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4:1-54

4  예수께서 요한보다 더 많은 사람을 제자로 삼아 침례를 주신다는 말이+ 바리새인들의 귀에 들어간 것을 주께서 알게 되셨다.  (사실은 예수께서 직접 침례를 주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준 것이다.)  그래서 그분은 유대를 떠나 다시 갈릴리를 향해 가셨다.+  그분은 사마리아를 지나가셔야 했다.  그리하여 그분은 수가라고 하는 사마리아의 한 도시에 오셨는데, 그곳은 야곱이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다. 예수께서는 여행으로 피곤하셔서 우물 곁에 앉아 계셨다. 때는 제6시쯤이었다.  한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으러 왔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에게 “물을 좀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러 도시에 들어가 있었다.)  그러자 사마리아 여자가 그분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유대인인데 어째서 사마리아 여자인 저에게 물을 달라고 하십니까?”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느님의 선물*+ 알고, 또 당신에게 ‘물을 좀 주십시오’ 하고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오히려 당신이 그에게 청했을 것이고 그는 당신에게 생명의 물을+ 주었을 것입니다.” 11  여자가 그분에게 말했다. “선생님, 선생님은 두레박도 없으시고, 이 우물은 깊습니다. 그런데 어디에서 그 생명의 물을 구하신단 말입니까? 12  선생님이 우리의 조상 야곱보다 더 큰 분이라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우리에게 이 우물을 주셨고, 그분도 아들들과 가축과 함께 이 우물에서 물을 마셨습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누구나 다시 목마를 것입니다. 14  그러나 누구든지 내가 줄 물을 마시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내가 줄 물은 그 사람 안에서 솟아오르는 샘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줄 것입니다.”+ 15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그 물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래서 제가 목마르지도 않고 물을 길으러 이곳에 계속 오지도 않게 해 주십시오.” 16  그분은 그에게 “가서 남편을 이곳으로 불러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17  여자가 “저는 남편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남편이 없다’고 한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18  당신에게는 남편이 다섯 명 있었고 지금 함께 사는 남자도 당신의 남편이 아니니, 사실대로 말한 것입니다.” 19  여자가 말했다. “선생님, 제가 보니 선생님은 예언자이십니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숭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숭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2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여자여, 나를 믿으십시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당신들이 아버지를 숭배할 때가 옵니다. 22  당신들은 모르는 것을 숭배합니다.+ 우리는 아는 것을 숭배합니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23  그러나 참숭배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를 숭배할 때가 옵니다.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사실, 아버지께서는 자신을 그렇게 숭배할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24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영과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 25  여자가 말했다. “저는 그리스도라고 하는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이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밝혀 주실 것입니다.”+ 26  예수께서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당신과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27  바로 그때 제자들이 돌아왔는데, 그분이 여자와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보고 놀랐다. 그러나 아무도 “무엇을 찾고 계십니까?” 또는 “왜 그 여자와 이야기하십니까?” 하고 묻지 않았다. 28  그 여자는 물 항아리를 버려두고 도시로 들어가 사람들에게 말했다. 29  “와서,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을 보십시오. 그분이 혹시 그리스도가 아닐까요?” 30  그러자 그들이 도시에서 나와 그분에게 가기 시작했다. 31  그동안 제자들은 그분에게 “랍비,+ 드십시오” 하고 권했다. 32  그러나 그분은 그들에게 “나에게는 여러분이 모르는 음식이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33  그러자 제자들은 “드실 것을 갖다 드린 사람이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하고 서로 말했다. 3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의 음식은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행하며+ 그분의 일을 끝내는 것입니다.+ 35  여러분은 수확 때가 오려면 아직도 네 달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눈을 들어 밭을 보십시오. 희어져 수확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36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품삯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위한 열매를 모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씨 뿌리는 사람과 거두어들이는 사람이 함께 기뻐하게 됩니다.+ 37  그러므로 한 사람은 씨를 뿌리고 다른 사람은 거둔다는 말이 참됩니다. 38  나는 여러분이 수고하지 않은 것을 거두라고 여러분을 보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수고했고 여러분은 그들이 수고한 결실을 함께 나눈 것입니다.” 39  그 도시에서 나온 많은 사마리아인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 “그분이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혔습니다”라고 증언한 여자의 말 때문이었다.+ 40  사마리아인들이 그분에게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무르시기를 청하자, 그분은 거기서 이틀을 머무르셨다. 41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이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 42  그들이 여자에게 말했다. “우리가 믿는 것은 이제 당신의 말 때문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들었고, 이분이 참으로 세상의 구원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43  이틀 후에, 그분은 그곳을 떠나 갈릴리로 가셨다. 44  예수께서는 예언자가 자기 고향에서는 존경받지 못한다고 친히 증언하셨다.+ 45  그분이 갈릴리에 도착하시자 갈릴리 사람들이 그분을 환영했다. 그들도 축제에 갔다가,+ 그분이 축제 때에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기 때문이다.+ 46  그분은 다시 갈릴리 가나로 오셨다. 그곳은 그분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다.+ 거기에 왕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이 들어 있었다. 47  그는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셨다는 말을 듣고 그분에게 가서, 내려오셔서 아들을 고쳐 달라고 했다. 그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기 때문이다. 48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여러분은 표징과 놀라운 일을 보지 않고서는 결코 믿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49  왕의 신하는 그분에게 “주여, 제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와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5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가십시오. 당신의 아들은 살 것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떠났다. 51  그런데 그가 내려가는 도중에 그의 종들이 그를 만나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했다. 52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아들이 낫게 된 시간을 물었다. 그들은 “어제 제7시에 열이 내렸습니다”라고+ 대답했다. 53  아이의 아버지는 그때가 예수께서 “당신의 아들은 살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 시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와 그의 온 집안이 믿게 되었다. 54  이 일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셔서 행하신 두 번째 표징이었다.+

