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1-25

21  그 후에 예수께서는 티베리아스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다시 자신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이렇게 자신을 나타내셨다.  시몬 베드로,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 갈릴리 가나에서 온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 그리고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들은 “우리도 함께 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들이 나가서 배를 탔지만 그 밤에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동틀 무렵에 예수께서 해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했다.+  그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자녀들이여, 먹을 것이 없습니까?”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없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십시오.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그물을 던지자 고기가 너무 많이 잡혀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그때에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이십니다!” 하고 말했다. 시몬 베드로는 벗고 있다가 그분이 주라는 말을 듣자 겉옷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다른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 채로 물고기가 가득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이 육지에서 90미터쯤밖에 떨어지지 않은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육지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 위에 생선이 놓여 있었고 빵도 있었다. 10  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분이 방금 잡은 고기를 좀 가져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11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로 끌어 올렸더니 큰 고기가 가득 들어 있었는데, 153마리였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는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12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와서 아침 식사를 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중에는 감히 “누구십니까?” 하고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13  예수께서는 오셔서 빵을 집어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렇게 주셨다. 14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15  그들이 아침 식사를 마치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이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까?” 그는 “예, 주여. 제가 주께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내 어린양들을 먹이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16  다시 그분이 두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그는 “예, 주여. 제가 주께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분은 “내 어린양들을 돌보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17  그분이 세 번째로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 당신은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까?” 그분이 세 번째로 “당신은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시자 베드로는 근심했다. 그래서 그는 그분에게 “주여, 주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께 애정을 갖고 있다는 것을 주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먹이십시오.+ 18  진실로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당신이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옷을 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곤 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늙으면 손을 내밀 것이며,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옷을 입히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입니다.”+ 19  그분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를 밝히시려고 이 말씀을 하신 것이었다.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그분은 그에게 “나를 계속 따르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20  베드로가 돌아서서 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만찬 때에도 그분의 가슴에 기대며 “주여, 주를 배반할 자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사람이었다. 21  그를 보자 베드로가 예수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는 것이 내 뜻이라 해도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은 나를 계속 따르십시오.” 23  그래서 그 제자가 죽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형제들 사이에 퍼져 나갔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는 것이 내 뜻이라 해도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24  바로 이 제자가+ 이 일들을 증언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이다. 우리는 그의 증언이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다.+ 25  사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그 밖에도 많이 있다.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한다면 온 세상이라도 기록된 그 두루마리들을 담을 수 없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각주

또는 “다시 나타나셨다.”
또는 “두르고; 동여매고”.

연구 노트

자녀들: 또는 “어린아이들”. 그리스어 파이디온(“아이”를 의미하는 파이스의 지소형)은 애정이 담긴 호칭으로, 아버지가 자녀에게 갖는 따뜻한 감정이 들어 있는 표현일 수 있다. 여기서는 다정하고 친밀한 느낌이 담긴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먹을 것: 또는 “물고기”. 그리스어 프로스파기온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성경 외의 문헌에서 이 단어는 빵과 함께 먹을 수 있는 것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물고기를 잡던 사람들에게 질문하시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셨다. 따라서 이 단어는 물고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께서 사랑하신 사람: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첫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 4:21; 막 1:19; 눅 5:10)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요 21:2에 “세베대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올 뿐, 사도 요한의 이름은 이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요 21:20-24에서 이 복음서의 필자를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언급한다는 점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 제자에 관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는 것이 내 뜻이라 해도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 제자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오래 살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사도 요한에게 잘 부합된다.—요한복음 책명요 1:6; 21:20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다섯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 4:21; 막 1:19; 눅 5:10; 요 21:2) 요 21:20-24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는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 즉 요한복음의 필자였다.—요한복음 책명; 요 1:6; 13:23 연구 노트 참조.

벌거벗었을: 또는 “옷을 갖춰 입지 못했을”. 그리스어 김노스는 “가벼운 옷차림을 한; 속옷만 입은”을 의미할 수 있다.—약 2:15, 각주.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네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마 4:21; 막 1:19; 눅 5:10; 요 21:2. 이 제자를 사도 요한으로 볼 수 있는 근거에 대해 알아보려면 요 13:23; 21:20 연구 노트 참조.

