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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증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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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예수께서 ‘땅에 공의를 세우시다’

예수께서 ‘땅에 공의를 세우시다’

1, 2. 예수께서는 어떤 일로 인해 화가 나셨으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예수께서는 분명히 화가 나 있으셨으며, 그러실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아마 예수께서 화를 내시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분은 참으로 성품이 온화한 분이셨기 때문입니다. (마태 21:5) 물론 그분은 감정을 완벽하게 제어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내시는 화는 의로운 진노였기 때문입니다. * 그러면 그분처럼 평화를 사랑하시는 분이 무엇 때문에 그토록 화가 나신 것입니까? 아주 심한 불공정이 저질러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께서 마음으로 소중히 여기시는 곳이었습니다. 온 세상에서 그분의 하늘 아버지에 대한 숭배를 위해 바쳐진 신성한 곳은 그곳밖에 없었습니다. 여러 지역에서 온 유대인은 이곳에서 숭배를 드리기 위해 먼 거리를 여행하여 온 것입니다. 심지어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방인도 이곳에 와서, 그을 위하여 따로 마련된 성전 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자신의 봉사의 직무 초기에 그 성전이 있는 곳에 들어가셔서, 아연실색할 만한 광경을 보시게 되었습니다. 성전이 숭배의 집이 아니라 시장을 방불케 할 만한 곳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성전이 상인과 돈 장사로 들끓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이 불공정한 일이었습니까? 이 사람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성전은 단지 사람을 착취할 수 있는—심지어 강도질할 수 있는—곳에 불과하였습니다. 어떻게 그렇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요한 2:14.

3, 4. 탐욕스럽게 착취하는 어떤 일이 여호와의 집에서 벌어지고 있었으며, 예수께서는 그 일을 바로잡기 위해 어떤 조처를 취하셨습니까?

3 종교 지도자은 특정한 형태의 한 가지 주화만 성전세를 내는 데 사용할 수 있다는 규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성전에 온 사람이 그  주화를 얻으려면 돈을 바꿔야만 하였습니다. 따라서 돈 바꿔 주는 사람은 바로 성전 안에다 상을 펴 놓고 돈을 바꿔 줄 때마다 수수료를 받아 챙겼습니다. 동물을 파는 일 역시 매우 수지맞는 장사였습니다. 성전에 와서 희생을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예루살렘에 있는 아무 상인한테나 가서 동물을 살 수 있었는데, 성전 관리은 그러한 제물은 합당하지 않다고 거절하기 일쑤였습니다. 하지만 바로 성전이 있는 곳에서 산 제물은 틀림없이 받아 주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인은 때때로 터무니없는 값을 요구하기까지 하였습니다. * 이것은 악덕 상업주의보다도 더 나쁜 짓이었습니다. 강도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것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시오!”

4 예수께서는 그러한 불공정을 관용하실 수가 없었습니다. 성전은 바로 자기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그분은 밧줄로 채찍을 만드신 다음 소 떼와 양 떼를 성전에서 쫓아내셨습니다. 그러고는 돈 바꿔 주는 사람에게로 성큼성큼 걸어가셔서 그의 상을 뒤엎으셨습니다. 그 모든 주화가 대리석 바닥에 와르르 쏟아져 굴러가는 장면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예수께서는 비둘기를 파는 사람에게 “이것을 여기서 가지고 나가시오!” 하고 엄중히 명령하셨습니다. (요한 2:15, 16) 이 용기 있는 사람에게 감히 대항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부전자전”

5-7. (ㄱ)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기 이전의 생애는 공의에 대한 그분의 감각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우리는 그분의 모범을 연구으로 무엇을 배울 수 있습니까? (ㄴ)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주권 및 이름과 관련된 불공정에 어떻게 맞서 싸우셨습니까?

