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1-71

6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티베리아스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는데,+  많은 무리가 그분을 계속 따라갔다.+ 그분이 병든 사람들을 고치신 기적의 표징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산으로 올라가 제자들과 함께 앉으셨다.  그때는 유대인의 축제인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다.  예수께서는 눈을 들어 많은 무리가 자신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살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분은 빌립을 시험하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자신이 곧 하실 일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빌립이 대답했다. “모든 사람에게 조금씩이라도 주려면, 200데나리온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자들 중 하나이며 시몬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가 그분에게 말했다.  “여기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를 가진 소년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10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앉게 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마침 그곳에 풀이 많아서 사람들이 거기에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5000명쯤 되었다.+ 11  예수께서는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린 다음,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고 작은 생선도 그렇게 하셨다.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 먹었다. 12  그들이 배불리 먹었을 때에 그분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조각을 모아 아무것도 버리지 않게 하십시오.” 13  그래서 그들이 남은 조각을 모아 보니,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로 먹고 남은 것이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14  사람들은 그분이 행하신 표징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세상에 오게 되어 있는 ‘예언자’이시다”+ 하고 말하기 시작했다. 15  예수께서는 그들이 와서 억지로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아시고, 혼자 다시 산으로 들어가셨다.+ 16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바다로 내려가서+ 17  배를 타고 바다 건너편 가버나움을 향해 떠났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 예수께서는 아직 그들에게 오지 않으셨다.+ 18  게다가 강한 바람이 불어 바다가 거칠어졌다.+ 19  그들이 배를 저어 5~6킬로미터쯤 갔을 때, 그들은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고 두려워했다. 20  그러자 그분은 그들에게 “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21  그래서 그들은 그분을 기쁘게 배 안으로 맞아들였고,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곳에 다다랐다.+ 22  다음 날, 바다 건너편에 남아 있던 무리는 거기에 작은 배 한 척밖에 없었다는 것과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그 배를 타지 않으시고 제자들만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3  그런데 티베리아스에서 온 배들이 주께서 감사를 드리고 사람들에게 빵을 먹이신 곳 근처에 도착했다. 24  무리는 그곳에 예수도 안 계시고 그분의 제자들도 없다는 것을 알고, 그 배들을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갔다. 25  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그분을 찾고는 “랍비,+ 언제 여기에 오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러분이 나를 찾고 있는 것은 표징을 보아서가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입니다.+ 27  썩어 없어지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지 말고,+ 계속 남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십시오. ‘사람의 아들’이 그것을 여러분에게 줄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곧 하느님께서 그에게 승인의 인장을 찍으셨기 때문입니다.”+ 28  그러자 그들은 그분에게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9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이 보내신 자에게 여러분이 믿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30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보고 선생님을 믿을 수 있도록 어떤 표징을+ 행하시겠습니까? 무슨 일을 하실 것입니까? 31  ‘그분이 하늘에서 빵을 내려 주셔서 먹게 하셨다’라고+ 기록된 대로,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습니다.” 32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모세가 하늘에서 여러분에게 빵을 내려 준 것이 아닙니다. 나의 아버지께서 하늘에서 여러분에게 참된 빵을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33  하느님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는 자입니다.”+ 34  그러자 그들은 “주여, 그 빵을 항상 우리에게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의 빵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굶주리지 않을 것이며, 나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36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여러분은 나를 보고도 믿지 않습니다.+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올 것이며, 내게 오는 사람을 나는 결코 쫓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38  내가 나의 뜻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왔기 때문입니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이 나에게 주신 모든 사람을 내가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40  아들을 알아보고 그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부활시킬+ 것입니다.” 41  그러자 유대인들은 그분에 대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분이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2  그들은 말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우리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알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가 어떻게 ‘나는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말하는가?” 43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그만 수군거리십시오. 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부활시킬 것입니다.+ 45  예언서에 ‘그들은 모두 여호와께 가르침을 받을*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옵니다. 46  그렇다고 하느님에게서 온 자 외에 아버지를 본 사람이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오직 그만 아버지를 보았습니다.+ 47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믿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48  나는 생명의 빵입니다.+ 49  여러분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도 죽었습니다.+ 50  그러나 이 빵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니, 누구든지 이것을 먹으면 죽지 않을 것입니다.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빵입니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입니다. 사실, 내가 줄 빵은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나의 살입니다.”+ 52  그러자 유대인들이 서로 논쟁하며 “저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말했다. 53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러분이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여러분 안에 생명이 없습니다.+ 54  누구든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으며, 나는 마지막 날에 그를 부활시킬 것입니다.+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입니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물러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있습니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 때문에 사는 것처럼, 나를 먹는 사람도 나 때문에 살 것입니다.+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빵입니다. 여러분의 조상들이 먹고도 죽었던 것과는 달리,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입니다.”+ 59  이 말씀은 그분이 가버나움의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하신 것이다. 60  이 말씀을 듣고 그분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충격적인 말이다. 누가 저 말을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하고 말했다. 61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이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여러분을 걸려 넘어지게 합니까? 62  그렇다면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본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63  생명을 주는 것은 영입니다.+ 육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입니다.+ 64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65  그분이 계속 말씀하셨다. “그래서 내가 여러분에게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66  이 때문에, 그분의 제자 중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더 이상 그분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67  그래서 예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여러분도 가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습니다.+ 69  우리는 주께서 하느님의 거룩한 분임을 믿고 있으며 또 알고 있습니다.”+ 70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 열두 사람을 선택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여러분 중 하나는 중상자입니다.”+ 71  그분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는 열두 제자 중의 하나이지만 그분을 배반할 자였다.+

