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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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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 가까이 가십시오

 23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1-3. 예수의 죽음을 역사상 다른 어떤 죽음과도 다르게 만든 몇 가지 요인은 무엇입니까?

거의 2000년 전의 어느 봄날, 한 무고한 사람이 재판을 받고,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으며,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습니다. 그것은 역사상 최초로 있었던 잔인하고 부당한 사형 집행이 아니었으며, 또한 그것은 유감스럽게도 마지막으로 있었던 일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다른 어떤 죽음과도 달랐습니다.

2 그 사람이 매우 고통스러운 마지막 몇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하늘도 그것이 매우 중요한 사건을 나타냈습니다. 한낮이었는데도 갑자기 어둠이 땅에 내렸습니다. 한 역사가가 표현하였듯이, “햇빛이 없어졌”습니다. (누가 23:44, 45) 그리고 그 사람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다음과 같은 잊을 수 없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 이루어졌다!” 그렇습니다. 그 사람은 자신의 생명을 내놓음으로 참으로 놀라운 일을 이루었습니다. 그의 희생은 인간이 행한 것 중에서 가장 큰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요한 15:13; 19:30.

3 그 사람은 물론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기원 33년 니산월 14일, 그 암울한 날 그분이 겪은 고통과 죽음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이 종종 무시되어 왔습니다. 예수께서도 심한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보다 훨씬 더 심한 고통을 당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사실, 그날 훨씬 더 큰 희생을 치르신 분은 다른 분이었으며, 그분은 우주에서 가장 큰 사랑의 행동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어떤 행동이었습니까? 그 질문에 대답하다 보면 적절하게도 가장 중요한 주제를 소개하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여호와의 사랑입니다.

가장 큰 사랑의 행동

4. 한 로마 군인은 예수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어떻게 알게 되었으며, 그 군인은 어떤 결론을 내렸습니까?

4 예수의 처형을 감독했던 로마의 백부장은, 예수의 죽음 전에 닥친 어둠과 그에 뒤이은 격렬한 지진으로 인해 놀랐습니다. “확실히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들이었다”라고 그는 말하였습니다. (마태 27:54)  그렇습니다. 예수는 보통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 군인은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독생자를 처형하는 일을 도왔던 것입니다! 이 아들은 그 아버지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습니까?

5.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이 하늘에서 함께 보낸 엄청난 시간의 양을 어떻게 예를 들어 설명할 수 있습니까?

5 성서에서는 예수를 가리켜 “모든 창조물 가운데 처음 나신 분”이라고 부릅니다. (골로새 1:15) 잠시 생각해 보십시오. 여호와의 아들은 물질적 우주가 있기 전에도 존재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은 얼마 동안이나 함께 있었습니까? 어떤 과학자은 우주의 나이가 130억 년은 되었다고 추정합니다. 당신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한 플라네타륨(천체의 위치와 운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반구형의 천장에 설치된 스크린에 달, 태양, 항성, 행성 따위의 천체를 투영하는 장치)은, 과학자이 추정한 우주의 나이를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줄을 110미터나 길게 설정하였습니다. 방문객이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그 줄을 따라 걸으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매 걸음은 우주의 나이에서 약 7500만 년을 의미합니다. 그 줄 끝에 다다르게 되면, 인간의 모든 역사가 인간의 머리털 한 개 굵기만한 한 점으로 표시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추정이 정확하다 해도, 시간의 흐름을 나타내는 그 줄 전체를 가지고도 여호와의 아들의 수명을 나타내기에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그분은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6. (ㄱ) 여호와의 아들은 인간이 되시기 전에 무슨 일을 하고 계셨습니까? (ㄴ)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 사이에는 어떤 띠가 존재합니까?

