보여 주셨습니다. 제자은 자신을 아이처럼 겸손하고 아무런 지위가 없는 사람으로 보아야 합니다. 제자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런 어린아이를 받아들여야 하며, 그렇게 하면 예수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마태복음 18:5.

최근에 사도은 누가 가장 큰 자인지를 놓고 논쟁을 벌였기 때문에, 예수의 그 말씀을 일종의 책망으로 받아들일지 모릅니다. 이제 사도 요한은 얼마 전에 일어난 어떤 사건을 이야기합니다.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을 사용해 악귀을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와 함께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습니다.”—누가복음 9:49.

요한은 오직 사도만 사람의 병을 고쳐 주고 악귀을 쫓아내도록 권위를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까? 그렇다면 그 유대인 남자는 어떻게 악한 영을 쫓아낼 수 있습니까? 요한은 그 남자가 예수와 사도과 함께 다니지 않기 때문에 기적을 행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요한이 놀랄 만하게도, 예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막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곧바로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이유로 여러분에게 물 한 잔을 주어 마시게 하는 사람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마가복음 9:39-41.

사실, 이 시점에 그 사람이 예수 편에 서려고 꼭 그리스도와 함께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 그리스도인 회중이 구성되지 않았으므로, 그 사람이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는다고 해서 그가 반대자라거나 거짓 종교를 조장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 사람은 분명히 예수의 이름에 믿음을 보이며, 예수의 말씀으로 볼 때 자기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사도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그 사람이 걸려 넘어진다면 이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일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중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이 목에 달린 채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마가복음 9:42) 그런 다음, 손이나 발이나 눈처럼 소중한 어떤 것이 제자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것을 없애 버려야 한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그처럼 소중한 것 없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그런 것을 갖고 게헨나(힌놈 골짜기)에 가는 것보다 더 낫습니다. 사도은 예루살렘 근처에서 쓰레기를 태우는 곳인 이 골짜기를 보았을 것이므로, 이 말이 영원한 멸망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여러분은 이 작은 이들 중에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하늘에 있는 그의 천사이 ···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뵙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그처럼 “작은 이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십니까? 예수께서는 양 100마리 중에 한 마리를 잃은 사람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 사람은 양 99마리를 남겨 두고 잃어버린 양을 찾아 나섭니다. 그 양을 찾자, 남겨 둔 99마리보다 그 한 마리를 두고 더 기뻐합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덧붙여 말씀하십니다. “이 작은 이들 중에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일이 아닙니다.”—마태복음 18:10, 14.

아마도 예수께서는 누가 가장 큰 자일 것인가에 대해 사도이 논쟁한 것을 생각하면서 이렇게 권하십니다. “여러분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마가복음 9:50) 소금은 음식에 맛을 더해 줍니다. 비유적인 소금도 우리가 하는 말을 더 쉽게 받아들이게 하여 평화를 보존하게 해 줄 수 있습니다. 논쟁으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골로새서 4:6.

하지만 때때로 심각한 문제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를 예수께서는 이렇게 알려 주십니다. “당신의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당신과 그 형제만 있는 자리에서 그의 잘못을 드러내십시오. 그가 당신의 말을 들으면, 당신은 그 형제를 얻은 것입니다.” 그 사람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 예수의 조언은 이러합니다. “한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십시오. 그것은 두세 증인의 증언으로 모든 일이 확증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회중”에게 즉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책임 있는 장로에게 말해야 합니다. 그래도 그 죄인이 듣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를 유대인이 교우 관계를 갖지 않는 “이방 사람이나 세금 징수원같이 여”겨야 합니다.—마태복음 18:15-17.

회중의 감독자은 하느님의 말씀에 고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이 죄인에게 잘못이 있고 징계가 필요하다고 본다면, 그의 판결은 “하늘에서 이미 묶여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감독자이 보기에 그가 잘못이 없다면, 그 판결은 “하늘에서 이미 풀려 있는” 것입니다. 이런 지침은 그리스도인 회중이 일단 구성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처럼 심각한 문제를 검토할 때,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그곳에는 나도 그들 가운데 있습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마태복음 18:18-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