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1-28

18  그 후에 바울은 아테네를 떠나 고린도로 갔다.  그곳에서 폰투스 태생의 아굴라라는+ 유대인을 만났다. 아굴라는 클라우디우스가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자기 아내 브리스길라와 함께 최근에 이탈리아에서 온 사람이었다. 바울은 그들에게 갔는데,  직업이 같았기 때문에 그들의 집에 머물면서 함께 일을 했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다.  바울은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연설을 하며 유대인들과 그리스인들을 설득했다.  실라와+ 디모데가+ 마케도니아에서 내려오자, 바울은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유대인들에게 증거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했다.+  그러나 그들이 계속 반대하고 모욕적으로 말하자, 그는 옷을 털면서+ 그들에게 말했다.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깨끗합니다.+ 이제부터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가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 디디오 유스도라는 사람의 집에 들어갔다. 그는 하느님을 숭배하는 사람이었고 그의 집은 회당 옆에 있었다.  회당 책임자 그리스보는+ 온 집안과 함께 주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 말씀을 들은 많은 고린도 사람들이 믿고 침례를 받았다.  주께서 밤에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잠자코 있지 말고 계속 말하여라. 10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아무도 너를 공격하여 해치지 못할 것이다. 이 도시에는 내 백성이 많다.” 11  그래서 그는 1년 6개월 동안 그곳에 머물며 그들 가운데서 하느님의 말씀을 가르쳤다. 12  그런데 갈리오가 아카이아의 속주 총독으로 있을 때에, 유대인들이 바울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그를 재판석으로 끌고 가서 13  말했다. “이 사람은 법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하느님을 숭배하도록 사람들을 설득하고 있습니다.”+ 14  바울이 말하려고 하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말했다. “유대인 여러분, 이 일이 어떤 잘못이나 심각한 범죄와 관련된 것이라면 내가 당연히 여러분의 말을 참을성 있게 들어 주겠소. 15  그러나 이 일이 말과 명칭과 여러분의 법에 관한 논쟁이라면+ 여러분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나는 이런 일의 재판관이 되고 싶지 않소.” 16  그리고 그들을 재판석에서 쫓아냈다. 17  그러자 그들은 모두 회당 책임자 소스데네를+ 붙잡아 재판석 앞에서 때렸다. 그러나 갈리오는 그 일에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18  바울은 여러 날을 더 머무른 후에 형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시리아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났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도 그와 함께 떠났다. 바울은 서원한 것이 있어서 겐그레아에서+ 머리를 짧게 깎았다. 19  그들은 에베소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바울은 일행을 남겨 두고 회당에 들어가 유대인들과 토론*했다.+ 20  그들이 그에게 좀 더 머물러 달라고 계속 요청했지만, 그는 요청을 뿌리치고 21  작별 인사를 하면서 “여호와의 뜻이라면 여러분에게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 배를 타고 22  카이사레아로+ 내려갔다가, 올라가서 회중에게 인사하고 안티오크로 내려갔다.+ 23  그는 거기서 얼마 동안 지내다가 다시 떠나 갈라디아와 프리지아 지방을+ 두루 다니면서 모든 제자를 강하게 했다.+ 24  그런데 알렉산드리아 태생인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도착했다. 그는 언변이 좋고 성경에 정통한 사람이었다. 25  그는 여호와의 길을 가르침받은 사람인데, 영으로 타올라 예수에 관한 것들을 정확하게 말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요한의 침례만 알고 있었다.+ 26  그가 회당에서 담대하게 말하기 시작했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그의 말을 듣고 그를 데려다가 하느님의 길을 더욱 정확하게 설명해 주었다. 27  그가 아카이아로 건너가려고 했기 때문에, 형제들은 그곳의 제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그를 친절히 맞이하도록 권했다. 그는 그곳에 이르러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로 신자가 된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28  그가 공개적으로 그리고 열정적으로 유대인들이 그릇되다는 것을 철저히 증명하면서, 성경을 가지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각주

또는 “추리”.

