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6:1-56

6  예수께서는 그곳을 떠나 고향으로 가셨고,+ 제자들도 그분을 따라갔다.  안식일이 되자 그분이 회당에서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듣고 있던 많은 사람이 크게 놀라 말했다. “저 사람이 어디서 저런 것을 얻었을까?+ 왜 그가 저런 지혜를 받았으며 저런 기적*이 그의 손을 통해 일어나는 걸까?+  저 사람은 목수이고+ 마리아의 아들이며+ 야고보와+ 요셉과 유다와 시몬의 형제가+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들은 그분 때문에 걸려 넘어졌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자기 고향과 친족과 집에서는 존경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분은 그곳에서 몇몇 병자에게 손을 얹어 고쳐 주신 것 말고는 그 어떤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참으로, 그분은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셨다. 그리고 마을들을 두루 다니면서 가르치셨다.+  그분은 열두 제자를 불러 둘씩 보내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을 제압하는 권한을 주셨다.+  또한 여행을 할 때에 지팡이 외에는 빵이든 식량 자루든 전대의 돈*이든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고 지시하시고+  신은 신되 옷도 두 벌은* 입지 말라고 하셨다. 10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이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그곳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무르십시오.+ 11  또한 어느 곳에서든 여러분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여러분의 말을 듣지도 않거든, 그곳을 떠날 때에 그들에 대한 증거로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십시오.”+ 12  그래서 그들은 길을 떠나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전파했다.+ 13  그리고 많은 악귀를 쫓아내며+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그들을 고쳐 주었다. 14  헤롯 왕이+ 이 일에 대해 듣게 되었다.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침례자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켜진 것이다. 그래서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그에게 있는 것이다” 하고 말했다.+ 15  그러나 “그는 엘리야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옛 예언자들과 같은 예언자다”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16  헤롯은 그런 말을 듣고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일으켜졌구나” 하고 말했다. 17  헤롯은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 때문에, 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붙잡아 묶어서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헤롯이 그 여자와 결혼했는데,+ 18  요한이 헤롯에게 “형제의 아내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거듭 말했기 때문이다.+ 19  그래서 헤로디아는 그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고자 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20  헤롯이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그를 두려워하며 안전하게 지켜 주었기 때문이다.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듣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몹시 난처해하면서도 계속 기꺼이 들었다. 21  그런데 기회가 왔다. 헤롯이 자기 생일에+ 고관들과 군대 대장들과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서 만찬을 베풀었다.+ 22  그때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또 그와 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을 기쁘게 해 주었다. 왕이 소녀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청하여라. 내가 들어주겠다.” 23  그는 소녀에게 “네가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하고 맹세까지 했다. 24  그러자 소녀가 나가서 어머니에게 “제가 무엇을 달라고 할까요?” 하고 물었다. 그 여자는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 하고 대답했다. 25  그 즉시 소녀는 왕에게 급히 가서 “바로 지금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저에게 주셨으면 합니다” 하고 요청했다.+ 26  왕은 몹시 괴로웠지만, 자기가 맹세한 것도 있고 또 손님*들도 있어서 소녀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27  그래서 곧바로 호위병을 보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호위병이 가서 감옥에서 그의 목을 베어 28  그 머리를 쟁반에 담아 와서 소녀에게 주자, 소녀는 그것을 어머니에게 주었다. 29  요한의 제자들이 그 일에 대해 듣고 와서 그의 시신을 거두어 무덤에 뉘었다. 30  사도들이 예수 곁에 모여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했다.+ 31  그러자 그분이 그들에게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오가는 사람이 많아서 식사할 겨를도 없었기 때문이다.+ 32  그래서 그들은 따로 있으려고 배를 타고 외딴곳으로 떠나갔다.+ 33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이 가는 것을 보았으며 많은 사람이 그것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모든 도시에서 나와 함께 달려가서 그들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했다. 34  그분은 배에서 내려 많은 무리를 보고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35  늦은 시간이 되자 제자들이 그분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곳은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36  저 사람들을 보내어 근처에 있는 시골 동네나 마을로 가서 음식을 사 먹게 하시지요.”+ 37  그분이 그들에게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이 말했다.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어치 빵을 사다가 사람들에게 주어 먹게 하라는 말씀이십니까?”+ 38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에게 빵이 몇 개나 있습니까? 가서 알아보십시오!” 그들은 알아본 뒤에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가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39  그러자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푸른 풀밭에 무리를 지어 앉으라고 지시하셨다.+ 40  그래서 그들은 100명씩 또는 50명씩 무리를 지어 앉았다. 41  그분은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축복의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그것을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하셨다. 또한 생선 두 마리도 모두를 위해 나누셨다. 42  그래서 그들 모두가 배불리 먹었다. 43  그리고 빵 조각을 거두었더니 생선을 제외하고도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찼다.+ 44  빵을 먹은 사람은 남자가 5000명이었다. 45  그분은 곧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벳새다 쪽 건너편 물가로 먼저 가라고 하시고, 그동안에 자신은 무리를 보내셨다.+ 46  그분은 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신 뒤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고 그분은 육지에 혼자 계셨다.+ 48  그런데 역풍 때문에 제자들이 노를 젓느라 애쓰는 것을 보시고, 그분은 밤 4경쯤에 바다 위를 걸어 그들 쪽으로 오셨다. 그러나 그들 곁을 지나쳐 가려고 하셨다. 49  그분이 바다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그들은 ‘환영*이다!’ 하고 생각하여+ 소리를 질렀다. 50  그들이 모두 그분을 보고 당황했던 것이다. 그분은 즉시 그들에게 “용기를 내십시오! 납니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51  그리고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잠잠해졌다.+ 그래서 그들은 몹시 놀랐다. 52  그들이 빵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여전히 마음이 둔해서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53  그들은 건너가 게네사렛 땅으로 가서 근처에 닻을 내렸다.+ 54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이 그분을 알아보고, 55  그 지방을 두루 뛰어다니며 병든 사람들을 들것에 눕혀 그분이 계시다는 곳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56  마을이든 도시든 시골이든 그분이 들어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장터에 데려다 놓았고, 그들은 그분의 겉옷 술이라도 만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리고 만진 사람들은 모두 나았다.*