각주

또는 “값없이 주는 선물”.
또는 “나았다고”.

연구 노트

사마리아: 예수 시대에 사마리아는 로마에 속한 한 지역의 이름이었다. 예수께서는 때때로 이 지역을 지나가셨으며, 나중에 제자들은 이곳에 그리스도교에 관한 소식을 전했다. 사마리아의 정확한 경계는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이 지역은 북쪽의 갈릴리와 남쪽의 유대 사이에 있었고, 요르단강에서부터 서쪽으로 지중해 연안의 평야까지 펼쳐져 있었다. 대체로 이 지역은 과거에 에브라임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요르단강 서쪽)에 속했던 영토와 일치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을 오가는 길에 가끔 사마리아를 지나가셨지만 (요 4:3-6; 눅 9:51, 52; 17:11) 사도들에게 사마리아의 도시들에서 전파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그들의 주된 임무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들” 즉 유대인들에게 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마 10:5, 6) 하지만 그러한 지시는 한시적인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기 바로 전에 제자들에게 “사마리아”와 “땅의 가장 먼 곳까지” 좋은 소식을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행 1:8, 9)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일어났을 때 일부 제자들, 특히 빌립은 사마리아 전역을 두루 다니며 좋은 소식을 전했다. 후에 사도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성령을 받을 수 있도록 그곳에 베드로와 요한을 보냈다.—행 8:1-17, 25; 9:31; 15:3.

수가: 사마리아의 한 도시. 오늘날 이 도시로 추정되는 곳은 나블루스 근처의 아스카르라는 마을이다. 이 마을은 세겜에서 북동쪽으로 약 1킬로미터, 야곱의 우물에서 북북동쪽으로 0.7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부록 나6나10 참조) 일부 사람들은 시리아어 시나이 책자본에 “수겜”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는 점과 몇몇 초기 세속 문헌을 근거로 수가가 세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가장 신뢰할 만한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수가”라고 표기되어 있다. 또한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이 기록에 언급된 일이 있을 당시에는 세겜(텔발라타)에 사람이 살지 않았다.

제3시: 오전 9시경. 기원 1세기에 유대인들은 해 뜨는 시간인 오전 6시경부터 시작해서 낮을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요 11:9) 따라서 제3시는 오전 9시경, 제6시는 낮 12시경, 제9시는 오후 3시경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시계가 없었으므로, 많은 경우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대략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요 1:39; 4:6; 19:14; 행 10:3, 9.

야곱의 우물: 이 우물은 오늘날의 비르야쿠브(베에르야아코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나블루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세겜이 있던 곳인 텔발라타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우물은 깊이가 깊으며 물이 꼭대기까지 차오르는 법이 없다. 19세기에 측정했을 때는 이 우물의 깊이가 약 23미터였다. 바닥에 돌 같은 것들이 쌓여 있으므로 고대에는 이 우물이 훨씬 더 깊었을 수 있다. (요 4:11) 이 우물은 보통 5월 말경부터 가을비가 내릴 때까지 말라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우물의 물이 빗물과 스며들어 온 물이 모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 우물이 샘이 있는 곳에 만들어져서 자체적으로 물이 솟아나기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우물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는 야곱이 이 우물을 팠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야곱이 그 근처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창 33:18-20; 수 24:32) 야곱은 많은 식구들과 가축 떼에게 필요한 물을 구하려고 자신이 직접 이 우물을 팠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파게 했을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이미 그 지역에서 다른 물 공급원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므로, 그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또는 그 지역에 있는 우물들이 말라 버려서 새로 우물을 팠을 수도 있다.

피곤하셔서: 성경에서 예수께서 “피곤하셨다”고 언급하는 것은 이 구절뿐이다. 이때는 낮 12시경이었고, 예수께서는 오전에 유대의 요르단 골짜기에서 그보다 900미터가량 높은 곳에 있는 사마리아의 수가까지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여행하셨을 것이다.—요 4:3-5. 부록 가7 참조.

