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 후서 2:1-17

2  형제 여러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우리가 그분에게 함께 모이게 되는 일에+ 관해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영감받은 말이나+ 전하는 말이나 우리가 보낸 것처럼 보이는 편지로 여호와의 날이+ 왔다고 하더라도, 여러분은 쉽게 이성을 잃고 흔들리거나 놀라지 마십시오.  아무도 어떤 식으로든 여러분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지* 못하게 하십시오. 그날이 오기 전에 먼저 배교가+ 일어나고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대하는 자이며, 신이라 불리는 모든 자나 숭배를 받는 모든 대상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느님의 성전에 앉아서 대놓고 신으로 자처합니다.  여러분은 내가 여러분과 함께 있었을 때에 이런 일을 말하던 것을 기억하지 못합니까?  여러분도 아는 것처럼,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있으므로 그는 정해진 때가 되어서야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 이 불법의 신비는 이미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가 없어질 때까지만 그러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불법한 자가 나타날 것인데, 주 예수께서는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영으로+ 그를 제거하시고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심으로+ 그를 없애실 것입니다.  불법한 자의 임재는 사탄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 온갖 기적*과 거짓 표징과 놀라운 일과+ 10  온갖 불의한 속임수가 뒤따를 것입니다.+ 멸망으로 나아가는 자들을 상대로 그런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들이 자기들을 구원해 줄 진리에 대한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받는 보응입니다. 11  그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속이는 힘에 이끌려 거짓을 믿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12  그들이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기뻐하므로 그들 모두가 심판을 받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3  그러나 여호와께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 때문에 항상 하느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구원을 위해 여러분을 처음부터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 때문에 그분이 자신의 영을 통해 여러분을 거룩하게+ 하신 것입니다. 14  이를 위해 그분은 우리가 전하는 좋은 소식을 통해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15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말이나 우리가 보낸 편지를 통해 여러분이 가르침받은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셔서+ 과분한 친절로 영원한 위로와 좋은 희망을 주신+ 하느님 우리 아버지께서 17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행실과 말에서 여러분을 굳건하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각주

또는 “여러분을 꾀지; 여러분을 속이지”.
또는 “강력한 일”.
또는 “강하게”.

연구 노트

그리스도의 임재 중에: 임재라는 표현은 예수의 몇몇 제자가 ‘그분의 임재의 표징’에 관해 질문하는 내용이 나오는 마 24:3에서 처음 사용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란 그분이 현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이 시작될 때 메시아 왕으로 보이지 않게 즉위하셔서 왕으로서 와 계시는 상태를 가리킨다. “임재”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파루시아이다. 많은 번역판에서는 “오다”라는 동사를 사용해서 이 단어를 번역하지만, 이 단어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그분의 임재는 단지 그분이 오시거나 도착하시는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계속되는 일이었다. 마 24:37-39에서 “노아의 날 ··· 홍수 이전 시대”를 “‘사람의 아들’의 임재”에 비한 것을 보면 파루시아에 그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빌 2:12에서 “함께 있을 때”로 번역된 표현에도 파루시아가 사용되었는데, 바울은 이 단어를 “떨어져 있을 때”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고전 16:17 연구 노트 참조) 따라서 여기서 바울은 영으로 기름부음받은 그리스도의 형제들이자 공동 상속자들 즉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 하늘 생명으로 부활되는 일이 예수께서 하늘에서 하느님의 왕국의 왕으로 즉위하시고 얼마 후에 있을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 “임재”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루시아는 문자적으로 “곁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단지 오거나 도착하는 순간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일정 기간 동안 계속되는 상태이다. 이 문맥에서는 예수께서 현 세상 제도의 마지막 날이 시작될 때 메시아 왕으로 보이지 않게 즉위하셔서 왕으로서 와 계시는 상태를 가리킨다.—고전 15:23 연구 노트; 용어 설명 “임재” 참조.