각주

또는 “강력한 일”.
또는 “강력한 일”.
직역하면 “구리”.
또는 “여벌의 옷은”.
또는 “강력한 일”.
또는 “그가 식사에 초대한 손님; 그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사람”.
또는 “식탁에 앉아 있는 사람”.
또는 “헛것”.
또는 “구원을 받았다.”

연구 노트

고향: 직역하면 “아버지의 고장”. 나사렛을 가리킨다. 그분의 직계 가족은 나사렛 출신이었다.

고향: 마 13:54 연구 노트 참조.

목수의 아들: “목수”로 번역된 그리스어 텍톤은 건축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자를 두루 일컫는 표현이다. 나무를 다루는 사람을 가리킬 경우, 이 표현은 집 짓는 일 또는 목재로 가구나 그 밖의 물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기원 2세기의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예수께서 “사람들 가운데 계실 때 쟁기나 멍에를 만드는 목수 일을 하셨다”고 기록했다. 고대 언어로 된 초기 성경 번역본들도 그분이 목수이셨음을 지지한다.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이라고 알려지셨을 뿐 아니라 “목수”라고도 불리셨다. (막 6:3) 그분은 양아버지 요셉에게서 목수 일을 배우셨을 것이다. 그 당시 남자아이들은 흔히 12세에서 15세 사이에 일을 배우기 시작하여 여러 해 동안 기술을 익혔다.

야고보: 예수의 이부동생. 행 12:17(연구 노트 참조)과 갈 1:19에 나오는 야고보와 동일 인물일 것이며 야고보서를 기록했을 것이다.—약 1:1.

유다: 예수의 이부동생. 유다서를 기록했을 것이다.—유 1.

목수: 예수께서는 “목수의 아들”이라고도 불리셨고 “목수”라고도 불리셨다. 그 점은 예수께서 열두 살에 성전에 가신 후부터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기 전까지 어떤 삶을 사셨을지 짐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 (마 13:55 연구 노트 참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에 나오는 기록들은 서로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한다.