5 물론, 상인은 다시 돌아왔습니다. 약 3년 후에도, 예수께서는 그와 똑같은 불공정한 일을 처리하셨는데, 이번에는 여호와의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드는 자을 정죄하는 여호와 자신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마태 21:13; 예레미야 7:11)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백성을 탐욕스럽게 착취하고 하느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을 보셨을 때 자기 아버지와 똑같이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헤아릴 수 없이 오랜 세월 동안 하늘의 아버지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습니다. 그 결과, 그분은 공의에 대한 여호와의 감각을 주입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부전자전”이라는 속담의 살아 있는 예가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지고 계신 공의의 특성을 명확히 알고 싶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숙고해 보는 것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요한 14:9, 10.

6 사탄이 부당하게 여호와 하느님을 거짓말쟁이라고 하며 그분의 통치의 의로움에 의문을 제기하였을 때, 여호와의 독생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참으로 엄청난 중상이었습니다! 비이기적으로 사랑에서 우러나와 여호와를 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사탄이 나중에 제기한 도전도 그 아들은 들었습니다. 이러한 거짓 비난은 틀림없이 아들의 의로운 마음을 아프게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거짓말을 바로잡는 데 자신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아들은 틀림없이 매우 감격하였을 것입니다! (고린도 둘째 1:20) 그 아들은 어떻게 그 일을 할 것이었습니까?

7 이 책 14장에서 배운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호와의 피조물의 충절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탄의 비난에 최종적이고 결정적인 대답을 제시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주권을 최종적으로 입증하고 또한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게 할 수 있는 기초를 놓으셨습니다. 여호와의 으뜸 행위자로서 예수께서는 우주 전역에 하느님의 공의를 확립하실 것입니다. (사도 5:31) 그분의 지상 생애 역시 하느님의 공의를 반영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예수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나의 영을 그 위에 두리니, 그는 나라에게 공의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줄 것이다.” (마태 12:18)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어떻게 성취시키셨습니까?

예수께서 “공의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주시다

8-10. (ㄱ) 유대 종교 지도자의 구전은 어떻게 유대인이 아닌 사람과 여자을 경멸하도록 부추겼습니까? (ㄴ) 구전법은 어떻게 여호와의 안식일 법을 무거운 짐이 되게 하였습니까?

8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법을 사랑하셨고 그 법에 따라 사셨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종교 지도자은 그 법을 곡해하고 엉뚱하게 적용시켰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바리새들, 위선자이여, 당신에게 화가 있소! 당신은 ··· 율법의 더 중한 것, 곧 공의와 자비와 충실은 무시해 왔[소].” (마태 23:23) 확실히, 하느님의 법을 가르치는 그 사람은 “공의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주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공의를 흐리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였습니까? 몇 가지 예를 고려해 보십시오.

9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백성에게 주변의 이교 나라과 분리해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열왕 첫째 11:1, 2) 그런데 일부 광신적인 종교 지도자은 백성을 부추겨 유대인이 아닌 사람은 모두 경멸하게 하였습니다. 미슈나에는 다음과 같은 규칙이 들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방인은 수간을 할지도 모르므로 그의 여관에 소를 맡겨 놓아서는 안 된다.”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 모두에 대한 그러한 철저한 편견은 부당한 것이었으며, 모세의 율법의 정신과 정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레위 19:34) 인간이 만든 다른 규칙은 여자을 비하하였습니다. 구전법에서는 아내는 남편과 나란히 걸으면 안 되고 남편 뒤에서 걸어야 한다고 말하였습니다. 남자는 대중 앞에서 여자와 대화를 나누어서는 안 되며 자기 아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여자는 종과 마찬가지로, 법정에서 증언하도록 허락되지도 않았습니다. 남자이 자기가 여자가 아닌 것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하는 공식적인 기도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10 종교 지도자은 하느님의 법을 인간이 만든 수많은 규칙과 규정들 속에 파묻어 버렸습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 법은 단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함으로 그날을 숭배와 영적인 새 힘과 쉼을 위해 따로 떼어 놓도록 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리새인은 그 법을 무거운 짐이 되게 하였습니다. 그은 “일”의 의미를 정확히 규정하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일을 수확이나 사냥과 같은 39가지 활동으로 분류하였습니다. 이러한 분류는 끝없는 의문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에 벼룩을 죽였다면, 그것도 사냥에 해당합니까? 길을 가다가 먹으려고 한 줌의 이삭을 훑었다면, 그것도 수확에 해당합니까? 아픈  사람을 고쳐 주었다면, 그것도 일에 해당합니까? 그러한 질문에 대해 엄격하고 세세한 규칙이 정해졌습니다.

