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6:1-28

16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저녁이 되면 당신들은 ‘하늘이 붉으니 날씨가 맑겠구나’ 하고,+  아침에는 ‘하늘이 붉으면서도 흐리니 오늘 날씨는 비가 오고 춥겠구나’라고 합니다. 당신들은 하늘의 모습은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징은 분별하지 못합니다.  악하고 간음하는 세대가 계속 표징*을 구하지만, 요나의 표징+ 외에는 아무런 표징도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분은 그들을 남겨 두고 떠나셨다.  그런데 제자들이 맞은편으로 건너가면서, 빵을 가져가는 것을 잊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계속 깨어 살피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십시오.”+  그러자 그들은 “우리가 빵을 가져오지 않았구나” 하고 서로 이야기했다.  예수께서 이것을 아시고 말씀하셨다.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여, 왜 여러분은 빵이 없다고 서로 의논하고 있습니까?  아직도 깨닫지 못합니까? 빵 다섯 개로 5000명이 먹고도 여러분이 몇 바구니나 거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까?+ 10  또 빵 일곱 개로 4000명이 먹고도 여러분이 큰 바구니로 몇 바구니나 거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합니까?+ 11  내가 여러분에게 빵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님을 어째서 깨닫지 못합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을 조심하십시오.”+ 12  그제야 그들은 그분이 빵의 누룩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가르침을 조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임을 깨달았다. 13  예수께서 카이사레아 빌립보 지방에 가셨을 때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사람의 아들’을 누구라고 합니까?” 하고 물으셨다.+ 14  그들이 대답했다. “침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15  그분이 그들에게 “그러면 여러분은 나를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으셨다.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했다. “주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17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요나의 아들 시몬, 당신은 행복합니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당신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18  또한 당신에게 말합니다. 당신은 베드로입니다.+ 이 반석+ 위에 내가 나의 회중을 세울 것이니, 무덤의 문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19  내가 당신에게 하늘 왕국의 열쇠들을 주겠습니다. 무엇이든지 당신이 땅에서 묶는 것은 하늘에서 이미 묶여 있는 것이며, 무엇이든지 당신이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 이미 풀려 있는 것입니다.”+ 20  그러고 나서 그분은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단단히 이르셨다.+ 21  그때부터 예수께서는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가 셋째 날에 일으켜져야 한다는 것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기 시작하셨다.+ 22  그러자 베드로가 그분을 따로 모시고 가서 이렇게 나무라기 시작했다. “주여,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지십시오. 결코 그런 일이 주께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23  그러나 그분은 등을 돌리며*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사탄, 내 뒤로 물러나시오! 당신은 나에게 걸림돌이오. 당신이 하느님의 생각이 아니라 사람의 생각을 하기 때문이오.”*+ 24  그러고 나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형주를 지고 계속 나를 따르십시오.+ 2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그것을 잃을 것이고, 나를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그것을 얻을 것입니다.+ 26  사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사람이 자기 목숨을 무엇과 바꾸겠습니까?+ 27  ‘사람의 아들’은 아버지의 영광 중에 자신의 천사들과 함께 올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각 사람에게 그 행실대로 갚아 줄* 것입니다.+ 28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얼마는 죽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자기 왕국에 오는 것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입니다.”+

각주

또는 “기적에 의한 증거”.
또는 “돌아서며”.
또는 “하느님의 정신이 아니라 사람의 정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오.”
또는 “상을 줄; 보상해 줄”.

연구 노트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일부 주요 고대 사본에는 2절의 뒷부분과 3절 전체가 빠져 있다. 이 부분이 원본에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불확실한 점이 있지만, 권위 있는 여러 학자들은 이 부분이 초기와 후기의 많은 사본에 들어 있으므로 성경 본문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간음하고: 또는 “불충실하고”. 영적인 의미에서 간음이란, 계약을 통해 하느님과 결합해 있는 사람들이 그분께 불충실한 것을 가리킨다. 육적 이스라엘은 거짓 종교 관습들을 행함으로 율법 계약을 어겨 영적 간음을 범했다. (렘 3:8, 9; 5:7, 8; 9:2; 13:27; 23:10; 호 7:4)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예수께서는 당시의 유대인들을 간음하는 세대라고 질책하셨다. (마 12:39; 16:4) 새 계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현 세상 제도와 관련을 맺어 자신을 더럽힌다면 영적 간음을 범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여호와께 헌신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약 4:4.

