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33

9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을 말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함께 증언하는데,  내 마음에는 큰 슬픔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습니다.  나는 육적으로 친족인 내 형제들을 위해서라면, 나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떨어져 나가도 좋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입니다. 그들은 아들로 입양되었고+ 영광과 계약들과+ 율법과+ 신성한 봉사와+ 약속들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조상들의 후손이며,+ 그리스도께서도 육적으로는 그 조상들에게서 나셨습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영원히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이 실패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가 실제로 “이스라엘”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해서 모두가 자녀인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너의 자손이라고 불릴 자는 이삭을 통해서 있을 것이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곧 육체의 자녀가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인 것이 아니라,+ 약속에 의한 자녀가+ 자손으로 여겨집니다.  그 약속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이맘때에 내가 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10  그때만이 아닙니다. 리브가가 한 사람 곧 우리 조상 이삭에게서 쌍둥이를 잉태했을 때에도 그러했습니다.+ 11  그들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고 무슨 선한 일이나 악한 일을 행하지도 않았을 때에, 선택에 관한 하느님의 뜻이 행위가 아니라 부르시는 분에게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12  리브가에게 “형이 동생의 종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  “내가 야곱은 사랑했으나 에서는 미워했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14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하느님께서 불공정하시다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15  그분은 모세에게 “나는 내가 자비를 베풀려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고, 내가 동정심을 나타내려는 사람에게 동정심을 나타내겠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6  그러므로 그것은 사람의 바람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자비를 베푸시는 하느님께 달려 있습니다.+ 17  사실 성경에서는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내가 너를 그대로 두었으니, 곧 너와 관련해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하려는 것이다.”+ 18  그러므로 그분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에게 자비를 베풀기도 하시고, 자신이 원하는 사람을 완고해지게 두기도 하십니다.+ 19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그분은 왜 아직도 허물을 찾으십니까? 누가 그분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습니까?” 하고 말할 것입니다. 20  사람이여, 당신이 누구이기에 하느님께 말대꾸합니까?+ 빚어진 것이 빚은 이에게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습니까?” 하고 말하겠습니까?+ 21  도공이 같은 진흙 덩어리로 하나는 귀하게 쓸 그릇을, 하나는 천하게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단 말입니까?+ 22  하느님께서 자신의 진노를 나타내 보이고 능력을 알리려는 뜻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멸망받기에 합당한 진노의 그릇들에 대해 오래 참으셔서 관용을 베푸셨다면 어떻다는 말입니까? 23  그리고 그렇게 하셔서 자비의 그릇들에 대한 그분의 풍성한 영광을 알리려 하셨다면,+ 그것이 어떻다는 말입니까? 그 자비의 그릇들은 그분이 영광을 위해 미리 준비하신 것인데, 24  바로 우리들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유대인들 가운데서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도 부르셨습니다.+ 25  그분이 호세아서에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과도 같습니다.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을+ 내가 ‘내 백성’이라고 부르겠고, 사랑받지 못하던 여자를 ‘사랑받는 자’라고 부르겠다.+ 26  그들에게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다’라고 말한 그곳에서, 그들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들’이라고 불릴 것이다.”+ 27  그리고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 외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 28  여호와께서 땅에서 심판을 하시리니, 그 일을 신속하게 집행하실 것이다.”+ 29  또한 이사야가 이렇게 예언한 것과 같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자손을 남겨 두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소돔처럼 되고 고모라처럼 되었을 것이다.”+ 30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겠습니까? 이방 사람들은 의를 추구하지 않았는데도, 의 곧 믿음에서 난 의를+ 얻었습니다.+ 31  그러나 이스라엘은 의의 법을 추구했는데도 그 법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32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이 그것을 믿음으로 추구한 것이 아니라 행위로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림돌”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33  “보라! 내가 시온에 걸림돌과 거침돌을 두겠다.+ 그러나 그것을 믿는 사람은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기록된 것과 같습니다.

각주

연구 노트

저주를 받아 ··· 떨어져 나가도: 여기서 “저주”란 하느님의 저주를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일종의 과장법을 사용한다. 그는 약속된 메시아를 배척한 자신의 형제들 즉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받게 될 하느님의 저주를 자신이 기꺼이 받겠다고 말한 것이다. (갈 3:13 비교) 바울이 한 말의 요점은 그들이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수단을 받아들이도록 돕기 위해서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기꺼이 하겠다는 것이다.

