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3:1-15

3  그들을 계속 일깨워 정부들과 권위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준비하고, 2  아무도 비방하지 말고,+ 다투지 말고, 합리적이 되고,+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을 온전히 보이게 하십시오.+ 3  우리도 한때는 무분별하고 불순종하고 잘못된 길로 빠지고 여러 가지 욕망과 쾌락의 종이 되고 악과 시기 가운데 행동하고 가증스럽고 서로 미워했습니다. 4  그러나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친절과+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이 나타났을 때에 5  그분은 (우리가 행한 의로운 일 때문이 아니라+ 그분 자신의 자비 때문에)+ 우리를 씻어 생명에 이르게 하고+ 성령으로 새롭게 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6  그분은 이 영을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풍부하게* 부어 주셨습니다.+ 7  그것은 우리가 그분의 과분한 친절에 의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후에+ 영원한 생명의 희망에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8  이 말은 믿을 만합니다. 나는 그대가 이러한 점들을 늘 강조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하느님을 믿는 사람들이 훌륭한 일을 계속하는 데 전념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좋고 사람들에게 유익합니다. 9  그러나 어리석은 논쟁과+ 족보와 분쟁과 율법에 관한 싸움에 말려들지 마십시오. 그것들은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 10  분파를+ 조장하는 사람은 한 번 훈계하고 또 한 번 훈계한 후에+ 물리치십시오.+ 11  그대가 아는 것과 같이, 그런 사람은 바른길에서 벗어나 죄를 짓고 있으며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는 것입니다. 12  내가 아르데마나 두기고를+ 그대에게 보내거든, 니코폴리스에서 나를 만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나는 그곳에서 겨울을 나기로 했습니다. 13  율법에 정통한 세나와 아볼로가+ 여행하는 데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도록 잘 챙겨 주십시오.+ 14  우리의 형제들도 훌륭한 일을 계속하는 법을 배워서,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을 도와주게 하십시오.+ 그래야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15  나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안부를 전합니다. 믿음 안에서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 과분한 친절이 여러분 모두와 함께 있기를 바랍니다.

각주

또는 “관대하게”.
또는 “우리에게 애정을 가진”.

연구 노트

훌륭한 일에 열심인: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옳고 합당한 일을 하는 데 “열심”일 것이라고, 즉 열정적인 태도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훌륭한 일”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나타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 포함된다.—마 24:14; 갈 5:22, 23; 딛 2:1-14; 약 1:27; 벧전 2:12.

정부들과 권위들에게 복종하고 순종하며: 땅의 통치자들을 가리킨다. 권위를 가진 일부 사람들은 불공정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며, 그들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반역적인 태도를 나타냈다. 그렇지만 바울은 권위를 가진 사람들이 하느님께 불순종할 것을 요구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존중심을 나타내고 순종해야 한다는 점을 디도가 크레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일깨워 주기를 바랐다.—마 22:21; 행 5:29; 롬 13:1-7.

모든 선한 일을 위해 준비하고: “선한 일”이라는 표현은 의미 폭이 넓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을 주는 다양한 선한 행동을 포함할 수 있다. (딛 2:14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이 여기서 언급한 “선한 일”에는 세속 권위가 모든 시민에게 요구하는 일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일이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기꺼이 그러한 요구에 따를 수 있었다. (마 5:41연구 노트; 롬 13:1, 7) 또한 지역 주민들이 자연재해나 그 밖의 어려움을 겪으면, 그리스도인들은 형제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웃 사람들도 기꺼이 도와주어야 했다. (갈 6:10) 그들이 그러한 일을 한다면 사람들은 참그리스도인들이 모든 면으로 사회에 기여한다는 점을 알게 될 것이었다.—마 5:16; 딛 2:7, 8; 벧전 2:12.

당신에게 일을 시켜: 로마 당국이 시민들에게 부과하던 강제 노역을 가리킨다. 로마 당국은 사람이나 가축을 강제로 동원하거나, 공무를 신속히 처리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이든 징발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로마 군인들은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예수의 형주를 지고 가게 했다.—마 27:32.

합리적인: “합리적인”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의미 폭이 넓은 단어로, 양보하거나 사려 깊거나 관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합리적이라는 것은 법의 자구대로 해야 한다고 고집하거나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맞게 기꺼이 순응하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합리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부드럽게 대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가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 회중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한 성경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의 앞부분을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으십시오”라고 번역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합리적인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특히 회중의 감독자들이 이 특성을 나타내야 한다.—딤전 3:3; 딛 3:2; 약 3:17. 고후 10:1 연구 노트 참조.