마리아의 아들: 예수를 ‘마리아의 아들’로 언급한 곳은 이 구절뿐이다. 요셉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보아, 그는 이미 사망한 것 같다. 그러한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예수께서는 요한에게 자신이 죽은 뒤에 어머니 마리아를 돌보아 달라고 부탁하셨다.—요 19:26, 27.

야고보: 마 13:55 연구 노트 참조.

유다: 마 13:55 연구 노트 참조.

형제: 성경에서 그리스어 아델포스는 영적 형제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여기서는 예수의 이부동생들, 즉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태어난 다른 아들들을 가리킨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에도 계속 동정녀로 살았다고 생각하는 일부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아델포스가 사촌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는 “사촌”을 가리킬 때 아넵시오스라는 다른 단어를 사용한다. (골 4:10) 또한 눅 21:16에는 아델포스의 복수형과 싱게네스(사촌 등의 친족을 가리키는 단어)의 복수형이 함께 나온다. 이러한 예들을 볼 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가족 관계를 알려 주는 단어들이 구분되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어떤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 예수께서 많은 기적을 행하실 수 없었던 것은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황이 적합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사렛 사람들에게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곳에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 것이다. (마 13:58) 의심을 품고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느님께서 주신 능력을 낭비해서는 안 되었다.—마 10:14; 눅 16:29-31 비교.

가르치고 ··· 전파하며: 가르치는 일은 전파하는 일과 다르다. 가르치는 사람은 단지 선포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훈하고 설명하고 설득력 있는 논증을 사용하며 증거를 제시한다.—마 3:1; 28:20 연구 노트 참조.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셨다: 예수께서 자신의 “고향” 사람들이 나타낸 반응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 기록한 복음서 필자는 마가뿐이다. (마 13:57, 58. 또한 “마가복음 소개” 참조) “크게 놀라셨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사람들이 예수의 기적과 가르침에 대해 어떻게 느꼈는지를 묘사하는 데 주로 사용되지만, (막 5:20; 15:5) 예수께서 보이신 반응을 묘사하는 데도 두 차례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한 장교가 큰 믿음을 나타냈을 때 크게 놀라셨다. (마 8:10; 눅 7:9) 그리고 이 구절에서 나사렛 사람들 때문에 크게 놀라셨는데, 그분이 느끼신 감정에는 그들의 믿음의 부족에 대한 실망감이 섞여 있었다.

마을들을 두루 다니면서: 예수께서 세 번째 갈릴리 전파 여행을 시작하셨음을 의미한다. (마 9:35; 눅 9:1) “두루”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원; 동그라미”를 의미하는데, 이 표현은 예수께서 갈릴리 전역을 빠짐없이 다니셨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이 표현이 예수께서 전파 여행을 마치고 나서 그 여행을 시작한 장소로 다시 돌아오셨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하신 전파 활동의 중요한 특징은 가르치는 일이었다.—마 4:23 연구 노트 참조.

그곳에서 떠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무르십시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느 마을에 가든지 후대를 베푸는 집이 있으면 그 집에 머물고 “이 집 저 집으로 계속 옮겨 다니지 말라”고 가르치신 것이다. (눅 10:1-7) 더 편안한 거처를 제공하거나 더 많은 즐길 거리나 물질적인 것을 제공할 집주인을 찾아다니지 않음으로, 제자들은 전파할 사명을 그러한 것들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나타내야 했다.

