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1-45

1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의 시작.  예언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너보다 앞서* 보낸다. 그가 네 길을 준비할 것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음성이다. ‘여호와의 길을 준비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라’”라고+ 기록된 것처럼,  침례자 요한이 광야에 머물며 죄의 용서에 필요한 회개의 상징인 침례를 전파했다.+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이 그에게 와서, 자기들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침례를 받았다.+  요한은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으며,+ 메뚜기와+ 들꿀을 먹었다.+  그는 이렇게 전파했다. “내 뒤에 나보다 능력이 큰 분이 오시는데, 나는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 자격도 없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물로 침례를 주었지만, 그분은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것입니다.”+  그 무렵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에서 오시어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셨다.+ 10  그리고 물에서 올라오시자마자, 하늘이 갈라지고 영이 비둘기같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셨다.+ 11  그때에 하늘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려왔다. “너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다. 내가 너를 승인하였다.”+ 12  그 후 즉시 영이 그분을 재촉하여 광야로 가시게 했다. 13  그분은 40일 동안 광야에 계셨으며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그분은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을 시중들었다.+ 14  요한이 붙잡힌 뒤에,+ 예수께서는 갈릴리로 가셔서+ 하느님의 좋은 소식을 전파하며+ 15  말씀하셨다. “정해진 때가 찼고, 하느님의 왕국이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좋은 소식을 믿으십시오.” 16  그분은 갈릴리 바닷가를 걸으시다가 시몬과 시몬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를 따라오십시오. 내가 당신들을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18  그러자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리고 그분을 따랐다.+ 19  그분은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을 보셨는데, 그들은 배에서 그물을 수선하고 있었다.+ 20  그분은 즉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그분을 따라갔다. 21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들어갔다. 그분은 안식일이 되자마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22  사람들은 그분이 가르치시는 방식에 크게 놀랐다. 그분이 서기관들과는 달리 권위 있게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23  바로 그때 회당에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24  “나사렛 사람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우리를 없애려고 오셨습니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정확히 압니다. 하느님의 거룩한 분입니다!”+ 25  예수께서는 더러운 영에게 “조용히 해라. 그에게서 나와라!” 하고 꾸짖으셨다. 26  더러운 영은 그에게 경련을 일으켜 놓고 한껏 소리를 지르면서 나왔다.+ 27  그러자 사람들은 모두 몹시 놀라 “이게 어찌 된 일이지? 새로운 가르침이다! 더러운 영들에게 권위 있게 명령하시니 그들도 순종하는구나” 하고 서로 이야기했다. 28  그리하여 그분에 대한 소문이 순식간에 갈릴리 온 지방에 두루 퍼져 나갔다. 29  그러자 그들은 회당을 떠나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으로 갔다.+ 30  그때에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즉시 그분에게 그 여자에 대해 말했다. 31  그분이 여자에게 가서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열이 내렸고, 그 여자는 그들을 시중들었다. 32  해가 지고 저녁이 되자, 사람들이 병든 이들과 악귀 들린 이들을 모두 그분에게 데려오기 시작했다.+ 33  그리하여 온 도시 사람들이 문 앞에 모여들었다. 34  그분은 온갖 병을 앓고 있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시고+ 많은 악귀를 쫓아내셨다.+ 그러나 그분은 악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35  아직 어두운 이른 아침에, 그분은 일어나 밖으로 나가 외딴곳으로 가서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36  그런데 시몬과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이 예수를 찾아 나섰다가 37  그분을 만나자 “모두가 선생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38  그분이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곳으로, 가까운 마을들로 갑시다. 나는 거기서도 전파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내가 온 것입니다.”+ 39  그리고 그분은 가셔서 갈릴리 전역을 다니며 회당에서 전파하고 악귀를 쫓아내셨다.+ 40  어떤 나병 환자가 그분에게 와서 무릎을 꿇고 간청하며 “원하시기만 하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하고 말했다.+ 41  그분은 불쌍히 여기시고+ 손을 내밀어 그를 만지시며 “내가 원합니다! 깨끗하게 되십시오” 하고 말씀하셨다.+ 42  그러자 곧바로 나병이 사라지고 그가 깨끗해졌다. 43  그분은 그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시고 즉시 그를 보내며 44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당신의 몸을 보이고 당신이 깨끗해진 것에 대해 모세가 지시한 것을 바쳐서,+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십시오.”+ 45  그러나 그 사람은 떠나간 후에 그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도시로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 외딴곳에 머물러 계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계속 그분에게 왔다.+

각주

직역하면 “네 얼굴 앞에”.

연구 노트

마가: 라틴어 이름인 마르쿠스에서 나왔다. 마가는 행 12:12에 언급된 “요한”의 로마식 별명이다. 요한 마가의 어머니는 예루살렘에 살았던 초기 제자인 마리아이다. 요한 마가는 “바나바의 사촌”(골 4:10)이며 그와 함께 여행했다. 또한 바울이나 다른 초기 그리스도인 선교인들과도 함께 여행했다. (행 12:25; 13:5, 13; 딤후 4:11) 이 복음서에는 필자가 누구인지 구체적인 언급이 없지만 기원 2세기와 3세기의 저술가들은 마가가 이 복음서의 필자라고 생각한다.

마가복음: 복음서 필자 중 아무도 자신들의 기록에 이러한 제목을 붙여 자신이 필자임을 밝히지 않았다. 복음서 원문에는 제목이 나오지 않았던 것 같다. 마가복음의 사본 중에는 제목이 유앙겔리온 카타 마르콘(“마가에 의한 좋은 소식[또는 “복음”]”)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고 짧은 형태인 카타 마르콘(“마가에 의한”)으로 되어 있는 것도 있다. 이러한 제목들이 어느 시점에 붙여졌는지,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시기를 2세기로 추정하는 사람들도 있다. 긴 형태의 제목이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에 만들어진 복음서 사본들에 나오기 때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마가복음의 처음에 나오는 말(“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의 시작”) 때문에 “복음”(“좋은 소식”이라는 의미)이라는 단어가 사복음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필자의 이름을 넣은 이러한 제목들을 사용한 것은 이 책들을 쉽게 구분하여 부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좋은 소식: 일부 성경에서 “복음”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유앙겔리온이 처음 나오는 곳. 관련된 그리스어 표현인 유앙겔리스테스는 “복음 전파자”로 번역되며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을 의미한다.—행 21:8; 엡 4:11, 각주; 딤후 4:5, 각주.

