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모데 전서 3:1-16

3  이 말은 믿을 만합니다. 어떤 사람이 감독자가+ 되려고 힘쓰고 있다면, 그는 훌륭한 일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감독자는 책잡힐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고, 습관이 절도 있고, 정신이 건전하고,+ 질서 있고, 후대를 잘하고,+ 가르칠 자격이 있고,+ 3  술 취하는 자가 아니고,+ 폭력적이지 않고, 합리적이고,+ 다투지 않고,+ 돈을 사랑하지 않고,+ 4  자기 집안을 훌륭하게 다스리고, 매우 진지하게 복종하는 자녀를 둔 사람이어야 합니다.+ 5  (자기 집안도 다스릴* 줄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하느님의 회중을 돌보겠습니까?) 6  새로 개종한 사람은 안 됩니다.+ 교만으로 우쭐해져서 마귀가 받은 심판에 떨어질지 모릅니다. 7  또한 외부 사람들에게서도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난을 받지* 않고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습니다. 8  마찬가지로 봉사의 종들도+ 진지하고,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않고, 많은 술에 빠지지 않고,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않고,+ 9  깨끗한 양심으로+ 믿음의 신성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야 합니다. 10  또한 이 사람들이 적합한지* 먼저 시험해 보고, 그 후에 비난받을 일이 없으면+ 봉사자로 섬기게 하십시오. 11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진지하고, 중상하지 않고,+ 습관이 절도 있고, 모든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12  봉사의 종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고, 자기 자녀와 집안을 훌륭하게 다스리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3  훌륭하게 섬기는 사람들은 자기를 위해 훌륭한 신분을 얻고,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과 관련해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됩니다. 14  나는 그대에게 곧 가기를 바라지만, 그대에게 이 글을 쓰는 것은 15  혹시 내가 늦어질 경우에 그대가 하느님의 집안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 집안은 살아 계신 하느님의 회중이며, 진리의 기둥과 버팀대입니다. 16  이 경건한 정성의 신성한 비밀은 참으로 큽니다. ‘그분은 육체로 나타나셨고,+ 영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으셨으며,+ 천사들에게 나타나셨고,+ 나라들 가운데서 전파되셨으며,+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셨고,+ 영광 중에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각주

또는 “보살필”.
직역하면 “증언”.
또는 “수치를 당하지”.
또는 “자격이 있는지”.

연구 노트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바울은 형제들이 옳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충실한 그리스도인임을 확신했다. 그들이 굳건히 서 있는 것은 바울이나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믿음 때문이었다. ‘주인이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키리유오)는 다른 사람을 압제하거나 위압적인 태도를 나타낸다는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베드로는 장로들에게 “하느님의 상속 재산인 사람들 위에 군림하지” 말라고 교훈할 때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 (벧전 5:2, 3) 바울은 자신이 사도로서 어떤 권위를 갖고 있든 그 권위를 압제적인 방식으로 행사해도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또한 바울이 우리는 ···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동료 일꾼이라고 말한 점을 볼 때 그가 자신과 동료들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보다 우월한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자신과 동료들을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이 여호와를 기쁨으로 숭배하도록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종들로 여겼다.

이 말은 믿을 만합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이 바울이 앞서 말한 내용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딤전 2:15) 하지만 이 표현은 뒤에 나오는 내용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바울은 감독자가 되려고 힘쓰는 것에 관해 자신이 하려는 말이 매우 중요하고 관심을 기울일 만한 내용이라는 뜻으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감독자가 되려고: 감독자에게는 자신에게 맡겨진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살피고 보호할 책임이 있다. (용어 설명 “감독자” 참조) 따라서 감독자는 바울이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언급하는 특성들을 나타내는,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여야 한다.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가 “감독의 직책”으로 번역될 수도 있지만 (행 1:20) 감독자가 다른 형제 자매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여러분의 믿음의 주인이 아니라, 여러분의 기쁨을 위한 동료 일꾼입니다.”—고후 1:24연구 노트; 벧전 5:1-3.

힘쓰고 있다면: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문자적으로 “뻗치다”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감독자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달한다. 이어지는 구절들에서 바울은 불완전한 남자가 진지한 노력을 기울이면 기를 수 있는 특성들을 언급한다. (딤전 3:2-10, 12, 13) 물론 이런 특성들은 임명받은 남자들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길러야 하는 것이다.—롬 12:3, 18; 빌 4:5; 딤전 3:11; 딛 2:3-5; 히 13:5; 벧전 2:12; 4:9 비교.

훌륭한 일: 여기서는 감독자가 하는 일을 훌륭한 일 즉 매우 좋고 도움이 되는 일로 묘사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이다.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형용사[칼로스, “훌륭한”]는 그 일이 매우 좋은 일이라는 점을 묘사한 것이고, 명사[에르곤, “일”]는 그 일의 어려움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감독자는 비이기적인 태도로,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열심히 일하려고 해야 한다.

감독자들: 바울은 여기서 빌립보 회중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감독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피스코포스)의 복수형을 사용한다. (행 20:28 비교) 성경의 다른 구절에서 바울은 “장로의 회”가 특별한 일을 수행하도록 디모데를 임명했다고 말한다. (딤전 4:14) 바울이 그 회중들에서 어느 한 개인을 감독자로 지칭하지 않았으므로, 그 회중들에 2명 이상의 감독자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 점을 보면 1세기 회중들이 어떻게 조직되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감독자”와 “장로”라는 표현은 같은 대상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다. 이 점을 볼 때 두 표현이 동일한 직책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행 20:17, 28; 딛 1:5, 7. 벧전 5:1, 2 비교) 한 회중에서 섬기는 감독자의 수는 회중 내에 “장로”의 자격을 갖춘 사람 즉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랐다.—행 14:23. 행 20:17, 28 연구 노트 참조.

