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5:1-43

5  그들은 바다 건너편 게라사 지방에 이르렀다.+  예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마자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그분을 만났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지냈는데, 그때까지 그 누구도 그를 묶어 둘 수 없었다. 쇠사슬도 소용이 없었다.  여러 번 족쇄와 쇠사슬로 묶었지만, 그는 쇠사슬을 끊고 족쇄를 부수어 버렸다. 아무도 그를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밤낮으로 무덤과 산에서 소리를 지르며 돌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고 있었다.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그분에게 몸을 굽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다. “가장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나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해 주십시오.”+  예수께서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와라” 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내 이름은 ‘군단’입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고 대답했다. 10  그리고 자기들을 그 지방에서 쫓아내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거듭 간청했다.+ 11  그런데 그곳 산에서 많은 돼지+ 떼가 먹이를 먹고 있었다.+ 12  그 영들은 그분에게 “우리를 돼지들에게 보내어 그 속으로 들어가게 해 주십시오” 하고 간청했다. 13  그분이 허락하시자, 더러운 영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2000마리쯤 되는 돼지 떼가 낭떠러지*로 달려가 바다에 떨어져 빠져 죽었다. 14  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달아나 도시와 시골에 그 일을 알렸다. 그러자 사람들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보려고 왔다.+ 15  그들은 예수께 와서, 악귀 들렸던 사람, 곧 군단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은 채 제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두려워했다. 16  그 일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악귀 들렸던 사람과 돼지들에게 일어난 일을 그들에게 이야기했다. 17  그러자 그들은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 달라고 간청하기 시작했다.+ 18  그분이 배에 오르실 때에, 악귀 들렸던 사람이 그분에게 함께 가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19  그러나 그분은 허락하지 않으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집으로 가서 친족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해 주신 모든 일과 그분이 베풀어 주신 자비에 대해 알리십시오.” 20  그는 떠나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해 주신 모든 일을 데카폴리스에서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랐다. 21  예수께서 배를 타고 다시 건너편 물가로 가신 뒤에 아직 바닷가에 계시는 동안 많은 무리가 그분에게 모여들었다.+ 22  그때에 회당 책임자 중 하나인 야이로라는 사람이 와서 그분을 보고 그분의 발치에 엎드려+ 23  거듭해서 이렇게 간청했다. “제 어린 딸이 몹시 아픕니다. 제발 오셔서 아이에게 손을 얹어 주십시오.+ 그러면 병이 나아 살게 될 것입니다.” 24  그래서 예수께서 그와 함께 떠나셨는데, 많은 무리가 따라가면서 그분을 밀어 댔다. 25  그런데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아 온 여자가 있었다.+ 26  그 여자는 여러 의사에게 치료를 받느라 고생도 많이 하고 재산도 다 써 버렸지만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되었다. 27  그 여자는 예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무리 속에 섞여 그분 뒤로 다가와서 그분의 겉옷을 만졌다.+ 28  ‘저분의 겉옷만 만져도 나을* 거야’ 하고 계속 생각했던 것이다.+ 29  그러자 즉시 출혈이 멎었고, 그 여자는 고통스러운 병이 나은 것을 몸으로 느꼈다. 30  그 즉시 예수께서는 자신에게서 힘이+ 나간 것을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아보며 “누가 내 겉옷을 만졌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31  그러자 제자들이 그분에게 “보시다시피 무리가 이렇게 밀어 대는데, ‘누가 나를 만졌느냐?’고 물으십니까?” 하고 말했다. 32  그러나 그분은 누가 그렇게 했는지 보려고 둘러보셨다. 33  그 여자는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알고 무서워 떨며 나와서 그분 앞에 엎드려 사실대로 다 말씀드렸다. 34  그분이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딸이여,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낫게 했습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고통스러운 병에서 벗어나 건강해지십시오.”+ 35  그분이 아직 말씀하고 계실 때에, 회당 책임자의 집에서 몇 사람이 와서 “따님이 죽었습니다! 선생님께 더 이상 폐를 끼칠 이유가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36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말을 곁에서 들으시고 회당 책임자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을 나타내기만 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37  그리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야고보의 형제 요한 외에는 아무도 따라오지 못하게 하셨다.+ 38  그들이 회당 책임자의 집에 이르렀을 때, 예수께서는 소란스러운 광경과 사람들이 울며 크게 통곡하는 것을 보셨다.+ 39  그분이 안으로 들어가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째서 울며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까? 저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입니다.”+ 40  그러자 그들은 그분을 비웃었다. 그러나 그분은 그들을 다 내보내시고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신의 일행을 데리고 아이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셨다. 41  그리고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탈리타 쿠미” 하고 말씀하셨다. 이 말을 번역하면 “소녀야, 너에게 말하는데, 일어나라!”라는+ 뜻이다. 42  그러자 곧 소녀가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그 소녀는 열두 살이었다.) 그것을 보고 그들은 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43  그러나 그분은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그들에게 거듭* 지시하셨다.+ 그리고 소녀에게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각주