각주

또는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될”.
또는 “뒤에 있는 것으로 돌아가고”.

연구 노트

갈릴리 바닷가: 갈릴리 바다는 이스라엘 북부 내륙에 있는 담수호이다. (“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호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긴네렛 바다”(민 34:11), ‘게네사렛 호수’(눅 5:1), “티베리아스 바다”(요 6:1)라고도 불렸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평균 210미터 아래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길이가 21킬로미터, 폭이 12킬로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약 48미터이다.—부록 가7 지도 3ㄴ “갈릴리 바다에서 하신 활동” 참조.

갈릴리 바다 곧 티베리아스 바다: 갈릴리 바다 서쪽 해안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티베리아스라는 도시가 있었다. (요 6:23) 갈릴리 바다는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스 바다라고 불리기도 했다. 티베리아스 바다라는 이름은 이 구절과 요 21:1에 나온다.—마 4:18 연구 노트 참조.

유월절: 예수께서는 기원 29년 가을에 침례를 받고 전파 활동을 시작하셨다. 이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봉사를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여기 언급된 유월절은 기원 30년 봄에 있었던 유월절임이 분명하다. (눅 3:1 연구 노트부록 가7 참조) 사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예수께서 땅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유월절이 네 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분의 봉사 기간이 3년 반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흔히 공관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는 다른 유월절들은 언급하지 않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마지막 유월절만을 언급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세 차례의 유월절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요 2:13; 6:4; 11:55) 또한 요 5:1에 나오는 “유대인의 축제”라는 표현이 나머지 한 차례의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처럼 복음서 기록을 비교해 보는 것은 예수의 삶을 더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요 5:1; 6:4; 11:55 연구 노트 참조.

