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1-46

22  예수께서는 또다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하늘 왕국은 아들을 위해 결혼 잔치를+ 베푼 왕에 비할 수 있습니다.  그가 결혼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을 부르러 종들을 보냈으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말했습니다. ‘초대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내가 음식을 차려 놓았소. 수소와 살진 짐승들을 잡았으며 모든 것이 준비되었소. 결혼 잔치에 오시오.”’  하지만 그들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어떤 사람은 자기 밭으로,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갔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왕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왕은 격분하여 군대를 보내 그 살인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도시를 불태워 버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했습니다. ‘결혼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격이 없구나.+  그러니 도시 밖으로 나가는 큰길로 가서, 만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결혼 잔치에 초대하여라.’+ 10  그래서 그 종들은 큰길로 나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만나는 대로 다 모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결혼 연회장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11  왕이 손님들을 살펴보려고 들어왔다가,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게 되었습니다. 12  그래서 왕은 그에게 ‘여보시오, 어떻게 당신은 결혼식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에 들어왔소?’ 하고 말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13  그러자 왕이 하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자의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둠 속으로 내쫓아라. 거기서 그가 울며 이를 갈 것이다.’ 14  초대된 사람은 많으나 선택된 사람은 적습니다.” 15  그때에 바리새인들은 가서, 그분이 하는 말로 그분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모의했다.+ 16  그래서 자기네 제자들을 헤롯당원들과+ 함께 그분에게 보내어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진실하시며 하느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신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누구에게도 환심을 사려고 하시지 않습니다. 사람의 겉모양을 보지 않으시니 말입니다. 17  그러니 우리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선생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카이사르에게 인두세를 바쳐도 됩니까, 안 됩니까?” 18  예수께서는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위선자들이여, 왜 나를 시험합니까? 19  인두세로 내는 주화를 나에게 보여 주십시오.” 그들이 데나리온 한 닢을 그분에게 가져오자, 20  그분이 그들에게 “이 초상과 글은 누구의 것입니까?” 하고 물으셨다. 21  그들이 “카이사르의 것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십시오.”+ 22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크게 놀라며 그분에게서 떠나갔다. 23  그날,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사두개인들이+ 그분에게 와서 물었다.+ 24  “선생님, 모세는 ‘어떤 사람이 자녀가 없이 죽으면, 그의 형제가 그의 아내와 결혼하여 죽은 형제를 위해 자손을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25  그런데 우리 가운데 7형제가 있었습니다. 첫째가 결혼했다가 자식 없이 죽어 아내를 자기 형제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26  둘째와 셋째도 그렇게 되었고, 일곱째까지 모두 그렇게 되었습니다. 27  결국에는 그 여자도 죽었습니다. 28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7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그들 모두가 그 여자를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29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성경도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30  부활 때에는 사람들이 장가도 가지 않고 시집도 가지 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습니다.+ 31  그리고 죽은 사람의 부활에 관해서는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하신 이러한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습니까? 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그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사람의 하느님이십니다.”+ 33  무리는 그 말씀을 듣고 그분의 가르침에 크게 놀랐다.+ 34  그분이 사두개인들을 잠잠하게 하셨다는 말을 듣고 바리새인들이 무리 지어 몰려왔다. 35  그들 중에 율법에 정통한 사람 하나가 그분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선생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어느 것입니까?”+ 37  그분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영혼을 다하고 정신을 다해 너의 하느님 여호와를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큰 첫째 계명입니다. 39  그와 비슷하게, 둘째 계명은 이러합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40  이 두 계명이 율법 전체와 예언서의 바탕이 됩니다.”+ 41  바리새인들이 함께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42  “여러분은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는 누구의 아들입니까?” 그들이 그분에게 “다윗의 아들입니다”라고 대답하자,+ 43  그분이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다윗이 영감을 받아+ 그를 ‘주’라고 부르며 이렇게 말한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44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의 적들을 너의 발밑에 둘 때까지 내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 45  이처럼 다윗이 그를 ‘주’라고 불렀다면, 어떻게 그가 다윗의 아들이 되겠습니까?”+ 46  그러자 아무도 그분에게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으며, 그날부터는 그분에게 감히 더 묻는 사람도 없었다.

각주

또는 “되도록 많이”.
또는 “식사에 초대받은 손님; 식탁에 앉은 사람”.

