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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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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1-3. (ㄱ) 시편 필자 다윗은 어떤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으며, 자신의 괴로운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을 어떻게 발견하였습니까? (ㄴ)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그 결과 어떤 짐을 지게 될 수 있으며,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증해 주십니까?

“나의 잘못이 내 머리 위를 넘어가며 무거운 짐처럼 내게 너무 무겁[습니다]. 내가 어리벙벙해지고 극도로 억눌[렸습니다]”라고 시편 필자 다윗은 썼습니다. (시 38:4, 8) 다윗은 죄책감을 느끼는 양심의 짐이 얼마나 무거울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괴로운 마음에 위로가 되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죄를 미워하시기는 하지만, 죄 지은 사람이 진정으로 회개하고 죄가 되는 행로를 버린다면 그 사람을 미워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한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회개한 사람에게 기꺼이 자비를 베푸신다는 사실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 여호와여, 당신은 ··· 기꺼이 용서하[십니다].”—시 86:5.

2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우리 역시 고통스러운 양심의 억누르는 듯한 짐을 지게 될 수 있습니다. 그처럼 뉘우치는 감정은 유익한 것입니다. 그러한 감정은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바로잡는 적극적인 단계를 밟게 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죄책감에 압도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정죄하는 우리의 마음은, 우리가 아무리 회개한다 하더라도 여호와께서 우리를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집요하게 주장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만일 죄책감에 ‘삼켜지게’ 된다면,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여호와께서 우리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여기시며 그분을 섬기기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으로 여기신다고 느끼게 만들어 우리가 포기하게 하려고 애쓸 것입니다.—고린도 둘째 2:5-11.

3 그것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시는 방식입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용서는 여호와의 위대한 사랑의 한 가지 부면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를 나타내면 기꺼이 용서하신다고 보증하십니다. (잠언 28:13) 여호와의 용서를 결코 받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 여호와께서 왜 그리고 어떻게 용서하시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여호와께서 ‘기꺼이 용서하시는’ 이유

4.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본성과 관련하여 어떤 점을 기억하시며, 이 점은 그분이 우리를 대하시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칩니까?

4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한계를 알고 계십니다. 시편 103:14에서는 “그분은 우리의 구조를 잘 아시고 우리가 흙을 기억하신다”고 알려 줍니다. 그분은 우리가 흙으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며 불완전의 결과로 약함을 가지고 있는 존재을 잊지 않으십니다. 그분이 “우리의 구조”를 아신다는 표현은, 성서에서 여호와를 도공에 비하고 우리를 도공이 진흙으로 빚는 그릇에 비한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줍니다. * (예레미야 18:2-6) 위대한 도공께서는 우리의 죄 많은 본성의 약함에 따라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인도에 호응하느냐 호응하지 못하느냐에 따라 우리를 대하는 방식을 조정하십니다.

5. 로마서에서는 죄가 강력하게 붙잡고 있는 힘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5 여호와께서는 죄가 얼마나 강력한지 이해하십니다. 그분의 말씀에서는 죄를 인간을 죽이기 위해 꽉 붙잡고 있는 강력한 힘으로 묘사합니다. 죄가 붙잡고 있는 힘은 얼마나 셉니까?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는 마치 군인이 지휘관 아래 있듯이 “죄 아래 있습니다.” (로마 3:9) 죄가 왕처럼 인류를 “통치”해 왔습니다. (로마 5:21) 죄가 우리 속에 “거하”고 있습니다. 즉 “깃들여 있”습니다. (로마 7:17, 20) 죄의 “법”이 우리 속에서 계속 활동하고 있으면서, 사실상 우리의 행로를 지배하려고 합니다. (로마 7:23, 25) 죄가 우리의 불완전한 육체를 참으로 강력하게 붙들고 있는 것입니다!—로마 7:21, 24.

6, 7. (ㄱ) 여호와께서는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자비를 구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십니까? (ㄴ) 하느님의 자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여호와께 완전하게 순종하기를 진지한 마음으로 아무리 열망한다 하더라도 완전한 순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통회하는 마음으로 그분의 자비를 구하면 용서를 베풀어 주실 것을 사랑에 찬 마음으로  보증해 주십니다. 시편 51:17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희생 제물은 꺾인 영, 오 하느님, 당신은 꺾이고 억눌린 마음을 업신여기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죄책감의 짐으로 “꺾이고 억눌린” 마음을 결코 배척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결코 외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7 그러면 이것은 하느님의 자비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서, 우리의 죄 많은 본성을 죄에 대한 구실로 이용해도 된다는 의미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호와는 순전히 감정에 좌우되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분의 자비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몰인정하게 고의적인 죄를 거듭 지으며 회개를 조금도 나타내지 않는 사람을 그분은 결코 용서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히브리 10:26) 한편, 통회하는 마음을 보시게 되면 그분은 기꺼이 용서해 주십니다. 이제 여호와의 사랑의 이 놀라운 부면을 묘사하기 위해 성서에서 사용하고 있는 생생한 표현 몇 가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여호와께서는 얼마나 온전히 용서해 주시는가?

