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1-50
연구 노트
안식일: 용어 설명 참조.
곡식밭 사이로 지나가셨다: 밭 사이에 난 좁은 길로 지나가셨다는 의미인 것 같다.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보십시오!: 마 1:23 연구 노트 참조.
해서는 안 되는 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안식일에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명령하셨다. (출 20:8-10) 유대교 지도자들은 일에 해당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를 정할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이삭을 따서 손으로 비비는 행동을 함으로 곡식을 수확해서 타작하는 일을 하는 잘못을 범했다고 주장했다. (눅 6:1, 2)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여호와의 명령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한 것이었다.
하느님의 집: 여기서는 장막을 가리킨다. 예수께서 언급하고 계신 사건(삼상 21:1-6)은 장막이 놉에 있을 때 일어났는데, 놉은 베냐민의 영토에 있고 예루살렘과 가까운 도시였던 것 같다.—부록 나7 (삽입 지도) 참조.
하느님의 집: 막 2:26 연구 노트 참조.
차림빵: 또는 “진설병”. 이 표현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는 문자적으로 “얼굴의 빵”을 의미한다. 히브리어에서 “얼굴”은 “면전” 즉 “앞”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빵은 여호와께 항상 바치는 제물이었으므로 늘 그분 앞에 있었다.—출 25:30. 용어 설명 및 부록 나5 참조.
안식일을 어겨도: 안식일에도 다른 날처럼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제사장들은 안식일에도 동물 희생을 바치기 위해 도살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일을 했다.—민 28:9, 10.
자비를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호 6:6의 이 말씀을 두 번 언급하신다. (이 구절과 마 12:7) 멸시받는 세금 징수원이었다가 예수의 친밀한 동료가 된 마태는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 말씀과 무자비한 종에 관한 비유를 기록한 유일한 복음서 필자이다. (마 18:21-35) 마태복음은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에 더해 자비도 나타내야 한다고 예수께서 거듭 교훈하신 점을 강조한다.
의미합니다: 그리스어 원어 에스틴은 문자적으로 “~이다”를 뜻하지만 여기서는 “상징하다; 대표하다; 뜻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사도들은 이 말의 뜻을 분명히 이해했을 것이다. 그들 앞에 예수의 완전한 몸도 있었고 그들이 곧 먹게 될 누룩이 들지 않은 빵도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빵이 예수의 실제 몸이 아니라는 점이 분명했다. 유의할 만하게도, 같은 그리스어 단어가 마 12:7에도 사용되었는데, 여러 성경 번역판에서 이 단어를 “뜻하다”로 번역한다.
자비를 원하고 희생 제물을 원하지 않는다: 마 9:13 연구 노트 참조.
무슨 뜻인지: 직역하면 “무엇인지”. 그리스어 에스틴은 문자적으로 “~이다”를 의미하지만 여기서는 “뜻하다; 상징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26:26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의 아들’: 마 8:20 연구 노트 참조.
안식일의 주: 예수께서는 이 표현을 자신에게 적용하여 (막 2:28; 눅 6:5) 하늘의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일을 자신이 안식일에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셨다. (요 5:19; 10:37, 38 비교) 그분은 병 고치는 일을 포함하여 매우 인상 깊은 기적들을 안식일에 행하셨다. (눅 13:10-13; 요 5:5-9; 9:1-14) 분명 그 기적들은 안식의 쉼과도 같은 왕국 통치 기간에 그분이 인류를 위해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 미리 보여 주는 것이었다.—히 10:1.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표현. 복음서에 약 80회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실제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과 자신이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속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 같다. (롬 5:12, 14, 15) 또한 이 표현은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밝혀 주었다.—단 7:13, 14. 용어 설명 참조.
손: 그리스어 원어는 손, 팔, 손가락을 다 가리킬 수 있는 폭넓은 표현이다.—또한 마 12:13 참조.
얼마나 더: 예수께서는 자주 이런 방식으로 논리를 전개하셨다. 처음에 당연하거나 잘 알려진 사실을 제시한 다음, 그 사실에 근거하여 훨씬 더 설득력 있는 결론을 내리셨다. 평범한 사실에서 중요한 교훈을 이끌어 내신 것이다.—마 10:25; 12:12; 눅 11:13; 12:28.
얼마나 더: 마 7:11 연구 노트 참조.
자신을 알리지 말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라는 의미이다. 더러운 영들이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분을 그렇게 불렀지만, (11절) 예수께서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추방된 자들, 반역자들, 거룩한 것을 미워하는 자들이며 하느님의 적이었다. (막 1:25 연구 노트 참조) 이와 비슷하게, “점치는 악귀”가 한 소녀를 조종하여 바울과 실라가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종들”이자 “구원의 길”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리게 했을 때 바울은 그 악귀를 소녀에게서 쫓아냈다.—행 16:16-18.
