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1-50

9  예수께서 또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얼마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왕국이 권능을 가지고 이미 온 것을 틀림없이 보게 될 것입니다.”+  6일 뒤에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올라가셨다. 그분이 그들 앞에서 변형되셨는데,+  그분의 겉옷은 세상의 어떤 사람도 더 희게 빨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또한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했다. “랍비, 우리가 여기 있어서 좋습니다. 우리가 천막 셋을, 하나는 선생님을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세우게 해 주십시오.”  사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들이 몹시 두려워했던 것이다.  그러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었으며, 구름 속에서 “이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그 순간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예수 외에는 그들 곁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그들이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고 엄히 명하셨다.+ 10  그들은 그 말씀을 마음에 간직했지만,* 그분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하고 서로 이야기했다. 11  그리고 그분에게 “왜 서기관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합니까?” 하고 물었다.+ 12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참으로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시킵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을 겪고+ 멸시를 받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은 어찌 된 일입니까? 13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사실 엘리야에+ 관해 기록된 대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그를 자기들 마음대로 대했습니다.”+ 14  그들이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제자들이 많은 무리에 둘러싸여 서기관들과 논쟁하고 있었다.+ 15  모든 무리가 그분을 보자 몹시 놀라며 달려와 인사했다. 16  그래서 그분이 그들에게 “무슨 일로 그들과 논쟁하고 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17  그러자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그분에게 대답했다. “선생님, 제 아들이 말 못 하게 하는 영이 들려서 선생님께 데려왔습니다.+ 18  어디서든 그 영이 아이를 사로잡으면 땅에 쓰러뜨립니다. 그러면 아이는 입에 거품을 물고 이를 갈며 기운을 잃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영을 쫓아내 달라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19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언제까지 여러분과 함께 있어야 합니까? 언제까지 여러분에 대해 참아야 합니까? 그를 내게 데려오십시오.”+ 20  그래서 그들은 아이를 그분에게 데려왔다. 그 영은 그분을 보자 즉시 아이에게 경련을 일으켰고,+ 아이는 땅에 쓰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계속 뒹굴었다. 21  예수께서는 아이의 아버지에게 “이 아이가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그가 대답했다. “어릴 적부터입니다. 22  영이 자주 아이를 불 속에도 던지고 물 속에도 던져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하실 수만 있다면, 우리를 불쌍히 여겨 도와주십시오.” 23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할 수만 있다면’이라니요! 믿는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24  즉시 아이의 아버지는 “제가 믿습니다! 제가 믿음이 부족하니 도와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25  그때에 예수께서는 무리가 몰려오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영을 꾸짖으며 말씀하셨다.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는 영아, 네게 명령하는데,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그에게 들어가지 마라!”+ 26  그러자 그 영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 여러 번 경련을 일으킨 뒤에 나갔다. 아이가 죽은 것처럼 보이자, 많은 사람이 “아이가 죽었다!” 하고 말했다. 27  그러나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아이가 일어섰다. 28  그분이 집에 들어가신 뒤에 제자들이 따로 그분에게 “왜 우리는 그 영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29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런 영은 오직 기도로만 쫓아낼 수 있습니다.” 30  그들이 그곳을 떠나 갈릴리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그분은 그것이 누구에게도 알려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다. 31  그분이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던 것이다. “‘사람의 아들’은 배반당하여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그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죽임을 당했다가 3일 뒤에 살아날 것입니다.”+ 32  하지만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분에게 묻기를 두려워했다. 33  그들이 가버나움으로 갔다. 그분은 집에 계실 때에 그들에게 “길에서 무슨 일로 논쟁했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34  그들은 잠자코 있었다. 길에서 누가 더 큰지를 놓고 서로 논쟁했기 때문이다. 35  그분은 앉으신 다음 열두 제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모든 사람의 마지막이 되어 모두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6  그리고 어린아이 하나를 데려와 그들 가운데 세우고 팔로 안으며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8  요한이 그분에게 말했다. “선생님, 어떤 사람이 선생님의 이름을 사용하여 악귀를 쫓아내는 것을 우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서 그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막으려고 했습니다.”+ 3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막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내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고 나서 곧바로 나에 대해 나쁘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40  누구든지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입니다.+ 41  누구든지 여러분이 그리스도에게 속해 있다는 이유로 여러분에게 물 한 잔을 주어 마시게 하는 사람은,+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결코 자기의 상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42  그러나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중 하나라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연자 맷돌이 목에 달린 채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43  만일 당신의 손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것을 잘라 버리십시오. 두 손을 가지고 게헨나,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44  —— 45  당신의 발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것을 잘라 버리십시오. 두 발을 가지고 게헨나에 던져지는 것보다+ 저는 사람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46  —— 47  당신의 눈이 당신을 걸려 넘어지게 한다면, 그것을 던져 버리십시오.+ 두 눈을 가지고 게헨나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눈만 가지고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48  게헨나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 49  소금을 뿌리듯 모두에게 불이 쏟아질 것입니다.+ 50  소금은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소금이 짠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짜게 하겠습니까?+ 여러분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각주

