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6:1-27
각주
연구 노트
겐그레아: 고린도의 항구 역할을 하던 도시 중 하나로 고린도에서 동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져 있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 이상을 머무른 뒤, 기원 52년경에 겐그레아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로 갔다. (행 18:18 연구 노트 참조)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 회중이 겐그레아에 언제 세워졌는지 알려 주지 않는다.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고린도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활동한 결과로 그 회중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분명한 점은 그 회중이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기원 56년 이전에 세워졌다는 것이다.
봉사자: 또는 “종”.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는 폭넓은 의미를 가진 단어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인 봉사의 직무 즉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로 뵈베를 “회중의 봉사자”로 언급한 것 같다.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 봉사자에게 맡겨진 책임이다. (행 2:17, 18과 롬 11:13 연구 노트 비교)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디아코네오는 예수와 제자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해 주고 그 밖의 방법으로 도움을 베풀어 그들을 위해 봉사한 즉 그들을 섬긴 여자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눅 8:3) 디아코노스가 직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그리스도인 회중에 임명된 “봉사의 종”을 의미하는 경우도 있다. (빌 1:1; 딤전 3:8, 12) 따라서 일부 번역자들은 이 구절(롬 16:1)에서 그 단어를 “집사”나 “여자 집사”로 번역한다. 하지만 “봉사의 종”의 자격 조건에 관해 알려 주는 성경 구절들을 보면, 여자가 그러한 종으로 임명될 수 있다고 암시하는 내용은 없다. 봉사의 종은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딤전 3:8-13) 따라서 많은 번역자들은 이 구절에서 그 단어가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보고 “종”이나 “일꾼”으로 번역한다.
소개합니다: 또는 “추천합니다.”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뵈베를 소개한 것은 그들이 뵈베를 환영하고 바울이 나타낸 것과 같은 태도를 그에게 나타내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롬 16:2)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는 그가 고후 3:1에서 “추천서”라는 표현 가운데 사용한 그리스어와 어근이 같다. 성경 시대에는 누군가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할 때 그러한 추천서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겐그레아 회중의 봉사자인 뵈베가 바울이 쓴 이 편지를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달했을 것이다.
보호해 주었기: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 프로스타티스는 기본적으로 “보호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한 표현이 사용된 것을 볼 때 뵈베가 친절한 행동을 많이 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베풀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그 표현에는 뵈베가 다른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는 의미도 담겨 있을 수 있다. 뵈베가 자유롭게 여행하고 회중에서 봉사를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을 볼 때, 아마도 그는 과부였고 어쩌면 부유한 여자였을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그는 지역 사회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활용하여 부당한 고발을 당한 그리스도인들을 옹호하거나 그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어떤 식으로인가 피신할 수 있도록 도움을 베풀었을 수 있다.
브리스가와 아굴라: 기원 49년이나 50년 초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유대인들에게 로마를 떠나라고 명령했을 때, 이 충실한 부부도 추방되었다. 클라우디우스는 기원 54년에 사망했으며,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편지를 쓴 때인 기원 56년경에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이미 로마에 돌아와 있었다. (행 18:2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그들을 자신의 동료 일꾼들로 언급한다. “동료 일꾼”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시네르고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12번 나오며, 대부분 바울의 편지들에 나온다. (롬 16:9, 21; 빌 2:25; 4:3; 골 4:11; 몬 1, 24) 유의할 만하게도 고전 3:9에서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하느님의 동료 일꾼입니다.”
