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도서 2:1-15

2  그러나 그대는 건전한 가르침과 일치한 것들을 계속 말하십시오.+ 2  연로한 남자들은 습관이 절도 있고, 진지하고, 정신이 건전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있어서 건전해야 합니다. 3  마찬가지로 연로한 여자들도 경외심 있게 행동하고,+ 중상하지 않고,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않고, 선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그리하여 그들이 젊은 여자들에게 조언을 베풀어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5  정신이 건전하고, 순결하고, 집안일을 하고,+ 선하고,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6  마찬가지로 젊은 남자들에게도 건전한 정신을 가지라고+ 계속 권고하고, 7  모든 면에서 그대 자신이 훌륭한 일의 모범을 보이십시오. 순결한 것을* 매우 진지하게 가르치되+ 8  비난받을 것이 없는 건전한 말로 그렇게 하십시오.+ 그러면 반대하는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나쁘게* 말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 부끄러움을 당할 것입니다.+ 9  종들에게는 모든 일에서 주인에게 복종하고+ 그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하며 말대꾸하지 말고 10  그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고+ 오히려 온전히 신뢰할 만한 사람임을 나타내라고 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들이 모든 면에서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의 가르침을 단장하게 하십시오.+ 11  하느님의 과분한 친절이 나타나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12  그 과분한 친절은 우리를 교육하여 불경건과 세상적인 욕망을+ 배척하고 이 세상 제도에서 건전한 정신과 의와 경건한 정성으로 살게 합니다.+ 13  그러면서 우리는 행복한 희망을+ 기다리며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립니다. 14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자신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온갖 불법에서 해방시키고+ 자신을 위해 깨끗하게 하셔서, 자신의 특별한 소유이며+ 훌륭한 일에 열심인 백성이 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대는 온전한 권위를 가지고 계속해서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권고하고* 책망하십시오.+ 아무도 그대를 얕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각주

달리 번역하면 “순결하고”.
또는 “악하다고”.
또는 “격려하고”.

연구 노트

건전한 교훈: 여기서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예수의 모든 가르침은 성경의 다른 부분과 일치하므로, 넓은 의미로 보면 “건전한[또는 “유익한”] 교훈”이라는 표현은 성경의 모든 가르침을 가리킬 수 있다.—딤후 1:13 연구 노트 참조.

건전한: 또는 “유익한”.—딤전 6:3 연구 노트 참조.

습관이 절도 있고: 한 사전에 따르면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정신이 맑은, 절제하는; 술을 완전히 끊거나 … 적어도 무절제하게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단어는 의미 폭이 넓어져서, 균형이 잘 잡히거나 자제력이 있거나 쉽게 침착성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그리스도인 감독자가 생활의 모든 부면에서 절도 있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이다. 다음 구절에서 바울은 술을 오용하는 것에 대해 좀 더 직접적으로 언급한다.—딤전 3:3.

진지하고: 딤전 3:8, 11과 딛 2:2에서 “진지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존중받을 만한”, “품위 있는”, “영예로운”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봉사의 종으로 자격을 갖추려면 존중을 받을 만한 품위 있는 방식으로 행동해야 한다. 또한 자신이 맡은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믿을 만하고 신뢰할 만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정신이 건전하고: 또는 “좋은 판단력이 있고; 지각력이 있고”. 한 사전에 따르면 “정신이 건전한”과 “건전한 정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신중한, 생각이 깊은, 자제력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이 건전한 사람은 균형이 잡혀 있으며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연로한 남자들: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프레스비테스)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문자적으로 나이가 많은 남자들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또한 눅 1:18; 몬 9 참조)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프레스비테로스)가 이 편지의 앞부분에 나오는데, 바울이 디도에게 “도시마다 장로들[직역하면 “연로자들”]을 임명하라”고 권고하는 부분에서 사용되었다. (딛 1:5. 행 11:30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문맥을 볼 때 이 구절에서 바울이 회중의 장로이든 아니든 나이가 많은 모든 그리스도인 남자에게 교훈을 베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회중 내의 사람들을 연령별로 나누어 “연로한 여자들”과 “젊은 남자들”에게 교훈을 베푼다.—딛 2:3-6.

습관이 절도 있고: 딤전 3:2 연구 노트 참조.

진지하고: 딤전 3:8 연구 노트 참조.

정신이 건전하고: 딤전 3:2 연구 노트 참조.

믿음과 사랑과 인내에 있어서 건전해야: 여기서 “건전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신체적으로 건강한 것을 가리킨다. (눅 5:31) 하지만 바울은 이 단어를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는 이 비유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연로한 남자들”에게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라고 권고한다.

장로들: 직역하면 “연로자들”. 성경에서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는 실제로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킬 때도 있지만, 지역 사회나 나라에서 권위와 책임을 가진 지위에 있는 사람을 주로 가리킨다. (마 16:21 연구 노트 참조) 고대 이스라엘 나라에서 장로들은 지역 사회만이 아니라 (신 25:7-9; 수 20:4; 룻 4:1-12) 나라 전체를 위해서도 (삿 21:16; 삼상 4:3; 8:4; 왕상 20:7) 인도하고 지침을 베풀고 시행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리스어 프레스비테로스가 그리스도인 회중과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이 경우가 처음이다. 육적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의 장로들도 회중을 인도할 책임이 있었다. 이 구절에 따르면 구호 기금은 장로들에게 전달되었다. 장로들은 이 기금을 유대의 회중들에 나누어 주는 일을 감독했다.