합리적이고: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의미 폭이 넓은 단어로, 부드럽거나 사려 깊거나 관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빌 4:5 연구 노트 참조)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양보하는”을 의미한다. 하지만 바울이 이 단어를 사용한 의도는 감독자가 잘못에 대해 양보해야 즉 관용해야 한다거나 하느님의 표준을 타협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개인의 기호가 관련된 문제에서 감독자가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해 기꺼이 양보하는 태도를 나타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감독자는 자신의 권리나 자신의 방식을 고집 세게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개인의 견해와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의 기호를 존중하고 변화하는 상황에 맞게 기꺼이 순응하려고 한다. 감독자는 성경의 법과 원칙을 확고하게 옹호하면서도, 그러한 표준을 친절하고 균형 잡힌 방식으로 적용하려고 노력한다. 합리성은 하느님의 지혜의 한 부면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두드러진 특성 중 하나이다. (약 3:17. 고후 10:1 연구 노트 참조)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나타내야 하는 특성이기도 하다.—딛 3:1, 2.

온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을 대할 때 나타내는 내면의 차분함과 평온함을 가리킨다. (갈 6:1; 엡 4:1-3; 골 3:12) 온화는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이루는 특성 중 하나이므로 단순히 의지력만으로 기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고 기도로 그분의 영을 구하고 그 영의 영향력에 순응함으로 온화를 기를 수 있다. 온화한 사람은 겁쟁이나 나약한 사람이 아니다. “온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프라이테스는 힘을 겸비한 부드러움 또는 제어되고 있는 힘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 프라이스는 “성품이 온화하다”, “온화하다”로 번역되었다. (마 21:5; 벧전 3:4) 예수께서는 자신이 성품이 온화한 사람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11:29) 하지만 그분은 결코 나약한 분이 아니셨다.—마 5:5연구 노트 참조.

다투지 말고: 직역하면 “싸우려고 하지 말고”.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속 권위를 가진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호전적인 태도를 나타내지 않기를 바랐다. (딛 3:1) 일부 사전에서는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를 “평화롭게 지내다”로 정의한다. 동일한 표현이 장로의 자격 조건에도 나온다.—딤전 3:3.

합리적이 되고: 빌 4:5; 딤전 3:3 연구 노트 참조.

모든 사람에게 온화함을 온전히 보이게: 온화한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아도 침착함을 유지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평온한 태도를 나타낸다. 이 구절에는 “모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가 2번(“모든”, “온전히”) 나오는데, 그 점에 대해 한 참고 자료에서는 이 특성이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온전히 나타나야” 하고 “예외 없이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야 한다고 설명한다.—갈 5:23 연구 노트 참조.

우리도 한때는 무분별하고: “무분별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이 문맥에서 지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지혜롭지 못하거나 어리석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바울은 “우리”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자신도 한때 이해력이 없었다는 점을 밝힌다. 그는 어리석게도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박해했다. (딤전 1:13) 하지만 바울은 자비를 받았으며 삶을 변화시켰다. (행 9:17) 바울 자신이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는 디도에게 크레타의 그리스도인들도 한때는 여호와의 의로운 표준을 몰랐다는 점을 일깨워 주라고 말할 수 있었다. 크레타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도 한때 좋지 않은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는 점을 겸손하게 인정한다면 아직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은 사람들을 대할 때 온화하고 합리적이 되려고 노력할 것이었다.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 딤전 1:1 연구 노트 참조.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 여기서 바울은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께서 아직 그분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을 비롯해 모든 사람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갖고 계신지 묘사한다. (요 3:16) 한 사전에서는 그리스어 필란트로피아(‘인류에 대한 사랑’)가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해 갖고 계신 애정과 관심”을 의미한다고 알려 준다. (행 28:2 연구 노트 비교. 또한 딛 2:11 참조) 세속 문헌에서 이 그리스어는 재판관이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에게 자비를 보이는 것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기도 했다.