영감받은 표현을 분별하는 능력: 이 표현은 문자적으로 “영들을 분별하는 것”을 의미하며, 기적을 통해 영감받은 표현을 이해하는 능력을 가리킨다. 이 선물에는 어떤 표현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다른 근원에서 나온 것인지 분별하는 능력이 포함되었을 것이다. 이 능력은 회중을 거짓 예언자들로부터 보호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고후 11:3, 4; 요1 4:1) 또한 이 능력은 예루살렘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율법의 어느 부분이 여전히 그리스도인에게 적용되는 ‘꼭 필요한 것들’인지 결정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행 15:19, 20, 28, 29) 그에 더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편지와 기록이 회중들에 전달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것들이 성경 정경의 일부가 되어야 하는지 분별하기 위해 인도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예를 들어 사도 베드로는 “무지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이 성경의 다른 부분들을 곡해하듯이 [바울의 편지들]도 곡해한다”고 썼는데, 이 말을 볼 때 바울의 기록 중 일부가 영감받은 성경에 포함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벧후 3:16) 우리는 성경 정경에 포함되는 책들을 결정하는 과정에 하느님의 영의 인도가 있었음을 확신할 수 있다. 분명 그러한 과정에는 이 선물을 받은 형제들이 사용되었을 것이다.—딤후 3:16. 용어 설명 “정경”; “” 참조.

이것은 모든 편지에 들어 있는 나의 표이며, 내가 쓰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쓴 일부 편지들의 끝부분에서 자기 손으로 직접 인사를 썼다. (고전 16:21; 골 4:18) 여기서는 자신이 직접 쓴 이 인사가 자신이 편지를 썼다는 것을 보여 주는 “표”라는 말을 덧붙인다. 이전에 데살로니가 사람들은 실제로는 바울이 보낸 것이 아닌 편지를 바울이 보낸 편지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그 편지의 내용을 “여호와의 날이 왔다”고 알려 주는 것으로 해석했다. (살후 2:1, 2) 바울이 언급한 이 “표”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이 편지가 정말로 바울이 보낸 것이라는 점을 확신하게 해 주었을 것이다.

여호와의 날: 성경에서 “여호와의 날”이라는 표현은 여호와께서 적들에게 심판을 집행하시고 자신의 위대한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시는 특별한 때를 가리킨다. 이 표현은 히브리어 성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 사 13:6; 겔 7:19; 욜 1:15; 암 5:18; 옵 15; 습 1:14; 슥 14:1; 말 4:5) 예언자 요엘은 “여호와의 크고 외경스러운 날이 오는” 것에 대해 언급했다. (욜 2:31) 행 2:20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베드로는 기원 33년 오순절에 그 구절을 인용했다. (행 2:20 연구 노트 참조) 요엘의 예언의 첫 번째 성취로, 기원 70년에 예루살렘에 “여호와의 날”이 닥쳤다. 이 구절 즉 살전 5:2에서 바울은 미래에 있을 여호와의 날을 언급하는데, 그날은 예수께서 마 24:21에서 예언하신 “큰 환난”을 가리킨다.—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살전 5:2 참조.

영감받은 말이나: 또는 “영이나”. (용어 설명 “” 참조) 그리스어 프뉴마(대개 “영”으로 번역됨)는 때때로 의사 전달을 하는 수단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이 구절이 그러한 예인데, 여기서는 그 단어가 “전하는 말”과 “편지”와 함께 언급되었다. 다른 구절들에서는 이 그리스어가 “영감받은 말(씀)”과 (딤전 4:1; 요1 4:1-3, 6) “영감받은 표현”으로 (계 16:13, 14) 번역되었다.—고전 12:10 연구 노트 비교.

우리가 보낸 것처럼 보이는 편지로: 데살로니가 회중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가 임박했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실제로는 바울이 보낸 것이 아닌 편지를 바울이 보낸 것으로 생각하고 그 편지의 내용을 “여호와의 날”이 왔다고 알려 주는 것으로 해석했을 수 있다. 바울이 자신이 데살로니가 후서를 썼다는 점을 확증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을 수 있다. “나 바울이 내 손으로 직접 이 인사를 씁니다. 이것은 모든 편지에 들어 있는 나의 표이며, 내가 쓰는 방식입니다.”—살후 3:17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의 날: 살전 5:2 연구 노트부록 다3 소개; 살후 2:2 참조.