자신을 알리지 말라고: 막 3:12 연구 노트 참조.
예언자 이사야를 통해 하신 이런 말씀이 성취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마 1:22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께서 예언자를 통해 하신 이런 말씀이 성취되기 위한 것이었다: 마태복음에는 이와 유사한 표현이 여러 번 나온다. 예수께서 약속된 메시아로서 하시는 역할을 유대인 독자들에게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다.—마 2:15, 23; 4:14; 8:17; 12:17; 13:35; 21:4; 26:56; 27:9.
보라!: 마 1:23 연구 노트 참조.
내가 승인한: 또는 “내 영혼이 승인한”. 사 42:1에서 인용한 이 표현에서 히브리어 네페시가 그리스어 프시케로 번역되었다. 두 단어 모두 종종 “영혼”이라고 번역된다. (용어 설명 “영혼” 참조) 또한 여기서 “승인한”은 “매우 좋아하는”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마 3:17 연구 노트 참조.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 또는 “그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자이다; 그는 내가 매우 기뻐하는 자이다”. 마 12:18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구절은 약속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한 사 42:1을 인용한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에 관해 선언하신 것은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마 12:18 연구 노트 참조.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온전히 이룰: 또는 “승리로 이끌”. 이 표현에 사용된 그리스어 니코스가 고전 15:55, 57에서는 “승리”로 번역되었다.
연기 나는 심지: 일반 가정에서는 진흙으로 구워 만든 등잔에 올리브기름을 담아 불을 밝혔다. 아마로 만든 심지가 기름을 빨아올려 불꽃이 타오르게 했다. “연기 나는 심지”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불씨는 살아 있지만 불꽃이 약해지거나 사그라져서 연기가 나는 심지를 가리킬 수 있다. 사 42:3의 예언은 예수께서 동정심을 나타내실 것임을 즉 그분이 비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이 가진 마지막 희망의 불씨를 결코 끄지 않으실 것임을 알려 준다.
베엘세붑: 바알세붑의 변화형인 것 같다. 바알세붑은 “파리들의 주인”이라는 의미로, 에그론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숭배한 바알을 가리킨다. (왕하 1:3) 일부 그리스어 사본은 베엘제불 또는 베에제불이라는 다른 형태의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 표현은 “높은 거처(처소)의 주인”을 의미할 수 있다. 또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 히브리어 단어인 제벨(똥)을 연상시키려고 발음이 비슷한 말을 사용한 것이라면 “똥의 주인”이라는 의미일 수도 있다. 마 12:24에 나오는 것처럼, 이 말은 악귀들의 군왕 즉 통치자인 사탄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베엘세붑: 사탄을 가리키는 명칭.—마 10:25 연구 노트 참조.
집안: 직역하면 “집”. 그리스어 원어는 가족이나 더 넓은 의미의 집안을 가리킬 수 있다.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 왕궁에 속한 사람들 전체를 지칭하기도 한다. (행 7:10; 빌 4:22) 이 단어는 헤롯 왕조나 카이사르 왕조와 같은 통치하는 왕조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는데, 그러한 왕조에서는 내부 분열이 자주 일어났고 그로 인해 파멸적인 결과를 맞는 경우가 많았다. 이 구절에서는 “집안”과 도시가 짝을 이루는 대구 표현으로 사용되어, 분열이 일어나면 도시든 집안이든 할 것 없이 몰락하게 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사탄: “대항자; 적대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사탄에서 나온 이름.
사탄: 마 4:10 연구 노트 참조.
아들들: 이 경우에는 “추종자들; 제자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들: “당신들의 아들들”을 가리킨다.
당신들의 재판관이 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아들들이 한 일로 바리새인들의 주장이 타당하지 않음이 증명된다는 의미이다.
하느님의 손가락: 하느님의 성령을 가리킨다. 이전에 예수께서 하신 비슷한 말씀이 나오는 마태의 기록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누가의 이 기록에서는 예수께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악귀를 쫓아내는 것에 관해 말씀하시는데, 마태의 기록에서는 “하느님의 영으로” 즉 하느님의 활동력으로 악귀를 쫓아내는 것에 관해 말씀하신다.—마 12:28.
하느님의 영: 또는 “하느님의 활동력”. 후에 예수께서 하신 비슷한 말씀이 눅 11:20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그분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악귀를 쫓아내는 것에 관해 말씀하셨다.—눅 11:20 연구 노트 참조.
