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0:1-52

10  예수께서 거기서 일어나 요르단 강 건너편 유대의 경계 지역*에 이르시자 무리가 다시 그분에게 모여들었다. 그분은 늘 하시던 대로 다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가까이 와서 그분을 시험하려고 남자가 아내와 이혼해도 되는지 물었다.+  그러자 그분은 그들에게 “모세는 당신들에게 무엇이라고 명했습니까?” 하고 말씀하셨다.  그들이 대답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당신들의 마음이 완고하기 때문에+ 모세가 그 계명을 기록하여 당신들에게 준 것입니다.+  그러나 창조의 시작부터 ‘그분은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둘이 한 몸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더 이상 둘이 아니라 한 몸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됩니다.”+ 10  다시 집에 있을 때에 제자들이 이 문제에 관해 그분에게 묻자, 11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아내를 거슬러 간음하는+ 것입니다. 12  또 여자가 남편과 이혼하고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그 여자는 간음하는 것입니다.”+ 13  사람들이 그분에게 어린아이들을 데려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러나 제자들이 그들을 나무랐다.+ 14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고 몹시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을 내게로 오게 하고 그들을 막으려 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왕국은 이런 이들의 것입니다.+ 15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하는데, 누구든지 하느님의 왕국을 어린아이처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할 것입니다.”+ 16  그러고는 아이들을 팔로 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17  그분이 길을 가시는데, 한 사람이 달려와서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1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합니까?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습니다.+ 19  당신은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 남을 속여 사기를 치지 말라,+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는+ 계명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20  그 사람이 그분에게 말했다.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릴 때부터 지켜 왔습니다.” 21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스럽게 여겨 말씀하셨다. “당신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가서 당신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십시오.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십시오.”+ 22  그러나 그는 그 대답을 듣자 슬퍼하며 근심에 차서 떠나갔다. 그가 가진 재산이 많았기 때문이다. 23  예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돈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24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자녀들이여,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25  부자가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습니다.”+ 26  그들은 더욱 크게 놀라서 그분에게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했다.+ 27  예수께서는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시면서 “사람에게는 그것이 불가능해도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베드로가 그분에게 말했다. “보십시오!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29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진실로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나를 위해 또 좋은 소식을 위해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밭을 버린 사람은+ 30  지금 이 시대*에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밭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오는 세상 제도에서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입니다. 31  그러나 첫째였다가 마지막이 되고 마지막이었다가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32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예수께서 앞서 가고 계셨다. 그들은 놀라워했고, 뒤따르던 사람들은 두려워했다. 그분은 다시 열두 제자를 따로 데리고 가서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33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이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질 것입니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그를 이방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입니다. 34  그러면 그들이 그를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한 다음 죽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3일 뒤에 살아날 것입니다.”+ 3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에게 다가와서 “선생님, 우리가 청하는 대로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고 말했다.+ 36  그분은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바랍니까?” 하고 물으셨다. 37  그들이 대답했다. “선생님이 영광을 받으실 때에, 우리를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38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자신이 무엇을 청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내가 받는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 39  그들은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당신들은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고 내가 받는 침례를 받을 것입니다.+ 40  그러나 내 오른편이나 왼편에 앉는 것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 자리는 선택받은* 사람들의 것입니다.” 41  다른 열 제자가 이 일에 대해 듣고 야고보와 요한에게 분개했다.+ 42  예수께서 그들을 불러 말씀하셨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라를 통치한다는 자들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큰 자들은 사람들에게 권세를 휘두릅니다.+ 43  여러분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여러분 중에서 누구든지 크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44  여러분 중에서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45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자기 생명을 많은 사람과 교환하는 대속물로 주려고 왔습니다.”+ 46  그들은 예리코로 갔다. 그런데 그분과 제자들과 많은 무리가 예리코에서 나갈 때에, 바디매오(디매오의 아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었다.+ 47  그는 나사렛 사람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아들’+ 예수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치기 시작했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꾸짖었으나, 그는 계속 “‘다윗의 아들’이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더욱 외쳤다. 49  예수께서는 멈추어 서서 “그를 불러오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그들이 눈먼 사람을 부르며 말했다. “용기를 내시오! 일어나시오. 저분이 당신을 부르시고 있소.” 50  그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갔다. 51  그러자 예수께서 “내가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합니까?” 하고 물으셨다. 눈먼 사람은 “랍보니,+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하고 말했다. 52  예수께서는 그에게 “가십시오.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낫게 했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즉시 그는 다시 보게 되었으며,+ 그분을 따라 길을 가기 시작했다.