저버리라고: 직역하면 “배교하라고”. “배교”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동사 아피스테미에서 나온 말이다. 아피스테미는 문자적으로 “떨어져 서 있다”를 의미하며 문맥에 따라 “떠나다; 버리다”로 번역할 수 있다. (행 19:9; 딤후 2:19)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버림, 떠남, 반역”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구절과 살후 2:3에 두 번 나온다. 고전 그리스어에서 이 명사는 정치적 이탈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행 5:37에서는 이 단어의 동사형인 아피스테미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된 것 같다. 그 구절에서는 갈릴리 사람 유다가 “사람들을 끌어[아피스테미의 한 형태] 자기를 따르게” 했다고 알려 준다. 「칠십인역」창 14:4에서 그런 정치적 반역을 가리키는 데 동사 아피스테미를 사용했다. 또한 수 22:22; 대하 29:19; 렘 2:19에서 “반역”과 “불충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표현들을 번역할 때 명사 아포스타시아를 사용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종교적인 이탈, 하느님께 드리는 참숭배와 봉사를 떠나는 것 즉 저버리는 것, 자신이 공언해 오던 것을 저버리는 것, 원칙이나 믿음을 완전히 버리는 것을 가리키는 데 사용된다.

불법: 그리스어 원어에는 법을 어기고 업신여기면서 마치 법이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마 7:23; 고후 6:14; 살후 2:3-7; 요1 3:4.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심으로: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시는 기간 전체가 아니라 그 임재 기간의 끝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한 가지 사건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신다는 것이 나타날 즉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눅 21:25-28. 용어 설명 “임재” 참조) 여기서 바울이 한 말은 기원 1세기에 이미 활동하고 있던 “불법의 사람”이 그리스도의 임재 기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이 점을 볼 때 바울이 언급한 “불법의 사람”이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집단을 집합적으로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후 2:3 연구 노트 참조) “불법의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집행되면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큰 환난”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마 24:21. 용어 설명 “큰 환난” 참조.

이 불법의 신비: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신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미스테리온은 비밀스럽고 일반적인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계 17:5, 7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그리스어가 사용된 다른 경우들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마 13:11 연구 노트 참조) “불법의 사람”에게 신비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당시에 배교자들 가운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자들의 집단이 아직 식별 가능한 모습으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신비는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 배교자들이 회중에 침투하여 불법을 행하도록 어지럽히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행 15:24. 살후 2:3 연구 노트 참조.

멸망의 아들: 이 문맥에서 이 표현은 가룟 유다를 가리킨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을 고의적으로 배반함으로 영원한 멸망을 당할 자, 부활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자가 되었다. 동일한 표현이 살후 2:3에서는 “불법의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성경 원어에서 “~의 아들(들)”은 특정한 행로를 따르는 사람이나 어떤 특징을 나타내는 사람을 가리키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경에는 “가장 높으신 분의 아들들”, “빛의 아들들이며 낮의 아들들”, “왕국의 아들들”, “악한 자의 아들들”, “마귀의 자식”, “불순종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눅 6:35; 살전 5:5; 마 13:38; 행 13:10; 엡 2:2) 또한 “~의 아들”은 특정한 행로를 따르거나 어떤 특징을 나타낼 때 닥치게 될 심판이나 결과를 가리키는 데 쓰이기도 한다. 삼하 12:5에서는 문자적으로 “죽음의 아들”을 의미하는 표현이 “죽어 마땅하다”로 번역되었다. 마 23:15에서는 문자적으로 “게헨나의 아들”을 의미하는 표현이 영원한 멸망을 받아 마땅한 사람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의미로 가룟 유다를 “멸망의 아들”이라고 부르신 것 같다.—마 23:15 연구 노트 및 용어 설명 “게헨나” 참조.

먼저 배교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의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임재”와 “여호와의 날”에 관한 잘못된 가르침에 영향을 받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은 두 가지 일이 먼저 일어나야 한다고 상기시켜 준다. (1) 배교가 일어나고 (이 구절에 나오는 배교에 대한 연구 노트 참조) (2)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었다. (살후 2:1-3) 배교가 널리 퍼져 그리스도인 회중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바울의 말은 밀과 가라지에 대한 예수의 비유와 조화를 이룬다. (마 13:24-30, 36-43) 바울은 다른 구절들에서도 배교가 회중에 침투할 것이라는 예언적인 경고를 했다. 후에 사도 베드로도 그러한 경고를 했다.—행 20:29, 30; 딤전 4:1-3; 딤후 4:3, 4; 벧후 2:1-3.

