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40

21  우리는 아쉬움 속에 그들과 작별한 뒤, 배를 타고 곧장 코스로 갔다. 이튿날 로도스에 들렀다가 거기서 파타라로 갔다.  그리고 페니키아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 그 배를 타고 떠났다.  키프로스 섬이 보이자 그 섬을 왼편에 두고 시리아로 나아가 티레에 도착했다. 거기서 그 배는 화물을 내리기로 되어 있었다.  우리는 제자들을 찾아내어 거기서 7일 동안 머물렀다. 그들은 영을 통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거듭 말했다.+  그곳에 머물 날이 다 차자 우리는 그곳을 떠나 여행길에 올랐다. 그들은 모두 여자들과 아이들과 함께 도시 밖까지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우리는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한 다음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우리는 배에 올랐고 그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티레를 떠나 항해를 마치고 프톨레마이스에 도착했다. 거기서 형제들에게 인사하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지냈다.  이튿날 그곳을 떠나 카이사레아에 이르렀으며, 일곱 사람 중의 하나인+ 복음 전파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머물렀다.  그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딸 넷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 10  우리가 그곳에 여러 날 머무른 후에 아가보라는+ 예언자가 유대에서 내려왔다. 11  그가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허리띠를 가져다가 자기 손발을 묶고 이렇게 말했다.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이 허리띠의 주인을 이와 같이 묶어+ 이방 사람들의 손에 넘겨줄 것이다’라고 성령이 말합니다.”+ 12  이 말을 듣고 우리는 그곳 사람들과 함께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간곡히 권했다. 13  그러자 바울이 말했다. “왜 여러분은 울며 내 결심을 약하게 합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묶이는 것뿐만 아니라 죽을 각오도 되어 있습니다.”+ 14  바울이 우리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자, 우리는 “여호와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고는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15  그렇게 여러 날이 지난 뒤 우리는 여행 준비를 하여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떠났다. 16  카이사레아의 제자 몇 사람도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가 묵을 집으로 데려다 주었다. 그 집은 초기 제자인 키프로스 사람 므나손의 집이었다. 17  우리가 예루살렘에 이르자 형제들은 기뻐하며 우리를 환영해 주었다. 18  이튿날 바울은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 갔는데 장로들이 모두 와 있었다.* 19  그는 그들에게 인사한 다음 자기의 봉사의 직무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하신 일들을 자세히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20  그들은 이 말을 들은 후에 하느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러면서도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형제여, 보다시피 유대인 가운데 신자가 된 사람들이 수만 명이나 있으며, 그들은 모두 율법에 열심입니다.+ 21  그런데 그들이 당신에 대한 소문을 들었는데, 당신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 있는 모든 유대인에게 모세를 저버리라고 가르치면서 자녀들에게 할례를 베풀지도 말고 관습을 따르지도 말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22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들은 당신이 왔다는 말을 틀림없이 듣게 될 것입니다. 23  그러니 우리가 일러 주는 대로 하십시오. 우리 가운데 서원한 사람이 네 명 있습니다. 24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과 함께 정결 의식을 행하고, 그들에게 비용을 대 주어 그들의 머리를 밀게 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사람은 당신에 대해 들은 소문이 아무것도 아니며, 당신도 율법을 지키며 바르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25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신자가 된 이들에게는, 우상에게 바친 것과+ 피와+ 목 졸라 죽인 것과+ 성적 부도덕으로부터+ 떠나 있어야 한다는 우리의 결정을 써 보낸 바 있습니다.” 26  그래서 바울은 이튿날 그 사람들을 데리고 가서 그들과 함께 정결 의식을 행했다.+ 그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정결 의식 기간이 끝나는 때와 그들 각자를 위해 제물을 바칠 때가 언제인지를 알렸다. 27  그 7일이 끝나 갈 무렵에, 아시아에서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그를 보고 모든 무리를 선동하며, 그를 붙잡고 28  외쳤다. “이스라엘 사람들이여, 도와주십시오! 이 사람은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거슬러 가르치는 자입니다. 게다가 그리스인들까지 성전에 데리고 들어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습니다.”+ 29  그들은 전에 에베소 사람인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도시 안에 있는 것을 보고 바울이 그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고 생각한 것이다. 30  그래서 온 도시가 소란스러워졌고 사람들이 함께 달려와 바울을 붙잡아 성전 밖으로 끌어냈다. 그러자 곧 문들이 닫혔다. 31  그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이 혼란에 빠져 있다는 보고가 부대장에게 전달되었다. 32  그는 즉시 군인들과 장교들을 데리고 그들에게 달려 내려갔다. 그들은 부대장과 군인들을 보고 바울을 때리던 것을 멈추었다. 33  그때에 부대장이 가까이 와서 그를 붙잡고 쇠사슬 두 개로 묶으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그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했는지 물었다. 34  그러나 무리 중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외치고 어떤 사람들은 저렇게 외쳤다. 부대장은 그 소란 때문에 아무것도 확실히 알아낼 수 없었으므로 바울을 병영으로 데려가라고 명령했다. 35  바울이 계단에 이르렀을 때에, 무리가 난폭하게 굴어서 군인들이 그를 들어 옮겨야 했다. 36  많은 사람이 쫓아오면서 “저자를 없애 버려라!”* 하고 외쳤던 것이다. 37  병영으로 끌려 들어갈 즈음에 바울이 부대장에게 말했다.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대장이 말했다. “그리스어를 할 줄 아시오? 38  그러면 당신은 혹시 얼마 전에 폭동을 일으키고 자객* 4000명을 이끌고 광야로 나갔던 이집트인이 아니오?” 39  바울이 대답했다.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의 잘 알려진 도시 타르수스의+ 시민입니다. 그러니 부탁합니다. 내가 저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40  그가 허락하자, 바울은 계단에 서서 사람들에게 손짓을 했다. 아주 잠잠해지자, 그는 히브리어로+ 이렇게 연설했다.

