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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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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가까이 가십시오

 1

“보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보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1, 2. (ㄱ) 당신은 하느님께 어떤 질문을 하고 싶습니까? (ㄴ) 모세는 하느님께 어떤 질문을 하였습니까?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우주의 주권자께서 바로 나에게 말씀을 하시다니—생각만 해도 외경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입니다! 처음에는 주저하겠지만, 당신은 곧 하느님의 말씀에 응답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의 말을 잘 들으시고 대답도 해 주시며, 심지어는 당신이 원하는 질문은 무엇이든 할 수 있게까지 해 주십니다. 그럴 경우, 당신은 무슨 질문을 하고 싶습니까?

2 오래 전에, 바로 그런 입장에 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모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느님께 한 질문을 들어 보면 당신은 아마 놀랄 것입니다. 그가 한 질문은 자기 자신이나 자신의 장래 혹은 더 나아가 인류가 처한 곤경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당신은 아마 의아하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모세가 이미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질문에는 틀림없이 좀 더 깊은 의미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실, 그것은 모세가 할 수 있었던 가장 의미심장한 질문이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모두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그것은 당신이 하느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 매우 중요한 단계를 밟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러합니까? 그 주목할 만한 대화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3, 4. 어떤 일로 인해서 모세는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으며, 하느님과 모세 사이에는 어떤 대화가 오갔습니까?

3 모세의 나이는 80였습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는 자기 민족 이스라엘 사람을 떠나 망명 생활을 한 지 벌써 40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인의 양 떼를 돌보던 중에 이상한 현상을 하나 목격하였습니다. 어떤 가시덤불에 불이 붙어 있는데도 타 없어지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 가시덤불에 계속 붙어 있는 불은 산중턱에서 횃불처럼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좀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 다가갔습니다. 그런데 불 가운데서 자기에게 말을 거는 음성 들려왔을 때 그는 틀림없이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그 후, 대변인 역할을 하는 천사를 통하여 하느님과 모세는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아마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그곳에서 하느님께서는 주저하는 모세에게 평온하게 지내던 생활을 청산하고 이집트로 돌아가 이스라엘 사람을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탈출 3:1-12.

4 그때 모세는 하느님께 무슨 질문이든지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정작 어떤 질문을 하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제가 이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그에게 ‘여러분의 조상의 하느님께서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셨습니다’ 하고 말할 때에, 그이 제게 ‘그분의 이름이 무엇이오?’ 하면, 제가 그에게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탈출 3:13.

5, 6. (ㄱ) 모세의 질문은 우리에게 단순하면서도 매우 중요한 어떤 진리를 가르쳐 줍니까? (ㄴ)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에 대하여 질책받아 마땅한 어떤 일이 자행되어 왔습니까? (ㄷ) 하느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인류에게 밝혀 오신 것이 매우 의미심장한 일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5 이 질문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에게 이름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성서 번역판에서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빼 버린 다음 “주”나 “하느님”과 같은 칭호로 대치시켜 놓았습니다. 이것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가장 유감스럽고 가장 강력한 질책을 받아 마땅한 일 중의 하나입니다. 사실, 당신이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그 사람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습니까? 하느님을 아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도저히 알 수 없거나 이해할 수 없는, 이름도 없는 냉엄한 분이 아닙니다. 비록 볼 수는 없지만, 인격체로서 여호와라는 이름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6 만 아니라, 하느님께서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밝히실 때는, 주목할 만한 가슴 설레는 일이 곧 벌어지게 됩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그분을 알도록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최상의 선택을 하여 그분에게 가까이 오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알려 주시는 것 이상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분이 실제로 어떤 분인지에 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의 의미

7. (ㄱ)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까? (ㄴ) 모세가 하느님께 그분의 이름에 대해 질문하였을 때 그가 실제로 알고 싶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7 여호와께서는 의미가 풍부한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택하셨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그분은 되게 하신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분은 온 우주에서 그 누구와도 비할 수 없는 분입니다.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하셨고 자신의 모든 목적이 이루어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생각하면 정말 외경심이 생깁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이름의 의미는 그러한 점만을 부각시킵니까? 모세는 그보다 더 많은 점을 알고 싶어하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는 여호와가 창조주라는 것도, 여호와가 그분의 이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이름은 그때 처음으로 알려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 이름은 이미 여러 세기 동안 사람에 의해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모세가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 질문할 때 그가 정작 질문하고 있었던 것은,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그분이 실제로 어떠한 분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당신에 대해 무엇이라고 알려 주어야, 당신에 대한 믿음을 세워 줄 수 있겠으며, 당신이 참으로 그을 구출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시켜 줄 수 있겠습니까?’