배교: 여기에 사용된 그리스어 명사 아포스타시아는 문자적으로 “떨어져 서 있다”를 의미하는 동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명사는 “버림; 떠남; 반역”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단순히 영적으로 약해지거나 의심하게 되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행 21:21 연구 노트 참조) 고전 그리스어에서 이 명사는 정치적 이탈이나 반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었다. 이 문맥에서 바울은 “배교”라는 말을 “여호와의 날”이 오기 전에 있게 될 종교적 이탈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한다. (살후 2:2) 그가 말한 배교는 참숭배와 하느님께 드리는 봉사를 고의적으로 저버리는 것을 가리킨다.—용어 설명 “배교” 참조.

불법의 사람: 여기서 “불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고의적으로 법에 어긋나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마 24:1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불법의 사람”이 배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많은 회중이 배교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불법의 사람”은 어느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불법의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해로운 집단을 집합적으로 가리킨다. (살후 2:8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바울은 미래의 언젠가 이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살후 2:7 연구 노트 참조) 여러 성경 번역판에는 일부 사본의 표현에 근거하여 이 부분이 “죄의 사람”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사본들에서는 “불법의 사람”에 해당하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불법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문맥과도 조화를 이룬다. 몇 구절 뒤에서 바울이 “불법의 신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 사람을 “불법한 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살후 2:7, 8.

멸망의 아들: 이 표현은 “멸절의 아들”로 번역할 수도 있으며 예수를 배반한 가룟 유다를 가리키는 데도 사용되었다. (요 17:12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이 표현을 사용함으로 배반자 유다가 영구적인 죽음을 맞은 것처럼 “불법의 사람”도 반드시 영구적인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임을 밝힌 것이다.

신이라 불리는 모든 자나 숭배를 받는 모든 대상 위에 자기를 높이고: ‘숭배를 받는 대상’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은 “숭상의 대상”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 여기서 바울은 타락한 “불법의 사람”이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왜곡된 것들을 가르침으로 자신을 높일 것임을 밝힌다. (살후 2:3) “신이라 불리는 모든 자”라는 표현에는 세속 통치자들과 같은,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포함될 수 있다. (요 10:34-36 비교) 바울이 사용한 이 표현을 볼 때 자만심에 가득 찬 이 “사람”이 자신의 가르침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처럼 행동할 것임을 알 수 있다.

하느님의 성전에 앉아서: 바울은 여기서 “불법의 사람”의 위선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살후 2:3) 그가 하느님의 성전(또는 “신전”)에 실제로 앉아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그렇게 앉아 있다고 주장하는 셈이다. 그리스어 원문에는 “하느님” 앞에 정관사가 사용되었다. 이것은 이 “사람”이 자신이 참하느님의 대표자라고 거짓 주장을 한다는 점을 보여 준다.

… 기억하지 못합니까?: 바울은 기원 50년경에 데살로니가 회중을 방문했으며,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아마도 기원 51년경에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다. (행 18:11) 여기서 그는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이 편지에서 쓴 것과 매우 비슷한 경고를 이전에 그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했다는 점을 기억하라고 권고한다.

지금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여기서 바울은 앞 구절에서 사용한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을 다시 사용하면서 “지금”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는 사도들이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살후 2:6 연구 노트 참조) 수십 년이 지난 기원 98년경에 사도 요한은 당시가 사도 시대의 “마지막 시간”이며 배교가 퍼지고 있다고 썼다. (요1 2:18) 기원 100년경에 요한이 사망하면서 마지막으로 배교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던 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여기서 바울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충실한 사도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이 부분과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 기록된 바울의 말을 보면 그가 배교를 억제하기 위해, 즉 막기 위해 힘써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행 20:29, 30; 딤전 4:1-3; 딤후 2:16, 17; 4:2, 4 참조) 사도 베드로도 이 해로운 영향력에 맞서 싸웠다. (벧후 2:1-3) 사도 요한은 그가 연로해진 수십 년 뒤에도 여전히 배교가 퍼지지 않도록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배교가 이미 회중들에 널리 퍼져 있다고 경고했다. (요1 2:18; 요2 7) 여기서 바울은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없어지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 준다.—살후 2:3. 살후 2:7 연구 노트 참조.