우물: 또는 “샘”. 요한은 이 기록에서 수가에 있는 야곱의 우물을 가리키는 데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한다. 이 구절에 두 번 나오는 그리스어 페게(“우물”)는 대개 샘을 가리킨다. 이것은 야곱의 우물이 샘이 솟아나는 곳에 만들어진 것이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약 3:11에서 이 단어는 문자적인 “샘”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요 4:14에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그 구절에서도 “샘”으로 번역되었다. 요 4:12에서는 야곱의 우물을 가리키는 데 그리스어 프레아르가 사용되었는데, 이 단어는 우물, 저수조, 수직 갱도를 의미할 수 있다. (삼상 19:22, 칠십인역; 눅 14:5; 계 9:1) 많은 경우, 샘이 솟아나는 곳에 우물을 만들었으며, 그렇게 하기 위해 샘을 정비하거나 더 깊게 파기도 했다. 이 기록에서 야곱의 우물을 가리키는 데 “샘”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와 “우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모두 사용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야곱의 우물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제6시: 낮 12시경.—마 20:3 연구 노트 참조.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표현은 아시리아 사람들에 의해 정복되기 전에 열 지파 왕국에 살았던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로 처음 사용되었다. (왕하 17:29) 사실, 사마리아 사람들 즉 열 지파 왕국의 유대인들과 나머지 유대인들을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그보다 앞서 여로보암이 열 지파 이스라엘 왕국에 우상 숭배를 도입했을 때부터였다. (왕상 12:26-30) 아시리아 사람들에게 정복된 후에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표현이 사마리아 지역에 남겨진 사람들의 후손들뿐 아니라 그 지역으로 이주한 외국인들도 포함하는 말이 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의 후손이라고 주장했지만 분명 외국인과 혈통이 섞인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성경에서는 사마리아 지역에 그처럼 여러 민족이 섞여 살게 되면서 사마리아의 숭배가 더 타락하게 되었다고 알려 준다. (왕하 17:24-41) 바빌론 유배 기간이 끝난 후 유대인들이 돌아왔을 때,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여호와께 정성을 바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예루살렘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반대했다. 그리고 아마도 기원전 4세기에 그들은 그리심산에 자기들의 성전을 지었다. 그 성전은 기원전 128년에 유대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하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계속 그 산에서 숭배를 했다. 1세기에 그들은 사마리아 지역에 거주했는데, 그곳은 로마의 한 행정 구역이었으며 유대와 갈릴리 사이에 있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경에서 처음 다섯 권의 책만을 받아들였으며 여호수아서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그리심산에 성전을 지은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책들의 일부 구절들을 수정했다. 예수 시대에는 사마리아 사람이라는 표현이 그들의 민족적 배경뿐 아니라 그들이 믿는 종교까지 떠올리게 하는 표현이었으며 그들은 유대인들에게 멸시를 당했다.—요 8:48.

··· 않기 때문이다: 괄호 안에 들어 있는 말은 일부 사본에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권위 있는 초기 사본들에는 이 말이 들어 있다.

내가 줄 물: 이 구절에서 “물”과 “샘”이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보다 앞서 예수께서는 이 여자에게 “생명의 물”을 언급하셨다. (요 4:10 연구 노트 참조) 이제 그분은 자신이 주는 물이 그것을 마시는 사람 안에서 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물은 인류가 완전한 생명을 누리도록 회복시켜 주는 하느님의 마련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 상징적인 물의 중요한 부분은 예수의 대속 희생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얻게 되는 영적 유익에 초점을 맞추신다.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고” 그 지식과 일치하게 믿음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전망을 갖게 된다. (요 17:3)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상징적인 물은 그것을 마시는 사람 안에서 생명을 주는 유익이 솟아오르는 샘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생명수”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는 강한 열망을 갖게 된다.—계 21:6; 22:1, 17. 요 7:38 연구 노트 참조.

생명의 물: 직역하면 “생수”.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흐르는 물이나 샘물 또는 샘을 파서 만든 우물에서 길은 물을 의미한다. 저수조에 담긴 고여 있는 물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레 14:5에 나오는 “생수”는 히브리어를 직역한 것이며 “흐르는 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렘 2:1317:13에서는 여호와가 “생명의 물[직역하면 “생수”]의 근원[또는 “샘”]” 즉 생명을 주는 상징적인 물의 근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와 이야기하실 때 “생명의 물” 즉 “생수”라는 표현을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셨지만, 그 여자는 처음에 예수의 말씀을 문자적 의미로 이해한 것 같다.—요 4:11. 요 4:14 연구 노트 참조.

