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1-26

17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말씀하셨다. “아버지, 때가 왔습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아들을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모든 육체를 다스릴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게 하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은+ 오직 한 분의 참하느님이신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 것입니다.+  저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끝내어+ 땅에서 아버지를 영광스럽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세상이 있기 전에+ 제가 아버지 곁에서 누렸던 영광으로 이제 저를 아버지 곁에서 영광스럽게 해 주십시오.  저는 아버지께서 세상에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셨으며, 그들은 아버지의 말씀을 지켰습니다.  이제 그들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모든 것이 아버지에게서 온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말씀을 제가 그들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였고, 제가 아버지의 대표자로 왔다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으며,+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위해 요청합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을 위해서 요청합니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10  저의 것은 모두 아버지의 것이며, 아버지의 것은 저의 것입니다.+ 저는 그들 가운데서 영광스럽게 되었습니다. 11  저는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지만 그들은 세상에 있으며,+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저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 그들을 지켜 주셔서+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12  저는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 그들을 지켰습니다.+ 저는 그들을 보호했으며 멸망의 아들+ 외에는 그들 중 하나도 잃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성경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13  이제 저는 아버지께 갑니다. 제가 세상에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그들이 저의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14  제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는데, 세상은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15  제가 아버지께 요청하는 것은,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 주시라는 것이 아니라 악한 자로부터 그들을 지켜 주시라는 것입니다.+ 16  제가 세상에 속해 있지 않은 것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습니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18  아버지께서 저를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저도 그들을 세상에 보냈습니다.+ 19  그리고 저는 그들을 위해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도 진리로 거룩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20  저는 그들을 위해서만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말을 통해 저를 믿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요청합니다. 21  아버지, 그것은 아버지께서 저와 함께하시고 제가 아버지와 함께하는 것처럼,+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그들도 우리와 함께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22  저는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저는 그들과 함께하고 아버지께서는 저와 함께하십니다. 그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24  아버지,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사람들이 제가 있는 곳에 저와 함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에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셔서 저에게 주신 영광을+ 그들도 볼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25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은 참으로 아버지를 알지 못하지만+ 저는 아버지를 압니다.+ 그리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저를 보내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26  저는 그들에게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또 알려 주겠습니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신 사랑이 그들 안에 있게 하고 제가 그들과 함께하기 위한 것입니다.”+

각주

또는 “알려 주었습니다.”

연구 노트

육체: 또는 “사람”. 여기서 그리스어 사르크스는 물질로 이루어진 존재 즉 육체를 가진 살아 있는 존재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을 때 과거에 천사들이 한 것처럼 단지 육체를 입으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더는 영이 아니셨다. (창 18:1-3; 19:1; 수 5:13-15) 따라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부르실 수 있었다.—요 1:51; 3:14. 마 8:20 연구 노트 참조.

모든 육체: 또는 “모든 인류; 모든 사람”. 이 표현은 눅 3:6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은 사 40:5을 인용한 것이다. 사 40:5에는 동일한 의미의 히브리어 표현이 사용되었다.—요 1:14 연구 노트 비교.

알아 가는: 또는 “지식을 얻는; 계속 알아 가는”. 그리스어 동사 기노스코는 기본적으로 “알다”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 동사가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 대한 지식을 얻는; 누군가를 알아 가는; 누군가를 더 잘 알게 되는” 과정을 의미할 수 있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를 더 잘 알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이 문맥에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계속 늘리고 그분들에 대한 신뢰를 키워 나감으로,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것을 가리킨다. 분명, 누군가를 그처럼 안다는 것은 그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는 것에는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의 가치관과 표준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포함된다.—요1 2:3; 4:8.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기초를 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히 11:11에서 “자손”과 함께 쓰였으며 “수태하다”라고 번역되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라는 표현에서 이 그리스어 단어는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를 아벨과 연관 지으셨다. 아벨은 하느님께서 구원받을 만하다고 여기신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며,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생명의 두루마리에 이름이 기록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눅 11:50, 51; 계 17:8) 또한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드리면서 하신 이 말씀은 오래전 아담과 하와가 자손을 수태하기 전부터 하느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사랑하셨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세상: 여기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인류 전체를 가리키는 것 같다.—요 17:24 연구 노트 비교.