각주

또는 “유대 지역”.
직역하면 “멍에를 함께 메게 하신 것을”.
또는 “시기”.
또는 “그것이 준비되어 있는”.
또는 “구원했습니다”.

연구 노트

요르단 강 건너편 유대의 경계 지역: 요르단강 동쪽에 있는 페레아, 특히 페레아에서도 유대와 맞닿아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떠난 뒤 부활되고 나서야 다시 갈릴리로 오셨다.—부록 가7 지도 5 참조.

요르단 강 건너편 유대의 경계 지역: 요르단강 동쪽에 있는 페레아, 특히 페레아에서도 유대와 맞닿아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 같다.—마 19:1 연구 노트부록 가7 지도 5 참조.

이혼 증서: 율법에 따르면 이혼하기 원하는 남자는 법적인 서류를 준비해야 했으며 아마 장로들과 상담해야 했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이 심각한 결정을 다시 생각해 볼 시간을 갖게 해 주었다. 이것은 성급한 이혼을 막고 여성을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었던 것 같다. (신 24:1) 하지만 예수 시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이혼을 쉽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혼한 바리새인이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어떤 이유로든” 이혼할 수 있었으며 “남자들에게는 그 이유로 삼을 만한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마 5:31 연구 노트 참조.

이혼 증서: 마 19:7 연구 노트 참조.

창조의 시작: 인류의 창조를 가리키는 것 같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창조주께서 어떻게 남자와 여자의 결혼 마련을 제정하여 인간 사회의 기본 단위가 형성되게 하셨는지 설명하신다.

그분: 일부 고대 사본에는 주어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이 부분이 “하느님”이라고 되어 있다.

한 몸: 그리스어 원어는 창 2:24에 나오는 히브리어 표현을 직역한 것으로, “한 사람”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두 사람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친밀한 관계를 표현한 것이다. 한 몸이 된 두 사람은 성적인 면으로만이 아니라 모든 면으로 결속되어 서로 떨어질 수 없는 충실한 동반자가 된다. 이런 관계가 깨질 경우 둘 다 큰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한 몸: 마 19:5 연구 노트 참조.

성적 부도덕: 그리스어 포르네이아는 성경에서 불법으로 규정하는 모든 성관계를 두루 일컫는 용어이다. 여기에는 간음, 매춘, 미혼끼리의 성관계, 동성애, 수간이 포함된다.—용어 설명 참조.

아내와 이혼하고: 또는 “아내를 내보내고”. 마가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말씀은 마 19:9에 나오는 더 온전한 기록에 비추어서 이해해야 한다. 그 구절에는 “성적 부도덕이 아닌 다른 근거로”라는 표현이 들어 있다. (마 5:32 연구 노트 참조) 따라서 마가가 인용한 이혼에 관한 예수의 말씀은 불충실한 배우자가 저지른 “성적 부도덕”(그리스어 포르네이아) 외에 다른 근거로 이혼하는 경우에 해당된다.

아내를 거슬러 간음하는: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당시 널리 퍼져 있던 랍비들의 가르침을 배척하신 것이다. 그 가르침은 “무엇이든 근거만 있으면” 아내와 이혼하는 것을 허용했다. (마 19:3, 9) 아내를 거슬러 간음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유대인들에게 매우 생소한 개념이었다. 랍비들의 가르침에 따르면, 남편이 간음을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아내를 거스르는 행동이 아니었다. 불충실은 오직 여자만 범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예수께서는 남편에게도 아내와 동일한 도덕적 의무를 지우심으로 여성의 존엄성과 지위를 높여 주셨다.