야곱의 우물: 이 우물은 오늘날의 비르야쿠브(베에르야아코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나블루스에서 남동쪽으로 약 2.5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세겜이 있던 곳인 텔발라타에서 그리 멀지 않다. 이 우물은 깊이가 깊으며 물이 꼭대기까지 차오르는 법이 없다. 19세기에 측정했을 때는 이 우물의 깊이가 약 23미터였다. 바닥에 돌 같은 것들이 쌓여 있으므로 고대에는 이 우물이 훨씬 더 깊었을 수 있다. (요 4:11) 이 우물은 보통 5월 말경부터 가을비가 내릴 때까지 말라 있다. 그래서 일부 사람들은 이 우물의 물이 빗물과 스며들어 온 물이 모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가 하면 이 우물이 샘이 있는 곳에 만들어져서 자체적으로 물이 솟아나기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우물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는 야곱이 이 우물을 팠다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야곱이 그 근처에 땅을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창 33:18-20; 수 24:32) 야곱은 많은 식구들과 가축 떼에게 필요한 물을 구하려고 자신이 직접 이 우물을 팠거나 다른 사람을 시켜 파게 했을 것이다. 이웃 사람들이 이미 그 지역에서 다른 물 공급원들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므로, 그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그렇게 했을 수 있다. 또는 그 지역에 있는 우물들이 말라 버려서 새로 우물을 팠을 수도 있다.

이 우물은 깊습니다: 요 4:6 연구 노트 참조.

우리의 조상 야곱: 사마리아 사람들은 자신들이 야곱의 아들 요셉의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시 많은 유대인들은 그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던 것 같다. 일부 유대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다른 민족의 후손임을 강조하기 위해 그들을 굿 사람들 또는 구다 사람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로 불렀다. 굿과 구다라는 이름은 기원전 740년에 이스라엘이 유배된 후에 아시리아 왕이 사마리아의 도시들로 이주시킨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을 가리킨다. 굿과 구다는 바빌론에서 북동쪽으로 5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을 것이다.—왕하 17:23, 24, 30.

생명의 물: 직역하면 “생수”.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흐르는 물이나 샘물 또는 샘을 파서 만든 우물에서 길은 물을 의미한다. 저수조에 담긴 고여 있는 물과 대비되는 표현이다. 레 14:5에 나오는 “생수”는 히브리어를 직역한 것이며 “흐르는 물”로도 번역할 수 있다. 렘 2:1317:13에서는 여호와가 “생명의 물[직역하면 “생수”]의 근원[또는 “샘”]” 즉 생명을 주는 상징적인 물의 근원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자와 이야기하실 때 “생명의 물” 즉 “생수”라는 표현을 비유적 의미로 사용하셨지만, 그 여자는 처음에 예수의 말씀을 문자적 의미로 이해한 것 같다.—요 4:11. 요 4:14 연구 노트 참조.

생명수의 시내가 흘러나올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장막절 즉 초막절 축제 때 행해지던 관습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을 수 있다. 그 축제 기간에는 실로암 못의 물을 금그릇에 담아 아침 희생을 바칠 때 포도주와 함께 제단에 붓는 관습이 있었다. (요 7:2 연구 노트; 용어 설명 “초막절” 및 부록 나15 참조) 이 관습은 히브리어 성경에 언급되지 않으며 나중에 생겨났다. 대부분의 학자들에 따르면 이 관습은 축제 기간인 7일 동안 행해졌고 엄숙한 모임이 열리는 여덟째 날에는 행해지지 않았다. 안식일인 축제 첫날에는 제사장이 그 전날 실로암 못에서 길어 성전으로 가져온 물을 제단에 부었다. 둘째 날부터는 제사장이 실로암 못에 가서 금주전자에 물을 담았다. 그는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을 제단에 놓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에 맞추어 성전으로 돌아왔다. 그가 ‘물 문’을 지나 제사장의 뜰에 들어올 때 제사장들이 삼중 나팔 소리로 그의 도착을 알렸다. 그리고 한 대야에 물을 붓고 다른 대야에 포도주를 부어 제단 기부로 흘러 들어가게 했다. 그다음 순서는 성전 음악에 맞추어 할렐 시(시 113–118)를 노래로 부르는 것이었다. 음악이 나오는 동안 사람들은 제단을 향해 야자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기쁨에 넘쳐 축제를 즐기던 사람들은 이 의식을 지키면서 이사야의 이러한 예언을 떠올렸을지 모른다. “너희는 기뻐하며 구원의 샘들에서 물을 길을 것이다.”—사 12:3.

내가 줄 물: 이 구절에서 “물”과 “샘”이라는 표현은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보다 앞서 예수께서는 이 여자에게 “생명의 물”을 언급하셨다. (요 4:10 연구 노트 참조) 이제 그분은 자신이 주는 물이 그것을 마시는 사람 안에서 이 되어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성경에서 물은 인류가 완전한 생명을 누리도록 회복시켜 주는 하느님의 마련을 상징하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이 상징적인 물의 중요한 부분은 예수의 대속 희생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제자가 되는 사람들이 얻게 되는 영적 유익에 초점을 맞추신다.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고” 그 지식과 일치하게 믿음을 갖고 행동하는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전망을 갖게 된다. (요 17:3)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상징적인 물은 그것을 마시는 사람 안에서 생명을 주는 유익이 솟아오르는 샘이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이 “생명수”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려는 강한 열망을 갖게 된다.—계 21:6; 22:1, 17. 요 7:38 연구 노트 참조.