좋은 소식: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 유앙겔리온은 “좋은” 또는 “잘”이라는 뜻의 라는 단어와 “소식을 전하는 자; 선포(선언)하는 자”를 의미하는 앙겔로스라는 단어에서 나온 말이다. (용어 설명 참조) 일부 성경에서는 이 표현을 “복음”으로 번역한다. 같은 어근에서 나온 “복음 전파자”(그리스어 유앙겔리스테스)라는 표현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행 21:8; 엡 4:11, 각주; 딤후 4:5, 각주.

하느님의 아들: 일부 사본에는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지만, 이 표현을 포함시키는 것이 사본상으로 더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좋은 소식: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좋은 소식”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다. 그럴 경우 예수께서 선포하신 좋은 소식이라는 뜻이 된다.

좋은 소식: 마 4:23; 24:14 연구 노트용어 설명 참조.

예언자 이사야: 이어지는 내용은 말 3:1과 사 40:3의 예언을 인용한 것이다. 두 예언 모두 침례자 요한에게 적용된다. 괄호는 말라기에서 인용한 내용을 이사야에서 인용한 내용과 구분하기 위한 것이다. 이사야의 예언은 3절부터 시작되며 요한이 전한 소식에 담긴 내용을 강조한다. 반면에, 말라기의 예언은 요한이 사자로서 수행한 역할에 초점을 맞춘다. 인용한 내용 전체를 가리켜 이사야의 글이라고 한 것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이 이사야의 예언에 들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보라!: 여기서 “보라!”로 번역된 그리스어 이두는 이어지는 내용으로 주의를 이끌어 독자가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 보거나 세부적인 점에 유의하게 하기 위해 종종 사용된다. 또한 강조하기 위해 혹은 새롭거나 놀라운 점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사용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가 많이 나오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요한 계시록이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같은 의미를 가진 단어가 자주 사용된다.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다 참조) 마태는 이 예언을 하느님의 대표자인 예수를 위해 길을 준비한 침례자 요한의 활동에 적용한다. 요한복음에서는 침례자 요한이 이 예언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요 1:23.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가5 참조) 복음서 필자들인 마태, 마가, 누가는 사 40:3의 예언을 침례자 요한에게 적용하며, 요한복음의 이 구절에서 침례자 요한은 그 예언을 자신에게 적용한다. 요한이 여호와의 길을 곧게 할 것이라는 말은 하늘의 아버지를 대표하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인 예수보다 요한이 앞서 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할 것이라는 의미이다.—요 5:43; 8:29.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라: 고대의 통치자들이 따르던 관습과 관련이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병거가 지나가기에 앞서 사람을 보내, 커다란 돌들을 치우거나 심지어 둑길을 만들거나 언덕을 평평하게 하여 길을 닦게 했다.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40: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 (부록 다 참조) 마가는 이 예언을 예수를 위해 길을 준비한 “침례자 요한”(막 1:4)의 활동에 적용한다.—마 3:3; 요 1:23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의 길을 곧게 하여라: 마 3:3 연구 노트 참조.

침례자: 또는 “물에 잠그는 자”. 일종의 별칭으로 사용된 듯한 이 표현은 요한이 물에 잠그는 방식으로 침례를 주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유대인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침례자로 불린 요한”에 대해 기록했다.

유대 광야: 이 지역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불모지로, 유대 산지의 동쪽 경사면에 있다. 이 지역은 요르단강과 사해의 서쪽 기슭으로 가면서 고도가 약 1200미터 낮아진다. 요한은 사해 북쪽에 있는, 유대 광야의 어느 지역에서 봉사를 시작했다.

회개하십시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단어는 문자적으로 “생각을 바꾸다”로 번역될 수 있으며, 견해나 태도나 목적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이 문맥에서 “회개”한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과 가까운 관계를 맺기 위해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마 3:8, 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회개” 참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십시오: 요한의 말을 듣는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이나 태도가 바뀌었다는 증거를 제시하고 그 점을 행동으로 나타내야 한다는 의미이다.—눅 3:8; 행 26:20; 마 3:2, 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회개” 참조.

물로 침례를 줍니다: 또는 “물에 잠기게 합니다”. 그리스어 밥티조는 “담그다; 빠뜨리다”를 의미한다. 성경에 이 단어가 나오는 다른 사례들은 침례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요한은 살림 근처의 요르단 골짜기 어딘가에서 침례를 베푼 적이 있다. “그곳에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 3:23) 빌립이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때, 두 사람 모두 “물로 들어갔다.” (행 8:38) 또한 「칠십인역」 왕하 5:14에서는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근” 일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회개하기: 직역하면 “생각을 바꾸기”.—마 3:2, 8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회개” 참조.

침례자: 또는 “물에 잠그는 자”. 이 구절과 막 6:14, 24에서는 그리스어 분사 밥티존이 사용되었으며 “침례를 주는 자”로 번역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막 6:25; 8:28과 마태복음 및 누가복음에서는 이 그리스어의 명사 형태인 밥티스테스가 사용되었다. 두 표현은 형태가 약간 다르지만 의미는 같다. 그렇기 때문에 막 6:24, 25의 그리스어 원문에서는 이 두 표현이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마 3:1 연구 노트 참조.

광야: 유대 광야를 가리킨다.—마 3:1 연구 노트 참조.

회개의 상징인 침례: 직역하면 “회개의 침례”. 침례를 받는다고 해서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요한에게 침례를 받는 것은 율법을 어긴 죄에 대해 공개적으로 회개함으로, 행실을 변화시키겠다는 결심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처럼 회개하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되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갈 3:24) 이와 같이 요한은 한 백성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을 볼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었다.—눅 3:3-6. 마 3:2, 8, 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침례”; “회개” 참조.

자기들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율법 계약을 어긴 죄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숨김없이 밝혔다는 의미이다.

물로 침례를 줍니다: 또는 “물에 잠기게 합니다”. 그리스어 밥티조는 “담그다; 빠뜨리다”를 의미한다. 성경에 이 단어가 나오는 다른 사례들은 침례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요한은 살림 근처의 요르단 골짜기 어딘가에서 침례를 베푼 적이 있다. “그곳에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 3:23) 빌립이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때, 두 사람 모두 “물로 들어갔다.” (행 8:38) 또한 「칠십인역」 왕하 5:14에서는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근” 일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온 ··· 지방 ··· 모든 주민: 여기서 ‘온 지방’, “모든 주민”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요한의 전파 활동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음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한 것이다. 유대나 예루살렘의 주민이 빠짐없이 모두 그를 보러 왔다는 뜻은 아니다.