요나의 표징: 요나는 자신이 약 3일 동안 물고기의 배 속에 있다가 구출된 것을 무덤에서 부활되는 것에 비했다. (욘 1:17–2:2) 예수께서 문자적인 무덤에서 부활되시는 것은 요나가 물고기의 배 속에서 구출된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3일째 되는 날 부활되셨을 때에도 완고하고 비평적인 사람들은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간음하는: 영적 간음 즉 하느님께 불충실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막 8:38 연구 노트 참조.

요나의 표징: 마 12:39 연구 노트 참조.

맞은편으로: 갈릴리 바다 건너편, 아마도 북동쪽 연안에 있는 벳새다 쪽이었을 것이다.

누룩: 빵을 부풀어 오르게 하기 위해 섞는 발효된 작은 반죽. 성경 시대에는 발효된 반죽을 약간 남겨 두었다가 나중에 빵을 만들면서 새 반죽에 섞었다. 성경에서 누룩은 흔히 죄나 부패를 상징하지만, (마 16:6 연구 노트 참조) 항상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레 7:11-15)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일반적인 빵 굽는 과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다. 그분은 좋은 것이 퍼지는 과정을 누룩으로 인해 반죽이 발효되는 과정에 비하신 것 같다.

누룩: 또는 “효모”. 성경에서 부패와 죄를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자주 사용된다. 이 구절에서는 부패한 가르침을 가리킨다.—마 16:12; 고전 5:6-8. 마 13:33 연구 노트 비교.

바구니: 잔가지를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였을 것이다. 여행할 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끈이 달려 있었다. 용량이 약 7.5리터였던 것 같다.—마 16:9, 10 연구 노트 참조.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 이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스피리스는 이전에 예수께서 남자 약 5000명을 먹이셨을 때 사용된 것보다 더 큰 바구니를 가리키는 것 같다. (마 14:20 연구 노트 참조) 다마스쿠스의 성벽 구멍을 통해 바울을 내려보낼 때 사용한 “광주리”도 동일한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이다.—행 9:25 연구 노트 참조.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마 15:37; 16:9 연구 노트 참조.

바구니: 예수께서 두 차례 기적으로 무리를 먹이신 일을 묘사하는 성경 기록(마 14:20; 15:37; 16:10 연구 노트막 6:43; 8:8, 19, 20의 평행 기록 참조)에서 필자들은 남은 음식을 모으는 데 사용한 바구니의 종류를 일관되게 구분해서 표현한다. 그분이 약 5000명을 먹이신 경우에는 그리스어 코피노스(“바구니”로 번역됨)가 사용되었고, 4000명을 먹이신 경우에는 그리스어 스피리스(“큰 바구니”로 번역됨)가 사용되었다. 이 점을 볼 때 필자들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거나, 그 광경을 목격한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 이 구절에 나오는 그리스어 스피리스는 이전에 예수께서 남자 약 5000명을 먹이셨을 때 사용된 것보다 더 큰 바구니를 가리키는 것 같다. (마 14:20 연구 노트 참조) 다마스쿠스의 성벽 구멍을 통해 바울을 내려보낼 때 사용한 “광주리”도 동일한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이다.—행 9:25 연구 노트 참조.

바구니: 예수께서 두 차례 기적으로 무리를 먹이신 일을 묘사하는 성경 기록(마 14:20; 15:37; 16:10 연구 노트막 6:43; 8:8, 19, 20의 평행 기록 참조)에서 필자들은 남은 음식을 모으는 데 사용한 바구니의 종류를 일관되게 구분해서 표현한다. 그분이 약 5000명을 먹이신 경우에는 그리스어 코피노스(“바구니”로 번역됨)가 사용되었고, 4000명을 먹이신 경우에는 그리스어 스피리스(“큰 바구니”로 번역됨)가 사용되었다. 이 점을 볼 때 필자들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거나, 그 광경을 목격한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마 15:37; 16:9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표현. 복음서에 약 80회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실제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과 자신이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속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 같다. (롬 5:12, 14, 15) 또한 이 표현은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밝혀 주었다.—단 7:13, 14. 용어 설명 참조.

카이사레아 빌립보: 요르단강 발원지에 위치한 도시. 해발 350미터에 있는 이 도시는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헤르몬산 남서쪽 기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헤롯 대왕의 아들인 분봉왕 빌립이 로마 황제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해 이 도시에 카이사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항구 도시와 구분하기 위해 “빌립의 카이사레아”라는 뜻의 카이사레아 빌립보라고 부르게 되었다.—부록 나10 참조.

‘사람의 아들’: 마 8:20 연구 노트 참조.

