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1-21
연구 노트
바울은 만 2년 동안 ··· 머물면서: 바울은 이 2년 동안 에베소서(엡 4:1; 6:20), 빌립보서(빌 1:7, 12-14), 골로새서(골 4:18), 빌레몬서(몬 9)를 썼으며, 아마도 히브리서도 쓴 것 같다. 그는 기원 61년경에 재판을 받은 것으로 보이며 그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에 있었을 것이다. 네로 황제가 바울을 직접 재판했는지 아니면 권한을 위임받은 다른 누군가가 그를 재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바울은 무죄 판결을 받은 것 같다. 바울은 풀려난 뒤에도, 늘 그래 왔던 것처럼 활동적으로 봉사했다. 그는 이전에 스페인으로 갈 계획을 세운 적이 있는데, 어쩌면 이 시기에 스페인으로 갔을 수도 있다. (롬 15:28) 로마의 클레멘스가 기원 95년경에 기술한 바에 따르면, 바울은 로마 제국의 “서쪽 경계 끝까지” 갔다. 바울이 풀려난 뒤에 쓴 세 통의 편지(디모데 전서, 디모데 후서, 디도서)를 보면 그는 니코폴리스, 마케도니아, 밀레투스, 에베소, 크레타, 트로아스를 방문했던 것 같다. (딤전 1:3; 딤후 4:13, 20; 딛 1:5; 3:12) 일부 학자들은 바울이 그리스의 니코폴리스에서 다시 체포되었으며 기원 65년경에는 로마에 다시 투옥되어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네로가 자비를 보이지 않은 것 같다. 그 전해에 화재가 로마를 휩쓸었으며,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에 따르면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자비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두 번째이자 마지막 편지를 쓸 당시 자신이 곧 처형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디모데와 마가에게 신속히 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 시기에 누가와 오네시보로는 큰 용기를 나타내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바울을 찾아가 위로했다. (딤후 1:16, 17; 4:6-9, 11) 바울은 기원 65년경에 처형된 것 같다. 바울은 자신의 삶과 죽음을 통해 ‘예수께서 행하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증거한 탁월한 증인이었다.—행 1:1.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갇혀 있는 나 바울: 사도 바울은 비유대인들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활동했기 때문에 동족인 유대인들의 분노를 샀다. 그로 인해 그는 처음에는 유대에서, 나중에는 로마에서 수감되었다. (행 21:33-36; 28:16, 17, 30, 31) 따라서 그는 자신이 이방 사람들을 위해 그리스도 예수 때문에 갇혀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바울은 로마에 첫 번째로 수감되어 있는 2년 동안 (기원 59-61년경) 여러 통의 편지를 썼다. (행 28:30 연구 노트 참조) 에베소서에서 그는 자신이 갇혀 있거나 쇠사슬에 매여 있다고 두 번 더 언급한다.—엡 4:1; 6:20.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과 관련된 관리인의 직무: 바울은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진 사도”로서 특별한 관리인의 직무를 받았다. (롬 11:13) 따라서 그는 이방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 셈이었다. “나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통해 유익을 얻도록 도울 책임을 맡았습니다.” “관리인의 직무”로 번역된 그리스어(오이코노미아)는 “관리 체제”로 번역할 수도 있다.—엡 1:10; 3:9.