발의 먼지를 털어 버리십시오: 이 행동은 제자들이 하느님의 심판으로 인해 그곳에 닥칠 결과에 대해 자신들에게 책임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와 비슷한 표현이 마 10:14과 눅 9:5에도 나온다. 마가와 누가는 그들에 대한 (“불리한”) 증거로라는 말을 함께 사용했다. 바울과 바나바는 피시디아 안티오크에서 이 지침대로 행동했다. (행 13:51) 고린도에서 바울은 그와 비슷한 동작인 옷을 터는 행동을 하면서 그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여러분의 피가 여러분의 머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나는 깨끗합니다.” (행 18:6) 그런 동작은 제자들에게 생소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독실한 유대인들은 이방 나라를 여행하고 돌아올 때면 유대인의 영토로 들어가기 전에 신발에 묻은 먼지를 부정하다고 여겨 털어 내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분명 그와는 다른 의미로 제자들에게 이러한 지침을 주셨을 것이다.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발라: 이것은 상징적인 행동이었다. 당시 사람들은 기름에 치료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눅 10:34 비교) 하지만 이 경우에 예수의 제자들은 기름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령에 의한 기적을 통해 병자들을 고쳐 준 것이었다.—눅 9:1, 6.

헤롯: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킨다.—용어 설명 참조.

지역 통치자: 또는 “분봉왕”. 로마 당국의 승인을 받아 다스리는 하급 지역 통치자나 지방 영주를 가리킨다.—마 14:1; 막 6:14 연구 노트 참조.

침례자: 또는 “물에 잠그는 자”. 이 구절과 막 6:14, 24에서는 그리스어 분사 호 밥티존이 사용되었으며 “침례를 주는 자”로 번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 6:25; 8:28과 마태복음 및 누가복음에서는 이 그리스어의 명사 형태인 밥티스테스가 사용되었다. 두 표현은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막 6:24, 25의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이 두 표현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3:1 연구 노트 참조.

헤롯 왕: 헤롯 대왕의 아들인 헤롯 안티파스를 가리킨다. (용어 설명 “헤롯” 참조) 마태와 누가는 로마가 헤롯 안티파스에게 공식적으로 부여한 칭호인 “분봉왕” 즉 “지역 통치자”를 사용한다. (마 14:1; 눅 3:1 연구 노트 참조) 헤롯 안티파스가 임명받아 다스린 지역은 갈릴리와 페레아였다. 하지만 그는 일반적으로 “왕”이라고 불렸다. 마태는 헤롯을 언급할 때 “왕”이라는 칭호를 한 번 사용했다. (마 14:9) 하지만 마가는 헤롯을 언급할 때 “왕”이라는 칭호만을 사용했다.—막 6:22, 25, 26, 27.

사람들은 ··· 말했다: 직역하면 “그들은 ··· 말했다”. 일부 사본에는 “그는 ··· 말했다”로 되어 있는데, 여기서 “그”는 헤롯을 가리킨다.

침례자: 막 1:4 연구 노트 참조.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 헤롯 안티파스는 이복형제 헤롯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에게 반하게 되었다. 그래서 헤로디아와 안티파스는 각자 배우자와 이혼한 뒤 결혼했다. 침례자 요한은 유대인의 법에 어긋나는 그러한 부도덕한 결합을 비난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다.

요한을 붙잡아 ··· 감옥에 가둔 일: 성경에서는 이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요한이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 요새에 갇혀 있다가 그곳에서 처형되었다고 기록했다.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18권 5장 2항 [로브 18.119]) 요한이 한동안 그곳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마 4:12) 처형당할 당시에는 갈릴리 바다 서쪽 연안의 도시인 티베리아스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하다. (1) 요한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봉사하실 때 그 근처에 수감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예수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 그분께 질문했다. (마 11:1-3) (2)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의 생일잔치에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있었다. 이 점은 그 잔치가 헤롯의 거처인 티베리아스에서 열렸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요한은 생일잔치가 열린 곳 근처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막 6:21-29; 마 14:6-11.

자기 형제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 마 14:3 연구 노트 참조.

요한을 붙잡아 묶어서 감옥에 가둔 일: 마 14:3 연구 노트 참조.

요한을 의롭고 거룩한 사람으로 알고: 헤롯 안티파스는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를 보호해 주었다. 헤롯은 그를 두려워했지만 손님들 앞에서 체면이 깎일까 봐 두려웠고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헤로디아가 의도한 대로 요한을 죽이고 말았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는 침례자 요한을 “선한 사람”으로 언급했다.