연구 노트

아카이아: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아카이아는 그리스 남부에 있던 로마 속주를 가리킨다. 아카이아의 수도는 고린도였다. 기원전 27년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그리스에 있는 두 개의 속주인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재편성했다. 그때부터 아카이아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전체와 그리스 내륙 지역 일부를 가리키게 되었다. 아카이아 속주는 로마 원로원의 관할 아래 있었으며 속주 총독(프로콘술)이 수도인 고린도에서 다스렸다. (고후 1:1)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아카이아 속주의 다른 도시들로는 아테네와 겐그레아가 있다. (행 18:1, 18; 롬 16:1) 아카이아 속주와 북쪽의 마케도니아 속주는 종종 함께 언급된다.—행 19:21; 롬 15:26; 살전 1:7, 8. 부록 나13 참조.

고린도: 고대 그리스에서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도시 가운데 하나로, 현대 코린트(고린도)에서 남서쪽으로 5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었다. 고린도가 막대한 부를 누리고 중요한 도시로 여겨졌던 이유는 주로 그 도시가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시는 그리스 본토와 남쪽에 있는 펠로폰네소스반도를 연결하는 지협(좁고 잘록한 땅)에 자리 잡고 있었다. 고린도는 그리스 북부와 남부를 오가는 육상 무역의 요지였을 뿐 아니라 지중해 동쪽과 서쪽을 잇는 해상 교통의 요지이기도 했다. 그리스 바깥을 돌아 항해하는 것보다는 지협을 통해 육로나 해로로 이동하는 편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고린도는 로마의 원로원 관할 속주인 아카이아의 수도였다. 아카이아는 로마인들이 마케도니아를 제외한 그리스의 나머지 지역을 부르는 이름이었으며,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통치 때 로마의 원로원 관할 속주가 되었다. (행 18:12 연구 노트 참조) 고린도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았고 회당도 있었으며, 얼마의 그리스 사람들이 회당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다. (행 18:4) 고대 고린도에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는 점은 1세기 저술가 필론의 글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레카이움 항구 쪽으로 나 있는 문 근처에서 발견된 한 대리석 조각도 그 점을 뒷받침한다. 상인방인 것으로 보이는 그 조각에는 고대 그리스어로 “[시나]고게 헤브라[이온]”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는데, 그것은 “히브리 사람들의 회당”이라는 의미이다. 일부 학자들은 그 상인방 조각이 바울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더 나중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부록 나13 참조.

아굴라: 이 충실한 그리스도인 남자와 그의 충성스러운 아내 브리스길라(브리스가)는 바울의 “동료 일꾼들”로 언급된다. (롬 16:3) 이들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 원문에서 총 여섯 번 언급되며 (행 18:18, 26; 고전 16:19; 딤후 4:19) 항상 부부가 함께 언급된다.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은 브리스가의 지소형이다. 바울은 자신의 기록에서 브리스가라는 이름을 사용했고 누가는 브리스길라라는 이름을 사용했다. 로마식 이름은 그처럼 변형시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기원 49년이나 50년 초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을 때,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고린도로 갔다. 바울은 기원 50년 가을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자신과 직업이 같은 그들과 함께 천막 만드는 일을 했다.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는 바울이 고린도에 새로운 회중을 세울 때 도움을 주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아굴라는 소아시아 북부의 흑해 연안에 있는 폰투스 태생이었다.—부록 나13 참조.

천막을 만드는 것: 이 구절에서 바울과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직업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 그리스어는 스케노포이오스이다. 이 단어가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지(천막 만드는 사람인지, 장식용 직물을 짜는 사람인지, 밧줄을 만드는 사람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아마도 “천막 만드는 사람”을 가리킬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울은 길리기아의 타르수스 출신이었는데, 길리기아는 천막을 만드는 재료인 킬리키움이라는 염소 털 천으로 유명한 지역이었다. (행 21:39) 기원 1세기에 유대인 사회에서는 소년이 나중에 고등 교육을 받을 예정이라 해도 직업 교육을 받는 것이 영예로운 일로 여겨졌다. 따라서 바울은 어릴 때에 천막 만드는 기술을 배웠을 가능성이 있다. 천막 만드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킬리키움은 흔히 거칠고 뻣뻣해서 자르거나 바느질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연설을 하며: 또는 “사람들과 추리하며”. 그리스어 동사 디알레고마이는 “토론하다; 대화하다”로 정의된다. 이 단어는 교훈적인 연설을 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소통하는 것도 가리킬 수 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행 17:2, 17; 18:19; 19:8, 9; 20:7, 9에서도 사용되었다.