11, 12.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의 비성경적 전통에 대한 반대를 어떻게 표현하셨습니까?

11 그러한 풍토에서, 예수께서는 어떻게 사람이 공의가 무엇인가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셨습니까? 그분은 자신의 가르침과 살아가는 방식을 통해 그 종교 지도자에 맞서 용기 있는 태도를 취하셨습니다. 먼저 그분의 가르침 몇 가지를 살펴보십시오. 그분은 종교 지도자이 옹호하는, 인간이 만든 수많은 규칙을 노골적으로 정죄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이 전하는 전통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무효케 합니다.”—마가 7:13.

12 예수께서는 바리새인이 안식일 법과 관련하여 그릇된 태도를 나타내고 있다고—사실상 그이 그 법의 전반적인 취지를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강력하게 가르치셨습니다. 메시아는 “안식일의 주”이기 때문에 안식일에 사람을 고쳐 줄 권리가 있다고 그분은 설명하셨습니다. (마태 12:8) 요점을 강조하기 위하여, 그분은 안식일에 기적으로 고치는 일을 공개적으로 하셨습니다. (누가 6:7-10) 그렇게 고쳐 주신 것은, 자신이 천년 통치 중에 전 세계적으로 행하게 될 병 고침을 미리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천년 자체가 최대의 안식일이 될 것이며, 그때 충실한 사람은 모두 오랜 세월 죄와 죽음의 무거운 짐 아래서 수고하던 것으로부터 마침내 쉬게 될 것입니다.

13. 그리스도의 지상 봉사의 결과 어떤 법이 존재하게 되었으며, 그 법은 그것의 전신과 어떻게 달랐습니까?

13 예수께서는 또한, 지상 봉사의 직무를 완수하신 다음에 새 법 즉 “그리스도의 법”이 존재하게 하심으로 공의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주셨습니다. (갈라디아 6:2) 그 법의 전신인 모세의 율법과는 달리, 이 새 법은 주로 일련의 기록된 명령이 아니라 원칙에 의존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법에도 물론 몇 가지 직접적인 명령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예수께서는 “새 계명”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모든 추종자에게, 자신이 그을 사랑한 것처럼 그도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요한 13:34, 35) 그렇습니다. 자기 희생적인 사랑이 “그리스도의 법”에 따라 사는 모든 사람을 구별 짓는 표가 될 것이었습니다.

 공의의 살아 있는 모범

14, 15. 예수께서는 자신의 권위의 한계를 인정하신다는 점을 어떻게 나타내셨으며,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든든하게 해 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14 예수께서는 사랑에 대해 가르치는 것 이상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법”대로 사셨습니다. 그 법은 그분의 생애를 통해 구현되었습니다. 예수의 모범이 어떻게 공의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주었는지 세 가지 면을 고려해 보십시오.

15 첫째, 예수께서는 양심적으로 어떤 불공정도 저지르지 않으셨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오만해져서 자신의 권위의 합당한 한계를 넘어갈 때 불공정한 일이 많이 벌어지는 것을 당신도 아마 보아 왔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한은 어떤 사람이 예수께 다가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내 형제에게 상속 재산을 나와 나누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여보시오, 누가 나를 여러분의 재판관이나 분배자로 임명하였습니까?” (누가 12:13, 14) 참으로 놀라운 말씀이 아닙니까? 예수의 지성이나 판단력이나 심지어 하느님께서 주신 권위의 수준은 지상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훨씬 뛰어난 것이었는데도, 예수께서는 이 일에 개입하기를 거부하셨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특정한 권위를 부여받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언제나 이처럼 겸허하셨으며, 심지어 인간이 되기 전 수천 년 동안에도 그러하셨습니다. (유다 9) 공의가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데 예수께서 여호와를 겸손하게 신뢰하셨다는 사실은 예수에 대해 많은 점을 시사해 줍니다.