유대인의 축제: 요한이 이것이 어느 축제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지만 이 축제가 기원 31년 유월절을 가리킨다고 결론 내릴 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요한의 기록은 대체로 시간 순서를 따른다. 문맥을 보면 예수께서 “수확 때가 오려면 아직도 네 달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시고 얼마 후에 이 축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 4:35) 수확 때, 특히 보리 수확 때는 유월절(니산월 14일) 무렵에 시작되었다. 따라서 예수께서 그 말씀을 하신 때는 그보다 약 4개월 전인 기슬레우월(11월/12월)쯤이었던 것 같다. 기슬레우월부터 니산월에는 유월절 외에도 봉헌 축제와 부림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 두 축제의 경우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것이 요구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유대인의 축제”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고 알려 준다. 따라서 여기에 언급된 축제는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예루살렘에 올라가 지켜야 했던 유월절을 가리킬 가능성이 가장 높다. (신 16:16) 이 축제 이후부터 다음번 유월절에 대한 언급(요 6:4)이 있기까지 요한이 기록한 사건이 얼마 되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부록 가7에 나오는 도표를 보면, 요한이 예수의 초기 봉사에 대해 간략하게 기록했으며 다른 세 복음서 필자들이 이미 다룬 많은 사건들은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 세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활동이 매우 많다는 점은 요 2:13에 언급된 유월절과 요 6:4에 언급된 유월절 사이에 연례 유월절이 한 번 더 있었다는 결론을 뒷받침해 준다.—부록 가7요 2:13 연구 노트 참조.

유월절: 기원 33년의 유월절을 가리킨다. 이것은 요한복음에 언급된 네 번째 유월절인 것 같다.—요 2:13; 5:1; 6:4 연구 노트 참조.

유월절: 기원 32년의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것은 예수께서 땅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있었던 세 번째 유월절이었을 것이다.—요 2:13; 5:1; 11:55 연구 노트부록 가7 참조.

우리가 어디서 이 사람들이 먹을 빵을 살 있겠습니까?: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 복음서 필자 네 명 모두가 기록한 기적은 이것뿐이다.—마 14:15-21; 막 6:35-44; 눅 9:10-17; 요 6:1-13.

데나리온: 용어 설명부록 나14 참조.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도: 이 기적에 대해 기록하면서 여자와 어린아이를 언급한 사람은 마태뿐이다. 예수께서 기적으로 먹이신 사람의 수는 1만 5000명이 넘었을 수 있다.

사람들을 앉게 하십시오: 또는 “사람들을 기대앉게 하십시오”. 여기서 “사람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안트로포스로서 남자와 여자를 모두 포함하는 경우가 많다. 이 구절에서 “남자”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아네르인데, 마 14:21과 비교해 보면 이 문맥에서는 성인 남자만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 14:21 연구 노트 참조.

사람들이 거기에 앉았는데, 남자의 수가 5000명쯤 되었다: 이 기적에 대해 기록한 복음서 필자들 중에 마태만이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마 14:21) 예수께서 기적으로 먹이신 사람의 수는 1만 5000명이 넘었을 수 있다.

세상: 여기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이 문맥에서 세상에 오다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인간으로 태어나신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침례를 받아 인류 가운데로 오신 것을 주로 가리키는 것 같다. 그분은 침례를 받으신 뒤에,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면서 인류 전체에 빛을 비추는 역할을 하셨다.—요 3:17, 19; 6:14; 9:39; 10:36; 11:27; 12:46; 요1 4:9 비교.

‘예언자’: 기원 1세기에 많은 유대인들은 신 18:15, 18에 언급된 ‘모세와 같은 예언자’가 메시아일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이 문맥에서 세상에 오다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던 메시아가 출현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요한만이 이 구절에 나오는 내용을 기록했다.—요 1:9 연구 노트 참조.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고 하는 것을: 복음서 필자 가운데 요한만이 이 일을 기록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사는 나라의 정치에 관여하기를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그분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느님께서 정하신 방법으로만 왕이 되고자 하셨다. 후에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도 그와 동일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다.—요 15:19; 17:14, 16; 18:36.

갈릴리 바닷가: 갈릴리 바다는 이스라엘 북부 내륙에 있는 담수호이다. (“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호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긴네렛 바다”(민 34:11), ‘게네사렛 호수’(눅 5:1), “티베리아스 바다”(요 6:1)라고도 불렸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평균 210미터 아래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길이가 21킬로미터, 폭이 12킬로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약 48미터이다.—부록 가7 지도 3ㄴ “갈릴리 바다에서 하신 활동” 참조.