세상: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하느님의 종들을 제외한 인류 세상, 즉 하느님과 멀어진 불의한 인간 사회를 가리킨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제자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 사람은 요한뿐이다. 예수께서 충실한 사도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기도에 동일한 내용이 두 번 더 나온다.—요 17:14, 16.

이름: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 יהוה(YHWH)으로 표기되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가리킨다. 이 이름의 일반적인 한국어 음역 표현은 “여호와”이다. 「신세계역」에는 이 이름이 히브리어 성경에 6979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37회 나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부록 가5부록 다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출 34:5, 6; 계 3:4, 각주 비교.

세상: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하느님과 멀어져 있으며 그리스도의 참제자들 즉 그분의 회중과 분리된 인류 세상을 가리키는 것 같다.—요 15:19 연구 노트 참조.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당에 있던 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에서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가르칠 때 사용되던 「칠십인역」(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판)에서도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부록 가5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계 3:4, 각주 비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즉 그분의 목적과 활동과 특성에 대해 밝히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설명하실 수 있었다. (요 1:18; 마 11:27)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지켰습니다: 또는 “순종했습니다”. 그리스어 테레오는 이 문맥에서 “끈기 있게 순종하다; 주의를 기울이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세상: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하느님의 종들을 제외한 인류 세상, 즉 하느님과 멀어진 불의한 인간 사회를 가리킨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제자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 사람은 요한뿐이다. 예수께서 충실한 사도들과 함께 하신 마지막 기도에 동일한 내용이 두 번 더 나온다.—요 17:14, 16.

세상: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하느님의 종들을 제외한 인류 세상, 즉 하느님과 멀어진 불의한 인간 사회를 가리킨다.—요 15:19 연구 노트 비교.

이름: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 יהוה(YHWH)으로 표기되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가리킨다. 이 이름의 일반적인 한국어 음역 표현은 “여호와”이다. 「신세계역」에는 이 이름이 히브리어 성경에 6979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37회 나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부록 가5부록 다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출 34:5, 6; 계 3:4, 각주 비교.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당에 있던 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에서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가르칠 때 사용되던 「칠십인역」(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판)에서도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부록 가5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계 3:4, 각주 비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즉 그분의 목적과 활동과 특성에 대해 밝히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설명하실 수 있었다. (요 1:18; 마 11:27)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하나입니다: 또는 “일치 연합해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가 양 같은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일에서 일치 연합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처럼 양을 돌보는 일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일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양들에게 깊은 관심이 있으시며 아무도 자신들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지 않으신다. (요 10:27-29. 겔 34:23, 24 비교) 요한복음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된 관계를 누린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예수와 아버지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행동하고 협력하는 면에서 “하나”임을 보여 준다. (요 5:19; 14:9, 23) 또한 예수의 이 말씀과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그분의 기도를 비교해 보면, 예수께서 자신과 아버지가 동등한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적과 행동에 있어서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 10:25-29; 17:2, 9-11) 특히 유의할 만한 점으로 그분은 기도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요 17:11) 따라서 10장에 나오는 “하나”라는 표현과 17장에 나오는 “하나”라는 표현은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요 17:11, 21; 고전 3:8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하신 아버지: 성경에서 이 표현은 이 구절에만 나오며 여호와를 부르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표현이 사람을 부르는 말로 사용된 적은 없다.—마 23:9 비교.

저에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 예수라는 이름은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름 예수아(온전한 형태로는 여호수아)에 해당한다. 그러한 이름을 가진 분으로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여호와의 이름을 알렸다는 점을 이 장에서 두 번 강조하신다. (요 17:6, 26)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가진 특성,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6:9; 요 17:6 연구 노트 참조) 따라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이름을 예수에게 주셨다는 말에는 단지 예수의 이름 안에 여호와의 이름이 들어 있다는 의미보다 더 많은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성품을 완벽하게 반영하셨다. (요 14:9) 또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셨으며 그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셨다.—요 5:43; 10:25.