또는 “가파른 비탈”.
또는 “구원받을”.
또는 “구원했습니다.”
또는 “더는 두려워하지 말고”.
또는 “단단히”.

연구 노트

가다라 지방: 갈릴리 바다 건너편(동쪽) 해안에 있는 지역. 갈릴리 바다에서 10킬로미터 떨어진 가다라에서 시작하여 갈릴리 바다까지 뻗어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말일 수 있다. 가다라에서 발견된 주화에 흔히 선박 그림이 나온다는 사실이 이 점에 신빙성을 더해 준다. 마가와 누가는 예수께서 가신 지역을 “게라사 지방”이라고 부른다. (막 5:1 연구 노트 참조) 이 두 지역이 서로 겹쳐 있었을 수도 있다.—부록 가7 지도 3ㄴ “갈릴리 바다에서 하신 활동” 및 부록 나10 참조.

게라사: 이 사건에 관해 언급하는 복음서 기록(마 8:28-34; 막 5:1-20; 눅 8:26-39)을 비교해 보면, 사건이 일어난 장소의 이름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복음서라도 고대 사본들마다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가장 신뢰할 만한 사본들에 따르면, 마태가 원래 사용한 이름은 “가다라”이고 마가와 누가가 사용한 이름은 “게라사”이다. 하지만 이 구절에 나오는 게라사 지방에 대한 연구 노트에서 알려 주듯이, 이 두 지명은 같은 지방에 있던 두 지역을 가리킨다.

게라사 지방: 갈릴리 바다 건너편(동쪽) 해안에 있는 지역. 이 지역의 정확한 경계는 오늘날 알려져 있지 않으며, 이곳이 어디에 있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일부 학자들은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의 가파른 경사지 근처에 있는 쿠르시 주변 지역을 “게라사 지방”과 연관시킨다. 그런가 하면 이 명칭이 갈릴리 바다에서 남남동쪽으로 55킬로미터 떨어진 도시 게라사(야라시)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펼쳐진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 마 8:28에서는 동일한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가리켜 “가다라 지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 구절에 나오는 게라사에 대한 연구 노트 및 마 8:28 연구 노트 참조) 서로 다른 이름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이 지명들은 둘 다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 지방에 있던 지역들을 가리키며, 두 지역이 서로 겹쳐 있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 기록들 사이에 모순이 있는 것은 아니다.—또한 부록 가7 지도 3ㄴ “갈릴리 바다에서 하신 활동” 및 부록 나10 참조.

무덤: 또는 “기념 무덤”. (용어 설명 “기념 무덤” 참조) 이러한 무덤들은 동굴이거나 자연석을 파서 만든 공간이었던 것 같으며 주로 도시 밖에 있었다. 유대인들은 의식상 부정해지지 않기 위해 이러한 매장지들을 피했으므로, 무덤이 있는 곳은 미친 사람이나 악귀 들린 사람이 지내기에 좋은 장소였다.