갈릴리 바다 곧 티베리아스 바다: 갈릴리 바다 서쪽 해안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 카이사르의 이름을 딴 티베리아스라는 도시가 있었다. (요 6:23) 갈릴리 바다는 이 도시의 이름을 따서 티베리아스 바다라고 불리기도 했다. 티베리아스 바다라는 이름은 이 구절과 요 21:1에 나온다.—마 4:18 연구 노트 참조.

바다: 갈릴리 바다를 가리킨다.—마 4:18; 요 6:1 연구 노트 참조.

갈릴리 바닷가: 갈릴리 바다는 이스라엘 북부 내륙에 있는 담수호이다. (“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호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긴네렛 바다”(민 34:11), ‘게네사렛 호수’(눅 5:1), “티베리아스 바다”(요 6:1)라고도 불렸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평균 210미터 아래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길이가 21킬로미터, 폭이 12킬로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약 48미터이다.—부록 가7 지도 3ㄴ “갈릴리 바다에서 하신 활동” 참조.

5~6킬로미터쯤: 직역하면 “25~30스타디온쯤”. 그리스어 스타디온은 1로마마일의 8분의 1 즉 185미터에 해당하는 길이 단위이다. 갈릴리 바다는 폭이 12킬로미터쯤 되는 호수였다. 따라서 당시 제자들이 탄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을 것이다.—막 6:47. 마 4:18 연구 노트부록 가7나14 참조.

티베리아스: 갈릴리 바다 서쪽 해안에 있던 도시로, 가버나움에서 남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이 도시 바로 남쪽에는 고대에 유명했던 온천들이 있다. 티베리아스는 기원 18년에서 26년 사이에 헤롯 안티파스가 새로운 수도로 삼기 위해 건설한 도시이며, 그는 그곳에 자신의 왕궁도 지었다. 그는 당시 로마 황제였던 티베리우스 카이사르를 기리는 의미에서 그 도시의 이름을 티베리아스라고 지었는데, 이 도시는 지금도 티베리아스(히브리어: 테베리아)라고 불린다. 이 도시는 그 지역에서 가장 큰 도시였지만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언급된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티베리아스를 방문하셨다는 기록이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그곳이 외국의 영향을 많이 받는 도시였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그곳에 가지 않으셨던 것 같다. (마 10:5-7 비교) 요세푸스에 따르면, 티베리아스는 묘지가 있는 곳에 세워졌다. 따라서 많은 유대인은 그곳으로 이주하기를 꺼렸다. (민 19:11-14) 기원 2세기에 유대인들의 반란이 있은 뒤에, 티베리아스는 정결한 곳으로 선언되었으며 유대인들의 학문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산헤드린도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미슈나와 팔레스타인(예루살렘) 탈무드는 그곳에서 집대성되었으며, 후에 히브리어 성경을 번역하는 데 사용된 마소라 본문도 그곳에서 완성되었다.—부록 나10 참조.

썩어 없어지는 양식 ··· 계속 남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 예수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단순히 물질적인 도움을 얻으려는 목적으로 자신과 제자들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실제 양식은 사람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 있게 해 주지만, 하느님의 말씀에 들어 있는 “양식”은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게 해 준다. 예수께서는 무리에게 “계속 남아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을 얻으려고 일하라고, 다시 말해 영적 필요를 채우고 배운 것에 대해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라고 권고하신다.—마 4:4; 5:3; 요 6:28-39.

우리 조상들은 ··· 만나를 먹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문자적인 양식을 줄 수 있는 메시아 왕을 원했다. 그들은 그것이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뒷받침하려고, 하느님께서 그들의 조상들에게 시나이 광야에서 만나를 주신 일을 언급했다. 그들은 시 78:24을 인용하여, 하느님께서 기적으로 주신 만나를 하늘에서 내려 주신 빵[또는 “곡식”]이라고 불렀다. 그들은 바로 전날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여 보리빵 다섯 개와 작은 생선 두 마리로 많은 사람을 먹이신 일을 염두에 두고 (요 6:9-12) 그분에게 “표징”을 행할 것을 요구했을 수 있다.—요 6:30.