자기들의 죄를 숨김없이 고백하고: 마 3:6 연구 노트 참조.

침례를 받았다: 또는 “물에 잠겼다; 몸을 담갔다”.—마 3: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침례” 참조.

낙타털 옷을 입고: 낙타털로 짠 옷을 입고 가죽띠를 두른 요한의 모습은 예언자 엘리야를 떠올리게 했다.—왕하 1:8; 요 1:21.

메뚜기: 단백질이 풍부한 이 곤충은 율법에서 먹을 수 있는 식품으로 규정된 정결한 생물이다.—레 11:21, 22.

들꿀: 양봉을 해서 얻은 꿀이 아니라 광야의 벌집에서 채취한 꿀을 가리킨다. 광야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메뚜기와 들꿀을 먹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낙타털 옷: 마 3:4 연구 노트 참조.

메뚜기: 마 3:4 연구 노트 참조.

들꿀: 마 3:4 연구 노트 참조.

능력이 큰: “더 큰 권한을 가진”을 의미한다.

신발: 또는 “샌들”. 다른 사람의 신발을 벗겨서 가지고 다니거나 신발 끈을 풀어 주는 것(막 1:7; 눅 3:16; 요 1:27)은 흔히 종이 하는 비천한 일로 여겨졌다.

능력이 큰: 마 3:11 연구 노트 참조.

신발: 마 3:11 연구 노트 참조.

물로 침례를 줍니다: 또는 “물에 잠기게 합니다”. 그리스어 밥티조는 “담그다; 빠뜨리다”를 의미한다. 성경에 이 단어가 나오는 다른 사례들은 침례가 물에 완전히 잠기는 것과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요한은 살림 근처의 요르단 골짜기 어딘가에서 침례를 베푼 적이 있다. “그곳에 물이 많았기 때문이다.” (요 3:23) 빌립이 에티오피아 환관에게 침례를 베풀었을 때, 두 사람 모두 “물로 들어갔다.” (행 8:38) 또한 「칠십인역」 왕하 5:14에서는 나아만이 “요르단 강에 일곱 번 몸을 담근” 일을 묘사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했다.

물로 침례를 주었지만: 또는 “물에 잠기게 했지만”.—마 3:1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침례” 참조.

여러분에게 성령으로 침례를 주실: 또는 “여러분이 거룩한 활동력에 잠기게 하실”. 여기서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침례를 주는 새로운 마련을 하실 것이라고 선언한다. 하느님의 영으로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영으로 출생한 그분의 아들들이 되어, 하늘에 살면서 왕으로서 땅을 통치할 전망을 갖게 된다.—계 5:9, 10.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통치 제15년: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기원 14년 8월 17일(그레고리력)에 사망했다. 9월 15일에 티베리우스는 로마 원로원이 자신을 황제로 선포하게 했다. 티베리우스의 통치 기간을 아우구스투스가 사망한 시점부터 계산하면 그의 통치 제15년은 기원 28년 8월부터 기원 29년 8월까지가 된다. 티베리우스가 공식적으로 황제로 선포된 시점부터 계산하면 그의 통치 제15년은 기원 28년 9월부터 기원 29년 9월까지가 된다. 요한은 티베리우스 통치 제15년이던, 기원 29년 봄(북반구)에 봉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한 것 같다. 티베리우스 통치 제15년에 요한은 30세가량 되었을 것이다. 레위 제사장들이 성전에서 봉사하기 시작하는 나이가 30세였다. (민 4:2, 3) 눅 3:21-23에 따르면, 예수께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고 “활동을 시작하셨을 때” 그분의 나이도 “30세쯤이었다.” 예수께서 사망하신 때는 봄이었던 니산월이었으므로, 3년 반이었던 그분의 봉사 기간이 시작된 시점은 가을 즉 에다님월(9월/10월)쯤이었을 것이다. 요한은 예수보다 6개월 먼저 태어났을 것이며, 그의 봉사도 예수보다 6개월 일찍 시작되었던 것 같다. (눅 1장) 따라서 요한이 봉사를 시작한 시점은 기원 29년 봄이었을 것으로 결론 내리는 것이 이치적이다.—눅 3:23; 요 2:13 연구 노트 참조.

그 무렵: 눅 3:1-3에 따르면, 침례자 요한이 봉사를 시작한 때는 “티베리우스 카이사르 통치 제15년”으로, 기원 29년 봄이었다. (눅 3:1 연구 노트 참조) 약 6개월 뒤인 기원 29년 가을에 예수께서 침례를 받으러 요한에게 오셨다.—부록 가7 참조.

하늘: 물질적 하늘이나 영적 하늘을 가리킬 수 있다.

올라오시자마자: 여기서 “~자마자”로 번역된 그리스어 유티스마가복음 1장에 11회 나오는데, 이것이 그중 첫 번째이다. (막 1:10, 12, 18, 20, 21, 23, 28, 29, 30, 42, 43) 이 단어는 문맥에 따라 “즉시”, “곧바로”, “곧”, “~자마자”로 번역된다. 마가복음에는 이 단어가 40회 이상 사용되어 내용이 박진감 있고 생생하게 전개된다.

하늘: 마 3:16 연구 노트 참조.

하늘이 갈라지고: 하느님께서 예수가 하늘의 일들을 인지할 수 있게 하신 것 같다. 그리고 이때 예수가 인간 이전의 삶에 대한 기억을 되찾게 해 주셨을 수 있다. 예수께서 침례받은 이후에 하신 말씀들, 특히 기원 33년 유월절 밤에 아버지께 드린 친밀한 기도는 당시 그분이 자신의 인간 이전의 삶에 대해 알고 계셨다는 점을 보여 준다. 또한 그 기도를 보면 예수께서 자신이 하늘에 있을 때 아버지께서 하셨던 말씀과 아버지께서 하셨던 일 그리고 자신이 하늘에서 누렸던 영광을 기억하셨다는 점도 알 수 있다. (요 6:46; 7:28, 29; 8:26, 28, 38; 14:2; 17:5) 예수께서는 침례받고 기름부음받을 때 그러한 기억을 되찾게 되신 것 같다.

