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3:1-38

13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갈+ 때가 되었다는+ 것을 아셨다. 그 때문에, 세상에 있는 자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던 그분은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만찬이 진행되고* 있었고, 마귀는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그분을 배반할 생각을+ 넣어 두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신의 손에 주셨다는 것과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왔다가 하느님께 간다는 것을 아시고,+  만찬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옆에 놓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그런 다음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두르신 수건으로 닦아 주기 시작하셨다.  그분이 시몬 베드로에게 오시자, 그가 그분에게 말했다. “주여, 제 발도 씻겨 주시려는 겁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지금은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분에게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라고 말하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당신을 씻겨 주지 않는다면+ 당신은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주여,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10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됩니다. 여러분은 깨끗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 11  그분은 자신을 배반할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그분은 그들의 발을 씻겨 주고 겉옷을 입으신 다음, 다시 식탁에 앉아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여러분에게 한 일을 이해하겠습니까? 13  여러분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입니다. 사실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14  내가 주이고 선생인데도 여러분의 발을 씻겨 주었다면,+ 여러분도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합니다.+ 15  내가 여러분에게 한 대로 여러분도 하라고 내가 여러분을 위해 본을 보인 것입니다.+ 16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종이 주인보다 크지 않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이보다 크지 않습니다.+ 17  여러분이 이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행복합니다.+ 18  내가 여러분 모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내가 선택한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내 빵을 먹던 사람이 나를 치려고 발꿈치를 들었다’는+ 성경 말씀이 성취되기 위한 것입니다.+ 19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말해 두는 것은,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날 때에 내가 그 사람이라는 것을 여러분이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20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내가 보내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도 받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1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예수께서는 영으로 괴로워하며 “진실로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러분 중 한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입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22  제자들은 그분이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당황하며 서로 바라보았다.+ 23  제자들 중 하나 곧 예수께서 사랑하신 사람이+ 예수 곁에 앉아 있었다. 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 하고 말했다. 25  그러자 그는 예수의 가슴에 기대며 “주여,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 “내가 빵 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건네주셨다. 27  유다가 빵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에게 “당신이 하고 있는 일을 어서 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러나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에는 그분이 왜 그에게 그 말씀을 하셨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29  사실, 유다가 돈궤를 맡고 있었으므로+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그에게 “축제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사라” 하고 말씀하셨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했다. 30  유다는 빵 조각을 받고 즉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31  그가 나가고 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고+ 하느님께서도 그를 통해 영광스럽게 되십니다. 32  하느님께서 친히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인데,+ 이제 곧 영광스럽게 하실 것입니다. 33  어린 자녀들이여, 나는 잠시 더 여러분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나를 찾을 것입니다. 내가 유대인들에게 한 말을 이제 여러분에게도 합니다. ‘내가 가는 곳에 여러분은 올 수 없습니다.’+ 34  내가 여러분에게 새 계명을 줍니다. 서로 사랑하십시오.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사랑하십시오.+ 35  여러분 가운데 사랑이 있으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 여러분이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36  시몬 베드로가 그분에게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지금은 당신이 따라올 수 없지만 나중에는 따라올 것입니다.”+ 37  베드로가 그분에게 말했다. “주여, 왜 지금은 주를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이라도 내놓겠습니다.”+ 38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이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을 것입니까? 진실로 진실로 당신에게 말하는데, 닭이 울기 전에 틀림없이 당신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입니다.”+

각주

달리 번역하면 “준비되고”.

연구 노트

유월절: 예수께서는 기원 29년 가을에 침례를 받고 전파 활동을 시작하셨다. 이 구절에서는 예수께서 봉사를 시작하신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으므로, 여기 언급된 유월절은 기원 30년 봄에 있었던 유월절임이 분명하다. (눅 3:1 연구 노트부록 가7 참조) 사복음서를 비교해 보면 예수께서 땅에서 봉사하시는 동안 유월절이 네 번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분의 봉사 기간이 3년 반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흔히 공관 복음서라고 불리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에서는 다른 유월절들은 언급하지 않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마지막 유월절만을 언급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세 차례의 유월절을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요 2:13; 6:4; 11:55) 또한 요 5:1에 나오는 “유대인의 축제”라는 표현이 나머지 한 차례의 유월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처럼 복음서 기록을 비교해 보는 것은 예수의 삶을 더 온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요 5:1; 6:4; 11:55 연구 노트 참조.