벗고 있다가: 또는 “옷을 조금만 걸치고 있다가”. 그리스어 김노스는 “가벼운 옷차림을 한; 속옷만 입은”을 의미할 수 있다.—약 2:15, 각주. 마 25:36 연구 노트 참조.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직역하면 “수명을 1큐빗 더할”. 직역 표현인 “1큐빗”은 문자적으로 “아래팔”을 의미하며, 약 44.5센티미터의 길이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큐빗” 및 부록 나14 참조) 예수께서는 길이 단위를 사용하심으로 삶을 여행길에 빗대어 말씀하신 것 같다. 염려를 한다고 해서 사는 기간을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하신 것이다.

수명을 조금이라도 늘릴: 마 6:27 연구 노트 참조.

90미터쯤: 직역하면 “200큐빗쯤”. “큐빗”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페키스(마 6:27; 눅 12:25 연구 노트계 21:17 참조)는 대략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에 해당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약 44.5센티미터짜리 큐빗을 사용했다.—용어 설명 “큐빗” 및 부록 나14 참조.

요나의 아들: 또는 “바요나”. 히브리인들은 “아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나 아람어 를 아버지의 이름 앞에 붙여서 자신의 성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돌로매, 바디매오, 바예수와 같은 여러 이름에 아람어 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예수 시대에 사용되던 히브리어가 아람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예수와 베드로 사이에 이 대화가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그분을 세 번 부인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베드로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려고 세 차례나 질문을 하시자 “베드로는 근심했다.” (요 21:17) 요 21:15-17에 나오는 요한의 기록에는 두 가지 그리스어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사랑하다로 번역된 아가파오이고 다른 하나는 애정을 갖고 있다로 번역된 필레오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하고 두 번 물으셨다. 두 번 모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진지한 태도로 분명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은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한 번 그렇다고 단언했다. 베드로가 예수를 사랑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때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랑과 애정이 있다면 베드로가 어린양들 즉 그분의 제자들을 영적으로 먹이고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요 21:16, 17; 벧전 5:1-3)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분에 대한 사랑을 세 번 확언할 기회를 주신 다음 그에게 양들을 돌볼 책임을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행동이 용서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말끔히 없애 주셨다.

요한: 일부 고대 사본들에는 이 구절에서 사도 베드로의 아버지의 이름이 요한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요나라고 되어 있는 고대 사본들도 있다. 마 16:17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신다. (마 16:17 연구 노트 참조) 일부 학자들은 요한과 요나가 철자만 다를 뿐 동일한 히브리어 이름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이것들보다 나를 사랑합니까?: 문법적으로 볼 때 “이것들보다”라는 표현은 몇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이 “당신은 여기 있는 다른 제자들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까?” 또는 “당신은 이 제자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합니까?”라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표현은 “이것들보다” 즉 그들이 잡은 물고기보다 혹은 고기잡이 사업과 관련된 것들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까?”라는 의미인 것 같다. 따라서 이 구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에 담긴 의미는 다음과 같았을 것이다. ‘당신은 물질적인 것보다 혹은 물질을 추구하는 일보다 나를 더 사랑합니까? 그렇다면 내 어린양들을 먹이십시오.’ 예수께서 그러한 질문을 하신 것은 베드로가 이전에 한 행동들 때문이었을 수 있다. 베드로는 예수의 첫 제자들 중 하나였지만, (요 1:35-42) 그분을 따르는 일에 처음부터 전 시간을 바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예수를 따르다가 고기잡이 일로 돌아갔다. 몇 개월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하는 고기잡이 사업을 그만두고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권하셨다. (마 4:18-20; 눅 5:1-11)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얼마 후에 베드로는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말했으며 다른 제자들도 그와 함께했다. (요 21:2, 3) 따라서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분명한 선택을 해야 할 필요성을 일깨워 주고 계신 것 같다. 베드로는 앞에 쌓여 있는 물고기가 상징하는 고기잡이 사업을 삶에서 첫째 자리에 둘 것인지, 아니면 예수의 어린양들인 제자들을 영적으로 먹이는 일을 우선순위에 둘 것인지 선택을 해야 했다.—요 21:4-8.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예수와 베드로 사이에 이 대화가 있었던 것은 베드로가 그분을 세 번 부인한 지 얼마 안 된 때였다. 예수께서 자신에 대해 베드로가 어떻게 느끼는지 알아보려고 세 차례나 질문을 하시자 “베드로는 근심했다.” (요 21:17) 요 21:15-17에 나오는 요한의 기록에는 두 가지 그리스어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하나는 사랑하다로 번역된 아가파오이고 다른 하나는 애정을 갖고 있다로 번역된 필레오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하고 두 번 물으셨다. 두 번 모두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에게 “애정”을 갖고 있다고 진지한 태도로 분명하게 말했다. 마지막으로 예수께서는 “당신은 나에게 애정을 갖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베드로는 다시 한 번 그렇다고 단언했다. 베드로가 예수를 사랑한다고 분명하게 말할 때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랑과 애정이 있다면 베드로가 어린양들 즉 그분의 제자들을 영적으로 먹이고 “돌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요 21:16, 17; 벧전 5:1-3)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그분에 대한 사랑을 세 번 확언할 기회를 주신 다음 그에게 양들을 돌볼 책임을 맡기셨다.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 자신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행동이 용서받았는지에 대한 의문을 말끔히 없애 주셨다.