8, 9. (ㄱ)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셨으며, 그분의 대답은 종종 어떤 식으로 잘못 번역됩니까? (ㄴ) “나는 될 자가 될 것이다”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8 에 대한 답으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성품 가운데 감동적인 한 가지 부면을 설명해 주셨는데, 그것은 그분의 이름의 의미와 관련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될 자가 될 것이다.” (탈출 3:14) 많은 성서 번역판에는 이 구절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주의 깊이 번역한 표현을 보면, 하느님께서 단순히 자신의 존재를 확인시켜 주고 계셨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약속을 성취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바로 그것이 ‘되실’ 것을 즉 기꺼이 그것이 되어 주실 것을 모세에게—더 나아가 우리 모두에게—가르치고 계셨던 것입니다. J. B. 로더럼의 번역판은 이 구절을 적절하게도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되겠다.” 성서 히브리어 한 권위자는 이 구절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상황이 어떠하든 필요한 것이 무엇이든, ··· 하느님께서는 그 필요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되실’ 것이다.”

9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에게 무엇을 의미하였습니까? 그들 앞에 어떤 장애물이 놓여 있든, 그이 얼마나 심한 곤경에 처하게 되든, 여호와께서는 그을 노예 상태에서 구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데려오시기 위해 필요한 바로 그것이 되실 것입니다. 확실히 그 이름은 하느님에 대한 확신을 고취시켜 주었습니다. 그 이름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확신을 고취시켜 줄 수 있습니다. (시 9:10)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11. 여호와라는 이름은 어떻게 우리가 그분을 융통성이 가장 뛰어난 아버지이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로 여기도록 권합니까? 예를 들어 설명하십시오.

10 를 들어, 부모은 자녀을 돌볼 때 얼마나 융통성과 적응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단 하루 동안에도, 아버지나 어머니는 간호사, 요리사, 교사, 징계자, 판사 등의 역할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자기이 이행할 것으로 기대되는 그 수많은 역할로 인해 난감해하는 부모이 많습니다. 부모은 어린 자녀이 자기에게 절대적인 믿음을 나타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아빠나 엄마가 아픈 곳도 낫게 해 주고, 무슨 논쟁이든 다 해결해 주고, 부서진 장난감도 고쳐 주고, 알고 싶은 게 많아 머릿속에 끝없이 떠오르는 온갖 질문에도 대답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을 자녀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일부 부모는 자기의 한계로 인해 자신이 없다고 느끼거나, 이따금 좌절감을 느낄 때도 있습니다. 그은 그 많은 역할을 수행하기에는 통탄스러울 정도로 자격이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11 여호와 역시 사랑 많으신 아버지이십니다. 하지만 그분 자신의 완벽한 표준의 틀 내에서, 지상의 자녀을 가능한 한 최상의 방법으로 돌보기 위해 그분이 되실 수 없는 것아무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그분의 이름 여호와는 우리가 그분을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로 여기도록 권합니다. (야고보 1:17) 모세를 비롯한 모든 충실한 이스라엘 사람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에 걸맞게 행동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패배를 모르는 사령관, 모든 자연의 힘을 자유자재로 이용하시는 분, 비길 데 없이 훌륭한 입법자, 재판관, 건축가, 식품과 물을 마련해 주시는 분, 의복과 신발이 해어지지  않게 보존해 주시는 분 등이 되시는 모습을 그은 외경심을 가지고 지켜보았습니다.

12. 여호와에 대한 파라오의 태도는 모세의 태도와 어떻게 달랐습니까?

12 하느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알리셨고, 그 이름으로 대표되는 분이 실제로 어떤 분인지에 대해 감동적인 점을 밝혀 주셨으며, 심지어 자신에 관해 밝히신 점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어떤 반응을 나타내야 합니까? 모세는 하느님을 알고 싶어하였습니다. 그러한 강렬한 욕망은 모세의 인생 행로를 틀 잡아 주었고, 그가 하늘의 아버지께 매우 가까이 가도록 해 주었습니다. (민수 12:6-8; 히브리 11:27) 유감스럽게도, 모세와 동시대의 사람들 중에는 그러한 욕망을 가진 사람이 매우 적었습니다. 모세가 파라오에게 여호와라는 이름을 언급하며 말하였을 때, 그 거만한 이집트의 왕은 이렇게 대꾸하였습니다. “여호와가 누구[냐]?” (탈출 5:2) 파라오는 여호와에 대해 더 이상 알고 싶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중요하지 않은 존재 혹은 자기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존재인 것처럼 냉소적으로 배척하는 태도를 나타냈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러한 견해를 매우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견해 때문에 모든 사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사실 가운데 하나, 즉 여호와께서 주권자인 주라는 사실이 사람의 눈에 가려져 있습니다.