말씀을 전하는 일에 전념하면서: 또는 “말씀에 열렬히 몰두하면서”. 이 표현은 바울이 이 시점부터 전파 활동에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치기 시작했음을 보여 준다.

두 사람은 그들을 향해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마 10:14; 막 6:11; 눅 9:5에 기록된 예수의 지침대로 행동한 것이다. 당시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방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면 유대인의 영토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묻은 먼지를 부정하다고 여겨 털어 내곤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지침은 분명 그와는 다른 의미였던 것 같다. 먼지를 털어 버리는 행동은 하느님께서 가져오실 결과에 대해 제자들에게 책임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고린도에서 바울은 그와 비슷한 동작인 옷을 터는 행동을 하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깨끗합니다.”—행 18:6 연구 노트 참조.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십시오: 당시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방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면 유대인의 영토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묻은 먼지를 부정하다고 여겨 털어 내곤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분명 그와는 다른 의미로 제자들에게 이러한 지침을 주셨을 것이다. 이 행동은 제자들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그곳에 닥칠 결과에 대해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음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마 10:14과 막 6:11에도 나온다. 마가는 “그들에 대한 증거로”라는 말을 함께 사용한 반면, 누가는 그들에 대한 불리한 증거로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피시디아 안티오크에서 이 지침대로 행동했다. (행 13:51) 고린도에서 바울은 그와 비슷한 동작인 옷을 터는 행동을 하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깨끗합니다.”—행 18:6.

그의 피는 우리와 우리 자녀들에게 돌리시오: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그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지겠소”라는 의미이다.

나는 모든 사람의 피에 대해 깨끗합니다: 바울은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유혈죄가 없었다. 왕국의 좋은 소식을 철저히 전파했기 때문이다. 그는 생명을 주는 그 소식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행 18:6. 겔 33:6-8 비교) 바울은 하느님의 심판의 날에 아무도 생명을 잃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에베소에 있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모든 뜻”을 알려 주었다. (행 20:27) 그리스도인이 좋은 소식을 전할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면 하느님 앞에 유혈죄가 있게 된다. 또한 살인이나 유혈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에도 유혈죄가 있게 된다. 그러한 행위 가운데는 “큰 바빌론”(계 17:6; 18:2, 4)과 같이 유혈죄가 있는 조직이나 무고한 피를 흘린 그 밖의 조직(계 16:5, 6. 사 26:20, 21 비교)의 활동을 적극적으로나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피를 먹거나 마시는 것도 유혈죄에 해당한다.—행 15:20.

그는 옷을 털면서: 바울이 한 이 행동은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을 거부한 고린도의 유대인들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바울은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다했으며 그들의 생명에 대해 더 이상 책임을 질 필요가 없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성경을 보면 바울 이전에도 그와 비슷한 행동을 한 사람이 있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이야기하면서 옷 주름을 터는 행동을 했다. 이것은 특정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 하느님께 버림받을 것임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느 5:13) 바울은 피시디아 안티오크에서 자신을 반대한 사람들을 향해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는” 비슷한 행동을 했다.—행 13:51; 눅 9:5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을 함으로, 메시아이신 예수에 대한 소식을 거부한 유대인들에게 닥칠 결과에 대해 자신에게 책임이 없음을 나타냈다. 히브리어 성경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표현은 죽어 마땅한 행동을 저지른 사람이 목숨을 잃는 것은 그 사람 자신의 책임이라는 의미이다. (수 2:19; 삼하 1:16; 왕상 2:37; 겔 33:2-4. 마 27:25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덧붙인 나는 깨끗합니다라는 표현은 “나는 결백합니다[“죄가 없습니다; 책임이 없습니다”]”라는 의미였다.—행 20:26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을 숭배하는: 여기서 “하느님을 숭배하는”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세보마이는 “숭배하다; 숭상하다; 숭앙하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독실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행 13:50 연구 노트 참조) 시리아어 「페시타」에서는 이 부분을 “하느님을 두려워하는”으로 번역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한 번역판(부록 다4에 J18로 표기됨)은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를 두려워하는”이 된다.