사람: 복음서 필자 마태(8:28)는 두 사람을 언급하지만, 마가와 누가(8:27)는 한 사람만을 언급한다. 마가와 누가는 악귀 들린 사람 한 명에게만 초점을 맞춘 것 같은데,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말씀하셨고 그의 상태가 더 눈길을 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 사람이 더 난폭했거나, 더 오랫동안 악귀에 사로잡혀 있었을 수 있다. 혹은 두 사람이 고침을 받은 후에 한 사람만 예수와 함께 가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막 5:18-20.

무덤: 마 8:28 연구 노트 참조.

왜 나와 당신이 그 일에 신경을 써야 합니까?: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 전에 마리아는 예수에게 “그들에게 포도주가 없구나” 하고 말했다. (요 2:3) 틀림없이 이 말은 예수가 무엇인가를 해 주기를 바라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그때까지 예수께서 아무런 기적도 행하신 적이 없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마리아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의 말을 듣고 “왜 나와 당신이 그 일에 신경을 써야 합니까?” 하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나와 당신에게 무엇이 있습니까?”를 의미하는 셈어 관용구이다. 이 표현은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담고 있으며 문맥에 따라 이해해야 한다. 이 표현이 적대감을 나타내거나 강하게 반발하는 말로 쓰이는 경우도 있지만, (마 8:29; 막 1:24; 5:7; 눅 4:34; 8:28) 이 구절에서는 반대 의사를 부드럽게 표현하는 말로 쓰인 것 같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이 관용구가 비슷한 방식으로 사용된 예를 삼하 16:9, 10과 왕상 17:18[각주]과 같은 구절들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어서 예수께서는 아직 나의 시간이 오지 않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자신이 마리아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지 않는 이유를 밝히셨다. 하지만 이 구절에 나오는 예수의 말씀은 도움을 베풀 의도가 전혀 없다는 뜻은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5절에 나오는 마리아의 말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간수들: 그리스어 원어 바사니스테스는 기본적으로 “고통을 주는 자들”을 의미한다. 간수들이 종종 죄수들을 잔인하게 고문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이 단어는 간수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표현이 되었는데, 고문을 하지 않더라도 감금하는 것 자체가 고통을 주는 행동으로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마 8:29 연구 노트 참조.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또는 “나와 당신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습니까?” 이것은 수사적 질문으로서, 직역하면 “나와 당신에게 무엇이 있습니까?”가 된다. 이 셈어 관용구는 히브리어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오며 (삿 11:12, 각주; 수 22:24; 삼하 16:10; 19:22; 왕상 17:18; 왕하 3:13; 대하 35:21; 호 14:8)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도 나온다. (마 8:29; 막 1:24; 5:7; 눅 4:34; 8:28; 요 2:4)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문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구절(막 5:7)에서는 이 관용구가 적대감을 나타내거나 강하게 반발하는 말로 쓰였으며, 일부 번역자들은 이 말을 “나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또는 “나를 내버려 두십시오!”로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문맥에서는 적대적이거나 거만하거나 상대방을 멸시하는 듯한 태도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그와 의견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표현할 때 또는 그가 제안한 대로 행동하기를 거절할 때 사용되었다.—요 2:4 연구 노트 참조.

나를 괴롭히지: “괴롭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가 마 18:34(연구 노트 참조)에서는 “간수들”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문맥에서 “괴롭히다”라는 말은 평행 기록인 눅 8:31에 언급되어 있는 것처럼 “무저갱”에 속박하거나 감금하는 것을 가리키는 것 같다.

군단: 로마 군대를 구성하는 주요 단위. 기원 1세기에 한 군단은 보통 약 6000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졌다. 이 구절에서 “열두 군단”은 아마도 헤아릴 수 없이 큰 수를 의미하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요청하기만 하면 아버지께서 충분한 수의 천사를 보내 자신을 보호하실 것이라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신 것이다.