세상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는데도: 여기서 그리스어 코스모스(“세상”)는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이 구절의 뒷부분에서 세상은 그분을 알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세속 문헌에서 이 그리스어는 우주와 창조물 전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연설할 때 그러한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한 것 같다. (행 17:24)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인류 전체나 그 일부를 가리킨다. 예수께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비롯해 모든 것을 만드는 데 참여하신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구절은 인류가 생겨나는 데 있어서 예수께서 하신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창 1:26; 요 1:3; 골 1:15-17.

세상: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일반적으로 인류 전체나 그 일부를 가리킨다. (요 1:10 연구 노트 참조) 요 1:29에서는 예수를 “세상의 죄”를 없애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언급한다. 요 6:33에서는 예수가 하느님의 빵 즉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생명과 축복을 주기 위해 사용하시는 통로라고 알려 준다.

생명의 빵: 이 표현은 성경에 두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요 6:35, 48) 문맥을 보면 이 구절에 나오는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 6:40, 47, 54) 예수께서는 이 대화 가운데서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 준 참된 빵’(요 6:32), “하느님의 빵”(요 6:33), “생명의 빵”(요 6:51)으로 언급하신다. 그분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광야에 있을 때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를 공급해 주셨지만 (느 9:20) 만나가 그들이 영원히 살게 해 주지는 못했다는 점을 지적하신다. (요 6:49) 그와는 달리, 그리스도의 충실한 제자들에게는 하늘에서 온 만나 즉 “생명의 빵”이 있으며 (요 6:48-51, 58) 이것은 그들이 영원히 살게 해 줄 수 있다. 그들은 예수께서 희생으로 바치신 살과 피가 가진 구속하는 힘에 대해 믿음을 나타냄으로 “이 빵을 먹는다.”

오라비가 살아나리라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마르다는 예수께서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에 대해 말씀하고 계신다고 생각했다. (요 6:39 연구 노트 참조) 마르다가 부활이라는 가르침에 믿음을 나타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사두개인이라고 하는 당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부활이 영감받은 성경에 분명히 나오는 가르침인데도 부활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부인했다. (단 12:13; 막 12:18) 그런가 하면 바리새인들은 영혼불멸을 믿었다. 하지만 마르다는 예수께서 부활 희망에 대해 가르치셨으며 죽은 사람을 실제로 부활시키기도 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예수께서 그때까지 부활시킨 사람들 중 나사로처럼 죽은 지 오래된 사람은 없었다.

마지막 날에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마지막 날에 사람들을 부활시킬 것이라는 말씀을 네 번 하셨다. (요 6:40, 44, 54) 요 11:24을 보면 마르다도 “마지막 날 부활”을 언급했다. (단 12:13 비교. 요 11:24 연구 노트 참조) 요 12:48에서는 이 “마지막 날”을 심판 때와 연관 짓는데, 심판 때는 그리스도께서 부활되는 모든 사람을 비롯해 인류를 심판하실 천년 통치 기간을 가리키는 것 같다.—계 20:4-6.

영원한 생명: 이 대화 가운데서 예수께서는 “영원한 생명”이라는 표현을 네 번 사용하시며 (요 6:27, 40, 47, 54) 그분의 제자 한 명도 그 표현을 한 번 사용한다. (요 6:68) “영원한 생명”이라는 표현은 요한복음에 총 17회 나오는데, 이것은 다른 세 복음서에 나오는 횟수를 합한 것(8회)보다 많은 수이다.

