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2:1-30

22  “부형 여러분, 이제 내 변론을 들어 보십시오.”+  그들은 바울이 자기들에게 히브리어로 연설하는 것을 듣고 더욱 잠잠해졌다. 그러자 그가 말했다.  “나는 길리기아의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유대인이지만,+ 이 도시에서 가말리엘의+ 발치에서 교육받고 조상의 율법을 엄격하게 가르침받았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여러분 모두가 그렇듯이 하느님에 대해 열심이었습니다.+  나는 이 ‘길’을 따르는 사람들을 박해하여 죽이기까지 했으며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묶어 감옥에 넘겨주었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의 총회도 그 사실을 증언할 수 있습니다. 나는 또한 그들에게서 다마스쿠스에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는 편지들을 받아 길을 떠났습니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데려다가 처벌받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정오 무렵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주위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땅에 쓰러졌고, ‘사울, 사울,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말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나는 ‘주여, 누구십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분은 ‘나는 네가 박해하고 있는 나사렛 사람 예수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은 보았지만, 내게 말씀하시는 분의 음성은 듣지 못했습니다.+ 10  그때에 나는 ‘주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주께서는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그러면 거기서 네가 하도록 정해진 모든 일에 대해 듣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11  그러나 나는 그 빛의 영광 때문에 아무것도 볼 수가 없어서, 나와 함께 있던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 12  거기에 아나니아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그곳에 사는 모든 유대인에게 좋은 평판을 얻고 있고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이었습니다. 13  그가 나를 찾아와 내 곁에 서서, ‘사울 형제, 다시 보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 순간 나는 시력을 되찾아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14  그가 말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 당신을 선택하여 자신의 뜻을 알게 하셨고, 또 의로운 분을 보고+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습니다. 15  당신은 보고 들은 일들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6  그러니 지체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일어나 침례를 받고, 그분의 이름을 불러+ 당신의 죄를 씻어 버리십시오.’+ 17  내가 예루살렘에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무아지경에 빠져 18  그분을 보았는데, 그분이 나에게 ‘서둘러서 예루살렘을 속히 떠나라.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너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9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주여, 제가 회당마다 다니며 주를 믿는 사람들을 투옥하고 매질했던 것을 그들이 잘 압니다.+ 20  또한 주의 증인 스데반이 피를 흘릴 때에 저도 곁에 서서 좋게 여기고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겉옷을 지켜 주었습니다.’+ 21  그러나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가거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 사람들에게 보낼 것이다.’”+ 22  그들은 여기까지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소리를 높여 말했다. “저런 자는 이 땅에서 없애 버려야 한다!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 23  그들이 외치며 겉옷을 내던지고 공중에 흙먼지를 날리자+ 24  부대장은 바울을 병영으로 데리고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들이 바울에게 그렇게 소리 지르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려고 그를 채찍질하여 심문하라고 말했다. 25  그들이 채찍질하려고 그의 몸을 폈을 때에, 바울이 거기 서 있는 장교에게 말했다. “로마인을 유죄 판결도 내리지 않은 채* 채찍질해도 됩니까?”+ 26  장교는 이 말을 듣고 부대장에게 가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 사람은 로마인입니다” 하고 보고했다. 27  부대장이 바울에게 와서 물었다. “말해 보시오. 당신이 로마인이오?” 그는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28  부대장이 “나는 많은 돈을 들여서 이 시민권을 샀소” 하고 말하자, 바울은 “나는 태어날 때부터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29  그러자 그를 고문하려던 사람들이 즉시 그에게서 물러났다. 부대장은 그가 로마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를 쇠사슬로 묶었던 일 때문에 두려워했다.+ 30  이튿날, 부대장은 그가 왜 유대인들에게 고발당하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보려고 그를 풀어 준 뒤 명령을 내려 수제사장들과 온 산헤드린을 소집했다. 그리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 그들 가운데 세웠다.+

각주

또는 “재판도 하지 않고”.