사랑합니까? ··· 애정을 갖고 있다는: 요 21:15 연구 노트 참조.

어린양들: 이 구절과 17절에서 “어린양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프로바티온은 “양”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지소형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지소형은 종종 애정이 느껴지거나 친숙하다는 의미를 나타낸다.—용어 설명 “지소형” 참조.

세 번째로: 베드로는 자신의 주를 세 번 부인했다. 이제 예수께서는 그가 자신의 주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할 세 번의 기회를 주신다. 베드로가 그렇게 하자, 예수께서는 신성한 봉사를 다른 모든 것보다 앞자리에 둠으로 그러한 사랑과 애정을 나타내라고 말씀하신다. 책임을 맡은 다른 형제들과 함께, 베드로는 충실한 제자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양 떼를 먹이고 강하게 하고 돌보아야 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기름부음받은 자들이었지만 영적 양식을 공급받을 필요가 있었다.—눅 22:32.

요한: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의미하는 여호하난 또는 요하난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복음서에는 필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원 2세기와 3세기 당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도 요한이 이 책의 필자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사도 요한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세베대의 아들들”로 언급된다. (요 21:2; 마 4:21; 막 1:19; 눅 5:10. 요 1:6 연구 노트 참조) 이 복음서의 끝부분에서 필자는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언급하는데 (요 21:20-24) 여러 가지 사실을 볼 때 이 표현이 사도 요한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요 13:23 연구 노트 참조.

요한: 침례자 요한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쓴 복음서에서 침례자 요한을 19번 언급했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 필자들과는 달리 “침례자”라는 칭호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 3:1; 막 1:4 연구 노트 참조) 사도 요한은 3명의 마리아를 언급할 때 그들을 구별시켜 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요 11:1, 2; 19:25; 20:1) 하지만 침례자 요한을 언급할 때는 그처럼 구별시켜 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사도 요한은 이 복음서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 요한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사람들도 이 복음서에 나오는 요한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오해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복음서의 필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이다.—“요한복음 소개” 및 요한복음 책명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사랑하신 사람: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첫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 4:21; 막 1:19; 눅 5:10)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요 21:2에 “세베대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올 뿐, 사도 요한의 이름은 이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요 21:20-24에서 이 복음서의 필자를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언급한다는 점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 제자에 관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는 것이 내 뜻이라 해도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 제자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오래 살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사도 요한에게 잘 부합된다.—요한복음 책명요 1:6; 21:20 연구 노트 참조.

곁에: 직역하면 “품에”. 이 표현은 예수 시대에 사람들이 식사할 때 자리에 앉던 방식과 관련이 있다. 손님들은 왼쪽 팔꿈치를 쿠션에 대고 왼편으로 기대앉았다. 각 사람은 옆에 앉은 사람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아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요 13:25) 누군가의 “곁에” 즉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의미였다. 누가와 요한이 사용한 “곁에” 즉 “품에”라는 표현은 그러한 관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눅 16:22, 23; 요 1:18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다섯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 4:21; 막 1:19; 눅 5:10; 요 21:2) 요 21:20-24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는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 즉 요한복음의 필자였다.—요한복음 책명; 요 1:6; 13:23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의 가슴에 기대며 ··· 물었던 사람: 요 13:23 연구 노트 참조.