하나인 ··· 하나가 되게: 또는 “일치 연합해 있는 ··· 일치 연합하게”.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참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와 아버지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 이 기도에 표현된 사상은 요 10:30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양들”인 제자들을 대하는 면에서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요 10:25-30; 17:2, 9)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요 10:30 연구 노트 참조.

게헨나에 들어갈 사람: 직역하면 “게헨나의 아들”. 영원한 멸망을 받아 마땅한 사람을 가리킨다.—용어 설명 “게헨나” 참조.

멸망의 아들: 이 문맥에서 이 표현은 가룟 유다를 가리킨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을 고의적으로 배반함으로 영원한 멸망을 당할 자, 부활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되었다. 동일한 표현이 살후 2:3에서는 “불법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성경 원어에서 “~의 아들(들)”은 특정한 행로를 따르는 사람이나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 “왕국의 아들들”, “악한 자의 아들들”, “마귀의 자식”, “불순종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눅 6:35; 살전 5:5; 마 13:38; 행 13:10; 엡 2:2) 또한 “~의 아들”은 특정한 행로를 따르거나 어떤 특징을 나타낼 때 닥치게 될 심판이나 결과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 삼하 12:5에서는 문자적으로 “죽음의 아들”을 의미하는 표현이 “죽어 마땅하다”로 번역되었다. 마 23:15에서는 문자적으로 “게헨나의 아들”을 의미하는 표현이 영원한 멸망을 받아 마땅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의미로 가룟 유다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 같다.—마 23:15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게헨나” 참조.

세상: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코스모스는 하느님의 종들을 제외한 인류 세상, 즉 하느님과 멀어진 불의한 인간 사회를 가리킨다. 복음서 필자 가운데 제자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예수의 말씀을 인용한 사람은 요한뿐이다. 예수께서는 충실한 사도들과 함께하신 마지막 밤에 두 번 더 동일한 말씀을 하셨다.—요 15:19; 17:16.

거룩하게 해 주십시오: 또는 (하느님께 드리는 신성한 봉사를 위해) “성별해 주십시오; 구별해 주십시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에 순종할 때 거룩하게 즉 정결하게 된다. (벧전 1:22) 그리하여 그들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이 분명히 나타나게 된다. 세상은 하느님의 진리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이다.—요 17:16.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사물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알려 주고, 그분의 특성과 목적과 명령뿐만 아니라 인간사의 진정한 의미도 밝혀 준다. 이 구절에 나오는 예수의 기도와 일치하게, 하느님의 진리의 말씀은 여호와께 드리는 봉사를 위해 그분에 의해 거룩해지려면 즉 구별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 준다. 또한 그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려 준다.

저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또는 “저 자신을 구별하고; 저 자신을 성별하고”. 예수께서는 인간으로 태어날 때부터 거룩하셨으며 (눅 1:35) 땅에서 살아가는 내내 거룩한 상태를 유지하셨다. (행 4:27; 히 7:26) 예수께서 나무랄 데 없는 인생행로를 걸으시고 대속 희생을 바치신 덕분에, 제자들이 거룩해지는 즉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를 위해 구별 또는 성별되는 일이 가능하게 되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면서 그들을 위해 자신을 거룩하게 하고 있다고 말씀하실 수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그분의 발걸음을 밀접히 따르고 그분이 가르치신 진리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에 나오는 진리에 따라 살아갈 때 진리로 거룩해진다. (요 17:17; 딤후 2:20, 21; 히 12:14)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해지는 것이다.—롬 3:23-26; 히 10:10.

하나입니다: 또는 “일치 연합해 있습니다”. 예수의 이 말씀은 그분과 그분의 아버지가 양 같은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일에서 일치 연합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처럼 양을 돌보는 일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는 일이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양들에게 깊은 관심이 있으시며 아무도 자신들의 손에서 양들을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지 않으신다. (요 10:27-29. 겔 34:23, 24 비교) 요한복음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한 뜻과 목적을 가지고 있으며 연합된 관계를 누린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예수와 아버지가 하나의 인격체가 아니라 행동하고 협력하는 면에서 “하나”임을 보여 준다. (요 5:19; 14:9, 23) 또한 예수의 이 말씀과 요한복음 17장에 기록된 그분의 기도를 비교해 보면, 예수께서 자신과 아버지가 동등한 신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목적과 행동에 있어서 연합되어 있다는 의미로 말씀하신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요 10:25-29; 17:2, 9-11) 특히 유의할 만한 점으로 그분은 기도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말씀하셨다. (요 17:11) 따라서 10장에 나오는 “하나”라는 표현과 17장에 나오는 “하나”라는 표현은 동일한 의미임을 알 수 있다.—요 17:11, 21; 고전 3:8 연구 노트 참조.