모독하는 것: 여기서 “모독하다”로 번역된 원어 표현은 하느님에 대해 혹은 신성한 것에 대해 모욕적인 말이나 명예를 훼손시키는 말 또는 욕설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 거룩한 영 즉 성령은 하느님에게서 나오므로, 영의 작용을 고의적으로 반대하거나 부인하는 것은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다. 마 12:24, 28에 나오는 것처럼,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영의 작용으로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고도 그 능력이 사탄 마귀에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세상 제도: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세상 제도는 사탄이 통치하는 불경건한 현 세상 제도를 가리키며 (고후 4:4; 엡 2:2; 딛 2:12) 오는 세상 제도는 하느님께서 통치하시며 “영원한 생명”이 약속되어 있는 세상 제도를 의미한다. (눅 18:29, 30) 예수께서는 성령을 모독하면 이 두 세상 제도 어디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뱀들이여, 독사의 자식들이여: 영적인 의미에서, “원래의 뱀”인 사탄은 참숭배를 반대하는 자들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계 12:9) 따라서 예수께서 이 종교 지도자들을 “뱀들이여, 독사의 자식들이여”라고 부르신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요 8:44; 요1 3:12) 그들의 악은 사람들에게 영적으로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침례자 요한도 “독사의 자식들이여”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마 3:7.
독사의 자식들: 마 23:33 연구 노트 참조.
간음하고: 또는 “불충실하고”. 영적인 의미에서 간음이란, 계약을 통해 하느님과 결합해 있는 사람들이 그분께 불충실한 것을 가리킨다. 육적 이스라엘은 거짓 종교 관습들을 행함으로 율법 계약을 어겨 영적 간음을 범했다. (렘 3:8, 9; 5:7, 8; 9:2; 13:27; 23:10; 호 7:4) 그와 비슷한 이유에서 예수께서는 당시의 유대인들을 간음하는 세대라고 질책하셨다. (마 12:39; 16:4) 새 계약 안에 있는 그리스도인이 현 세상 제도와 관련을 맺어 자신을 더럽힌다면 영적 간음을 범하는 것이다. 이 원칙은 여호와께 헌신한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다.—약 4:4.
간음하는: 영적 간음 즉 하느님께 불충실한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막 8:38 연구 노트 참조.
요나의 표징: 요나는 자신이 약 3일 동안 물고기의 배 속에 있다가 구출된 것을 무덤에서 부활되는 것에 비했다. (욘 1:17–2:2) 예수께서 문자적인 무덤에서 부활되시는 것은 요나가 물고기의 배 속에서 구출된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3일째 되는 날 부활되셨을 때에도 완고하고 비평적인 사람들은 그분에게 믿음을 나타내지 않았다.
밤낮 3일: 성경의 다른 기록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표현이 반드시 만 3일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24시간이 안 되어도 하루로 간주될 수 있었다.—창 42:17, 18; 왕상 12:5, 12; 마 27:62-66; 28:1-6.
남방 여왕: 스바의 여왕을 가리킨다. 그의 왕국은 아라비아 남서부에 있었던 것 같다.—왕상 10:1.
형제들: 예수의 이부동생들을 가리킨다. 마 13:55과 막 6:3에 그들의 이름이 나온다.—“형제”라는 표현의 의미에 관해서는 마 13:55 연구 노트 참조.
형제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아델포스는 영적 형제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예수의 이부동생들, 즉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다른 아들들을 가리킨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에도 계속 동정녀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아델포스가 사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사촌”을 가리킬 때 아넵시오스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골 4:10) 또한 눅 21:16에는 아델포스의 복수형과 싱게네스(사촌 등의 친족을 가리키는 단어)의 복수형이 함께 나온다. 이러한 예들을 볼 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가족 관계를 알려 주는 단어들이 구분되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 말했다: 일부 고대 사본에는 이 구절이 나오지 않는다.
보십시오!: 마 1:23 연구 노트 참조.
보십시오!: 마 1:23 연구 노트 참조.
보십시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입니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제자들 즉 영적인 형제들과 자신의 친형제들을 구분하신 것인데, 그분의 친형제들은 그분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것 같다. (요 7:5) 예수께서는 친족들과의 유대가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그분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신에게 훨씬 더 소중하다는 점을 보여 주신 것이다.—마 12:50.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미디어

예수의 제자들이 따서 먹은 것은 삽화에 나오는 것과 같은 밀 낟알이었을 것이다.

이 삽화는 갈릴리 바다에서 북동쪽으로 약 10킬로미터 떨어진 가믈라에서 발견된 1세기 회당의 몇 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그린 것이다. 이 삽화를 통해 고대 회당의 모습이 어떠했을지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