비둘기같이: 비둘기는 신성한 용도로도 사용되었으며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 새는 희생 제물로 쓰였으며 (막 11:15; 요 2:14-16) 순진함, 순수함, 순결함을 상징했다. (마 10:16) 노아가 방주에서 놓아준 비둘기는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왔는데, 이것은 홍수로 차오른 물이 빠지고 있으며 (창 8:11) 쉼과 평화를 누릴 때가 다가왔다는 의미였다. (창 5:29) 이러한 점을 볼 때, 예수가 침례받을 때 여호와께서 비둘기를 사용하신 것은 예수가 메시아로서 수행할 역할에 주의를 이끌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예수는 하느님의 순결하고 죄 없는 아들로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희생하여, 자신이 왕으로 통치할 때 인류가 쉼과 평화를 누리도록 기초를 놓을 것이었다. 예수가 침례를 받을 때 하느님의 즉 활동력이 내려오는 모습은 비둘기가 날갯짓을 하며 내려앉는 모습과 비슷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이 표현은 “자신 안으로”로 번역할 수도 있는데, 그러면 영이 그분 안으로 들어갔다는 의미가 된다.

보셨다: 요 1:32, 33에서 알 수 있듯이 침례자 요한도 이 일을 목격했다. 하지만 마가는 예수의 관점으로 이 사건을 기록한 것 같다.

음성: 복음서 기록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두 번째이다.—막 1:11; 요 12:28 연구 노트 참조.

음성: 복음서 기록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마 3:16, 17; 막 1:11; 눅 3:22에 나오는데 기원 29년에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였다. 두 번째는 마 17:5; 막 9:7; 눅 9:35에 나오며 기원 32년에 예수께서 변형되신 일과 관련이 있다. 세 번째는 요한복음에만 나온다. 이 일은 기원 33년에 예수께서 마지막 유월절을 지키시기 얼마 전에 있었다. 예수께서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십시오”라고 청하자 여호와께서 그에 대해 응답하신 것이다.

내가 그를 승인하였다: 또는 “그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자이다; 그는 내가 매우 기뻐하는 자이다”. 마 12:18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구절은 약속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한 사 42:1을 인용한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에 관해 선언하신 것은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마 12:18 연구 노트 참조.

내가 승인한: 또는 “내 영혼이 승인한”. 사 42:1에서 인용한 이 표현에서 히브리어 네페시가 그리스어 프시케로 번역되었다. 두 단어 모두 종종 “영혼”이라고 번역된다. (용어 설명 “영혼” 참조) 또한 여기서 “승인한”은 “매우 좋아하는”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마 3:17 연구 노트 참조.

하늘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려왔다: 복음서 기록에는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직접 말씀하신 경우가 세 번 나오는데, 이것은 그중 첫 번째이다.—막 9:7; 요 12:28 연구 노트 참조.

너는 ··· 내 아들이다: 영적 피조물이었던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요 3:16) 인간으로 태어난 후에도 그분은 완전했던 아담과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눅 1:35; 3:38) 하지만 이 구절에서 하느님이 하신 말씀에는 단순히 예수의 신분을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에게 성령을 부어 주면서 이렇게 선언하심으로, 인간 예수가 영으로 출생한 그분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하늘 생명으로 돌아갈 희망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 같다. 또한 예수가 하느님이 임명하신 왕 겸 대제사장이 되도록 영으로 기름부음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 같다.—요 3:3-6; 6:51. 눅 1:31-33; 히 2:17; 5:1, 4-10; 7:1-3 비교.

내가 너를 승인하였다: 또는 “너는 내가 매우 좋아하는 자이다; 너는 내가 매우 기뻐하는 자이다”. 마 12:18에도 비슷한 표현이 나오는데, 그 구절은 약속된 메시아 즉 그리스도에 관해 예언한 사 42:1을 인용한 것이다. 성령이 부어지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아들에 관해 선언하신 것은 예수가 약속된 메시아임을 분명히 보여 주었다.—마 3:17; 12:18 연구 노트 참조.

영이 그분을 재촉하여 ··· 가시게 했다: 또는 “활동력이 그분의 마음을 움직여 ··· 가시게 했다”.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하느님의 영을 가리킨다. 이 영은 사람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게 행동하도록 마음을 움직이고 재촉하는 추진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눅 4:1. 용어 설명 “” 참조.

사탄: “대항자; 적대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사탄에서 나온 이름.

사탄: 마 4:10 연구 노트 참조.

들짐승: 예수 시대에는 그 지역에 오늘날보다 야생 동물이 더 많았다. 광야에는 늑대, 멧돼지, 사자, 표범, 하이에나가 살고 있었다. 복음서 필자 중 마가만이 이 지역에 들짐승이 있었다고 언급한다. 마가는 이스라엘의 지리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로마인들과 그 밖의 비유대인들을 위해 복음서를 기록한 것 같다.

왕국: 그리스어 바실레이아가 처음 나오는 곳으로, 왕이 다스리는 정부뿐만 아니라 왕의 통치를 받는 영토와 민족들을 가리킨다. 이 그리스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총 162회 나온다. 그중 55회가 마태복음에 나오는데, 대부분 하느님의 하늘 정부를 가리킨다. 마태가 이 단어를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그의 복음서는 “왕국 복음서”라고 불리기도 한다.—용어 설명 “하느님의 왕국” 참조.

하늘 왕국: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마태복음에 약 30회 등장하며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다.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이에 대응하는 표현인 “하느님의 왕국”을 사용한다. 이 점을 볼 때 “하느님의 왕국”이 영적 하늘에 기반을 두고 통치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마 21:43; 막 1:15; 눅 4:43; 단 2:44; 딤후 4:18.

하늘 왕국이 다가왔습니다: 새로운 세계 정부에 관한 이 소식은 예수께서 수행하신 전파 활동의 주제였다. (마 10:7; 막 1:15) 침례자 요한은 예수께서 침례받으시기 약 6개월 전에 그와 비슷한 소식을 선포하기 시작했다. (마 3:1, 2) 하지만 왕국이 ‘다가왔다’는 예수의 말씀에는 더 큰 의미가 있었다. 기름부음받은 왕으로 지명되신 그분이 와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의 죽음 이후에도 제자들이 왕국이 ‘다가왔다’거나 가까이 있다고 선포한 기록은 없다.

왕국: 성경에서 이 단어는 “왕이 다스리는 지역이나 나라”, “왕권”, “통치 영역”, “왕의 통치를 받는 상태”를 포함해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이 구절에서는 하느님의 왕국의 영역 내에서 그 왕국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사람들이 누리게 될 유익과 축복을 가리키는 표현인 것 같다.