각주

또는 “가만히 있었다.” 직역하면 “잠잠히 있었다.”
또는 “거기에 왔다.”
또는 “죽여라!”
또는 “단검을 지닌 사람”.

연구 노트

왼편: 또는 “좌현”. 배는 티레를 향해 동쪽으로 항해하면서 키프로스 섬의 남서쪽 끝을 지나쳐 간 것 같다. 바울은 약 9년 전에 바나바와 요한 마가와 함께 1차 선교 여행을 할 때 키프로스에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주술사 엘루마를 만났는데 엘루마는 그들의 전파 활동을 반대했다. (행 13:4-12) 바울은 키프로스를 다시 보고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서 격려를 받아 앞으로 겪게 될 일을 인내할 힘을 얻었을 수 있다.

좋은 소식: 일부 성경에서 “복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유앙겔리온이 처음 나오는 곳. 관련된 그리스어 표현인 유앙겔리스테스는 “복음 전파자”로 번역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행 21:8; 엡 4:11, 각주; 딤후 4:5, 각주.

복음 전파자: “복음 전파자”로 번역된 그리스어 유앙겔리스테스는 기본적으로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마 4:23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좋은 소식을 전할 사명을 받았지만 (마 24:14; 28:19, 20; 행 5:42; 8:4; 롬 10:9, 10) 그리스어 유앙겔리스테스가 나오는 세 성구의 문맥을 살펴보면 “복음 전파자”라는 표현이 특별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행 21:8; 엡 4:11; 각주; 딤후 4:5; 각주) 예를 들어 그 단어는 좋은 소식이 전파된 적이 없는 새로운 지역을 개척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 “선교인”으로 번역될 수 있다. 오순절 이후에 빌립은 사마리아시로 가서 전파 활동을 개척했으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또한 그는 천사의 인도를 받아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파했고 그 결과 그 환관이 침례를 받았다. 그 후 빌립은 영의 인도를 받아 아스돗에 가서 전파했으며, 카이사레아까지 가는 길에 있는 모든 도시에 좋은 소식을 전했다. (행 8:5, 12, 14, 26-40) 그로부터 약 20년이 지나 이 성구(행 21:8)에 나오는 일이 일어난 때에도 빌립은 여전히 “복음 전파자”로 언급된다.