이 산: 그리심산을 가리킨다. (부록 나10 참조) 그리심산은 히브리어 성경에 4번 언급된다. (신 11:29; 27:12; 수 8:33; 삿 9:7)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견줄 만한 자기들의 성전을 그리심산에 지었다. 그 성전은 아마도 기원전 4세기에 지어진 것 같으며, 기원전 128년에 유대인들에 의해 파괴되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성경에서 처음 다섯 권의 책만을 받아들였으며 여호수아서도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의 다섯 권의 책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나름대로 수정해서 받아들였으며, 그것이 오늘날 사마리아 오경으로 알려져 있다. 사마리아 오경은 고대 히브리어에서 파생한 그들 나름의 문자로 기록되었다. 사마리아 오경의 본문은 히브리어 성경의 마소라 본문과 약 6000군데에서 차이가 난다. 대부분은 사소한 차이이지만 중대한 차이가 있는 곳들도 있다. 예를 들어 신 27:4의 경우, 성경에서는 “에발 산”에서 돌들을 세우고 회칠을 한 다음 그 위에 모세 율법을 기록해야 했다고 알려 주는데, 사마리아 오경에는 “에발 산”이 아니라 “그리심 산”으로 되어 있다. (신 27:8) 그처럼 산의 이름을 바꾼 이유는 그리심산이 하느님의 거룩한 산이라는 자신들의 믿음을 뒷받침하기 위해서였음이 분명하다.

구원이 유대인에게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또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는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말씀과 순결한 숭배와 구원으로 인도하는 진리를 맡았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롬 3:1, 2) 또한 유대인들에게서 메시아가 나와 아브라함의 “자손”에 관한 하느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게 되어 있었다. (창 22:18; 갈 3:16)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말씀하셨을 당시에는, 유대인들을 통해서만 하느님에 관한 진리와,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과, 메시아에 관한 세부적인 점들을 알 수 있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느님께서 사용하시는 통로였으며, 여호와를 섬기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이 선택하신 민족과 연합하여 그분을 섬겨야 했다.

하느님은 영이십니다: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영적 존재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 참조) 성경은 하느님과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와 천사들이 모두 영이라고 알려 준다. (고전 15:45; 고후 3:17; 히 1:14) 영은 사람과는 매우 다른 형태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며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영적 존재는 “육적인 몸”보다 훨씬 고등한 “영적인 몸”을 가지고 있다. (고전 15:44; 요 1:18) 성경에서 하느님을 얼굴, 눈, 귀, 손 등이 있는 분으로 묘사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이해하도록 돕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이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격체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계시다고 분명히 알려 준다. 또한 그분은 물질계가 아닌 영계에 존재하시며,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아버지께 간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요 16:28) 히 9:24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 그 자체에” 들어가셔서 “우리를 위해 하느님 앞에 나타나 계신다”고 알려 준다.

영[으로] 숭배해야 합니다: 용어 설명 “”에서 알려 주듯이, 그리스어 프뉴마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활동력 즉 성령을 의미할 수도 있고,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게 만드는 힘 즉 정신 태도를 의미할 수도 있다. “영”이라는 단어에 여러 가지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그 공통점 중 하나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가리킨다는 점이다. 요 4:21에서 예수께서는 더는 사마리아의 그리심산이나 예루살렘 성전 같은 물리적인 장소를 중심으로 아버지를 숭배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하느님은 물질로 이루어진 분이 아니며 인간이 보거나 만질 수 없는 분이므로, 문자적인 성전이나 산을 중심으로 그분을 숭배할 필요가 없었다. 다른 성경 구절들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숭배를 드리려면 “돕는 자”라고도 불리는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알려 주셨다. (요 14:16, 17; 16:13) 따라서 ‘영으로 숭배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숭배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 영의 인도를 받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적용함으로 그분과 일치한 생각을 갖게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영으로’ 숭배한다는 예수의 말씀에는 진실한 마음과 열정적인 정신 태도로 하느님을 섬기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다.

진리로 숭배해야 합니다: 상상이나 통념이나 거짓에 근거한 숭배는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시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받아들이시는 숭배를 드리려면, 사실에 근거해 있고 그분이 자신과 자신의 목적에 관해 성경에 밝혀 놓으신 진리와 일치하게 숭배해야 한다. (요 17:17) 그러한 숭배는 하느님의 말씀에 밝혀져 있는 “보이지 않는 실체”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히 9:24; 11:1. 또한 이 구절에 나오는 영[으로] 숭배해야 합니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이 칭호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한다.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성경 시대에는 통치자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었다.

저는 ···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오경만을 받아들였다. 그들은 히브리어 성경의 나머지 책들은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여호수아서는 예외였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모세 오경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모세보다 더 큰 예언자인 메시아가 올 것이라고 기대했다.—신 18:18, 19.