신성한 비밀: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는 그리스어 미스테리온이 28회 나오는데, 「신세계역」에서는 대부분 “신성한 비밀”로 번역되었다. 이 구절에서는 이 단어의 복수형이 사용되었으며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까지 밝혀지지 않는 그분의 목적의 여러 부분들을 가리킨다. 이 신성한 비밀들은 하느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분이 이해력을 주기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온전히 밝혀진다. (골 1:25, 26) 일단 밝혀지고 나면,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은 최대한 널리 선포된다. 성경에서 “신성한 비밀”이라는 말이 “전하다”, “알려 주다”, “전파하다”, “밝혀지다”, “계시”와 같은 표현들과 함께 사용된 것을 보면 그 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고전 2:1; 엡 1:9; 3:3; 골 1:25, 26; 4:3) 하느님의 신성한 비밀들 가운데 주된 비밀에서 중심을 이루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분 즉 그분이 약속된 “자손” 곧 메시아라는 점이다. (골 2:2; 창 3:15) 하지만 이 주된 신성한 비밀에는 하느님의 목적 안에서 예수에게 맡겨진 역할을 포함해 여러 부면이 있다. (골 4:3) 예수께서 이 구절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신성한 비밀들은 하늘 왕국, 즉 예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늘 정부인 “하느님의 왕국”과 관련이 있다. (막 4:11; 눅 8:10. 마 3:2 연구 노트 참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 사용된 미스테리온이라는 단어는 고대 밀의(密儀) 종교 즉 신비주의 종교에서 말하는 미스테리온과 다르다. 기원 1세기에 성행한 다산의 신 숭배에 주로 기반을 둔 그러한 종교들은 그 종교의 신봉자들이 신비스러운 의식을 통해 불멸성을 얻고 직접적인 계시를 받고 신들에게 가까이 갈 수 있다고 약속했다. 그러한 비밀들은 분명 진리에 근거한 것이 아니었다. 신비주의 종교에 입교하는 사람들은 그 비밀을 누설하지 않겠다고 서약했으며, 따라서 그 비밀은 널리 선포되는 그리스도교의 신성한 비밀들과는 달리 신비에 싸이게 되었다. 성경에서 미스테리온이 거짓 숭배와 관련하여 사용되는 경우, 「신세계역」에서는 이 단어를 “신비”로 번역한다.—미스테리온이 “신비”로 번역된 세 경우를 보려면, 살후 2:7; 계 17:5, 7 연구 노트 참조.

불법의 사람: 여기서 “불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고의적으로 법에 어긋나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마 24:1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불법의 사람”이 배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많은 회중이 배교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불법의 사람”은 어느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불법의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해로운 집단을 집합적으로 가리킨다. (살후 2:8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바울은 미래의 언젠가 이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살후 2:7 연구 노트 참조) 여러 성경 번역판에는 일부 사본의 표현에 근거하여 이 부분이 “죄의 사람”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사본들에서는 “불법의 사람”에 해당하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불법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문맥과도 조화를 이룬다. 몇 구절 뒤에서 바울이 “불법의 신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 사람을 “불법한 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살후 2:7, 8.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 여기서 바울은 하나의 집단으로서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던 충실한 사도들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이 부분과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 기록된 바울의 말을 보면 그가 배교를 억제하기 위해, 즉 막기 위해 힘써 노력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행 20:29, 30; 딤전 4:1-3; 딤후 2:16, 17; 4:2, 4 참조) 사도 베드로도 이 해로운 영향력에 맞서 싸웠다. (벧후 2:1-3) 사도 요한은 그가 연로해진 수십 년 뒤에도 여전히 배교가 퍼지지 않도록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배교가 이미 회중들에 널리 퍼져 있다고 경고했다. (요1 2:18; 요2 7) 여기서 바울은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없어지면”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알려 준다.—살후 2:3. 살후 2:7 연구 노트 참조.