요한을 붙잡아 ··· 감옥에 가둔 일: 성경에서는 이 일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요세푸스는 요한이 사해 동쪽에 있는 마케루스 요새에 갇혀 있다가 그곳에서 처형되었다고 기록했다. (「유대 고대사」[Jewish Antiquities], 18권 5장 2항 [로브 18.119]) 요한이 한동안 그곳의 감옥에 갇혀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마 4:12) 처형당할 당시에는 갈릴리 바다 서쪽 연안의 도시인 티베리아스에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하다. (1) 요한은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봉사하실 때 그 근처에 수감되어 있었던 것 같다. 그는 예수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듣고 자기 제자들을 보내 그분께 질문했다. (마 11:1-3) (2) 마가의 기록에 따르면 헤롯의 생일잔치에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있었다. 이 점은 그 잔치가 헤롯의 거처인 티베리아스에서 열렸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요한은 생일잔치가 열린 곳 근처에 갇혀 있었을 것이다.—막 6:21-29; 마 14:6-11.

생일잔치: 이 잔치는 티베리아스에 있던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에서 열렸을 것이다. (마 14:3; 막 6:21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는 생일잔치에 관한 기록이 단지 두 번 나온다. 그중 하나는 이 구절에 나오는 헤롯의 생일잔치인데, 이때 요한이 죽임을 당했다. 또 하나는 파라오의 생일잔치인데, 이때는 이집트 왕궁의 빵 굽는 시종장이 처형당했다. (창 40:18-22) 두 경우 모두 성대한 잔치가 열렸고 누군가가 처형되었다.

생일: 이 생일잔치는 갈릴리 바다 서쪽 연안의 도시 티베리아스에 있던 헤롯 안티파스의 거처에서 열렸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마가가 이 구절에서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이 참석해 있었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마 14:3, 6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는 생일잔치에 관한 기록이 단지 두 번 나온다. 그중 하나는 이 구절에 나오는 헤롯의 생일잔치인데, 이때 요한이 죽임을 당했다. 또 하나는 파라오의 생일잔치인데, 이때는 이집트 왕궁의 빵 굽는 시종장이 처형당했다. (창 40:18-22) 두 경우 모두 성대한 잔치가 열렸고 누군가가 처형되었다.

군대 대장들: 그리스어 킬리아르코스(천인대장)는 문자적으로 “1000명의 지도자”를 의미한다. 이 말은 로마의 군사 호민관을 가리킨다. 로마의 각 군단에는 여섯 명의 군사 호민관이 있었다. 하지만 한 군단을 여섯 개의 부대로 나눈 것이 아니라, 군사 호민관들이 둘씩 짝을 이루어 한 번에 2개월씩 군단 전체를 지휘했다. 이러한 지휘관들은 백인대장을 지명하고 임명하는 권한을 포함하여 많은 권한을 갖고 있었다. 또한 이 그리스어 단어는 고위 장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런 고관들 앞에서 헤롯은 자신이 한 맹세를 어길 수 없다고 느꼈으며 결국 침례자 요한의 머리를 베라고 명령했다.

헤로디아의 딸: 헤롯 빌립과 헤로디아 사이에 태어난 딸. 헤로디아에게는 다른 자녀가 없었다. 이 딸의 이름인 살로메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요세푸스의 기록에 나온다. 나중에 헤롯 안티파스가 살로메의 어머니와 결혼했는데, 이것은 이복형제 빌립의 아내를 취한 간음 행위였다.

침례자: 또는 “물에 잠그는 자”. 이 구절과 막 6:14, 24에서는 그리스어 분사 호 밥티존이 사용되었으며 “침례를 주는 자”로 번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 6:25; 8:28과 마태복음 및 누가복음에서는 이 그리스어의 명사 형태인 밥티스테스가 사용되었다. 두 표현은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막 6:24, 25의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이 두 표현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3:1 연구 노트 참조.

침례자: 막 1:4 연구 노트 참조.

자기가 맹세한 것: 원문에서는 이 부분에 “맹세”라는 단어의 복수형이 사용되었다. 마 14:7에 단수형이 사용된 것과는 대조가 된다. 이것은 헤롯이 약속을 꼭 지키겠다고 거듭 맹세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

자기가 맹세한 것: 원문에서는 이 부분에 “맹세”라는 단어의 복수형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헤롯이 자신이 한 맹세(막 6:23)를 꼭 지킬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 헤로디아의 딸에게 거듭 맹세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다.—마 14:9 연구 노트 참조.