6 아들은 아버지의 “숙련된 일꾼”으로 행복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잠언 8:30) 성서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아들] 없이 존재하게 된 것은 하나도 없다.” (요한 1:3) 그러므로 여호와와 그분의 아들은 그분을 제외한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기 위하여 함께 일하셨습니다. 두 분은 참으로 가슴 설레고 행복한 시간을 함께 보내신 것입니다! 그런데 부모와 자녀 사이의 사랑은 놀라울 정도로 강하다는 데에 많은 사람이 동의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완전한 결합의 띠입니다.” (골로새 3:14) 그렇다면 우리 중에 누가 그토록 엄청난 시간에 걸쳐 존재해 온 띠의 강력한 힘을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확실히, 여호와 하느님과 그분의 아들은 지금까지 형성된 것 중에 가장 강력한 사랑의 띠로 결합되어 계십니다.

7. 예수가 침례를 받을 때, 여호와께서는 아들에 대한 느낌을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7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들을 이 땅에 보내어 인간 아기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사랑하는 아들과 하늘에서 누리던 친밀한 교제를 수십 년 동안 포기해야 함을 의미하였습니다. 예수가 성장하여 완전한 인간이 되는 과정을 여호와께서는 하늘에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셨습니다. 예수는 30쯤 되었을 때 침례를 받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예수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을 것인지에 대해 우리는 추측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버지는 하늘에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아들, 사랑하는 자이다.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 (마태 3:17) 예수께서 예언된 것을 모두, 자신에게 요구된 것을 모두 충실하게 행하시는 것을 보고 그분의 아버지는 틀림없이 매우 기쁘셨을 것입니다!—요한 5:36; 17:4.

8, 9. (ㄱ) 예수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4에 무슨 일을 겪으셨으며, 그분의 하늘 아버지는 어떤 영향을 받으셨습니까? (ㄴ)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이 고통당하고 죽게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8 그러면 기원 33년 니산월 14에 여호와께서는 어떻게 느끼셨겠습니까? 예수께서 배반당하고 나서 밤에 폭도에게 체포되셨을 때 여호와의 느낌은 어떠하였겠습니까? 예수께서 벗에게 버림을 받고 불법 재판을 받으셨을 때는 어떠하였겠습니까? 예수께서 조롱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하고 주먹으로 맞으셨을 때는 어떠하였겠습니까? 예수께서 채찍질을 당하여 등의 살가죽이 찢겨져 너덜너덜해졌을 때는 어떠하였겠습니까? 예수께서 손과 발을 꿰뚫은 못에 의해 나무 기둥에 박혀 그 기둥에 달리게 되고 사람이 예수를 향해 욕을 하였을 때는 어떠하였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들이 격심한 고통 속에서 아버지에게 부르짖을 때 아버지의 느낌이 어떠하였겠습니까? 예수께서 마지막 숨을 거둘 때, 그리고 모든 창조물이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사랑하는 아들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을 때 여호와의 느낌은 어떠하였겠습니까?—마태 26:14-16, 46, 47, 56, 59, 67; 27:38-44, 46; 요한 19:1.

“하느님께서는 ···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9 뭐라고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감정을 가지고 계신 분이므로,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그분이 겪으신 고통은 우리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범주를 훨씬 뛰어넘는 것입니다. 우리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신 동기 정도입니다. 이 아버지는 왜 그러한 감정을 겪으셔야 하였습니까? 소형  복음서라고 불리어 왔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성구요한 3:16에서 여호와께서는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사실을 밝혀 주십니다. 그 성구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매우 사랑하시어 자기의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렇게 하신 동기는 바로 그것, 사랑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선물—아들을 보내어 우리를 위해 고통당하고 죽게 하신 것—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랑의 행동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정의