연구 노트

비유: 그리스어 원어 파라볼레는 문자적으로 “곁에(함께) 두는 것”을 의미하는데, 잠언이나 비유를 가리킬 수 있다. 예수께서는 어떤 것을 설명하실 때 다른 비슷한 것에 비하는 방법 즉 ‘곁에 두는’ 방법을 자주 사용하셨다. (막 4:30) 그분은 대개 자신이 지어낸 짧은 이야기를 비유로 들어 도덕적•영적 진리를 이끌어 내셨다.

비유: 마 13:3 연구 노트 참조.

결혼식 예복: 왕실 결혼식이었으므로 특별한 예복이 하객들에게 제공되었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제공된 예복을 입지 않고 결혼식에 온 것은 몹시 무례한 행동이었다.

이를 갈게: 또는 “이를 악물게”. 이를 간다는 표현은 고통, 절망, 분노를 느낀다는 의미를 포함할 수 있는데, 그러한 감정을 갖고 거친 말이나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는 의미도 전달할 수 있다.

이를 갈 것이다: 마 8:12 연구 노트 참조.

함정에 빠뜨리려고: 직역하면 “덫에 걸리게 하려고”. 새를 잡을 때처럼 덫을 놓는다는 의미이다. 「칠십인역」에서는 전 9:12에 나오는 “덫으로 잡다; 덫에 걸리게 하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를 번역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의 대답에서 꼬투리를 잡으려는 속셈으로 그분께 아첨하면서 질문했다.—마 22:16, 17.

헤롯당원: 용어 설명 참조.

카이사르: 또는 “황제”. 예수께서 땅에서 봉사하시던 기간에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였지만, “카이사르”라는 말은 티베리우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 이 말은 로마의 세속 권위 즉 국가와 국가에 의해 정식으로 임명된 대표자들을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었다. 바울은 그들을 “위에 있는 권위”라고 불렀으며, 베드로는 “왕”과 “총독들”이라고 불렀다.—롬 13:1-7; 벧전 2:13-17; 딛 3:1. 용어 설명 참조.

인두세: 1년에 한 번씩 내는 세금으로, 하루치 품삯에 해당하는 1데나리온이었을 것이다. 로마 정부는 인구 조사에 의해 등록된 모든 사람에게 이 세금을 부과했다.—눅 2:1-3.

위선자들: 마 6:2 연구 노트 참조.

위선자들: 그리스어 히포크리테스는 원래 그리스(또한 훗날 로마)의 배우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당시 배우들은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게 해 주는 커다란 가면을 썼다. 이 단어는 후에 비유적인 의미를 갖게 되어, 속임수를 쓰거나 가식적인 행동을 하여 본래의 의도나 성격을 숨기는 사람을 가리키게 되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유대교 지도자들을 “위선자들”이라고 부르신다.—마 6:5, 16.

데나리온: 카이사르의 초상이 새겨진 로마 은화.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인두세”로 이 은화를 징수했다. (마 22:17) 예수 시대에 농사일을 하는 일꾼들은 보통 하루에 12시간을 일하고 1데나리온을 받았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금전적 가치를 계산하는 기준으로 데나리온이 자주 사용된다. (마 20:2; 막 6:37; 14:5; 계 6:6) 이스라엘에서는 구리나 은으로 만든 다양한 주화가 사용되었는데, 티레에서 주조된 은화는 성전세를 내는 데 쓰이기도 했다. 하지만 로마에 세금을 낼 때는 카이사르의 초상이 있는 데나리온 은화가 사용되었던 것 같다.—용어 설명부록 나14 참조.

초상과 글: 당시에 널리 사용되던 데나리온 주화의 앞면에는 월계관을 쓴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재위 기간: 기원 14-37년)의 초상과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 신이 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이라는 뜻의 라틴어가 새겨져 있었다.—또한 부록 나14 참조.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같은 사건에 관해 기록한 막 12:17과 눅 20:25에도 이 표현이 나오는데, 이것은 기록상 예수께서 로마 황제를 언급하신 유일한 경우이다. “카이사르의 것”에는 세속 정부가 제공하는 공공 서비스에 대해 납부해야 하는 세금뿐 아니라, 세속 권위에 대해 나타내야 하는 존경심과 상대적인 복종도 포함된다.—롬 13:1-7.

돌려주고 ··· 돌려 드리십시오: 당시 주화는 카이사르가 주조한 것이었으므로 그에게는 그 일부를 요구할 권리가 있었다. 하지만 카이사르는 자신을 위해 생명을 바치거나 헌신할 것을 요구할 권리는 없었다. “생명과 호흡과 모든 것”을 사람에게 주신 분은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행 17:25) 따라서 사람은 전적인 정성을 요구할 권리를 가지신 분인 하느님께만 생명과 정성을 “돌려 드릴” 수 있다.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하느님의 것”에는 마음을 다한 숭배, 영혼을 다한 사랑, 온전하고 충성스러운 순종이 포함된다.—마 4:10; 22:37, 38; 행 5:29; 롬 14:8.