라틴어: 성경의 영감받은 본문에 라틴어라는 말이 나오는 곳은 이 구절뿐이다. 라틴어는 예수 시대에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로마 당국이 사용하는 언어였다. 공식 비문에 나오기는 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아니었다. 요 19:19에서는 빌라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할 때 명패에 죄목을 써서 형주 위에 붙였다고 언급한다. 죄목을 공식어인 라틴어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코이네)로 쓴 것은 당시에 여러 언어가 사용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라틴어에서 유래한 다양한 단어와 표현들이 나온다.—용어 설명 “라틴어”; “마가복음 소개” 참조.

호위병: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라틴어에서 차용한 단어인 스페쿨라토르이다. 이 단어는 호위병이나 파발꾼을 의미할 수 있으며, 형 집행관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군사, 사법, 통화, 일상생활과 관련된, 라틴어에서 차용한 그리스어 표현이 30개가량 나오는데, 주로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에 나온다. 마가는 다른 성경 필자들보다 그런 표현들을 더 많이 사용한다. 이 점은 그가 로마에서 복음서를 기록했으며 주로 비유대인들 특히 로마인들을 위해 복음서를 기록했다는 견해를 뒷받침한다.—요 19:20 연구 노트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불쌍히 여기셨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를 의미하는 단어(스플랑크나)와 관련이 있으며, 몸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즉 강렬한 감정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정심을 매우 강하게 표현하는 그리스어 단어 중 하나이다.

불쌍히 여기셨다: 또는 “동정심을 느끼셨다”.—마 9:36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이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십시오: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 복음서 필자 네 명 모두가 기록한 기적은 이것뿐이다.—마 14:15-21; 막 6:35-44; 눅 9:10-17; 요 6:1-13.

데나리온: 용어 설명부록 나14 참조.

생선: 성경 시대에는 구운 생선이나 소금을 쳐서 말린 생선을 흔히 빵과 함께 먹었다.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아마 소금을 쳐서 말린 생선이었을 것이다.

생선: 마 14:17 연구 노트 참조.

빵을 떼어: “떼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부서뜨리다”를 의미한다. 그 당시 빵은 주로 바삭하게 구운 납작한 빵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빵을 부서뜨려 조각내어서 먹었다.—마 14:19; 15:36; 26:26; 막 8:6; 눅 9:16.

바구니: 예수께서 두 차례 기적으로 무리를 먹이신 일을 묘사하는 성경 기록(막 6:43; 8:8, 20 연구 노트마 14:20; 15:37; 16:9, 10의 평행 기록 참조)에서 필자들은 남은 음식을 모으는 데 사용한 바구니의 종류를 일관되게 구분해서 표현한다. 그분이 남자 5000명을 먹이신 경우에는 그리스어 코피노스(“바구니”)가 사용되었고, 남자 4000명을 먹이신 경우에는 그리스어 스피리스(“큰 바구니”)가 사용되었다. 이 점을 볼 때 필자들이 직접 그 자리에 있었거나, 그 광경을 목격한 신뢰할 만한 사람들에게서 정보를 수집했음을 알 수 있다.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막 8:8, 19 연구 노트 참조.

바구니: 잔가지를 엮어 만든 작은 바구니였을 것이다. 여행할 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끈이 달려 있었다. 용량이 약 7.5리터였던 것 같다.—막 8:19, 20 연구 노트 참조.

남자가 5000명: 이것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 중 네 복음서 모두에 기록된 유일한 기적이다. (마 14:15-21; 막 6:35-44; 눅 9:10-17; 요 6:1-13) 하지만 네 복음서 필자 중 마태만이 여자와 어린아이를 언급한다. 예수께서 기적으로 먹이신 사람의 수는 1만 5000명이 넘었을 수 있다.