달리 번역하면 “그 일을 비밀로 해 두었지만”.
또는 “제 믿음이 부족한 면을 도와주십시오!” 직역하면 “제 믿음의 부족을 도와주십시오!”
또는 “강력한 일”.

연구 노트

카이사레아 빌립보: 요르단강 발원지에 위치한 도시. 해발 350미터에 있는 이 도시는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40킬로미터 떨어져 있었으며 헤르몬산 남서쪽 기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헤롯 대왕의 아들인 분봉왕 빌립이 로마 황제에게 영예를 돌리기 위해 이 도시에 카이사레아라는 이름을 붙였다. 같은 이름을 가진 항구 도시와 구분하기 위해 “빌립의 카이사레아”라는 뜻의 카이사레아 빌립보라고 부르게 되었다.—부록 나10 참조.

변형되셨는데: 또는 “변화되셨는데; 모습이 바뀌셨는데”. 롬 12:2에도 동일한 그리스어 동사(메타모르포오)가 나온다.

높은 산: 카이사레아 빌립보에서 가까운 헤르몬산을 가리키는 것 같다. (막 8:27. 마 16:13 연구 노트 참조) 이 산은 높이가 해발 2814미터에 이른다. 예수께서는 헤르몬산의 정상이 아니라 어느 산등성이에서 변형되셨을 것이다.—부록 나10 참조.

변형되셨는데: 마 17:2 연구 노트 참조.

랍비: 문자적으로 “나의 위대한 분”을 의미한다. “위대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라브에서 유래했다. 일반적으로 “랍비”는 “선생님”을 의미했다.—요 1:38.

하늘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려왔다: 복음서 기록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첫 번째이다.—막 9:7; 요 12:28 연구 노트 참조.

음성: 복음서 기록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마 3:16, 17; 막 1:11; 눅 3:22에 나오는데 기원 29년에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였다. 두 번째는 마 17:5; 막 9:7; 눅 9:35에 나오며 기원 32년에 예수께서 변형되신 일과 관련이 있다. 세 번째는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이 일은 기원 33년에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기 얼마 전에 있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청하자 여호와께서 그에 대해 응답하신 것이다.

음성: 복음서 기록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두 번째이다.—막 1:11; 요 12:28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의 아들’: 예수께서 자신을 가리킬 때 사용하신 표현. 복음서에 약 80회 나온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실제로 여자에게서 태어난 사람이라는 점과 자신이 아담을 대신할 수 있는 적합한 사람으로서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속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고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 같다. (롬 5:12, 14, 15) 또한 이 표현은 예수가 메시아 즉 그리스도임을 밝혀 주었다.—단 7:13, 14. 용어 설명 참조.

‘사람의 아들’: 마 8:20 연구 노트 참조.

못 하게 하는 영: 직역하면 “말 못 하는 영”. 사람이 말을 못 하게 만드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

간질: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달빛에 미치다”(오래된 일부 번역판에는 “정신병자”로 되어 있음)를 의미한다. 하지만 마태는 이 표현을 의학적인 의미로 사용한 것이지, 미신에 영향을 받아 이 병을 달의 특정한 위상과 관련지은 것은 아니다. 마태, 마가, 누가가 묘사하는 증상들은 간질 환자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임에 틀림없다. 이 병은 “뇌전증”이라고도 불린다.