부활: 그리스어 아나스타시스는 문자적으로 “일으킴;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죽은 사람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 약 40회 사용되었다. (마 22:31; 행 4:2; 24:15; 고전 15:12, 13) 「칠십인역」사 26:19에 나오는 “너의 죽은 자들은 살아날 것이며”라는 표현에서 “살아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를 번역할 때 아나스타시스의 동사형을 사용했다.—용어 설명 참조.

둘째가 그 여자와 결혼했지만: 고대 히브리인들에게는 남자가 아들 없이 죽을 경우, 그의 가계를 이을 자손을 낳기 위해 죽은 남자의 형제가 그 과부와 결혼하는 관습이 있었다. (창 38:8) 후에 모세 율법에 포함된 이 마련은 시숙 결혼 혹은 형제 역연혼으로 알려졌다. (신 25:5, 6) 이 구절에서 사두개인들이 시숙 결혼에 대해 언급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예수 시대에도 이 관습이 있었다. 율법에서 친족이 시숙 결혼을 거부하는 것을 허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자기 형제의 집안을 세우려” 하지 않는 사람은 수치를 당했다.—신 25:7-10; 룻 4:7, 8.

아내를 자기 형제에게 남겨 놓았습니다: 막 12:21 연구 노트 참조.

성경: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흔히 사용된다.

부활: 마 22:23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께서 ··· 하신 이러한 말씀: 여기서 예수께서는 기원전 1514년경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언급하신 것이다. (출 3:2, 6)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하신 것은 아브라함이 죽은 지 329년, 이삭이 죽은 지 224년, 야곱이 죽은 지 197년이 지난 때였다. 하지만 여호와께서는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었다’라고 하지 않으시고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다’라고 말씀하셨다.—마 22:32.

부활: 그리스어 아나스타시스는 문자적으로 “일으킴; 일어남”을 의미한다.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죽은 사람의 부활을 가리키는 말로 약 40회 사용되었다. (마 22:31; 행 4:2; 24:15; 고전 15:12, 13) 「칠십인역」사 26:19에 나오는 “너의 죽은 자들은 살아날 것이며”라는 표현에서 “살아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를 번역할 때 아나스타시스의 동사형을 사용했다.—용어 설명 참조.

그분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사본들을 근거로 번역한 것이다. 하지만 일부 사본들에는 “하느님”이 두 번 나오며 따라서 “하느님은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로 번역할 수 있다. 일부 성경 번역판에서는 그러한 표현을 사용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한 번역판(부록 다에 J18로 표기됨)은 이 구절에서 테트라그람마톤을 사용하며, 그 표현을 번역하면 “여호와는 죽은 사람의 하느님이 아니라”가 된다.—출 3:6, 15 비교.

산 사람의 하느님: 막 12:27 연구 노트 참조.

산 사람의 하느님: 평행 성구인 눅 20:38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그분에게는[또는 “그분의 관점에서는”] 그들이 모두 살아 있습니다”라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하느님에게서 멀어진 사람들은 살아 있어도 그분의 관점에서는 죽은 것이라고 성경은 알려 준다. (엡 2:1; 딤전 5:6) 그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승인받은 종들은 죽더라도 그분의 관점에서는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이다. 그들을 부활시키려는 여호와의 목적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롬 4:16, 17.

잠잠하게 하셨다는: 해당 그리스어 동사는 “말문이 막히게 하다”(직역하면 “틀어막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사두개인들의 질문은 위선적인 것이었으므로, 예수께서 그러한 행동을 하신 것은 적절한 일이었다. 그분의 대답은 사두개인들이 아무 반박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흠잡을 데 없는 것이었다.—벧전 2:15, 각주.