이 불법의 신비: 바울이 여기서 사용한 “신비”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미스테리온은 비밀스럽고 일반적인 이해의 범주를 벗어나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는 계 17:5, 7에서도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다. (이 그리스어가 사용된 다른 경우들에 대한 설명을 보려면 마 13:11 연구 노트 참조) “불법의 사람”에게 신비스러운 면이 있었다고 할 수 있는 이유는 당시에 배교자들 가운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자들의 집단이 아직 식별 가능한 모습으로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신비는 이미 활동하고 있었다. 배교자들이 회중에 침투하여 불법을 행하도록 어지럽히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행 15:24. 살후 2:3 연구 노트 참조.

지금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여기서 바울은 앞 구절에서 사용한 “억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에 해당하는 그리스어 표현을 다시 사용하면서 “지금”이라는 말을 덧붙인다. 그는 사도들이 억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 같다. (살후 2:6 연구 노트 참조) 수십 년이 지난 기원 98년경에 사도 요한은 당시가 사도 시대의 “마지막 시간”이며 배교가 퍼지고 있다고 썼다. (요1 2:18) 기원 100년경에 요한이 사망하면서 마지막으로 배교를 억제하는 역할을 하던 이가 “없어지게” 되었다.

불법의 사람: 여기서 “불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고의적으로 법에 어긋나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마 24:1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불법의 사람”이 배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많은 회중이 배교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불법의 사람”은 어느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불법의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해로운 집단을 집합적으로 가리킨다. (살후 2:8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바울은 미래의 언젠가 이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살후 2:7 연구 노트 참조) 여러 성경 번역판에는 일부 사본의 표현에 근거하여 이 부분이 “죄의 사람”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사본들에서는 “불법의 사람”에 해당하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불법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문맥과도 조화를 이룬다. 몇 구절 뒤에서 바울이 “불법의 신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 사람을 “불법한 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살후 2:7, 8.

‘말씀’: 또는 “로고스”. 그리스어 호 로고스. 여기서 이 단어는 칭호로 사용되었으며 요 1:14과 계 19:13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요한은 이 칭호를 가진 분이 예수임을 밝혔다. 이 칭호는 예수께서 인간이 되기 전 영적 피조물로 존재하셨을 때, 땅에서 완전한 인간으로 봉사하셨을 때, 그리고 하늘로 올라가신 뒤에도 그분에게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 즉 ‘대변자’로서, 창조주의 다른 천사 아들들과 인간들에게 정보와 지시를 전하는 역할을 하셨다. 따라서 예수께서 땅에 오시기 전에 여호와께서는 인간과 의사소통하실 때 많은 경우 이 ‘말씀’ 즉 천사 대변자를 사용하셨을 것으로 보는 것이 이치적이다.—창 16:7-11; 22:11; 31:11; 출 3:2-5; 삿 2:1-4; 6:11, 12; 13:3.

불법의 사람: 여기서 “불법”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고의적으로 법에 어긋나게 살아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에서는 이 단어가 하느님의 법을 무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마 24:12 연구 노트 참조) 이 구절에서 바울은 “불법의 사람”이 배교와 관련이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많은 회중이 배교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으므로 “불법의 사람”은 어느 한 개인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이 분명하다. “불법의 사람”은 거짓 그리스도인들로 이루어진 해로운 집단을 집합적으로 가리킨다. (살후 2:8 연구 노트 참조) 또한 바울은 미래의 언젠가 이 “사람”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다시 말해 그의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예언한다. (살후 2:7 연구 노트 참조) 여러 성경 번역판에는 일부 사본의 표현에 근거하여 이 부분이 “죄의 사람”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만들어진 사본들에서는 “불법의 사람”에 해당하는 표현이 사용되었다. “불법의 사람”이라는 표현은 문맥과도 조화를 이룬다. 몇 구절 뒤에서 바울이 “불법의 신비”에 관해 언급하면서 이 사람을 “불법한 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살후 2:7, 8.