내가 앞서 간단히 쓴 것과 같이: 바울은 여기서 별도의 편지가 아니라 엡 1:9, 10과 2:11-22과 같이 이 편지의 앞부분에서 간단히 논했던 내용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신성한 비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리스어 미스테리온이 28회 나오는데, 「신세계역」에서는 대부분 “신성한 비밀”로 번역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이 단어의 복수형이 사용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 그분의 목적의 여러 부분들을 가리킨다. 이 신성한 비밀들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분이 이해력을 주기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온전히 밝혀진다. (골 1:25, 26) 일단 밝혀지고 나면,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은 최대한 널리 선포된다. 성경에서 “신성한 비밀”이라는 말이 “전하다”, “알려 주다”, “전파하다”, “밝혀지다”, “계시”와 같은 표현들과 함께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고전 2:1; 엡 1:9; 3:3; 골 1:25, 26; 4:3)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들 가운데 주된 비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 즉 그분이 약속된 “자손” 곧 메시아라는 점이다. (골 2:2; 창 3:15) 하지만 이 주된 신성한 비밀에는 하느님의 목적 안에서 예수에게 맡겨진 역할을 포함해 여러 부면이 있다. (골 4:3) 예수께서 이 구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신성한 비밀들은 하늘 왕국, 즉 예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늘 정부인 “하느님의 왕국”과 관련이 있다. (막 4:11; 눅 8:10. 마 3: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사용된 미스테리온이라는 단어는 고대 밀의(密儀) 종교 즉 신비주의 종교에서 말하는 미스테리온과 다르다. 기원 1세기에 성행한 다산의 신 숭배에 주로 기반을 둔 그러한 종교들은 그 종교의 신봉자들이 신비스러운 의식을 통해 불멸성을 얻고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신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러한 비밀들은 분명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신비주의 종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은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며, 따라서 그 비밀은 널리 선포되는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비밀들과는 달리 신비에 싸이게 되었다. 성경에서 미스테리온이 거짓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우, 「신세계역」에서는 이 단어를 “신비”로 번역한다.—미스테리온이 “신비”로 번역된 세 경우를 보려면, 살후 2:7; 계 17:5, 7 연구 노트 참조.
자신의 뜻의 신성한 비밀: 바울이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신성한 비밀”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여호와의 “신성한 비밀”은 주로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다. (골 2:2; 4:3) 하지만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에는 여러 가지 부면이 있다. 그 신성한 비밀에는 약속된 자손 즉 메시아이신 예수의 신분과 하느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데 그분이 하시는 역할, (창 3:15) 하늘 정부인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 (마 13:11; 막 4:11) 그리스도께서 머리이시며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회중, (엡 5:32; 골 1:18; 계 1:20) 예수와 함께 왕국에 참여하는 기름부음받은 자들의 역할, (눅 22:29, 30) 유대인과 이방인들 가운데서 기름부음받은 자들을 선택하는 일(롬 11:25; 엡 3:3-6; 골 1:26, 27)이 포함된다.—마 13:11; 고전 2:7 연구 노트 참조.
이방 사람들: 비유대인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엡 3:3에서 언급된 대로 자신에게 밝혀진 신성한 비밀의 한 부면을 강조한다. (마 13:11; 엡 1:9 연구 노트 참조) 그는 자신과 같은 믿는 유대인들과 함께 비유대인들도 예수께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인 회중 즉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지체가 되도록 부르심을 받는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엡 1:22, 23; 골 1:18.
종: 또는 “봉사자”.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마 20:26 연구 노트 참조) 롬 15:8에서 이 표현은 예수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고전 3:5)에서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고린도 사람들이 신자가 되도록 도운 종 즉 봉사자라고 표현한다. 모든 침례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하는 봉사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봉사에도 다른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는 일이 포함되었다.—눅 4:16-21.
우리 자신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합니다: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두 편지에서 바울은 이미 자신과 동료 일꾼들을 “봉사자”로 언급했다. (고전 3:5; 고후 3:6 연구 노트 참조) “우리 자신을 ··· 추천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이 문맥에서 “우리 자신이 ~임을 증명하다(나타내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고린도 회중과 연합하고 있던 일부 사람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을 받기에 합당하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고 있었다. (고후 6:1, 3) 따라서 바울과 동료들은 “모든 면에서” 자신들을 하느님의 봉사자로 추천했다. 다시 말해 자신들이 하느님의 봉사자라는 점을 변호했다.
과분한 친절이라는 선물: 또는 “과분한 친절이라는 값없이 주는 선물”.—용어 설명 “과분한 친절” 참조.