경련: 이 경우에는 간질 증상이 악귀의 활동과 관련이 있었다. 하지만 성경은 간질을 앓는 일반적인 원인이 악귀에 들렸기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듣지 못하거나 말하지 못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막 9:17, 25 비교) 마 4:24에서는 사람들이 예수께 데려온 병든 이들을 묘사할 때 “악귀 들린 이들간질에 걸린 이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함으로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구분한다.—마 4:24 연구 노트 참조.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게 하는 영: 직역하면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 사람이 말을 못 하고 듣지 못하게 만드는 악한 영을 가리킨다.

일부 고대 사본에는 이 구절에 “하지만 이런 부류는 기도와 단식이 아니고는 나가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들어 있다. (막 9:29 연구 노트 참조) 그러나 이 말은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사본들에는 나오지 않으므로 영감받은 성경의 일부가 아닌 것 같다.—부록 가3 참조.

기도로만: 일부 사본에는 “기도와 단식으로만”이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신뢰할 만한 사본에는 “단식”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다. 그 표현은 단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단식을 실제로 행했던 필사자들에 의해 삽입된 것 같다. 그들은 초기 사본들에 “단식”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는 여러 구절에 그 표현을 첨가하였다.—마 17:21 연구 노트 참조.

걸림돌: 그리스어 원어 스칸달론은 원래 덫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덫 안에 있는, 미끼를 놓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넓어져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도덕적인 면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는 행동 또는 환경을 가리킨다. 마 18:8, 9에서는 스칸달론과 어근이 같은 동사 스칸달리조가 “걸려 넘어지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은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연자 맷돌: 또는 “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 직역하면 “나귀의 맷돌”. 이러한 맷돌은 지름이 1.2-1.5미터 정도로, 매우 무거워서 나귀가 돌려야 했다.

걸려 넘어지게 하는: 또는 “앞에 걸림돌을 놓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비유적인 의미에서 걸려 넘어지거나 다른 사람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문맥에서 이 표현은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다른 사람의 믿음에 장애물을 놓아 그가 예수를 믿고 따르지 못하게 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이 죄를 짓게 하는 것 또는 그에게 올무가 되는 것을 의미할 수도 있다.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도덕에 관한 하느님의 법을 범하거나 믿음을 잃거나 거짓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 (마 18:7 연구 노트 참조) 이 작은 이들이라는 표현은 세상의 관점에서는 보잘것없어 보일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보시기에는 소중한 예수의 제자들을 가리킨다.

연자 맷돌: 또는 “나귀가 돌리는 큰 맷돌”. 마 18:6 연구 노트 참조.

걸림돌: 그리스어 원어 스칸달론은 원래 덫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일부 학자들은 이 단어가 덫 안에 있는, 미끼를 놓는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이 말은 점차 의미가 넓어져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은 무엇이든 가리키게 되었다. 비유적인 의미로는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거나, 도덕적인 면에서 걸려 넘어지게 하거나, 죄를 짓게 하는 행동 또는 환경을 가리킨다. 마 18:8, 9에서는 스칸달론과 어근이 같은 동사 스칸달리조가 “걸려 넘어지게 하다”로 번역되었는데, 이 표현은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게헨나: 이 단어는 “힌놈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했다. 이 골짜기는 고대 예루살렘의 남쪽에서 남서쪽까지 뻗어 있었다. (부록 나12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 지도 참조) 예수 시대에는 이 골짜기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으므로, “게헨나”는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적절한 표현이었다.—용어 설명 참조.

걸려 넘어지게: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마 18:7 연구 노트 참조.

잘라 버리십시오: 예수께서 과장법을 사용하여 하신 말씀이다. 그분은 손이나 발, 눈처럼 소중한 것이라 해도 우리가 그것 때문에 걸려 넘어져 불충실하게 될 수 있다면 그것을 기꺼이 포기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분명 예수께서는 자해 행위를 권장하신 것이 아니었으며, 손이나 발이나 눈이 어떤 식으로인가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는 뜻으로 그 말씀을 하신 것도 아니었다. (막 9:45, 47) 예수의 말씀의 의미는 사람이 자신의 몸의 지체를 사용해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지체를 죽여야 한다는, 다시 말해 그 지체가 마치 몸에서 잘려 나가서 없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골 3:5 비교) 그분은 그 어떤 것도 생명을 얻는 데 방해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게헨나: 마 5:22 연구 노트용어 설명 참조.