감독자: 감독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에피스코포스이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동사 에피스코페오는 “주의하다”를 의미한다. (히 12:15) 또한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명사 에피스코페는 “검사”(눅 19:44; 벧전 2:12), “감독자”(딤전 3:1), “감독의 직책”(행 1:20)을 의미한다. 따라서 감독자는 회중 성원들을 찾아가서 검사하고 감독하는 사람이었다. 기본적으로 이 그리스어에는 보호할 목적으로 감독한다는 의미가 있다. 그리스도인 회중의 감독자들은 동료 신자들의 영적 필요를 돌볼 책임이 있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에베소 회중의 “장로들”에게 이야기하면서 “감독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행 20:17) 또한 디도서에서 그리스도인 회중 “장로들”의 자격 조건을 언급하면서 “감독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딛 1:5, 7) 따라서 감독자와 장로 모두 동일한 직책을 가리킨다. 프레스비테로스는 그 직책에 임명된 사람의 장성된 특성에 초점을 맞춘 말이며, 에피스코포스는 그 직책에 따르는 임무에 초점을 맞춘 말이다. 바울이 에베소의 장로들을 만난 일에 관한 이 기록을 보면 당시 그 회중에 여러 명의 감독자들이 있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한 회중에서 섬기는 감독자의 수는 정해져 있지 않았으며, 회중 내에 “장로”의 자격을 갖춘 사람 즉 영적으로 장성한 남자의 수가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달랐다. 바울은 빌립보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그곳의 “감독자들”을 언급했다. (빌 1:1) 이 점을 볼 때 그 회중의 일을 감독하는 장로의 회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행 1:20 연구 노트 참조.

후대에 힘쓰십시오: 또는 “후대의 길을 따르십시오”. “힘쓰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문자적으로 “서두르다; 달리다”를 의미할 수 있다. 여기서 바울은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단지 요청받았을 때 후대하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권고한 것이다. 그런 것이 아니라 후대를 추구하라고, 즉 솔선해서 자주 후대하라고 말한 것이다. “후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필록세니아는 문자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사랑; 낯선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에는 후대가 단지 가까운 사람에게만 베푸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담겨 있을 수 있다. 바울은 히 13:2에서도 이 단어를 사용하는데, 창세기 18장과 19장에 나오는 아브라함과 롯에 대한 기록을 언급한 것 같다. 그들은 낯선 사람들을 후대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천사들을 대접했다. 창 18:1-8에서는 아브라함이 손님들을 대접하기 위해 달려갔고 서둘렀다고 알려 준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형용사 필록세노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세 번 나오는데, 그 구절들에도 후대하라고 권고하는 내용이 나온다.—딤전 3:2; 딛 1:8; 벧전 4:9.

가르치십시오: “가르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는 교훈하고 설명하고 논증을 사용하고 증거를 제시한다는 뜻이 들어 있다. (마 3:1; 4:23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 명령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계속되는 과정이며, 그렇게 하는 것에는 그들도 예수께서 가르치신 것을 가르치고 그분의 가르침을 적용하고 그분의 본을 따르도록 돕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요 13:17; 엡 4:21; 벧전 2:21.

감독자: 여기서 바울은 (정관사와 함께) “감독자”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의 단수형을 사용했다. 하지만 이것은 각 회중에 감독자가 한 명만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예를 들어 빌립보 회중에는 두 명 이상의 감독자가 있었다. 바울은 그곳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그 회중의 형제 자매들 그리고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에게” 편지한다고 말했다.—빌 1:1 연구 노트 참조. 또한 행 20:28 연구 노트 참조.

책잡힐 것이 없고: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는 “비난받을 것이 없고” 또는 “비판받을 것이 없고”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감독자가 완전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정당한 비난을 할 수 없어야 한다. 그의 행실과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과 생활 방식에는 비난받을 것이 없어야 한다. 그는 매우 높은 도덕 표준을 따르는 사람이어야 한다. (고후 6:3, 4; 딛 1:6, 7) 일부 학자들은 감독자로 임명되는 그리스도인 남자가 갖추어야 할 모든 자격 조건을 이 표현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아내의 남편이고: 예수께서는 이미 일부일처라는 여호와의 원래 표준을 회복시키셨다. (마 19:4-6) 따라서 일부다처가 모세 율법에서 허용되고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그리스도인 감독자는 여러 아내를 두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혼을 하고 재혼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심지어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성경적 근거 없이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마 5:32; 19:9) 이러한 표준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감독자와 봉사의 종은 이 면에서 본이 되어야 했다. (딤전 3:12) 또한 결혼한 감독자는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고 성적 부도덕을 저질러서는 안 되었다.—히 13:4.

습관이 절도 있고: 한 사전에 따르면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정신이 맑은, 절제하는; 술을 완전히 끊거나 … 적어도 무절제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의미 폭이 넓어져서, 균형이 잘 잡히거나 자제력이 있거나 쉽게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인 감독자가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절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술을 오용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딤전 3:3.

정신이 건전하고: 또는 “좋은 판단력이 있고; 지각력이 있고”. 한 사전에 따르면 “정신이 건전한”과 “건전한 정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신중한, 생각이 깊은, 자제력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이 건전한 사람은 균형이 잡혀 있으며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질서 있고: 직역하면 “정렬되어 있고”. 감독자는 올바르고 잘 짜여진 생활을 해야 한다. 이 그리스어는 좋은 행실을 의미할 수도 있다. 따라서 제멋대로이거나 질서 없는 사람은 감독자가 될 자격이 없을 것이다.—살전 5:14; 살후 3:6-12; 딛 1:10.