정해진 때가 찼고: 이 문맥에서 “정해진 때”(그리스어 카이로스)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예수께서 지상 봉사를 시작하여 사람들에게 좋은 소식을 믿을 기회를 주시는 때를 가리킨다. 동일한 그리스어 단어가 예수의 봉사로 시작된 검사받는 “때” 혹은 “시대”(눅 12:56; 19:44)와 그분이 죽게 될 “정해진 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마 26:18.

하느님의 왕국: 이 표현은 마가복음에 14회 나온다. 마태는 원문에서 이 표현을 4회(마 12:28; 19:24; 21:31; 21:43)밖에 사용하지 않지만 이에 대응하는 표현인 “하늘 왕국”은 약 30회 사용한다. (막 10:23과 마 19:23, 24 비교) 왕국은 예수께서 전파하신 소식의 주제였다. (눅 4:43) 사복음서에는 왕국이 100회 이상 언급되는데 그중 대부분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에 나온다.—마 3:2; 4:17; 25:34 연구 노트 참조.

갈릴리 바닷가: 갈릴리 바다는 이스라엘 북부 내륙에 있는 담수호이다. (“바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호수”를 의미할 수도 있다.) “긴네렛 바다”(민 34:11), ‘게네사렛 호수’(눅 5:1), “티베리아스 바다”(요 6:1)라고도 불렸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보다 평균 210미터 아래 위치해 있다. 남북으로 길이가 21킬로미터, 폭이 12킬로미터이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약 48미터이다.—부록 가7 지도 3ㄴ “갈릴리 바다에서 하신 활동” 참조.

그물을 던지고 있는: 능숙한 어부는 얕은 물에 들어가거나 작은 배에 탄 채 그물을 던져 수면 위에 넓게 원 모양으로 펼쳐지게 할 수 있었다. 지름이 약 6-8미터인 그물 둘레에는 추가 달려 있었기 때문에 그물이 가라앉으면서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어부: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는 흔한 직업이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단지 혼자서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기잡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아마도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동업을 했을 것이다.—막 1:16-21; 눅 5:7, 10.

갈릴리 바닷가: 마 4:18 연구 노트 참조.

그물을 던지고 있는: 마 4:18 연구 노트 참조.

어부: 마 4:18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을 낚는 어부: 시몬과 안드레가 하게 될 일을 그들의 직업에 빗대어 하신 말씀이다. 이 말은 어부들이 물고기를 그물 안으로 모아들이듯이, 그들이 왕국에 들어갈 사람들을 모으게 될 것임을 시사한다. (눅 5:10) 또한 사람들을 제자로 삼는 활동이 고기잡이처럼 많은 노력과 끈기를 요하는 고된 일이며 성과를 거의 거두지 못할 때도 있다는 암시가 담겨 있을 수 있다.

사람을 낚는 어부: 마 4:19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을 따랐다: 이때는 베드로와 안드레가 예수의 제자가 된 지 약 6개월에서 1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요 1:35-42) 이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고기잡이 사업을 그만두고 전 시간 그분을 따르도록 권하신다.—눅 5:1-11. 마 4:22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을 따랐다: 마 4:20 연구 노트 참조.

세베대: 아마도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자매지간이었을 살로메의 남편으로, 예수의 이모부였을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의 이종사촌이었을 것이다.—막 15:40 연구 노트 참조.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야고보는 항상 그의 형제 요한과 함께 언급되는데, 대부분의 경우 야고보의 이름이 먼저 나온다. 아마도 야고보가 형이기 때문인 것 같다.—마 4:21; 10:2; 17:1; 막 1:29; 3:17; 5:37; 9:2; 10:35, 41; 13:3; 14:33; 눅 5:10; 6:14; 8:51; 9:28, 54; 행 1:13.

세베대: 마 4:21 연구 노트 참조.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마 4:21 연구 노트 참조.

어부: 갈릴리에서 고기잡이는 흔한 직업이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 안드레는 단지 혼자서 고기를 잡는 어부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기잡이 사업을 운영하고 있었으며, 아마도 세베대의 아들들인 야고보와 요한과 동업을 했을 것이다.—막 1:16-21; 눅 5:7, 10.

일꾼들과 함께: 복음서 필자 가운데 마가만이 세베대와 그의 아들들이 “일꾼들”을 두고 고기잡이 사업을 했다는 점을 언급한다. 그들의 동업자였을 것이며 마가가 기록한 내용 대부분을 목격했을 베드로가 이 점을 마가에게 알려 주었을 수 있다. (눅 5:5-11. 또한 “마가복음 소개” 참조) 세베대와 그의 아들들이 일꾼들을 두고 있었으며 누가복음에서 알려 주듯이 적어도 두 척의 배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점을 볼 때, 그들의 고기잡이 사업이 잘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마 4:18 연구 노트 참조.

가버나움: “나훔의 마을” 또는 “위로의 마을”이라는 의미의 히브리어 이름에서 유래했다. (나 1:1, 각주) 갈릴리 바다 북서쪽 연안에 있었던 이 도시는 예수의 지상 봉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으며 마 9:1에는 그분 “자신의 도시”라고 되어 있다.

가버나움: 마 4:13 연구 노트 참조.

회당: 용어 설명 참조.

그분이 가르치시는 방식: “그분의 가르침”이라고 번역할 수도 있는 이 표현은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 사용하신 방법뿐 아니라 그분이 가르치신 내용도 가리킨다.

서기관들과는 달리: 서기관들은 흔히 자신의 가르침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존경받는 랍비들의 말을 인용하곤 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여호와의 대표자로서 하느님의 말씀을 근거로 권위 있게 가르치셨다.—요 7:16.