유월절: 기원 33년의 유월절을 가리킨다.—요 2:13 연구 노트 참조.

사랑하시던: 이어지는 요한복음의 장들에서는 사랑이라는 주제가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1장부터 12장에는 그리스어 동사 아가파오(사랑하다)와 명사 아가페(사랑)가 모두 합해 8번 나오지만, 13장부터 21장에는 이 단어들이 모두 합해 36번 나온다. 사실 이 장들에는 아버지와 제자들에 대한 예수의 깊은 사랑이 성경의 다른 어떤 부분보다 더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여호와를 사랑하신다는 점은 네 복음서 모두에 표현되어 있지만, 그분이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명확하게 말씀하셨다는 점은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요 14:31) 또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하신 교훈 가운데서 여호와께서 자신을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그 이유도 설명해 주셨다.—요 15:9, 10.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은 예수의 인간 생애의 끝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지만 이 그리스어 표현이 이 문맥에서 “완전히(온전히) 사랑하셨다; 계속해서 사랑하셨다”라는 의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허리에 두르셨다: 또는 “허리에 동여매셨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고 물기를 닦아 주는 일은 대개 종이 하는 일이었다. (요 13:12-17) 예수께서는 이 비천한 일을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태도가 무엇인지에 관해 제자들에게 강력한 교훈을 베푸셨다. 그 일이 있었던 밤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도 베드로는 아마도 이 일을 염두에 두고 후에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을 수 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을 입으십시오[또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매십시오”].”—벧전 5:5; 각주.

허리에 두르셨다: 또는 “허리에 동여매셨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겨 주고 물기를 닦아 주는 일은 대개 종이 하는 일이었다. (요 13:12-17) 예수께서는 이 비천한 일을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에게 요구하시는 태도가 무엇인지에 관해 제자들에게 강력한 교훈을 베푸셨다. 그 일이 있었던 밤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도 베드로는 아마도 이 일을 염두에 두고 후에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을 수 있다. “여러분은 모두 겸손을 입으십시오[또는 “겸손으로 허리를 동여매십시오”].”—벧전 5:5; 각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고: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신던 신발은 대부분 샌들이었다. 이것은 단지 바닥에 끈을 달아 발이나 발목에 매는 단순한 형태였다. 샌들을 신고 다니다 보면, 길이나 들판의 흙먼지나 진흙 때문에 발이 더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집에 들어갈 때는 샌들을 벗는 것이 관습이었으며, 집주인은 후대를 나타내어 자신이 직접 또는 종을 시켜 손님의 발을 씻겨 주거나, 발을 씻을 물을 손님에게 마련해 주었다. 성경은 이 관습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창 18:4, 5; 24:32; 삼상 25:41; 눅 7:37, 38, 44) 예수께서는 이 관습에 따라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겸손을 나타내고 다른 사람을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실제 모범을 통해 가르치셨다.

두르신: 또는 “동여매신”.—요 13:4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은 깨끗하지만: 예수께서 방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셨으므로 제자들은 온몸이 깨끗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들 중 한 사람 즉 가룟 유다는 영적으로 부정했다. 그는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속은 더러운 채로 내버려 두는 기만적인 바리새인들처럼, 몸은 깨끗하지만 영적으로는 부정한 상태였다.—마 23:25, 26.