연구 노트

히브리어: 영감받은 성경 필자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사용한 언어를 가리켜 “히브리어”라고 불렀다. (요 19:13, 17, 20; 행 21:40; 22:2; 계 9:11; 16:16) 또한 부활되어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께서 타르수스의 사울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언어도 “히브리어”라고 언급한다. (행 26:14, 15) 행 6:1에서는 “히브리어를 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스어를 하는 유대인들”을 구별하여 언급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들에서 “히브리어”라고 번역된 표현이 “아람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표현이 실제로 히브리어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의사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히브리어로” 연설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바울의 연설을 듣던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된 모세 율법을 연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사해 문서를 구성하는 많은 단편과 사본들 가운데 대다수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처럼 많은 성경 기록물과 성경 이외의 기록물이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시 히브리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아람어로 된 단편들도 일부 발견된 점으로 보아 두 가지 언어가 모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경 필자들이 “히브리어”라는 표현을 아람어나 시리아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 같다. (행 21:40; 22:2. 행 26:14 비교) 일찍이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아람어”와 “유대인의 언어”를 구분하여 언급했다. (왕하 18:26) 또한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왕하 18:26의 내용을 이야기할 때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별개의 언어로 언급했다.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X, 8 [i, 2]) 히브리어에 아람어와 상당히 비슷한 단어들이 있으며 아람어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단어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필자들이 아람어를 가리켜 히브리어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히브리어로: 요 5:2 연구 노트 참조.

가말리엘: 사도행전에서 이 구절과 행 22:3에 두 번 언급되는 율법 교사. 그는 세속 문헌에서 가말리엘 장로로 알려진 사람과 동일한 인물로 여겨진다. 가말리엘은 일반적으로 힐렐 장로의 손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아들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힐렐은 바리새교에서 좀 더 관용적인 학파를 창시한 사람이었다. 가말리엘은 최초로 “랍반”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를 받은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처럼 크게 존경받았던 그는 많은 바리새인의 아들들을 가르침으로 당시 유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타르수스의 사울도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중 하나였다. (행 22:3; 23:6; 26:4, 5; 갈 1:13, 14) 가말리엘은 율법과 전통을 비교적 포용력 있게 해석한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예를 들어 그는 파렴치한 남편으로부터 아내를 보호하고 도리에 어긋나는 나쁜 행동을 일삼는 자녀로부터 과부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가난한 유대인들에게 이삭을 주울 권리가 있는 것처럼 가난한 이방인들에게도 그런 권리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가말리엘은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런 관용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행 5:35-39) 하지만 랍비 저술물들을 살펴보면 가말리엘이 성경보다 랍비의 전통을 더 중시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볼 때, 가말리엘의 가르침은 당시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이나 그 이전 시대에 살았던 랍비들 대다수의 가르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마 15:3-9; 딤후 3:16, 17. 용어 설명 “바리새인; 바리새파”; “산헤드린” 참조.

가말리엘: 사도행전에서 이 구절과 행 5:34에 두 번 언급되는 율법 교사.—행 5:34 연구 노트 참조.

산헤드린 회의실: 또는 “산헤드린”. 산헤드린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최고 법원이었다. “산헤드린 회의실” 또는 “산헤드린”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시네드리온)는 문자적으로 “함께 앉음”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회의나 모임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용어였지만, 이스라엘에서는 종교적인 사법 기관이나 법정을 가리키기도 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그 법정을 구성하는 사람들이나 법정이 열리는 건물 또는 장소를 가리킬 수도 있다.—마 5:22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산헤드린” 참조. 또한 산헤드린 회의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를 보려면 부록 나12 참조.

장로의 총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리온프레스비테로스(직역하면 “연로자”)와 어근이 같은 단어이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주로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눅 15:25에 나오는 “큰아들”과 행 2:17에 나오는 “노인”의 경우처럼 나이와 관련이 있을 때도 있지만,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절에서 ‘장로의 회’는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산헤드린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산헤드린은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이 세 부류의 사람들은 흔히 함께 언급된다.—마 16:21; 27:41; 막 8:31; 11:27; 14:43, 53; 15:1; 눅 9:22; 20:1. 눅 22:66 연구 노트 참조.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고 나중에는 그분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별칭. (행 24:5) 유대인들 중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그 이름에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 주는 표현을 덧붙여 사용했다. 그처럼 구별시켜 주는 표현으로 출신지를 언급하는 것은 성경 시대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삼하 3:2, 3; 17:27; 23:25-39; 나 1:1; 행 13:1; 21:29)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갈릴리 나사렛에서 보내셨으므로, 그분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셨다. (막 1:23, 24; 10:46, 47; 14:66-69; 16:5, 6; 눅 24:13-19; 요 18:1-7) 예수 자신도 그 이름을 받아들이고 사용하셨다. (요 18:5-8; 행 22:6-8) 빌라도가 형주 위에 붙인 명패에는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요 19:19, 20)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에도 사도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자주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렀다.—행 2:22; 3:6; 4:10; 6:14; 10:38; 26:9. 또한 마 2:23 연구 노트 참조.