후대를 잘하고: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후대를 잘해야 한다. (히 13:1, 2; 벧전 4:9) 하지만 감독자로 임명되는 형제는 이 면에서 특히 본이 되어야 한다. (딛 1:8) “후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낯선 사람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롬 12:13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는 그 단어와 어근이 같은 형용사가 사용되어 “후대를 잘하고”로 번역되었는데, 일부 사전에서는 그 형용사를 “낯선 사람이나 방문객에게 관심을 보이는”, “손님에게 관대하게 베푸는”으로 정의한다. 한 참고 문헌에서는 후대를 잘하는 사람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그 사람의 집의 문과 그의 마음의 문은 낯선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따라서 가깝게 지내는 친구들뿐 아니라 그 밖의 사람들에게도 후대를 베풀어야 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인들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리고 회중들을 방문하는 여행하는 대표자들에게 후대를 베풀라는 권고를 받고 있다.—약 2:14-16; 요3 5-8.

가르칠 자격이 있고: 감독자는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성경 진리와 도덕 원칙을 전해 줄 수 있는, 잘 가르치는 사람이어야 한다. 바울은 디도서에서 감독자가 사람들을 격려하고 권고하고 책망하기 위해 “가르치는 기술을 사용할 때 신실한 말씀을 굳게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딛 1:5, 7, 9 및 연구 노트) 바울은 디모데 후서에서도 “가르칠 자격을 갖추고”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그 편지에서 그는 “주의 종”은 자제를 나타내고 자신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을 온화하게 교훈해야” 한다고 말한다. (딤후 2:24, 25) 따라서 감독자는 성경을 사용해 설득력 있게 설명하고, 건전한 교훈을 베풀고,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한다. (마 28:20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그 말씀을 부지런히 연구해야 한다.

모욕적인 말: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블라스페미아인데, 이 단어는 하느님에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을 가리킬 경우 “모독” 또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계 13:5, 6) 하지만 원래 이 말은 하느님에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사람에게 하는 악한 말이나 중상하는 말을 가리킬 수도 있으며, 문맥을 보면 여기서 바울이 그런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엡 4:31 참조) 다른 번역판들에서는 이 구절에 “중상”이나 “비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 참고 자료에서는 이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서 평판이 안 좋아지게 하거나 나쁜 평판을 갖게 만들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합리적인: “합리적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의미 폭이 넓은 단어로, 양보하거나 사려 깊거나 관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법의 자구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기꺼이 순응하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합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부드럽게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의 앞부분을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으십시오”라고 번역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특히 회중의 감독자들이 이 특성을 나타내야 한다.—딤전 3:3; 딛 3:2; 약 3:17. 고후 10:1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의 ··· 친절: 바울은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의 잘못 몇 가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거친 태도를 나타내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처럼 온화하고 친절하게 호소했다. 여기서 “친절”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양보하는 것”을 의미하며 “합리성”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의 두드러진 특성이다. 그분은 땅에 계실 때, 합리성을 보이는 면에서 최고의 모범이신 아버지를 완벽하게 본받으셨다. (요 14:9) 바울도 비슷한 태도를 나타냈다. 고린도 사람들에게 강력한 충고가 필요했지만, 바울은 그들에게 단지 명령을 내리기보다는 친절하게 호소하려고 했다.

폭력적이지 않고: 또는 “구타하지 않고”. “폭력적이지”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다른 사람을 때리는 사람을 가리킬 수 있다. 하지만 이 단어는 더 넓은 의미로 사용될 수 있으며 “괴롭히는 사람”으로 정의되기도 한다. 괴롭히는 것에는 잔인하거나 악의적인 말을 하는 것도 포함되는데, 그러한 말은 실제로 때리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울 수 있다. (골 3:8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부드럽고 온화한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고 교훈했다. 특히 장로들은 그러한 영감받은 표준을 따라야 한다.—딤후 2:24, 25 비교.

합리적이고: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의미 폭이 넓은 단어로, 부드럽거나 사려 깊거나 관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빌 4:5 연구 노트 참조)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양보하는”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의도는 감독자가 잘못에 대해 양보해야 즉 관용해야 한다거나 하느님의 표준을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개인의 기호가 관련된 문제에서 감독자가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 기꺼이 양보하는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감독자는 자신의 권리나 자신의 방식을 고집 세게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견해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기호를 존중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기꺼이 순응하려고 한다. 감독자는 성경의 법과 원칙을 확고하게 옹호하면서도, 그러한 표준을 친절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합리성은 하느님의 지혜의 한 부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이다. (약 3:17. 고후 10:1 연구 노트 참조)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하는 특성이기도 하다.—딛 3:1, 2.

다투지 않고: 딛 3:2 연구 노트 참조.

돈을 사랑하지 않고: 소유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양 떼”를 돌보는 일에 합당한 주의를 기울일 수 없다. (벧전 5:2)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의 물질에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에, 하느님의 백성이 “오는 세상 제도”에서의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노력하도록 제대로 도울 수 없다. (눅 18:30) 또한 그 자신이 “불확실한 재물”에 의지하고 있으므로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설득력 있게 가르칠 수 없다. (딤전 6:17) 따라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감독자로 섬길 자격이 없다. 감독자에 대한 이 자격 조건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영감받은 교훈과 조화를 이룬다.—마 6:24; 딤전 6:10; 히 13:5.

돌보겠습니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누가복음에도 나오는데,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돌봐 준” 이웃다운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용되었다. (눅 10:34, 35) 감독자도 회중 형제 자매들의 필요를 부드럽게 “돌보아야” 한다.

주재하는 사람: 또는 “인도하는 사람”. 그리스어 프로이스테미는 문자적으로 “앞에 서다”라는 의미로, 인도하거나 사회하거나 지도하거나 관심을 나타내거나 돌본다는 뜻이다.