예수께서는 ···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 알고 계셨던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을 배반할 사람이 가룟 유다임을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사도를 선택하기 전에 밤새도록 아버지께 기도하셨다. (눅 6:12-16) 따라서 유다는 처음에는 하느님께 충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을 통해 자신이 가까운 동료에게 배반당할 것임을 알고 계셨다. (시 41:9; 109:8; 요 13:18, 19) 그리고 유다가 악해지기 시작하자, 마음과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예수께서는 그러한 변화를 알아차리셨다. (마 9:4) 하느님께서는 예지력을 사용하여 예수가 신뢰하던 동료 중 하나가 배반자가 될 것임을 내다보셨다. 하지만 유다가 그 배반자가 될 것임이 미리 예정되어 있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하느님의 특성과 그분이 과거에 일을 처리하신 방식과 조화되지 않는다.

중상자: 또는 “마귀”. 그리스어 디아볼로스는 “중상자”를 의미하며,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딤전 3:11; 딤후 3:3; 딛 2:3에서는 이 단어가 사탄 마귀를 가리키지 않으며, “중상하다”로 번역되었다. 그리스어 원문에서 이 단어가 사탄 마귀를 가리키는 경우에는 거의 언제나 이 단어 앞에 정관사가 사용된다. (마 4: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정관사” 참조) 이 구절(요 6:70)에서 이 단어는 악한 특성을 발전시킨 가룟 유다를 가리키는 데 쓰였다. 아마 이 무렵에 예수께서는 유다가 잘못된 길에 들어섰음을 알아차리셨을 것이다. 그로 인해 유다는 후에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예수를 죽이는 일에 가담하게 되었다.—요 13:2, 11.

그분은 ···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는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를 분별하실 수 있는 분이므로, 유다는 사도로 선택될 당시에는 배반적인 태도를 나타내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마 9:4; 막 2:8; 요 2:24, 25) 하지만 후에 유다가 좋지 않은 태도를 나타내기 시작하자 예수께서는 그것을 간파하셨으며 그가 배반자가 될 것임을 알아차리셨다. 그분은 그가 자신을 배반할 것임을 아시면서도 그의 발을 씻겨 주셨다.—요 6:64; 6:70 연구 노트 참조.

서로 발을 씻겨 주어야 합니다: 문맥을 볼 때, 여기서 예수께서는 충실한 제자들에게 형제들의 신체적 필요뿐만 아니라 영적인 필요에도 겸손한 태도로 관심을 나타내도록 가르치고 계신 것이다. 방금 전에 그분은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심으로 제자들이 겸손하고 서로 섬겨야 한다는 교훈을 베푸셨다. 그런 다음 “여러분은 깨끗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보면 그분이 단지 문자적으로 발을 씻겨 주는 것에 관해 말씀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요 13:10) 엡 5:25, 26에서는 예수께서 그리스도인 회중을 진리의 “말씀의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셨다고 알려 준다. 제자들도 예수를 본받아,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서로 도울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매일의 유혹과 세상의 얽매는 것들 때문에 더럽혀질 수 있는데, 그러한 것들로부터 깨끗함을 유지하도록 서로 도울 수 있다.—갈 6:1; 히 10:22; 12:13.

~어야 합니다: 또는 “~ 의무가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금전 문제와 관련하여 자주 사용되는데, 기본적으로 “누군가에게 빚을 지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갚아야 할 의무가 있다”를 의미한다. (마 18:28, 30, 34; 눅 16:5, 7) 이 단어는 이 구절과 다른 여러 문맥에서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무언가를 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뜻을 전달한다.—요1 3:16; 4:11; 요3 8.

사도: 또는 “보냄을 받은 자”. 그리스어 원어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마 10:5; 눅 11:49; 14:32) 요 13:16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에 이 단어의 기본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 있는데, 그 구절에서는 이 단어가 “보냄을 받은 사람”으로 번역되어 있다.

사도: 또는 “보냄을 받은 자”. 그리스어 원어 아포스톨로스는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나온 단어이다. 이 구절의 뒷부분에 이 동사가 사용되었으며 “보내어”로 번역되었다.—마 10:2 연구 노트 참조.