친절: 또는 “인간적 친절”. 그리스어 필란트로피아는 문자적으로 “인간에 대한 애정(사랑)”을 의미한다. 그러한 친절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후대를 베푸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 경건한 특성을 나타낼 수 있다. 행 27:3에도 비슷한 예가 나온다. 그 구절에서는 장교 율리오가 바울에게 친절을 베푼 일을 언급할 때 필란트로피아와 어근이 같은 단어인 필란트로포스를 사용했다. 딛 3:4에서는 여호와께서 가지신 감정을 묘사하는 데 그리스어 필란트로피아가 사용되었으며 ‘인류에 대한 사랑’으로 번역되었다.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바울이 기록한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에는 “구원자”라는 표현이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키는 데 여섯 번 사용되었다. (이 구절과 딤전 2:3; 4:10; 딛 1:3; 2:10; 3:4) 이것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표현이 하느님을 가리키는 데 두 번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과 대비가 된다. (눅 1:47; 유 25)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자주 언급한다. (시 106:8, 10, 21; 사 43:3, 11; 45:15, 21; 렘 14:8) 여호와께서 예수를 통해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도 “구원자”로 언급된다. (행 5:31; 딤후 1:10) 예수는 “구원의 수석 대표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히 2:10) 천사는 하느님의 아들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의미하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가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오.” (마 1:21연구 노트)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근원이 여호와이시라는 점을 강조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모두를 구원자로 언급한다. (딛 2:11-13; 3:4-6) “구원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칠십인역」에서 그 단어를 번역하는 데 사용된 그리스어는 하느님의 백성을 적들로부터 “구할 구원자들”로 일으켜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느 9:27; 삿 3:9, 15.

우리를 씻어 생명에 이르게 [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또는 “우리를 씻어 다시 태어나게 [함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직역하면 “재생의 씻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바울과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그들을 다시 태어나게 하는 ‘씻음’은 물침례가 아니었다. 그 씻음은 사도 요한이 다음과 같이 기록한 깨끗하게 하는 일을 가리킨다. “그분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요1 1:7) 하느님께서 대속 희생을 통해 바울과 그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깨끗하게 하신 결과 그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생명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은 “믿음으로 인해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게 되었다.—롬 5:1.

성령으로 새롭게 함으로: 하느님께서는 앞서 언급된 것처럼 바울과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씻어 깨끗하게 하신 것에 더해, 그들을 영으로 기름부으심으로 아들로 입양하셨다. 그렇게 하여 그들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 (고후 5:17 연구 노트 참조) 그들은 하느님의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아들들로서, 하늘에서 영원히 살 전망을 갖고 완전히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요 3:5 연구 노트 비교.

물과 영에서 나지: 니고데모는 침례자 요한이 베푼 침례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막 1:4-8; 눅 3:16; 요 1:31-34) 따라서 예수께서 물을 언급하셨을 때 아마도 니고데모는 그분이 침례에 사용되는 물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임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또한 그는 하느님의 활동력을 가리키는 “하느님의 영”이라는 표현이 히브리어 성경에서 어떻게 사용되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창 41:38; 출 31:3; 민 11:17; 삿 3:10; 삼상 10:6; 사 63:11) 따라서 예수께서 “영”이라는 단어를 언급하셨을 때 그것이 성령을 가리키는 것임을 이해했을 것이다. 예수께서 직접 경험하신 일은 그분이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의 의미를 잘 보여 준다. 예수께서 물에서 침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이 그분에게 내려왔다. 그렇게 해서 그분은 “물과 영에서 나셨다.” (마 3:16, 17; 눅 3:21, 22) 그때 하느님께서는 예수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선언하셨다. 그렇게 하심으로 예수가 영으로 출생한 그분의 아들이 되었으며 하늘로 돌아갈 전망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 같다. 예수의 제자들의 경우, ‘물에서 난다’는 것은 이전 생활 행로에서 돌아서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물로 침례를 받는 것을 의미한다. “물과 영”에서 난다는 것은 하느님에 의해 그분의 아들로 출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사람들은 하늘에서 영의 생명을 누릴 희망과 하느님의 왕국에서 왕으로 다스릴 전망을 갖게 된다.—눅 22:30; 롬 8:14-17, 23; 딛 3:5; 히 6:4, 5.

그는 새로운 창조물입니다: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 각자는 새로운 창조물 즉 하늘 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통치할 전망을 가진 영으로 출생한 하느님의 아들이다. (갈 4:6, 7) 여섯째 창조의 날이 끝난 이후로 새로운 물질적 창조물을 만드는 일은 없었지만 (창 2:2, 3) 새로운 영적 창조물을 만드는 일은 있어 왔다.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울은 여기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모두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나타나심”에 해당하는 표현은 예수와 관련해서만 사용된다. (살후 2:8; 딤전 6:14; 딤후 1:10; 4:1, 8) 그렇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이 한 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이 표현을 “우리의 위대한 하느님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한다. 그들은 영감받은 성경이 예수를 “위대한 하느님”으로 묘사한다는 증거로 이 표현을 제시한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과 성경 번역자들은 이 표현을 「신세계역」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예수 두 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이 표현을 번역한 근거를 알아보려면 영문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부록 2E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Of the Great God and of [the] Savior of Us, Christ Jesus)” 참조.