하나인 ··· 하나가 되게: 또는 “일치 연합해 있는 ··· 일치 연합하게”.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참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와 아버지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서로 협력하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 이 기도에 표현된 사상은 요 10:30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을 떠올리게 한다. 그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주신 “양들”인 제자들을 대하는 면에서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라고 말씀하셨다. (요 10:25-30; 17:2, 9) 이 구절에서 “하나”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하나의 인격체”를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하나의 사물”을 가리키는 중성형으로 되어 있다.—요 10:30 연구 노트 참조.

하나가 되어: 또는 “연합되어”. 예수께서는 자신과 아버지가 “하나”인 것처럼 자신의 참제자들도 “하나”가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이것은 예수와 아버지가 일치된 생각을 가지고 협력하는 것처럼, 제자들도 동일한 목적을 위해 함께 연합하여 일하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 (요 17:22) 고전 3:6-9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자들이 동료들과 함께 그리고 하느님과 함께 일하면서 누리는 그러한 연합을 묘사한다.—고전 3:8요 10:30; 17:11 연구 노트 참조.

완전히 하나가 되게: 또는 “온전히 일치 연합하게”.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완전한 연합을 아버지께 사랑받는 것과 연관 지으신다. 이러한 말씀은 골 3:14에 나오는 “사랑은 완전한 연합의 띠”라는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그러한 완전한 연합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것은 능력, 습관, 양심과 같은 부면에서 개인 간의 차이가 모두 없어지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의 제자들이 행동과 신앙과 가르침에 있어서 일치 연합되는 것을 의미한다.—롬 15:5, 6; 고전 1:10; 엡 4:3; 빌 1:27.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기초를 놓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히 11:11에서 “자손”과 함께 쓰였으며 “수태하다”라고 번역되었다.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라는 표현에서 이 그리스어 단어는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낳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를 아벨과 연관 지으셨다. 아벨은 하느님께서 구원받을 만하다고 여기신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며, “세상의 기초가 놓인 때부터 생명의 두루마리에 이름이 기록된” 첫 번째 사람이었을 것이다. (눅 11:50, 51; 계 17:8) 또한 예수께서 아버지께 기도드리면서 하신 이 말씀은 오래전 아담과 하와가 자손을 수태하기 전부터 하느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사랑하셨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 준다.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당에 있던 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에서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가르칠 때 사용되던 「칠십인역」(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판)에서도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부록 가5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계 3:4, 각주 비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즉 그분의 목적과 활동과 특성에 대해 밝히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설명하실 수 있었다. (요 1:18; 마 11:27)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이름: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 יהוה(YHWH)으로 표기되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가리킨다. 이 이름의 일반적인 한국어 음역 표현은 “여호와”이다. 「신세계역」에는 이 이름이 히브리어 성경에 6979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37회 나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부록 가5부록 다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출 34:5, 6; 계 3:4, 각주 비교.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끝맺으시면서 요 17:6에 나오는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요 17:6 연구 노트 참조) 그런데 요 17:6과는 달리, 17:26에서는 그노리조(“알려 주다”)라는 그리스어 동사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동사는 요 17:6에 사용된 동사 파네로오(“나타내다; 밝혀 주다”)와 의미가 비슷하다. 파네로오 역시 “알려 주다”로 번역할 수 있다. (요 17:6 각주 참조) 성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알린다는 것에는 그 이름 자체를 알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 즉 그의 평판과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알리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계 3:4; 각주 비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즉 그분의 목적과 활동과 특성에 대해 밝히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알려 주겠습니다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 표현은 “계속 알려 주겠습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계속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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