여호와께서 그 여자의 마음을 활짝 열어: 루디아가 하느님을 숭배하는 사람으로 언급된 것을 볼 때 그는 유대교 개종자였던 것 같다. (행 13:43) 루디아는 안식일에 빌립보 외곽의 강가에 있는 기도하는 곳에 다른 여자들과 함께 모여 있었다. (행 16:13) 빌립보에는 유대인이 거의 없었고 회당도 없었던 것 같다. 루디아의 고향인 두아디라에는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고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도 있었으므로 루디아는 두아디라에서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에 관해 알게 되었을 수 있다. 루디아가 숭배하던 하느님 여호와께서는 그가 귀 기울여 듣고 있는 것에 유의하셨다.—부록 다3 소개; 행 16:14 참조.

그곳을 떠나: 회당을 떠났다는 의미이다. 바울은 회당에서 디디오 유스도의 집으로 장소를 옮겨 전파 활동을 계속했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동안 아굴라와 브리스길라의 집에 계속 머물렀지만, 유스도의 집을 중심으로 전파 활동을 수행했던 것 같다.—행 18:3.

디디오 유스도: 고린도의 신자였던 이 사람을 하느님을 숭배하는 사람으로 언급한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은 유대교 개종자였던 것 같다.—행 13:43; 16:14 연구 노트 참조.

속주 총독: 또는 “프로콘술”. 프로콘술은 로마 원로원의 관할 아래 있는 속주의 총독을 가리킨다. 유대와 같은 로마의 일부 속주들은 황제가 총독을 임명하는 황제 관할 속주였다. 키프로스는 기원전 22년에 원로원 관할 속주가 되어 프로콘술이 다스리고 있었다. 키프로스에서 발견된 한 주화는 앞면에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의 두상과 칭호가 (라틴어로) 새겨져 있고 뒷면에 “키프로스 주민들의 속주 총독[프로콘술], 코미니우스 프로클루스의 통치 중에”라는 글이 (그리스어로) 새겨져 있다.—용어 설명 참조.

아카이아: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아카이아는 그리스 남부에 있던 로마 속주를 가리킨다. 아카이아의 수도는 고린도였다. 기원전 27년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그리스에 있는 두 개의 속주인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재편성했다. 그때부터 아카이아는 펠로폰네소스반도 전체와 그리스 내륙 지역 일부를 가리키게 되었다. 아카이아 속주는 로마 원로원의 관할 아래 있었으며 속주 총독(프로콘술)이 수도인 고린도에서 다스렸다. (고후 1:1)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나오는 아카이아 속주의 다른 도시들로는 아테네와 겐그레아가 있다. (행 18:1, 18; 롬 16:1) 아카이아 속주와 북쪽의 마케도니아 속주는 종종 함께 언급된다.—행 19:21; 롬 15:26; 살전 1:7, 8. 부록 나13 참조.

속주 총독: 또는 “프로콘술”. 프로콘술은 로마 원로원의 관할 아래 있는 속주의 총독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갈리오를 아카이아의 속주 총독 즉 프로콘술로 언급한다. 누가가 그를 가리켜 “프로콘술”이라고 한 것은 사실과 일치한 것이다. 아카이아가 기원전 27년부터 기원 15년까지 그리고 기원 44년 이후로 원로원 관할 속주였기 때문이다. (행 13:7 연구 노트 참조) 누가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델포이에서 발견된 한 비문이 있다. 그 비문에서는 갈리오를 프로콘술로 언급한다. 또한 그 비문은 갈리오의 재임 기간을 산정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겐그레아: 고린도의 항구 역할을 하던 도시 중 하나로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겐그레아는 좁은 지협에서 사로니코스만 쪽에 위치해 있었다. 겐그레아는 그리스의 동쪽으로 가는 배들을 위한 항구였으며, 지협 반대편에 있던 레카이움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그리스의 서쪽에 있는 여러 지역들로 가는 배들을 위한 항구였다. 오늘날에는 케흐리에스(케크리아이스)라는 마을 근처에 건물들과 방파제 같은 고대 겐그레아의 유적이 남아 있다. 롬 16:1에 따르면 겐그레아에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있었다.—부록 나13 참조.