그분은 이 영을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 부어 주셨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동사는 일반적으로 액체를 붓는 것을 가리킨다. 하지만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 동사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활동력이 부어지는 것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용어 설명 “기름부음” 참조) 동일한 단어가 기원 33년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진 것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행 2:17 연구 노트 참조) 행 2:16-18에서는 그때 요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고 알려 준다. (욜 2:28) 행 2:33에서는 예수께서 “약속된 성령을 아버지에게서 받으셔서” 오순절에 제자들에게 부어 주셨다고 말한다. 이 구절 즉 딛 3:6에서 바울이 한 말을 볼 때, 여호와께서 그분의 활동력을 부어 주는 통로로 예수를 계속 사용하셨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 딛 1:4; 2:13 연구 노트 참조.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 앞 구절에서 바울은 하느님을 “우리 구원자”라고 했다. 따라서 일부 사람들은 예수와 하느님이 동일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구절에서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따로 언급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해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도 “우리 구원자”라고 할 수 있다. 히 2:10에서 바울은 예수를 “구원의 수석 대표자”라고 부른다. 성경 필자인 유다는 여호와를 “유일하신 우리의 구원자 하느님”으로 언급하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라는 표현을 함께 사용함으로, 하느님과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구원하는 일에서 협력하여 일하신다는 점을 보여 준다. (유 25) 따라서 바울이 한 말은 “그리스도 예수”와 “하느님 아버지”가 동일한 분이라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다.—딤전 1:1 연구 노트 참조.

나의 영: 여기서 그리스어 프뉴마는 하느님의 성령 즉 활동력을 가리킨다. 이 구절에 인용된 욜 2:28에서는 프뉴마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루아흐가 사용되었다. 기본적으로 두 단어 모두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힘이 작용한다는 증거가 있는 무언가를 가리킨다.—용어 설명 “” 참조.

마지막 날에: 이 구절에서 베드로는 욜 2:28에 나오는 요엘의 예언을 인용한다. 베드로는 영감을 받아, 히브리어 원문과 「칠십인역」(3:1, LXX)에 사용된 “그 후에”라는 표현 대신 “마지막 날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요엘의 예언은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졌을 때 성취되었다. 따라서 베드로가 한 말은 “마지막 날”이라는 특별한 기간이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 후에 “여호와의 크고 찬란한 날”이 올 것임을 알려 준다. “마지막 날”은 “여호와의 크고 찬란한 날”로 끝나게 되는 것 같다. (행 2:20) 베드로가 말한 대상은 유대인들과 유대교 개종자들이었으므로, 그의 영감받은 말은 일차적으로 그들에게 성취되었음이 분명하다. 그의 말은 당시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숭배의 중심지로 하는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에 살고 있었음을 지적하는 것 같다. 이전에 예수께서도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에 관해 예언하신 적이 있다. (눅 19:41-44; 21:5, 6) 그 일은 기원 70년에 실제로 일어났다.

의롭다고 인정받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동사 디카이오오와 그와 어근이 같은 명사들인 디카이오마디카이오시스는 일반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하다”, “의로운 행위”로 번역된다. 이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혐의든 없애 주는 것, 무죄로 간주하는 것, 따라서 의롭다고 선언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죽은 사람은 “자기의 죄에서 해방된[디카이오오의 한 형태]” 것이라고 썼다. 죽음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했기 때문이다. (롬 6:7, 23) 또한 이 그리스어 단어들은 성경에서 특별한 의미로 사용되어, 하느님께서 믿음을 나타내는 불완전한 사람을 무죄로 여기시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행 13:38, 39; 롬 8:33.

의롭다고 인정받은: 롬 3:24 연구 노트 참조.

어리석고 무지한 논쟁을 배척하십시오: 바울은 이 편지에서 세 번째로 디모데에게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추측에 근거해 있고 논쟁을 불러일으키는 문제들에 대해 싸우는 일을 그만두도록 도우라고 권한다. (딤후 2:14연구 노트, 16) 바울은 디모데 전서에서도 그와 비슷한 점을 언급했다.—딤전 1:4; 6:20 연구 노트 참조.