신성한 봉사: 또는 “숭배”.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라트레이아는 숭배 행위를 가리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명사는 모세 율법에 근거한 유대교 숭배 제도와 관련하여 사용되기도 한다. (롬 9:4; 히 9:1, 6) 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이 단어를 그리스도인이 드리는 숭배를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동사 라트류오(“신성한 봉사를 드리다”)는 모세 율법에 따라 숭배를 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눅 2:37; 히 8:5; 9:9) 그리스도인이 숭배를 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빌 3:3; 딤후 1:3; 히 9:14; 계 7:15) 롬 1:9에서 바울은 자신이 드리는 신성한 봉사의 중요한 부면이 “하느님의 아들에 관한 좋은 소식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 다시 말해 이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밝혔다.

아들로 입양되었고: 여기서 이 표현은 비유적인 의미로서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따라서 이 경우에 이 표현은 육적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의 계약 백성일 때 누렸던 특별한 신분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육적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아들 또는 아들들로 언급하기도 한다. (출 4:22, 23; 신 14:1, 2; 사 43:6; 렘 31:9; 호 1:10; 11:1) 하지만 실제로 아들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대속이 마련된 후에야 가능하게 되었으며, 개인이 하느님의 그 마련을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는 것에 달려 있었다.—요 1:12, 13; 고후 6:16-18; 갈 4:4, 5.

신성한 봉사: 또는 “숭배”. 여기서 이 표현은 율법 계약에 규정되어 있는 신성한 봉사를 가리킨다. 히 9:1, 6에서 바울은 장막에서 행해지던 숭배를 묘사할 때 이 표현을 사용했다. 그러한 숭배에는 율법 계약이 유효했을 때 이스라엘을 위해 바치던 희생이 포함되었다. 바울은 롬 12:1에서도 이 표현을 사용했는데, 그 경우에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께 드리는 숭배를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롬 12:1 연구 노트 참조.

아멘: 또는 “그렇게 되소서”. 그리스어 아멘은 히브리어 아멘을 음역한 단어이다. 히브리어 아멘은 “충실하다, 신뢰할 만하다”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어근 아만에서 나온 것이다. (용어 설명 참조) 사람들은 맹세나 기도 또는 다른 사람의 말에 동의할 때 “아멘”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필자들은 하느님을 찬양하는 표현을 하면서 자신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점을 나타내기 위해 “아멘”을 자주 사용했다. 바울도 여기서 “아멘”을 그렇게 사용한 것이다. (롬 16:27; 엡 3:21; 벧전 4:11) 또는 상대방이 하느님의 은혜를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강하게 표현하기 위해 “아멘”을 사용하기도 했다. (롬 15:33; 히 13:20, 21) “아멘”은 앞서 나온 표현에 필자가 진심으로 동의한다는 것을 나타낼 때도 사용되었다.—계 1:7; 22:20.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께서 영원히 찬양받으시기를 바랍니다: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은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키며, 이것은 이 구절 앞에서 언급된 일들을 포함해 하느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위해 하신 일에 대해 그분을 찬양하라고 권고하는 표현이다. 하지만 일부 번역판에서는 그리스도가 전능한 하느님으로 이해되도록 이 구절을 번역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는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과 같은 방식으로 번역한다. 문법적으로 보면 그렇게 번역할 수도 있지만 문맥을 고려해야 한다. 이 구절 앞에서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에 대한 사랑에서 우러나와 그들을 위해 어떤 마련을 하셨는지 알려 준다. 또한 이어지는 롬 9:6-13에 나오는 내용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 구절들에서는 하느님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육체에 따른 상속에 달려 있지 않고 하느님의 뜻에 달려 있다고 알려 준다. 14-18절에서는 출 9:16에 나오는 하느님께서 파라오에게 하신 말씀을 언급하면서 하느님께서 모든 것 위에 계시다는 점을 강조한다. 19-24절에서는 도공과 그가 만드는 질그릇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께서 높으신 분임을 더 설명한다. 따라서 문맥을 볼 때 바울이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을 언급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한 유의할 만한 점은 바울이 자신의 기록에서 그러한 찬양의 표현을 그리스도 예수가 아니라 하느님께 주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롬 11:34-36; 16:27; 갈 1:4, 5; 빌 4:20; 딤전 1:17) 바울은 예수와 여호와 하느님을 분명히 구분한다. 한 가지 예로 그는 롬 15:5, 6에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라고 권고한다. (고후 1:3; 엡 1:3) 고전 15:27, 28에 나오는 바울의 말도 현재 롬 9:5에 사용된 표현이 정확하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롬 9:5에 대한 설명을 더 보려면 영문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부록 2D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느님(God, Who Is Over All)” 참조.