예언을 하고: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프로페튜오는 문자적으로 “말하다”를 의미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에게서 온 소식을 알린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미래를 예언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그것이 기본 의미는 아니다. 이 단어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아 어떤 일을 알아내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마 26:68; 막 14:65; 눅 22:64 연구 노트 참조) 이 문맥에서 일부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 예언을 했다. 여호와께서 과거에 하셨고 앞으로 하실 “장엄한 일들”에 관해 선포함으로 가장 높으신 분의 대변자 역할을 한 것이다. (행 2:11) “예언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에도 비슷한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출 7:1에서는 아론을 모세의 “예언자”로 언급한다. 이것은 아론이 미래의 일을 예언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세의 대변자라는 의미였다.

결혼하지 않은 딸: 직역하면 “딸들 처녀들”. 성경에서 종종 “처녀”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파르테노스는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사람”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남자든 여자든 독신인 사람은 모두 가리킬 수 있다. (마 25:1-12; 눅 1:27; 고전 7:25, 36-38) 이 문맥에서는 빌립의 네 딸이 결혼한 적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예언을 하는: 예언자 요엘은 남자들과 여자들이 예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욜 2:28, 29) 성경에서 “예언하다”로 번역되는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온 소식을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들에 반드시 미래를 예언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다. (행 2:17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말씀에 기록된 예언의 성취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전 12:4, 10에 언급된 “예언하는 일”은 새로 형성된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부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영에 의한 기적의 선물들 가운데 하나였다. 예언하는 기적의 선물을 받은 사람들은 아가보처럼 미래의 일을 예언할 수 있었다. (행 11:27, 28) 여호와로부터 이 기적의 선물을 받은 여자들은 분명 회중 내의 남자들의 머리 직분에 계속 복종함으로 여호와께 깊은 존중심을 나타냈을 것이다.—고전 11:3-5.

내 결심을 약하게: 또는 “내 마음을 약하게”. 이 표현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부서뜨리다; 조각내다”를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는 “마음”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와 함께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호와의 뜻: “뜻”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텔레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의 뜻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마 7:21; 12:50; 막 3:35; 롬 12:2; 고전 1:1; 히 10:36; 벧전 2:15; 4:2; 요1 2:17) 「칠십인역」에서 그리스어 텔레마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들을 번역하는 데 자주 사용되며, 그 히브리어 표현들이 나오는 구절들의 문맥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시 40:8, 9 [39:9, 10, LXX]; 103:21 [102:21, LXX]; 143:9-11 [142:9-11, LXX]; 사 44:24, 28; 렘 9:24 [9:23, LXX]; 말 1:10) 이 구절(행 21:14)에 언급된 것과 비슷한 사상을 예수께서도 표현하신 적이 있다. 마 26:42에 따르면 그분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셨다.—부록 다3 소개; 행 21:14 참조.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 행 12:17(연구 노트 참조)과 갈 1:19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했을 것이다.—약 1:1.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인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 같다. 마리아의 친아들 네 명 즉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 가운데 첫 번째로 이름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그는 예수 다음으로 나이가 많았을 것이다. (마 13:55; 막 6:3; 요 7:5) 야고보는 기원 33년 오순절에 이스라엘 이외의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찾아온 유대인 수천 명이 좋은 소식에 반응을 보여 침례받는 것을 직접 보았다. (행 1:14; 2:1, 41) 이 구절에서 베드로가 제자들에게 ‘야고보에게 알리라’고 말한 것을 볼 때 야고보가 예루살렘 회중에서 인도하는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야고보는 행 15:13; 21:18; 고전 15:7; 갈 1:19(“주의 형제”라는 표현과 함께 언급됨); 2:9, 12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했을 것이다.—약 1:1; 유 1.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인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야고보는 행 12:17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 (마 13:55; 행 12:17 연구 노트 참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이 할례 문제를 다룰 때 야고보가 그 모임을 주재한 것 같다. (행 15:1, 2) 바울은 아마도 그 일을 염두에 두고 야고보와 게바(베드로)와 요한이 예루살렘 회중에서 “기둥같이 여겨지는 사람들”이라고 언급했을 것이다.—갈 2:1-9.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여기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바울과 바나바와 시리아 안티오크의 몇몇 형제들은 할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갔다. 여기서 사도들과 함께 예루살렘 회중의 장로들이 언급되어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육적 이스라엘에서 일부 장로들이 나라 전체를 위해 일했던 것처럼, 이 장로들도 사도들과 함께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를 위해 중앙장로회로 일했다. 이 점을 볼 때 처음에는 중앙장로회가 열두 사도만으로 구성되어 있었지만 후에 그 수가 늘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행 1:21, 22, 26. 마 16:21; 행 11:30 연구 노트 참조.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장로들: 행 15:2 연구 노트에서 알려 주듯이, 이스라엘 나라의 일부 장로들은 나라 전체를 위해 책임 있는 위치에서 일했다. 그와 비슷하게, 예루살렘의 이 장로들도 사도들과 함께 1세기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를 위해 중앙장로회로 일했다. 이 사도들과 장로들은 할례 문제를 검토하여 결정을 내린 뒤에 그 결정을 회중들에 알렸으며, 회중들은 그 결정을 권위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인 야고보를 가리키는 것 같다. 이 야고보는 행 12:17; 15:13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다.—마 13:55; 행 12:17; 15:13 연구 노트 참조.