메시아: 그리스어 메시아스(히브리어 마시아흐의 음역 표현)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두 번(이 구절과 요 1:41)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시아흐라는 히브리어 칭호는 히브리어 동사 마샤흐에서 나온 것으로, 마샤흐는 “(액체를) 바르다”, “기름부음을 하다”를 의미한다. (출 29:2, 7) 성경 시대에는 제사장, 통치자, 예언자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었다. (레 4:3; 삼상 16:3, 12, 13; 왕상 19:16) 그리스도(그리스어 크리스토스)라는 칭호는 “메시아”에 해당하는 표현으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500회 이상 나온다.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한다.—마 1:1 연구 노트 참조.

당신과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직접적으로 밝히신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그분은 여자에게, 심지어 유대인이 아닌 사마리아 여자에게 그렇게 하셨다. (요 4:9, 25)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경멸하고 그들에게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많은 유대인 남자들은 여자를 멸시했다. 또 다른 경우에도 예수께서는 그처럼 여자들에게 존중심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부활된 자신의 모습을 처음으로 보는 영예를 여자들에게 주셨다.—마 28:9, 10.

내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직역하면 “나는 있습니다”. 그리스어 에고 에이미. 일부 사람들은 이 표현이 「칠십인역」에 나오는 출 3:14의 번역 표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 표현을 근거로 예수가 하느님과 동일한 분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출 3:14에 나오는 표현(에고 에이미 온, “나는 존재자이다; 나는 존재하는 자이다”)은 요 4:26에 사용된 표현과 차이가 있다. 또한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은 「칠십인역」에서 아브라함, 엘리에셀, 야곱, 다윗과 같은 사람들이 한 말을 번역할 때도 사용되었다. (창 23:4; 24:34; 30:2; 대상 21:17)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에고 에이미라는 표현은 예수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한 말을 번역할 때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이 표현은 요 9:9에서 예수께서 고쳐 주신 남자가 한 말을 기록하는 데 쓰였다. 그 말은 단순히 “내가 그입니다”라는 뜻이었다. 가브리엘 천사와 베드로, 바울 같은 사람들도 이 표현을 사용했다. (눅 1:19; 행 10:21; 22:3) 분명 그들은 출 3:14의 표현을 사용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공관 복음서의 평행 기록들을 비교해 보면, 막 13:6과 눅 21:8에 나오는 에고 에이미(“내가 그다”)가 마 24:5에 나오는 “내가 그리스도다”라는 말을 줄여서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자와 말씀하고 계신: 모세 율법에 담긴 정신과는 반대로, 유대인의 전통은 사람들이 보는 데서 남자가 여자와 대화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예수 시대에는 그러한 전통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점을 고려해 보면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고 계신 것을 보고 심지어 그분의 제자들조차 “놀랐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탈무드에 의하면, 고대 랍비들은 학자가 “길가에서 여인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쳤다. 또한 미슈나에 따르면 한 랍비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와 많이 이야기하지 말라. ··· 여자와 많이 이야기하면 해를 입게 되고 율법 연구를 소홀히 하게 되며, 결국 게헨나를 상속받게 된다.”—아보트 1:5.

수확 때가 오려면 아직도 네 달이 있어야 한다고: 보리 수확은 유대력으로 니산월(3월/4월)에, 유월절 무렵에 시작된다. (부록 나15 참조) 따라서 예수께서 이 성구에 나오는 말씀을 하신 때는 4개월 전인 기슬레우월(11월/12월)일 것이다. 이때는 비가 더 많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는 때였다. 그러므로 수확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예수의 말씀은 비유적인 의미였던 것 같다. 그분은 문자적인 수확이 아니라 사람들을 모아들이는 비유적인 수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었다.—요 4:36.

희어져: 곡식이 익었다는 의미이다. 그리스어 레우코스는 흰색뿐 아니라 연노란색을 비롯한 다양한 밝은 색깔을 가리킬 수 있다. 예수께서 이 단어를 사용하신 것은 곡식이 익어서 수확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수확 때가 오려면 아직도 네 달이 있어야” 했으므로,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 주위의 밭은 보리가 싹이 난 지 얼마 안 되어 아마 녹색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예수께서 밭이 희어져 수확하게 되었다고 하신 것은 문자적인 수확이 아니라 영적인 수확을 염두에 두신 것임이 분명하다. 일부 학자들에 따르면, 밭을 보십시오라는 예수의 말씀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무리를 가리켜 하신 말씀일 수 있으며, 밭이 “희어졌다”는 말씀은 그들이 입고 있었을 흰옷을 두고 하신 말씀일 수 있다. 또는 그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께서 전하시는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로 밭이 “희어졌다”는 표현을 사용하신 것일 수 있다.—요 4:28-30.