‘군단’: 이것은 악귀 들린 사람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그가 많은 악귀에 들려 있었음을 가리키는 말인 것 같다. 그 악귀들 가운데 우두머리가 이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의 이름이 ‘군단’이라고 말하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기원 1세기에 로마 군단은 보통 약 6000명의 군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따라서 ‘군단’이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 사람을 사로잡고 있던 악귀들의 수가 대단히 많았음을 암시하는 것일 수 있다.—마 26:53 연구 노트 참조.

돼지: 돼지는 율법에서 부정한 동물로 규정되어 있었지만, (레 11:7) 데카폴리스 지방에는 비유대인이 많이 사는 곳에 돼지고기를 파는 시장이 있었다.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이 돼지고기를 즐겨 먹었기 때문이다. 이 기록에서 돼지를 치는 사람들이 율법을 어기는 유대인들이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막 5:14.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해 주신 모든 일: 예수께서는 고침을 받은 남자에게 말씀하시면서 그 기적이 자신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계신다. 누가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리스어 테오스(하느님)를 사용했다는 점이 이러한 결론을 뒷받침한다. (눅 8:39) 대부분의 그리스어 사본들에서는 막 5:19의 이 부분에 “주”( 키리오스)가 사용되었지만, 이 구절의 원문에 하느님의 이름이 사용되었으며 후에 “주”라는 칭호로 대치되었다고 볼 수 있는 타당한 이유들이 있다. 따라서 「신세계역」 본문에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했다.—부록 다1다3 소개; 막 5:19 참조.

알리십시오: 예수께서는 보통 자신이 행한 기적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리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막 1:44; 3:12; 7:36) 하지만 이 남자에게는 그가 겪은 일을 친족들에게 알리라고 하셨다. 예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분이 그 지역을 떠나 달라는 요청을 받아서 그곳 사람들에게 직접 증거하실 수 없었기 때문일 수 있다. 또한 그 사람의 증언은 돼지 떼가 없어진 것에 대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지지 않게 막아 줄 것이었다.

데카폴리스: 또는 “열 도시 지방”.—용어 설명부록 나10 참조.

어떤 지도자: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평행 기록에서는 이 “지도자”(그리스어 아르콘)의 이름이 야이로이며 그가 회당 책임자였다고 알려 준다.—막 5:22; 눅 8:41.

회당 책임자: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아르키시나고고스는 문자적으로 “회당의 지도자”를 의미한다.—마 9:18 연구 노트 참조.

몹시 아픕니다: 또는 “다 죽어 갑니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혈루병: 만성적인 하혈을 가리키는 것 같다. 모세 율법에 의하면 그러한 증상이 있는 여자는 의식상 부정했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만져서는 안 되었다.—레 15:19-27.

혈루병: 마 9:20 연구 노트 참조.

고통스러운 병: 직역하면 “채찍질”.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고문할 때 자주 사용되는 채찍질의 한 형태를 가리킨다. (행 22:24; 히 11:36) 여기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여자가 앓던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고통스러운 병: 직역하면 “채찍질”.—막 5:34 연구 노트 참조.

딸: 기록상 예수께서 여자를 “딸”이라고 직접 부르신 유일한 경우이다. 매우 민감한 상황이었고 여자가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막 5:33; 눅 8:47) 예수께서는 이 애정 어린 표현을 사용하여 따뜻한 관심을 나타내셨다. 이 표현이 그 여자의 나이를 암시하는 것은 아니다.

평안히 가십시오: 이 관용구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성경에서 “당신이 잘되기를 바랍니다”라는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눅 7:50; 8:48; 약 2:16. 삼상 1:17; 20:42; 25:35; 29:7; 삼하 15:9; 왕하 5:19 비교) 주로 “평화”로 번역되는 히브리어(샬롬)는 폭넓은 의미를 갖고 있다. 전쟁이나 소란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에 더해(삿 4:17; 삼상 7:14; 전 3:8), 건강하거나 안전하거나 잘 지낸다는 의미를 전달하기도 하며(삼상 25:6, 각주; 대하 15:5, 각주; 욥 5:24, 각주), 평안하거나(더 10:3, 각주), 우정을 누린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시 41:9).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평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이레네)도 히브리어 단어처럼 넓은 의미로 사용되어 분쟁이 없다는 의미에 더해 복지, 구원, 화합의 개념을 전달한다.