일부 사본에는 이 구절에 “거기에서는 그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들어 있다. 하지만 주요 초기 사본들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비슷한 말이 48절에 나오는데, 그 구절에 이 말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증거에 따르면, 서기관이 48절에 나오는 말을 44절46절에도 포함시킨 것 같다.—부록 가3 참조.

걸려 넘어지게: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마 18:7 연구 노트 참조.

게헨나: 이 단어는 “힌놈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했다. 이 골짜기는 고대 예루살렘의 남쪽에서 남서쪽까지 뻗어 있었다. (부록 나12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 지도 참조) 예수 시대에는 이 골짜기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으므로, “게헨나”는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적절한 표현이었다.—용어 설명 참조.

걸려 넘어지게: 막 9:43 연구 노트 참조.

게헨나: 마 5:22 연구 노트용어 설명 참조.

일부 사본에는 이 구절에 “거기에서는 그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들어 있다. 하지만 주요 초기 사본들에는 이 말이 나오지 않는다. 비슷한 말이 48절에 나오는데, 그 구절에 이 말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다. 증거에 따르면, 서기관이 48절에 나오는 말을 44절46절에도 포함시킨 것 같다.—부록 가3 참조.

걸려 넘어지게: 이 문맥에서 그리스어 단어 스칸달리조는 “올무가 되다; 죄를 짓게 하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마 18:7 연구 노트 참조.

게헨나: 이 단어는 “힌놈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했다. 이 골짜기는 고대 예루살렘의 남쪽에서 남서쪽까지 뻗어 있었다. (부록 나12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 지도 참조) 예수 시대에는 이 골짜기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으므로, “게헨나”는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적절한 표현이었다.—용어 설명 참조.

걸려 넘어지게: 막 9:43 연구 노트 참조.

게헨나: 마 5:22 연구 노트용어 설명 참조.

게헨나: 이 단어는 “힌놈 골짜기”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게힌놈에서 유래했다. 이 골짜기는 고대 예루살렘의 남쪽에서 남서쪽까지 뻗어 있었다. (부록 나12 “예루살렘과 주변 지역” 지도 참조) 예수 시대에는 이 골짜기가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으므로, “게헨나”는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적절한 표현이었다.—용어 설명 참조.

게헨나에서는: 직역하면 “거기에서는”. 앞 구절에 언급된 “게헨나”를 가리킨다. 마 5:22 연구 노트에서 알려 주는 것처럼, 예수 시대에 힌놈 골짜기(“게헨나”라는 표현은 이 이름에서 유래했다)는 쓰레기를 태우는 곳이었다. 예수께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습니다라고 하셨을 때 사 66:24에 나오는 예언을 염두에 두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 예언은 살아 있는 사람이 겪을 고초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 반역하는 “사람들의 시체”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언급한 것이다. 불이 닿지 않는 곳에는 벌레 즉 구더기가 생겨나 불로 없어지지 않은 것을 다 먹어 치울 것이었다. 이 점을 볼 때 예수께서는 하느님께 불리한 심판을 받는 사람이 고초를 당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라 완전히 멸망될 것이라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소금을 뿌리듯 ··· 불이 쏟아질: 이 비유적인 표현은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1) 이 표현이 예수께서 막 9:43-48에서 방금 하신 말씀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게헨나의 불에 의해 멸망되는 것을 가리킬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사해 인근에 있던 소돔과 고모라에 “유황과 불을 비처럼 내리셨을” 때 일어난 일을 염두에 두고 이 표현을 사용하신 것일 수 있다. (창 19:24) 이 표현을 그렇게 이해할 경우 “소금을 뿌리듯 모두에게 불이 쏟아질 것입니다”라는 예수의 말씀은, 손이나 발이나 눈 때문에 걸려 넘어져 불충실한 행동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그렇게 되게 만드는 모든 사람에게 소금이 뿌려지듯 게헨나의 불 즉 영원한 멸망이 쏟아질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2) “소금을 뿌리듯 ··· 불이 쏟아질”이라는 표현이 다음에 나오는 막 9:50의 내용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익을 주고 그들이 서로 평화로운 관계를 누리게 해 주는 불에 관해 말씀하신 것일 수 있다. 이 표현을 그렇게 이해할 경우, 예수의 말씀은 모든 사람 즉 그분의 모든 제자들이 온갖 거짓과 오류를 태워 없애는 여호와의 말씀에 의해, 그리고 여호와에 대한 충성과 정성을 시험하고 순결해지게 하는 박해와 시련의 불에 의해 정련되고 깨끗해질 것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렘 20:8, 9; 23:29; 벧전 1:6, 7; 4:12, 13) 예수께서는 여기 언급된 두 가지 점을 모두 염두에 두고 그 말씀을 하셨을 가능성이 크다.