더러운 영: 마가는 이 표현을 “악귀”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한다. (막 1:23, 26, 27과 1:34, 39 비교. 또한 막 3:11, 30과 3:15, 22 비교) 그는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 악귀들이 도덕적, 영적으로 더러운 상태이며 인간에게 더러운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가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그가 24절에 나오는 말을 외치자, 예수께서는 그가 그 말을 하게 만든 더러운 영을 꾸짖으셨다.—막 1:25; 눅 4:35.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또는 “우리와 당신 사이에 무슨 공통점이 있습니까?” 이것은 수사적 질문으로서, 직역하면 “우리와 당신에게 무엇이 있습니까?”가 된다. 이 셈어 관용구는 히브리어 성경에 여러 차례 나오며 (수 22:24; 삿 11:12; 삼하 16:10; 19:22; 왕상 17:18; 왕하 3:13; 대하 35:21; 호 14:8)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도 나온다. (마 8:29; 막 1:24; 5:7; 눅 4:34; 8:28; 요 2:4)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문맥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 구절에서는 적대감을 나타내거나 강하게 반발하는 말로 쓰였으며, 일부 번역자들은 이 말을 “우리를 방해하지 마십시오!” 또는 “우리를 내버려 두십시오!”로 번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른 문맥에서는 적대적이거나 거만하거나 상대방을 멸시하는 듯한 태도를 나타내지 않으면서, 그와 의견이나 생각이 다르다는 점을 표현할 때 또는 그가 제안한 대로 행동하기를 거절할 때 사용되었다.—요 2:4 연구 노트 참조.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마 8:29 연구 노트 참조.

우리가 ··· 나는: 원문에서 23절의 더러운 영에 해당하는 명사는 단수형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이 남자를 조종하던 그 영은 다른 악귀들까지 포함하여 “우리”라고 말한 다음 자신만을 가리켜 “나”라고 한 것 같다.

조용히 해라: 직역하면 “부리망을 씌워라”. 더러운 영이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메시아이심을 알고 있었고 그분을 “하느님의 거룩한 분”(24절)이라고 불렀지만, 예수께서는 악귀들이 자신에 대해 증언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막 1:34; 3:11, 12.

시몬의 장모: 게바라고도 불리는 베드로의 장모를 가리킨다. (요 1:42) 베드로의 장모에 관한 이러한 언급은 고전 9:5에서 바울이 게바를 결혼한 사람으로 언급한 것과도 조화를 이룬다. 베드로의 장모는 베드로의 집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도 그와 한집에 살았다.—막 1:29-31. 베드로의 다른 이름들에 관해 설명하는 마 10:2 연구 노트 참조.

고열로 앓고 있었는데: 마태와 마가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고 말한다. (마 8:14; 막 1:30) 누가만이 베드로의 장모가 “고열”을 앓고 있었다고 언급한다. 누가가 베드로의 장모의 상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그처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은 그가 의사였기 때문일 것이다.—“누가복음 소개” 참조.

시몬의 장모: 눅 4:38 연구 노트 참조.

열병으로 앓아누워: 눅 4:38 연구 노트 참조.

저녁이 되자: 안식일이 끝났음을 의미한다. 평행 기록인 막 1:21-32과 눅 4:31-40을 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저녁이 되자: 니산월 14일이 시작되는 저녁이 되었다는 의미이다.—부록 가7나12 참조.

해가 지고: 해가 지면서 안식일이 끝났다. (레 23:32; 막 1:21. 마 8:16; 26:20 연구 노트 참조) 이제 모든 유대인들은 비난받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고 병 고침이 필요한 아픈 사람들을 예수께 데려올 수 있었다.—막 2:1-5; 눅 4:31-40 비교.

병든 이들과 악귀 들린 이들: 때때로 악귀들은 자신이 조종하는 사람들이 병을 앓게 만들었다. (마 12:22; 17:15-18) 하지만 성경은 일반적인 질병과 악귀에 들려 겪는 고통을 구별한다. 사람들이 고통을 겪는 원인이 무엇이었든 예수께서는 그들을 고쳐 주셨다.—마 4:24; 8:16; 막 1:34.

온 도시 사람들: 막 1:5에서와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필자는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묘사하려고 과장법을 사용하여 “온 도시 사람들”이라고 표현한 것 같다.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 그리스어 사본에는 “그들이 그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그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로도 번역할 수 있다. 평행 기록인 눅 4:41에는 “그분이 그리스도라는 것을 그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로 되어 있다.

모두가: 많은 사람이 예수를 찾고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과장법을 사용한 것 같다.

갈릴리 전역을 다니며 ··· 전파하고: 예수께서 첫 번째 갈릴리 전파 여행을 시작하셨음을 의미한다. 그분은 얼마 전에 선택한 네 명의 제자들인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가신다.—막 1:16-20. 부록 가7 참조.

나병: 매우 심각한 피부병. 성경에서 말하는 나병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나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나병 진단을 받은 사람은 병이 나을 때까지 따로 떨어져 살아야 했다.—레 13:2, 각주, 45, 46. 용어 설명 “나병; 나병 환자” 참조.

나병: 마 8:2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나병; 나병 환자” 참조.

무릎을 꿇고: 고대 근동에서 무릎을 꿇는 것은 특히 윗사람에게 간청할 때 존경심을 나타내는 자세였다. 이 나병 환자의 행동을 묘사하면서 이러한 구체적인 표현을 사용한 복음서 필자는 마가뿐이다.

불쌍히 여기셨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 스플랑크니조마이는 “창자”를 의미하는 단어(스플랑크나)와 관련이 있으며, 몸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느낌 즉 강렬한 감정을 나타낸다. 이것은 동정심을 매우 강하게 표현하는 그리스어 단어 중 하나이다.

그를 만지시며: 모세 율법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기지 않도록 격리되어야 했다. (레 13:45, 46; 민 5:1-4) 하지만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 외에도 규정들을 더 만들었다. 예를 들어, 아무도 나병 환자에게 4큐빗(약 1.8미터) 이내로 접근해서는 안 되었으며 바람이 불 때는 100큐빗(약 45미터) 이상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러한 규정 때문에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몰인정하게 대했다. 한 유대교 전통 문헌에서는 나병 환자를 피해 몸을 숨긴 한 랍비와 나병 환자가 다가오지 못하게 돌을 던진 다른 랍비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한다. 그와는 달리 예수께서는 나병 환자의 불쌍한 처지에 깊은 동정심을 느끼시고 그를 만지며 낫게 하셨다. 말씀만으로 고쳐 주실 수 있었는데도 그렇게 하신 것이다. (마 8:5-13)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그렇게 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원합니다: 예수께서는 부탁을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그렇게 해 주고 싶은 강한 열망을 나타내셨다. 이 점을 볼 때 그분이 단지 의무감 때문에 그를 도와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불쌍히 여기시고: 또는 “동정심을 느끼시고”. (마 9:36 연구 노트 참조) 일부 현대 성경 번역판에는 이 표현이 “분개하시면서(화가 나셔서)”로 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사본들을 비롯해 대다수의 고대 사본들에는 “불쌍히 여기시고(동정심을 느끼시고)”라고 되어 있다. 또한 문맥을 보아도, 예수께서 화가 나서가 아니라 동정심에서 우러나와 행동하셨음이 분명하다.