10. 인간은 무엇을 필요로 하며, “사랑”이라는 말의 의미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10 “사랑”이라는 이 단어는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사랑은 인간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요람에서 무덤에 이를 때까지 사람은 사랑을 얻으려고 쫓아다니며, 사랑의 온기 속에서 번영을 이루지만, 사랑이 결핍되면 야위어 가다가 죽기까지 합니다. 그런데도 사랑은 정의를 내리기가 놀라울 정도로 힘듭니다. 물론, 사람은 사랑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합니다. 사랑에 관한 책이나 노래나 시는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의미가 언제나 명백히 밝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상, 그 말이 너무 남용되고 있어서, 그 말의 참된 의미는 점점 더 파악하기가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11, 12. (ㄱ) 우리는 어디에서 사랑에 대해 매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며, 거기에서 배울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고대 그리스어는 어떤 여러 가지 형태의 사랑이 있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사랑”에 해당하는 어떤 단어가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까? (또한 각주 참조) (ㄷ) 아가페란 무엇입니까?

11 하지만 성서에서는 사랑에 대해 명료하게 가르쳐 줍니다. 바인의 「신약 용어 해설 사전」(Expository Dictionary of New Testament Words)에서는 이렇게 알려 줍니다. “사랑은 그것이 촉구하는 행동을 통해서만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하신 행동에 대해 알려 주는 성서 기록은 그분의 사랑—그분이 창조물에 대해 가지고 계신 자비심 많은 애정—에 대해 매우 많은 점을 가르쳐 줍니다. 예를 들면, 앞서 묘사된 여호와의 최상의 사랑의 행동보다 이 특성에 대해 더 많은 점을 밝혀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이 책의 이어지는 장에서는, 행동으로 나타난 여호와의 사랑의 다른 여러 가지 예을 많이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서에 사용된 “사랑”이라는  의 원어로부터도 어느 정도 통찰력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어에는 “사랑”에 해당하는 말이 네 가지 있었습니다. * 그 중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가장 많이 사용된 표현아가페입니다. 한 성서 사전에서는 아가페를 가리켜 “사랑과 관련하여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라고 부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12 아가페는 원칙의 인도를 받는 사랑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그것은 다른 사람에 대해 단순히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그 범위도 훨씬 넓고, 근본적으로 더 사려 깊고 신중합니다. 무엇보다도, 아가페는 철저히 비이기적입니다. 일례요한 3:16을 다시 읽어 보십시오. 하느님께서 매우 사랑하시어 자기의 독생자를 주신 “세상”이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구속받을 인류로 이루어진 세상입니다. 거기에는 죄 많은 삶의 행로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들 각자를 여호와께서 충실한 아브라함을 사랑하셨듯이 개인적인 벗으로서 사랑하시는 것입니까? (야고보 2:23) 그렇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사랑 많으시게도 모든 사람에게 선을 베푸시는데, 스스로 엄청난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이 바라시는 것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그의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베드로 둘째 3:9)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 사람을 자신의 벗으로 기쁘게 받아들이십니다.

13, 14. 아가페에 종종 따뜻한 애정이 포함을 무엇을 보아 알 수 있습니까?

13 그런데 아가페에 대해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아가페가 냉정하고 이지적인 형태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아가페에는 종종 따뜻한 개인적 애정이 포함됩니다. 예를 들면, 요한이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십니다]”라고 썼을 때, 그아가페라는 단어의 한 가지 형태를 사용하였습니다. 그 사랑에는 따뜻한 애정이 결핍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필레오라는 단어의 한 가지 형태를 사용하셔서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애정을 가지고 계[십니다]”라고 말씀하신 사실에 유의하십시오. (요한 3:35; 5:20) 여호와의 사랑에는 종종 부드러운 애정이 포함됩니다. 하지만 그분의 사랑은 결코 단지 감정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언제나 그분의 지혜롭고 공정한 원칙의 인도를 받습니다.