소금: 식품의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데 사용되는 물질. 이 문맥에서 예수께서는 부패하는 것을 막는 소금의 특성에 초점을 맞추신 것 같다. 예수의 제자들은 사람들이 영적•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도록 도와줌으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소금: 식품의 부패를 막고 맛을 내는 데 사용되는 물질.—마 5:13 연구 노트 참조.

짠맛을 잃으면: 또는 “힘을 잃으면”. 예수 시대에 소금은 주로 사해 지역에서 났으며 다른 물질이 섞여 있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염분이 빠져나가면 아무 맛도 없고 쓸모가 없는 물질만 남게 되었다.

여러분 속에 소금을 두고: 여기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소금”은, 품위 있고 사려 깊고 건전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말과 행동을 하게 하는 그리스도인의 특성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도 바울도 골 4:6에서 “소금”이라는 말을 비슷한 의미로 사용한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이 누가 가장 큰지에 관해 논쟁한 것을 염두에 두고 이 말씀을 하셨을 수 있다. 비유적인 소금은 우리의 말이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기 더 쉬운 것이 되게 해 주며, 따라서 다른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미디어

헤르몬산
헤르몬산

헤르몬산은 높이가 2814미터로 이스라엘 인근에서 가장 높은 산이며 카이사레아 빌립보 근처에 있다. 헤르몬산의 눈 덮인 봉우리들에서 수증기가 응결되면서 생기는 많은 이슬은 긴 건기 동안 초목들의 생명을 유지시켜 준다. (시 133:3) 헤르몬산의 눈이 녹은 물은 요르단강의 주된 수원이다. 헤르몬산은 예수의 변형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있는 곳 중 하나이다.—마 17:2.

훌라 계곡 자연 보호 구역에서 본 헤르몬산
훌라 계곡 자연 보호 구역에서 본 헤르몬산

약속의 땅 북쪽 경계에 자리 잡고 있는 헤르몬산은 뚜렷하게 구분되는 몇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 가장 높은 봉우리는 해발 2814미터이다. 이 봉우리들은 안티레바논산맥의 남쪽 부분을 형성한다. 예수께서 변형되신 곳은 헤르몬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맷돌의 위짝과 아래짝
맷돌의 위짝과 아래짝

사진에 나오는 것과 같은 큰 맷돌은 나귀 같은 가축을 이용해 돌렸으며, 곡식을 갈거나 올리브를 으깨는 데 사용했다. 위짝의 지름이 1.5미터에 달할 정도로 큰 경우도 있었을 것이며, 그런 위짝을 그보다 더 큰 아래짝에 올려놓고 맷돌질을 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힌놈 골짜기
오늘날의 힌놈 골짜기

(1) 힌놈 골짜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게헨나로 불린다. (2) 성전 산. 1세기에 유대인의 성전 건물은 이곳에 있었다. 오늘날 성전 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축물은 ‘바위의 돔’이라고 하는 이슬람교 사원이다.—부록 나12 지도 참조.

사해 연안의 소금
사해 연안의 소금

오늘날 사해(염해, 소금 바다)는 전 세계의 다른 바다들보다 염분의 농도가 약 9배 높다. (창 14:3) 사해 물이 증발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충분히 사용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양의 소금이 생산되었다. 하지만 이 소금은 다른 물질이 섞여 있어서 질이 좋지 않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니키아인들을 통해 소금을 구했을 수도 있다. 페니키아인들은 지중해 물을 증발시켜 소금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경에서 소금은 맛을 내는 물질로 언급된다. (욥 6:6) 예수께서는 일상생활과 관련된 것들을 소재로 한 비유를 능숙하게 사용하셨는데, 그중에는 소금을 소재로 한 중요한 영적 교훈도 있었다. 예를 들어, 그분은 산상 수훈에서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이 땅의 소금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제자들이 소금과 같이 보존하는 역할을 하여 사람들이 영적·도덕적으로 부패하지 않게 한다는 뜻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