요한: “여호와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를 의미하는 여호하난 또는 요하난이라는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침례자: 또는 “물에 잠그는 자”. 일종의 별칭으로 사용된 듯한 이 표현은 요한이 물에 잠그는 방식으로 침례를 주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유대인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침례자로 불린 요한”에 대해 기록했다.

엘리야: “나의 하느님은 여호와이시다”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

침례자 요한: 마 3:1 연구 노트 참조.

엘리야: 마 11:14 연구 노트 참조.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 성경에서 베드로의 이름은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방식으로 언급된다. (1) “시므온”, 히브리어 이름을 그리스어 형태로 표기한 것이다. (2) “시몬”. 그리스어 이름. (시므온과 시몬은 둘 다 “듣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나왔다.) (3) “베드로”. (“바위”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이름으로, 성경에서 그에게만 붙여진 이름이다.) (4) “게바”. 베드로라는 이름의 셈어 형태이다. (욥 30:6과 렘 4:29에 나오는 히브리어 케핌[바위]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5) 두 이름의 결합형인 “시몬 베드로”.—행 15:14; 요 1:42; 마 16:16.

그리스도: 이 칭호는 그리스어 크리스토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한다.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성경 시대에는 통치자에게 기름을 붓는 의식이 있었다.

그리스도: 여기서는 “그리스도”라는 칭호 앞에 그리스어 정관사가 사용되었다. 메시아라는 예수의 직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

시몬 베드로: 마 10: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그리스어 원어는 크리스토스)라고 말한다. 이 칭호는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하는 것으로,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 앞에는 정관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메시아라는 예수의 직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마 1:1; 2:4 연구 노트 참조.

살아 계신 하느님: 카이사레아 빌립보 지방 사람들(마 16:13)과 같은 이방 사람들이 섬기던 생명 없는 신들과는 달리, 여호와께서는 살아 계시고 행동하시는 하느님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행 14:15)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도 나온다.—신 5:26; 렘 10:10.

요나의 아들: 또는 “바요나”. 히브리인들은 “아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이나 아람어 를 아버지의 이름 앞에 붙여서 자신의 성처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돌로매, 바디매오, 바예수와 같은 여러 이름에 아람어 가 들어 있다는 사실은 예수 시대에 사용되던 히브리어가 아람어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살과 피: 또는 “사람”. 유대인들이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다. ‘살과 피가 알려 준 것이 아니’라는 예수의 말씀은 베드로가 스스로 알아내거나 다른 사람이 알려 준 것이 아니라는 의미이다.—갈 1:16, 각주.

당신은 베드로입니다. 이 반석 위에: 베드로라는 이름은 남성형 그리스어 명사 페트로스를 음역한 것으로, “바위; 돌”을 의미한다. 이것은 예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인 게바의 그리스어 형태이다. (요 1:42) “반석”으로 번역된 원어는 그 단어의 여성형인 페트라로서 기반암, 절벽, 커다란 바위를 의미할 수 있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마 7:24, 25; 27:60; 눅 6:48; 8:6; 롬 9:33; 고전 10:4; 벧전 2:8에도 나온다.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께서 세우실 회중의 반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가 벧전 2:4-8에서 예수가 오래전에 예언된 “기초 모퉁잇돌”로서 하느님께서 친히 선택하신 분이라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도 예수를 “기초”와 “영적 바위”로 언급했다. (고전 3:11; 10:4) 따라서 예수께서 발음이 비슷한 두 단어를 사용하여 하신 말씀은 사실상 이런 뜻이었을 것이다. ‘내가 베드로 즉 바위(페트로스)라는 이름을 지어 준 당신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정확히 분별했습니다. 그리스도 즉 “이 반석(페트라)”이 그리스도인 회중의 기초가 될 것입니다.’

회중: 그리스어 엑클레시아는 이 구절에서 처음 나온다. 이 단어는 “밖으로”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과 “부르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칼레오가 결합된 형태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목적이나 활동을 위해 소집되거나 부름을 받은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용어 설명 참조) 이 문맥에서 예수께서는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인 회중이 형성될 것임을 예언하신 것이다. 그들은 “산 돌”로서 “영적인 집으로 세워져” 간다. (벧전 2:4, 5) 「칠십인역」에서는 “회중”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카할을 번역할 때 이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히브리어 카할은 종종 하느님의 백성이었던 민족 전체를 가리킨다. (신 23:3; 31:30) 행 7:38에서는 부름을 받아 이집트에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을 “회중”이라고 부른다. 그와 비슷하게, ‘어둠에서 부름을 받’고 ‘세상에서 선택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회중”을 구성한다.—벧전 2:9; 요 15:19; 고전 1:2.