그를 만지시며: 마 8:3 연구 노트 참조.

내가 원합니다: 마 8:3 연구 노트 참조.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이런 명령을 하신 이유는 자신의 이름을 돋보이게 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이거나 여호와 하느님과 왕국의 좋은 소식에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게 만드는 어떤 일도 하기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인 것 같다. 그분은 그러한 태도를 나타내심으로 사 42:1, 2에 나오는 예언을 성취시키셨다. 그 구절에는 여호와의 종이 ‘자기 목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즉 떠들썩한 방식으로 들리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마 12:15-19) 예수의 겸손한 태도는 그분이 정죄하셨던 위선자들의 태도와 뚜렷한 대조가 되었는데,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큰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했다. (마 6: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기적에 대한 떠들썩한 소문이 아니라 확고한 증거를 바탕으로 그분이 그리스도임을 확신하게 되기를 바라셨던 것 같다.

제사장에게 당신의 몸을 보이고: 모세 율법에 따르면 나병 환자는 제사장에게서 병이 완치되었다는 확인을 받아야 했다. 병이 나은 나병 환자는 레 14:2-32에 나오는 규정에 따라 성전까지 가야 했으며 모세가 지시한 것을 제물로 바쳐야 했다.

미디어

마가복음 소개 동영상
마가복음 소개 동영상
마가복음—주요 사건들
마가복음—주요 사건들

가능한 경우 사건은 시간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지도에 표시된 사건들은 복음서마다 차이가 있다

1. 침례자 요한이 요르단강 근처 광야에서 전파하다 (마 3:1, 2; 막 1:3-5; 눅 3:2, 3)

2. 예수께서 요르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다. 여호와께서 예수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밝히시다 (마 3:13, 16, 17; 막 1:9-11; 눅 3:21, 22)

3.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전파하기 시작하시다 (마 4:17; 막 1:14, 15; 눅 4:14, 15)

4. 갈릴리 바닷가에서 예수께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라고 네 명의 제자를 부르시다 (마 4:18-22; 막 1:16-20)

5. 예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시다 (막 1:21; 눅 4:31, 38)

6. 예수께서 가버나움 근처의 산에 올라가셔서 열두 사도를 선택하시다 (막 3:13-15; 눅 6:12, 13)

7. 갈릴리 바다에서 예수께서 거센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다 (마 8:23-26; 막 4:37-39; 눅 8:22-24)

8. 아마도 가버나움에서, 한 여자가 예수의 겉옷을 만져 병이 낫게 되다 (마 9:19-22; 막 5:25-29; 눅 8:43, 44)

9. 갈릴리 바다 북동쪽에서 예수께서 남자 약 5000명을 먹이시다 (마 14:19-21; 막 6:39-42, 44; 눅 9:14, 16, 17; 요 6:10, 11)

10.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배를 타고 벳새다 쪽으로 가라고 하시다 (마 14:22; 막 6:45)

11. 예수께서 티레와 시돈 지방에서 시로페니키아 여자의 딸을 고쳐 주시다 (마 15:21, 22, 28; 막 7:24-26, 29)

12.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로 가는 길에 데카폴리스 지방을 지나시다 (막 7:31)

13. 예수께서 벳새다에서 눈먼 사람을 고쳐 주시다 (막 8:22-25)

14. 예수께서 페레아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시다 (마 19:1-3; 막 10:1, 2)

15. 예수께서 예리코 근처에서 눈먼 사람들을 고쳐 주시다 (마 20:29, 30, 34; 막 10:46, 47, 51, 52; 눅 18:35, 40-43)

16. 예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시다 (마 21:12, 13; 막 11:15-17; 눅 19:45, 46)

17. 여인의 뜰에 있는 성전 보물고에서 예수께서 가난한 과부가 동전 두 닢을 헌금하는 것을 보시다 (막 12:42-44; 눅 21:1-4)

18. 예수께서 성전을 떠나 올리브산으로 가시는 도중에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고 예언하시다 (마 24:1, 2; 막 13:1, 2; 눅 21:5, 6)

19. 예루살렘 도시에서 유월절을 지킬 준비를 하다 (막 14:13-16; 눅 22:10-13)

20. 예수께서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으로 끌려가시다 (마 26:57-59; 막 14:60-62; 눅 22:54)

21. 예수께서 이번에는 산헤드린 회의실로 끌려가, 또다시 산헤드린 앞에 서시다 (막 15:1; 눅 22:66-69)

광야
광야

성경에서 “광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미드바르)와 그리스어 단어(에레모스)는 일반적으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경작되지 않은 땅을 가리키는 말로, 대개 덤불과 풀이 나 있는 스텝 지역을 지칭하며 초원을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이 단어들은 사막이라고 부를 수 있는 메마른 지역을 가리키는 데도 쓰인다. 복음서에 언급된 광야는 주로 유대 광야를 가리킨다. 요한은 유대 광야에 머물면서 전파 활동을 했으며 예수께서는 이곳에서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다.—막 1:12.

침례자 요한의 옷차림과 외모
침례자 요한의 옷차림과 외모

요한은 낙타털로 짠 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둘렀다. 가죽띠는 작은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용도로도 사용될 수 있었다. 예언자 엘리야도 그와 비슷한 옷차림을 했다. (왕하 1:8) 낙타털로 만든 옷은 촉감이 거칠어서 주로 가난한 사람들이 입었다. 반면에 부유한 사람들은 비단이나 아마포로 만든 부드러운 옷을 입었다. (마 11:7-9)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이었기 때문에 한 번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 요한의 옷차림과 외모를 보면 그가 단순한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행하는 데 전념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곧바로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메뚜기
메뚜기

성경에 나오는 “메뚜기”라는 말은 짧은 더듬이가 있는 메뚜기 종류를 다 가리킬 수 있는 단어로, 특히 거대한 떼를 지어 이동하는 메뚜기를 지칭한다.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한 연구에 의하면, 사막메뚜기의 몸은 75퍼센트가 단백질로 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날 아랍 사람들은 메뚜기를 식용으로 사용할 때 머리, 다리, 날개, 배 부분을 떼어 내고 가슴 부분을 날것으로 또는 익혀서 먹는다. 메뚜기는 새우나 게와 맛이 비슷하고 단백질이 풍부하다고 한다.