아멘: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영감받은 편지의 필자들은 어떤 식으로든 하느님을 찬양하는 표현을 한 뒤에 “아멘”을 자주 사용했다.—롬 16:27; 엡 3:21; 벧전 4:11. 롬 1:25 연구 노트 참조.

자손: 또는 “후손”. 직역하면 “씨”.—부록 가2 참조.

자손: 또는 “후손”. 직역하면 “씨”.—부록 가2 참조.

자손: 롬 9:7 연구 노트 참조.

사람의 바람이나 노력에 달려 있지 않고: 직역하면 “원하는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달리는 사람에 의한 것도 아니고”. “달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표현이 여기서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어 목표를 향해 힘써 노력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울은 자신의 편지들에서 경주에서 달리는 사람에 관한 비유를 자주 사용했다. (고전 9:24-26; 갈 5:7; 빌 2:16) 바울은 하느님께서 영적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일에 관해 논하면서, 육적 이스라엘에 속한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육적 혈통과 모세 율법을 통해 “의”를 추구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그들은 잘못된 방법으로 달린 것이었다. 다시 말해, 잘못된 방법으로 “의”라는 목표를 “추구한” 것이었다. (롬 9:30-32) 참된 “이스라엘”의 구성원이 되는 일은 개인의 노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었다. (롬 9:6, 7) 그들은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에 최선을 다해야 했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없다면 그들이 기울이는 노력은 헛된 일이 될 것이었다.

이름: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 יהוה(YHWH)으로 표기되는 하느님의 고유한 이름을 가리킨다. 이 이름의 일반적인 한국어 음역 표현은 “여호와”이다. 「신세계역」에는 이 이름이 히브리어 성경에 6979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237회 나온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이 나오는 이유를 알아보려면, 부록 가5부록 다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출 34:5, 6; 계 3:4, 각주 비교.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이름을 이미 알고 사용하고 있었다. 그들은 회당에 있던 히브리어 성경 두루마리에서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그들은 가르칠 때 사용되던 「칠십인역」(히브리어 성경을 그리스어로 옮긴 번역판)에서도 그 이름을 보고 읽을 수 있었다. (부록 가5 참조)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계 3:4, 각주 비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즉 그분의 목적과 활동과 특성에 대해 밝히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곁에” 계셨던 분이기 때문에 아버지에 대해 다른 누구보다도 더 잘 설명하실 수 있었다. (요 1:18; 마 11:27)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의 초기 제자들에게 더 큰 의미를 갖게 되었다.

아버지의 이름을 알려 주었고: 예수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끝맺으시면서 요 17:6에 나오는 말씀과 비슷한 말씀을 하신다. (요 17:6 연구 노트 참조) 그런데 요 17:6과는 달리, 17:26에서는 그노리조(“알려 주다”)라는 그리스어 동사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동사는 요 17:6에 사용된 동사 파네로오(“나타내다; 밝혀 주다”)와 의미가 비슷하다. 파네로오 역시 “알려 주다”로 번역할 수 있다. (요 17:6 각주 참조) 성경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알린다는 것에는 그 이름 자체를 알리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름이 의미하는 것 즉 그의 평판과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알리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마 6:9 연구 노트 참조. 계 3:4; 각주 비교)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뿐만 아니라 그 이름을 가진 분이 어떤 분이신지에 대해, 즉 그분의 목적과 활동과 특성에 대해 밝히심으로 하느님의 이름을 알려 주셨다. 이 구절에서 예수께서는 알려 주겠습니다라는 말씀도 하셨는데, 그 표현은 “계속 알려 주겠습니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이름은 예수의 제자들에게 계속 더 큰 의미를 갖게 될 것이었다.

성경에서는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출 9:16을 인용한 것이다. 출 9:16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집트의 파라오에게 말하라고 명령하신 내용의 일부이다. (출 9:13-19) 바울이 그 구절을 소개하면서 한 말을 직역하면 “성경은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가 된다. 마치 “성경”이 파라오에게 직접 말한 것처럼 의인화하여 표현한 것이다. 바울은 롬 3:19에서도 그와 비슷한 의인법을 사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율법에서(직역하면 “율법이”) 말하는 모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들에 그러한 의인법을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율법을 포함한 히브리어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으로 여겨졌으며, 따라서 사실상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와 비슷하게 예수께서도 때때로 하느님의 성령을 의인화하여, 성령이 “가르치고” “증언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요 14:26; 15:26.