주권자인 주 여호와

13, 14. (ㄱ) 성서에 여호와께서 가지고 계신 많은 칭호가 나오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한 칭호 가운데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 14면 네모 참조) (ㄴ) 여호와께서만 유일무이하게 “주권자인 주”라고 불릴 자격을 갖추고 계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3 여호와는 융통성과 적응력이 매우 뛰어나신 분이므로, 성경에 나오는 그 많은 칭호를 가지고 계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그러한 칭호이 그분의 고유한 이름을 무의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분의 이름이 의미하는 것과 관련하여 더 많은 점을 가르쳐 줍니다. 예를 들면, 그분은 “주권자인 주 여호와”라고 불립니다. (사무엘 둘째 7:22) 성서에 수백 번 나오는 이 위엄 있는 칭호는 여호와의 지위를 알려 줍니다. 그분만이 온 우주의 통치자가 되실 권리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14 여호와는 유일무이한 창조주이십니다. 계시록 4:11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우리 하느님 여호와여, 당신은 영광과 영예와 권세를 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으며, 그것은 당신의 뜻으로 말미암아 존재하였고 또 창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중한 표현은 다른 어느 누구에게도 적용될 수 없습니다. 우주에 있는 모든 것은 여호와 덕분에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여호와는 주권자인 주이자 만물의 창조주로서 받으셔야 할 영예와 권세와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입니다.

15. 여호와께서 “영원하신 왕”이라고 불리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5 여호와께만 전적으로 적용되는 또 하나의 칭호는 “영원하신 왕”입니다. (디모데 첫째 1:17; 계시 15:3) 이 칭호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한계가 있는 우리의 정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여호와는 양 방향으로—과거로나 미래로—영원하신 분입니다. 시편 90:2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한정 없는 때부터 한정 없는 때까지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 따라서 여호와는 시작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항상 존재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합당하게도 “옛날부터 계신 분”이라고 불리시는데, 우주 내에 있는 다른 그 누구 혹은 다른 그 어떤 것이 존재하기 전부터 영원토록 존재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니엘 7:9, 13, 22) 주권자인 주가 되실 그분의 권리에 누가 정당하게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습니까?

16, 17. (ㄱ) 우리가 여호와를 볼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러한 사실로 인해 놀라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어떤 의미에서, 여호와는 우리가 보거나 만질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실재적인 분입니까?

16 하지만 파라오처럼 그분의 그러한 권리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실제로 있습니다. 의문을 제기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불완전한 인간은 자기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지나치게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권자인 주를 볼 수 없습니다. 그분은 영으로 존재하시는 분으로서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분입니다. (요한 4:24) 뿐만 아니라, 살과 피를 가진 인간이 만일 여호와 하느님이 계신 바로 그 앞에 서게 된다면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친히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나의 얼굴을 볼 수 없다. 나를 보고도 살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탈출 33:20; 요한 1:18.

17 이 말씀에 놀라서는 안 됩니다. 모세는 여호와의 영광의 일부만을 보았는데, 아마 천사 대표자를 통해서 보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그 후 얼마 동안 모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은 모세의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탈출 33:21-23; 34:5-7, 29, 30) 그러므로 일개 인간이 모든 영광 중에 계신 주권자인 주를 직접 쳐다볼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이것은 그분이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과는 달리 실재적인 분이 아니라는 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볼 수 없는 많은 것들—예를 들면, 바람, 전파, 생각—의 실재성을 어렵지 않게 인정합니다. 더욱이, 여호와는 시간의 흐름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우리로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오랜 세월을 영구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분은 우리가 만지거나 볼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실재적인 분입니다. 물질계는 시간의 영향을 받아 썩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마태 6:19) 그러면 그분을 단지 추상적이고 인격적인 특성이 없는 어떤 힘 혹은 막연한 제일 원인으로 생각해야 합니까? 살펴보기로 합시다.