16, 17. (ㄱ)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실 때 어떻게 공의를 나타내셨습니까? (ㄴ) 예수께서는 공의에 대한 자신의 감각이 자비로움을 어떻게 나타내셨습니까?

16 둘째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방법에서 공의를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편견을 나타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빈부의 차별을 두지 않고 모든 부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바리새인은 가난한 평민암하아레츠 즉 “땅의 사람들”이라는 경멸적인 표현으로 부르며 그을 상대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불공정도 용기 있게 바로잡으셨습니다. 그분은 사람에게 좋은 소식을 가르치심으로—혹은 그렇게 하시면서 사람과 함께 먹거나 그에게  먹을 것을 공급하거나 그을 고쳐 주거나 심지어 그을 부활시켜 주심으로—“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느님의 공의를 옹호하셨습니다. *디모데 첫째 2:4.

17 셋째로, 공의에 대한 예수의 감각은 매우 자비로웠습니다. 그분은 죄인을 도와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습니다. (마태 9:11-13) 자신을 보호할 힘이 없는 사람을 기꺼이 도와주셨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는 종교 지도자에게 가세하여 모든 이방인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의 주된 사명은 유대 백성을 위한 것이었는데도, 이방인들 가운데 몇몇 사람을 자비롭게 도와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로마 장교를 위해 기적으로 고쳐 주는 일을 하시겠다고 승낙하시면서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이스라엘 가운데 아무에게서도 이렇게 큰 믿음을 본 적이 없습니다.”—마태 8:5-13.

18, 19. (ㄱ) 예수께서는 어떤 방법으로 여자의 품위를 높여 주셨습니까? (ㄴ) 예수의 모범은 어떻게 용기와 공의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도와줍니까?

18 와 마찬가지로, 예수께서는 여자에 대한 널리 퍼져 있는 견해도 옹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용기 있게 공의로운 일을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자은 이방인 못지 않게 부정한 사람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수가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파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실상, 예수께서 처음으로 자신이 약속된 메시아라고 분명히 밝히신 것은 바로 이 여자에게였습니다. (요한 4:6, 25, 26) 바리새인은 여자에게는 하느님의 법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지만, 예수께서는 많은 시간과 힘을 바쳐서 여자에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누가 10:38-42) 그리고 전통적으로 사람은 여자은 신뢰할 만한 증언을 할 수 없다고 믿고 있었지만, 예수께서는 몇몇 여자에게 자신이 부활한 후 자신을 처음으로 볼 수 있는 특권을 주심으로 그 여자의 품위를 높여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 여자에게 자신의 남자 제자에게 가서 이 극히 중요한 일에 대해 알려 주라고 말씀하시기까지 하였습니다!—마태 28:1-10.

19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라에게 공의가 무엇인가를 명확히 알려 주셨습니다. 많은 경우, 그분은 개인적으로 큰 위험을 무릅써 가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예수의 모범은, 참다운 공의를 옹호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적절하게도 그분은 “유다 지파의 사자”라고 불리셨습니다. (계시 5:5) 사자가 용기 있는 공의의 상징이라는 점을 상기해 보십시오. 그런데 가까운 장래에 예수께서는 훨씬 더 크게 공의를 시행하실 것입니다. 아주 온전한 의미로 “땅에 공의를” 세우실 것입니다.—이사야 42:4.

메시아 왕이 ‘땅에 공의를 세우시다’

20, 21. 우리 시대에 메시아 왕께서는 지상 전역에 그리고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 어떻게 공의를 증진시켜 오셨습니까?