내가 너를 그대로 두었으니: 많은 번역판에서는 이 표현을 “내가 너를 세웠으니”로 번역하는데, 그러한 번역은 하느님께서 파라오를 왕으로 세우셨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인용한 출 9:16의 문맥을 보면 이 표현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하느님께서는 일곱 번째 재앙에 대해 선언하시면서 파라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손을 뻗어서 너[를] 쳐서 너를 땅에서 쓸어버릴 수도 있었다.” (출 9:15)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파라오를 치지 않기로 하셨으며 그를 “살려 두었다[또는 “그대로 두었다”. 직역하면 “서 있게 했다”]”고 말씀하셨다. (출 9:16) 또한 유의할 만한 점으로 그리스어 「칠십인역」에서는 여호와께서 파라오에게 하신 말씀을 “네가 보존되었으니”로 번역했다. 따라서 히브리어 성경의 문맥과 「칠십인역」의 번역 표현을 볼 때, 롬 9:17에 나오는 그리스어 표현이 하느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파라오에게 보여 주실 때까지 그를 그대로 두셨다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내 이름이 온 땅에 선포되게: 바울은 여기서 출 9:16을 인용한다. 이 표현은 여섯 번째 재앙이 있은 뒤에 여호와께서 파라오에게 말하라고 모세에게 지시하신 내용의 일부이다. (출 9:8-15) 성경에서 “이름”이라는 말은 때때로 개인의 평판이나 그 자신, 그가 자신에 대해 밝혀 주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출 34:5, 6. 마 6:9; 요 17:6, 26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고 입증되는 일은 성경에서 계속해서 강조되는 사상이다. 예를 들어 시편 필자는 이렇게 기도했다. “그 이름이 여호와이신 당신, 당신만이 홀로 온 땅을 다스리는 가장 높으신 분임을 사람들이 알게 하십시오.” (시 83:18) 에스겔서에서는 사람들이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다”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50회 이상 언급한다. (겔 6:7; 38:23)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이 거룩해지게 되기를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마 6:9)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느님의 이름에 대해 공개적 선언을 하라고 권고했다. (히 13:15) 또한 계 15:4에는 이러한 질문이 나온다. “여호와여, 누가 감히 주를 두려워하지 않겠으며, 주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지 않겠습니까?”

도공: 진흙으로 냄비나 접시나 그 밖의 그릇을 만드는 사람. 그리스어 케라뮤스는 “섞다”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단어로, 작업을 하기 위해 먼저 흙이나 진흙에 물을 섞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도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요체르)는 문자적으로 “빚는 자”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도공이 진흙에 대해 갖고 있는 권한 즉 권리를 예로 들어, 하느님께서 주권자로서 개인이나 나라들에 대해 행사하시는 권한을 설명한다.—사 29:16; 45:9; 64:8; 렘 18:1-12.

도공: 진흙으로 냄비나 접시나 그 밖의 그릇을 만드는 사람. 그리스어 케라뮤스는 “섞다”를 의미하는 어근에서 나온 단어로, 작업을 하기 위해 먼저 흙이나 진흙에 물을 섞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도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요체르)는 문자적으로 “빚는 자”를 의미한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러 차례 도공이 진흙에 대해 갖고 있는 권한 즉 권리를 예로 들어, 하느님께서 주권자로서 개인이나 나라들에 대해 행사하시는 권한을 설명한다.—사 29:16; 45:9; 64:8; 렘 18:1-12.

그릇들: 바울은 이 구절에서도 계속 도공에 관한 예를 사용한다. (롬 9:21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어 스케우오스는 원래 다양한 종류의 용기를 다 가리킬 수 있는 단어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많은 경우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행 9:15; 각주; 딤후 2:20, 21, 각주)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을 영광스러운 보물 즉 봉사의 직무를 맡은 질그릇에 비한다. (고후 4:1, 7) 롬 9:21-23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악한 사람들 즉 진노의 그릇들을 즉각 멸망시키지 않으신 덕분에 합당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자비의 그릇들”로 빚어질 시간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롬 9:23.