14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여호와의 특성은 모두 탁월하고 완벽하고 호소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랑은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가장 호소력이 있습니다. 다른 어느 것도 우리를 여호와께 그토록 강력하게 이끌리게 하지 못합니다. 기쁘게도, 사랑은 그분의 가장 뛰어난 특성이기도 합니다. 그 점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5. 성서에서는 여호와의 속성인 사랑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말하며, 그것은 어떤 면에서 독특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또한 각주 참조)

15 성서에서는 여호와의 다른 주요 속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랑에 대해서는 특별한 언급을 합니다. 성경에서는 결코, 하느님이 능력이시라든가 하느님이 공의이시라든가 심지어 하느님이 지혜이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러한 특성가지고 계시고, 그러한 특성의 궁극적인 근원이시며, 또한 그 세 가지 특성 모두와 관련하여 비할 데 없이 뛰어나십니다. 하지만 네 번째 속성과 관련해서는 좀 더 의미심장하게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 (요한 첫째 4:8)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입니까?

16-18. (ㄱ) 성서에서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고 말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ㄴ)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인간이 여호와의 속성인 사랑에 대한 적절한 상징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16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표현은, ‘하느님은 사랑이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단순히 동등시하는 표현이 아닙니다. 이 표현을 뒤집어 ‘사랑은 하느님이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추상적인 특성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하는  이십니다. 그분은 사랑 외에도 매우 다양한 감정과 개성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하지만 사랑은 여호와 속에 아주 깊게 흐르고 있는 감정입니다. 따라서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 성구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본질 혹은 본성이 사랑이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말을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능력은 그분이 행동 있게 해 준다. 여호와의 공의와 지혜는 그분이 행동하시는 방식인도한다. 하지만 여호와의 사랑은 그분이 행동하시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따라서 그분의 사랑은 언제나 그분이 다른 속성을 사용하시는 방법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습니다.

17 여호와는 사랑의 구현이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따라서 원칙에 근거한 사랑에 관해 배우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여호와에 관해 배워야 합니다. 물론, 이 아름다운 특성은 인간에게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간에게 그러한 특성이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는 창조 활동을 하실 때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데, 아마 자신의 아들에게 하신 것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형상대로, 우리의 모양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 (창세 1:26) 이 땅에 있는 모든 창조물 가운데 남자와 여자만 사랑을 나타내겠다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리하여 하늘에 계신 그의 아버지를 본받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의 주요 속성의 상징으로 여러 가지 생물을 사용하신 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가장 뛰어난 특성인 사랑의 상징으로는, 지상에서 가장 고등한 피조물인 인간을 택하셨습니다.—에스겔 1:10.

18 우리는 비이기적이고 원칙에 근거한 방법으로 사랑을 나타낼 때 여호와의 가장 뛰어난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렇게 기록한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 첫째 4:19) 그러면 여호와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습니까?