장로들이 모두: 행 15:2; 16:4 연구 노트 참조. 기원 56년에 있었던 이 모임과 관련된 기록에서는 사도들에 대한 언급이 없다. 성경은 그 이유를 알려 주지 않는다. 역사가 유세비우스(기원 260년경 출생)는 예루살렘이 멸망되기 전의 그 시기에 관해 이렇게 썼다. “살해 음모로 인해 끊임없는 위험에 처해 있던 남은 사도들은 어쩔 수 없이 유대 지역을 떠났다. 하지만 그들은 그리스도의 권능에 힘입어 모든 지역으로 여행하면서 그들의 소식을 가르쳤다.” (「유세비우스」 제3권 V, v. 2) 유세비우스의 말은 영감받은 기록은 아니지만 성경에서 알려 주는 점과 조화를 이룬다. 예를 들어, 기원 62년에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바빌론에 있었다. (벧전 5:13) 하지만 기원 56년에 예루살렘에서 이 모임이 열릴 때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그 자리에 있었다. 그는 바울과 “장로들이 모두” 참석한 이 모임을 주재했던 것 같다.

수만 명: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1만을 의미하는 단어의 복수형이다. 이 단어는 명시되지 않은 매우 큰 수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될 수 있다.

저버리라고: 직역하면 “배교하라고”. “배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동사 아피스테미에서 나온 말이다. 아피스테미는 문자적으로 “떨어져 서 있다”를 의미하며 문맥에 따라 “떠나다; 버리다”로 번역할 수 있다. (행 19:9; 딤후 2:19)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버림, 떠남, 반역”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과 살후 2:3에 두 번 나온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이 명사는 정치적 이탈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행 5:37에서는 이 단어의 동사형인 아피스테미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그 구절에서는 갈릴리 사람 유다가 “사람들을 끌어[아피스테미의 한 형태] 자기를 따르게” 했다고 알려 준다. 「칠십인역」창 14:4에서 그런 정치적 반역을 가리키는 데 동사 아피스테미를 사용했다. 또한 수 22:22; 대하 29:19; 렘 2:19에서 “반역”과 “불충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들을 번역할 때 명사 아포스타시아를 사용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주로 종교적인 이탈, 하느님께 드리는 참숭배와 봉사를 떠나는 것 즉 저버리는 것, 자신이 공언해 오던 것을 저버리는 것, 원칙이나 믿음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목 졸라 죽인 것: 또는 “피를 빼지 않고 죽인 것”. 여기서 멀리하라고 한 “목 졸라 죽인 것”에는 자연사한 동물이나 다른 동물에게 상처를 입고 죽은 동물도 포함될 것이다. 그러한 경우에는 피가 제대로 빠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출 22:31; 레 17:15; 신 14:21.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행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매춘,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용어 설명 참조.