모든 부류의 사람: 예수께서는 국적, 인종, 경제적 형편에 관계없이 온갖 배경의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이끌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행 10:34, 35; 계 7:9, 10. 요 6:44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얼마 전에 ‘그리스인 몇 명’이 예수를 만나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점은 유의할 만하다. (요 12:20 연구 노트 참조) 많은 번역판에서는 그리스어 파스를 “모든 사람; 모든 이”로 번역한다. 그럴 경우,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분이 결국 모든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실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 하지만 그것은 영감받은 성경의 나머지 부분과 조화되지 않는다. (시 145:20; 마 7:13; 눅 2:34; 살후 1:9) 그리스어 파스의 문자적인 의미가 “모두; 모든 사람”이기는 하지만 (롬 5:12) 마 5:11과 행 10:12을 보면 이 단어가 “온갖; 온갖 종류의; 모든 부류의”를 의미할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많은 번역판이 그 구절들에서 “온갖; 각종” 같은 번역 표현을 사용한다.—요 1:7; 딤전 2:4.

이끌지: “이끌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그물에 잡힌 물고기를 끌어 올리는 것을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지만 (요 21:6, 11)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억지로 이끄신다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니다. 이 동사는 “(마음을) 끌다”를 의미할 수도 있는데, 예수께서는 렘 31:3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을 수 있다. 그 구절에서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고대 백성에게 “[내가] 충성스러운 사랑으로 너를 내게로 이끌었다”라고 말씀하신다. (「칠십인역」에서는 그 구절을 번역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를 사용했다.) 요 12:32(연구 노트 참조)에서는 예수께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모든 부류의 사람을 자신에게로 이끄신다고 알려 준다. 성경은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누구나 그분을 섬길지 섬기지 않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 (신 30:19, 20) 여호와께서는 합당한 마음의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자신에게로 부드럽게 이끄신다. (시 11:5; 잠 21:2; 행 13:48) 그분은 성경에 담긴 소식과 자신의 성령을 통해 그렇게 하신다. 요 6:45에는 사 54:13의 예언이 인용되어 있는데, 그 예언은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사람들에게 적용된다.—요 6:65 비교.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54:1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요한복음의 현존하는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테오스로 되어 있다. (「칠십인역」의 사본들에서 사 54:13에 사용한 표현을 따른 것일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번역판에서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하지만 사 54:13의 히브리어 원문을 고려하여,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부록 다 참조.

자신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신: 또는 “자신 안에 생명의 선물을 갖고 계신”. 이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그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시다고 알려 준다. 아버지 여호와께서 원래 자신만이 가지고 계시던 능력을 예수에게 주셨기 때문이다. 분명 이러한 능력에는 하느님 앞에서 훌륭한 신분을 얻어 생명을 누릴 기회를 사람들에게 줄 권위가 포함되었을 것이다. 또한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켜 생명을 줄 능력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 나오는 말씀을 하시고 약 1년 후에, 자신의 제자들이 그들 안에 생명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알려 주셨다.—예수의 제자들에게 사용된 “여러분 안에 생명이”라는 표현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려면, 요 6:53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 안에 생명이: 요 5:26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자신 안에 생명을” 갖고 계신 것처럼 아들도 “그 안에 생명을” 갖게 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요 5:26 연구 노트 참조) 이제 약 1년 뒤에 예수께서는 동일한 표현을 제자들에게 사용하신다. 그러면서 “[그들] 안에 생명이” 있는 것을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과 같은 것으로 언급하신다. (요 6:54) 이 문맥에서 ‘자신 안에 생명이’ 있다는 표현은 생명을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생명의 온전함에 들어가는 것, 다시 말해 온전한 의미에서 살게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늘로 부활되어 불멸의 생명을 누리게 될 때 온전한 의미에서 살게 된다. 땅의 희망을 가진 충실한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천년 통치가 끝난 후 곧바로 있게 될 최종 시험을 통과하고 나서야 온전한 의미에서 살게 될 것이다.—고전 15:52, 53; 계 20:5, 7-10.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문맥을 볼 때,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신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낸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요 6:35, 40)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는 기원 32년이었으므로, 그분은 주의 만찬에 대해 이야기하신 것이 아니었다. 주의 만찬은 예수께서 그로부터 1년 뒤에 제정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이 이 말씀을 하신 때는 “유대인의 축제인 유월절”이 있기 얼마 전이었다. (요 6:4) 따라서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다가오는 축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떠나던 날 밤 어린양의 피가 어떻게 생명을 구하는 역할을 했는지 떠올렸을 수 있다. (출 12:24-27) 예수께서는 그 어린양의 피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피가 제자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었다.