많은 사마리아인이 그분을 믿게 되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를 만나신 일은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그 여자의 말을 듣고 예수를 믿기 시작했다. 초기의 영적 수확은 주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영감받은 성경 말씀이 알려 주는 것처럼 사마리아인들을 포함하는 더 큰 규모의 수확이 곧 있을 것이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전파하신 덕분에 이 사마리아인들 중 많은 사람이 나중에 빌립이 전파했을 때 좋은 반응을 보였을 수 있다.—요 4:34-36; 행 1:8; 8:1, 14-17.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께서 침례를 받고 마귀에게 유혹을 받은 뒤에 침례자 요한에게 오시자, 요한은 그분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소개했다. 이 표현은 이 구절과 요 1:36에만 나온다. (부록 가7 참조) 예수를 어린양에 비하는 것은 적절하다. 성경 전체에서 양은 죄를 인정하고 하느님께 다가가기 위해 제물로 바치는 동물이었다. 양을 제물로 바치는 것은 예수께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완전한 인간 생명을 희생하실 것임을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영감받은 성경에 나오는 여러 구절들과 연관이 있다.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 대신 숫양을 바쳤으며, (창 22:13)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노예 생활에서 구출을 받기 위해 유월절 어린양을 잡았고, (출 12:1-13) 예루살렘에 있는 하느님의 제단에서는 아침저녁으로 어린 숫양이 바쳐졌다. (출 29:38-42) 침례자 요한은 히브리어 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중 하나나 그 이상을 염두에 두고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수 있다. 또한 요한은 여호와께서 “나의 종”이라고 부르신 자가 “양처럼 도살장으로 끌려가”게 된다는 이사야의 예언을 염두에 두었을 수도 있다. (사 52:13; 53:5, 7, 11)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서를 기록하면서 예수를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라고 불렀다. (고전 5:7) 사도 베드로는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어린양의 피와 같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를 언급했다. (벧전 1:19) 또한 요한 계시록에서는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를 가리켜 “어린양”이라는 비유적 표현을 25회 이상 사용했다.—몇 가지 예를 보려면 계 5:8; 6:1; 7:9; 12:11; 13:8; 14:1; 15:3; 17:14; 19:7; 21:9; 22:1 참조.

세상: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세속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의미로 사용되며, 특히 성경에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요 3:16과 이 구절에서 코스모스는 인류 전체를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인류 전체에게 즉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있다고 언급한다.

심판하게: 또는 “정죄하게”. 여호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은 세상 즉 인류에게 불리한 심판을 내리게 즉 정죄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랑의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는 것이었다.—요 3:16; 벧후 3:9.

세상의 구원자: 이 표현은 이 구절과 요1 4:14에만 나오며, “세상” 즉 인류 가운데서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예수께서 죄로부터 구원하실 것임을 보여 준다.—요 1:29; 3:17 연구 노트 참조.

고향: 직역하면 “아버지의 고장”. 이 그리스어 단어는 마 13:54; 막 6:1; 눅 4:24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문맥에서는 갈릴리 지역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다.—요 4:43.

가나: “갈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네에서 유래한 이름인 것 같다. 그렇다면 “갈대밭”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요한만이 이 성읍을 언급한다. 그는 이 성읍을 항상 갈릴리 가나라고 부르는데, (요 2:11; 4:46; 21:2) 아마도 아셀 지파의 영토에 있는 카나(히브리어 카나)와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수 19:24, 28) 많은 학자들은 가나가 있던 곳이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키르베트카나라고 생각한다. 베트네토파 골짜기(엘바투프 평야) 북쪽 가장자리의 언덕에 위치한 이곳에는 오늘날 고대 마을의 폐허가 있다. 이곳은 아직도 아랍어로는 카나엘옐릴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이름은 갈릴리 가나라는 의미이다. 이곳 근처에 있는 습지대에는 갈대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가나라는 이름과 매우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고대 저수조 유적과 회당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유적(기원 1세기 말이나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됨)이 있다. 또한 기원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과 주화들도 발견되었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6.5킬로미터 떨어진 카프르칸나가 갈릴리 가나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지지해 왔다. 아마도 카프르칸나가 나사렛에서 순례자들이 가기 쉬운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언어적인 관점에서 볼 때, 카프르칸나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 가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왕: 로마가 헤롯 안티파스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한 칭호는 “분봉왕”이었다. (마 14:1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왕”이라고 불렸다.

헤롯 왕: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헤롯” 참조) 마태와 누가는 로마가 헤롯 안티파스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한 칭호인 “분봉왕” 즉 “지역 통치자”를 사용한다. (마 14:1; 눅 3:1 연구 노트 참조) 헤롯 안티파스가 임명받아 다스린 지역은 갈릴리와 페레아였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왕”이라고 불렸다. 마태는 헤롯을 언급할 때 “왕”이라는 칭호를 한 번 사용했다. (마 14:9) 하지만 마가는 헤롯을 언급할 때 “왕”이라는 칭호만을 사용했다.—막 6:22, 25, 26, 27.

갈릴리 가나 ··· 가버나움: 가나(키르베트카나)에서 가버나움까지 가는 길은 거리가 약 40킬로미터이다.—요 2:1 연구 노트 참조.

왕의 신하 한 사람: 또는 “왕의 어떤 시종”. 그리스어 바실리코스는 혈통이나 직무상으로 왕(바실레우스)과 관련이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갈릴리의 분봉왕이던 헤롯 안티파스의 시종 즉 궁정 신하를 가리키는 것 같다. 헤롯 안티파스는 일반적으로 “왕”이라고 불렸다.—마 14:9; 막 6:14 연구 노트 참조.