중상하고: 이 표현은 그리스어 디아볼로스(“중상자”)를 번역한 것이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대부분 “마귀”로 번역되었으며, 하느님을 중상하는 악한 자인 사탄을 가리키는 칭호로 사용된다. (마 4:1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마귀” 참조) 하지만 몇몇 경우에는 기본 의미대로 “중상자”나 “중상하다”로 번역되었다. (딤전 3:11; 딛 2:3) “마지막 날”(딤후 3:1)에 관해 묘사하는 이 내용에서 바울은 이 단어를 거짓 고발을 하거나 사실을 왜곡하여 다른 사람의 평판이나 하느님의 명성을 훼손하려고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한다.—동일한 단어가 가룟 유다를 묘사하는 데 사용된 요 6:70 연구 노트 참조.

여자는 … 잠잠히 배우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당시 많은 유대교 지도자들의 견해를 반박한 것이다. 그들은 여자는 성경에 대해 배워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그러한 전통이 히브리어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으며 예수께서도 그러한 견해를 지지하지 않으셨다. 사실 예수께서는 공개적으로 여자들을 가르치셨다. (수 8:35; 눅 10:38-42; 요 4:7-27) 여기서 바울은 영감을 받아 여자가 회중에서 “잠잠히”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사용한 그리스어는 “조용히”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이전에 고린도 회중에도 비슷한 교훈을 베푼 적이 있다. 그 회중에는 일부 여자들이 집회를 방해하는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전 14:34 연구 노트 참조.

온전히 복종하면서: 바울은 이 영감받은 교훈을 통해, 그리스도인 여자들에게 회중 내에서 여호와의 머리 직분 마련을 받아들이고 존중하라고 권고한 것이다. 이어지는 구절에서는 하느님께서 회중을 가르치는 책임을 남자에게 맡기셨음을 보여 준다. (딤전 2:12) 바울은 복종에 대해 이야기할 때, 여자들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그는 예수가 여호와께 “복종할 것”이며 (고전 15:27, 28) “회중이 그리스도께 복종한다”고 말한다. (엡 5:24) 또한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 남자와 여자가 회중에서 인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한다.—히 13:17.

마찬가지로 연로한 여자들도: 바울의 말은 앞서 언급된 “연로한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장성한 그리스도인 여자들도 회중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예를 들어 “연로한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딛 2:2, 4, 5) 크레타는 도덕적으로 좋지 않은 환경이었고 거짓 선생들이 “여러 집안을 온통 망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곳의 그리스도인 가정들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딛 1:11, 15, 16)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가정들을 강화하는 데 장성한 여자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경외심 있게 행동하고: “경외심 있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성경 외의 문헌에서 제사장을 비롯해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뜻을 전달한다. (딤전 2:10 비교) 이 문맥에서 “행동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행동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인 여자들은 매일의 행실과 마음가짐이 여호와의 신성한 표준과 일치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했다.

중상하지 않고: 바울은 연로한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대화를 할 때 내용이 다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나 중상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조심함으로 모범을 보이기를 바란다. (시 15:3; 딤전 3:11. 딤후 3:3 연구 노트 참조) 또한 그는 그들이 많은 술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술을 너무 많이 마시면 흔히 말을 함부로 하게 되며, 그런 말은 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잠 20:1; 23:33.

선한 것을 가르치는 사람: 이 표현은 회중에서 연로한 여자들이 수행하는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다. 다른 편지에서 바울은 하느님께서 회중을 가르치는 책임을 장로들에게 맡기셨으므로 여자들이 가르치는 역할을 수행하도록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딤전 2:12. 딤전 2:11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다른 중요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들은 봉사를 할 때나 비공식적이거나 사적인 자리에서 말과 모범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렇게 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선을 행하도록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젊은 여자들에게 조언을 베풀어: 여기서 “조언을 베풀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훈련하다; 정신을 일깨우다”로 번역할 수도 있다. 이 단어는 이 편지의 몇몇 구절에서 “정신이 건전하다; 건전한 정신을 갖다”로 번역된 단어와 어근이 같다. (딛 1:8; 2:2, 5, 6) 한 사전에 따르면 이 단어는 다른 사람들이 신중함을 나타내고, 올바로 행동하고, 좋은 판단력을 보이도록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연로한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성경에 근거한 조언을 베풂으로 사랑으로 그들을 이끌 수 있었다. 바울은 충실한 자매들이 그렇게 조언을 베풀 때, 다른 사람들의 품위를 지켜 주고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에 관해 자신이 기록한 영감받은 원칙을 적용할 것이라고 믿었다.—살전 4:11; 딤전 5:13.