나사렛 사람: 막 10:47 연구 노트 참조.

음성 같은 소리는 들리는데: 행 22:6-11에서 바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겪었던 일을 직접 설명한다. 그 기록과 이 구절을 비교해 보면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두 기록 모두에 그리스어 포네가 사용되었지만 문법적 형태가 서로 다르다. 그리스어 포네는 “소리”로 번역할 수도 있고 “음성”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는 포네의 속격이 사용되었으므로 “음성 같은 소리”로 번역되었다. (행 22:9에서는 포네의 대격이 사용되어 “음성”으로 번역되었다.) 따라서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음성 같은 소리는 들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바울이 들은 음성을 듣지 못했던 것이다.—행 26:14. 행 22:9 연구 노트 참조.

음성은 듣지 못했습니다: 또는 “음성을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행 9:3-9에서 누가는 바울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겪었던 일을 설명한다. 그 기록과 이 구절을 비교해 보면 당시 상황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행 9:7 연구 노트에서 알려 주듯이,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은 “음성 같은 소리”는 들었지만 이해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그러한 의미에서 그들은 바울이 들은 음성을 듣지 못했다. 행 22:7에서도 “듣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이 구절(행 22:9)에서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행 22:7에서 바울은 자신이 음성을 듣고 이해했다는 의미로 ‘음성이 들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바울과 함께 가던 사람들은 바울에게 전달된 소식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쩌면 소리가 웅웅거리거나 불분명하게 들렸기 때문일 수 있다. 바울과 함께 있던 사람들이 “음성을 듣지 못했다”는 것은 그런 의미인 것 같다.—“듣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가 “알아듣다; 이해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된 막 4:33; 고전 14:2 비교.

다시 보십시오!: 직역하면 “쳐다보십시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기본적으로 “시선을 위로 향하다”를 의미하지만 (마 14:19; 눅 19:5) 처음으로 보게 되거나 (요 9:11, 15, 18) 시력을 회복하는 (막 10:52; 눅 18:42; 행 9:12)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그분의 이름을 불러 당신의 죄를 씻어 버리십시오: 또는 “당신의 죄를 씻어 버리고 그분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침례에 사용되는 물 자체가 죄를 씻어 내는 것은 아니다. 죄를 씻어 버리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일을 통해 가능하다. 예수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그분께 믿음을 두고 그리스도인에게 요구되는 행동을 통해 그 믿음을 나타내는 것을 의미한다.—행 10:43; 약 2:14, 18. 롬 10:13 연구 노트 참조.

무아지경: 그리스어 엑스타시스(“밖으로”를 의미하는 과 “서 있는”을 의미하는 스타시스가 결합한 단어)는 놀라움이나 경이감 때문에, 또는 하느님에게서 온 환상 때문에 일반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기쁘다”(막 5:42), “크게 놀라다”(막 16:8; 눅 5:26)로 번역되었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때때로 성령은 사람이 깊이 몰입해 있는 상태나 잠든 듯한 상태에 있는 동안 하느님의 목적에 대한 환상이나 영상이 정신에 떠오르게 했던 것 같다. 무아지경에 빠지면 주변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환상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행 22:17 연구 노트 참조.

무아지경에 빠져: 여기서 “무아지경”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엑스타시스에 대해 알아보려면, 행 10:10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4에 J14, 17, 22로 표기됨)에는 이 부분이 “여호와의 손이 내 위에 있어서”로 되어 있다. 또 한 번역판(J18로 표기됨)에는 “여호와의 영이 나를 감싸 주어”로 되어 있다.

나의 증인: 예수의 초기 제자들은 충실한 유대인으로서 이미 여호와의 증인이었으며 여호와만이 유일하신 참하느님이심을 증언한 사람들이었다. (사 43:10-12; 44:8) 하지만 이제 제자들은 여호와의 증인만 아니라 예수의 증인도 되어야 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목적의 새로운 부면, 즉 메시아 왕국을 통해 여호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는 일에서 예수께서 수행하시는 중요한 역할을 알려야 했다. 사도행전에는 “증인”(마르티스), “증언하다; 증거하다”(마르티레오), “철저히 증거하다”(디아마르티로마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들과 그와 어근이 같은 단어들이 성경에서 요한복음 다음으로 많이 나온다. (요 1:7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와 예수의 증인이 되어 하느님의 목적에 관해 철저히 증거한다는 사상은 사도행전 전반에 흐르는 주제이다. 제자들이 증거해야 했던 하느님의 목적에는 그분의 왕국과 예수의 중요한 역할이 포함되었다. (행 2:32, 40; 3:15; 4:33; 5:32; 8:25; 10:39; 13:31; 18:5; 20:21, 24; 22:20; 23:11; 26:16; 28:23) 1세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확증함으로 예수에 대해 증언했다. (행 1:21, 22; 10:40, 41)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선포함으로 예수에 대해 증언했다.—행 22:15. 요 18:37 연구 노트 참조.