인격적인 특성을 가지고 계신 하느님

18. 에스겔은 무슨 환상을 받았으며, 여호와 가까이에 있는 “생물”들의 네 얼굴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18 우리가 하느님을 볼 수는 없지만, 성서에는 하늘 자체를 엿볼 수 있게 해 주는 가슴 설레게 하는 성구이 나옵니다. 에스겔 1이 그 한 가지 예입니다. 에스겔은 여호와의 하늘 조직에 대한 환상을 받았는데, 그는 거대한 하늘 수레와 같은 모습을 한 하늘 조직을 보았습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여호와 주위에 있는 위력 있는 영적 피조물에 대한 묘사입니다. (에스겔 1:4-10) 이 “생물”들은 여호와와 밀접히 연합해 있고, 그의 모습은 그이 섬기는 하느님에 대해 중요한 점을 알려 줍니다. 각 생물은 네 얼굴을 가지고 있는데, 수소의 얼굴과 사자의 얼굴과 독수리의 얼굴과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얼굴은 여호와의 인격적인 특성 즉 여호와의 성품 가운데서도 네 가지 두드러진 특성을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계시 4:6-8, 10.

19. (ㄱ) 수소의 얼굴 (ㄴ) 사자의 얼굴 (ㄷ) 독수리의 얼굴 (ㄹ) 사람의 얼굴은 각각 어떤 특성을 상징합니까?

19 성서에서 수소는 종종 힘을 상징하는데, 그것이 적절한 이유는 수소는 대단히 힘이 센 동물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사자는 종종 공의를 상징하는데, 참된 공의는 사자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한 특성 용기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독수리는 예리한 시력으로 유명한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아주 조그만 물체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독수리의 얼굴은 멀리 내다보실 수 있는 하느님의 지혜를 잘 상징합니다. 그러면 사람의 얼굴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하느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인간은 하느님의 주된 특성인 사랑을 반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면에서 독특합니다. (창세 1:26) 여호와의 성품의 이러한 부면—능력, 공의, 지혜, 사랑—이 성경에 매우 자주 강조되어 있어서, 이것을 가리켜 하느님의 주요 속성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20. 여호와의 성품이 변했을까 봐 염려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0 성서에 묘사되신 이후로 수천 년이 흐르는 동안 하느님이 변했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해야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성품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여호와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다.” (말라기 3:6) 여호와께서는 기분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이 아니시며, 오히려 각 상황에 맞게 반응을 나타내시는 방식을 통해서 자신이 이상적인 아버지이심을 증명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성품 가운데서 가장 적절한 부면을 나타내십니다. 네 가지 특성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사랑이며, 사랑은 하느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분은 능력과 공의와 지혜를 나타내실 때에도 사랑을 가지고 그렇게 하십니다. 사실, 성서에서는 하느님 그분의 이러한 특성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요한 첫째 4:8) 하느님이 사랑가지고 계시다거나 하느님이 사랑하고 계시다고 말하지 않는 점에 유의하십시오. 그런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사랑이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본질적인 특성인 사랑은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의 동기가 됩니다.

“보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21. 여호와의 특성에 대해 더 잘 알게 됨에 따라 어떤 느낌이 들게 될 것입니까?

21 어린아이가 친구에게 자기 아버지를 가리키며 “우리 아빠야” 하고 말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까? 하느님의 숭배자은 여호와에 대해 그와 같은 느낌을 가질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성서에서는 충실한 사람이 “보라! 이분이 우리 하느님이시다” 하고 외치게 될 때가 올 것을 예언합니다. (이사야 25:8, 9) 여호와의 특성에 대해 더 많은 통찰력을 얻을수록,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버지가 계시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들 것입니다.

22, 23. 성서에서는 하늘의 아버지를 어떻게 묘사하며, 그분이 우리가 그분에게 가까이 가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22 일부 엄격한 종교가과 철학자의 가르침과는 달리, 이 아버지는 냉정하거나 냉엄한 분이 아닙니다. 냉정한 하느님에게는 결코 마음이 끌릴 수 없을 것이며, 성서는 하늘의 아버지를 그런 식으로 묘사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성서에서는 그분을 가리켜 “행복하신 하느님”이라고 말합니다. (디모데 첫째 1:11) 그분은 강한 감정과 부드러운 감정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지성 있는 피조물의 복지를 위해서 마련해 주신 지침을 그 지성 있는 피조물이 어길 때 그분은 “마음 아파하”십니다. (창세 6:6; 시 78:41) 하지만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따라 지혜롭게 행동하면 그분의 “마음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잠언 27:11.

23 우리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분에게 가까이 오기를 바라십니다. 그분의 말씀이 우리에게 권면하는 것은, 우리가 그분을 “더듬어 찾[아] 그분을 실제로 발견하[는 것입니다]. 사실, 그분은 우리 각자에게서 멀리 떨어져 계시지 않습니다.” (사도 17:27) 그러면 어떻게 일개 인간이 우주의 주권자인 주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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