여호와의 뜻: “뜻”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텔레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주로 하느님의 뜻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마 7:21; 12:50; 막 3:35; 롬 12:2; 고전 1:1; 히 10:36; 벧전 2:15; 4:2; 요1 2:17) 「칠십인역」에서 그리스어 텔레마는 ‘하느님의 뜻; 하느님이 좋아하시는 것;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것’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들을 번역하는 데 자주 사용되며, 그 히브리어 표현들이 나오는 구절들의 문맥을 보면 하느님의 이름이 나온다. (시 40:8, 9 [39:9, 10, LXX]; 103:21 [102:21, LXX]; 143:9-11 [142:9-11, LXX]; 사 44:24, 28; 렘 9:24 [9:23, LXX]; 말 1:10) 이 구절(행 21:14)에 언급된 것과 비슷한 사상을 예수께서도 표현하신 적이 있다. 마 26:42에 따르면 그분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십시오”라고 아버지께 기도하셨다.—부록 다3 소개; 행 21:14 참조.

여호와의 뜻이라면: 어떤 일을 하거나 계획할 때 하느님의 뜻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도 바울은 이 원칙을 늘 기억했다. (행 18:21; 고전 16:7; 히 6:3) 제자 야고보도 자신의 편지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격려했다. “여호와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약 4:15) 야고보는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소리 내어 이 말을 해야 한다는 의미로 그렇게 권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그 말을 일종의 주문처럼 사용하거나 형식적으로 그 말을 해서도 안 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뜻을 배우고 그 뜻과 일치하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여호와의 뜻이라면: 어떤 일을 하거나 계획할 때 하느님의 뜻을 고려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사도 바울은 이 원칙을 늘 기억했다. (고전 4:19; 16:7; 히 6:3) 제자 야고보도 자신의 편지에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도록 격려했다. “여호와의 뜻이라면 우리가 살아서 이런저런 일을 할 것이다.” (약 4:15) 그와 같은 표현은 그저 형식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이어야 한다. “여호와의 뜻이라면”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뜻과 일치하게 행동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표현을 항상 소리 내어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며 마음속으로 말할 수도 있다.—행 21:14; 고전 4:19; 약 4:15 연구 노트 및 부록 다3 소개; 행 18:21 참조.

올라가서: 그리스어 본문에 예루살렘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간 것 같다. 예루살렘은 해발 약 750미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성경은 종종 숭배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언급한다. 그리스어 동사 아나바이노(“올라가다”)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것을 언급할 때 여러 번 사용된다. (마 20:17; 막 10:32; 눅 18:31; 19:28; 요 2:13; 5:1; 11:55; 행 11:2; 21:12, 15; 24:11; 25:1, 9; 갈 2:1) 또한 이 구절에는 “내려가다”를 의미하는 동사(카타바이노)도 나오는데, 이 동사는 예루살렘에서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을 언급하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막 3:22; 눅 10:30, 31; 행 24:1, 22; 25:7.