나의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이 구절부터 15절까지, 바울은 이름이 언급된 26명의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개별적으로 또는 집합적으로 안부를 전한다. 바울이 8명의 그리스도인 자매들 즉 브리스가, 마리아, 드루배나, 드루보사, 베르시, 율리아, 루포의 어머니, 네레오의 누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한 것을 볼 때, 그가 영적 자매들을 소중히 여겼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 편지를 쓸 당시 바울은 이방 사람들에게 보내진 사도로 이미 여러 해 동안 두드러진 역할을 하고 있었다. (행 9:15; 롬 1:1; 11:13) 하지만 그가 동료 숭배자들에게 안부를 전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그들에게 개인적 관심을 보이는 일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나: 또는 “내 목숨(영혼)”. 여기서 그리스어 프시케는 사람 그 자체나 사람의 생명을 가리킬 수 있다.—용어 설명 “영혼” 참조.
자기들의 목을 내놓았습니다: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자기들의 목을 아래에 두다”를 의미한다. 일부 사람들에 따르면, 이것은 로마 시대에 시행되던 참수형에서 나온 비유적인 표현이다. 이것은 곧 끔찍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의 강한 표현이었다. 바울은 아굴라와 브리스가(브리스길라)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썼다는 점을 밝힌 것이다. 일부 학자들은 이런 일이 에베소의 은세공인들이 소동을 일으켰을 때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 19:28-31) 바울이 자신의 생사마저 매우 불확실하다고 느꼈을 그런 위급한 상황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가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개입하여 그를 구해 주었을 수 있다. (고후 1:8) 하지만 바울이 어떤 일을 염두에 두고 이 말을 했는지 성경은 구체적으로 알려 주지 않는다.
마리아: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자가 여섯 명 나온다. 여기서 바울이 로마의 그리스도인 회중을 위해 많이 수고했다고 칭찬한 이 마리아는 이 구절에만 나온다. 성경은 이 마리아에 대해 그 외의 점들은 알려 주지 않는다.—눅 1:27 연구 노트 참조.
거룩한 입맞춤으로: 바울은 자신이 쓴 편지들 가운데 4개의 편지에서 (이 구절과 고전 16:20; 고후 13:12; 살전 5:26)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라고 권한다. 사도 베드로도 다음과 같은 비슷한 표현을 사용한 적이 있다. “사랑의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하십시오.” (벧전 5:14) 성경 시대에 사람들은 애정이나 존중심이나 평화의 표시로 입맞춤을 하곤 했다. 만나거나 헤어질 때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룻 1:14; 눅 7:45) 입을 맞추는 일은 남자와 여자 친족 사이에서나 (창 29:11; 31:28) 남자 친족 사이에서 또는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창 27:26, 27; 45:15; 출 18:7; 삼상 20:41, 42; 삼하 14:33; 19:39. 행 20:37 연구 노트 참조) 흔히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처럼 애정의 표시로 입맞춤을 하는 것은 참숭배로 결속된 그들이 누리는 형제 관계와 영적인 연합을 잘 보여 주었다. 그러한 입맞춤은 겉치레나 형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으며 낭만적인 감정이나 성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요 13:34, 35.
욕망: 또는 “배”. 그리스어 코일리아는 기본적으로 사람의 복부 또는 복부에 있는 위나 다른 기관들을 가리킨다. 이 구절과 빌 3:19에서는 육적인 욕망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자신의 욕망”의 종이 되는 사람은 “우리 주 그리스도의” 종이 될 수 없다고 설명한다. 빌 3:19에서는 “자기들의 배” 즉 육적인 욕망을 신으로 삼은 사람들에 대해 언급한다.
사탄을 ··· 짓밟히게 하실 것입니다: 바울은 창 3:15에 기록된 최초의 성경 예언을 언급한 것이다. 그 구절에서는 상징적인 여자의 “자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알려 준다. 이것은 “원래의 뱀”인 사탄이 멸망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계 12:9) 바울이 그 일을 묘사하면서 사용한 그리스어 단어는 “부서뜨리다; 짓밟아서 산산조각 내다; 완전히 이기다”로 정의된다. 이 그리스어는 계 2:27에서 나라들이 “질그릇같이 산산이 부서질 것이다”라는 표현에도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공동 상속자”가 될 (롬 8:17)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여러분의 발 아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것은 그들이 사탄을 짓밟는 일에 참여할 것임을 의미하는 비유적인 표현이었다.—말 4:3 비교.