내 안에: 또는 “나와 함께하여”. 이 표현은 친밀하고, 조화를 이루고,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회당: 달리 번역하면 “공개 집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명사 시나고게의 문자적 의미는 “함께 모음; 회중”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대부분의 성구에서 이 단어는 유대인들이 성경 낭독, 교훈, 설교, 기도 등을 위해 모인 건물이나 장소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회당” 참조)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일반 사람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 모임을 가리키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예수께서 모세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들을 가르치셨던 “회당”을 가리킬 가능성이 높다.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죄를 짓거나 죄를 짓게 한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이 문맥에서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이라는 표현은 “당신이 죄를 짓게 한다면; 당신에게 올무가 된다면”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성경에서 이 표현이 사용된 사례들을 보면, 여기서 죄는 도덕에 관한 하느님의 법을 범하거나 믿음을 잃거나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스칸달리조는 “반감을 품다; 못마땅하게 여기다”라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마 13:57; 18:7 연구 노트 참조.

걸림돌: 그리스어 원어 스칸달론은 원래 덫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덫 안에 있는, 미끼를 놓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넓어져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도덕적인 면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는 행동 또는 환경을 가리킨다. 마 18:8, 9에서는 스칸달론과 어근이 같은 동사 스칸달리조가 “걸려 넘어지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은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이 여러분을 걸려 넘어지게 합니까?: 또는 “이 말이 여러분의 귀에 거슬립니까?; 이것 때문에 여러분이 반감을 품습니까?; 이것이 여러분이 믿음을 잃게 만듭니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가리키는 표현으로서, 죄를 짓거나 죄를 짓게 한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문맥에 따라 이 단어는 도덕에 관한 하느님의 법을 범하거나 믿음을 잃거나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할 수 있으며, 반감을 품거나 못마땅하게 여긴다는 의미로 사용될 수도 있다.—마 5:29; 18:7 연구 노트 참조.

무슨 뜻인지: 직역하면 “무엇인지”. 그리스어 에스틴은 문자적으로 “~이다”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뜻하다; 상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6:26 연구 노트 참조.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원어 에스틴은 문자적으로 “~이다”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상징하다; 대표하다; 뜻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들은 이 말의 뜻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 앞에 예수의 완전한 몸도 있었고 그들이 곧 먹게 될 누룩이 들지 않은 빵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빵이 예수의 실제 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했다. 유의할 만하게도, 같은 그리스어 단어가 마 12:7에도 사용되었는데, 여러 성경 번역판에서 이 단어를 “뜻하다”로 번역한다.

영: 하느님의 성령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영을 통해 주시는 능력과 지혜와는 달리 육은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인간의 저술물과 철학과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인간의 능력과 지혜가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육: 이 표현은 폭넓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인간이 가진 한계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인간은 원하는 것을 모두 이해할 수도 없으며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할 수도 없다. 인간이 가진 경험과 지혜, 모든 저술물과 철학과 가르침을 다 합한다 해도 그러한 것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아무 소용이 없다.

영이며 생명입니다: 여기서 “~이며”와 “~입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스틴)는 이 구절에서 “의미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을 수 있다. 그럴 경우 이 표현은 “영을 의미하고 생명을 의미합니다”로 번역할 수 있다. (마 12:7; 26:26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는 자신의 말이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이며 생명을 가져다준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

중상자: 또는 “마귀”. 그리스어 디아볼로스는 “중상자”를 의미하며,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딤전 3:11; 딤후 3:3; 딛 2:3에서는 이 단어가 사탄 마귀를 가리키지 않으며, “중상하다”로 번역되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단어가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이 단어 앞에 정관사가 사용된다. (마 4: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정관사” 참조) 이 구절(요 6:70)에서 이 단어는 악한 특성을 발전시킨 가룟 유다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아마 이 무렵에 예수께서는 유다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그로 인해 유다는 후에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예수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되었다.—요 13:2, 11.