이사야는 이스라엘에 관해 외칩니다: 이 구절과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사 10:22, 23을 인용한다. 그 구절에서는 기원전 607년에 여호와께서 바빌론 제국을 사용해 이스라엘에 심판을 집행하실 때 어떤 일이 있을 것인지 예언했다. 그때 예루살렘을 포함해 온 땅이 침략자들의 손에 넘어갔다.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가 그곳에서 70년을 보냈다. 그 후 “단지 남은 자만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참숭배를 회복했다. 바울은 로마서의 이 부분에서 그 예언이 기원 1세기에 다시 한 번 성취되었다는 점을 알려 준다. 1세기에 비교적 적은 수의 유대인들 즉 “남은 자”가 예수의 제자가 되어 영적인 의미에서 여호와께 돌아왔다. (롬 11:4, 5) 나중에 믿는 이방인들이 그들과 함께하여 영적인 나라인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구성하게 되었다.—갈 6:16.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10:23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신속하게 집행하실: 직역하면 “끝내고 단축하실”. 또는 “신속하고 철저하게 이루실”. 여기서 바울은 사 10:22, 23「칠십인역」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그 예언은 기원전 607년과 기원 70년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 신속하고 철저하게 심판을 집행하셨을 때 성취되었다.

자손: 또는 “후손”. 직역하면 “씨”.—부록 가2 참조.

만군: 또는 “하늘 군대”. 그리스어 사바오트는 히브리어 차바의 복수형인 체바오트를 음역한 것이다. 차바는 기본적으로 문자적인 군대 즉 전투 부대를 의미한다. (창 21:22; 신 20:9. 이 구절에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에서 “만군”은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더라도 주로 천사 군대를 의미하는 것 같다. 따라서 “만군의 여호와”라는 표현은 영적 피조물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군대를 통솔하는 우주의 최고 통치자가 가지신 능력을 잘 보여 준다. (시 103:20, 21; 148:1, 2; 사 1:24; 렘 32:17, 18) 하지만 그 표현에 나오는 “만군”에는 천사 군대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군대와 무생물인 하늘의 천체도 포함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만군의 여호와: 이것은 히브리어 성경에 나오는 표현을 가져온 것이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이 표현이 (형태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삼상 1:3을 시작으로 283회 나온다. 이것은 테트라그람마톤과 “만군” 즉 “군대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오트가 결합된 표현이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과 약 5:4에 두 번 나온다. 바울과 야고보 모두 히브리어 성경의 예언을 인용하거나 간접적으로 언급하면서 이 표현을 사용했다. 그 구절들에서는 “군대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체바오트를 그리스어로 음역한 표현인 사바오트가 사용되었다. 그리스어 사본들에는 이 부분이 “주 사바오트”(그리스어 키리오스 사바오트)로 되어 있지만 한 사전에서는 사바오트에 대해 이렇게 알려 준다. “하느님을 가리키는 호칭 ··· =יהוה צְבָאוֹת [YHWH 체바오트] 만군의 주 야훼, 만군의 주.” (「신약 및 초기 그리스도교 문헌 그리스어-영어 사전」[A Greek-English Lexicon of the New Testament and Other Early Christian Literature], 제3판) 「신세계역」에서 본문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사용한 이유가 부록 다1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여호와: 이 구절에서 인용한 사 1:9의 히브리어 원문에는 네 개의 히브리어 자음으로 표기된 하느님의 이름(יהוה, 로마자로 음역하면 YHWH)이 나온다.—부록 다 참조.

자손: 롬 9:7 연구 노트 참조.

그것을: 바울이 인용한 사 28:16에 나오는 상징적인 을 가리킨다. 그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데, 롬 10:11과 벧전 2:6에서 이사야의 예언을 어떻게 적용하는지 살펴보면 그 점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구절에서 “그것”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대명사는 “그”로 번역할 수도 있다. 실제로 롬 10:11에서 그렇게 번역되었는데, 그 구절에서 바울은 이사야의 동일한 예언을 인용하면서 “돌”이라는 표현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들을 볼 때, 이사야와 바울과 베드로가 기록한 영감받은 말씀은 예수를 믿는 사람이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증의 말씀이다.

실망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사 28:16「칠십인역」 표현을 인용한 것이다. 이 그리스어 표현은 기본적으로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를 의미한다. 이 표현은 이사야의 예언에 나오는 상징적인 돌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자신의 믿음이 헛되다는 것이 드러나 수치를 당하거나 실망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롬 10:11과 벧전 2:6에도 동일한 표현이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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