정신: 지적 능력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신의 정신 기능을 사용해서 하느님을 알아 가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한다. (요 17:3; 롬 12:1) 여기서 예수께서 인용하신 신 6:5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 영혼, 힘’이라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어로 기록된 마가복음의 원문에는 마음, 영혼, 정신, 이라는 네 가지 개념이 언급된다. 이와 같이 다른 단어들이 사용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정신”이라는 단어가 추가된 것은 히브리어에서 그 세 단어들이 포괄하는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서였을 수 있다. 고대 히브리어에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만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에 그 개념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생각, 감정, 태도, 동기를 포함한 속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신 29:4; 시 26:2; 64:6. 이 구절에 나오는 마음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 나오는 “마음”을 종종 “정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로 번역한다. (창 8:21; 17:17; 잠 2:10; 사 14:13) 마가가 정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이유는 “힘”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가 “정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와 의미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마 22:37 비교, 그 구절에서는 “힘”이 아니라 “정신”에 해당하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처럼 단어들 사이에 의미가 겹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서기관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이해력”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대답한 것일 수 있다. (막 12:33) 복음서 필자들이 신 6:5을 인용할 때 원문에 정확히 대응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수 있다.—이 구절에 나오는 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마 22:37; 눅 10:27 연구 노트 참조.

마음. . . 영혼. . . 힘. . . 정신: 여기서 율법에 정통한 사람은 신 6:5을 인용하여 대답한다. 그 구절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 영혼, 힘이라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리스어로 기록된 누가복음에 따르면 이 사람은 마음, 영혼, 힘, 정신이라는 네 가지 개념을 언급한다. 그의 대답을 보면 예수 시대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신 6:5의 원문에 나오는 세 히브리어 단어의 개념에 네 그리스어 단어의 개념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여겼던 것 같다.—더 자세한 점을 알아보려면, 막 12:30 연구 노트 참조.

사랑하셔서: 요한복음에서 그리스어 동사 아가파오(“사랑하다”)는 이 구절에 처음 나온다. 아가파오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사랑)는 요한복음에 총 44회 나온다. 이것은 다른 세 복음서에 나오는 횟수를 합한 것보다 많은 수이다. 성경에서 아가파오아가페는 원칙에 근거한 혹은 원칙의 지배를 받는 비이기적인 사랑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아가파오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살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 세상 즉 죄를 구속받아야 하는 인류 전체를 사랑하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요 1:29) 요1 4:8에서는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가 사용되었는데, 그 구절에서 요한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라고 말한다. 사랑(아가페)은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들 중 첫 번째로 언급되며 (갈 5:22) 고전 13:4-7에서는 사랑에 대해 자세히 묘사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살펴보면, 사랑은 대개 다른 사람에 대해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반응을 나타내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많은 문맥에서 이 단어는 더 폭넓은 의미로 사용된다. 흔히 이 사랑은 깊은 생각과 의도적인 노력을 거쳐 표현된다. (마 5:44; 엡 5:25) 따라서 그리스도인이 길러야 하는 사랑에는 의무, 원칙, 도리를 고려하는 도덕적 감각이 포함된다. 하지만 이 사랑에 감정이 배제된 것은 아니다. 개인 간의 따뜻한 애정을 포함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벧전 1:22) 요한복음에서 이 단어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다”고 기록할 때 (요 3:35) 아가파오의 한 형태를 사용했다. 하지만 동일한 관계를 묘사하는 예수의 말씀을 기록할 때는 그리스어 동사 필레오(“애정을 가지고 있다”)의 한 형태를 사용했다.—요 5:20.

마음: 일반적으로 생각, 욕망, 감정, 태도, 동기를 포괄하는 속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하지만 마음이 “영혼”과 “정신”과 함께 언급될 경우에는 의미가 더 구체적이 되어 주로 사람의 감정, 욕망, 느낌을 가리키는 것 같다. 이 구절에 사용된 3가지 단어(마음, 영혼, 정신)는 의미가 서로 엄격하게 구분되는 용어가 아니다. 의미가 겹치는 이 단어들을 함께 사용한 것은 하느님을 전적으로 온전히 사랑해야 할 필요성을 강력하게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영혼: 어떤 사람의 전부를 가리킨다.—용어 설명 참조.