주의 증인: “증인”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마르티스는 어떤 행동이나 사건을 목격한 사람을 가리킨다. 1세기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은 그러한 일들이 실제로 있었다는 점을 확증함으로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었다. (행 1:21, 22; 10:40, 41) 나중에 예수를 믿게 된 사람들은 그분의 삶과 죽음과 부활이 갖는 중요한 의미를 선포함으로 예수에 대해 증언할 수 있었다. (행 22:15) 바울은 예수에게 이야기할 때 바로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을 “주의 증인”이라고 언급했다. 이전에 스데반은 산헤드린 앞에서 예수에 대해 강력한 증언을 했다. 또한 스데반은 하늘로 돌아가신 예수께서 시 110:1에 예언된 대로 하느님의 오른편에 서 계신 것을 특별한 환상 가운데서 보고, 그에 대해 처음으로 증언한 사람이었다. (행 7:55, 56) 그리스도인이 증언 곧 증거 활동을 하는 데는 종종 반대, 체포, 구타 심지어 죽음이 따르기도 했다. 스데반이나 야고보나 그 밖의 사람들이 그런 일을 겪었다. 따라서 후에 그리스어 마르티스는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증언하는 사람, 순교자” 즉 믿음을 저버리기보다는 죽음을 택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데반은 그리스도에 대해 증언한다는 이유로 피를 흘린 최초의 그리스도인 순교자였다.—행 1:8 연구 노트 참조.

군대 대장: 그리스어 킬리아르코스(천인대장)는 문자적으로 “1000명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로마의 군대 지휘관인 군사 호민관을 가리킨다. 로마의 각 군단에는 여섯 명의 군사 호민관이 있었다. 하지만 한 군단을 여섯 개의 부대로 나눈 것이 아니라, 각 군사 호민관이 군단 전체를 6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지휘했다. 이러한 지휘관들은 백인대장을 지명하고 임명하는 권한을 포함하여 많은 권한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 그리스어 단어는 고위 장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할 때 로마의 군대 대장 한 명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부대장: 그리스어 킬리아르코스(천인대장)는 문자적으로 “1000명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로마의 군대 지휘관인 군사 호민관을 가리킨다. (요 18:12 연구 노트 참조) 기원 56년경에 예루살렘 수비대의 사령관은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였다. (행 23:22, 26) 행 21장부터 24장에서 알려 주듯이, 그는 거리의 폭도로부터 그리고 소란을 일으킨 산헤드린으로부터 바울을 구출했으며 바울을 비밀리에 카이사레아로 호송할 때 총독 펠릭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우리가 로마인인데: 자신들이 로마 시민이라는 뜻으로 말한 것이다. 바울뿐만 아니라 실라도 로마 시민이었던 것 같다. 로마법에 따르면, 시민에게는 언제나 적절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었다.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시민을 결코 공개적으로 처벌해서는 안 되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특정한 권리와 혜택을 누렸다. 로마 시민은 속주의 법이 아니라 로마법의 적용을 받았다. 고발을 당했을 때 본인이 동의하면 지방 법에 따라 재판을 받을 수 있었지만, 그런 경우에도 로마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의 경우에는 황제에게 상소할 권리도 있었다. 사도 바울은 로마 제국 전역을 두루 다니며 전파했다. 성경에는 그가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가 세 번 나온다. 그중 첫 번째가 이 구절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는 빌립보의 행정관들에게 자신을 매질한 것이 자신의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고 말했다.—다른 두 경우에 대해 알아보려면, 행 22:25; 25:11 연구 노트 참조.