여자가 남편과 이혼하고: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심으로, 불충실한 남편과 이혼할 수 있는 여자의 권리를 인정하셨다. 당시 유대인들은 그러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예수의 말씀에 따르면, 그리스도교 내에서는 남녀 모두에게 동일한 표준이 적용될 것이었다.

어린아이들: 이 어린아이들은 연령대가 다양했을 수 있다. 여기서 “어린아이들”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가 갓난아이와 유아를 가리킬 때만이 아니라, (마 2:8; 눅 1:59) 야이로의 열두 살 된 딸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기 때문이다. (막 5:39-42) 하지만 평행 기록인 눅 18:15에서 누가는 예수께서 이 어린아이들을 대하신 일을 묘사할 때 다른 그리스어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 단어는 아주 어린 아이들 즉 아기들을 가리키는 데만 사용된다.—눅 1:41; 2:12.

어린아이처럼: 어린아이들이 가진 좋은 특성들을 나타내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 특성에는 겸손하고, 기꺼이 배우려 하고, 다른 사람을 잘 신뢰하고, 가르침과 인도를 잘 받아들이는 특성이 포함된다.—마 18:5.

아이들을 팔로 안으시고: 복음서 필자 가운데 마가만이 이러한 세부점을 기록했다. “팔로 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는 이 구절과 막 9:36에만 나오며 “품에 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아이들을 단지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라고 그분께 데려왔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이 기대한 것 이상의 행동을 하셨다. (막 10:13) 그분은 적어도 일곱 명의 자녀가 있는 집안의 맏이였기 때문에 어린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셨다. (마 13:55, 56) 예수께서는 그들을 축복해 주기까지 하셨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축복하다”의 강조 형태로서, 그분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그들을 축복하셨다는 의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선하신 선생님: 이 사람은 “선하신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아첨하기 위한 형식적인 칭호로 사용한 것 같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대개 그런 영예로운 칭호로 자신을 높여 줄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을 “선생님”이나 “주”라는 합당한 칭호로 부르는 것에는 반대하지 않으셨다. (요 13:13) 하지만 그분은 모든 영예를 아버지께 돌리셨다.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심으로 여호와께서 선함의 절대적인 표준이시며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를 결정할 최고의 권리를 가진 분이심을 인정하셨다. 아담과 하와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반역적인 행동을 함으로 그러한 권리를 취하려고 했다. (창 2:17; 3:4-6) 그들과는 달리, 예수께서는 겸손하시게도 표준을 정하는 일은 아버지께서 하실 일이라고 생각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에 나오는 법과 원칙을 통해 무엇이 선한 것인지 알려 주셨다.—막 10:19.

사랑스럽게 여겨: 복음서 필자 가운데 마가만이 예수께서 이 부유한 젊은 지도자에 대해 가지신 감정을 언급한다. (마 19:16-26; 눅 18:18-30)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던 베드로가 예수께서 그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셨는지를 알려 주었을 것이다.—“마가복음 소개” 참조.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쉽습니다: 낙타가 바늘귀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예수께서는 과장법을 사용하셔서, 부자가 계속해서 여호와와의 관계보다 재산을 더 앞자리에 둔다면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분의 말씀은 부유한 사람이 아무도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니었다. 이어서 그분이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막 10:27.

그분에게: 일부 사본에는 “서로”라고 되어 있다.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보십시오!: 막 1:2 연구 노트 참조.