이 신성한 비밀의 봉사자: 직역하면 “이것의 봉사자”. 여기서 “이것”은 3, 4절에 언급된 “신성한 비밀”을 가리키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신성한 비밀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좋은 소식”(엡 3:6)을 가리킬 수도 있다. (엡 6:19)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들에서 자신과 동료들을 봉사자로 자주 언급한다.—고전 3:5; 고후 6:4 연구 노트 참조.
관리 체제를 마련하셔서: 또는 “관리하는 일을 하셔서”.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오이코노미아)의 문자적인 의미는 “집 관리 체제; 집안 관리”이다. 이것은 특정한 정부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을 관리하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표현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은 엡 3:9에서 이 단어가 사용된 방식과도 조화를 이룬다. (이 단어가 “관리인; 관리인의 직무”로 번역된 눅 16:2; 엡 3:2; 골 1:25과 비교) 이 “관리 체제”는 하느님의 메시아 왕국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우주 가족 즉 집안을 관리하기 위해 그분이 사용하시는 방식을 가리킨다. 이 관리 체제는 하늘 왕국에서 통치할 자들을 모으고 모든 지성 있는 창조물을 연합시키려는 하느님의 목적을 성취시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평화와 연합을 누리게 할 것이다.
신성한 비밀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가를: 또는 “신성한 비밀의 관리 체제를”.—“관리 체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오이코노미아)에 대해 알아보려면 엡 1:10 연구 노트 참조.
회중을 통해: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에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포함되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가 되어 하늘의 영광에 참여할 사람들을 인류 가운데서 선택할 목적을 갖고 계셨기 때문이다. (엡 3:5-9) 하느님께서는 회중을 통해, 또 회중을 위해, 그리고 회중에 대해 하시는 일을 통해 자신의 지혜를 “하늘에 있는 정부들과 권위들에게” 알리신다. 즉 밝히신다. 천사들은 이 신성한 비밀이 점진적으로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 놀라워하고 경탄한다. 따라서 천사들이 “회중을 통해”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매우 다양한 지혜”를 보게 된다고 할 수 있다.—벧전 1:10-12 비교.
그분의 목적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여기서 “목적”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프로테시스는 문자적으로 “앞에 놓아두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롬 9:11(“뜻”); 엡 1:11; 3:11에도 나온다. 하느님의 목적은 모두 틀림없이 성취되므로, 그분은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아시고 예언하실 수 있다. (사 46:10) 예를 들어 여호와께서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집단이 있을 것임을 미리 아셨다. 하지만 그분은 이 집단을 구성할 개개인을 미리 정해 두지는 않으신다. 또한 그분은 자신의 목적이 반드시 성취되도록 행동을 취하신다.—사 14:24-27.
영원한 목적: 이 문맥에서 “목적”이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달성할 수 있는 특정한 목표를 가리킨다. 이 표현은 에덴에서 반역이 있었는데도 인류와 땅에 대해 자신이 원래 뜻한 바를 이루시려는 여호와의 의지와 관련이 있다. (창 1:28) 반역이 있은 직후에 여호와께서는 그리스도 우리 주 예수와 관련해 이 목적을 세우셨다. 그분은 반역자들이 초래한 해를 바로잡을 “자손”이 나타날 것을 예언하셨다. (창 3:15; 히 2:14-17; 요1 3:8) 이 목적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영원한 목적”(직역하면 “시대들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1) “영원하신 왕[직역하면 “시대들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딤전 1:17) 그 목적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데 여러 시대가 걸리도록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2) 그 목적이 이루어진 결과가 영원히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롬 8:28 연구 노트 참조.
거침없이 말하는 것: 또는 “담대함; 두려움이 없는 것”. 그리스어 파레시아는 “말의 자유; 확신”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행 28:31; 각주; 요1 5:14) 동사형인 파레시아조마이는 주로 “담대하게 말하다”로 번역된다. 파레시아와 파레시아조마이는 사도행전에 자주 나오는데, 이 단어들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한 전파 활동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행 4:29, 31; 9:27, 28; 13:46; 14:3; 18:26; 19:8; 26:26.