8.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실 때 사실상 어떻게 하시며, 그 점은 우리로 어떤 확신을 갖게 해 줍니까?

8 회개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 죄를 당신에게 고백하고 내 잘못을 덮어두지 않았[습니다]. ··· 그러자 당신은 내 죄의 잘못사하셨습니다.” (시 32:5) ‘사하셨다’는 말은, 기본적으로 “들어올리다” 혹은 “옮겨가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 단어의 용법이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죄과, 죄악, 범법”을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사실상 다윗의 죄을 들어올려서 멀리 가져가 버리신 것입니다. 의문의 여지 없이, 그것은 다윗이 지고 다녔던 죄책감을 완화시켜 주었을 것입니다. (시 32:3) 우리 역시 하느님에 대해 온전한 확신을 가질 수 있는데, 그분은 예수의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자신의 용서를 구하는 사람의 죄를 가져가 버리시는 분입니다.—마태 20:28.

9.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죄를 얼마나 멀리 치우십니까?

9 다윗은 또 다른 생생한 표현을 사용하여, 여호와께서 어떻게 용서해 주시는지를 묘사하였습니다. “동쪽이 서쪽에서 멀리 떨어져 있듯이, 그분은 우리의 범법을 우리에게서 멀리 치우셨다.” (서체는 이 책에서  변경; 시 103:12. 앰플리파이드 바이블) 동쪽은 서쪽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동쪽은 언제나 서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습니다. 둘은 결코 만날 수 없는 지점에 있습니다. 한 학자는, 이 표현이 “가능한 한 가장 먼 거리,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거리”를 의미한다고 지적합니다. 다윗의 영감받은 말은, 여호와께서 용서하실 때는 우리의 죄를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치워 버리신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너희의 죄가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다’

10.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경우, 여생을 그러한 죄의 얼룩을 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0 옅은 색깔의 옷에 진 얼룩을 없애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습니까? 아마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도, 얼룩이 여전히 눈에 띄게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용서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어떻게 묘사하시는지 유의해 보십시오. “너희의 죄가 진홍색 같을지라도 과 같이 희어질 이며, 심홍색 천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될 것이다.” (이사야 1:18) “진홍색”이란 말은 짙은 빨강 색을 가리킵니다. * “심홍색”은  염색한 물건이 띠고 있는 짙은 색깔 중의 하나였습니다. (나훔 2:3)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노력으로 죄의 얼룩을 없앨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진홍색이나 심홍색과 같은 죄을 가져다가 눈이나 염색하지 않은 양털과 같이 하얗게 만드실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경우, 여생을 그러한 죄의 얼룩을 지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11. 여호와께서는 어떤 의미로 우리의 죄를 그분의 등 뒤로 던지십니까?

11 히스기야가 치사적인 병에서 목숨을 건진 뒤 지은 감동적인 감사의 노래에서 그는 여호와께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당신은 저의 모든 죄당신의 등 뒤로 던지셨습니다.” (이사야 38:17) 여기에서 여호와는 회개한 범죄자의 죄를 가져다가 그것을 그분의 뒤로, 즉 다시는 쳐다보거나 유의할 수 없는 곳으로 던져 버리시는 분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한 자료에 의하면, 위의 말이 전달하는 사상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나의 죄를] 있지도 않은 일처럼 만들어 버리셨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안이 되는 말이 아닙니까?

12. 예언자 미가는, 여호와께서는 용서하실 때 우리의 죄를 영구적으로 없애 버리신다는 점을 어떻게 알려 줍니까?

12 회복 약속에서 예언자 미가는 여호와께서 회개하는 백성을 용서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당신과 같은 하느님이 누구이겠습니까? 당신은 그 상속 재산의 남은 자의 ··· 범법에 대하여 눈감아 주시는 분입니다. ··· 당신은 그의 모든 죄바다 깊은 곳던지실 것입니다.” (미가 7:18, 19) 이 말이 성서 시대에 살았던 사람에게 의미했던 바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바다 깊은 곳에” 던져진 것을 되찾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미가의 말은, 여호와께서는 용서하실 때 우리의 죄를 영구적으로 없애 버리신다는 것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13. “우리의 빚을 용서하여 주십시오”라는 예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13 예수께서는 여호와께서 어떻게 용서해 주시는지를 예를 들어 설명하시기 위해, 채권자와 채무자 사이의 관계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라고 강력히 권하셨습니다. (마태 6:12)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죄를 빚에 비하셨습니다. (누가 11:4) 우리가 죄를 짓게 되면 우리는 여호와께 “빚진 사람”이 됩니다. ‘용서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의 의미와 관련하여, 한 참고 문헌에서는 “빚을 갚으라고 요구하지 않음으로 빚 포기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여호와께서 용서하신다는 것은, 그분이 탕감해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고스란히 청구될 빚을 그분이 탕감해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회개한 죄인은 위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탕감해 주신 빚을 갚으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으실 것입니다!—시 32:1, 2.