보냄을 받은 사람: 또는 “사자(사절); 사도”.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보내다”를 의미하는 동사 아포스텔로에서 나온 단어. 마 10:5; 눅 11:49; 14:32 참조)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80회 나오는데, 그중 78회가 “사도(들)”로 번역되었다. (빌 2:25에서는 이 단어가 “사절”로 번역되었다.) 요한복음에서 이 단어는 이 구절에만 나온다.—마 10:2; 막 3:14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사도” 참조.

내 빵을 먹던: 누군가를 초대해서 함께 빵을 먹는다는 것은 그와 친밀하고 평화로운 사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창 31:54. “빵을 먹다”라는 히브리어 표현이 “식사하다; 음식을 먹다”로 번역된 출 2:20; 18:12과 비교) 그처럼 누군가의 빵을 먹고 나서 그에게 해를 입히는 것은 매우 파렴치한 배신행위로 여겨졌다.—시 41:9.

나를 치려고 발꿈치를 들었다: 또는 “내게 등을 돌렸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시 41:9에 나오는 예언적인 말씀을 인용하신다. 그 구절에 나오는 표현의 문자적인 의미는 “나에 대해 발꿈치를 크게 했다”이다. 다윗은 자신을 배반한 동료에 대해 말하면서 그러한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했다. 아마도 “다윗의 고문”인 아히도벨을 가리켜 한 말인 것 같다. (삼하 15:12) 예수께서는 이 표현을 가룟 유다에게 적용하신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그 표현은 상대방을 배신하는 행위, 발꿈치를 “들어” 그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요한: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의미하는 여호하난 또는 요하난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 복음서에는 필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기원 2세기와 3세기 당시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도 요한이 이 책의 필자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 사도 요한은 요한이라는 이름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세베대의 아들들”로 언급된다. (요 21:2; 마 4:21; 막 1:19; 눅 5:10. 요 1:6 연구 노트 참조) 이 복음서의 끝부분에서 필자는 자신을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언급하는데 (요 21:20-24) 여러 가지 사실을 볼 때 이 표현이 사도 요한을 가리키는 것임을 알 수 있다.—요 13:23 연구 노트 참조.

요한: 침례자 요한을 가리킨다. 사도 요한은 자신이 쓴 복음서에서 침례자 요한을 19번 언급했다. 하지만 다른 복음서 필자들과는 달리 “침례자”라는 칭호를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마 3:1; 막 1:4 연구 노트 참조) 사도 요한은 3명의 마리아를 언급할 때 그들을 구별시켜 주는 표현을 사용했다. (요 11:1, 2; 19:25; 20:1) 하지만 침례자 요한을 언급할 때는 그처럼 구별시켜 주는 표현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사도 요한은 이 복음서에서 자신을 지칭할 때 요한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으며, 사람들도 이 복음서에 나오는 요한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오해할 여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복음서의 필자가 사도 요한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증거이다.—“요한복음 소개” 및 요한복음 책명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다섯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 4:21; 막 1:19; 눅 5:10; 요 21:2) 요 21:20-24의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는 “이 일들을 기록한 사람” 즉 요한복음의 필자였다.—요한복음 책명; 요 1:6; 13:23 연구 노트 참조.

아브라함 곁으로: 직역하면 “아브라함의 품으로”. 누군가의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요 1:18 연구 노트 참조) 이 비유적인 표현은 식사할 때 침상에서 매우 친밀한 친구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는 관습에서 유래했다.—요 13:23-25.

그의 곁에: 직역하면 “그의 품에”.—눅 16:22 연구 노트 참조.

아버지의 곁에: 직역하면 “아버지의 품에”. 누군가의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비유적인 표현은 당시의 식사 관습에서 유래한 것 같다. 사람들은 식사할 때 침상에서 친밀한 친구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았다. (요 13:23-25) 따라서 이 구절에서는 예수를 여호와의 가장 친밀한 친구, 즉 여호와에 대해 누구보다도 온전하고 자세하게 설명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마 11:27.