족보: 바울은 개인의 가계 즉 가문의 혈통을 적은 기록물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을 수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러한 것들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하는 데 주의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일부 사람들은 자신의 가문을 자랑하거나 지식을 뽐내려고 그렇게 했을 수 있다. 하지만 족보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쓸모가 없는 일이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혈통을 연구할 이유가 없었다.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유대인과 비유대인 사이에 아무런 차이도 두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갈 3:28)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다윗 가계에서 나온 그리스도의 혈통에 대해 아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마 1:1-17; 눅 3:23-38.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동사 디카이오오와 그와 어근이 같은 명사들인 디카이오마디카이오시스는 일반적으로 “의롭다고 인정하다”, “의로운 행위”로 번역된다. 이 단어들은 기본적으로 어떤 혐의든 없애 주는 것, 무죄로 간주하는 것, 따라서 의롭다고 선언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취급하는 것을 의미한다. (롬 3:24 연구 노트 참조) 갈라디아 회중들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 율법을 따르는 행위를 통해 자기들의 의를 세우려고 하는 유대교 복귀주의자들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갈 5:4. 갈 1:6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신분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완전한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나타내는 사람들을 의롭다고 인정하실 근거를 마련하셨다.—롬 3:19-24; 10:3, 4; 갈 3:10-12, 24.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올바로 적용한다면 좋은 것입니다: 바울 시대에 일부 사람들은 모세 율법 규정들이 구원의 필수 조건이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규정들을 밀접히 따라야 한다고 가르쳤다. 바울은 그런 사람들이 율법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세 율법 아래 있지 않으며 그리스도의 대속이 구원을 위한 수단이라고 믿는다. (갈 2:15, 16) 하지만 모세 율법은 그리스도인들이 그 법에 담긴 원칙을 “올바로”(직역하면 “적법하게”) 적용한다면 그들에게 유익을 준다. 율법은 그리스도 예수와 관련하여 “오게 될 좋은 것들의 그림자”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율법을 연구함으로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히 10:1) 또한 율법은 인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희생이 필요하다는 점을 잘 보여 준다. (갈 3:19) 무엇보다도 율법은 여호와의 생각을 밝혀 준다.—출 22:21; 레 19:15, 18; 롬 7:12.

어리석은 논쟁: 에베소의 거짓 선생들처럼 크레타의 일부 사람들도 분열을 일으키는 무의미한 논쟁을 조장했다. (딤후 2:23 연구 노트 참조) 그러한 분쟁이 모세 율법에 관한 것이든, 족보에 관한 것이든, 거짓 이야기에 관한 것이든, 여기서 바울은 디도에게 그러한 싸움에 말려들지 말라고 권고한다.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에는 그러한 논쟁에 등을 돌리거나 심지어 그 자리를 떠나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디도가 그렇게 함으로 모범을 보인다면 사람들은 어리석은 논쟁을 벌이는 것이 시간과 힘을 낭비하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족보: 딤전 1:4 연구 노트 참조.

율법에 관한 싸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 율법을 지킬 의무가 없었다. (롬 6:14; 갈 3:24, 25) 하지만 회중과 연합하고 있는 일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 율법의 많은 규정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딛 1:10, 11) 사실상 그들은 하느님의 구원의 수단인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 희생을 배척한 것이다.—롬 10:4; 갈 5:1-4. 갈 2:16; 딤전 1:8 연구 노트 참조.

그것들은 무익하고 헛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앞서 언급한 논쟁을 일으키는 것들이 무익하다고, 즉 한 사전에 따르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또한 그는 그러한 것들이 헛된 것이라고 즉 “비어 있는, 열매 없는, … 진실이 결여된”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크레타의 그리스도인들이 시간 낭비에 불과한, 분열을 일으키는 논쟁에 빠지지 않고 하느님을 섬기는 데 집중하기를 바랐다.

나사렛파: “분파” 또는 “파”로 번역되는 그리스어 하이레시스(이 단어에서 “이단”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헤러시[heresy]가 유래함)는 원래 “선택”이라는 의미였던 것 같다. 「칠십인역」레 22:18에서도 이 단어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되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의 모든 선택에 따라” 바치는 제물 즉 자원 제물을 언급하는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특정한 사상이나 교리를 따르는 사람들의 집단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유대교의 대표적인 양대 파벌인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를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행 5:17; 15:5; 26:5)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를 “분파” 또는 “나사렛파”라고 불렀는데, 아마도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온 집단으로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행 24:5, 14; 28:22) 그리스어 하이레시스는 그리스도인 회중 내에서 생겨난 분파들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연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으며 그렇게 되기를 기도하셨다. (요 17:21) 또한 사도들은 그리스도인 회중의 일치 연합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고전 1:10; 유 17-19) 회중 성원들 사이에 분파나 파벌이 생기면 연합이 깨지게 될 것이었다. 따라서 그리스어 하이레시스는 그러한 분열을 일으키는 집단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신앙의 불일치가 생기면 격렬한 논쟁과 분쟁이 벌어지고 심지어 서로 적대시하게 될 수 있었다. (행 23:7-10 비교) 따라서 분파는 반드시 피해야 하는 “육체의 일” 가운데 포함되었다.—갈 5:19-21; 고전 11:19; 벧후 2:1. 또한 나사렛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면 막 10:47 연구 노트 참조.