자기 집안을 훌륭하게 다스리고: “다스리다” 또는 “보살피다”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5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구절에서 바울은 남편이 가정을 다스리는 방식을 감독자가 “하느님의 회중을 돌보는” 방식에 비한다. (딤전 3:5)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그 구절에서 “돌보다”로 번역된 동사에는 “인도(지도)와 관심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문맥을 보면 남편이나 아버지는 가혹한 지도자나 독재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딤전 3:5 연구 노트 참조.

다스리고: 또는 “보살피고”.—롬 12:8 연구 노트 참조.

매우 진지하게 복종하는 자녀를 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일부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매우 진지하게”라는 표현은 아버지가 아니라 “자녀”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말인 것 같다. 그리스도인 자녀가 “매우 진지하게 복종한다”는 것은 순종하고 존중심을 나타내고 행실을 바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은 나이와 환경에 맞게 그렇게 할 수 있다. 성경에서는 아이들이 웃고 노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점을 알려 준다. (눅 7:32. 전 3:4; 사 11:8 비교) 고전 13:11에서 바울은 자신이 아이였을 때 “아이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추리했다고 인정한다. 따라서 그는 아이들이 어른처럼 생각하거나 행동해야 한다는 뜻으로 말한 것이 아니다.

돌보겠습니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누가복음에도 나오는데, 강도를 만난 사람을 “돌봐 준” 이웃다운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사용되었다. (눅 10:34, 35) 감독자도 회중 형제 자매들의 필요를 부드럽게 “돌보아야” 한다.

교만으로 우쭐대고: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티포오마이)는 “연기”를 의미하는 단어와 어근이 같다. 이 단어는 연기에 휩싸여 있거나 연기 때문에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을 묘사하는 데 쓰이기도 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 단어가 세 번 나오는데, 세 번 모두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교만으로 시야가 가려진 것을 묘사하는 것 같다. (딤전 3:6; 6:4; 딤후 3:4) 일부 번역판들은 이 표현을 “자만하고” 또는 “자만으로 부풀어 있고”로 번역한다. 한 참고 문헌에서는 이 단어가 “자기 자신에게 도취되어 있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말한다. 유대인 저술가 요세푸스는 유대인들을 무시하고 비방한 몇몇 그리스 작가들을 묘사할 때 이 단어를 사용했다.

새로 개종한 사람: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새로 심어진”을 의미한다. 이것은 최근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바울이 제자 삼는 활동을 식물을 심는 일에 비한 고전 3:6-8 비교) 여기서 바울은 감독자로 임명되는 사람이 최근에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아니라 장성한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밝힌다.

교만으로 우쭐해져서: 딤후 3:4 연구 노트 참조.

마귀가 받은 심판에 떨어질지 모릅니다: 바울은 경고의 본보기로, 완전했지만 사탄 마귀가 된 영적 피조물을 언급한다. 마귀는 하느님께서 주신 임명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교만으로 우쭐해졌다.” 그는 교만과 이기적인 야심 때문에 몰락하고 심판을 받았다.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감독자의 권위를 받는 사람은 자신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임을 충분한 기간 동안 나타낸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 것이다. 겸손한 사람은 더 많은 권위를 얻으려는 야심을 결코 품지 않으신 예수의 본을 따른다.—빌 2:5-8; 히 5:8-10.

비난을 받지 않고 마귀의 올무에 빠지지 않습니다: 감독자로 임명되는 그리스도인 남자는 회중 밖의 사람들로부터 “좋은 평판”을 얻어야 한다. 평판이 좋지 않은데도 임명된다면 자신과 회중, 특히 여호와께 비난이 돌아가게 된다. 또한 교만이나 야심과 같은 마귀의 올무에 빠질 위험이 있으며, 그로 인해 하느님께 불순종하게 될 수 있다. (딤전 3:6; 딤후 2:26) 바울의 말은 “비난”이 마귀가 놓는 “올무”의 일부임을 시사한다. 사탄은 감독자의 좋지 않은 평판 때문에 그리스도인 회중에 비난이 돌아가면 기뻐할 것이다.

봉사의 종들: 또는 “보조자들”. 문자적으로 “종”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는 여기서 직무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그리스도인 회중에 임명된 “봉사의 종”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딤전 3:8, 12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이 이 단어의 복수형을 사용한 것을 볼 때 그 회중에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여 감독자들을 보조하는 봉사의 종들이 여러 명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일부 성경에서는 이 구절에서 “감독자들과 봉사의 종들”이라는 표현 대신 “주교들과 집사들”이라는 칭호를 사용한다. 그리스도교국에서 사용하는 그러한 칭호는 1세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교직 계급이 있었다는 인상을 준다. 하지만 원어의 의미를 정확히 옮긴 표현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책임 있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다른 사람보다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봉사의 종”이라는 번역 표현은 이 직책을 맡은 남자들이 회중을 위해 열심히 봉사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섬기는 사람: 또는 “봉사자; 종”. 성경은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를 다른 사람을 위해 쉬지 않고 겸손하게 봉사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종종 사용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롬 15:8), 그리스도의 봉사자나 종(고전 3:5-7; 골 1:23), 봉사의 종(빌 1:1; 딤전 3:8)뿐만 아니라, 집안 하인(요 2:5, 9), 정부 관리(롬 13:4)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

봉사의 종들: 또는 “보조자들”.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디아코노스는 흔히 “봉사자”, “섬기는 사람” 또는 “종; 하인”으로 번역된다. 이 문맥에서는 회중 내에서 장로의 회를 보조하고 섬기는 역할을 하도록 임명된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회중이 원활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실무를 돌본 것 같다. 그들의 지원 덕분에 장로들은 가르치는 일과 양 떼를 돌보는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용어 설명 “봉사의 종”; 빌 1:1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마 20:26 연구 노트 참조.