오는 세상 제도: 또는 “오는 시대”. 그리스어 아이온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킬 수도 있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앞으로 하느님의 왕국의 통치 아래 사람들이 약속된 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때에 관해 말씀하신 것이다.—눅 18:29, 30.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요르단 강 건너편 유대의 경계 지역: 요르단강 동쪽에 있는 페레아, 특히 페레아에서도 유대와 맞닿아 있는 지역을 가리키는 것 같다.—마 19:1 연구 노트부록 가7 지도 5 참조.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예루살렘은 해발 약 750미터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성경은 종종 숭배자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언급한다. (눅 2:22; 요 2:13; 행 11:2) 예수와 제자들은 요르단 골짜기에서 올라가던 중이었는데 (막 10:1 연구 노트 참조) 이 골짜기는 가장 낮은 곳이 해수면보다 약 400미터 낮았다. 따라서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기 위해서는 약 1000미터를 올라가야 했을 것이다.

침 뱉고: 사람의 몸이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은 극도의 경멸, 적대감, 분개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굴욕을 주는 행동이었다. (민 12:14; 신 25:9)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러한 취급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렇게 되면 메시아에 관한 다음과 같은 예언이 성취될 것이었다. “모욕과 침 뱉음을 당하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사 50:6) 그분은 산헤드린 앞에 섰을 때 침 뱉음을 당하셨고, (막 14:65)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은 후에 로마 군인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셨다.—막 15:19.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야고보는 항상 그의 형제 요한과 함께 언급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야고보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아마도 야고보가 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마 4:21; 10:2; 17:1; 막 1:29; 3:17; 5:37; 9:2; 10:35, 41; 13:3; 14:33; 눅 5:10; 6:14; 8:51; 9:28, 54; 행 1:13.

세베대: 아마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지간이었을 살로메의 남편으로, 예수의 이모부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의 이종사촌이었을 것이다.—막 15:40 연구 노트 참조.

세베대의 아들들의 어머니: 사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마가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께 다가가 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막 10:35) 그들은 그러한 요청을 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던 것 같다. 그들의 어머니 살로메는 예수의 이모였을 수 있다.—마 27:55, 56; 막 15:40, 41; 요 19:25.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이 그분에게 다가와서: 마태복음에는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와서 요청했다고 되어 있지만, 아마도 두 아들이 그러한 요청을 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부탁했던 것 같다. 그러한 결론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마태복음에서는 다른 열 명의 제자들이 그 일에 대해 듣고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아니라 “그 두 형제에게 분개했다”고 알려 준다.—마 20:20-24. 마 4:21; 20:20 연구 노트 참조.

아들들: 몇몇 사본에는 “두 아들”이라고 되어 있지만, 현재의 번역 표현이 사본상으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자기 오른편에 ··· 자기 왼편에: 성경의 일부 문맥에서는 오른편과 왼편 모두 영예와 권위를 누리는 자리를 가리키는데, (마 20:21, 23) 언제나 오른편이 가장 영예로운 자리로 여겨졌다. (시 110:1; 행 7:55, 56; 롬 8:34) 하지만 이 구절과 마 25:34, 41에서는 왕의 오른편과 왼편이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되어, 오른편은 은혜를 받는 입장을, 왼편은 은혜를 받지 못하는 입장을 의미한다.—전 10:2, 각주 비교.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여기서는 오른편과 왼편 모두 영예와 권위를 누리는 자리를 가리킨다. 하지만 언제나 오른편이 가장 영예로운 자리로 여겨졌다.—시 110:1; 행 7:55, 56; 롬 8:34. 마 25:33 연구 노트 참조.

잔을 마실: 성경에서 “잔”은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뜻 즉 하느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몫”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 (시 11:6; 16:5; 23:5) 여기서 ‘잔을 마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 마시게 될 “잔”에는 그분이 신성 모독이라는 거짓 혐의로 고통을 겪고 죽임을 당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되시는 것도 포함된다.

잔을 마실: 성경에서 “잔”은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뜻 즉 하느님께서 그에게 “정해 주신 몫”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된다. (시 11:6; 16:5; 23:5) 여기서 ‘잔을 마시는’ 것은 하느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 마시게 될 “잔”에는 그분이 신성 모독이라는 거짓 혐의로 고통을 겪고 죽임을 당하시는 것뿐만 아니라 하늘에서 불멸의 생명으로 부활되시는 것도 포함된다.