남편을 사랑하고: 이것은 하나의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으로, 훌륭한 아내를 칭찬할 때 흔히 사용되던 말이다. 사도 바울은 아내가 남편을 저절로 사랑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당시 많은 여자에게는 배우자에 대한 선택권이 거의 혹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남편에 대한 애정을 갖기가 어려운 경우도 있었을 것이다.

자녀를 사랑하고: 이 표현 역시 앞에 나온 표현(“남편을 사랑하고”)과 마찬가지로 하나의 그리스어를 번역한 것으로, 훌륭한 아내를 칭찬할 때 흔히 사용되던 말이다. 여기서 바울이 베푼 교훈은 어머니가 자녀에게 자연스럽게 느끼는 사랑이 더 깊어지고 강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연로한 여자들은 자녀를 둔 젊은 여자들에게 자녀를 계속 사랑하고 필요한 교육을 베풀라고 권고함으로 회중 내의 가정들을 강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었다.—딤후 1:5; 3:14, 15.

부양하지: 물질적으로 부양한다는 뜻이다. 바울은 가장이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한, 배우자와 자녀를 부양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배우자를 잃은 부모와 조부모가 신체적, 물질적 필요를 스스로 돌볼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에 성인 자녀가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는 앞으로 어떤 필요가 있을지 예상하고 그들을 돌볼 마련을 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요 19:26, 27 비교) 바울의 말을 볼 때 그리스도인들이 이 권고를 따르는 것은 단지 의무감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그분의 승인을 받기 원하기 때문이다.—출 20:12; 신 5:16; 마 15:4-6.

집안일을 하고: 또는 “집안을 돌보고”. 바울 시대에는 예외가 있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집안일을 했다. 하지만 사도 바울은 여자들이 집안일만 해야 한다는 의미로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다. 그런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과 어긋난다. (잠 31:10-31; 행 18:2, 3) 바울의 말은 집안을 돌보는 것이 꼭 해야 할 중요한 일이라는 의미였다. 가정을 소홀히 하는 그리스도인 여자는 회중의 평판과 회중이 전하는 소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또한 바울은 “집안일을 하는” 것을 일부 여자들이 쓸데없는 일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과 대비되는 의미로 사용했을 수 있다. (딤전 5:13, 14) 여호와께서는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집안을 돌볼 중요한 책임을 맡기셨다.—딤전 5:8연구 노트.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골 3:18 연구 노트 참조.

그래야 하느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앞서 바울은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어떻게 일상생활에서 합당하게 행동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했다. 이제 그는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그리스도인 여자가 좋지 않은 본을 보이면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하느님의 “말씀” 즉 소식에 대해 나쁘게 이야기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교의 소식이 사람들이 좋은 특성을 기르게 하지 못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반면에 합당하게 행동하는 여자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그분의 소식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할 것이며, 그의 행실에 감명을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벧전 2:12. 골 3:8 연구 노트 참조.

모욕적인 말: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그리스어는 블라스페미아인데, 이 단어는 하느님에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을 가리킬 경우 “모독” 또는 “신성을 모독하는 것”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다. (계 13:5, 6) 하지만 원래 이 말은 하느님에게 하는 불경스러운 말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사람에게 하는 악한 말이나 중상하는 말을 가리킬 수도 있으며, 문맥을 보면 여기서 바울이 그런 의미로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엡 4:31 참조) 다른 번역판들에서는 이 구절에 “중상”이나 “비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한 참고 자료에서는 이 단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단어는 다른 사람을 깎아내려서 평판이 안 좋아지게 하거나 나쁜 평판을 갖게 만들려고 하는 것을 가리킨다.”

복종하십시오: 바울은 여기서 그리스도인 아내가 하느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권위에 자발적으로 복종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그리스도인 남편도 머리 직분을 행사하는 면에서 그리스도의 본을 따라야 하며 그리스도의 권위에 기꺼이 복종해야 한다.—고전 11:3; 엡 5:22, 23. 엡 5:21 연구 노트 참조.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 특히 자기 집안 식구들: 이 두 표현 중에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이 의미 폭이 더 넓은 표현으로, 가족을 포함한 가까운 친족을 가리킨다. “자기 집안 식구들”은 이 문맥에서 한 집에 사는 직계 가족을 가리킨다.

격려하는: 또는 “권고하는”. 그리스어 파라칼레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폭넓은 뜻을 담고 있으며, “격려하다”(행 11:23; 14:22; 15:32; 살전 5:11; 히 10:25); “위로하다”(고후 1:4; 2:7; 7:6; 살후 2:17)를 의미할 수 있고 일부 문맥에서는 “강권하다; 권고하다”(행 2:40; 롬 15:30; 고전 1:10; 빌 4:2; 살전 5:14; 딤후 4:2; 딛 1:9, 각주)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권고와 위로와 격려가 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권고할 때 결코 거칠거나 불친절한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것일 수 있다.