불법한 자: 바울은 살후 2:3에서 언급한 “불법의 사람”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연구 노트 참조.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영으로: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서 여호와의 주된 대변자 역할을 하신다. (계 19:13. 요 1:1 연구 노트 참조) 예수께서는 메시아 왕으로서 여호와로부터 받은 권한으로 하느님의 모든 적들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선언하실 것이다. 그러한 적들 가운데는 이 “불법한 자”도 포함될 것이다.—사 11:3, 4; 계 19:14-16, 21 비교.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심으로: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보이지 않게 임재해 계시는 기간 전체가 아니라 그 임재 기간의 끝이 가까웠을 때 일어날 한 가지 사건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때가 되면 그리스도께서 임재해 계신다는 것이 나타날 즉 모두에게 분명히 드러날 것이다. (눅 21:25-28. 용어 설명 “임재” 참조) 여기서 바울이 한 말은 기원 1세기에 이미 활동하고 있던 “불법의 사람”이 그리스도의 임재 기간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을 것임을 보여 준다. 이 점을 볼 때 바울이 언급한 “불법의 사람”이 어느 한 개인이 아니라 한 집단을 집합적으로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살후 2:3 연구 노트 참조) “불법의 사람”에 대한 하느님의 심판이 집행되면 그리스도께서 왕으로서 임재해 계신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예언하신 “큰 환난”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질 것이다.—마 24:21. 용어 설명 “큰 환난” 참조.

사탄: “대항자; 적대자”를 의미하는 히브리어 사탄에서 나온 이름.

놀라운 일: 또는 “전조”.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그리스어 테라스는 항상 세메이온(“표징”)과 함께 사용되며, 그 경우 두 단어 모두 복수형으로 사용된다. (마 24:24; 요 4:48; 행 7:36; 14:3; 15:12; 고후 12:12) 테라스는 기본적으로 외경심이나 경탄을 자아내는 것을 가리킨다. 이 단어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전조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한 경우에는 연구 노트에 “전조”라는 대체 표현이 나온다.

불법한 자의 임재: 그리스어 본문을 직역에 가깝게 옮기면 “그의 임재”가 된다. 문맥을 보면 여기서 “그”가 가리키는 대상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앞 구절에서 언급된 “불법한 자”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사탄의 활동에 의한 것으로: 여기서 “활동”으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작용”으로 옮길 수도 있다. 한 참고 문헌에 따르면,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의 능력이든 마귀의 능력이든 초인간적인 능력과 관련해서만 사용된다.” 따라서 바울은 사탄이 자신의 초인간적인 힘을 사용해 “불법의 사람”에게 능력을 준다고 말한 것이다. (살후 2:3) 그에 더해 “사탄”은 히브리어로 “대항자”를 의미하는데 “불법의 사람”은 여호와의 가르침과 그분의 백성을 반대함으로 그분에게 대항한다.—마 4:10 연구 노트 참조.

놀라운 일: 또는 “전조”. 그리스도의 참된 사도들은 하느님의 성령을 받았기 때문에 기적과 표징과 놀라운 일을 행했다. (행 2:43; 5:12; 15:12; 고후 12:12) 하지만 반역적인 “불법의 사람”이 그와 비슷한 일을 행하는 것은 사실상 사탄이 활동하여 그의 강력한 힘이 작용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살후 2:3) 그들이 행하는 “놀라운 일” 또는 “전조”는 거짓된 것이었다. 속임수를 쓴 것이거나 거짓된 혹은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살후 2:10, 11) 그러한 일은 사람들의 주의를 생명의 근원이신 분과 영원한 생명의 길로부터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었다.—마 7:22, 23; 고후 11:3, 12-15 비교. 행 2:19 연구 노트 참조.

속임수: 또는 “유혹”. 여기 사용된 그리스어는 “기만적인 힘”, (마 13:22; 히 3:13) “기만적인 가르침”으로 번역되기도 한다.—벧후 2:13.

속임수: 또는 “유혹”. “속임수”로 번역된 그리스어는 육체적인 쾌락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했으며, 따라서 노골적인 사기보다는 죄가 되는 물질적인 욕망을 이용해 유혹하는 것을 포함할 수 있다.—골 2:8 연구 노트 참조.