잔을 마시고: 마 20:22 연구 노트 참조.

내가 받는 침례를 받을: 또는 “내가 잠기는 것처럼 잠길”. 여기서 예수께서는 “잔”에 대응하는 표현으로 “침례”라는 표현을 사용하신다. (마 20:22 연구 노트 참조) 예수의 이 침례 즉 희생의 행로는 그분의 봉사 기간 중에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기원 33년 니산월 14일에 형주에 달려 처형되실 때 죽음 안으로 온전히 침례를 받으실, 즉 온전히 잠기실 것이었다. 그분이 부활되실 때 즉 일으켜지실 때 이 침례는 완료될 것이었다. (롬 6:3, 4) 예수께서 죽음 안으로 받으신 침례는 그분이 받으신 물침례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별개의 것이다. 그분의 물침례는 봉사의 직무를 시작하실 때 온전히 완료되었지만, 그분이 죽음 안으로 받는 침례는 그때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또는 “사람들을 지배하고; 사람들의 주인이 되고”. “군림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네 번밖에 나오지 않는다. (마 20:25; 막 10:42; 벧전 5:3. 행 19:16에서는 “제압하다”로 번역되었다.) 예수의 말씀은 당시 사람들이 싫어하던 로마의 억압과 헤롯 왕조의 압제적인 지배를 떠올리게 했다. (마 2:16; 요 11:48) 베드로는 그분의 말씀의 취지를 잘 이해한 것 같다. 후에 그는 그리스도인 장로들에게 양 떼를 지배하려 하지 말고, 모범을 보여 인도하라고 권고했다. (벧전 5:3) 누가복음의 평행 기록(눅 22:25)에서는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이 동사는 고후 1:24에서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동료 신자들의 믿음의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할 때에도 사용되었다.

생명: 그리스어 프시케는 「신세계역」 이전 번역판에서 “영혼”으로 번역되었는데, 이 문맥에서는 “생명”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생명: 마 20:28 연구 노트 참조.

예리코: 요르단강 서쪽에 있는 가나안 도시들 가운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먼저 정복한 도시. (민 22:1; 수 6:1, 24, 25) 예수 시대에는 그 유대 도시에서 남쪽으로 약 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새로운 로마 도시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 점을 고려하면 눅 18:35이 동일한 사건에 대해 알려 주면서 그 일이 “예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있었다고 언급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신 것은 옛 도시에서 나갈 때 즉 그 도시를 떠나 새로운 도시로 가실 때였거나 그 반대의 경우였을 것이다.—눅 18:35 연구 노트부록 나4, 나10 참조.

예리코: 마 20:29 연구 노트 참조.

눈먼 거지: 마태는 이 사건을 기록하면서 (20:30) 눈먼 사람 둘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마가와 누가(18:35)가 눈먼 사람을 한 명만 언급한 것은 바디매오에게 초점을 맞췄기 때문인 것 같은데, 그의 이름은 마가복음에만 나온다.

나사렛: 아마도 “새싹 성읍”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부 갈릴리에 있는 도시로, 예수께서는 지상 생애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보내셨다.

예언자들을 통해 “그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 예언자 이사야가 쓴 책의 내용을 가리키는 것 같다. (사 11:1) 이사야서에서는 약속된 메시아를 ‘이새의 뿌리에서 난 싹[히브리어, 네체르]’으로 언급한다. 마태는 “예언자들”이라는 복수형을 사용했으므로, 예레미야와 스가랴도 포함된 것일 수 있다. 예레미야는 다윗에게서 나오는 “의로운 싹”에 대해 기록했으며 (렘 23:5; 33:15) 스가랴는 “‘싹’이라는 이름을 가진” 왕 겸 제사장에 대해 알려 준다. (슥 3:8; 6:12, 13) “나사렛 사람”이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고 나중에는 그분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별칭이 되었다.