진지하고: 딤전 3:8, 11과 딛 2:2에서 “진지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존중받을 만한”, “품위 있는”, “영예로운”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봉사의 종으로 자격을 갖추려면 존중을 받을 만한 품위 있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맡은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한 입으로 두 말 하지: 또는 “속이는 말을 하지”. 직역하면 “두 번 말하지”.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표현은 진실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봉사의 종이나 감독자로 임명되는 사람은 위선적이어서는 안 된다. 위선적인 것에는 사람들에게 아첨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이 잘못된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이 포함될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직책에 임명되는 사람은 한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그와 반대되게 말함으로 속이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잠 3:32; 약 3:17) 그는 진실하고 솔직해야 하며, 그가 하는 말은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부정한 이득을 탐내지: 이 표현은 딛 1:7에도 나오는데, 한 사전에 따르면 기본적으로 “수치스러울 정도로 물질적 이득을 탐내는” 것을 가리킨다. (딤전 3:3; 벧전 5:2 비교)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여호와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며 탐욕스러운 사람은 하느님의 왕국을 상속받지 못한다. (고전 6:9, 10; 딤전 6:9, 10) 당연히 그런 사람은 감독자나 봉사의 종이 될 자격이 없다. 그런 사람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임명받은 사람들은 회중의 기금을 관리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는 책임을 맡게 될 수 있다. “부정한 이득을 탐내는” 사람은 그 기금의 일부를 훔치려는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런 행동을 하게 되면 회중이 해를 입고 여호와께서도 불쾌하게 여기신다.—요 12:4-6.

양심: 그리스어 시네이데시스(함께)과 에이데시스(지식)가 결합된 말이다. 따라서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공동 지식”, 즉 “자신과 함께 있는 지식”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하느님의 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양심, 즉 자신을 바라보고 자신의 행동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으로 훈련받고 하느님의 뜻에 민감한 양심만이 사물을 올바로 판단할 수 있다. 성경은 모든 양심이 올바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 준다. 약한 양심도 있고 (고전 8:12) 낙인이 찍힌 양심도 있으며 (딤전 4:2) 더럽혀진 양심도 있다. (딛 1:15) 바울은 자신의 양심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이렇게 표현했다.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함께 증언합니다.” (롬 9:1) 바울의 목표는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깨끗한 양심을 유지하는” 것이었다.—행 24:16.

깨끗한 양심: 롬 2:15 연구 노트 참조.

믿음의 신성한 비밀: 이 표현은 그리스도인 믿음에 관한 진리를 가리키는 것 같다. 그러한 진리는 하느님께서 그분의 아들의 제자들에게 밝혀 주시기 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비밀이었다. 따라서 봉사의 종은 장로들을 실제적인 면으로 지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밝혀진 진리를 확고하고 충성스럽게 옹호하는 역할도 해야 했다. 그는 그 진리 전체를 옹호하려는 열망을 갖고 있어야 했으며 실제로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했다.

마찬가지로 여자들도: 바울은 임명받는 남자들이 갖추어야 할 자격 조건들을 이야기하면서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갖추어야 할 비슷한 특성들도 언급한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는 여자들을 가리킬 수도 있고 아내들을 가리킬 수도 있다. (딤전 3:2, 12) 따라서 이어서 나오는 교훈은 모든 그리스도인 여자들, 특히 회중에서 책임을 맡은 남자들의 아내들에게 적용된다.

한 아내의 남편이고: 예수께서는 이미 일부일처라는 여호와의 원래 표준을 회복시키셨다. (마 19:4-6) 따라서 일부다처가 모세 율법에서 허용되고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흔한 일이었지만 그리스도인 감독자는 여러 아내를 두어서는 안 되었다. 또한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혼을 하고 재혼하는 일이 흔히 있었다. 심지어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그러했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성경적 근거 없이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마 5:32; 19:9) 이러한 표준들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는 했지만, 감독자와 봉사의 종은 이 면에서 본이 되어야 했다. (딤전 3:12) 또한 결혼한 감독자는 아내에게 충실해야 하고 성적 부도덕을 저질러서는 안 되었다.—히 13:4.

자기 집안을 훌륭하게 다스리고: “다스리다” 또는 “보살피다”라는 표현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는 5절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구절에서 바울은 남편이 가정을 다스리는 방식을 감독자가 “하느님의 회중을 돌보는” 방식에 비한다. (딤전 3:5)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그 구절에서 “돌보다”로 번역된 동사에는 “인도(지도)와 관심이라는 두 가지 의미가 모두 들어 있다.” 따라서 문맥을 보면 남편이나 아버지는 가혹한 지도자나 독재자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사랑으로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딤전 3:5 연구 노트 참조.

한 아내의 남편이고: 딤전 3:2 연구 노트 참조.

훌륭하게 다스리는: 딤전 3:4 연구 노트 참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습니다: 또는 “말의 큰 자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매우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어 파레시아는 기본적으로 “담대하게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자신이 숨김없이(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행 28:31 연구 노트 참조.

아무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게: 또는 “말의 큰 자유를 갖게”. 고후 7:4 연구 노트 참조.

믿음으로 친족이 된 사람들: 또는 “믿음의 집안(가족)에 속한 사람들”. “친족이 된 사람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문자 그대로 한 가족 즉 집안에 속한 사람들을 가리킨다. (딤전 5:8) 그리스-로마 세계에서는 동일한 신앙이나 견해나 목적을 가지고 긴밀한 유대 관계를 맺고 있는 한 집단의 사람들을 가리켜 집안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따라서 이 표현은 1세기 회중들을 묘사하는 데 적합한 단어라고 할 수 있다. 1세기 회중에 속한 사람들은 대개 개인 집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롬 16:3-5) 그들은 서로를 영적인 가족이라고 느꼈다.—엡 2:19.