여러분 가운데 분파들이: 앞 구절에 나오는 것처럼, 바울은 고린도 회중에 “분열”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그들 가운데 파벌이 있다는 것 자체로 인해 하느님의 관점에서 승인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가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한 분파들을 멀리하고 사랑과 연합을 증진하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겸손하게 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충실한 사람이며 순수한 동기를 가지고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분파나 분열은 누가 하느님의 승인을 받은 사람인지 드러내는 역할을 했다.—“분파”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면 행 24:5 연구 노트 참조.

훈계: 또는 “교훈; 인도; 훈련”. 직역하면 “생각을 심어 줌”.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누테시아는 “정신”을 의미하는 누스와 기본적으로 “놓다”를 의미하는 티테미가 결합된 것이다. 이 문맥에서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아버지가 자녀가 사물에 대한 하느님의 생각을 이해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그렇게 함으로 아버지는 자녀에게 여호와 하느님의 생각을 심어 주어야 한다.

경고하고: 또는 “훈계하고”.—살전 5:12 연구 노트 참조.

분파를 조장하는 사람: 또는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용어 설명 “분파; 파” 및 행 24:5; 고전 11:19 연구 노트 참조.

훈계하고 … 훈계한: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교훈하고 인도하는 것을 가리킬 수 있다. (엡 6:4 연구 노트 참조) 이 문맥에서는 “경고”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살전 5:14연구 노트 비교.

물리치십시오: 또는 “관계를 끊으십시오”.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에는 집과 같은 곳에서 내보내거나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회중에 속한 어떤 사람이 분파를 조장하기 시작하면 장로들은 사랑에 찬 방식으로 그를 도와줄 것이다. 하지만 훈계를 받은 뒤에도 그가 행동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장로들은 그를 “물리쳐야” 할 것이다. 여기서 “물리친다”는 것은 장로들이 그를 회중에서 추방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 같다. (롬 16:17; 고전 5:12, 13; 딤전 1:20; 요2 10)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 사람으로 인해 불화와 분열이 생길 것이다.—딤후 2:16-18.

바른길에서 벗어나: 이 표현은 “참되거나 도덕적으로 올바르다고 여겨지는 것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가 “안과 겉을 뒤바꾸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이 표현에는 바른길에서 벗어난 사람이 성경 진리를 더럽히거나 왜곡하려고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장로들은 그런 사람을 물리쳐야 즉 회중에서 추방해야 했다.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는: 이 표현은 회중에서 분파를 조장하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잘못인지 보여 준다. “한 번 훈계하고 또 한 번 훈계”했는데도 자신의 행동을 바로잡지 않는 사람은, 의심을 갖고 있지만 기꺼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의심을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과는 다르다. (딛 3:10; 유 22, 23) 그는 고의적으로 회중을 분열시키는 고집스러운 자신의 행동으로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며 멸망을 자초하는 것이다.—벧후 2:1.

아르데마: 바울의 동료인 아르데마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언급된다. 바울은 아르데마나 두기고를 크레타에 있는 디도에게 보내려고 했다. 아마도 둘 중 한 사람이 디도 대신에 크레타에 있고 디도는 니코폴리스에 있는 자신을 만나러 오게 하려고 했던 것 같다. (미디어 갤러리 “기원 61년경 이후에 바울이 한 여행” 참조) 바울이 언제 어디서 아르데마를 만났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분명한 것은 바울이 그를 신뢰했으며 그 임명을 맡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두기고: 골 4:7 연구 노트 참조.

두기고: 아시아 속주 출신의 그리스도인 봉사자. (행 20:2-4) 바울은 두기고가 수행한 봉사를 매우 소중하게 여겼다. 바울은 골로새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와 골로새 회중의 빌레몬에게 보내는 편지와 에베소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는 일을 두기고에게 맡겼다. 두기고는 단순히 편지를 전달하는 역할만 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회중들에 바울에 “관한 소식을 모두” 알리는 역할도 해야 했다. 그러한 소식에는 바울의 투옥과 그의 상태와 그가 필요로 하는 것에 관한 자세한 점들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바울은 ‘사랑하는 형제이며 충실한 봉사자’인 두기고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고 그의 영감받은 소식에 담긴 중요한 가르침을 강력하게 뒷받침해 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골 4:8, 9. 또한 엡 6:21, 22 참조) 바울은 석방된 뒤에 쓴 편지에서, 두기고를 크레타에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딛 3:12) 또한 바울은 로마에서 두 번째로 수감되었을 때 두기고를 에베소로 보냈다.—딤후 4:12.