정신: 지적 능력을 가리킨다. 사람은 자신의 정신 기능을 사용해서 하느님을 알아 가고 그분에 대한 사랑을 키워야 한다. (요 17:3; 롬 12:1) 여기서 예수께서 인용하신 신 6:5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마음, 영혼, 힘’이라는 세 단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마태복음의 그리스어 원문에는 “힘” 대신 “정신”에 해당하는 단어가 사용되었다. 이와 같이 다른 단어가 사용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선, 고대 히브리어에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는 없지만 “마음”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단어에 그 개념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 히브리어 단어가 비유적으로 사용되면 생각, 감정, 태도, 동기를 포함한 속사람 전체를 가리킨다. (신 29:4; 시 26:2; 64:6. 이 구절에 나오는 마음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히브리어 원문에 나오는 “마음”을 종종 “정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로 번역한다. (창 8:21; 17:17; 잠 2:10; 사 14:13) 마태가 신 6:5을 인용하면서 “힘”이 아니라 “정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한 또 다른 이유는 “힘[또는 “활력”, 각주]”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신체적 힘과 정신적•지적 능력을 둘 다 가리킬 수 있는 단어이기 때문일 수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단어 사이에 이처럼 의미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는 것은 왜 복음서 필자들이 신명기를 인용할 때 원문에 정확히 대응하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막 12:30; 눅 10:27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신 6:5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사랑해야 한다: 여기서 “사랑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아가파오이다. 아가파오와 이 단어의 명사형인 아가페(사랑)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50회 이상 나온다. 요1 4:8에서는 명사 아가페를 사용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고 말한다. 이처럼 성경은 하느님을 원칙에 근거한 비이기적인 사랑의 최고의 본으로 묘사한다. 하느님께서는 사려 깊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신다. 그분의 사랑에는 단지 감정과 느낌만이 아니라 굳은 의지와 행동이 수반된다. 사람도 하느님을 본받아 의도적인 선택에 의해 그런 사랑을 나타낼 수 있다. (엡 5:1)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예수께서 언급하신 가장 큰 두 계명에서와 같이, 사랑을 나타내라는 명령이 사람에게 주어질 수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구절에서 신 6:5을 인용하셨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랑을 가리키는 데 주로 사용되는 단어는 동사 아헤브 또는 아하브(사랑하다)와 명사 아하바(사랑)이다. 이 단어들은 앞서 언급된 그리스어 단어들의 의미를 포함한다.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될 경우, 이 단어들은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바치고 그분을 전적으로 섬기려는 열망이 있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랑을 완벽하게 나타내셨다. 예수께서는 여호와에 대한 사랑에는 단순히 그분에게 애정을 느끼는 것 이상이 요구된다는 점을 보여 주셨다. 그 사랑은 삶 전체를 지배하여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에 영향을 준다.—요 3:16 연구 노트 참조.

둘째 계명: 마 22:37에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셨다. 하지만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둘째 계명(레 19:18)을 언급하시면서, 두 계명이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며 율법 전체와 예언서를 그 두 계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고 가르치셨다.—마 22:40.

이웃: 직역하면 “가까이 있는 사람”. 이 단어는 단지 가까이 사는 사람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자신과 어떤 식으로든 교류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가리킬 수 있는 표현이다.—눅 10:29-37; 롬 13:8-10. 마 5:43 연구 노트 참조.

네 이웃을 사랑하고: 모세 율법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명령이 들어 있었다. (레 19:18) “이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가리키는 단어였지만 일부 유대인들은 이 단어를 동족인 유대인들, 특히 구전을 지키는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좁은 의미로 해석하여 그 밖의 사람들을 모두 원수로 여겼다.

율법이나 예언서: “율법”은 성경에서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책들을 가리킨다. “예언서”는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의 글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두 단어가 함께 사용될 때는 히브리어 성경 전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마 7:12; 22:40; 눅 16:16.

율법 전체와 예언서: 마 5:17 연구 노트 참조.

바탕이 됩니다: 이 문장은 “이 두 계명에 율법 전체와 예언자들의 글이 달려 있습니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문자적으로 “(매)달려 있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동사가 이 구절에서는 “의존해 있다; 바탕을 두고 있다”라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뿐 아니라 히브리어 성경 전체가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롬 13:9.

그리스도: 여기서는 “그리스도”라는 칭호 앞에 그리스어 정관사가 사용되었다. 메시아라는 예수의 직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그리스도: 이 칭호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한다.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성경 시대에는 통치자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었다.

그리스도: 또는 “메시아”.—마 1:1; 2:4 연구 노트 참조.

영감을 받아: 직역하면 “영 안에서”. 하느님의 영의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이다.—용어 설명 “” 참조.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시 110:1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발밑에 둘: 권위 아래 둔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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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티베리우스는 기원전 42년에 태어났다. 그는 기원 14년에 로마의 두 번째 황제가 되었다. 티베리우스는 기원 37년 3월에 사망했으므로, 그가 황제로 다스린 기간은 예수께서 봉사하신 기간 전체와 겹친다. 따라서 세금을 낼 때 사용하는 주화와 관련해 예수께서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을 당시 로마의 카이사르 즉 황제는 티베리우스였다.—막 12:14-17; 마 22:17-21; 눅 20:2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