다윗의 자손: 직역하면 “다윗의 아들”. 이 표현은 예수께서 다윗의 후손을 통해 성취될 다윗과의 왕국 계약의 상속자이심을 알려 준다.—삼하 7:11-16; 시 89:3, 4.

다윗 왕: 이 족보에 여러 왕의 이름이 언급되기는 하지만 “왕”이라는 칭호가 사용된 사람은 다윗뿐이다. 이스라엘의 왕조는 “다윗의 집”으로 불렸다. (왕상 12:19, 20) 마태는 1절에서 예수를 “다윗의 자손”으로 언급함으로 하느님의 왕국이라는 성경의 주제를 강조하며 예수께서 다윗과의 계약에서 약속된 왕권의 상속자이심을 밝힌다.—삼하 7:11-16.

경배하며: 또는 “몸을 굽히며; 경의를 표하며”. 유대인이 아닌 이 여자가 예수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른 것을 보면, (마 15:22) 그분이 약속된 메시아임을 인정한 것 같다. 그는 예수를 신으로 숭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대표자에게 경의를 표한 것이었다.—마 2:2; 8:2; 14:33; 18:26 연구 노트 참조.

나사렛 사람: 예수 그리고 나중에는 그분의 제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별칭. (행 24:5) 유대인들 중에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흔히 그 이름에 다른 사람과 구별시켜 주는 표현을 덧붙여 사용했다. 그처럼 구별시켜 주는 표현으로 출신지를 언급하는 것은 성경 시대의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삼하 3:2, 3; 17:27; 23:25-39; 나 1:1; 행 13:1; 21:29) 예수께서는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갈릴리 나사렛에서 보내셨으므로, 그분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예수께서는 여러 상황에서 다양한 사람들에게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셨다. (막 1:23, 24; 10:46, 47; 14:66-69; 16:5, 6; 눅 24:13-19; 요 18:1-7) 예수 자신도 그 이름을 받아들이고 사용하셨다. (요 18:5-8; 행 22:6-8) 빌라도가 형주 위에 붙인 명패에는 히브리어와 라틴어와 그리스어로 “유대인의 왕, 나사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 (요 19:19, 20)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에도 사도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은 자주 예수를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르거나 그분이 나사렛 출신이라고 언급했다.—행 2:22; 3:6; 4:10; 6:14; 10:38; 26:9. 또한 마 2:23 연구 노트 참조.

‘다윗의 아들’: 눈먼 바디매오는 예수를 “다윗의 아들”이라고 부름으로, 그분이 메시아이심을 공개적으로 인정했다.—마 1:1, 6; 15:25 연구 노트 참조.

랍보니: “나의 선생님”을 의미하는 셈어 단어. 원래 “랍보니”는 “선생님”을 의미하는 칭호인 “랍비”보다 더 존중심이나 친근감을 나타내는 표현이었을 수 있다. (요 1:38) 하지만 요한이 복음서를 기록할 무렵에는 이 단어에서 “나의”를 의미하는 1인칭 접미사가 그 특별한 의미를 상실한 것 같다. 요한이 이 단어를 “선생님”으로 번역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을 수 있다.—요 20:16.

미디어

요르단강 동쪽—페레아
요르단강 동쪽—페레아

사진에 나오는 것은 페레아라고 알려진 지역의 일부이다. 이 지역은 요르단강 동쪽에 있었으며 북쪽으로는 펠라, 남쪽으로는 사해 동편까지 뻗어 있었다. “페레아”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페레아”는 “건너편; 너머”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페란에서 유래했다. 페란은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오며 페레아 지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 경우도 있다. (마 4:25; 막 3:8)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으로 갈 때 페레아를 거쳐 가기도 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봉사 기간이 끝나 갈 무렵 페레아에서 얼마 동안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눅 13:22) 나중에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또다시 페레아를 지나셨다.—마 19:1; 20:17-19; 막 10:1, 32, 46.

(1) 요르단강

(2) 요르단강 동쪽 평원

(3) 길르앗 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