4경: 대략 오전 3시부터 동틀 때인 오전 6시 사이. 밤을 네 부분 즉 네 경으로 나눈 그리스•로마식 시간 체계를 따른 것이다. 히브리인들은 원래 밤을 각각 약 4시간으로 된 3개의 경으로 나누었지만, (출 14:24, 각주; 삿 7:19, 각주) 이 무렵에는 로마식 시간 체계를 받아들였다.

4경: 마 14:25 연구 노트 참조.

지나쳐 가려고 하셨다: 또는 “막 지나쳐 가시려던 참이었다”.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께서 그들 곁을 지나쳐 가시려는 것처럼 보였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들이 빵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고: 불과 몇 시간 전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기적으로 빵의 양이 늘어나게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 일은 예수께서 성령을 통해 얼마나 큰 능력을 받으셨는지를 분명하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제자들은 그 기적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물 위를 걷고 폭풍을 잠잠하게 하셨을 때 몹시 놀랐다. 그들은 예수께서 물 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았을 때 처음에는 그것이 “환영”이라고, 즉 실제로는 없는 것이 마치 눈앞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현상이라고 생각하기까지 했다.—막 6:49.

게네사렛: 갈릴리 바다 북서쪽 해안에 접해 있는 작은 평원으로, 길이가 약 5킬로미터에 폭이 2.5킬로미터이다. 눅 5:1에서는 갈릴리 바다를 ‘게네사렛 호수’라고 부른다.

게네사렛: 마 14:34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지팡이와 식량 자루
지팡이와 식량 자루

지팡이 혹은 막대기는 고대 히브리인들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건이었으며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몸을 지탱하고(출 12:11; 슥 8:4; 히 11:21), 자신을 방어하거나 보호하고(삼하 23:21), 곡식을 타작하고(사 28:27), 올리브 열매를 거두는 데(신 24:20; 사 24:13) 사용되었다. 식량 자루는 대개 가죽으로 만든 것으로 여행자, 목자, 농부와 같은 사람들이 어깨에 둘러메고 다녔다. 이것은 식량이나 옷 등을 담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전파 여행을 하도록 사도들을 보내실 때, 여러 가지 지시를 하면서 지팡이와 식량 자루에 관해서도 말씀하셨다. 사도들은 자신들이 하고 있던 차림 그대로 떠나야 했으며, 가외의 것들을 얻는 데 정신을 빼앗겨서는 안 되었다. 여호와께서 그들의 필요를 돌보실 것이었기 때문이다.—예수께서 지시하신 내용이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아보려면 눅 9:310:4 연구 노트 참조.

바구니
바구니

성경에는 다양한 형태의 바구니를 묘사하는 몇 가지 단어가 나온다. 예를 들어, 예수께서 기적으로 약 5000명의 남자를 먹이셨을 때 남은 음식을 담은 12개의 바구니는,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는 단어를 볼 때 잔가지를 엮어 만든 비교적 작은 손바구니였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 약 4000명의 남자를 먹이셨을 때 남은 음식을 담은 7개의 바구니를 가리키는 데는 다른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되었다. (막 8:8, 9) 이 단어는 큰 바구니 또는 양식 바구니를 가리킨다. 다마스쿠스의 성벽 구멍을 통해 바울을 내려보낼 때 쓰인 광주리를 가리키는 데도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사용되었다.—행 9:25.

장터
장터

일부 장터는 이 삽화에 묘사된 것처럼 길을 따라 형성되어 있었다. 상인들이 거리에 물건을 너무 많이 내어놓아서 통행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흔히 있었다. 장터에서는 생활용품, 도기류, 값비싼 유리 제품과 싱싱한 농산물을 살 수 있었다. 당시에는 냉장 시설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필요한 것을 사러 매일 장터에 와야 했다. 장터는 상인들이나 그 밖의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소식을 들을 수 있는 곳이기도 했고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이기도 했으며 일자리가 없는 사람들이 일을 구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장터에서 병든 사람들을 고쳐 주셨으며 바울은 장터에서 사람들에게 전파했다. (행 17:17) 그와는 대조적으로, 교만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터에서 주목을 받고 인사받는 것을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