고통스러운 병: 직역하면 “채찍질”.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고문할 때 자주 사용되는 채찍질의 한 형태를 가리킨다. (행 22:24; 히 11:36) 여기서 이 단어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여자가 앓던 병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믿음을 나타내기만 하십시오: 또는 “믿음을 계속 나타내기만 하십시오”. 이 표현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의 형태는 계속되는 행동을 의미할 수 있다. 야이로는 처음 예수께 왔을 때 이미 어느 정도 믿음을 나타냈다. (막 5:22-24) 이제 예수께서는 야이로에게 그의 딸이 죽었지만 계속해서 믿음을 나타내라고 권고하신다.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죽음을 종종 잠에 비유한다. (시 13:3; 요 11:11-14; 행 7:60; 고전 7:39; 15:51; 살전 4:13) 예수께서는 이 소녀를 다시 살리실 것이었다. 그분은 마치 깊이 잠든 사람을 깨우듯 죽은 사람을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실 것이었기 때문에 소녀가 자고 있다고 말씀하신 것 같다. 예수께서는 “죽은 사람을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인 아버지로부터 소녀를 부활시킬 능력을 받으셨다.—롬 4:17.

에바다: 일부 사람들은 이 표현이 사 35:5에서 “열리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어근에서 나온 말을 그리스어로 음역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수께서 이 표현을 사용하시는 것을 목격한 사람, 아마도 베드로는 틀림없이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인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는 마가에게 이 표현을 그대로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탈리타 쿠미”(막 5:41)와 마찬가지로 이 표현도 예수의 말씀이 그분이 사용하신 표현 그대로 기록된 몇몇 경우 중 하나이다.

탈리타 쿠미: 마태와 누가도 야이로의 딸의 부활에 대해 기록했지만(마 9:23-26; 눅 8:49-56) 오직 마가만 예수께서 사용하신 이 표현과 그 의미를 기록했다. 몇몇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셈어 표현이 “탈리타 쿰”으로 표기되어 있다.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을 아람어로 분류하지만, 이 표현이 히브리어일 수도 있고 아람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있다.—막 7:34 연구 노트 참조.

무아지경: 그리스어 엑스타시스(“밖으로”를 의미하는 과 “서 있는”을 의미하는 스타시스가 결합한 단어)는 놀라움이나 경이감 때문에, 또는 하느님에게서 온 환상 때문에 일반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기쁘다”(막 5:42), “크게 놀라다”(막 16:8; 눅 5:26)로 번역되었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다. 때때로 성령은 사람이 깊이 몰입해 있는 상태나 잠든 듯한 상태에 있는 동안 하느님의 목적에 대한 환상이나 영상이 정신에 떠오르게 했던 것 같다. 무아지경에 빠지면 주변 상황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게 되고 환상에 몰입할 수 있었을 것이다.—행 22:17 연구 노트 참조.

너무 기뻐서: 또는 “크게 놀라서”. 그리스어 엑스타시스(“밖으로”를 의미하는 과 “서 있는”을 의미하는 스타시스가 결합한 단어)는 놀라움이나 경이감 때문에, 또는 하느님에게서 온 환상 때문에 정상적인 정신 상태에서 벗어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막 16:8과 눅 5:26에서 “크게 놀라다”로 번역되었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느님께서 하신 일과 관련하여 사용되었으며 행 10:10; 11:5; 22:17에서 “무아지경”으로 번역되었다.—행 10:10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의 절벽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의 절벽

예수께서는 갈릴리 바다 동쪽 해안에서 악귀 들린 두 사람을 만나셨다. 그분은 그 악귀들을 쫓아내고 돼지 떼 속으로 들어가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