젊은 남자들에게도 … 계속 권고하고: 여기서 바울은 딛 2:1에서 사용한 “말하다”에 해당하는 단어보다 더 의미가 강한 동사를 사용한다. “권고하다”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동사는 이 문맥에서 “권위를 가지고 설득하다”를 의미한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하지만 디도는 거칠거나 불친절한 방식으로 권위를 행사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젊은 남자들에게 “훌륭한 일의 모범”이 되어야 했다. (딛 2:7) 또한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동사는 계속되는 행동을 나타내는 형태(“계속 권고하다”)로 되어 있다. 이 점을 볼 때 디도가 젊은 남자들을 계속 일깨워 주어야 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건전한 정신을 가지라고: 딤전 3:2 연구 노트 참조.

정신이 건전하고: 또는 “좋은 판단력이 있고; 지각력이 있고”. 한 사전에 따르면 “정신이 건전한”과 “건전한 정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신중한, 생각이 깊은, 자제력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이 건전한 사람은 균형이 잡혀 있으며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비난받을 것이 없는 건전한 말: “건전한”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유익한”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물론 완전한 말도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요 6:58-61 비교) 여기서 “비난받을 것이 없다”로 번역된 표현은 건전한 말이 정당한 비난이나 정죄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디도가 말에서 모범을 보이면 사람들이 회중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되고, 심지어 반대하는 사람들도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 것이었다.

종살이의 멍에를 메고 있는 사람들: 직역하면 “멍에 아래 있는 종들”. “멍에”라는 말은 주인의 권위 아래 노예나 종으로 예속된 상태를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자주 사용되었다. (딛 2:9, 10; 벧전 2:18. 용어 설명 “멍에” 참조) 로마 제국에는 노예가 많았으며 그중에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었다. 예수의 제자들은 노예 제도를 옹호하지도 비판하지도 않았다. (고전 7:20, 21) 예수께서는 사회 개혁을 하려고 하지 않으셨으며 제자들도 “세상에 속해 있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요 17:14)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왕국에 관해 전파하셨는데, 이 왕국이 모든 형태의 압제와 불공정을 없앨 것이었다.—요 18:36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미디어 갤러리 “노예가 하던 일” 참조.

계속 자기 주인을 온전히 존중받기에 합당한 사람으로 여겨야 합니다: 바울은 종의 신분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인을 존중하라고 권한다. 종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있는지는 그의 행동 즉 그가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주인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인 가르침이 그의 삶에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했다는 뜻이 될 것이다. 그러한 좋지 않은 태도는 하느님의 이름에 모독이 돌아가게 한다.—골 3:22, 23. 엡 6:5, 6 연구 노트 참조.

종들에게는 … 주인에게 복종하고: 바울의 이 말이 노예 제도를 지지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도인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당시의 현실을 인정한 것뿐이다. 사실 바울은 고전 7:21에서 종의 신분인 그리스도인들에게 합법적으로 자유롭게 될 수 있다면 “그 기회를 이용”하라고 권했다. 하지만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그는 종의 신분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실하게 일하고 행실로 여호와께 영예를 돌리라고 권고한다.—딤전 6:1 연구 노트 참조.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고: 바울의 말은 에베소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마음에 와닿았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특정 계절에만 일이 있거나, 일이 일정하지 않거나, 가족을 부양하기에 충분할 만큼의 돈을 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을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도둑질을 하고 싶은 유혹을 느꼈을지 모른다. 하지만 바울은 이 구절에서 어떤 경우에든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되며 자기 손으로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교훈한다. (신 5:19; 살전 4:11) 이전에 바울은 에베소의 장로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열심히 일함으로 본을 보였는지 일깨워 준 적이 있다. (행 20:17, 34. 또한 행 18:3 연구 노트 참조)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의 교훈을 따르기 위해서는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대로 하느님께서 물질적으로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실 것임을 신뢰할 필요가 있었다.—마 6:25-33.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느님: 바울이 기록한 디모데 전서와 디도서에는 “구원자”라는 표현이 여호와 하느님을 가리키는 데 여섯 번 사용되었다. (이 구절과 딤전 2:3; 4:10; 딛 1:3; 2:10; 3:4) 이것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의 나머지 부분에서 이 표현이 하느님을 가리키는 데 두 번밖에 사용되지 않은 것과 대비가 된다. (눅 1:47; 유 25)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여호와를 그분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자주 언급한다. (시 106:8, 10, 21; 사 43:3, 11; 45:15, 21; 렘 14:8) 여호와께서 예수를 통해 인류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시기 때문에, 예수도 “구원자”로 언급된다. (행 5:31; 딤후 1:10) 예수는 “구원의 수석 대표자”라고 불리기도 한다. (히 2:10) 천사는 하느님의 아들을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를 의미하는 예수라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하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그가 자신의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오.” (마 1:21연구 노트) 따라서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는 구원의 근원이 여호와이시라는 점을 강조해 준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아버지와 아들 모두를 구원자로 언급한다. (딛 2:11-13; 3:4-6) “구원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와 「칠십인역」에서 그 단어를 번역하는 데 사용된 그리스어는 하느님의 백성을 적들로부터 “구할 구원자들”로 일으켜진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도 사용된다.—느 9:27; 삿 3:9, 15.