예수께서 사랑하신 사람: 예수께서 특별히 사랑하셨던 사람을 가리킨다. 요한복음에는 ‘예수께서 사랑하셨던’ 제자에 관한 언급이 5번 나오는데, 이 구절은 그중 첫 번째 경우이다. (요 13:23; 19:26; 20:2; 21:7, 20) 이 제자는 일반적으로 세베대의 아들이며 야고보의 형제인 사도 요한인 것으로 여겨진다. (마 4:21; 막 1:19; 눅 5:10)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요 21:2에 “세베대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한 번 나올 뿐, 사도 요한의 이름은 이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또 다른 이유는 요 21:20-24에서 이 복음서의 필자를 가리켜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제자”라고 언급한다는 점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그 제자에 관해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남아 있게 하는 것이 내 뜻이라 해도 그것이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그 제자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보다 더 오래 살 것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사도 요한에게 잘 부합된다.—요한복음 책명요 1:6; 21:20 연구 노트 참조.

곁에: 직역하면 “품에”. 이 표현은 예수 시대에 사람들이 식사할 때 자리에 앉던 방식과 관련이 있다. 손님들은 왼쪽 팔꿈치를 쿠션에 대고 왼편으로 기대앉았다. 각 사람은 옆에 앉은 사람의 품 즉 가슴에 등을 댈 수 있는 자세로 기대앉아 사적인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요 13:25) 누군가의 “곁에” 즉 “품에” 있다는 것은 특별한 호의를 누리고 친밀한 우정을 나누는 사이라는 의미였다. 누가와 요한이 사용한 “곁에” 즉 “품에”라는 표현은 그러한 관습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눅 16:22, 23; 요 1:18 연구 노트 참조.

축제를 위해: 유월절 후에 시작되는 무교절을 가리키는 것 같다.

어린 자녀들: 복음서를 살펴보면 예수께서 이보다 전에 제자들을 가리켜 이러한 애정 어린 표현을 사용하셨다는 기록은 없다. 여기서 “어린 자녀들”로 번역된 그리스어 테크니온테크논(자녀)의 지소형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지소형은 애정이 느껴지거나 친숙하다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용어 설명 “지소형” 참조) 따라서 “어린 자녀들”이라는 표현은 “소중한 자녀들” 또는 “사랑하는 자녀들”로 옮길 수도 있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9번 나오는데, 항상 제자들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갈 4:19; 요1 2:1, 12, 28; 3:7, 18; 4:4; 5:21.

새 계명: 모세 율법에는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었다. (레 19:18) 그 규정이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하기는 했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자기희생적인 사랑을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 예수의 계명이 “새” 계명 즉 이전에 없었던 계명인 이유는 그분이 내가 여러분을 사랑한 것처럼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희생적인 삶을 사는 면에서 제자들이 따라야 할 완벽한 모범을 남기셨다. 다른 사람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수 있는 사랑을 나타내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이 새 계명이 요구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 주셨다.—요 15:13.

목숨: 또는 “영혼”. 그리스어 프시케는 「신세계역」 이전 번역판에서 “영혼”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는 베드로의 목숨 즉 생명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고 말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목숨: 또는 “영혼”. 그리스어 프시케는 「신세계역」 이전 번역판에서 “영혼”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는 베드로의 목숨 즉 생명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예수를 위해 자기 목숨을 기꺼이 내놓겠다고 말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목숨: 또는 “영혼”. 그리스어 프시케는 「신세계역」 이전 번역판에서 “영혼”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단어의 의미는 문맥을 보고 판단해야 한다. 여기서는 베드로의 목숨 즉 생명을 가리킨다.—요 13:37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영혼” 참조.

닭: 네 개의 복음서 모두 닭이 울 것이라는 점을 언급하는데, 마가복음에만 닭이 두 번 울 것이라는 점이 나온다. (마 26:34, 74, 75; 막 14:30, 72; 눅 22:34, 60, 61; 요 18:27) 「미슈나」에서는 예수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닭을 길렀다고 알려 주며, 이 점은 성경 기록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닭이 운 때는 아마 이른 새벽이었을 것이다.

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