목 졸라 죽인 것: 행 15:20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행 15:20 연구 노트 참조.

군대 대장: 그리스어 킬리아르코스(천인대장)는 문자적으로 “1000명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로마의 군대 지휘관인 군사 호민관을 가리킨다. 로마의 각 군단에는 여섯 명의 군사 호민관이 있었다. 하지만 한 군단을 여섯 개의 부대로 나눈 것이 아니라, 각 군사 호민관이 군단 전체를 6분의 1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지휘했다. 이러한 지휘관들은 백인대장을 지명하고 임명하는 권한을 포함하여 많은 권한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 그리스어 단어는 고위 장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군인들이 예수를 체포할 때 로마의 군대 대장 한 명도 그 자리에 있었다.

부대장: 그리스어 킬리아르코스(천인대장)는 문자적으로 “1000명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로마의 군대 지휘관인 군사 호민관을 가리킨다. (요 18:12 연구 노트 참조) 기원 56년경에 예루살렘 수비대의 사령관은 클라우디우스 리시아스였다. (행 23:22, 26) 행 21장부터 24장에서 알려 주듯이, 그는 거리의 폭도로부터 그리고 소란을 일으킨 산헤드린으로부터 바울을 구출했으며 바울을 비밀리에 카이사레아로 호송할 때 총독 펠릭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편지를 써 보내기도 했다.

장교들: 또는 “백인대장들”. 백인대장은 약 100명의 군인을 거느린 로마군 지휘관이었다.

병영: 예루살렘의 안토니아 망대 즉 요새에 있던 로마군의 막사를 가리킨다. 안토니아 요새는 성전 뜰의 북서쪽 모퉁이에 있었으며 성전 지역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 요새는 이전에 느헤미야가 건축한, 느 2:8에 언급된 “그 집의 ‘요새’”가 있던 부지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다. 헤롯 대왕은 이곳에 비용이 많이 드는 대규모 보수 공사를 했으며 그 요새를 확장했다. 헤롯은 로마의 장군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게 경의를 표하는 의미에서 이 요새에 안토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헤롯 시대 이전에는 이 요새가 주로 북쪽의 침입을 막기 위한 역할을 했다. 그 후에는 주로 유대인들을 감시하는 장소이자 성전 지역의 활동을 단속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이 요새는 성전 지역과 통로로 연결되어 있었다. (요세푸스,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XV, 424 [xi, 7]) 따라서 로마 수비대는 성전 지역으로 신속하게 들어갈 수 있었다. 군인들이 바울을 폭도에게서 구출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행 21:31, 32. 안토니아 요새의 위치를 보려면 부록 나11 참조.

히브리어: 영감받은 성경 필자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유대인들이 사용한 언어를 가리켜 “히브리어”라고 불렀다. (요 19:13, 17, 20; 행 21:40; 22:2; 계 9:11; 16:16) 또한 부활되어 영광스럽게 되신 예수께서 타르수스의 사울에게 말씀하실 때 사용하신 언어도 “히브리어”라고 언급한다. (행 26:14, 15) 행 6:1에서는 “히브리어를 하는 유대인들”과 “그리스어를 하는 유대인들”을 구별하여 언급한다. 일부 학자들은 이 구절들에서 “히브리어”라고 번역된 표현이 “아람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표현이 실제로 히브리어를 가리킨다고 생각할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다. 예를 들어, 의사 누가는 바울이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히브리어로” 연설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바울의 연설을 듣던 사람들은 히브리어로 된 모세 율법을 연구하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던 사람들이었다. 또한 사해 문서를 구성하는 많은 단편과 사본들 가운데 대다수는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다. 그처럼 많은 성경 기록물과 성경 이외의 기록물이 히브리어로 되어 있다는 사실은 당시 히브리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아람어로 된 단편들도 일부 발견된 점으로 보아 두 가지 언어가 모두 사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성경 필자들이 “히브리어”라는 표현을 아람어나 시리아어라는 의미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매우 적은 것 같다. (행 21:40; 22:2. 행 26:14 비교) 일찍이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아람어”와 “유대인의 언어”를 구분하여 언급했다. (왕하 18:26) 또한 1세기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왕하 18:26의 내용을 이야기할 때 “아람어”와 “히브리어”를 별개의 언어로 언급했다.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X, 8 [i, 2]) 히브리어에 아람어와 상당히 비슷한 단어들이 있으며 아람어에서 들어온 것으로 보이는 단어들도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필자들이 아람어를 가리켜 히브리어라고 할 이유는 없는 것 같다.