내가 올 때까지: 이 말씀을 들은 다른 사도들은 사도 요한이 자신들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실제로 사도 요한은 그 후로 거의 70년이나 충실하게 봉사했으며 사도들 중에 가장 오래 살았던 것 같다. 또한 예수의 제자들은 “내가 올 때까지”라는 표현을 듣고 예수께서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국에 오는 것”에 관해 하신 말씀을 떠올렸을 수 있다. (마 16:28) 어떤 의미에서는 요한이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요한은 생애 말년에, 파트모스섬에 유배되어 있는 동안 놀라운 예언적 표징으로 가득 찬 계시를 받았다. 그러한 표징들은 예수께서 왕국 권능을 가지고 오실 “주의 날” 기간에 있을 사건들을 보여 주었다. 요한은 이 인상적인 환상들을 보고 크게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렇다. 내가 속히 오겠다” 하고 말씀하시자 이렇게 외쳤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십시오.”—계 1:1, 9, 10; 22:20.

세상: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세속 그리스어 문헌에서 인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의미로 사용되며, 특히 성경에서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다. (요 1:10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세속 그리스어 문헌에서 이 단어는 우주와 창조물 전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바울은 자신의 말을 듣고 있던 그리스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여기서 그러한 의미로 이 단어를 사용했을 수 있다.

예수께서 행하신 일은 그 밖에도 많이 있다: 요한은 과장법을 사용하여, 예수의 삶과 봉사에 대한 모든 것을 (당시의 책에 해당하는) 두루마리에 자세히 기록한다면 온 세상이라도 그 두루마리들을 담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요한이 사용한 “세상”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코스모스)는 세속 그리스어 문헌에서 우주 전체, 즉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공간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당시 존재하던 도서관들을 포함한) 인간 사회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행 17:24 연구 노트 비교) 요한이 말하고자 한 점은 예수에 관해 기록할 수 있는 점이 훨씬 많이 있지만, 요한의 “두루마리”와 영감받은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 기록된 내용만으로도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이 의문의 여지 없이 증명된다는 것이다. (요 20:30, 31) 요한의 기록은 비교적 짧지만 하느님의 아들이 어떤 분이었는지 생생히 그려 볼 수 있게 해 준다.

미디어

1세기 고기잡이 배
1세기 고기잡이 배

이 삽화는 갈릴리 해안 근처의 진흙 속에서 발견된 1세기 고기잡이 배의 잔해와 미그달이라는 바닷가 마을에 있는 1세기 집에서 발견된 모자이크를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이런 종류의 배에는 돛(들)과 돛대가 달려 있고 다섯 명의 선원이 탔을 것이다. 네 명은 노를 젓고 나머지 한 명은 고물에 있는 좁은 갑판에서 키를 조종했다. 길이는 8.2미터였으며, 가운데 부분의 폭이 2.3미터, 깊이가 1.3미터였다. 이런 배는 13명 이상을 태울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갈릴리 고기잡이 배의 잔해
갈릴리 고기잡이 배의 잔해

1985년과 1986년에 있었던 가뭄 때문에 갈릴리 바다의 해수면이 낮아지면서 진흙 속에 묻혀 있던 고대 배 한 척의 선체 일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 배의 잔해는 길이가 8.2미터, 폭이 2.3미터이며 가장 깊은 부분의 깊이가 1.3미터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배가 기원전 1세기와 기원 1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 영상은 현재 이스라엘의 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이 배를 그래픽으로 복원한 것이다. 영상을 통해 이 배가 약 2000년 전 물 위를 떠다녔을 때 어떤 모습이었을지 볼 수 있다.

갈릴리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
갈릴리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

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와 연관 지어 물고기, 고기잡이, 어부를 자주 언급한다. 갈릴리 바다에는 약 18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그중 어부들이 잡는 것은 약 10종에 불과하다. 이 10종은 상품 가치가 있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비니인데 바벨(1)(삽화에 나오는 것은 바르부스 롱기켑스[Barbus longiceps])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류에 속한 세 가지 종은 입 가장자리에 수염이 있으며, 따라서 셈어로 “털”을 의미하는 비니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체동물, 달팽이,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머리 부분이 긴 바벨은 길이가 75센티미터에 이르며 무게가 7킬로그램이 넘는 것도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랍어로 “빗”을 의미하는 무슈트(2)(삽화에 나오는 것은 틸라피아 갈릴레아[Tilapia galilea])라고 하는 것으로, 이 부류에 속한 다섯 가지 종의 물고기가 모두 빗 모양의 등지느러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무슈트 중 한 종은 길이가 약 45센티미터이고 무게가 2킬로그램 정도 된다. 세 번째 부류는 작은 청어와 비슷하게 생긴 긴네렛정어리(3)(삽화에 나오는 것은 아칸토브라마 테라이 상타이[Acanthobrama terrae sanctae])이다. 고대부터 이 물고기는 절여서 보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