무덤: 또는 “하데스”. 인류의 공통 무덤을 가리킨다. (용어 설명 참조) 성경은 죽은 사람이 “죽음의 문”(시 107:18) 또는 “무덤의 문”(사 38:10) 안에 있는 것으로, 즉 죽음에 갇혀 있는 것으로 묘사한다. 예수께서는 무덤에 대한 승리를 약속하셨는데, 이것은 부활을 통해 무덤의 “문”이 열려 죽은 사람들이 풀려날 것이라는 의미이다. 그분 자신이 부활되신 것은 그 약속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임을 보증한다. (마 16:21) 회중의 기초이신 예수께서 회중의 성원들을 죽음에서 풀려나게 하실 수 있는 분이므로, 무덤이 회중을 이기거나 영구적으로 가두어 둘 수는 없다.—행 2:31; 계 1:18; 20:13, 14.

여러분이 땅에서 묶는 ··· 여러분이 땅에서 푸는: 이 문맥에서 “묶는다”는 것은 “죄가 있다고 보다; 유죄 판결을 내리다”를 의미하고 “푼다”는 것은 “결백하다고 여기다; 무죄 판결을 내리다”를 의미하는 것 같다. “여러분”이라는 복수형 대명사가 사용된 것을 볼 때, 베드로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결정을 내리는 데 관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 16:19 연구 노트 비교.

이미 묶여 있는 ··· 이미 풀려 있는: 원어로는 “되다”라는 동사에 각각 “묶다”와 “풀다”를 의미하는 동사가 결합되어 있는 표현인데, 독특하게도 “되다”는 미래형인 반면 “묶다”와 “풀다”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리면(‘무엇이든지 여러분이 묶으면’; ‘무엇이든지 여러분이 풀면’) 하늘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결정이 이미 내려져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제자들의 결정은 하늘의 결정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며, 하늘에서 이미 세워 놓은 원칙에 근거한 것이다. 이 구절은 땅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면 그것을 하늘에서 지지하거나 승인해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제자들이 하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늘에서 이미 내려진 결정과 조화를 이루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하늘의 인도를 구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마 16:19 연구 노트 참조.

하늘 왕국의 열쇠들: 성경에서 문자적으로든 비유적으로든 열쇠를 받는 사람은 어느 정도 권한을 부여받았다. (대상 9:26, 27; 사 22:20-22) 따라서 “열쇠”라는 말은 권한과 책임을 상징하게 되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열쇠들”을 사용하여 유대인들에게(행 2:22-41), 사마리아인들에게(행 8:14-17), 이방인들에게(행 10:34-38) 하느님의 영을 받고 하늘 왕국에 들어갈 기회를 열어 주었다.

묶는 ··· 푸는: 또는 “잠그는 ··· 여는”. 어떤 행동이나 일의 진행을 금하거나 허용하는 결정을 가리키는 것 같다.—마 18:18 연구 노트 비교.

이미 묶여 있는 ··· 이미 풀려 있는: 원어로는 “되다”라는 동사에 각각 “묶다”와 “풀다”를 의미하는 동사가 결합되어 있는 표현인데, 독특하게도 “되다”는 미래형인 반면 “묶다”와 “풀다”는 완료형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은 베드로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무엇이든지 당신이 묶으면’; ‘무엇이든지 당신이 풀면’) 하늘에서는 그에 해당하는 결정이 이미 내려져 있을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의 결정은 하늘의 결정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다.—마 18:18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베드로는 예수가 “그리스도”(그리스어 원어는 크리스토스)라고 말한다. 이 칭호는 “메시아”(히브리어 마시아흐에서 유래)에 해당하는 것으로, 둘 다 “기름부음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이 구절에서 “그리스도” 앞에는 정관사()가 사용되었는데, 이것은 메시아라는 예수의 직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마 1:1; 2:4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 마 16:16 연구 노트 참조.

수제사장들: 그리스어 원어가 단수이고 하느님 앞에서 백성을 대신하는 최고 대표자를 가리킬 경우에는 “대제사장”이라고 번역된다. 여기서는 원어가 복수 형태이므로 제사직을 수행한 주요 인물들을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는 전직 대제사장들이 포함되며 24개 제사장 조의 우두머리들도 포함되었을 수 있다.

서기관들: 원래 성경 필사자들을 가리키는 단어이지만 예수 시대에는 율법에 능통하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 일부 고대 사본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되어 있다.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킨다. 이 단어가 눅 15:25에 나오는 “큰아들”과 행 2:17에 나오는 “노인”의 경우처럼 나이와 관련이 있을 때도 있지만, 반드시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만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 구절에서는 유대 민족의 지도자들을 가리키는데, 그들은 흔히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함께 언급된다. 산헤드린은 이 세 부류의 사람들로 구성되었다.—마 21:23; 26:3, 47, 57; 27:1, 41; 28:12. 용어 설명 “장로; 연로자” 참조.