여호와께서 솔선하셨다

19. 여호와의 창조 활동에 사랑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9 사랑은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사실, 여호와께서 창조 활동을 시작하시도록 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외로워서 친밀한 교제를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완전하시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하실 수 있으셔서, 다른 누군가로부터 공급을 받을 만한 것 아무것도 없는 분이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적극적인 특성인 사랑은, 삶의 기쁨을 그러한 선물에 대한 인식을 나타낼 수 있는 지성 있는 피조물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을 그분이 자연스럽게 갖게 만들었습니다. “하느님에 의한 창조물의 시작”은 그분의 독생자이셨습니다. (계시 3:14) 그 후 여호와께서는 이 숙련된 일꾼을 사용하셔서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하게 하셨는데, 그 일을 천사를 창조하는 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욥 38:4, 7; 골로새 1:16) 자유와 지성과 감정을 부여받은 이 위력 있는 영은 그들 서로 간에,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여호와 하느님과, 사랑에서 우러나온 애착을 형성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고린도 둘째 3:17) 따라서 그이 사랑을 한 것은 자기이 먼저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20, 21. 아담과 하와는 여호와께서 그을 사랑하신다는 어떤 증거을 체험할 수 있었으며, 하지만 그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20 인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애초부터 아담과 하와는 사랑에 둘러싸여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에덴에 있는 그의 낙원 집 어디를 둘러보든지 그에 대한 아버지의 사랑의 증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성서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음에 유의하십시오. “여호와 하느님에덴에, 그 동쪽에 동산을 만드시고, 자신이 지으신 사람을 그곳에 두셨다.” (창세 2:8) 정말로 아름다운 정원이나 공원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당신을 가장 기쁘게 해 준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나뭇잎 사이로 뚫고 들어와 그늘진 곳을 비춰 주는 빛이었습니까? 화단을 형형색색으로 현란하게 수놓고 있는 꽃이었습니까? 배경 음악처럼 들려오는, 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와 새의 지저귀는 소리와 곤충의 울음소리였습니까? 나무와 과일과 꽃이 풍기는 향내는 어떠하였습니까? 그 어떤 것이든, 오늘날 존재하는 어떤 공원도 에덴 공원과는 비교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21 그 정원은 여호와께서 직접 만드신 것입니다! 그곳은 틀림없이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을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태와 맛있는 과일 때문에 마냥 즐거움을 주는 온갖 나무이 그곳에 있었습니다. 그 정원은 물이 풍부하고 매우 넓었으며 매력적인 다양한 동물로 생기가 넘치는 곳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만족스러운 일과 완벽하고 친밀한 교제를 포함하여 자기의 삶을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온갖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그을 사랑하셨으므로, 그도 그러한 반응을 보여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은 하늘의 아버지에게  사랑에서 우러나와 순종하기는커녕 이기적으로 그 아버지에게 반역하였습니다.—창세기 2.

22. 에덴에서의 반역에 대한 여호와의 반응은, 그분의 사랑이 충성스럽다는 것을 어떻게 증명해 주었습니까?

22 여호와께 그것은 틀림없이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반역이 있었다고 해서 사랑 많으신 그분의 마음이 적개심을 품게 되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분의 사랑의 친절[혹은 “충성스러운 사랑”, 신세계역 참조주 성서 각주 참조]은 한정 없는 때까지 있[습니]다.” (시 136:1) 따라서 그분은 즉시, 아담과 하와의 후손 가운데서 합당한 성향을 가진 모든 사람을 구속할 사랑에 찬 마련을 하실 목적을 세우셨습니다. 우리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그러한 마련 가운데는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대속 희생이 포함되어 있었으며, 그 희생은 아버지에게 엄청난 희생을 치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요한 첫째 4:10.

23. 여호와께서 “행복하신 하느님”이신 한 가지 이유는 무엇이며, 이어지는 장에서는 어떤 중요한 질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것입니까?

23 그렇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처음부터 솔선해서 인류에게 사랑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방법으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화합과 기쁨을 촉진시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 “행복하신 하느님”이라고 묘사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디모데 첫째 1:11) 하지만 한 가지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우리 개개인을 사랑하십니까? 이어지는 장에서는 그 점을 살펴볼 것입니다.

^ 11항 필레오라는 동사는, “(친한 벗이나 형제에 대해 느끼듯이) ··· 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다, ··· 를 좋아하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자주 사용된다. 가족 간에 느끼는 친밀한 사랑을 가리키는 스토르게라는 단어의 한 가지 형태디모데 둘째 3:3에 사용되어, 마지막 날에 그러한 사랑이 심각할 정도로 결핍될 것을 보여 준다. 이성 간의 낭만적인 사랑을 가리키는 에로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성서에는 그러한 사랑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잠언 5:15-20.

^ 15항 성경에 나오는 다른 표현도 이와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하느님은 빛이[십니다]”와 “하느님은 ··· 소멸하는 불이십니다”라는 표현이다. (요한 첫째 1:5; 히브리 12:29) 하지만 이 표현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여호와를 물질적인 것에 빗대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거룩하시고 올바르시기 때문에 빛같으시다. 그분에게는 “어둠” 혹은 더러움이 전혀 없으시다. 그리고 그분이 사용하시는 파괴 능력으로 인해, 그분을 불에 빗대어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