하느님의 집안 식구들: 바울은 “집안 식구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한 기름부음받은 자들이 한 가족으로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딤전 3:15) 하느님을 섬기는 가정에서는 가족 구성원들이 가장에게 존중심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가 가족을 위해 정한 마련과 표준도 존중한다. 그와 비슷하게 1세기 회중에 속한 사람들은 서로를 영적인 가족이라고 느꼈으며, 회중과 관련하여 여호와께서 하신 마련을 존중했다.—갈 6:10 연구 노트 참조.

기둥: 문자적인 기둥이 건물을 지탱해 주는 것처럼, 여기서 기둥으로 비유된 사람들은 회중을 지탱해 주고 회중에 힘을 주는 역할을 했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회중을 “진리의 기둥과 버팀대”로 언급할 때도 사용되었으며 (딤전 3:15) 천사의 불기둥 같은 다리를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다. (계 10:1-3)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은 마치 기둥처럼, 회중에서 굳건하게 자리를 잡고 영적으로 강한 상태를 유지하면서 믿음직하게 회중을 지탱하는 사람들로 알려져 있었다.

하느님의 집안: 바울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회중 전체를 “하느님의 집안”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비유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여러 번 사용된다. (갈 6:10; 엡 2:19 연구 노트 참조) 이 비유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가족으로서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가족같이 화목하게 지낸다는 사상을 전달한다.

살아 계신 하느님: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서도 자주 사용된다. (신 5:26; 삼상 17:26, 36; 사 37:4, 17) 이 문맥에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이신 여호와를 에베소나 그 밖의 지역에서 이교도들이 숭배하는 생명 없는 우상들과 대조하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들이 드리는 숭배가 우월한 것임을 일깨워 주기 위해 이 표현을 사용했을 수도 있다.

진리의 기둥과 버팀대: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묘사하기 위해 두 가지 건축 용어를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바울 시대에 많은 큰 건물에는 튼튼한 기둥들이 있었는데, 주로 무거운 지붕을 떠받치는 역할을 했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있던 성전이나 당시 디모데가 머물고 있던 에베소의 웅장한 건물들을 염두에 두었을 수 있다. (바울은 갈 2:9에서도 “기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 즉 딤전 3:15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 전체를 진리를 떠받치는 비유적인 기둥으로 묘사한다. “버팀대”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어떤 것의 견고한 기초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기초”, “지지대”, “방어벽”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기둥”과 “버팀대”에 해당하는 단어를 함께 사용함으로 회중이 하느님의 말씀의 신성한 진리를 옹호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특히 회중에서 감독하는 책임을 맡은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을 올바로 다루”어야 했다. (딤후 2:15) 바울은 이 문제를 시급한 것으로 여겨, 대배교가 일어나기 전에 디모데가 회중을 강화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를 바랐다.

신성한 비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리스어 미스테리온이 28회 나오는데, 「신세계역」에서는 대부분 “신성한 비밀”로 번역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이 단어의 복수형이 사용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 그분의 목적의 여러 부분들을 가리킨다. 이 신성한 비밀들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분이 이해력을 주기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온전히 밝혀진다. (골 1:25, 26) 일단 밝혀지고 나면,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은 최대한 널리 선포된다. 성경에서 “신성한 비밀”이라는 말이 “전하다”, “알려 주다”, “전파하다”, “밝혀지다”, “계시”와 같은 표현들과 함께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고전 2:1; 엡 1:9; 3:3; 골 1:25, 26; 4:3)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들 가운데 주된 비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 즉 그분이 약속된 “자손” 곧 메시아라는 점이다. (골 2:2; 창 3:15) 하지만 이 주된 신성한 비밀에는 하느님의 목적 안에서 예수에게 맡겨진 역할을 포함해 여러 부면이 있다. (골 4:3) 예수께서 이 구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신성한 비밀들은 하늘 왕국, 즉 예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늘 정부인 “하느님의 왕국”과 관련이 있다. (막 4:11; 눅 8:10. 마 3: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사용된 미스테리온이라는 단어는 고대 밀의(密儀) 종교 즉 신비주의 종교에서 말하는 미스테리온과 다르다. 기원 1세기에 성행한 다산의 신 숭배에 주로 기반을 둔 그러한 종교들은 그 종교의 신봉자들이 신비스러운 의식을 통해 불멸성을 얻고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신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러한 비밀들은 분명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신비주의 종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은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며, 따라서 그 비밀은 널리 선포되는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비밀들과는 달리 신비에 싸이게 되었다. 성경에서 미스테리온이 거짓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우, 「신세계역」에서는 이 단어를 “신비”로 번역한다.—미스테리온이 “신비”로 번역된 세 경우를 보려면, 살후 2:7; 계 17:5, 7 연구 노트 참조.

경건한 정성: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유세베이아)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나타내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숭상심과 경외심을 가리킨다. 의미 폭이 넓은 이 단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행동을 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랑이나 개인적인 애착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 대로 생활하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또한 바울의 말을 보면 경건한 정성이 타고나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디모데에게 이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선수가 훈련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라고 권고한다. 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한 정성을 나타내는 면에서 최고의 본을 남기셨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딤전 3:16 연구 노트 참조.