율법에 정통한 세나: 직역하면 “법률가 세나”.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노미코스)는 민사 법률가를 가리킬 수 있지만, 바울은 세나가 모세 율법의 전문가라는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만일 그렇다면 세나는 아마도 유대인이었을 것이며, 어쩌면 서기관이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나는 그리스식 이름이므로 그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이었을 수도 있다. 또는 그리스식 이름을 가진 유대인이었을 수도 있는데, 바울 시대에 많은 유대인들은 그리스식 이름이나 로마식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행 1:23; 9:36연구 노트; 12:25) 어떤 경우이든 바울이 디도에게 한 말을 볼 때 세나는 훌륭한 평판을 가진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아볼로: 이 충실한 남자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언급되는 것은 이 구절이 마지막이다. 그는 사도행전에 처음 등장한다. “언변이 좋은” 사람이었던 그는 에베소에서 전파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더 많은 점을 배울 필요가 있었다. 후에 그는 아카이아로 가서 그곳의 제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다.” (행 18:24-28. 행 18:24 연구 노트 참조) 그는 크게 존중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고린도에 있던 장성하지 못한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아볼로 편과 바울 편으로 분열되었다. (고전 1:12; 3:5, 6) 하지만 아볼로는 그러한 잘못된 태도에 영향을 받아 교만해지지 않았으며, 바울도 이 열심 있는 봉사자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지 않았다. (고전 16:1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아볼로가 여행하는 데 필요한 것을 “잘 챙겨 주라”고 말했는데, 아볼로는 여행하는 감독자로서 회중을 방문하는 임무를 수행했던 것 같다.

여행하는 데 조금도 부족한 것이 없도록 잘 챙겨 주십시오: “여행하는 데 … 챙겨 주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는 폭넓은 의미가 있어서, 여행의 일부나 전체를 함께 하는 것도 포함될 수 있다. (행 20:38; 21:5; 롬 15:24; 고전 16:6 비교) 한 참고 자료에 따르면, 세나와 아볼로에게 필요한 것을 챙겨 주라는 바울의 부탁에는 “식품, 돈, 함께 여행할 사람, 이동 수단, 머물 곳을 제공할 사람”을 마련해 주라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 또 다른 참고 자료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에는 여행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도움을 베푸는 일이 흔히 있었다. 여행이 매우 힘들었기 때문에 그러한 도움이 꼭 필요했으며, 여행을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있으면 훨씬 더 편안함을 느꼈을 것이다.” 바울은 디도에게 그러한 지원을 “잘” 베풀라고 격려했는데,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에는 “주의 깊이, 부지런히, 정성을 다해” 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을 수 있다.—빌 2:30; 딤후 4:21 연구 노트 비교.

겨울이 되기 전에 도착하도록 최선을 다하십시오: 바울이 디모데가 겨울이 되기 전에 로마로 오기를 바랐던 이유는 추운 겨울철에는 그러한 여행을 하는 것이 매우 위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고대 지중해 지역에서는 늦은 가을과 겨울과 이른 봄에는 항해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 시기에는 거센 폭풍이 더 자주 발생했다. (행 27:9-44. 또한 미디어 갤러리 “사도행전—로마로 가는 바울의 여정과 첫 번째 투옥” 참조) 또한 비와 눈과 안개와 함께 구름이 잔뜩 끼어 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항해하기가 어려웠다. 선원들은 나침반이 없었기 때문에 이정표가 되는 지형이나 해, 달, 별들의 위치를 보고 항해해야 했다. 그에 더해 디모데가 바울이 트로아스에 두고 온 외투를 겨울이 되기 전에 가지고 온다면, 수감되어 있는 바울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나는 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딤후 4:13. 또한 미디어 갤러리 “외투를 가지고 오십시오” 참조.