도둑질하지 말고: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동사는 “도둑질하다”라는 의미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동사가 아니다. 이 동사는 문자적으로 “자신을 위해 떼어 놓다”를 의미하지만 “자신의 이득을 위해 자금을 빼돌리다” 또는 “횡령하다”를 의미할 수도 있다. 동일한 단어가 아나니아의 죄를 언급하는 행 5:2, 3에서 “몰래 떼어 놓다”로 번역되었다. 그리스어 「칠십인역」수 7:1에서 이 동사는 아간이 여호와께 속한 것 중 얼마를 부당하게 가져간 일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 한 참고 자료에 따르면 바울 시대의 많은 종들은 “물건을 구매하는 일을 했으며 많은 경우 큰돈을 맡아 관리했다.” 따라서 그들은 주인의 것을 훔치려는 유혹을 느꼈다. 종의 신분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유혹을 물리침으로 자신들이 온전히 신뢰할 만한 사람임을 나타냈다.—엡 4:28 연구 노트 참조.

우리 구원자이신 하느님: 딤전 1:1 연구 노트 참조.

가르침을 단장하게: 여기서 “단장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헤롯의 성전을 꾸미는 데 사용된 귀한 돌들, 그리스도인 여자들이 기를 수 있는 훌륭한 특성들, 새 예루살렘의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도 사용되었다. (눅 21:5; 딤전 2:9; 벧전 3:5; 계 21:2) 여기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소식을 단장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그 소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사람들이 보게 할 수 있다. 종의 신분인 그리스도인은 주인을 존중하고 그에게 순종함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돋보이게 할 수 있었다. 그런 그리스도인 종은, 게으르고 주인에게 대들고 주인의 것을 훔치기까지 하는 것으로 알려진 종과는 완전히 달랐으며 사람들은 그 차이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모든 부류의 사람들: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표현을 직역에 가깝게 옮기면 “모든 사람”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문맥을 고려할 때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다른 예를 보려면 요 12:32; 행 2:17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에 이르기를” 바라신다. (벧후 3:9) 따라서 그분은 성별, 민족적 배경, 경제적 형편, 사회적 지위에 따라 차별하지 않으시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받을 기회를 주신다. (마 28:19, 20; 행 10:34, 35; 17:30) 하지만 성경은 많은 사람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받지 못할 것이라고 분명히 알려 준다. (마 7:13, 21; 요 3:16, 36; 살후 1:9) 따라서 “모든 부류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그러한 구절들과 조화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앞 구절들인 딤전 2:1, 2에서도 그렇게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그 구절들에서 바울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 관해”, “왕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 관해서도” 기도하라고 권한다.

구원을 받고: “구원하다” 또는 “구원”에 해당하는 원어 표현들은 성경에서 때때로 위험에서 구출하거나 멸망되지 않도록 구해 준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출 14:13, 14; 행 27:20, “살아남다”) 하지만 이 표현들은 종종 죄에서 구출하는 것을 가리킨다. (마 1:21) 죽음의 원인은 죄이므로, 죄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은 영원히 살 희망을 갖게 된다.—요 3:16, 17. 딤전 1:1 연구 노트 참조.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딤전 2:4 연구 노트 참조.

구원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딤전 2:4 연구 노트 참조.

경건한 정성: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유세베이아)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나타내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숭상심과 경외심을 가리킨다. 의미 폭이 넓은 이 단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행동을 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랑이나 개인적인 애착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 대로 생활하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또한 바울의 말을 보면 경건한 정성이 타고나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디모데에게 이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선수가 훈련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라고 권고한다. 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한 정성을 나타내는 면에서 최고의 본을 남기셨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딤전 3:16 연구 노트 참조.

경건한 정성: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유세베이아)는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충성스럽게 섬기고 그분께 온전히 순종함으로 나타내는 하느님에 대한 깊은 숭상심과 경외심을 가리킨다. 의미 폭이 넓은 이 단어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행동을 하도록 마음을 움직이는 하느님에 대한 충성스러운 사랑이나 개인적인 애착을 가리키기도 한다. 따라서 한 사전에서는 이 단어의 의미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살게 하신 대로 생활하다”라는 말로 요약한다. 또한 바울의 말을 보면 경건한 정성이 타고나는 특성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디모데에게 이 특성을 발전시키기 위해 운동선수가 훈련하듯이 열심히 노력하라고 권고한다. 3장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경건한 정성을 나타내는 면에서 최고의 본을 남기셨다는 점을 일깨워 주었다.—딤전 3:16 연구 노트 참조.

불경건: 또는 “불경”. 성경에서 그리스어 아세베이아와 그와 어근이 같은 다른 표현들은 하느님에 대한 숭상심이 없거나 그분에게 도전하기까지 하는 것을 가리킨다. (유 14, 15) 아세베이아의 반대말인 유세베이아는 “경건한 정성; 경건함”으로 번역된다. 그러한 숭상심은 하느님을 위해 봉사하고 그분께 정성을 바치고 그분을 숭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행 3:12; 딤전 2:2; 4:7, 8; 딤후 3:5, 12.