그분은 ···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분별하실 수 있는 분이므로, 유다는 사도로 선택될 당시에는 배반적인 태도를 나타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마 9:4; 막 2:8; 요 2:24, 25) 하지만 후에 유다가 좋지 않은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간파하셨으며 그가 배반자가 될 것임을 알아차리셨다. 그분은 그가 자신을 배반할 것임을 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겨 주셨다.—요 6:64; 6:70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는 ···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가룟 유다임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택하기 전에 밤새도록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눅 6:12-16) 따라서 유다는 처음에는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을 통해 자신이 가까운 동료에게 배반당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 (시 41:9; 109:8; 요 13:18, 19) 그리고 유다가 악해지기 시작하자,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예수께서는 그러한 변화를 알아차리셨다. (마 9:4) 하느님께서는 예지력을 사용하여 예수가 신뢰하던 동료 중 하나가 배반자가 될 것임을 내다보셨다. 하지만 유다가 그 배반자가 될 것임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특성과 그분이 과거에 일을 처리하신 방식과 조화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 표현은 유다가 태어난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또한 그가 사도로 선택된 시점을 가리키는 것도 아니다. 예수께서 밤새 기도하신 다음 그를 사도로 선택하셨기 때문이다. (눅 6:12-16) 여기서 “처음”이란 유다가 배반적인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한 때를 가리키며, 예수께서는 즉시 그 점을 알아차리셨다. (요 2:24, 25; 계 1:1; 2:23. 요 6:70; 13:11 연구 노트 참조) 또한 이 표현은 유다가 배신한 것이 갑작스런 심경의 변화 때문이 아니라 미리 생각하고 계획한 것이었음을 보여 준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처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르케의 의미는 문맥에 따라 결정된다. 예를 들어, 벧후 3:4에서 이 단어(“시작”)는 창조의 시작을 가리킨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이 단어는 좀 더 좁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례로 베드로는 성령이 “처음에 우리에게 내렸던 것처럼” 이방인들에게도 내렸다고 말했다. (행 11:15)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처음”은 그가 태어난 시점이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시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기원 33년 오순절 즉 성령이 특별한 목적으로 “처음” 부어진 때를 언급한 것이었다. (행 2:1-4) “처음”이라는 단어가 문맥에 따라 다른 의미로 사용된 예는 눅 1:2; 요 15:27; 요1 2:7에서도 볼 수 있다.

마귀: 그리스어로는 디아볼로스. “중상자”를 의미한다. (요 6:70; 딤후 3:3) 관련된 동사 디아발로는 “고발하다; 혐의를 제기하다”를 의미하며 눅 16:1에서는 ‘고발이 있다’로 번역되었다.

중상자: 또는 “마귀”. 그리스어 디아볼로스는 “중상자”를 의미하며,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딤전 3:11; 딤후 3:3; 딛 2:3에서는 이 단어가 사탄 마귀를 가리키지 않으며, “중상하다”로 번역되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단어가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이 단어 앞에 정관사가 사용된다. (마 4: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정관사” 참조) 이 구절(요 6:70)에서 이 단어는 악한 특성을 발전시킨 가룟 유다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아마 이 무렵에 예수께서는 유다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그로 인해 유다는 후에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예수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되었다.—요 13:2, 11.

미디어

바구니
바구니

성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바구니를 묘사하는 몇 가지 단어가 나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기적으로 약 5000명의 남자를 먹이셨을 때 남은 음식을 담은 12개의 바구니는,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는 단어를 볼 때 잔가지를 엮어 만든 비교적 작은 손바구니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약 4000명의 남자를 먹이셨을 때 남은 음식을 담은 7개의 바구니를 가리키는 데는 다른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막 8:8, 9) 이 단어는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를 가리킨다. 다마스쿠스의 성벽 구멍을 통해 바울을 내려보낼 때 쓰인 광주리를 가리키는 데도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되었다.—행 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