여호와께 사랑받는: 여기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신이 그들 때문에 하느님께 감사한다는 점과 그들이 여호와 하느님께 사랑받고 있다는 점을 확신시켜 준다. 바울은 살전 1:4에서도 비슷한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 구절에서 그는 자신의 영적 형제들을 “하느님께 사랑받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그러한 표현들은 여호와 하느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사랑하신다는 점을 보여 주는 히브리어 성경의 표현들을 떠올리게 했을 수 있다.—신 7:7, 8; 33:12. 이 구절에 하느님의 이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알아보려면 부록 다3 소개; 살후 2:13 참조.

전통: 여기서 “전통”으로 번역된 그리스어 파라도시스는 전해 내려온 것을 가리키는데, 그 가운데는 이전부터 전해 내려와 사람들이 따르고 있는 정보나 가르침이나 관행이 포함된다. 그리스도인 그리스어 성경에서 이 단어는 때때로 유익한 전통 즉 참숭배의 일부가 된, 적합하거나 받아들일 만한 전통을 가리킨다. (살후 2:15; 3:6)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이 주의 만찬을 기념하는 것과 관련해 받은 정보는 받아들일 만한 그리스도인 전통으로서 그리스도인 회중에 전달되기에 합당한 것이었다. (고전 11:23) 그리스어 파라도시스는 그릇된 전통 또는 전통을 지키거나 이해하는 방식 때문에 해롭거나 받아들이기 어렵게 된 전통을 가리키는 데도 자주 사용된다.—마 15:2, 3; 막 7:3, 5, 13; 골 2:8.

여러분이 가르침받은 전통: 바울은 참숭배의 일부가 된, 적합하거나 받아들일 만한 전통을 가리켜 이렇게 말한 것이다.—고전 11:2 연구 노트 참조.

모든 위로의 하느님: 여기서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 명사 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어떤 사람이 시련을 겪거나 슬픔을 느낄 때 그의 곁에 서서 그를 돕거나 격려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일부 학자들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를 강조한 바울의 이 말이 사 40:1에 나오는 사상과 비슷하다는 견해를 제시한다. 그 구절은 이러하다. “‘위로하여라, 내 백성을 위로하여라.’ 너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또한 사 51:12 참조) 또한 이 단어와 어근이 같은 그리스어(파라클레토스)는 요 14:26에서 “돕는 자”로 번역되었는데 여호와의 성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관점에서 희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강력한 활동력을 사용하여 위로와 도움을 베푸신다.—행 9:31; 엡 3:16.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여기서 “위로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파라칼레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한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16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점을 언급한 뒤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을 사랑하신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마음에 위로를 받는 것과 연관 짓는다. (롬 8:32, 38, 39; 엡 1:7; 2:4, 5) 이러한 내용은 박해를 받고 있던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살후 1:4.

영원한 위로: 여기서 “위로”로 번역된 그리스어(파라클레시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는 것”을 의미한다. (고후 1:3 연구 노트 참조) 하느님께서 주시는 위로는 “영원”하다. 즉 끝이 없다.—살후 2:17 연구 노트 참조.

격려하는: 또는 “권고하는”. 그리스어 파라칼레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한다. 이 단어는 폭넓은 뜻을 담고 있으며, “격려하다”(행 11:23; 14:22; 15:32; 살전 5:11; 히 10:25); “위로하다”(고후 1:4; 2:7; 7:6; 살후 2:17)를 의미할 수 있고 일부 문맥에서는 “강권하다; 권고하다”(행 2:40; 롬 15:30; 고전 1:10; 빌 4:2; 살전 5:14; 딤후 4:2; 딛 1:9, 각주)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권고와 위로와 격려가 이처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점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에게 권고할 때 결코 거칠거나 불친절한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려 주는 것일 수 있다.

여러분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여기서 “위로하다”로 번역된 그리스어 동사 파라칼레오는 문자적으로 “곁으로 부르다”를 의미한다. (롬 12:8 연구 노트 참조) 바울은 16절에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점을 언급한 뒤에, 여호와께서 자신의 종들을 사랑하신다는 기본적인 진리를 마음에 위로를 받는 것과 연관 짓는다. (롬 8:32, 38, 39; 엡 1:7; 2:4, 5) 이러한 내용은 박해를 받고 있던 데살로니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격려가 되었을 것이다.—살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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