들꿀
들꿀

야생 꿀벌이 만든 벌집(1)과 꿀이 가득한 벌집 조각(2)의 사진. 요한이 먹은 꿀은 그 지역에 서식하는 야생 벌(Apis mellifera syriaca)이 만든 꿀이었을 것이다. 공격성이 강한 이 벌은 유대 광야의 고온 건조한 기후에서 잘 살아가지만 양봉에는 적합하지 않다. 그런데 기원전 9세기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점토로 만든 원기둥 모양의 통에 꿀벌을 길렀다. 요르단 골짜기에 있던 한 도시(지금의 텔레호브)의 중심부에서 그러한 벌통이 많이 발견되었다. 당시 양봉에 사용되었던 벌은 현재 터키로 알려진 지역에서 들여온 벌이었던 것 같다.

신발
신발

성경 시대에 사람들은 샌들을 신었다. 샌들은 가죽이나 나무나 다른 섬유 재료로 바닥을 만들고 이를 가죽끈으로 발등에 매게 되어 있는 신발이었다. 신발은 특정한 종류의 거래에서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비유적인 표현에도 사용되었다. 예를 들어, 율법 아래서는 과부가 자신과 시숙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는 남자의 발에서 신을 벗겼는데, 그러면 그 남자는 “신 벗겨진 자의 집”이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신 25:9, 10) 재산이나 도로 살 권리를 넘겨줄 때는 자기 신발을 상대방에게 건네주는 행동으로 그것을 나타냈다. (룻 4:7) 다른 사람의 신발 끈을 풀어 주거나 그의 신발을 가지고 다니는 것은 흔히 종이 하는 비천한 일로 여겨졌다. 침례자 요한은 그러한 관습을 언급하면서 그리스도가 자신보다 훨씬 큰 분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요르단강
요르단강

요한은 요르단강에서 예수께 침례를 베풀었다. 정확한 장소는 알려져 있지 않다.

이스르엘 골짜기
이스르엘 골짜기

이 사진은 나사렛 근처의 한 절벽에서 남쪽을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동서로 넓게 펼쳐져 있는 것이 성경 기록에 자주 언급되는 비옥한 이스르엘 골짜기이다. (수 17:16; 삿 6:33; 호 1:5) 멀리 왼쪽에 모레 언덕이 솟아 있다. 그 언덕의 경사면에 네인이라는 마을이 있다. 네인은 고대 도시 나인과 같은 곳으로 여겨지는데, 예수께서는 나인에서 한 과부의 아들을 부활시키셨다. (삿 7:1; 눅 7:11-15) 더 멀리 지평선 가운데에는 길보아산이 보인다. (삼상 31:1, 8) 이처럼 이곳에서는 이스라엘 역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장소들이 내려다보인다. 예수께서는 인근에 있는 나사렛에서 성장하셨으므로 이곳에 와 보셨을 수 있다.—눅 2:39, 40.

요르단강 서쪽 유대 광야
요르단강 서쪽 유대 광야

이 황량한 지역에서 침례자 요한은 봉사를 시작했으며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광야의 들짐승
광야의 들짐승

예수께서 약 40일 동안 계셨던 광야에는 사자(1), 표범(2), 줄무늬하이에나(3)와 같은 들짐승이 서식하고 있었다. 사자는 수백 년간 이 지역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표범과 하이에나는 오늘날까지도 서식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발견되는 일이 드물다.

그물을 던지는 모습
그물을 던지는 모습

갈릴리 바다에서 일하는 어부들은 두 종류의 던짐 그물 즉 투망을 사용했다. 하나는 그물코(그물에 뚫려 있는 구멍)가 촘촘한 것으로 작은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투망이었고, 다른 하나는 그물코가 넓은 것으로 큰 물고기를 잡을 때 쓰는 투망이었다. 후릿그물은 적어도 배 한 척과 여러 사람이 있어야 사용이 가능했지만, 투망은 한 사람이 배를 타고 던지거나 바닷가에 서서 혹은 얕은 물에 들어가 던질 수 있었다. 투망은 지름이 6미터 이상이었을 것이며, 둘레에 돌이나 납으로 된 추가 달려 있었다. 투망을 잘 던지면 수면에 평평한 원 모양으로 펼쳐졌다. 그리고 무거운 가장자리부터 시작해서 그물 전체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물고기가 잡혔다. 그러면 어부는 물속으로 잠수하여 그물에서 물고기를 빼내거나, 그물을 조심스럽게 바닷가로 끌고 나왔을 것이다. 그물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술과 노력이 필요했다.

갈릴리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
갈릴리 바다에 서식하는 물고기

성경에서는 갈릴리 바다와 연관 지어 물고기, 고기잡이, 어부를 자주 언급한다. 갈릴리 바다에는 약 18종의 물고기가 서식한다. 그중 어부들이 잡는 것은 약 10종에 불과하다. 이 10종은 상품 가치가 있는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비니인데 바벨(1)(삽화에 나오는 것은 바르부스 롱기켑스[Barbus longiceps])이라고도 부른다. 이 부류에 속한 세 가지 종은 입 가장자리에 수염이 있으며, 따라서 셈어로 “털”을 의미하는 비니라고 불리게 되었다. 연체동물, 달팽이,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머리 부분이 긴 바벨은 길이가 75센티미터에 이르며 무게가 7킬로그램이 넘는 것도 있다. 두 번째 부류는 아랍어로 “빗”을 의미하는 무슈트(2)(삽화에 나오는 것은 틸라피아 갈릴레아[Tilapia galilea])라고 하는 것으로, 이 부류에 속한 다섯 가지 종의 물고기가 모두 빗 모양의 등지느러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무슈트 중 한 종은 길이가 약 45센티미터이고 무게가 2킬로그램 정도 된다. 세 번째 부류는 작은 청어와 비슷하게 생긴 긴네렛정어리(3)(삽화에 나오는 것은 아칸토브라마 테라이 상타이[Acanthobrama terrae sanctae])이다. 고대부터 이 물고기는 절여서 보관했다.

가버나움의 회당
가버나움의 회당

사진에 나와 있는 흰 석회암 벽은 기원 2세기 말에서 5세기 초 사이에 세워진 회당 건물의 일부이다. 석회암 아래에 검은 현무암으로 된 구조물은 1세기 회당 건물의 일부로 추정된다. 만약 그 추정이 맞다면, 이곳은 예수께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악귀 들린 사람을 고쳐 주신 곳 중 하나일 수 있다. 그에 관한 기록이 막 1:23-27과 눅 4:33-36에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