아주 담대하게: 또는 “아무 두려움 없이; 말의 가장 큰 자유를 가지고”. 그리스어 파레시아는 “거침없이 말하는 것”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행 4:13) 동사형인 파레시아조마이는 주로 “담대하게 말하다”로 번역된다. 파레시아와 파레시아조마이는 사도행전에 자주 나온다. 사도행전 전체는 담대함이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수행한 전파 활동의 특징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행 4:29, 31; 9:27, 28; 13:46; 14:3; 18:26; 19:8; 26:26.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말의 큰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파레시아는 기본적으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숨김없이(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행 28:31 연구 노트 참조.
말의 자유: 그리스도인은 여호와 하느님과 좋은 관계를 누리기 때문에 “말의 자유”(또는 “담대함; 두려움이 없는 것”)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대속 희생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 때문에 확신에 차서 자유롭게 하느님께 기도할 수 있다. (히 4:16; 요1 5:14) 여기서 “말의 자유”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일부 문맥에서 그리스도인 믿음에 대해 공개적으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행 4:13; 28:31; 고후 7:4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을 위해 내가 환난을 겪는다고 해서: 바울은 에베소 사람들을 위해 섬기는 일을 한 결과 환난을 겪었다. 그는 그렇게 함으로 그들이 영적 축복을 받기 위해서라면 그가 고통을 겪는 것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임을 보여 주었다. 바울의 본을 통해 그들은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를 받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겪은 환난이 그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골 1:24 비교) 만약 바울이 박해자들에게 굴복했다면 에베소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갈 필요는 없다고 결론 내리고는 포기하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늘…의 모든 가족: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하늘 가족의 아버지로서 천사들을 아들로 여기신다. (욥 1:6; 2:1; 38:7) 수많은 별들의 이름을 부르시는 그분은 (시 147:4) 틀림없이 천사들에게도 이름을 지어 주셨을 것이다.—삿 13:18.
땅의 모든 가족: 땅의 모든 가족 즉 가계는 하느님에게서 “이름을 받았다.” 그분이 첫 인간 가족이 시작되게 하시고 아담과 하와가 자녀를 갖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창 1:28; 마 19:4, 5) 하지만 바울이 한 말은 여호와께서 모든 가족에게 일일이 이름을 지어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다.
모든 가족은 그분에게서 이름을 받았습니다: “가족”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파트리아)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말(파테르)에서 나온 단어로,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세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눅 2:4[“가문”]; 행 3:25) 이 단어는 직계 가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 단어는 「칠십인역」에도 여러 차례 나오는데, 한 집안만이 아니라 지파, 민족, 나라까지 가리킬 수 있는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하는 데 사용되었다. (민 1:4; 대상 16:28; 시 22:27[21:28(27), LXX]) 바울은 모든 가족이 하느님에게서 “이름을 받았다”고 말함으로, 유대인이든 비유대인이든 모든 사람이 아버지이신 여호와 하느님에게서 나왔다는 점을 지적한다.
능숙한 건축가: 또는 “지혜로운 공사 감독”. 일반적으로 “건축가”(그리스어 아르키텍톤. 문자적 의미는 “최고 기술자”)는 건축 작업의 책임자였으며 현장에서 일했다. 그는 기술자를 모집하고 그들이 하는 일을 감독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을 영적 건축 활동에서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건축가에 비한다. 이 영적 건축 활동은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특성들을 갖춘 그리스도인 제자들을 만드는 것이다. (고전 3:9-16)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텍톤은 “목수”로 번역되며, 예수와 그분의 양아버지 요셉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마 13:55; 막 6:3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사랑과 더불어 머물게 하기를: 여기서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함으로 그분을 온전히 알고 사랑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고전 2:16; 벧전 2:21) 예수의 본과 가르침에 따라 자신의 생각과 느낌과 행동을 틀 잡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자신들의 마음 즉 속사람에 계속 머무르시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에 대한 사랑을 기르면 여호와에 대한 사랑도 강해지고 (골 1:15) 믿음의 시험을 견뎌 낼 수 있는 내적 힘도 얻게 된다.—엡 3:16.