아볼로: 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로마 속주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서 성장한 것 같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등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대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도시는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으며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 알렉산드리아를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로 여겼다. 「칠십인역」으로 알려진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판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배경은 아볼로가 이 구절에 언급된 것처럼 성경 즉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에 정통한[직역하면 “강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길’: 사도행전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방식과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을 가리켜 “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표현은 요 14:6에 나오는 “나는 길이요”라는 예수의 말씀에서 유래했을 수 있다.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들은 “길”에 속한 사람으로, 즉 예수께서 걸으신 길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으로 언급된다. (행 19:9) 예수께서는 유일하신 참하느님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를 중심으로 살아가셨다.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에 더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생활했다. 기원 44년 이후 어느 시점에 시리아 안티오크에서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행 11:26)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된 후에도 누가는 회중을 언급할 때 “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행 19:23; 22:4; 24:22. 행 18:25; 19:23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다 참조) 마태는 이 예언을 하느님의 대표자인 예수를 위해 길을 준비한 침례자 요한의 활동에 적용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침례자 요한이 이 예언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요 1:23.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다 참조) 마가는 이 예언을 예수를 위해 길을 준비한 “침례자 요한”(막 1:4)의 활동에 적용한다.—마 3:3; 요 1:23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다 참조) 누가는 이 예언을 침례자 요한에게 적용한다. 요한이 여호와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말은 하늘의 아버지를 대표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인 예수보다 요한이 앞서 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 (요 5:43; 8:29) 사도 요한이 기록한 복음서에서는 침례자 요한이 이 예언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요 1:23.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가5 참조) 복음서 필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는 사 40:3의 예언을 침례자 요한에게 적용하며, 요한복음의 이 구절에서 침례자 요한은 그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한다. 요한이 여호와의 길을 곧게 할 것이라는 말은 하늘의 아버지를 대표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인 예수보다 요한이 앞서 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요 5:43; 8:29.

‘길’: 행 9:2 연구 노트에서 알려 주듯이, “길”이라는 표현은 초기 그리스도인 회중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참그리스도교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형식적인 숭배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으며 그분에 대한 숭배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생활 방식이다. (요 4:23, 24) 시리아어 「페시타」에는 이 표현이 “하느님의 길”로 되어 있다. 라틴어 「불가타」 클레멘스 교정본에는 “주의 길”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부록 다4에 J17, 18로 표기됨)은 이 부분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의 길”이 된다.

영이 그분을 재촉하여 ··· 가시게 했다: 또는 “활동력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 가시게 했다”.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하느님의 영을 가리킨다. 이 영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행동하도록 마음을 움직이고 재촉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눅 4:1. 용어 설명 “” 참조.

여호와의 길: 이어지는 구절에는 이 표현과 의미가 비슷한 “하느님의 길”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그리스도인들은 유일하신 참하느님 여호와께 드리는 숭배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중심으로 살아간다. 사도행전에서는 그러한 생활 방식을 가리켜 “길”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행 19:9, 23; 22:4; 24:22. 행 9:2 연구 노트 참조) 또한 “여호와의 길”이라는 표현은 복음서에 네 번 나오는데, 사 40:3을 인용한 부분 가운데 나온다. (마 3:3; 막 1:3; 눅 3:4; 요 1:23 연구 노트 참조)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테트라그람마톤이 사용되었다. “여호와의 길”이라는 표현은 삿 2:22; 렘 5:4, 5에도 나온다.—행 19:23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행 18:25 참조.

가르침받은: 그리스어 동사 카테케오는 문자적으로 “소리가 아래로 울려 퍼지게 하다”를 의미하며, 말로 가르친다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담긴 진리를 배우는 사람의 정신과 마음 속에 그 진리가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면 그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자격을 갖추게 된다.—동일한 그리스어가 두 번 사용된 갈 6:6과 비교.

영으로 타올라: 직역하면 “영이 끓어”. “타오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끓다”를 의미하지만 이 구절에서는 열심과 열정이 넘치거나 가득하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여기서 “영”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프뉴마)는 하느님의 성령을 가리키는 것 같다. 성령은 추진력으로 작용하여 사람이 여호와의 뜻과 일치하게 행동하도록 마음을 움직이고 힘을 줄 수 있다. (막 1:12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여기서 “영”은 사람의 마음에서 나와 그 사람이 특정한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리킬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영으로 타오르다”라는 표현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포함하여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옳은 일을 하려는 열심과 열정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이 문맥에서 이 표현이 단지 큰 열의와 열정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의 관용구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볼로가 예수의 이름으로 받는 침례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도 “영으로 타오를” 수 있었던 것이 설명이 된다. 이 구절에서 “영”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든, 아볼로가 옳은 일을 하려는 열정을 나타내고 더 정확한 가르침을 기꺼이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의 영이 하느님의 영의 인도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용어 설명 “” 참조.