수제사장들: 마 2:4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수제사장” 참조.

서기관들: 마 2:4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서기관” 참조.

걸림돌: 그리스어 원어 스칸달론은 원래 덫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덫 안에 있는, 미끼를 놓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넓어져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도덕적인 면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는 행동 또는 환경을 가리킨다. 마 18:8, 9에서는 스칸달론과 어근이 같은 동사 스칸달리조가 “걸려 넘어지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은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사탄: “대항자; 반대자”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실제로 사탄 마귀라는 뜻이 아니라 그가 대항자 또는 반대자라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어쩌면 베드로가 그러한 말을 한 것이 사탄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임을 암시하신 것일 수 있다.

내 뒤로 물러나시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강하게 “꾸짖”으셨다. (막 8:33) 그분은 자신이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을 그 어떤 것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셨다. 일부 사전에 따르면 이 관용구는 “내 눈앞에서 사라지시오!”라는 의미이며, 몇몇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내게서 물러가시오”라고 번역한다. 또한 예수의 말씀은 베드로에게 그의 합당한 위치가 무엇인지를 일깨워 주었을 것이다. 그는 예수께서 가시는 길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인인 예수의 제자로서 그분을 지원하는 역할을 해야 했다.

걸림돌: 마 18:7 연구 노트 참조.

자기를 부인하고: 또는 “자신의 권리를 모두 포기하고”. 이 말은 기꺼이 자신을 철저히 부정하거나 자신에 대한 소유권을 하느님께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어 원어는 “자기 자신을 거부하고”라고도 옮길 수 있는데, 이러한 번역도 적절한 이유는 이 표현이 자신의 욕망이나 야망이나 편의를 따르기를 거부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후 5:14, 15) 마태는 베드로가 예수를 안다는 사실을 부인한 일을 기록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를 사용했다.—마 26:34, 35, 75.

형주: 또는 “고통의 기둥”. 고전 그리스어에서 스타우로스라는 단어는 주로 수직의 기둥이나 말뚝을 가리켰다. 이 단어는 예수의 제자라는 이유로 겪게 되는 고통, 수치, 고난, 죽음을 상징하기도 한다.—용어 설명 참조.

목숨: 또는 “영혼”.—용어 설명 “영혼” 참조.

목숨: 또는 “영혼”.—용어 설명 “영혼” 참조.

목숨: 마 16:25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영혼” 참조.

진실로: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것으로 “그렇게 되소서” 또는 “확실히”를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실을 말씀하시거나 약속이나 예언을 하시기 전에 이 표현을 자주 사용하심으로 자신의 말이 절대적으로 진실하고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강조하셨다. 이러한 방식으로 “진실로” 즉 아멘을 사용한 예는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에만 나오며 다른 종교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요한복음에서 볼 수 있듯이, 예수께서는 때때로 이 표현을 연이어 사용하심으로(아멘 아멘) 자신의 말이 신뢰할 만하다는 점을 더욱 강조하셨다.—요 1:51 연구 노트 참조.

진실로: 마 5:18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바구니
바구니

성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바구니를 묘사하는 몇 가지 단어가 나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기적으로 약 5000명의 남자를 먹이셨을 때 남은 음식을 담은 12개의 바구니는,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는 단어를 볼 때 잔가지를 엮어 만든 비교적 작은 손바구니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약 4000명의 남자를 먹이셨을 때 남은 음식을 담은 7개의 바구니를 가리키는 데는 다른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막 8:8, 9) 이 단어는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를 가리킨다. 다마스쿠스의 성벽 구멍을 통해 바울을 내려보낼 때 쓰인 광주리를 가리키는 데도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되었다.—행 9:25.

갈릴리 바다에서 카이사레아 빌립보 지방까지
갈릴리 바다에서 카이사레아 빌립보 지방까지

예수와 제자들은 마가단에서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 북쪽 연안에 있는 벳새다로 갔다. (막 8:22)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210미터 낮은 곳에 있는 데 반해, 카이사레아 빌립보는 해수면보다 350미터 높은 곳에 있었고 4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따라서 예수와 제자들이 그곳까지 올라가는 데는 며칠이 걸렸을 것이다.—예수의 봉사에 관한 더 자세한 지도를 보려면 부록 가7-ㅁ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