현 세상 제도: 또는 “현 시대”. 여기서 바울은 사탄이 통치하는 불의한 세상 제도를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마 13:22; 고후 4:4; 갈 1:4 연구 노트 참조.

경건한 정성: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유세베이아)는 하느님에 대한 숭상심과 깊은 존경심을 가리킨다. (“경건한 정성”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에 대해 알아보려면 딤전 4:7 연구 노트 참조) 동일한 그리스어가 「칠십인역」에서도 때때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사 11:2; 33:6에 그 단어가 나온다.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그 부분이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되어 있는데, 이 표현 역시 여호와 하느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가리킨다. 기원 5세기에 만들어진 시리아어 「페시타」의 번역자들은 딤전 2:2에 나오는 이 그리스어를 번역할 때 “하느님”이라는 말을 넣어 “하느님에 대한 숭상심”이라고 명시적으로 표현했다. 그와 비슷하게, 후에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을 히브리어로 옮긴 일부 번역판에서는 이 구절을 비롯한 여러 구절에서 유세베이아를 “여호와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번역했다. (딤전 3:16; 4:7, 8; 6:3, 6, 11) 하지만 신세계역 성서 번역 위원회는 이 구절의 본문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할 만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다른 구절들에서 하느님의 이름을 복원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록 다 참조. 롬 10:12 연구 노트 비교.

그 과분한 친절은 우리를 교육하여: 여호와 하느님께서는 “모든 부류의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 예수의 대속 희생을 마련하심으로 인류에게 큰 사랑과 과분한 친절을 나타내셨다. (딛 2:11; 엡 1:7; 2:4-7) 바울이 말한 것처럼, 그 친절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교육한다. 그것은 그를 인도하고 동기를 부여한다. (고후 5:14, 15) 여호와께서 자신을 위해 해 주신 일들에 대해 알게 된 그리스도인은 하늘의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는 방식으로 살아가려고 한다. 예를 들어, 그는 사탄이 통치하는 “이 세상 제도”의 특징을 반영하는 그릇된 욕망과 좋지 않은 특성들을 배척하게 된다. (엡 2:2 연구 노트 참조) 그리고 건전한 정신, 의, 경건한 정성 같은 훌륭한 특성들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딤전 3:2; 4:7 연구 노트 참조.

불경건: “경건한 정성”과 반대되는 “불경건”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면 롬 1:18 연구 노트 참조.

이 세상 제도: 또는 “이 시대”.—딤전 6:17 연구 노트; 용어 설명 “세상 제도(들)” 참조.

경건한 정성: “경건한 정성”이라는 표현에 대해 알아보려면 딤전 4:7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딤전 2:2 연구 노트 참조.

공기의 … 권세를 잡은 통치자: 여기 언급된 “통치자”는 사탄 마귀를 가리킨다. 바울은 문자적인 공기 즉 대기를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하여 이기적이고 불순종하는 즉 지배적인 태도가 오늘날 세상에 널리 퍼져 있다는 점을 표현한다. 바울은 고전 2:12에서도 비슷한 표현인 “세상의 영”을 언급한다. 문자적인 공기가 어디에나 있어서 쉽게 들이마실 수 있는 것처럼 “세상의 영”도 어디에나 항상 있다. 그 영 즉 지배적인 정신 태도는 대부분의 인류에게 “권세” 즉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 영에 영향력이 있는 이유는 죄 많은 육체가 그 영에 쉽게 이끌리고, 그 영이 알아차리기 어려우며, 끊임없이 작용하고, 공기처럼 어디에나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과 멀어져 그분의 뜻과 반대되는 행로를 따르는 사람들을 이 구절에서는 “불순종의 아들들”로 언급한다.

이 세상 제도: 또는 “이 세상의 세상 제도”. 그리스어 아이온(“세상 제도”)의 기본 의미는 “시대”이다. 이 단어는 특정한 기간이나 시대를 구분 짓는 상태나 특징을 가리키는 데 자주 사용된다. 그리스어 코스모스(“세상”)는 하느님과 멀어진 불의한 인간 사회를 가리킨다. 이 구절에서는 아이온코스모스가 함께 사용되어 하느님과 멀어진 사람들의 행동과 표준을 가리키며, “이 세상의 행로[또는 “관습; 방식”]”로 번역할 수도 있다.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이 한때 불의한 생활 방식에 따라 걸었다고 즉 불의한 생활을 했다고 말한다.

정신이 건전하고: 또는 “좋은 판단력이 있고; 지각력이 있고”. 한 사전에 따르면 “정신이 건전한”과 “건전한 정신”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단어들은 “신중한, 생각이 깊은, 자제력이 있는” 것을 가리킨다. 정신이 건전한 사람은 균형이 잡혀 있으며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는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 “나타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에피파네이아)는 성경에서 ‘어떤 것에 대한 분별할 수 있는 증거’ 또는 ‘권위나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예수께서 땅에 계시던 때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딤후 1:10연구 노트) 또한 그분이 왕권을 가지고 임재해 계시는 기간에 일어나는 여러 사건들과 관련하여 사용된다. (예를 들어 살후 2:8 연구 노트 참조) 이 문맥에서 “나타나실 때”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하늘에서 영광스럽고 강력한 지위에 계시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미래의 지정된 때를 가리킨다.—단 2:44; 7:13, 14; 딤전 6:15; 딤후 4:1.