데르디오: 바울이 로마 사람들에게 쓴 편지를 기록했거나 필사한 사람. 바울의 서기로 일한 사람 가운데 이름이 언급된 사람은 데르디오뿐이다. 주 안에서라는 표현을 볼 때 데르디오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고린도 회중의 성원이었을 것이다. 데르디오는 로마 사람들에게 보내는 이 편지에 자신의 개인적인 안부 인사도 포함시켰는데, 아마도 그곳에 사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묵고 있고: 여기서 “나”는 바울을 가리킨다. 데르디오의 개인적인 인사가 이 구절까지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시 재무관: 또는 “시 관리인”. 대개 “관리인”으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오이코노모스는 기본적으로 “집안 관리인(집사)”을 의미한다. 이 문맥에서는 “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와 함께 사용되어, 고린도시의 재정을 담당하던 사람을 가리키는 것 같다. 1920년대에 고린도에서는 도로를 포장하는 데 쓰인 한 돌이 발견되었는데, 그 돌에는 에라스도라는 사람이 자신의 비용을 들여 길을 포장했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그 비문에 언급된 사람이 바울이 언급한 사람과 동일 인물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그 포장된 길은 기원 1세기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의 형제: 그리스어 원문에는 “형제”라고만 되어 있다. 따라서 이 표현은 구아르도가 에라스도의 친형제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표현을 영적인 관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여 “우리의 형제”로 번역하는 것도 가능하다.
일부 그리스어 사본들과 그리스어를 다른 언어로 옮긴 몇몇 고대 번역본들에는 이 구절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과분한 친절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빕니다. 아멘.” 이 내용이 27절 다음에 들어 있는 사본들도 있다. 하지만 가장 오래되고 믿을 만한 사본들에는 이와 비슷한 내용이 20절에만 나오며, 24절에도 나오지 않고 27절 다음에도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사본상의 증거는 24절이나 27절 다음에 나오는 그러한 내용이 원문의 일부가 아니라는 점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부록 가3 참조.
계시: 직역하면 “드러내는 것; 밝히는 것”. 그리스어 아포칼립시스는 이 구절에서처럼 주로 하느님의 뜻과 목적이나 그 밖의 영적인 문제가 계시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엡 3:3; 계 1:1) 그러한 계시의 궁극적인 근원은 하느님이시다.—눅 2:32 연구 노트 비교.
아멘: 롬 1:25 연구 노트 참조.
미디어

이 유물들은 기원 1세기에 글을 쓸 때 사용하던 도구이다. 당시 사람들은 나일강 변에서 자라는 갈대를 잘라 만든 펜을 사용했을 수 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잉크통에 값싼 검은 잉크를 담아 사용했다. 다양한 재료에 글을 썼는데, 그중에는 나무 판이나 토기 조각이나 양피지나 파피루스가 있었다. 긴 편지를 쓸 때는 파피루스 두루마리에 쓴 다음, 남는 부분을 잘라 내어 나중에 사용했다. 짧은 편지를 쓸 때는 두루마리를 잘라서 파는 낱장을 사서 사용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편지는 길지 않았다. 바울이 빌레몬에게 쓴 편지가 평균 정도의 길이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들어 있는 대부분의 책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영감을 받아 쓴 편지들이다.

여기 보이는 것은 고린도의 극장 근처에 있는 광장에서 발견된 비문이다. 도로를 포장하는 데 쓰인 돌에 새겨진 그 비문에는 에라스도라는 관리가 자신의 비용을 들여 길을 포장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쓴 로마서에서 “시 재무관인 에라스도”의 안부를 전한다. (롬 16:23) 이 비문이 들어 있는 포장된 길은 기원 1세기에도 존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따라서 일부 학자들은 비문에 나오는 에라스도가 바울이 언급한 사람과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