첫 사람 아담은 ··· 마지막 아담은: 이 구절의 앞부분에서 바울은 창 2:7(“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을 인용하면서, “첫”과 “아담”이라는 단어를 덧붙인다. 이 구절의 뒷부분에서 그는 예수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고전 15:47에서 바울은 아담을 “첫 사람”, 예수를 “둘째 사람”이라고 부른다. 첫 사람 아담은 자신의 아버지이자 생명을 주신 분께 불순종했지만 마지막 아담은 그분께 온전히 순종했다. 첫 사람 아담은 자손들에게 죄를 퍼뜨렸지만 마지막 아담은 자신의 인간 생명을 속죄 제물로 바쳤다. (롬 5:12, 18, 19) 후에 여호와께서는 예수를 영의 몸으로 부활시키셨다. (벧전 3:18) 예수께서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완전한 인간이셨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공의에 대한 자신의 표준을 지키시면서, 예수의 희생을 아담의 후손들을 도로 사기 위한 “상응하는 대속물”로 받아들이실 수 있었다. 이 대속 희생으로 인해 인류는 첫 사람 아담이 잃어버린 생명의 전망을 되찾게 될 것이었다. (딤전 2:5, 6) 따라서 예수를 “마지막 아담”이라고 부르는 것은 합당한 일이었다. 이 표현은 그분의 뒤에 또 다른 아담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시사한다.—눅 3:38; 롬 5:14 연구 노트 참조.

경건한 정성: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유세베이아)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나타내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숭상심과 경외심을 가리킨다. 의미 폭이 넓은 이 단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행동을 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랑이나 개인적인 애착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 대로 생활하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또한 바울의 말을 보면 경건한 정성이 타고나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디모데에게 이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선수가 훈련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라고 권고한다. 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한 정성을 나타내는 면에서 최고의 본을 남기셨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딤전 3:16 연구 노트 참조.

경건한 정성: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유세베이아)는 하느님에 대한 숭상심과 깊은 존경심을 가리킨다. (“경건한 정성”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에 대해 알아보려면 딤전 4:7 연구 노트 참조) 동일한 그리스어가 「칠십인역」에서도 때때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사 11:2; 33:6에 그 단어가 나온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그 부분이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표현 역시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리킨다. 기원 5세기에 만들어진 시리아어 「페시타」의 번역자들은 딤전 2:2에 나오는 이 그리스어를 번역할 때 “하느님”이라는 말을 넣어 “하느님에 대한 숭상심”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그와 비슷하게, 후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을 비롯한 여러 구절에서 유세베이아를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번역했다. (딤전 3:16; 4:7, 8; 6:3, 6, 11) 하지만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이 구절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다른 구절들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록 다 참조. 롬 10:12 연구 노트 비교.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영적 노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를 찬양할 때 영감받은 시들을 계속 사용했다. 이 구절에서 “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프살모스)는 눅 20:42; 24:44; 행 13:33에도 나오는데 히브리어 성경에 들어 있는 시편을 가리킨다. 그에 더해 당시에는 그리스도인들이 지은 노래도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노래들 가운데는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 즉 찬송가와 “영적 노래” 즉 영적인 내용을 다루는 노래가 포함되었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시와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과 영적 노래’로 서로 가르치고 격려하라고 말한다.—골 3:16.

이는 ··· 내 아들이다: 영적 피조물이었던 예수는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요 3:16) 인간으로 태어난 후에도 그분은 완전했던 아담과 같이 “하느님의 아들”이셨다. (눅 1:35; 3:38) 하지만 이 구절에서 하느님이 하신 말씀에는 단순히 예수의 신분을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예수에게 성령을 부어 주면서 이렇게 선언하심으로, 인간 예수가 영으로 출생한 그분의 아들이 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 하늘 생명으로 돌아갈 희망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 같다. 또한 예수가 하느님이 임명하신 왕 겸 대제사장이 되도록 영으로 기름부음받았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 같다.—요 3:3-6; 6:51. 눅 1:31-33; 히 2:17; 5:1, 4-10; 7:1-3 비교.

선언되셨습니다: 또는 “증명되셨습니다; 확정되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되신 일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로 선언되셨다고 말한다. 행 13:33에서 바울은 예수께서 부활되심으로 시 2:7의 말씀이 성취되었다고 설명했다. 시 2:7은 예수께서 침례받으셨을 때에도 성취되었다. 그때 그분의 아버지 여호와께서는 ‘이는 내 아들이다’라고 선언하셨다.—마 3:17 연구 노트 참조.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전파되었습니다: 바울은 문자 그대로 세계의 모든 지역에 좋은 소식이 전파되었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는 좋은 소식이 얼마나 전파되었는지를 개략적으로 말한 것이다. (롬 1:8; 골 1:6) 바울이 골로새서를 쓸 무렵, 왕국 소식은 로마 제국은 물론 그 외의 지역에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다. 사실 그보다 거의 30년 전인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은 그 소식을 파르티아, 엘람, 메디아, 메소포타미아, 아라비아, 소아시아, 키레네 쪽의 리비아 지역, 로마로 가지고 갔다. 바울 시대의 독자들에게 알려져 있던 세계 전역에 그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행 2:1, 8-11, 41, 42) 하지만 로마서 15장에서 바울이 한 말을 볼 때, 골 1:23에 나오는 이 말을 문자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가 스페인이 아직 “전파하지 않은 구역”이라고 밝히기 때문이다.—롬 15:20, 23, 24.

땅의 가장 먼 곳까지: 또는 “땅끝까지”. 이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사 49:6의 예언을 인용한 행 13:47에도 나온다. 그리스어 「칠십인역」사 49:6을 번역할 때 동일한 그리스어를 사용한다. 사 49:6에서는 여호와의 종이 “이방 사람들의 빛”이 되어 구원이 “땅끝까지” 미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이 구절(행 1:8)에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그 예언을 떠올리게 한다. 이 말씀은 이전에 예수께서 제자들이 자신보다 “더 큰 일”을 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과 조화를 이룬다. (요 14:12 연구 노트 참조) 또한 그리스도인 전파 활동이 세계적인 규모로 수행될 것이라는 그분의 말씀과도 조화를 이룬다.—마 24:14; 26:13; 28:19 연구 노트 참조.