14. “여러분의 죄가 지워져 없어지게 하십시오”라는 표현은 정신에 어떤 영상이 떠오르게 합니까?

14 여호와께서 어떻게 용서해 주시는지가 사도행전 3:19에는 또한 이렇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돌이켜 여러분의 죄지워져 없어지게 하십시오.” “지워져 없어지게”라는 이 표현은 “일소하다, ··· 말소하다 혹은 파기하다”를 의미할 수 있는 그리스어 동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일부 학자에 의하면, 이 표현으로 정신에 떠오르는 영상은, 손으로 쓴 것을 지워 없애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하였습니까? 고대에 흔히 사용된 잉크는 탄소와 고무와 물이 포함된 혼합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러한 잉크로 글씨를 쓴 지 얼마 안 되었다면 젖은 스펀지를 가지고 그 글을 지워 없앨 수 있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여호와의 자비를 아름답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는, 스펀지를 가지고 우리의 죄를 지워 없애듯이 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자신이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신다

15.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그분에 대해 어떠한 사실을 알기를 원하십니까?

15 이러한 다양한 예를 숙고해 볼 때, 여호와께서는 진심으로 회개하는 모습을 보시기만 한다면 우리의 죄를 참으로 기꺼이 용서해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신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앞으로 언젠가 우리에게 그러한 죄를 물으시지나 않을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점은, 여호와의 크나큰 자비에 대해 성서에서 알려 주는 또 다른 사실에 의해 확증되는데, 그것은 여호와께서는 용서하시면 잊어버리신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16, 17.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를 잊으신다고 성서에서 말할 때 그 의미는 무엇이며, 그렇게 대답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여호와께서는 새 계약 안에 들어와 있는 자과 관련하여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그의 잘못을 용서하고, 그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 (예레미야 31:34)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용서하시고 나면 죄를 더 이상 기억해 내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까? 그럴 리가 없습니다. 성서에서는 다윗을 포함하여 여호와께서 용서해 주신 많은 사람의 죄에 대해 알려 줍니다. (사무엘 둘째 11:1-17; 12:13)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이 저지른 잘못을 지금도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그이 지은 죄에 대한 기록뿐만 아니라 그이 나타낸 회개와 하느님께서 용서하신 기록도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보존되어 있습니다. (로마 15:4)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그분이 용서하시는 사람의 죄를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성서에서 말하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17 ‘기억하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동사는 단순히 과거를 기억해 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구약 신학 단어집」(Theological Wordbook of the Old Testament)에서는, 그 단어에는 “적절한 조처를 취한다는 부가적인 의미”도 내포되어 있다고 지적합니다. 따라서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죄를 ‘기억한다’는 말에는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조처를 취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호세아 9:9) 그런데 하느님께서 “그의 죄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회개한 죄인을 일단 용서하셨다면 그 죄로 인해 그 사람에 대해 장차 언젠가 조처를 취하는 일을 하지 않으실 것을 우리에게 보증하시는 것입니다. (에스겔 18:21, 22)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우리를 재삼재사 비난하거나 처벌하시기 위해 우리의 죄를 거듭거듭 기억해 내지 않으신다는 의미에서 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 하느님께서 용서하시고 나면 잊으신다는 을 알 때 참으로 위로가 되지 않습니까?

의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18. 용서를 받았다고 해서 회개한 죄인이 그의 잘못된 행로로 인한 모든 결과로부터 면제되는 것이 아닌 이유는 무엇입니까?

18 여호와께서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것은 회개한 죄인이 자신의 잘못된 행로로 인한 모든 결과에서 면제된다는 것을 의미합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는데도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썼습니다. “사람은 무엇을 뿌리든지 그대로 거둘 것입니다.” (갈라디아 6:7) 우리는 자신이 한 행동으로 인한 특정한 결과에 직면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호와께서 용서를 베푸신 다음에 우리에게 역경이 닥치게 하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문제가 생길 때 그리스도인은 ‘아마 여호와께서 과거에 지은 죄로 나를 처벌하시는가 보다’ 하고 생각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야고보 1:13) 한편, 여호와께서는 우리의 그릇된 행동의 모든 결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시지는 않습니다. 이혼, 원치 않는 임신, 성 매개 질환, 신뢰나 존경의 상실—이 모든 것이 죄로 인한 피할 수 없는 서글픈 결과일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밧-세바와 우리아와 관련하여 지은 죄을 용서해 주셨지만, 그의 죄에 뒤따른 참담한 결과로부터 다윗을 보호해 주지는 않으셨음을 기억하십시오.—사무엘 둘째 12:9-12.