요한의 침례: 요한이 베푼 침례는 각 사람이 율법을 범한 자신의 죄를 회개했음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주신 그 율법을 따르겠다고 약속했다. (출 24:7, 8) 하지만 율법 계약이 폐지된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는 요한의 침례가 더는 유효하지 않았다. (롬 10:4; 갈 3:13; 엡 2:13-15; 골 2:13, 14) 그 이후로 여호와께서는 예수의 명령에 따라 제자들이 베푼 침례만을 승인하셨다. (마 28:19, 20) 여기에 언급된 아볼로와 관련된 사건들은 기원 52년경에 있었던 일이다.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 그리스어 본문에는 “하느님”에 해당하는 단어가 들어 있지 않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사도행전에서 “과분한 친절”이라는 표현은 대부분 “하느님”과 연관되어 사용된다.—행 11:23; 13:43; 14:26; 20:24, 32.

미디어

오스티아의 회당
오스티아의 회당

사진에 나오는 것은 로마의 항구 도시 오스티아에 있던 회당의 유적이다. 기원 1세기 후반에 지어진 이 건물은 후에 개축되고 보수되긴 했지만 원래 회당으로 지어진 것 같다. 이곳에 회당이 있는 것을 볼 때 로마 지역 일대에 유대인들이 오랫동안 거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원 49년이나 50년경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로마 도시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기는 했지만 그 지역에 유대인 공동체가 남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행 18:1, 2) 클라우디우스가 사망한 기원 54년 이후에 많은 유대인들이 로마 도시로 돌아왔다. 바울이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쓴 기원 56년경에, 그곳 회중은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그 편지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관련된 문제를 다루면서 그들이 연합을 이루도록 교훈했다.—롬 1:15, 16.

1. 로마

2. 오스티아

클라우디우스 황제
클라우디우스 황제

사도행전에는 로마 황제 클라우디우스가 두 번 언급된다. (행 11:28; 18:2) 그는 조카인 칼리굴라(기원 37년부터 41년까지 통치했으며 성경에 언급되지 않는다)에 이어 로마의 네 번째 황제가 되었으며 기원 41년부터 54년까지 통치했다. 기원 49년이나 50년경에 클라우디우스는 모든 유대인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다. 그로 인해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고린도로 이주했으며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났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기원 54년에 클라우디우스의 네 번째 아내가 그를 독살했다고 한다. 네로가 그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었다.

갈리오라는 이름이 나오는 비문
갈리오라는 이름이 나오는 비문

여기에 나오는 것은 그리스 델포이에서 발견된 비문으로, 기원 1세기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비문에는 프로콘술 갈리오가 언급되어 있다. (그의 이름이 네모로 표시되어 있다.) 따라서 고린도의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이 재판을 받도록 끌고 갔을 때 “갈리오가 아카이아의 프로콘술”이었다는 행 18:12(연구 노트 참조)의 기록이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린도의 재판석
고린도의 재판석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고린도의 “재판석” 즉 베마의 유적이다. 이것은 대중에게 연설하는 데 사용되는 크고 높은 연단이었다. 고린도의 재판석은 도시의 아고라 즉 넓은 공공 광장의 가운데쯤에 세워져 있었다. 도시의 행정관은 이 연단에 서서 자신이 내린 판결을 공포하곤 했다. 재판석은 흰색과 푸른색을 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연단 옆에는 행정관을 만나려고 온 사람들이 기다리는 대기실이 있었는데, 대기실에는 모자이크로 된 바닥이 깔려 있었고 벤치가 있었다. 삽화는 1세기 고린도의 재판석의 모습이 어떠했을지를 추정해서 그린 것이다. 유대인들은 바울이 속주 총독 갈리오에게 재판을 받도록 이곳으로 끌고 왔던 것 같다.

고대 겐그레아 항구
고대 겐그레아 항구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고대 겐그레아 항구의 유적이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 중에 이곳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로 간 것 같다. (행 18:18)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좁은 지협에서 사로니코스만 쪽에 위치해 있었다. 고린도와는 일련의 군사 방어 시설을 통해 연결되어 있었다. 기원 1세기에 겐그레아는 그리스의 동쪽으로 가는 배들을 위한 고린도의 항구였으며, 지협 반대편에 있던 레카이움은 이탈리아를 비롯해 그리스의 서쪽에 있는 여러 지역들로 가는 배들을 위한 고린도의 항구였다.