뿌리를 내리고 기초 위에 굳게 세워져서: 에베소서의 다른 구절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바울은 여기서 두 가지 비유를 사용해서 요점을 강조한다. (엡 2:20-22; 4:16)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땅에 깊이 뿌리 내린 나무와 튼튼한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처럼 굳건해야 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골 2:7에서도 비슷한 비유를 사용하여 그분 즉 그리스도 예수 “안에 뿌리를 내려 세워지는” 것에 대해 말한다. (골 2:6) 또한 바울은 고전 3:11에서 영적 건축 활동을 묘사하는 비유를 사용하면서 예수를 “기초”에 비한다. (고전 3:10 연구 노트 참조)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은 뿌리를 내리고 굳게 세워지기 위해 하느님의 말씀, 특히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했다. (엡 3:18; 히 5:12)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여호와와도 튼튼한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었다.—요 14:9.
알아 가는: 또는 “지식을 얻는; 계속 알아 가는”. 그리스어 동사 기노스코는 기본적으로 “알다”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이 동사가 계속적인 동작을 나타내는 현재 시제로 되어 있다. 따라서 “누군가에 대한 지식을 얻는; 누군가를 알아 가는; 누군가를 더 잘 알게 되는” 과정을 의미할 수 있다. 또한 이미 알고 있는 누군가를 더 잘 알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이 문맥에서는 하느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계속 늘리고 그분들에 대한 신뢰를 키워 나감으로, 하느님과 개인적으로 더 가까워지는 것을 가리킨다. 분명, 누군가를 그처럼 안다는 것은 그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는 것에는 그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그의 가치관과 표준이 무엇인지 아는 것도 포함된다.—요1 2:3; 4:8.
여러분은 하느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의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바울의 전파 활동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다.” 이 구절에 2번 나오는 “알게 되다”로 번역된 동사는 한 대상과 그가 아는 대상이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을 수 있다. (고전 8:3; 딤후 2:19) 따라서 “하느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에 대해 기본적인 사실을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한다. 거기에는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는 것이 포함된다.—요 17:3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성경에서 “알다”라는 표현은 어떤 것이나 어떤 사람에 대한 사실을 아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 (요 17:3; 갈 4:9 연구 노트 참조) 이 문맥에서 “알다”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사랑”이 갖는 의미를 이해하고 이 사랑을 경험과 행동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을 뜻한다. 사실들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 즉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그리스도의 성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한 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고전 8:1) 하지만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된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본받아 사랑으로 생각하고 행동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균형 잡히고 다른 사람을 세워 주고 사랑에 찬 방식으로 사용하게 된다.
훨씬 더 넘치게 해 주실 수 있는 분: 바울은 엡 3:14에서 시작한 기도를 끝맺으면서 20, 21절에서 여호와를 찬양한다. 그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에 하느님께서 응답하시는 방식이 우리가 예상하는 범위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사람이 보기에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없는 것 같더라도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청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분은 사람이 전혀 상상하거나 예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신의 약속을 이루실 수 있다.
아멘: 또는 “그렇게 되소서”. 그리스어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단어이다. 히브리어 아멘은 “충실하다, 신뢰할 만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어근 아만에서 나온 것이다. (용어 설명 참조) 사람들은 맹세나 기도 또는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할 때 “아멘”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필자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표현을 하면서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아멘”을 자주 사용했다. 바울도 여기서 “아멘”을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 (롬 16:27; 엡 3:21; 벧전 4:11) 또는 상대방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아멘”을 사용하기도 했다. (롬 15:33; 히 13:20, 21) “아멘”은 앞서 나온 표현에 필자가 진심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계 1:7; 22:20.
아멘: 롬 1:25 연구 노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