행복합니다: 그리스어 마카리오스.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처럼 단지 마음이 유쾌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이 표현이 사람에게 사용될 경우에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그분의 은혜를 누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또한 이 표현은 하느님과 하늘에서 영광 가운데 계신 예수를 묘사할 때 사용되기도 한다.—딤전 1:11; 6:15.

행복한 희망: 한 참고 문헌에서 설명하듯이 성경에서 희망은 “반드시 일어날 일을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바울은 일부 사람들이 가진 희망 즉 불멸성을 지닌 영적 피조물로 부활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하늘 왕국”에서 다스리게 될 희망을 언급한 것이다. (딤후 4:18; 계 5:10) 그 왕국은 땅의 국민들에게 영원히 살 전망을 비롯해 많은 축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러한 모든 전망은 그 약속들이 이루어질 때를 고대하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며, “행복하신 하느님”만이 그 약속들이 이루어질 것을 보증하실 수 있다. (딤전 1:11) 여러 성경 번역판에서는 여기서 “행복한”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를 “복된”으로 번역한다. 두 가지 번역 표현 모두 그러한 희망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느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강조한다.—마 5:3 연구 노트 비교.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울은 여기서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모두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언급한다. 일반적으로 “나타나심”에 해당하는 표현은 예수와 관련해서만 사용된다. (살후 2:8; 딤전 6:14; 딤후 1:10; 4:1, 8) 그렇기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이 한 분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따라서 이 표현을 “우리의 위대한 하느님이자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번역한다. 그들은 영감받은 성경이 예수를 “위대한 하느님”으로 묘사한다는 증거로 이 표현을 제시한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과 성경 번역자들은 이 표현을 「신세계역」과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예수 두 분을 가리키는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이 표현을 번역한 근거를 알아보려면 영문 「왕국 행간역」(Kingdom Interlinear) 부록 2E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그리스도 예수(Of the Great God and of [the] Savior of Us, Christ Jesus)” 참조.

영광스러운 나타나심: “나타나심”으로 번역된 그리스어(에피파네이아)는 성경에서 ‘어떤 것에 대한 분별할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권위나 능력을 나타내 보이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 (딤전 6:14 연구 노트 참조) 여기서 바울은 그러한 나타나심을 “행복한 희망”이 이루어지는 것과 연관 짓는다.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의 경우 이 희망에는 부활되어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공동 통치자가 되는 것이 포함된다. 성경에서는 그처럼 하늘로 부활되는 일이 “주[예수]의 임재”가 시작된 후에 있을 것이라고 알려 준다. (살전 4:15-17) 이 부활은 “위대한 하느님과 우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의 일부이기도 하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지원을 받아 나타나셔서 사망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상을 주신다.

온갖 불법: 성경은 모든 “죄는 불법”이라고 말한다. (요1 3:4) 하지만 불법에는 단지 죄가 되는 행동뿐 아니라 하느님의 법을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것이 포함될 수 있다. (마 24:12 연구 노트 참조) 물론 바울은 불완전한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전혀 짓지 않을 수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롬 7:19-23) 하지만 그들은 생활 방식을 변화시켰으며 하느님의 의로운 표준을 더는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제사장으로서 수행하신 봉사 덕분에 이제 여호와의 법이 그들의 “마음”과 “정신”에 있게 되었다. (히 10:14-16; 롬 7:25; 8:2, 4; 딛 2:12) 따라서 그들은 “온갖 불법에서 해방”되었다.

해방시키고: 직역하면 “대속하고; 구속하고”. 이 그리스어 동사는 값을 지불하여 노예나 전쟁 포로를 자유롭게 해 주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동일한 동사가 벧전 1:18, 19에도 나오는데, 그 구절들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로 “해방되었다[또는 “대속받았다; 구속받았다”, 각주]”고 말한다.—또한 마 20:28 연구 노트 참조.

자신의 특별한 소유[인] 백성: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그분의 대속 희생의 “귀중한 피”로 깨끗하게 되고 “해방되었다.” (벧전 1:18, 19; 히 9:14) 따라서 그들은 그분의 “특별한 소유”라고 할 수 있다. 한 사전에 따르면 바울이 사용한 “자신의 특별한 소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값비싼 소유이며 특별한 보물”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표현은 여호와께서 고대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신 이러한 말씀과 비슷하다. “너희는 틀림없이 모든 민족 중에서 나의 특별한 재산[또는 “아끼는 소유”]이 될 것이다.” (출 19:5. 또한 신 7:6; 14:2 참조) 기원 33년 오순절 이후로 여호와께서는 이 땅에 새로운 “나라”, “하느님의 이스라엘”, “특별한 소유가 된 백성”을 갖게 되셨다. (벧전 2:9, 10; 갈 6:16연구 노트) 따라서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 모두의 “특별한 소유”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구절에 나오는 “백성”이라는 표현은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인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그 표현에는 그들을 열심히 지원하는 예수의 “다른 양들”도 포함된다. (요 10:16) 여호와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 모두를 매우 소중히 여기신다.—시 149:4; 학 2:7 비교.