이 경건한 정성의 신성한 비밀: 성경에서 “경건한 정성”이라는 표현과 “신성한 비밀”이라는 표현이 함께 나오는 곳은 이 구절뿐이다. (마 13:11; 딤전 4:7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여기서 논한 신성한 비밀은 ‘사람이 경건한 정성을 완벽하게 바치는 삶을 사는 것이 가능한가?’ 하는 것이었다. 아담은 에덴에서 여호와께 반역하는 이기적인 행동을 함으로 그러한 삶을 살지 못했다. 따라서 바울이 논한 비밀은 아담의 후손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그것은 약 4000년 동안 밝혀지지 않고 신비로 남아 있었다. 아담과 하와의 불완전한 후손 중 아무도 완벽하게 충절을 지키지 못했다. (시 51:5; 전 7:20; 롬 3:23) 하지만 아담과 같은 완전한 사람이었던 예수께서는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경건한 정성을 나타내셨다. 그분은 극심한 시험을 받을 때에도 그렇게 하셨다. (히 4:15. 고전 15:45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이 그처럼 여호와께 고착하실 수 있었던 것은 비이기적이고 마음에서 우러나온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경건한 정성을 나타내는 면에서 완벽한 본을 남기심으로, 이 신성한 비밀에 대한 명백한 답을 제시하셨다.

경건한 정성: “경건한 정성”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면 딤전 4:7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딤전 2:2 연구 노트 참조.

‘그분은 … 올려지셨습니다’: 작은따옴표 안에 들어 있는 내용은 당시 잘 알려진 말을 인용한 것이거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부르던 노래 가사에서 가져온 것일 수 있다. (엡 5:19 연구 노트 비교) 학자들이 내린 이러한 결론은 그리스어 원문의 구조와 문장의 운율, 대구에 근거한 것이다.

육체로 나타나셨고: 이 표현은 요르단강에서 침례받으신 이후의 예수를 가리키는 것 같다. (마 3:17 연구 노트 참조) 그때 나사렛 예수는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 즉 메시아가 되셨다.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나신 분이었지만 살과 피를 가진 완전한 인간이셨으며 종종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언급하셨다.—마 8:20. 용어 설명 “사람의 아들” 참조.

영으로 의롭다고 인정받으셨으며: 이 표현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아들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영의 몸으로 부활시키신 때를 가리킨다. (벧전 3:18) 여호와께서는 예수를 부활시키시면서 그에게 불멸의 생명을 주셨다. (롬 6:9; 딤전 6:16)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가 모든 면에서 의로움을 증명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롬 1:4 연구 노트 참조.

천사들에게 나타나셨고: 예수께서는 부활되신 후에 불충실한 천사들 즉 악귀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셨다. (벧전 3:18-20) 노아 시대에 반역한 이 천사들은 현재 비유적인 의미에서 사슬로 묶여 있다. 그들은 짙은 어둠 속에 있으며, 인간으로 물질화하지 못하도록 제한된 상태에 있는 것 같다.—벧후 2:4; 유 6.

나라들 가운데서 전파되셨으며: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그리스도인들은 할례받은 유대인들과 개종자들에게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전파한 사람들 중에는 이방 나라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다. (행 2:5-11) 후에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도 전파했다. (행 8:5-17, 25) 그리고 기원 36년에 베드로는 고넬료와 그의 집에 모여 있던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증거했다. (행 10:24, 34-43) 후에 바울과 디모데와 다른 선교인들은 소아시아와 유럽에 좋은 소식을 선포했다. (행 16:10-12) 기원 60-61년경에 바울은 그리스도에 관한 소식이 “하늘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 전파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골 1:23연구 노트. 또한 행 17:6; 롬 1:8, 24, 28; 골 1:6; 부록 나13 및 미디어 갤러리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 좋은 소식이 널리 퍼지다” 참조.

세상에서 사람들이 믿는 분이 되셨고: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에 관한 좋은 소식을 “땅끝까지” 전파했다. (행 1:8연구 노트) 그 결과 세계의 여러 곳에 사는 사람들이 믿는 사람이 되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에서는 피시디아 안티오크와 리스트라와 이코니온(행 13:48; 14:21, 23), 빌립보(행 16:12, 33, 34), 데살로니가(행 17:1, 4), 베레아(행 17:10-12), 아테네(행 17:16, 34), 에베소(행 19:17-20)의 사람들이 신자가 되었다고 알려 준다.

영광 중에 하늘로 올려지셨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 (행 1:9, 10) 여호와께서는 예수를 그분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우주의 다른 어떤 피조물보다 더 큰 영광을 주셨다.—마 28:18; 요 17:5; 빌 2:9; 히 1:3, 4.

미디어

디모데가 에베소의 다른 장로들과 모임을 갖다
디모데가 에베소의 다른 장로들과 모임을 갖다

디모데는 에베소에서 장로로 섬기고 있을 때 사도 바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딤전 1:3) 디모데와 다른 장로들은 이 영감받은 편지를 통해 분명 많은 유익을 얻었을 것이다. 이 편지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회중에서 남자들이 장로나 봉사의 종으로 섬기기 위해 달해야 할 자격 조건을 언급한다. (행 20:17, 28; 딤전 3:1-10, 12, 13) 그는 디모데에게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범이 되고” 공개 낭독과 권고와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라고 권한다. (딤전 4:12, 13) 또한 바울은 디모데에게 “장로의 회”로부터 받은 특별한 선물 즉 임명을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일깨워 준다.—딤전 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