자기 목숨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또는 “자기 영혼을 위험에 처하게 했으며”. 에바브로디도가 로마로 가서 그곳에 수감되어 있던 바울에게 선물을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려면 상당한 위험을 감수해야 했을 것이다. 1세기 당시의 상황을 생각해 볼 때 그는 여행을 하다가 비위생적인 환경에 노출되었거나 위생 상태가 좋지 않은 숙소에 머물렀을 수 있다. 그가 “병들어 거의 죽을 뻔”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수 있다. (빌 2:26, 27) 그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바울은 에바브로디도가 “그리스도의 일로 인해 죽을 뻔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바울에게는 에바브로디도를 칭찬하고 빌립보 회중 사람들에게 “주 안에서 그를 관례대로 환영”하고 “그와 같은 사람들을 계속 소중히 여기라”고 권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빌 2:29. 빌 2:25, 26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영혼” 참조.

우리 형제 아볼로에 관해서 말하자면: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 전서를 기록할 당시 아볼로는 에베소나 그 인근에 있었을 것이다. 아볼로는 이전에 고린도에서 전파했으며 (행 18:24–19:1ㄱ)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아볼로를 깊이 존중했다. 후에 바울은 아볼로에게 고린도 회중을 방문하도록 강권했지만 그때에는 아볼로가 고린도에 갈 뜻이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고린도 회중에 가면 회중의 분열이 더 심해질까 봐 염려했을 수도 있고 (고전 1:10-12) 자신이 있던 곳에서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가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든, 바울이 사용한 “우리 형제 아볼로”라는 표현은 바울과 아볼로 사이에 문제가 없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일부 성경 주석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고린도 회중의 분열로 인해 그들 사이에 불화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고전 3:4-9, 21-23; 4:6, 7.

아볼로: 이 유대인 그리스도인은 로마 속주 이집트의 수도인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에서 성장한 것 같다. 알렉산드리아는 고등 학문의 중심지였으며 대도서관이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 도시는 로마 제국 내에서 로마 다음으로 큰 도시였으며 유대인들이 많이 살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과 그리스인 모두 알렉산드리아를 문화와 학문의 중심지 중 하나로 여겼다. 「칠십인역」으로 알려진 히브리어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판도 이곳에서 만들어졌다. 이러한 배경은 아볼로가 이 구절에 언급된 것처럼 성경 즉 영감받은 히브리어 성경에 정통한[직역하면 “강력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비다: 아람어 이름 다비다는 “가젤”을 의미한다. 이 이름은 “암가젤”을 의미하는 히브리어 체비야에 해당하는 것 같다. (아 4:5; 7:3) 그리스어 이름 도르가도 “가젤”을 의미한다. 요파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섞여 사는 항구 도시였으므로, 다비다는 사용되는 언어에 따라 아람어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고 그리스어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을 수 있다. 또는 누가가 이방인 독자들을 위해 그 이름의 번역 표현을 기록했을 수도 있다.

여러분 모두: 이 편지는 바울이 디도에게 쓴 것이지만 이 표현을 볼 때 바울은 회중의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 편지를 읽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이 편지의 내용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디도가 시정을 베풀고 (딛 1:5, 10) 장로를 임명하고 (딛 1:6-9) 책망을 하고 (딛 1:13; 2:15) 자주 일깨워 주고 (딛 3:1, 8)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물질적 지원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할 때 (딛 3:13, 14) 그에게 협조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미디어

니코폴리스
니코폴리스

지도에 붉은색으로 표시된 것은 오늘날 그리스 북서부의 이피로스(에페이로스) 지역에 있는 로마 도시 니코폴리스이다. 니코폴리스라는 이름은 “정복[승리]의 도시”를 의미하며 고대에는 이 이름을 가진 도시가 여러 개 있었다. 하지만 지도에 표시된 도시가 성경에 언급된 니코폴리스인 것 같다. 바울은 로마에 처음으로 투옥되었다가 풀려난 뒤 이곳을 방문했을 가능성이 있다. (딛 3:12. “기원 61년경 이후에 바울이 한 여행” 지도 참조) 니코폴리스는 기원전 31년 이후에 옥타비아누스(후에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로 알려짐)에 의해 세워졌다. 다른 지역에서 살던 많은 사람들이 새로 세워진 이 도시에 정착했으며, 이곳은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다. 바울은 니코폴리스에서 겨울을 보낼 계획을 세웠는데, 그곳에 있으면 증거할 기회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일부 사람들은 바울이 니코폴리스에 있는 동안 체포되어 다시 로마로 끌려가 두 번째이자 마지막으로 수감되었다고 생각한다. (행 28:30 연구 노트 참조) 사진에 보이는 것은 고대 니코폴리스의 유적이다.

1. 로마의 수도교. 네로 황제의 통치 기간(기원 54-68년)에 건축이 시작되었을 수 있다

2. 니코폴리스의 한 항구를 바라본 모습. 앞쪽에 보이는 오데움(소극장)은 기원 2세기 전반에 세워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