19-21. (ㄱ) 레위기 6:1-7에 기록된 율법은 어떻게 피해자와 범죄자 모두에게 유익을 주었습니까? (ㄴ) 우리가 저지른 죄로 다른 사람이 해를 입었을 경우,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때 여호와께서 기뻐하십니까?

19 우리가 지은 죄는, 특히 다른 사람이 우리의 행동으로 인해  를 입었을 경우에는, 부가적인 결과를 초래할지도 모릅니다. 예를 들어, 레위기 6에 나오는 기록을 고려해 보십시오. 여기서 모세의 율법은 강도나 강탈이나 사기를 통해 동료 이스라엘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 감으로 심각한 잘못을 범한 사람의 상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인이 자기의 죄를 부인하며, 심지어 거짓 맹세를 할 정도로 뻔뻔스러운 태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더욱이 한 사람의 증언이 다른 사람의 증언과 어긋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죄를 범한 사람이 나중에 양심에 가책을 느껴 자기의 죄를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용서를 받기 위해서, 그 사람은 세 가지 일을 더 해야 하는데, 자기가 가져간 것을 돌려주고, 피해자에게 훔친 물건의 가치의 20퍼센트에 해당하는 벌금을 물고, 죄과 제물로 숫양 한 마리를 바치는 것입니다. 그런 다음 율법은 이렇게 말합니다. “제사장여호와 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를 해야 하니, 그러면 그가 ··· 용서를 받는다.”—레위 6:1-7.

20 이러한 율법은 하느님께서 해 주신 자비로운 마련이었습니다. 그것은 피해자에게 유익을 주었는데, 피해자는 물건을 되돌려 받았고, 범죄자가 마침내 자기의 죄를 시인했을 때 틀림없이 매우 안도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한편, 이 율법은 양심으로 인해 마침내 자기의 죄과를 인정하고 잘못을 시정하게 된 사람에게도 유익하였습니다. 사실, 그가 그렇게 하기를 거부하였다면,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을 용서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21 우리는 모세의 율법 아래 있지는 않지만, 이 율법은 용서에 대한 여호와의 생각을 포함해서 그분의 생각에 대한 통찰력을 갖게 해 줍니다. (골로새 2:13, 14) 우리가 저지른 죄로 다른 사람이 해를 입었을 경우, 우리가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하느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마태 5:23, 24) 그렇게 하는 데에는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죄과를 시인하고 피해자에게 사과를 하는 일까지 포함될 것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예수의 희생을 근거로 여호와께 간청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다는 확신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히브리 10:21, 22.

22. 여호와께서 용서를 베푸실 때 어떤 일이 뒤따를 수 있습니까?

22 사랑 많은 여느 부모처럼, 여호와께서도 용서를 베푸실 때 어느 정도 징계를 하실지 모릅니다. (잠언 3:11, 12) 회개한 그리스도인 장로나 봉사의 종이나 전 시간 복음 전파자로 일하면서 누리던 특권을 포기해야 할지 모릅니다.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던 특권을 얼마 동안 잃어야 한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는 고통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징계를 받는다고 해서 여호와께서 용서를 해 주시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징계는 우리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증거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징계를 받아들이고 적용하는 것은 우리에게 최상의 유익이 됩니다.—히브리 12:5-11.

23. 우리가 여호와의 자비를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결론 내리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분의 용서를 본받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3 우리의 하느님께서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것을 아는 것은 참으로 새 힘을 줍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실수를 저질렀을지 모르지만, 여호와의 자비를 받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고 결론 내려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하여 잘못을 바로잡을 단계을 밟고 예수께서 흘리신 피를 근거로 기도를 통해 진지하게 용서를 구한다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온전히 확신할 수 있습니다. (요한 첫째 1:9) 우리가 서로를 대할 때에도 그분의 용서를 본받도록 합시다. 사실, 전혀 죄를 짓지 않으시는 여호와께서 그토록 사랑을 나타내시어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다면, 죄 많은 우리 인간은 서로를 용서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 4항 “우리의 구조”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도공이 진흙으로 빚는 그릇과 관련해서도 사용된다.—이사야 29:16.

^ 10항 한 학자는 진홍색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결코 바래지 않는 색, 혹은 불변이었다. 이슬이 내리고 비가 내려도, 세탁을 해도, 오랫동안 사용해도, 그 색은 결코 없어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