훌륭한 일에 열심인: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께서 보시기에 옳고 합당한 일을 하는 데 “열심”일 것이라고, 즉 열정적인 태도를 나타낼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훌륭한 일”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선한 일을 하는 것, 하느님의 영의 열매를 나타내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왕국에 관한 좋은 소식을 전파하는 것이 포함된다.—마 24:14; 갈 5:22, 23; 딛 2:1-14; 약 1:27; 벧전 2:12.

대속물: 성경 외의 그리스 문헌에서 그리스어 리트론(“풀어 주다; 석방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리오에서 파생)은 속박되어 있거나 노예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풀어 줄 때 또는 전쟁 포로를 석방할 때 지불되는 값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이 단어가 이 구절과 막 10:45에 두 번 나온다. 딤전 2:6에는 이 단어와 같은 어근에서 나온 안틸리트론이 나오는데, “상응하는 대속물”로 번역되었다. 그 밖에 어근이 같은 단어들로는 “해방시키다; 대속하다”를 의미하는 리트로오마이(딛 2:14; 벧전 1:18 및 각 구절의 각주 참조)와 흔히 “대속물에 의한 석방”으로 번역되는 아폴리트로시스(엡 1:7; 골 1:14; 롬 3:24; 8:23; 히 9:15; 11:35)가 있다.—용어 설명 참조.

하느님의 이스라엘: 이 표현은 성경에서 이 구절에만 나온다. 이 표현은 나중에 이스라엘로 이름이 바뀐 야곱의 육적 후손들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창 32:22-28) 앞 구절(갈 6:15)에서는 “하느님의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자들에게 할례가 요구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 준다. 예언자 호세아는 하느님의 은혜를 받는 백성 가운데 이방인들도 포함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내 백성이 아닌 사람들에게 ‘너는 내 백성이다’ 하겠다.” (호 2:23; 롬 9:22-25) 육적 유대인과 개종자들이 영적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자들 가운데 포함되기는 했지만 (행 1:13-15; 2:41; 4:4) 그들은 하느님께 배척당한 육적 이스라엘의 “남은 자”일 뿐이었다. (사 10:21, 22; 롬 9:27) 후에 바울은 로마 사람들에게 이렇게 썼다. “이스라엘의 후손이라고 해서 모두가 실제로 ‘이스라엘’인 것은 아닙니다.”—롬 9:6. 또한 행 15:14; 롬 2:29; 9:27; 11:26 연구 노트 참조.

불법: 그리스어 원어에는 법을 어기고 업신여기면서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마 7:23; 고후 6:14; 살후 2:3-7; 요1 3:4.

계속해서 … 말하고 권고하고 책망하십시오: 바울이 편지의 이 부분을 끝맺으면서 디도에게 베푼 교훈에는 강도가 점점 더 강해지는 표현들이 사용되었다. 바울은 어떤 사람은 감독자가 친절하게 일깨워 주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지만 권고가 필요한 사람도 있고 책망이 필요한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많지는 않지만, “말하고 권고하고 책망하는” 것 세 가지가 모두 필요한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디도는 먼저 “이러한 것들을 말하고”, 그 말을 듣지 않으면 “권고하고”, 권고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책망”했을 것이다. 디도는 자신에게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온전한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고 확신을 갖고 그 일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얕보지 못하게 하십시오: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그리스어 동사를 볼 때, 디도를 반대하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디도보다 뛰어나다는 듯이 행동했을 수 있다. 하지만 디도는 자신이 임명된 장로로서, 회중의 평화와 연합을 깨뜨리는 사람들을 권고하고 책망할 “온전한 권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했다.—디모데가 젊다는 이유로 일부 사람들이 그를 무시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주는, 비슷한 동사가 사용된 딤전 4:12 비교.

미디어

노예가 하던 일
노예가 하던 일

노예 제도는 로마 제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큰 부분을 차지했다. 로마에는 노예와 주인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법이 있었다. 노예들은 로마 제국 영토에 사는 부유한 사람들의 집에서 많은 일을 수행했다. 그들은 요리와 청소를 하고 주인의 자녀들을 돌보았다. 공장이나 광산이나 농장에서 일하는 노예들도 있었다. 교육을 많이 받은 노예들은 의사나 교사나 비서로 일했다. 사실 노예는 군대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일했다.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는 일도 있었다. (용어 설명 “자유인; 자유를 얻은 사람” 참조)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노예 제도와 관련해서 정부의 권위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하지도 않았고 노예 반란을 지지하지도 않았다. (고전 7:21) 그리스도인들은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포함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노예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존중해 주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한 권리를 존중하여 노예인 오네시모를 주인인 빌레몬에게 돌려보냈다. 오네시모는 그리스도인이 되었기 때문에 동료 그리스도인인 주인에게 기꺼이 돌아가 그에게 복종했다. (몬 10-17) 바울은 노예 신분인 사람들에게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일하라고 교훈했다.—딛 2: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