가나: “갈대”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카네에서 유래한 이름인 것 같다. 그렇다면 “갈대밭”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요한만이 이 성읍을 언급한다. 그는 이 성읍을 항상 갈릴리 가나라고 부르는데, (요 2:11; 4:46; 21:2) 아마도 아셀 지파의 영토에 있는 카나(히브리어 카나)와 구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수 19:24, 28) 많은 학자들은 가나가 있던 곳이 나사렛에서 북쪽으로 약 13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키르베트카나라고 생각한다. 베트네토파 골짜기(엘바투프 평야) 북쪽 가장자리의 언덕에 위치한 이곳에는 오늘날 고대 마을의 폐허가 있다. 이곳은 아직도 아랍어로는 카나엘옐릴로 알려져 있는데, 이 이름은 갈릴리 가나라는 의미이다. 이곳 근처에 있는 습지대에는 갈대가 많이 자라고 있어서 가나라는 이름과 매우 잘 어울린다. 이곳에는 고대 저수조 유적과 회당이었을 것으로 여겨지는 유적(기원 1세기 말이나 2세기의 것으로 추정됨)이 있다. 또한 기원 1세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토기 조각과 주화들도 발견되었다. 전통적으로 교회에서는 나사렛에서 북동쪽으로 6.5킬로미터 떨어진 카프르칸나가 갈릴리 가나에 해당한다는 견해를 지지해 왔다. 아마도 카프르칸나가 나사렛에서 순례자들이 가기 쉬운 곳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언어적인 관점에서 볼 때, 카프르칸나라는 이름은 성경에 나오는 갈릴리 가나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 같다.

내려오셔서: 가버나움으로 간다는 의미이다. 고대에는 키르베트카나(성경에 나오는 가나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곳. 요 2:1 연구 노트 참조)를 지나 갈릴리 바다 해안으로 내려간 다음, 해안을 따라 가버나움까지 이어지는 길이 있었다. 가버나움이 해수면보다 200미터 이상 낮은 곳에 있었으므로, 이 구절에서는 “내려온다”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제3시: 오전 9시경. 기원 1세기에 유대인들은 해 뜨는 시간인 오전 6시경부터 시작해서 낮을 12시간으로 나누었다. (요 11:9) 따라서 제3시는 오전 9시경, 제6시는 낮 12시경, 제9시는 오후 3시경이었을 것이다. 정확한 시계가 없었으므로, 많은 경우 사건이 일어난 시간을 대략적으로 기록할 수밖에 없었다.—요 1:39; 4:6; 19:14; 행 10:3, 9.

제7시: 오후 1시경.—마 20:3 연구 노트 참조.

두 번째 표징: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셔서 행하신 두 가지 기적 중 두 번째 기적을 가리킨다. 첫 번째 표징 즉 기적은 요 2:11에 언급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에서 두 번째 표징을 행하시기 전에 예루살렘에서도 여러 기적을 행하셨다.—요 2:23.

미디어

그리심산
그리심산

동영상에 나오는 것은 그리심산(1), 야곱의 우물로 전해지는 곳(2), 에발산(3)이다. 예수께서는 그리심산 근처에 있는 야곱의 우물에서 사마리아 여자와 대화를 나누셨다. (요 4:6, 7) 그리심산은 사마리아 지역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다. 그리심산의 정상은 지중해보다 850여 미터나 높이 솟아 있다. 현재 그리심산과 에발산 사이의 비옥한 세겜 골짜기에는 나블루스라는 도시가 있다. 그리심산에는 사마리아 성전이 세워졌는데, 그때는 아마도 기원전 4세기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성전은 기원전 128년에 파괴되었다. 사마리아 여자는 그리심산을 염두에 두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던 것 같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숭배를 드렸는데, 선생님네 사람들은 숭배를 드려야 하는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고 합니다.” 예수께서는 참숭배를 드리는 데 물리적인 장소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려 주기 위해 그 여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닌 곳에서 당신들이 아버지를 숭배할 때가 옵니다.”—요 4:20, 21.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사람들
곡식을 거두어들이는 사람들

성경 시대에는 곡식을 수확할 때 줄기째 땅에서 뽑기도 했지만 일반적으로는 줄기를 낫으로 베었다. (신 16:9; 막 4:29) 수확하는 일은 대개 공동 작업으로서, 익은 곡식을 여러 사람이 함께 밭에서 거두어들였다. (룻 2:3; 왕하 4:18) 솔로몬왕, 예언자 호세아, 사도 바울을 포함한 여러 성경 필자들은 중요한 진리를 설명하기 위해 곡식을 거두는 일을 비유로 들었다. (잠 22:8; 호 8:7; 갈 6:7-9) 예수께서도 사람들에게 친숙한 이 일을 비유로 들어, 제자 삼는 일에서 천사들과 제자들이 하게 될 역할을 설명하셨다.—마 13:24-30, 39; 요 4:35-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