카이사레아
카이사레아

1. 로마 극장

2. 궁전

3. 타원형 경마장

4. 이교 신전

5. 항구

카이사레아 유적을 담은 이 영상은 그곳의 일부 주요 건축물들이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카이사레아 도시와 그 항구는 기원전 1세기 말엽에 헤롯 대왕이 건설했다. 헤롯은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의 이름을 따서 이 도시의 이름을 지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으로 약 87킬로미터 떨어져 있던 이 도시는 지중해에 접해 있었으며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 도시에는 로마 극장(1), 바다 쪽으로 돌출된 땅에 지어진 궁전(2), 약 3만 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는 타원형 경마장(3), 이교 신전(4)이 있었다. 또한 공학적 걸작으로 손꼽히는 인공 항구(5)도 있었다. 이 도시에는 수도교가 있어서 담수가 공급되었고 자체 하수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사도 바울과 그 밖의 그리스도인들은 카이사레아를 오갈 때 배를 이용했다. (행 9:30; 18:21, 22; 21:7, 8, 16) 바울은 이 도시에서 약 2년간 갇혀 있었다. (행 24:27) 복음 전파자 빌립은 여러 도시를 다니며 전파하다가 끝으로 카이사레아에 이르렀으며 그곳에 정착한 것 같다. (행 8:40; 21:8)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 중에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고넬료도 그 도시에 살았다. (행 10:1, 24, 34, 35, 45-48) 누가가 복음서를 기록한 곳도 카이사레아였을 것이다.

사도행전—바울의 3차 선교 여행 (행 18:23–21:17) 기원 52-56년경
사도행전—바울의 3차 선교 여행 (행 18:23–21:17) 기원 52-56년경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1. 바울이 시리아 안티오크를 떠나 갈라디아와 프리지아를 다니면서 그곳 회중의 제자들을 강하게 하다 (행 18:23)

2. 바울이 내륙 지방을 거쳐 에베소로 가다. 그곳에서 일부 사람들이 침례를 다시 받고 성령을 받다 (행 19:1, 5-7)

3. 바울이 에베소의 회당에서 전파하다. 일부 유대인이 믿지 않으려 하자, 그곳을 떠나 두란노의 학교 강당으로 가서 매일 연설하다 (행 19:8, 9)

4. 바울이 에베소에서 한 봉사가 많은 결실을 맺다 (행 19:18-20)

5. 에베소의 극장에서 소동이 일어나다 (행 19:29-34)

6. 바울이 에베소에서 마케도니아로 간 다음 그리스로 가다 (행 20:1, 2)

7. 바울이 그리스에서 세 달을 보낸 뒤에 마케도니아를 거쳐 돌아가다 (행 20:3)

8. 바울이 빌립보에서 트로아스로 가다. 그곳에서 유두고를 부활시키다 (행 20:5-11)

9. 바울의 동료들은 배를 타고 앗소로 가고, 바울은 걸어서 그곳으로 가서 동료들과 합류하다 (행 20:13, 14)

10. 바울과 동료들이 배를 타고 밀레투스로 가다. 그곳에서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나 그들에게 권고하다 (행 20:14-20)

11. 바울이 장로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이 더 이상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다. 장로들이 바울을 배에까지 배웅하다 (행 20:36-38)

12. 바울과 그 일행이 배를 타고 밀레투스에서 코스로 간 다음 로도스에 들렀다가 파타라로 가다. 그곳에서 시리아 쪽으로 가는 배를 타다. 배가 키프로스섬의 남서쪽 끝을 지나쳐 티레에 도착하다 (행 21:1-3)

13. 티레에서 제자들이 영을 통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고 거듭 경고하다 (행 21:4, 5)

14. 바울이 카이사레아에 도착하다. 예언자 아가보가 바울에게 예루살렘에서 환난을 겪게 될 것이라고 말하다 (행 21:8-11)

15. 바울이 위험을 겪을 것임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가다 (행 21:12-1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