저는 카이사르에게 상소합니다!: 성경에는 바울이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세 번째이다. (다른 두 경우에 대해 알아보려면, 행 16:37; 22:25 연구 노트 참조) 이처럼 카이사르에게 상소하는 일은 판결이 내려진 후에도 할 수 있고 재판 도중에도 언제든 할 수 있었다. 페스투스는 이 사건에 대한 판결을 직접 내리고 싶어 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으며,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받을 경우 공정한 판결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따라서 바울은 로마 제국의 최고 법정에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정식으로 청원한 것이다. 도둑이나 해적이나 폭동을 일으키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사람 같은 경우에는 상소를 제기해도 기각될 수 있었던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이유에서 페스투스는 상소를 받아들이기 전에 “고문단”과 상의했을 것이다. (행 25:12) 그 후 헤롯 아그리파 2세가 방문했을 때 바울을 심문한 것은, 페스투스가 바울의 사건을 “아우구스투스” 네로에게 보내면서 제출할 더 명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행 25:12-27; 26:32; 28:19) 바울이 상소한 것은 그가 이전에 말한 대로 로마에 가겠다는 뜻을 이루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행 19:21) 예수께서 바울에게 하신 예언적 약속과 후에 천사가 그에게 전해 준 소식은 이 일에 하느님의 인도가 있었음을 보여 준다.—행 23:11; 27:23, 24.

장교: 또는 “백인대장”. 백인대장은 약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로마군 지휘관이었다.

로마인: 로마 시민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바울이 로마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행사한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두 번째이다. 로마 당국은 대개 유대인들의 내정에 거의 간섭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울의 경우에 그들이 관여한 이유는 바울이 성전에 나타났을 때 소동이 일어났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가 로마 시민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제국 전역에서 특정한 혜택을 누렸다. 예를 들어, 유죄 판결을 받지 않은 로마인을 결박하거나 구타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노예들이나 그러한 취급을 당하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다른 두 경우에 대해 알아보려면, 행 16:37; 25:11 연구 노트 참조.

이 시민권을 샀소: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듯이, 로마 시민권을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경우도 있었다. 바울이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에게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시민권을 갖고 있었다고 말한 것을 볼 때, 분명 바울의 남자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시민권을 획득했을 것이다.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한 개인 또는 도시나 지역 전체의 자유민들이 황제로부터 시민권을 하사받는 경우도 있었다. 로마 시민에게 돈을 주고 자유를 산 노예나 로마 시민이 자유롭게 해 준 노예도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다. 로마 군대의 보조군에서 일정 기간 복무하고 제대한 사람도 시민권을 받았다. 또한 조상으로부터 시민권을 물려받기도 했다. 기원 1세기에는 유대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속주민에게 로마 시민권이 주어진 것은 기원 3세기에 이르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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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과 다마스쿠스
사울과 다마스쿠스

기원 1세기에 다마스쿠스 도시는 이 평면도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 도시는 교역의 중심지였으며 인근의 바라다강(왕하 5:12에 언급된 아바나강)에서 흘러온 물 덕분에 이 도시 주변에는 오아시스 같은 지역이 형성되어 있었다. 다마스쿠스에는 회당이 여러 개 있었다. 사울은 “그 ‘길’에 속한 사람” 즉 예수의 제자를 찾아내면 체포할 의도로 다마스쿠스에 갔다. (행 9:2; 19:9, 23; 22:4; 24:22) 하지만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께서 사울에게 나타나셨다. 그 후에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서 ‘곧은길’이라는 거리에 사는 유다라는 사람의 집에 한동안 머물렀다. (행 9:11) 예수께서는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유다의 집에 가서 사울이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라고 지시하셨다. 그리고 사울은 침례를 받았다. 유대인 그리스도인을 체포하려던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것이다. 그는 다마스쿠스의 회당에서 좋은 소식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마스쿠스로 돌아왔다. 사울은 기원 36년경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것 같다.—행 9:1-6, 19-22; 갈 1:16, 17.

가. 다마스쿠스

1.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2. ‘곧은길’이라는 거리

3. 아고라

4. 주피터 신전

5. 극장

6. 음악 공연장 (?)

나. 예루살렘

산헤드린
산헤드린

유대인의 최고 법원인 대(大)산헤드린은 71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산헤드린은 예루살렘에 있었다. (용어 설명 “산헤드린” 참조) 미슈나에 따르면, 산헤드린 법정에는 반원형으로 세 줄의 좌석이 배열되어 있었고 두 명의 서기가 참석하여 법원의 판결을 기록했다. 이 삽화에 묘사된 일부 특징은 1세기의 의회당으로 추정되는 예루살렘의 한 건물을 기초로 그려진 것이다.—부록 나12,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 지도 참조.

1. 대제사장

2. 산헤드린 성원들

3. 피고

4. 서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