20 예수께서는 1914에 메시아 왕이 되신 이후로 땅에 공의를 증진시켜 오셨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습니까? 마태 24:14에 나오는 자신의 예언의 성취를 후원해 오셨습니다. 지상에 있는 예수의 추종자은 모든 나라 사람에게 여호와의 왕국에 관한 진리를 가르쳐 왔습니다. 그도 예수처럼 편파적이 아닌 공의로운 태도로 전파하여, 남녀노소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공의의 하느님이신 여호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주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21 예수께서는 또한 자신이 머리이신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도 공의를 증진시키고 계십니다. 예언된 대로, 그분은 “사람로 된 선물” 즉 회중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충실한 그리스도인 장로을 마련해 주십니다. (에베소 4:8-12) 그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소중한 양 떼를 칠 때, 공의를 증진시키는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양이 지위나 탁월이나 물질적 환경에 관계없이 공의롭게 취급되기를 바라신다는 사실을 그은 늘 염두에 둡니다.

22. 여호와께서는 오늘날의 세상에 만연해 있는 불공정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계시며, 그와 관련하여 자신의 아들이 무슨 일을 하도록 임명하셨습니까?

22 그런데 가까운 장래에 예수께서는 전례 없는 방법으로 땅에 공의를 세우실 것입니다. 이 부패한 세상에는 불공정이 만연해 있습니다.  굶어 죽는 아이는 모두 변명의 여지가 없는 불공정의 피해자입니다. 전쟁 무기를 생산하고 또한 쾌락 추구자의 이기적이고 변덕스러운 욕망을 충족시키는 데 물 쓰듯이 쓰고 있는 돈과 시간을 생각해 볼 때 특히 그러합니다. 해마다 발생하는 수많은 불필요한 죽음은 불공정의 여러 가지 형태 중 하나에 불과하며, 그러한 모든 불공정은 여호와의 의로운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이 이 악한 사물의 제도 전체를 상대로 공의로운 전쟁을 하여 모든 불공정을 영원히 끝내는 일을 하도록 임명하셨습니다.—계시 16:14, 16; 19:11-15.

23. 아마겟돈이 끝난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영원무궁토록 공의를 증진시키실 것입니까?

23 하지만 여호와의 공의는 단지 악한 자을 멸망시키는 것보다 더 많은 일을 요구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또한 자신의 아들을 “평화의 군왕”으로 통치하도록 임명하셨습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끝난 후에, 예수의 통치는 땅 전역에 평화를 확립할 것이고, 예수께서는 ‘공의로’ 통치하실 것입니다. (이사야 9:6, 7) 그때 예수께서는, 세상에 그토록 많은 불행과 고통을 초래해 온 모든 불공정을 바로잡는 일을 기쁘게 수행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영원무궁토록 충실하게 여호와의 완벽한 공의를 옹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여호와의 공의를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 1항 의로운 분노를 나타내는 면에서 예수께서는 여호와와 같은 태도를 나타내신 것인데, 여호와는 모든 악에 대하여 “격노하시는” 분이다. (나훔 1:2) 예를 들면,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엇나간 백성에게 그이 그분의 집을 “단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신 후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의 분노와 격노가 이곳 위에 쏟아진다.’—예레미야 7:11, 20.

^ 3항 미슈나에 의하면, 몇 년 후에, 성전에서 파는 비둘기의 값이 비싸다는 항의가 있었다. 값은 즉시 99퍼센트 정도까지 내려갔다! 그러한 수지맞는 장사로부터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은 누구였는가? 일부 역사가이 시사하는 바에 의하면, 대제사장 안나스의 집안에서 성전 시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그 제사장 집안의 막대한 부 중 상당 부분은 바로 그 시장에서 나오고 있었다.—요한 18:13.

^ 16항 바리새인은 율법을 잘 모르는 그 비천한 사람은 “저주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였다. (요한 7:49) 그은 그러한 사람을 가르쳐서도 안 되고 그러한 사람과 사업 거래를 하거나 함께 먹거나 기도를 해서도 안 된다고 말하였다. 그러한 사람들 중 한 사람에게 딸을 시집 보내는 것은 딸을 야수이 있는 곳으로 내보내는 것보다도 더 악한 일이었다. 그처럼 비천한 사람에게는 부활 희망의 문도 닫혀 있을 것이라고 그은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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