히브리어로: 요 5:2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복음 전파자 빌립의 활동
복음 전파자 빌립의 활동

성경에는 “복음 전파자 빌립”이 얼마나 열심히 활동했는지 보여 주는 몇몇 기록이 들어 있다. (행 21:8)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그리스어를 하는 제자들과 히브리어를 하는 제자들에게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맡은 ‘평판이 좋은 일곱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행 6:1-6) 스데반이 죽고 ‘사도들 외에는 모두 흩어지자’ 빌립은 사마리아로 가서 좋은 소식을 전하고 기적을 행했다. (행 8:1, 4-7) 후에 여호와의 천사는 빌립을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가는 광야 길로 보냈다. (행 8:26) 빌립은 그 길에서 에티오피아 환관을 만나 좋은 소식을 전했다. (행 8:27-38) 그 후 빌립은 여호와의 영의 인도를 받아 (행 8:39) 아스돗에서 카이사레아까지 가면서 해안 근처에 있는 도시들에서 계속 전파했다. (행 8:40) 여러 해 후에 누가와 바울은 카이사레아에 있는 빌립의 집에서 머물렀다. 당시 빌립에게는 “결혼하지 않은 딸 넷이 있었는데, 그들은 예언을 하는 사람들이었다.”—행 21:8, 9.

1. 예루살렘: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하다.—행 6:5

2. 사마리아: 좋은 소식을 전파하다.—행 8:5

3. 가자로 가는 광야 길: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성경에 관해 설명하고 침례를 주다.—행 8:26-39

4. 해안 지역: 모든 도시에 좋은 소식을 전하다.—행 8:40

5. 카이사레아: 바울을 자신의 집에 맞아들이다.—행 21:8, 9

타르수스의 로마 가도
타르수스의 로마 가도

사울(사도 바울)이 태어난 곳인 타르수스는 소아시아의 남동쪽 끝에 있으며 오늘날의 터키에 속하는 길리기아 지역의 주요 도시였다. (행 9:11; 22:3) 타르수스는 무역으로 번영을 누리던 큰 도시였다. 이 도시가 토로스산맥과 길리기아 관문(바위를 깎아 마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어 놓은 좁은 협곡)을 통과하는 동서 방향의 주요 육상 무역로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도시에는 키드누스강과 지중해를 연결하는 항구도 있었다.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던 타르수스에는 규모가 큰 유대인 공동체가 있었다. 타르수스는 키드누스강이 지중해로 흘러 들어가는 지점에서 약 16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진에 보이는 것은 오늘날 타르수스라고 불리는 도시에 남아 있는 고대 유적이다. 이 도시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비롯한 많은 유명한 인물들과 여러 황제들이 다녀갔다. 로마의 정치가이자 저술가인 키케로가 기원전 51년부터 50년까지 이 도시의 총독이었다. 또한 기원 1세기에 타르수스는 학문의 중심지로 잘 알려져 있었는데, 그리스의 지리학자 스트라보의 말에 의하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를 능가할 정도였다. 따라서 바울이 타르수스를 “잘 알려진 도시”로 언급한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행 2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